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71화
71. 파동(3)
“그러니까…… 네가 대장이라고?”
나는 허리춤에 양손을 얹은 채 당당히 서 있는 우마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우마!!”
고개를 높게 쳐든 우마의 뒤로 죽음의 군주 암살이와 이번에 새롭게 얻게 된 소환수 반 페르데이스가 서 있었다.
“너는 그렇다고 쳐도, 너는 왜……?”
나는 반 페르데이스를 빤히 쳐다봤다.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암살이야 이전에 우마가 위계질서를 다져놨다고 하더라도 이쪽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몸집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암살이 보다도 두 배는 거대한 몸집을 가진 녀석. 그런 녀석이 콧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몸집을 지닌 우마의 뒤에 서 있었다.
그 기괴한 광경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게다가 저 녀석은 고귀한 존재이자 모든 종의 정점에 선 존재가 아닌가.
나는 넋이 나간 얼굴로 반 페르데이스를 바라봤다.
-선배의 선배 아닌가. 원래 용들은 위계질서가 탄탄한 편이다.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푸른 비늘의 용에게 허탈한 웃음을 보인 나는 물었다.
“자존심 안 상해?”
-드래곤은 원래 순리를 거스르는 일을 싫어한다. 선배이지 않은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 듯 말하는 드래곤의 말에 나는 조금 수긍이 가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어이가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뭐 사이 나쁜 것보다야 낫겠지만…….”
다시 한번 헛숨을 들이켠 나는 위풍당당한 자태를 뽐내는 우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쯤 되면 사실 우마가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무튼, 잘 지내기로 했으면 됐어.”
좋게 생각하자 맘먹은 나는 녀석들을 불러들인 진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우리는 저곳으로 들어갈 거야.”
나는 흑운의 기운으로 둘러싸인 벽 밖에 위치한 던전의 입구를 가리켰다.
천진오가 말했던 그 던전이었다.
‘평범해 보이긴 하지만 틀림없이 뭔가 있다.’
천지훈이 들락거리며 힘을 키운다는 그 던전은 그냥 평범해 보이는 20m급의 규격 외 던전이었다.
특이한 점은 천지훈이 몇 번씩이나 들락거렸음에도 불구하고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정도였다.
그러나 별다른 징조가 없다고, 긴장을 늦춰야 한다는 말은 아니었다. 분명 무언가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그러니 긴장해.”
나는 짐짓 심각해진 얼굴로 소환수들에게 말했다. 목숨이 위험하면 서로를 지키라고, 또 적이라 판단되면 거침없이 공격하라고, 그리 일렀다.
가장 먼저 고개를 끄덕인 우마가 손짓하기 시작했다.
“우마!! 우마마!!”
나머지 녀석들에게 무엇인가 말하는 듯했고, 암살이와 반 페르데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웃겨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찰칵-!
대체 무슨 짓이냐며 쳐다보는 녀석들.
“아냐, 계속해.”
큭하고 웃으며 나는 그들의 작전 구상을 조용히 바라봤다. 조막만 한 손을 휘저으며 능통한 장수처럼 지휘를 내리는 우마.
퍽이나 웃긴 그 모습을 바라보며 끅끅대기를 한참, 우마는 펄쩍 뛰어 죽음의 군주 암살이의 머리 위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가 끝났다고?”
“우마!!”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을 바라보고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입구의 앞에는 두 명의 보초가 서 있었다.
한 명은 이미 알고 있던 녀석이었고, 한 명은 처음 보는 녀석이었다. 어쨌든 둘 다 천지훈의 사람들인 것만큼은 분명했다.
나는 녀석들을 잡아 정보를 캐낼까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휘저었다.
얕게 펼친 흑운조차 파악하지 못할 정도라면 알고 있는 정보 또한 뻔한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천지훈이 공식 일정으로 나가 있다는 사실은 파악한 상태였지만, 조심해서 나쁜 것은 없었다.
나는 거침없이 녀석들의 뒤통수를 후려쳐 의식을 잃도록 만든 뒤 재빨리 던전 안으로 몸을 날렸다.
* * *
던전 안은 천진오에게 들은 것과 수준과 딱 맞아떨어졌다. 규격 외 던전에서 접할 수 있다는 추상적인 설명과 부합하는 정도의 몬스터들만 출현했다.
‘설원 오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약하다.’
던전의 입구 쪽이라 그런지 모르겠으나, 얼마 전 마주쳤던 설원 오크에 비하면 너무나도 미약한 존재감이었다.
가볍게 녀석들을 지져 버린 나는 점차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던전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신경을 건드리는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점점 심해지는 악취. 녹음이 가득한 숲속에서 나는 냄새라기엔 너무나도 이질적인 냄새였다.
“…….”
뭐지? 불길한 예감이 든 나는 기감을 넓혔다. 던전 곳곳에서 몬스터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러나 기운을 확인한 나는 미간을 더욱 좁힐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들의 기척이 전부 악취의 발생지와는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천천히 악취가 흘러나오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곧, 악취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작은 산이 있었다. 겹겹이 쌓인 인간의 육체로 이루어진 산이.
족히 50구는 되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미친……!”
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몬스터의 짓인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몬스터들은 어째서인지 이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천지훈 이 개새끼가!”
분노가 치밀었다.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대체 왜……?”
주변을 살폈다. 그제야 충격적인 광경에, 보이지 않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숲속 깊은 곳에 차려진 제단, 이끼가 잔뜩 낀 기둥. 이곳은 낡은 사원이었다. 마치 흑마법사들이 의식을 치르는 듯한…….
그때였다.
화륵.
제단의 가장자리에 푸른 불꽃이 일렁였다. 그것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불꽃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마침내 푸른 불꽃이 제단을 모두 둘러싸자, 신기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중앙으로부터 붉은 피가 흘러나오더니 문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피로 만든 붉은 별이 그려지고 인간들의 시체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위로 나타나는 검은 문. 묵직해 보이는 문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끼이익-!
칠판을 긁어 대는 듯한 소름이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재빨리 거리를 벌리고, 반지와 목걸이에 활력을 불어넣을 준비를 끝마쳤다.
문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기운은 결코 평범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문이 활짝 열리고, 걸어 나오는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뚜벅뚜벅.
사람에게서는 볼 수 없는 걸음걸이였다.
마침내, 네발로 걸어 나오는 생명체가 눈에 들어왔다.
사슴의 외형을 하고 있었으며, 나선 모형으로 꼬여 있는 기괴한 뿔을 지닌 존재. 강대하면서도 불길하기 그지없는 기운을 풀풀 풍기는 존재가 서 있었다.
칼로 목을 긁어 대는 느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대는 누구지?”
“그러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콰르르릉!!
머리 위로 낙뢰가 쏟아졌다.
활력을 사용한 나는 그대로 전격을 받아들였다.
문에서 나온 존재는 조금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입꼬리를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가가가각-!
광대 부분을 지나고, 눈 바로 옆부분까지 입꼬리를 올리는 기괴한 표정.
오싹한 기분이 온몸을 덮쳤다.
그 소름 돋는 얼굴로 녀석이 내게 말했다.
“맛있어 보이네?”
콰르르릉~!
다시 한번 낙뢰가 내리쳤다.
나는 다시 한번 뇌 속성을 활성화시켜 모든 전격을 흡수했다.
녀석의 입꼬리가 다시 한번 기괴하게 변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인간치곤 제법이구나. 하나, 내 질문을 다시 한번 되묻거나 거짓말을 했다가는 내장부터 파먹어 주마.”
흉물스러운 몰골로 말하는 저 사슴의 발언은 단순한 협박용 멘트가 아니었다.
심각함을 느낀 나는 조금 더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반지와 목걸이 안에서는 소환수들이 나오겠다 아우성치는 중이었다.
‘가만히 있어!’
나는 녀석들에게 속으로 소리쳤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얼핏 느껴지는 기운만 보더라도 녀석은 하이 엘프였던 혹한의 군주만큼이나 강대한 기운의 보유자였다.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상대.
나는 일단 녀석과 대화를 나눠보기로 했다. 녀석과 천지훈이 어떤 관계인지 알아내야만 녀석을 제압하든 전략을 세우든 할 수 있을 테니까.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천도윤입니다.”
[소환수 ‘반 페르데이스’가 지하의 천것들에게 고개를 숙이다니, 주인에게 실망했다 말합니다.]
[소환수 ‘암살이’가 반 페르데이스에게 입조심하라며 낮게 으르렁거립니다.]
[소환수 ‘반 페르데이스’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마지못해 사과합니다.]
[소환수 ‘암살이’가 반 페르데이스에게 사과는 주인에게 하라고 소리칩니다.]
‘이것들이!’
나는 머릿속을 울려 대는 알림음을 애써 무시한 채 녀석에게 말했다.
“천지훈의 동생입니다. 형의 명령을 받고 왔습니다.”
“건방지구나, 내 허락도 없이 사람을 들이다니.”
녀석의 기분에 따라 주변의 공기가 뒤바뀌었다. 무거워진 공기를 애써 뚫어 낸 채, 나는 말을 이었다.
“형님이 위대하신 당신을 섬기면 평생 행복할 수 있을 거라 했습니다.”
“큭, 크하하하하.”
나의 말을 들은 녀석은 가래 끓는 웃음으로 던전 안을 무섭게 울려 댔다.
“크하하핫! 아주 좋구나. 그래, 내 이름이 무엇이지?”
“…….”
당황한 내가 입을 열기도 전, 녀석의 웃음이 뚝! 끊겼다.
그러고는 흉악스러운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거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댈 수 없겠지. 네놈은 천지훈과 같은 편이 아니니까.”
엄청난 양의 낙뢰가 온 일대를 덮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녀석이 나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나를 기만하다니, 약속대로 내장까지 파먹어 주마.”
“악마 새끼가 약속은 더럽게 잘 지키네.”
나는 거리를 벌리며 녀석과의 전투를 준비했다.
그리고 그 순간, 지구가 아닌 중간계에서도 예상치 못한 파동이 일고 있었다.
* * *
험준하고 가파른 활화산.
용암이 들끓는 그곳에는 청명한 눈을 가진 미남 둘이 서 있었다.
“반 페르데이스가 살아 있었다고?”
“예, 카렐 페르데이스의 아들 반 페르데이스는 살아 있었다고 합니다.”
“어디에?”
“만년설에 갇혀 있었다고…….”
미남자의 보고와 동시에 대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누가 감히……!”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여실히 느껴지는 노호였다. 붉은 머리칼을 가진 미남의 형언할 수 없는 기세에 맞춰 활화산이 미친 듯이 용암을 뿜어 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튀어나온 뜨거운 액체가 그들의 발목을 적셨지만, 그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누구냐!! 푸른 눈의 용들이냐!”
벼락같은 호통이 날아들었다.
“아닙니다. 하이 엘프들의 짓이라고 합니다.”
“반 페르데이스가 어린아이라고 하나, 엘프들은 한낱 미물이다.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래도 누군가의 개입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노기가 서린 얼굴을 한 남자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잠시 마음을 추스른 뒤, 남자가 말했다.
“개입이라…… 은색 용들이 말한 것인가?”
“예.”
보고를 들은 유난히도 붉은 눈을 가진 남자의 눈이 변하기 시작했다.
세로로 쭉 찢어진 포식자의 눈. 마치 도마뱀의 그것과 같은 눈이 무섭게 산 아래를 향해 쏘아지고 있었다.
“지하의 들개 중 하나겠구나.”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다시금, 보고하는 자에게 향했다.
“일단 반 페르데이스를 데려오너라. 이야기를 듣고 나서 결정할 것이다.”
“저 그게…….”
“우물쭈물하지 말고 말하라!”
“은색 용들의 발언에 따르면 반 페르데이스가 붉은 용의 자격을 스스로 버렸다고 합니다.”
“뭐라?”
미남자의 표정이 딱딱히 굳어졌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만년이 넘는 용들의 역사상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부족하고 죄지은 용의 자격을 박탈한 적은 있지만, 스스로 자격을 포기한 용은 여태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어서 말해 보라!”
처음으로 당황한 모습을 보이는 붉은 용들의 왕 테론 페르몬드는 보고자를 닦달했다.
“아무래도 누군가의 꾐에 넘어가 들끓는 염(炎)의 힘을 버린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염의 힘을 버리고 다른 힘을 취한 것 같습니다. 은색 눈동자가 말하기를 푸른색이 보인다고…….”
“이 망할 버러지 새끼들이!!”
눈을 부릅뜬 테론 페르몬드는 독살스러운 살기를 폭발시켰다.
“지하의 개가 아닌 그 녀석들이었구나! 푸른 눈의 도마뱀들에게 찾아가 전해라. 당장 반 페르데이스를 내놓지 않으면 전쟁이라고.”
붉다 못해 검은빛을 띠기 시작한 용암이 분화구를 통해 하늘 위로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