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70화
70. 파동(2)
“어…… 떻게?”
천진오는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그래도 쉽게 움직이지는 못할 겁니다. 저희가 일본에서 중국으로 넘어갈 ‘저주의 성배’를 부숴 놨으니.”
“그것까지……!”
천진오의 입이 더욱 벌어졌다. 평소 표정을 숨기기에 능통한 녀석이 이 정도나 감정을 내비치는 것을 보면 적잖이 놀란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나 역시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 녀석, 정보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
원래 천지훈의 배신은 한참 뒤에의 일. 벌써 눈치를 챘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내가 끼어든 탓인가?’
내가 이전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면서 미래가 뒤틀렸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저주의 성배가 중국으로 넘어갈 거란 사실까지 알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대체 천진오는 왜 과거에 천지훈을 내버려 두었는가. 또 어떻게 미래에 일어날 일을 그리도 잘 알고 있는가.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을 지금 알아보아야 했다.
“형님은 어떻게 아신 겁니까?”
내가 묻자, 당황하는 천진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다소 위협적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형님이 숨기신다면 저는 형님까지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
천진오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쾅!!
“형님!!”
“너는 어떻게 안 거지?”
“말해 드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말해 줄 수 없구나.”
우리는 한참이나 서로를 노려봤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천진오를 노려봤고, 천진오는 미소 지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의 그 사람 좋은 미소를 띤 채였다. 천진오는 어느새 제 페이스를 찾은 모습이었다.
절대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는 녀석. 녀석은 내가 입을 열기 전까지 결코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여우 같은 자식!’
마음을 가다듬은 채 녀석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셨습니까?”
“막을 생각이었지.”
천진오는 당연한 것을 왜 묻냐는 듯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그러니까, 어떻게요.”
“원래는 팀과 함께 아버지의 뒤를 밟아 도와주러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 예상보다도 훨씬 빨리 움직이더구나.”
대답을 듣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느끼기에도 일본 작전은 성급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중국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고민 중이다.”
무엇 하나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순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욕심을 낼 수도 없는 답변이었다.
중국과 천지훈에 의해 가문이 멸망되는 것은 한참 뒤에의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중국이 우리 가문을 자신 있게 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인 저주의 성배가 사라졌으니, 적 또한 쉽게 움직일 수 없을 터였다.
나라는 새로운 변수까지 떠올랐으니 쉽게 움직일 수는 없으리라…….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나는 천진오를 빤히 바라봤다. 녀석에게 어떤 정보도 얻지 못한 채 소득도 없이 물러날 순 없었다.
나는 다소 공격적인 물음을 던졌다.
“천지훈을 치면 되지 않습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예, 가문을 무너뜨리려는 놈입니다.”
“지훈이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야.”
그 순간 천진오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단순히 힘의 차이에 기인한 패배감이라기엔 그 정도가 심한 얼굴이었다.
무언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무엇이 말입니까?”
나의 물음에 천진오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
“말해 주십시오.”
한 번 더 강경하게 묻자, 마침내 녀석의 입술이 움직였다.
“녀석은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고 있다.”
“그건 형님 역시 마찬가지 아닙니까?”
천가의 피는 강력한 육체와 염동력 그리고 놀라우리만큼 폭발적인 성장력이 무기였다.
아직 천진오 또한 무서울 만큼 강해지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대체…….
“그 정도가 아니야.”
“그게 무슨……!?”
“약 두 달 전의 일이다.”
천진오의 낯빛이 다시 한번 어두워졌다.
“나는 지훈이를 감시하고 있었어. 녀석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었지.”
“…….”
나는 묵묵히 천진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녀석은 계속해서 게이트 한곳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가능합니까?”
게이트는 기본적으로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기 전까지는 나올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특수한 아이템을 사용하거나, 인버스 타워처럼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지 않은 이상에야 불가능한 일. 천진오의 말처럼 천지훈의 행동은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은 일이었다.
“나도 그게 의문이야.”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고개를 끄덕인 천진오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게이트의 특징은 너도 알고 있지? 보고받은 나도 너무 이상해 그곳에 가 봤어.”
“무엇이 있었습니까?”
“평범한 게이트.”
“네?”
“게이트 자체는 평범했어. 혹시 몰라서 한 놈을 집어넣어 봤거든. 들어가자마자 곧장 나와 보라고 했는데, 녀석은 살아 나오지 못했어. 웬만한 게이트에서 도망칠 정도는 되는 놈이었는데 말이야.”
“그렇다면?”
둘 중의 하나였다. 게이트에 들어간 순간 너무도 강력한 몬스터에 의해 목숨을 잃었던가, 천지훈처럼 게이트를 빠져나올 수 없었던가.
“천지훈은 특수한 능력을 가진 것이 틀림없어.”
천진오는 후자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그곳에 들어갔다 왔으니까.”
나는 던전 탈출용 아이템을 들고 있는 천진오의 손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강력한 몬스터가 있긴 했지만, 게이트 문이 열려 있었다면 먼저 들어갔던 녀석이 도망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어.”
“음…….”
나는 고민에 빠졌다. 대체 왜 녀석은 게이트를 들락거리는 것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던 탓이었다.
천진오의 심각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녀석은 게이트에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강력해져서 나왔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하고 천진오를 바라보니 심사가 복잡해 보이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감시조차 눈치채지 못한 녀석이 두 번째 게이트를 나왔을 때는 이질감을 느꼈어. 그리고 세 번째 나왔을 때는 감시자를 찾아냈다.”
나는 조금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어떻게 그리 자세히 아십니까?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처럼.”
묻자, 천진오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그의 눈이 달라져 있었다. 붉게 빛나는 왼쪽 눈.
타오르듯 일렁이는 그의 눈을 보고는 헛숨을 들이켰다.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
“…….”
“나는 계약을 맺은 이와 시야를 공유할 수 있어.”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미래의 기억에도 천진오에게 이런 능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몰랐다고 보는 게 옳았다. 녀석은 비장의 무기를 나에게 보여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왜 이렇게까지 나를 믿는 거지? 녀석은 의심이 많은 놈인데.’
나는 의문이 들면서도, 나는 그에게 묻지 못했다. 이어진 말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기에…….
“천지훈이 네 번째 게이트에서 나왔을 때는…….”
“감시자를 죽였군요.”
“아니.”
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녀석의 성격에 자신을 훔쳐보는 감시자를 가만히 내버려 둘 리 없었다.
“그렇다면……?”
“천지훈은 놀랍게도 감시자와 눈을 공유하고 있던 나를 바라보더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가능한 건가? 싶기도 했거니와, 공간 너머의 이를 바라본다는 것은 어지간한 격을 갖지 않은 이상에야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더 이상…….
“그리고 재밌다는 듯 말하더군. ‘들켰네?’라고 말이야.”
움찔.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것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그 장면이 생생하게 재생되는 느낌이었다.
천진오 역시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몸을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나와 달리 눈을 공유하는 녀석에게 외형적인 변화는 전혀 없어. 이제껏 누구한테도 들킨 적이 없지. 아버지에게도 말이야.”
“그 말은…….”
“그래, 녀석은 인간의 한계를 한참이나 초월했다.”
이제야 나는 천진오가 어떻게 그리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또, 왜 나에게 자신의 숨긴 패를 드러내는 지도.
상황이 얼마나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미래와는 완전히 달라!’
내가 알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그 싸이코 새끼 대체 뭔 생각을…….”
“감시자는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보내 주더군.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
어두워진 천진오의 얼굴을 보며, 나 또한 어두운 표정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사안이 심각했다.
녀석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알아내야만 했다. 또 얼마나 강해졌는지도.
예상하건대, 지금 녀석이 가진 힘은 미래에는 얻지 못했던 힘이었다.
“이게 내가 널 찾아온 이유다. 녀석을 계속 놔두다가는 가문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가문의 멸망을 완전히 틀어막았다고 생각했었다. 혈통의 힘을 봉인시키는 ‘저주의 성배’는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고, 나 역시 놀랄 만큼 힘을 키웠으니까.
천지훈이 아무리 팀을 이뤄 반란을 일으킨다 한들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하나, 조금 전 천진오의 말을 듣고는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다.
천지훈은 강해졌다.
그것도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공간 너머의 인간을 인식하고 마주할 만큼의 경지. 어느 정도의 경지인지 감을 잡을 수조차 없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해 봤지만, 대답은 글쎄였다.
“그러니, 내 밑으로 들어와!”
천진오가 강한 어조를 내비치며 내게 말했다.
“나에게 힘을 실어. 내가 가주가 되면 녀석은…….”
“더욱더 공격적으로 나오겠죠.”
나는 나직이 천진오를 바라보며 말했다. 천지훈은 분명 그럴 인물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면 그 물건을 파괴해 버리는 인물.
“녀석은 위험해. 나와 네가 힘을 합쳐도 될까 말까 할 정도로.”
“그건 형님의 생각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설마 지금 너 혼자서 어떻게 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버럭 화를 내는 천진오의 모습에 나는 작게 미소 지었다.
“천지훈에게 강한 부분이 있다면 저에게도 강한 부분이 있는 법입니다.”
화안(火眼)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약하다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직 녀석을 마주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자신 있었다.
“용을 물리칠 정도가 아니라면, 저희가 이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게 무슨…….”
나는 천진오를 향해 빙긋 웃어 보였다.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돕기는 하겠습니다만, 아래로 들어갈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제안을 거절한 나는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알아볼 것이 한둘이 아니군.”
* * *
“천도윤이라…….”
어두운 암실. 빛조차 들지 않은 어두컴컴한 방 안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또 똥폼 잡고 있네.”
파밧-!
“아이씨!”
순식간에 형광등이 터지고, 낮게 목소리를 깔았던 사내가 인상을 찡그렸다.
“불 좀 켜고 살아! 이 어둠의 자식아.”
“아, 왜 왔어!”
“……진심으로 묻는 소리냐?”
“뭐가!”
“네가 오라고 했잖아!”
“아, 맞다.”
머리를 긁적이는 레게 머리의 흑인 남성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이는 아드리안 길드의 부길드 마스터 밀러였다.
“잭, 정신 좀 차리자. 도박 좀 그만하고.”
밀러의 잔소리가 듣기 싫었는지, 잭은 거대한 손을 휘휘 저으며 주제를 돌렸다.
“들었지? 안토니오 바가렐라의 인터뷰.”
“그래, 그것 때문에 오라고 한 거야?”
“응.”
밀러는 잭의 반대편 소파에 풀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그 자존심 강한 녀석이 웬일로.”
“그러니까 말이야. 일이 복잡해졌어.”
“콧대 높은 바가렐라가가 인정한 팀이라…… 확실히 천지훈의 입지가 좁아지겠는데…….”
머리를 쓸어 넘기는 밀러의 발언에 잭은 소파 옆에 있던 간의 테이블을 쾅 하고 내리쳤다.
“그 병신 같은 놈! 그딴 일 하나 제대로 처리 못 하고 말이야. 누가 가주 자리를 차지하랬어? 차기 가주야, 차기 가주! 그것 하나 못 따오는 놈이 무슨 큰일을 하겠다고!”
산산조각이 나다 못해 가루로 변한 테이블. 익숙하다는 듯 그 광경을 바라본 밀러가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마스터.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니까.”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요충지는 한국과 중국이야. 뭐가 순조롭다는 거지?”
잭의 싸늘한 시선이 날아들었다.
이전의 얼빠진 모습과는 차원이 다른 무게감이었다.
그러나 밀러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미소 지으며 말했다.
“결국 천지훈이 천가의 가주가 될 거야.”
“어떻게 그리 확신하지?”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듯한 모습으로 밀러를 노려보는 잭. 확실한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면 각오하라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밀러는 이번에도 빙긋 웃으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주인님이 녀석에게 힘을 부여해 주고 계시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