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69화
69. 파동(1)
본국으로 돌아온 안토니오 바가렐라는 공항에 모여 있던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안토니오 씨! 이번 100m 규격 외 던전에서 소중한 롱기누스 팀 두 명을 잃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는데요. 현재 소감이 어떤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천가의 새로운 팀과 함께 레이드를 진행했다고 들었습니다. 천가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한다면 몇 점을 주고 싶으십니까?”
“안토니오 씨…….”
“안토니오 씨!!”
끊임없이 몰려드는 질문 공세에 안토니오는 미간을 와락 구겼다. 그러고는 차갑게 내려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 명씩 물어봐.”
가장 처음 질문했던 기자가 마이크를 쑥 내밀었다.
질문을 기억하고 있던 안토니오가 곧장 입을 열었다.
“팀원을 잃었는데 기분이 어떨 것 같나?”
싸늘한 대답이 들려왔다. 안토니오가 굳은 얼굴로 기자를 노려보자, 마이크를 내밀던 기자의 얼굴이 빳빳이 굳어졌다.
일반인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살기를 내비친 탓이었다.
“안토니오, 진정해.”
뒤에 있던 피에로 바가렐라가 한껏 예민해진 안토니오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나서야 매섭게 피어오르던 기운이 조금씩 사그라졌다.
일순 가라앉는 장내의 분위기.
그제야 기자들은 불도저 같던 자신의 태도를 바로 하기 시작했다.
“흠흠, 인터뷰 가능하겠습니까? 고인에 대한 언급은 더 이상하지 않겠습니다.”
한껏 정중해진 태도로 나오는 기자를 보고서야, 안토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이 떨어지자, 기자는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다.
“천가의 새로운 팀과 함께 레이드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팀이었습니까?”
이 물음 역시 안토니오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문제였지만, 기사에 쓸 내용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역시나 안토니오는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기분 나빠하는 기색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얼굴.
언제 어디서나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던 안토니오였기에, 기자는 호기심이 동했다
특종에 기운이 물씬 풍겨 나오는 느낌이었다.
“혹여, 천가의 팀 때문에 동료들이…… 헙! 죄송합니다.”
참지 못하고 질문을 쏟아 내던 기자는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발언에 입을 틀어막았다.
조금 전 했던 약속을 바로 어길 뻔한 탓이다.
기자는 어떻게 대화를 유도해 낼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때 안토니오의 대답이 들려왔다.
“천외천 때문에 동료들이 죽은 것 아니냐고?”
어느 정도 허용되는 질문이라 느낀 기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롱기누스 팀은 단독으로 100m 규격 외 던전을 레이드한 경험이 있는 위대한 팀이었습니다. 그때와 지금 피해 규모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은…….”
“하!”
돌연 비웃음이 날아들었다.
“당신, 헌터 전문 기자 맞아?”
이어 숨을 턱 막히게 하는 싸늘한 물음이 기자의 어깨를 짓눌렀다.
“……물론 게이트의 크기로 정확한 난이도를 측정할 수는 없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비례하는 것도 사실이라…….”
안토니오의 강대한 기운에 몸을 떨면서도 기자는 막힘없이 말을 내뱉었다.
“그래. 나도 그런 줄 알았지.”
“그게 무슨……!?”
안토니오는 기자들을 향해 손가락을 쫙 펴 보였다.
“다섯 배. 아니 최소 열 배 이상 난이도가 높은 곳이었다.”
심각한 얼굴로 손가락을 쫙 핀 안토니오의 모습을 담기 위한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너무 과장하시는 거 아닙니까?”
인터뷰를 진행하는 기자의 뒤쪽에서 다소 도발적인 물음이 날아들었다.
“과장? 나도 과장이었으면 좋겠군. 천외천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초반부조차 넘기지 못하고 전멸했을 거다.”
안토니오의 말에 장내가 술렁였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던 바가렐라. 그중에서도 호전적이기로 유명한 안토니오가 내뱉은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발언이었다.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새를 참지 못한 기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롱기누스와 가나는 천가 최강의 팀. 천외천(天外天)에게 목숨을 빚졌다. 그뿐이다.”
“최강의 팀이라뇨? 그 말은 곧 천진오가 운영하는 천지와 뇌룡이 운영하는 천파보다…….”
“여기까지 하지.”
안토니오 바가렐라와 그의 팀 롱기누스는 대화를 일축하며 사라졌다.
그리고…….
그의 발언은 전 세계 뉴스의 1면을 장식하며,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 * *
“후…… 적당히를 몰라. 적당히를!”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방으로 돌아왔다.
가문 밖은 여전히 난리였고, 가문 안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안토니오 바가렐라의 문제의 인터뷰가 발단이었다. 나는 가문 밖에서는 기자들에게, 가문 안에서는 원로들에게 종일 시달리는 중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며, 던전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던전 안에서 드래곤을 만났고, 그 녀석을 내 소환수로 만들었다는 등의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 그냥 우연히 위기에 빠진 녀석을 구해 준 것뿐인데 녀석이 과장해 말하는 것이라 둘러댔다.
원로들은 수상쩍어하면서도 그럼 그렇지, 라며 넘어가는 눈치였지만 기자들은 전혀 아니었다.
무슨 몬스터가 나온 것이냐부터 신물 롱기누스의 창을 직접 목격한 소감이 어떻냐까지. 쓸데없는 질문을 하도 해 대는 탓에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하, 진짜 집 안에만 있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왜! 내가 분명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첫째 도련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뭐? 천진…… 아니, 첫째 형이?”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녀석이 대체 왜?
“일단 들어오시라고 해.”
천진오가 나를 찾아온 적은 처음이었다. 가문에서 가장 영악하기로 소문난 녀석이 찾아왔다고 하니, 괜히 긴장감이 도는 기분이었다.
“잘 있었어?”
빙긋 웃으며 다가오는 천진오에게 나는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러고는 작은 테이블이 있는 곳으로 천진오를 안내했다.
“형님께서 어쩐 일로?”
“앉자마자 본론이야? 차 한 잔 정도는 마시고 싶은데.”
“아, 죄송합니다.”
나는 직접 천진오에게 커피를 타 준 후, 자리에 앉았다.
천진오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는 물었다.
“정말 네가 안토니오 바가렐라를 구했어?”
“아닙니다. 그냥 우연이었습니다.”
나는 지겹게 들어왔던 질문에 언제나처럼 대답했다. 그러나 그 전과는 다르게 한가지 신경 쓰고 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녀석의 표정.
얼마 전 아버지를 보러 갔을 때 느꼈던 이질적인 느낌을 어쩌면 오늘 알아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이라…… 변명거리론 딱이네.”
녀석은 무언가 알고 있다는 듯 지껄이기 시작했다.
“그리 보이십니까?”
“응.”
웃으며 대답하는 천진오.
녀석의 의중은 점점 더 미궁으로 빠졌다. 하지만 여기서 조급한 티를 낼 순 없었다. 마음을 가다듬은 나는 녀석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형제가 찾아온 것은 처음이라 당황스럽습니다. 혹시나 할 말이 있으신 겁니까?”
“내가 그렇게나 안 찾아왔었나? 응, 있어. 할 말.”
천진오는 여전히 여유롭게 웃으며 대답했다.
“무엇입니까?”
“내 밑으로 들어와.”
“그게 무슨……?”
“네가 힘을 숨기고 있다는 정도는 이미 알고 있어.”
난 눈이 커졌다.
내 진짜 힘을 아는 자는 가문 안에 없었다. 그나마 내가 강하다는 것을 아는 이는 아버지와 스승님, 천우진과 천지현뿐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나는 최대한 뻔뻔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아버지의 태도와 그간 네가 보인 행보만 봐도 알 수 있지. 네놈은 무언갈 숨기고 있어.”
“그게 힘이라는 겁니까?”
“힘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있겠지.”
천진오는 확신하듯 자신 있게 말했다.
그 모습을 바라본 나는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이건 단순히 무위와 연관된 것이 아니었다. 천진오는 무력보다는 조금 더 다른 쪽에 재능이 있어 보였다.
‘뱀 같은 자식.’
나는 혀를 차고는 대답했다.
“형님의 말이 맞다고 칩시다. 제가 왜 형님 밑으로 들어가야 합니까? 가문 내에서 위치상 저보다 높은 자는 가주님밖에 없습니다.”
“내가 누군지 벌써 잊은 거야?”
“차기 가주이지요. 하나, 언제 바뀔지 모르는 자리지 않습니까?”
내 말에 천진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이내 평온을 찾는 모습이었다.
“솔직히 말하지. 나는 네놈이 싫었다.”
“알고 있었습니다.”
천진오는 조금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숨긴다고 숨겼는데 티가 났나 보네. 하지만 나는 네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너를 싫어했어.”
“자랑입니까? ……듣기 거북합니다.”
“그래도 들어야 할 거야. 꽤 중요한 이야기니까.”
짐짓 심각해진 천진오의 태도에 나는 일단 들어 보기로 했다.
잠시 뜸을 들인 천진오가 말을 이었다.
“나는 네가 너무 많은 혜택을 누린다고 생각했다.”
“차기 흑운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래, 네가 가문을 지키는 데 조금도 일조를 하지 못할 정도로 약하다고 생각했지.”
그 순간 나는 머리를 해머로 맞은 느낌이었다. 녀석이 나를 평가한 기준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와 천지훈의 대결은 본 후였다. 지금 기준에서는 하찮다 못해 벌레에 가까운 수준의 무위였지만, 남들이 보기에 그 정도는 아닐 터였다.
그렇다면 녀석이 생각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높은 무위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말이었다.
설마…….
일단은 들어 보기로 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가문을 지키다니.”
“카토가와 시미즈가를 멸문시켰지만, 가문은 여전히 위험한 상태다.”
“자세히 말씀해 보십시오.”
“그전에 네가 내 편이라는 것을 증명해 봐.”
“그게 무슨…….”
“그렇지 않은 이상, 나는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
단호한 천진오의 모습에 나는 머리를 굴렸다. 무엇을 증명하라는 건지, 또 녀석이 가지고 있는 정보가 무엇인지 유추하기 시작했다.
나를 믿을 수 없고, 말을 조심한다는 것은……
‘설마……?’
한가지 가설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세운 가설이 맞을 가능성이 컸다. 나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틀어막았다. 그러고는 심각한 얼굴을 지어 보이며 천진오에게 물었다.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는 말이군요.”
천진오의 눈빛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나는 더더욱 확신했다.
“저를 그런 눈빛으로 봤던 건 배신자로부터 가문을 지키는 데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여기셨기 때문입니까?”
“……그래.”
녀석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제야 퍼즐이 하나하나 맞춰지기 시작했다.
씩씩거리며 가주 전을 빠져나오던 천진오의 모습.
배신자가 있다고 전했지만, 별반 반응이 없는 아버지를 보고 화난 것이었겠지.
나를 바라보며 내비쳤던 분노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가문이 위기에 처했는데 저런 녀석이 차기 흑운이라니…… 라는 생각이 들었겠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또 한 번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야 했다.
“크흠, 흠.”
천진오를 의심했던 것이 내심 미안해졌다. 또, 녀석에 대한 평가를 조금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형제 중에 최소한 사람 같은 녀석이 있긴 했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간질거리는 느낌이었다.
물론,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일단 궁금한 것을 묻기 시작했다.
“어떻게 알아내신 겁니까?”
“……우선 피아 식별부터.”
“이거면 충분하겠습니까?”
“그게 무슨……?”
“천지훈 개새끼.”
“…….”
“…….”
“크하하하하하!!”
천진오는 방이 떠나가라 웃어 젖히기 시작했다. 한참을 웃던 천진오는 눈가에 고인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이런 식으로 피아 식별을 하는 인간은 처음이구나.”
“마음에 드셨습니까?”
“후련하구나. 그런데…….”
일순 천진오의 표정이 무겁게 변했다.
“어떻게 안 거지?”
“새삼 놀랄 것도 없습니다. 저와 흑운, 그리고 아버지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내 말을 들은 천진오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럼 그때…….”
“예, 너무 서운해하지 마십시오.”
십중팔구 천진오가 아버지를 뵙고 천지훈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을 때, 아버지는 이미 알고 있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 뻔했다. 그저 의자에 턱을 괴고 앉은 채 나와 천진오를 저울질해 댔겠지.
보지 않아도 눈에 훤히 보이는 장면이었다.
천진오는 떨리는 동공을 애써 추스른 채 나에게 말했다.
“천지훈도 분명 문제지.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
“네, 중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말허리를 끊으며 들어오는 나의 말에 천진오의 입이 떡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