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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68화 (68/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68화

68. 혹한의 군주(4)

크르르르르.

레드 드래곤 반 페르데이스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그러면서도 그의 눈빛은 사정없이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먹어. 먹고 원망해.”

얼어붙은 드래곤의 심장을 그를 향해 한 번 더 내밀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죽은 자에게 활력을 사용하면 어느 정도는 몸이 재구성된다는 사실을.

암살이를 소환수로 지정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잘렸던 목이 붙고, 상처 난 부위들이 회복되었다.

이번에도 분명 그럴 터였다.

하지만 내가 소환수로 만들고자 하는 존재는 평범함을 아득히 뛰어넘은 존재였다.

만년설로 썩어 문드러진 내장이 얼마나 회복되었을지는 미지수였다. 또 사라졌던 드래곤 하트가 새롭게 생겨났을지도 여전히 알 수 없는 상태였다.

나는 그를 향해 물었다.

“속은 여전히 엉망진창인가?”

“…….”

한참이나 말이 없던 녀석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반 페르데이스’가 만년설로 녹아내린 내장은 이깟 하찮은 빙 속성 따위로는 회복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젠장, 역시 안 되는 거였나?”

나는 침음을 삼켰다. 레드 드래곤에게 빙 속성을 부여한 이유는 혹여나 몸이 온전히 재구성되지 않았을 때를 대비한 것이었다. 같은 얼음 속성을 부여하면 녀석의 내부에 더 이상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역시나 반 페르데이스의 속은 엉망이었고, 내부를 좀먹는 만년설의 기운마저도 억누르지 못한 상태였다.

말하자면 최악의 상황.

사색이 된 얼굴을 한 나에게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소환수 ‘반 페르데이스’가 하지만 이것이면 가능할 거라 말합니다.]

“그게 무슨…….”

그 순간 손에 무게감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눈앞으로 용의 비늘이 세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레드 드래곤 반 페르데이스가 손에 들려 있던 자신의 심장을 덥석 문 것이다.

단숨에 심장을 삼키는 반 페르데이스를 보는 순간 나는 직감했다.

‘됐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는 알 수 없었다. 오직 직감이었다.

녀석은 오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새 생명을 내려 준 내게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자신을 능욕한 나에게 증오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어 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나는 조용히 말했다.

“마음대로 해. 고마워하든, 원망하든.”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아무리 내 소환수가 되었다고 한들 녀석의 감정까지 컨트롤할 수는 없는 법이었으니까.

그 순간 반 페르데이스의 눈빛이 돌변했다. 그러고는 믿을 수 없는 알림음이 귓가에 울리기 시작했다.

[소환수 ‘반 페르데이스’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소환수 ‘반 페르데이스’가 ‘얼어붙은 용의 심장’을 섭취합니다.]

“크르르르.”

나는 그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무슨 일이 생겨날지 알 수 없었다. 내 바람대로 저 심장이 사라진 녀석의 심장을 대신하면 좋겠지만…….

마음의 준비를 채 하기도 전에 알림음이 들려왔다.

[최초의 투 하트 드래곤이 탄생했습니다.]

[최초로 더블 속성을 지닌 드래곤이 탄생했습니다.]

“뭐?”

나는 떡 벌어진 입을 한 채 눈을 껌뻑였다.

그러나 알림음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소환수 ‘반 페르데이스’가 큰 결심을 내립니다.]

[소환수 ‘반 페르데이스’가 몸을 재구성하기 시작합니다.]

…….

[소환수 ‘반 페르데이스’가 ‘레드 드래곤’의 칭호를 스스로 박탈합니다.]

[소환수 ‘반 페르데이스’가 몸 안에 축적된 만년설을 받아들입니다.]

…….

[소환수 ‘반 페르데이스’의 격이 상승합니다.]

[소환수 ‘반 페르데이스’의 격이 상승합니다.]

…….

어질해질 때까지 올라오는 알림음.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최초로 드래곤을 길들이셨습니다.]

[플레이어 ‘천도윤’이 길들인 드래곤은 결코 평범한 드래곤이 아닙니다.]

[불가능한 업적을 세웠습니다.]

[이룰 수 없는 업적을 이루어 냈습니다.]

[플레이어 ‘천도윤’의 격이 상승합니다.]

[플레이어 ‘천도윤’의 격이 상승합니다.]

…….

미친 듯이 올라오는 알림음과 순식간에 생긴 몸의 변화.

알림음이 울리고 나자, 갑자기 몸이 붕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몸이 가벼워지고, 시야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에일 듯 부는 얼음성의 바람이 더 이상 차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강해졌다!’

주먹을 불끈 쥔 나는 눈앞의 드래곤을 바라봤다. 녀석 또한 강해지고 있었다.

상상하기도 힘들 만큼!

* * *

가장 눈에 띈 변화는 용암처럼 붉었던 피부가 점점 옅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환수 ‘반 페르데이스’의 빙(氷) 속성이 ‘만년설(萬年雪)’로 변화합니다.]

[소환수 ‘반 페르데이스’의 속성이 추가됩니다.]

[소환수 ‘반 페르데이스’가 속성 ‘서리 불꽃’을 습득했습니다.]

펄펄 끓을 것 같았던 피부가 아름다운 푸른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최강의 공격력을 자랑한다는 레드 드래곤이 새로운 속성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반 페르데이스가 변화를 받아들이자 생겨난 일이었다.

이윽고 시간이 지나자, 마침내 모든 변화가 끝났다.

사파이어처럼 빛나는 영롱한 몸체가 반짝이고 있었고, 물에 비친 듯 반짝이는 비늘이 한점 흐트러짐 없이 정렬되어 있었다. 그 가지런하고도 아름다운 자태를 본 나는 잠시 넋을 잃고 말았다.

그때 아득한 목소리가 뇌리에 울렸다.

-인간이여.

시스템을 거치지 않은 대화.

나는 녀석의 격이 얼마나 올라갔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고맙구나.

가슴을 울리듯 깊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예상은 했지만, 바라지 않았던 알림음이 귓가를 스쳤다.

[소환수와 플레이어 간의 격차가 극심합니다.]

[소환수 ‘반 페르데이스’와의 주종관계가 흔들립니다.]

[소환수 ‘반 페르데이스’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주인과의 관계를 끊어 낼 수 있습니다.]

암살이의 실력이 올라갔을 때와 비슷한 알림음. 돌연 날아든 알림음에 나는 긴장감을 끌어 올렸다.

-걱정 말거라, 의리는 지킬 테니.

[소환수 ‘반 페르데이스’가 플레이어 ‘천도윤’에게 순종하기로 합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모든 걱정거리가 날아간 기분이었다.

그제야 나는 모든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

활력으로 인해 반 페르데이스는 존재의 근간인 마나 하트를 생성해 냈다.

그리고 또 다른 마나 하트를 섭취.

두 개의 마나 하트를 생성해 낸 것이었다.

이어 만년설을 머금은 육체가 빙 속성의 마나 하트를 진화시켰고, 만년설로 둘러싸인 레드 드래곤의 하트가 새로운 속성을 만들어 냈다. 그 이름 하여, ‘서리 불꽃’.

이 모든 인과 과정을 지켜본 나는 소름이 돋았다.

우연이 엮이고 엮여 만들어 낸 기적 같은 일에 경외심마저 들었다.

그리고 또 한 번 울려오는 알림음.

[속성이 진화합니다. 빙(氷) -> 만년설(萬年雪)]

[속성을 습득합니다. -> 서리 불꽃]

예상치도 못한 대박에 나는 그만 실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

광인처럼 폭소를 내뱉고 있을 때, 멀리서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도윤 씨!!”

“천도윤!!”

예민해질 때로 예민해진 감각에 걸려 오는 작은 목소리. 나는 웃음을 멈춘 채, 반 페르데이스에게 말했다.

“잘 부탁한다.”

-그러지.

나는 조금 전 얻은 혹한의 군주의 목걸이 안에 녀석을 불러들였다.

* * *

얼음성 내부를 둘러본 박한별과 천지현 그리고 롱기누스 녀석들은 경악했다.

“여길 혼자서?”

오면서 마주친 엘프 3마리를 상대했던 롱기누스와 박한별, 천지현은 엘프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소리 소문 없이 날아오는 엄청난 위력의 화살. 눈으로 쫓기도 힘들 정도의 긴밀한 움직임. 명석한 두뇌.

그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최강의 상대였다.

만약 한 마리씩 나타난 게 아니었다면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한 상대였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목이 떨어져 나간 엘프들은 무려 스물이 넘었다. 그것도 모두 단칼에 처치한 것 같은 획일적인 모습이었다.

“미친!”

안토니오 바가렐라는 욕을 내뱉었다.

믿을 수 없었다. 세계 최강의 실력자들이 모여 진행함에도 고작 한 마리의 엘프에게 치명상을 입은 녀석이 여럿이었다. 그런데 저 녀석은……

세계 최강이라 자부하던 바가렐라가가 사실 최강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에 안토니오는 덜컥 겁이 났다.

그뿐이면 다행이었다.

“이건 뭐…….”

오기와 악바리로 단련한다고 해서 추월할 수 있을 것 같은 경지가 아니었다.

그 사실이 안토니오 바가렐라의 자존감을 한없이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저 녀석…….’

사지가 찢긴 채 온몸에 구멍이 난 녀석은 누가 봐도 보스몹이었다.

20마리가 넘는 엘프를 혼자 상대하고, 보스몹까지 홀로 잡아냈다.

사실상 100m 규격 외 던전을 홀로 클리어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역사상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업적이었다.

안토니오 바가렐라는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

‘괴물이다!’

괴물이라는 수식어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그를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봤지만 아무도 떠올려지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이자 바가렐라가의 수장인 그분마저도 버거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토니오는 잔뜩 굳은 얼굴로 천도윤에게 다가갔다.

“왜 네놈이 차기 가주가 되지 않은 거지?”

“뭔 소리야?”

천도윤이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하지만 안토니오 바가렐라는 그의 물음에 답할 생각이 없는지, 악을 쓰며 말했다.

“왜 고작 차기 흑운이라는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냐!”

그제야, 질문의 의도를 파악한 천도윤은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안토니오는 그 순간 느꼈다. 무능력함을 분노로 표출하는 자신이 얼마나 추하게 보이는지. 또 천도윤이 어느 정도까지 자신의 마음을 내다보고 있는지.

화끈거리는 얼굴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천도윤의 웃음이 날아들었다.

‘비웃음인가?’

그래, 추하겠지. 갖지 못한 힘에 대한 질투가 추악하다 생각하겠지.

이를 바득 간 안토니오가 고개를 들었다. 천도윤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리고 그 순간, 안토니오는 자신이 잘못 생각했음을 느꼈다.

천도윤의 웃음은 비웃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치…… 온갖 핍박 속에 살고 있던 자신을 알아봐 주어 고맙다는 그런 얼굴이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 왜……?

“저번부터 느끼던 건데 바가렐라, 너희 정보가 너무 느린 거 아니야?”

어느새 장난기 넘치는 모습으로 돌아간 천도윤의 얼굴이 보였다.

“그게 무슨…….”

“나는 차기 흑운이 아니라, 흑운이다.”

안토니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럼……?”

“그래, 가주 바로 아래.”

미소 짓는 천도윤의 얼굴이 보였다. 그의 얼굴에서 빛이 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차기 가주인 천진오보다 위인가?”

“위치상은.”

짧은 대답이었다.

그러나 안토니오는 여전히 궁금증을 풀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나는 아직 의문이다. 대체 너 같은 실력자를 내버려 두고 왜…….”

“왜 내가 차기 가주가 아니냐고?”

안토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재밌다는 듯 바라보던 천도윤이 말했다.

“될 거야. 가주.”

그 순간, 안토니오 바가렐라의 속에서 무엇인가가 꿈틀댔다.

그것이 질투인지, 쪽팔림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저 녀석에 대한 경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누구보다도 확실한 동아줄이다!

안타깝고 인정하기 싫지만, 저 녀석이 살아 있는 한 바가렐라는 절대 천가를 뛰어넘을 수 없다.

그렇다면 바가렐라가 해야 할 일은 한가지였다.

저 녀석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안토니오는 한 발 짝 더 나아갔다.

‘그 연결점이 내가 된다면…….’

가주 자리는 따 놓은 당상이었다.

안토니오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에 대한 경외심과 자신의 위치는 별개였다. 이왕이면 두 개 다 챙기는 것이 좋지 않은가? 안토니오는 천도윤에게 다가가 말했다.

“천외천의 수장 천도윤. 롱기누스 팀과 함께하는 것이 어떤가?”

이제 막 시작한 팀 천외천. 롱기누스를 발판 삼아 세계 무대에 뛰어든다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속도로 성장할 것이 분명했다.

롱기누스에게도, 천외천에게도 손해 볼 것이 없는 장사.

안토니오 바가렐라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말했다.

“우리가 도와주지.”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싫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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