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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66화 (66/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66화

66. 혹한의 군주(2)

미간이 꿈틀댔다.

-예를 갖춰 오라 일렀거늘, 동료들의 목은 어디 있지?

이어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네놈들이 말한 예가, 동료들의 목이란 말이지.’

빤히 바라보던 엘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못 알아듣는 건가?

나는 계속해서 엘프의 말을 번역하는 암살이를 불러냈다.

흑마를 탄 죽음의 기사가 갑자기 나타나자, 헉 소리 날만큼 아리따운 외모를 가진 녀석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어떻게 죽음의 기사가……?

인간과 함께 존재해선 안 되는 것이 왜 여기 있냐는 의문을 가진 표정이었다. 나는 그 얼굴을 바라보며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해, 거들먹거리지 말고 길 안내나 하라고.”

암살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엘프를 향해 다가갔다.

소리를 내뱉은 건 아니었지만, 의사소통은 이루어지는 듯했다.

미간을 와락 구긴 엘프가 나를 노려봤다.

“어쩌라고.”

아무리 엄청난 외모를 지녔을지언정 그녀는 같은 레이드 동료를 죽인 원수일 뿐이었다.

나 역시 똑같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무어라 말을 하려 입을 달싹거리던 엘프는 이내 입술을 오므렸다. 그러고는 휙 돌아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혹한의 군주가 기다리는 곳이었다.

* * *

롱기누스 팀과 천외천은 이상한 말을 남기고는 떠난 천도윤의 뒤를 따랐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동료들의 시신을 수습한 후 저 멀리 언덕 위로 내린 낙뢰를 목격해 움직인 것이었다.

천지를 파괴할 듯 재앙처럼 내리치는 엄청난 양의 뇌룡. 그 재앙과도 같은 힘이 만들어 낸 결과는 실로 놀라웠다.

“이게 대체…….”

마을 하나가 통째로 증발해 있었다.

설원 오크들의 몸체는 까맣게 타들어 가 있었고, 재가 되었으며, 목이 떨어져 나가 있었다.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 롱기누스 팀의 부대장 피에로 바가렐라가 박한별에게 물었다.

“설마 뇌룡도 따라왔던 겁니까?”

박한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저희 마스터의 실력이에요.”

롱기누스 팀원 전체의 입이 떡 벌어졌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일신의 무력으로 어떻게…….

차기 바가렐라의 가주 후보로 꼽히는 그 유명한 안토니오조차 몇 마리의 설원 오크를 홀로 상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이 수는…….

믿을 수 없었다.

“천도윤의 능력은 얼음 속성이 아니었습니까?”

짐짓 심각해진 안토니오 바가렐라가 박한별에게 물었다.

“그 힘도 쓰긴 쓰죠.”

“그 힘도라면…….”

“네, 전격도 사용해요.”

“허…….”

안토니오는 헛숨을 내뱉었다.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멀리 있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하늘에서 내리치던 낙뢰는 분명 뇌룡이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수십, 아니 백 마리는 되어 보이는 뇌룡이었다.

그리고 뇌룡은 같은 가문의 강력한 차기 가주 후보로 뽑히던 천지훈의 전매특허였다.

‘배운 건가?’

안토니오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다기엔 천지훈의 능력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확신할 수 있었다.

분명 뇌룡 천지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위력이라고!

2년 전 목숨이 위태할 만한 레이드를 함께한 터라 천지훈이 전력을 다한 모습은 이미 알고 있었다.

‘분명 강력하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천지훈이 아무리 성장했다고 쳐도 고작 서른 마리 정도일 터였다. 게다가 이 위력은…….

“괴물이었군.”

나약하기 그지없어 가문에서 버려졌다고 들었는데, 도무지 그런 녀석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안토니오 바가렐라는 어쩌면 가문 저변에 깔린 천가에 대한 평가를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바꿔야만 했다.

‘천태산과 천지훈만 없으면 바가렐라 가문이 압도적이라고?’

“개소리!”

안토니오는 평생을 품고 살았던 오만한 생각을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호들갑일지도 모르겠으나, 이 정도의 무력이면 천가의 가주 천태산과 견줄 만한 실력이란 생각이 들었다.

갓 성인이 되어 보이는 애송이 녀석이…….

안토니오는 작게 몸을 떨었다.

그러고는 큰 결심을 한 듯한 표정으로 동료들에게 외쳤다.

“우리도 뒤따라간다!”

* * *

눈보라가 그치고 저 멀리 보이는 것은 웅장한 크기를 자랑하는 성이었다.

“저기인가?”

뒤돌아본 엘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가가면 갈수록 온전히 눈에 들어오는 반짝이는 얼음 성을 마주한 나는 작게 경탄했다. 현대의 그 어떤 건축물보다 아름답고 고운 자태. 그러나 지금은 그깟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었다.

“커흠.”

애써 잡생각을 떨쳐 낸 나는 긴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평범치 않은 기운이 얼음성 밖으로 미약하게 느껴졌다.

‘힘을 숨기는 건가? 아니면…….’

얼음 성의 외부를 바라봤다. 무언가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상념을 깨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라. 예의를 갖춰 행동하도록.

암살이의 번역을 듣고는 다시 한번 눈살을 찌푸렸다. 한번 녀석을 향해 쏴붙이고 싶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가자.”

암살이와 함께 얼음성의 문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자동으로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끼이이익.

오랫동안 열리지 않던 것처럼 소름 돋는 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 그 사이로 보이는 것은 길게 도열한 엘프들이었다.

그 광경을 본 순간, 나는 멈칫했다.

제 발로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꼴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었다.

엘프들은 모두 예사롭지 않은 실력을 지녔다는 것이 느껴졌다.

거기다 저기 정면에 보이는 저 녀석.

왕좌와 같은 상석에 다리를 꼰 채 거만하게 앉아 있는 저 녀석은 얼핏 보기에도 진짜배기 실력자였다.

인버스 타워 40층의 지배자였던 제이 로베루스 백작보다 높은 격을 가진 존재임이 분명했다.

-겁먹지 말고 들어오라.

웅혼하게 울리는 그녀의 음성을 번역한 암살이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듯한 자세를 취해 보였다.

‘가만히 있어.’

애써 암살이를 진정시키고는 반지를 통해 우마에게 명령을 내렸다. 내가 위험해 보이면 언제든 튀어나와 싸우라고, 그리고 전력을 다하라고.

그만큼 현재의 상황은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중앙을 가로질러 웅혼한 음성을 지닌 존재 앞에 섰다. 눈에 큰 상처를 입었는지 백옥같이 새하얀 천으로 한쪽 눈을 가린 모습이었다.

나는 그녀를 똑바로 응시하며 물었다.

“나를 보자고 한 이유가 있나?”

그리고 그 순간, 엄청난 살기가 폐부를 찌르듯 날아 들어왔다. 도열한 엘프들이 보내는 것이었다.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얼굴이 꼭 예의를 지키라며 채근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너희만 자존심이 강한 게 아니거든.’

화아악-!

살기를 느낀 암살이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엘프들을 하나하나 노려보며 기운을 내뿜었다. 어디 감히 자신의 주인에게 이빨을 들이미냐는 듯한 태도였다.

꼿꼿이 선 자세로 엘프들에게 밀리지 않는 기운을 방출하는 암살이는 서슬 퍼런 낫을 움켜쥐었다.

당장이라도 녀석들의 목을 따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살기였다. 그에 맞춰 엘프들도 역시 허리춤과 등 뒤에 꽂아둔 무기를 일제히 꺼내 들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음침하고도 불길한 암살이의 기운이 얼음성 내부를 가득 채울 때쯤, 왕좌에 앉은 녀석이 입을 열었다.

-그만하거라, 손님이다.

일순 살기가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는 암살이에게 명령했다.

‘너도 기운을 거둬.’

암살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기운을 걷었다.

조금 놀란 눈으로 암살이를 바라보던 혹한의 군주가 시선을 돌리고는 말했다.

-당신이 인간의 대표인가?

“적어도 이 던전에 들어와 있는 인원 중에선.”

짧은 대답에 그녀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러고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강하군. 아주 좋아.

마치 예술 작품을 품평하는 듯한 태도에 나는 불쾌함을 감출 수 없었다.

“용건이 뭐지?”

-나와 함께하자꾸나, 인간이여.

호의적인 언어. 하지만 그 속에 담긴 탐욕스러운 의지는 정제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나에게 스며들었다.

“그게 무슨……?”

따악!

그 순간, 그녀가 손을 튕겼다. 그러자 어둑했던 얼음성 안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죽 늘어선 엘프들 뒤로 드러나는 수많은 얼음덩어리.

그 안에는 보고도 믿기 힘든 것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설원 오크부터, 오우거, 트롤, 코볼트 등 온갖 몬스터들이 생기를 잃은 채 꽁꽁 얼어 있었다.

흡족한 얼굴로 그것들을 바라본 엘프가 입을 열었다.

-만년설에 가둔 내 컬렉션들이다. 그중 최고는 이거지.

자랑하듯 미소 지은 혹한의 군주가 손가락을 한번 더 튕기자, 그녀의 뒤로 거대한 빛이 드리웠다. 환한 빛은 오직 한 존재를 영험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 존재를 확인한 나는 놀란 눈을 거두지 못했다.

“드, 드래곤?”

지구에선 그 누구도 보지 못했다는 드래곤이 눈앞에 떡하니 존재하고 있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오금이 저릴 정도의 엄청난 위엄. 드래곤을 마주하자, 온몸의 근육이 빳빳하게 경직되는 느낌이었다.

‘저 존재가 만약 살아 움직였다면…….’

눈을 질끈 감았다. 아마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을 테지.

도무지 이길 수 있는 존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녀석이었다.

-갓 태어난 존재이긴 하나, 이것만큼 귀한 것도 없지.

“갓 태어났다고?”

나는 입을 떡 벌리고는 그녀의 뒤에 있는 드래곤을 바라봤다. 족히 10m는 되어 보이는 육체였다.

-100년도 살지 않은 나약한 드래곤이다.

별것 아니라는 듯 말하는 녀석의 말에 나는 궁금증이 일었다.

아무리 갓 태어난 드래곤이라 한들 드래곤은 드래곤이었다.

모든 종족의 정점에 선 존재이자, 신과 가장 가까운 존재.

아무리 눈앞 엘프가 강하다고 한들 혼자 사냥할 수 있을 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녀석은 내 의문을 파악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드래곤을 잡기 위해 서리 부족의 하이 엘프 387명이 희생되었다. 남은 건 나뿐이지.

녀석은 하얀 천으로 감싼 눈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마치 그 시절을 회상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왜 그렇게까지…….”

-왜라니 당연하지 않나? 드래곤을 잡은 엘프는 역사에 남는다.

당당히 말하는 그녀의 말에 나는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가당치도 않은 소리였기 때문이다.

역사에 남는다고? 웃기는 소리!

동족을 잡아 박제시킨 하찮은 존재를 드래곤들이 가만히 내버려 둘리 없었다.

그러니 이런 척박하고 살기 힘든 곳에 처박혀 사는 거겠지.

생각을 마친 나는 조용히 녀석을 바라봤다.

차게 식은 머리가 인식을 또렷하게 만들었다. 이제야 나는 녀석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다.

허영심과 과시욕에 사로잡힌 미치광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

격에 비해 하찮은 사상을 마주한 나는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엄청난 기운에 주춤하고 움츠러들었던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차갑게 물음을 내뱉었다.

“숨어서 지내는 생활은 할 만한가?”

녀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치부라 생각했던 것을 들킨 녀석은 분기를 가감 없이 표출하기 시작했다.

-네깟 놈이 뭘 안다고! 너는 그냥 나의 첫 인간 컬렉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놈이다! 내가 너의 수족 어둠의 기사도 함께 얼려 주지!

괴상한 언어가 터져 나왔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결국, 저것 때문에 나를 부른 거였나?”

-다른 이유가 있을 줄 알았나?

조소를 흘리는 혹한의 군주에게 나 역시 조소를 흘려보냈다.

“너는 두 가지 실수를 했어.”

-개소리!

그녀의 비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하나는 힘을 전혀 숨길 필요가 없는 곳에 날 홀로 불렀다는 것이고…… 암살아!”

부름을 받은 암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을 원하는지 단번에 깨달은 얼굴이었다.

기꺼이 명을 받들겠다는 우직한 모습.

귓가로 시스템의 알림음이 들려왔다.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진화를 준비합니다.]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거부했던 진화를 마침내 실행합니다.]

팟-!

일순, 주변이 모두 어둠으로 덮였다.

칠흑보다 더 깊은 어둠. 모든 빛을 빨아들일 듯한 어둠이 찾아오고…….

폭발하듯 어둠의 기운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죽음의 군주’로 진화합니다.]

화악-!

터져 나간 어둠이 순식간에 죽음의 군주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빛을 잃었던 성안에 다시금 빛이 찾아들었다. 그러나 환한 빛이 비친 상황은 그리 화려한 것이 아니었다.

전투태세를 취하던 엘프들은 바들바들 몸을 떨고 있었고, 마치 저승사자라도 만난 듯한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삶의 끝자락을 잡기 위해 아득바득 기를 쓰는 모습이 딱해 보이기까지 했다.

삶의 의욕이 완전히 꺾인 그들을 무심히 바라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혹한의 군주를 향했다.

녀석은 보고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달싹거렸다.

-말도 안 돼…… 죽음의 구, 군주?

“그래, 너와 같은 격이지.”

-헛소리! 나는 드래곤을 잡은 최후의 엘프! 이제 막 군주 자리를 차지한 저 녀석에 비하면…….

“크큭.”

-왜 웃지?

“그게 너의 두 번째 실수야.”

-그게 무슨…….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노한 얼굴로 꽝꽝 얼어 있는 지엄한 존재를 눈에 담았다.

“저 눈도 감지 못한 채 죽은 위대한 존재를 나에게 보여 줬다는 것.”

-무슨 헛소리를…….

그 얼빠진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읊조렸다.

“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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