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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65화 (65/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65화

65. 혹한의 군주(1)

시신을 살폈다.

정확히 미간과 관자놀이가 관통당한 상태였다.

‘눈조차 감지 못했다.’

죽음조차 인지하지 못했을 정도로 눈 깜짝할 새에 당한 것을 보니, 절대 평범한 놈은 아닌듯했다.

“……루카와 파비오인가?”

유난히 엄살이 심했던 루카와 그를 욕하면서도 형제처럼 챙겼던 파비오.

그들의 싸늘한 주검이 눈앞에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감지 못한 눈을 덮어 주었다. 그러고는 기감을 넓혀 각 텐트 안의 인원을 살폈다.

다행히 남은 인원에 맞는 기척이 느껴졌다.

“후.”

한숨을 깊게 쉬고는 관자놀이에 꽂힌 화살의 끝을 바라봤다.

나풀거리는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관통한 화살의 끝에는 작은 쪽지가 매달려 있었다.

“……뭐라고 쓰여 있는 거야.”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몬스터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조차 놀라워했을 테지만, 시장에서 장을 보고, 투기장을 즐기는 악마까지 목격한 입장에선 딱히 놀라울 것도 없었다.

낯선 언어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을 때, 귓가로 알림음이 들려왔다.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자신이 읽을 수 있다며 손을 번쩍 듭니다.]

“읽어 봐.”

-혹한의 군주가 하찮은 인간의 대표를 만나고 싶어 하신다. 예를 갖춰 찾아오라.

간단한 번역이었지만, 심기를 건드리기엔 너무나도 충분한 내용이었다.

“이것들이……!”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주인을 비하하는 녀석은 자신이 처단하겠다며 길길이 날뜁니다.]

“가만히 있어 봐.”

나는 애써 머리를 차게 식힌 후,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격에 롱기누스 둘을 죽인 미지의 존재.

그리고 언덕 너머 떡하니 버티고 있는 설원 오크의 부락.

무엇 하나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차라리 혼자였음 편했을 텐데.”

작은 아쉬움을 토로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어떤 상황이 벌어진 지도 모른 채 곤히 자는 롱기누스 팀과 천외천이 눈에 들어왔다.

저들이라고 반응할 수 있었을까?

고개를 내저었다.

십중팔구 메시지를 전하러 온 녀석이 마음먹고 쳐들어왔다면 절반 이상은 목숨을 잃었으리라.

소름 돋는 상황이었다.

던전 안에서는 언제 어디서든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속에서 무엇인가 꿈틀댔다.

동료의 죽음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곯아떨어진 저들에 대한 분노인지, 오만한 몬스터에 대한 분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내가 없다면, 저들은 결국 다 죽을 거라는 것.

나는 살기 어린 기운을 확장해 텐트 안으로 흩뿌렸다.

“뭐야!”

“적인가?”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포착됐다.

곧이어, 무장을 마친 롱기누스 팀원과 박한별, 그리고 천지현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 역시 나를 보고 있었다.

“루카!! 파비오!!”

싸늘한 주검이 된 동료를 발견한 누군가 그들의 이름을 울부짖으며 다가왔다.

“네놈 짓이냐?”

나는 자신의 무기를 빼 들고는 내 목에 겨눈 조반니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 분노 섞인 눈빛을 마주하고 있자니, 기억하기 싫던 옛 생각이 떠올랐다.

나약하고, 분노에 차 있었으며,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나의 모습.

‘역시 강해지지 않으면 아무도 지킬 수 없어.’

“그만! 천도윤의 짓이 아니야.”

“그럼…….”

“몬스터다.”

안토니오의 외침에 모두가 달려왔다.

그들은 단 일격에 당한 동료를 바라보며 경악했다.

“이들이 마음먹고 습격했다면 너희는 다 죽었을 거다.”

상황을 인지시키자, 롱기누스 팀의 표정이 급변했다.

여기 누워 있는 것이 자신이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겠지.

한없이 꺼져 들어가는 그 분위기를 나는 천천히 바라봤다.

그러고는 묵묵히 시신을 수습하고 있는 안토니오의 뒷모습에 대고 물었다.

“가지고 있나?”

“가지고 있긴 하지. 하지만…….”

“수가 부족하군.”

안토니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 탈출용 부적은 10장뿐이다. 너희는 가지고 있나?”

“3장.”

여분의 목숨줄이라 불리며, 상식을 초월하는 금액을 자랑하는 부적.

일반인들은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아이템이었다.

“어떻게 할 셈이지?”

나는 안토니오에게 물었다. 이미 언덕 너머 설원 오크의 부락이 있다고도 말한 뒤라, 녀석의 안색은 더욱 안 좋아졌다.

“마음 같아서는 너희 부적까지 뺏고 싶군.”

롱기누스의 남은 인원은 13명이었다. 내가 가진 부적까지 모두 있다면 전원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 터.

이 짧은 상황에 거기까지 생각한 모양이었다.

“할 수 있으면 해 보던가.”

싸늘한 나의 반응에 안토니오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결정했다.”

“뭐지?”

“동료들이라도 내보내야지. 나는 남는다.”

“나머지 두 명은?”

“몰라, 싸우든 자발적으로 남든 마음대로 하라고 해.”

무책임한 듯 손을 휘휘 젓는 안토니오의 행동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귀찮은 듯 행동하지만, 녀석은 이미 동료들을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한 녀석이었다.

그리 나쁘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결론을 보고 이야기하지.”

“그러지.”

나와 안토니오는 각각 팀이 모여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나는 박한별과 천지현에게 물었다.

“너무 위험해요. 아무래도 다 같이 나가는 게…….”

역시나 박한별은 합리적인 선택을 내렸고, 천지현은 그저 빤히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뭐, 왜!”

“정말 나갈 거야?”

그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남을 거야.”

“역시.”

그제야 천지현은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박한별은 깜짝 놀란 얼굴을 하며 끼어들었다.

“잠깐, 잠깐만요! 남겠다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저는 남을 겁니다. 해 보는 데까지 해 보고 정 안 된다 싶을 때 쓸 겁니다.”

“너무 위험해요.”

“나도 남을래, 그럼.”

“지현 씨!!”

박한별은 놀란 목소리로 천지현에게 소리쳤다.

“언니도 괜히 고집부리지 말고 남겠다고 해요. 어차피 안 갈 거면서.”

“제가 무슨, 저는…….”

한참을 머뭇거린 박한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신 티켓 먼저 주세요.”

“그럴 겁니다.”

나는 작게 웃으며 배낭에서 검은 티켓을 두 장을 꺼내 천지현과 박한별에게 각각 건넸다.

역시나 내 예상은 정확했다. 보나 마나, 천지현은 재밌을 것 같다며 따라나설 것이었고, 박한별은 동료를 버리지 못하고 따라올 것이라, 생각했다.

예상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맞아떨어지자, 나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어차피 나설 일은 많이 없을 겁니다.”

그들에게 이야기하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롱기누스 팀의 결과는 의외였다.

10명을 추려 나가거나, 티켓을 뺏으러 올 줄 알았는데 둘 다 아니었다.

전원 남기로 했단다.

그 모습에 나는 헛숨을 내뱉었다.

죽을 가능성이 크다 못해 넘쳐 나는데 그들은 멍청한 결정을 내렸다.

치기일까, 아니면 동료를 버리지 못하는 의리일까.

뭐가 됐든 썩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도 똑같은 말을 전했다.

“어차피 나설 일은 많이 없을 겁니다.”

더해 한마디를 덧붙였다.

“루카와 파비오의 넋은 제가 기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그들에게 시신을 수습할 것을 부탁하고는 나는 홀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언덕이라 그런지, 살을 엘듯한 바람이 세차게 느껴졌다.

눈 아래로 넓은 마을이 하나 보였다.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불꽃이 보이고, 조악하게 지어진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얼핏 보기엔 평화로운 풍경. 그러나 결코 평화롭고 잔잔한 놈이라고는 부를 수 없는 녀석들이 사는 곳이었다.

나는 터벅터벅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머리 위로 검은 먹구름이 드리웠다.

부락을 향해 다가가면 갈수록 먹구름은 기세를 넓혀갔다.

“크롸라라락!!”

부락에 가까워지자, 그 주변을 정찰하던 설원 오크 하나가 달려들었다.

서걱-!

스산한 소리가 귓가를 스치고, 설원 오크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서슬 퍼런 낫을 든 암살이를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걸어 나갔다.

약 100m 거리까지 좁혀지자, 수많은 오크가 나를 발견하고는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던전을 고른 건 내 실수였어.”

내가 이곳으로 온 이유는 팀을 정식으로 인정받기 위함도 있었지만, 박한별과 천지현을 성장시킬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이 극악의 난이도에서 그녀들이 배울 것은 많지 않아 보였다.

‘그렇다면 빨리 끝내 버려야지.’

쿠구구구구.

머리 위로 용 모양의 전격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수십을 넘어 일백에 가까운 용.

섬뜩한 하얀 이를 드러내는 용들이 설원 오크 부락을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죽어!”

인간을 유린하고, 그것이 자랑인 양 전시하는 녀석들에게 대가를 받을 차례였다.

더해 녀석들에게 죽어 갔던 모든 플레이어의 넋을 기릴 생각이었다.

콰과과과광!!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이 사방에 울려 퍼지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설원 오크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단숨에 절명하지 못한 불행한 오크들의 것이었다.

“크롸라라락!”

그러나.

서걱-!

그마저도 크게 휘두른 암살이의 일격에 모두 쓰러져 나갔다.

그때, 범상치 않게 느껴지던 기운의 존재가 정체를 드러냈다.

“크르르르.”

2m가 넘는 비대한 설원 오크보다 족히 두 배는 거대해 보이는 녀석.

“네가 이 부락 대장이냐?”

녀석은 부락의 오크들이 대부분 절명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끓어오르는 살기를 미친 듯이 뿌려댔다.

그러고는 자신의 몸집만큼이나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 내 두개골을 쪼개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담긴 공격이었다.

하지만…….

콰앙-!

녀석의 공격은 허무하게 막히고 말았다. 데스나이트 암살이에 의해.

녀석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하는 듯한 표정. 그러나 참으로 가당찮은 생각이었다.

“사람이 겸손하게 살아야지. 아, 사람이 아니구나.”

녀석의 목이 순식간에 떨어져 나갔다.

명성에 맞지 않는 허무한 죽음.

그러나 안타까워하거나 애도의 눈빛을 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모든 건 인과응보다.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매서운 눈보라가 시야를 가리고 푹푹 빠지는 눈길이 발걸음을 방해했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얼마 전 받았던 쪽지의 내용을 곱씹었다.

-혹한의 군주가 하찮은 인간의 대표를 만나고 싶어 하신다. 예를 갖춰 찾아오라.

애꿎은 경비를 죽여가며 메시지를 보내지 않나, 인간을 하찮다고 칭하질 않나. 게다가 예를 갖추라니…….

메마른 실소가 터져 나왔다.

몬스터가 말하는 예는 무엇이며, 어떤 이유로 보자 하는지 참으로 궁금했다.

“어디 면상이나 구경해 보자.”

설원 오크의 부락을 지나 약 두 시간이 지났을 무렵.

홱-!

미간을 향해 화살이 날아왔다.

어떠한 소리도 기운도 느끼기 힘든 화살.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강대한 기운만큼은 진짜였다.

화살을 휙 낚아챈 나는 손에 들린 화살을 바라봤다. 화살이 머금은 독살스러운 기운에 손바닥이 조금 찢겨 있었다.

루카와 파비오를 죽였던 그것과 같은 것이었다.

“나와라.”

나는 한 치 앞도 구별하기 힘든 설원 속에서 한쪽을 바라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희미한 인형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녀석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나타난 녀석은 워낙 귀하다고 여겨지는 존재였으며, 이런 척박한 땅에 살기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존재였다.

그 존재는 바로……

거대한 각궁을 등에 멘 엘프였다.

“[email protected]#$#@!^&.”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는 녀석의 말에 반지에 들어간 암살이가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왜, 뭐라는데.’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말할 수 없다며 당장 자신을 풀어 줄 것을 요구합니다.]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저 건방진 년의 목을 따 주인에게 바치겠다 다짐합니다.]

나는 한숨을 길게 내뱉고는 암살이에게 말했다.

‘그냥 말해라, 좋은 말로 할 때.’

암살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마지못해 입을 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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