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62화
62. 설원 속 미치광이(1)
“끄아아악!!”
고통에 찬 비명이 새하얀 설원에 울려 퍼졌다.
“……!”
뒤따라 들어온 박한별과 천지현이 흠칫 놀라더니 이내 전투 태세에 돌입했다. 군더더기 없이 빠르고 정확한 동작.
상황을 모두 파악한 박한별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저, 저게 뭐죠?”
“아무래도 저희 예상이 틀린 것 같습니다.”
고통스러워하는 롱기누스의 단원과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재밌다는 듯 킬킬거리는 몬스터 무리.
그 믿기 힘든 광경에 게이트의 입구에는 어마어마한 긴장감이 들끓고 있었다.
“그게 무슨…….”
“두 시간이건 여섯 시간간이건 다 개소리라는 이야기지. 조반니!! 괜찮나!”
안토니오가 끼어들었다.
“마스터는 이게 괜찮아 보입니까? 크윽!!”
원망 섞인 불평에 안토니오 바가렐라가 소리쳤다.
“미켈!”
“네, 엄호해 주십시오.”
미켈 바가렐라의 요청에 롱기누스 팀은 한 몸이 된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영을 좁히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조반니의 앞으로 모두 모여들었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획일화된 동작.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작게 감탄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력에 경탄한 게 아니었다. 바로 저 시선. 일제히 한곳을 향하는 완고한 시선에 놀란 것이다.
롱기누스 팀은 지금껏 그 누구도 다친 동료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있었다. 그 대신 오직 적을 매섭게 주시할 뿐이었다. 이어질 공격에 대비하며.
닭살이 올라왔다. 새삼 전장에 나온 것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인버스 타워나 대련을 할 때 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내가 실수하면 누군가 죽을 수도 있다!’
그 사실을 인지하자, 온몸을 비집는 중압감이 몰려왔다.
“어떻게 할까요, 마스터?”
“대기한다. 조반니의 치료가 우선이다.”
“예.”
어느새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던 안토니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오직 야전을 구르는 베테랑 전사의 눈빛. 형형한 눈빛만이 전장을 압도하고 있었다.
미켈이 조반니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크윽! 빨리, 이것 좀.”
조반니는 자신의 떨어진 팔을 미켈에게 내밀었다.
“아파도 참아. 이거 들고 있어! 그렇지! 절대 움직이지 마.”
“알았…… 크아아악!”
다시 한번 비명이 들려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몬스터의 공격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거대한 바늘로 어깨와 팔을 동시에 꿰뚫은 미켈의 손이 미친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족히 15cm는 되어 보이는 바늘이 수백 번을 이동했다. 마력으로 만들어진 가느다란 실이 떨어진 팔과 어깨를 조금씩 이어붙이고 있었다.
“움직이지 말라고! 평생 팔 못 쓰고 싶어?”
“끄으으윽!”
미켈의 협박에 조반니는 이를 악다물며 버텼다.
“얼마나 걸리지?”
안토니오의 외침에 미켈이 대답했다.
“안전하게 5분 정도?”
“길어, 1분 안에 끝내.”
“대충하다가 신경 하나라도 잘못 건드리면 병신 되는 거 몰라요, 마스터?”
“그래서 불가능한가?”
미켈은 자신을 등지고 있는 안토니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그럴 리가.”
미켈의 손이 더욱 빨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
콰앙-!
굉음이 지축을 흔들었다.
다시 날아온 거대한 도끼가 롱기누스 창에 의해 양단되어 날아갔다.
하나는 눈 속으로 깊게 파고들었고 나머지 조각이 향한 곳은…… 바로 내 쪽이었다.
제법 매서운 속도로 날아드는 도끼.
콰악-!
나는 손을 들어 도끼를 가볍게 쳐 냈다. 쩌적 소리를 내며 도끼의 날 부분이 빙판을 갈랐다.
“아주 못 쓸 정도는 아니군.”
안토니오 바가렐라는 여전히 이쪽은 바라보지도 않은 채 소리쳤다.
나는 그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같은 팀으로서 쓸모가 있나 테스트하기 위해 일부러 위험을 무릅쓰게 한 안토니오에 대한 분노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눈에 들어온 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동료를 지키기 위해 단 한 번 눈길조차 돌리지 않는 모습.
당연히 동료가 지켜 줄 것이라 여긴 채 단 한 번의 흔들림도 없이 바느질을 이어 가는 미켈.
완벽하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신뢰로 똘똘 뭉친 조화로운 팀이 눈에 들어왔다.
두근.
돌연 심장이 날뛰기 시작했다.
‘내가 만들 수 있을까?’
서로를 백 퍼센트 믿은 채, 온전히 등을 맡길 수 있는 팀.
롱기누스는 내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팀이었다.
부러웠고, 질투가 올라왔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급한 것은 저쪽이다.
“어떻게 할 셈이지?”
내가 묻자, 안토니오가 대답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저 녀석들은 곧 돌아갈 거야.”
“그게 무슨…….”
“너도 말하지 않았나? 우린 속은 거라고.”
그제야 나는 안토니오의 말을 이해했다. 동시에 싸늘하게 머리가 식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그저 장난감에 지나지 않는다 이 말인가?”
“제대로 얕보였군.”
눈빛이 착 가라앉은 건 안토니오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체 무슨 소리야?”
조반니의 상처가 수습됨과 동시에 일렁이던 살의를 억누른 천지현이 다가와 물었다.
“가나 협회장이 말한 2시간 23분, 6시간 7분, 13시간 12분. 모두 레이드를 하다 끝난 시간이 아니야.”
“그럼……?”
“그저 헌터들을 살려 놓고는 천천히 사냥하며, 공포에 떠는 플레이어들을 유린한 시간이지.”
내 말을 들은 천지현과 박한별은 아무 말이 없었다.
“…….”
잠시 후.
삭풍이 부는 날씨보다 더 차갑게 식은 천지현이 물었다.
“다 죽여 버려도 돼?”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만큼이나 나 역시 분노를 느끼고 있었으니까.
새하얀 털, 오크 같은 얼굴, 여기까지 짙게 배어 나오는 허기진 호승심. 생전 처음 보는 종류의 몬스터였다.
설인이라 부르기엔 성미가 사나워 보이고, 오크라고 부르기엔 털이 무성한 녀석들이었다.
“뭔지 아나?”
날아오는 도끼를 다시 한번 쳐 낸 안토니오가 대답했다.
“설원 오크. 20m급 규격 외 던전에서 보스몹으로 나오는 녀석이다.”
짧게 대답하는 안토니오의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당연했다. 저곳에는 20m급 규격 외 던전의 보스몹이 적어도 스무 마리 이상 모여 있었으니까.
“아직 초입인데…….”
우리의 대화를 엿들은 박한별이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서둘러 박한별의 입을 막았다. 아무리 한국어로 떠들었다고 한들, 박한별의 힘 빠지는 소리는 모두가 알아들을 터였다.
역시나 롱기누스의 기운이 미세하게 일렁였다.
“제가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위로의 말을 건네자 눈치 빠른 박한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내뱉은 말 한마디가 팀 전체의 분위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크롸라라라!!”
몇 번의 도끼 공격이 실패한 탓인지, 저 멀리 보이는 설원 오크가 분한 감정을 잔뜩 실은 포효를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오싹하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홱 돌렸다.
역시나, 천지현의 눈빛이 조금씩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입술을 살짝 핥고는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듯한 자세를 취하는 천지현의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진정해.”
설원 오크들은 경고하듯 포효를 한 번 더 내질렀다. 그에 반응해, 천지현의 눈빛이 더욱 붉게 물들었다.
나는 조금 더 힘을 주어 그녀를 억눌렀다.
“진정하라고!”
그때, 설원 오크가 다시 한번 무언가를 집어던졌다. 이번에는 도끼가 아니었다.
맹렬한 기세로 날아오는 거대한 물체는 다름 아닌 거대한 눈덩이었다. 눈이 흩날리지 않는 걸로 보아, 제법 단단하게 언 모양이었다.
바위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단단해 보이는 눈덩이가 매서운 속도를 자랑하며 날아오고 있었다.
콰앙!
롱기누스의 창이 날아오는 눈덩이를 산산조각 내며 꿰뚫었다.
얼음과 눈이 사방에 비산했다.
그 모습을 바라본 박한별은 분통을 터트렸다.
“저 개새끼들이!”
평소답지 않은 거친 언어였다. 하지만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었다. 지금 이곳에서 그녀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흩날리지 않은 채, 롱기누스의 창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물체. 그것을 확인하고도 평온을 유지할 수 있는 자는 없었을 테니까.
“사람이…….”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는 플레이어가 롱기누스 창에 꿰뚫려 있었다.
처참하게 뜯기고 유린당한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미친 새끼들!”
이번에는 롱기누스 쪽에서 욕설이 날아왔다.
반면.
“크롸라라라!!”
녀석들은 즐거운 듯 웃고 있었다.
우리를 향해 포효한 설원 오크. 선봉에서 도끼를 계속해서 날렸던 녀석을 포함한 모든 설원 오크들이 우리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마치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했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우리는 더욱 분노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녀석들의 모가지를 따고 싶었다. 주변으로 살의가 눈에 보일 정도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반쯤 눈이 돌아간 롱기누스의 팀원들을 진정시킨 것은 다름 아닌 안토니오였다.
“멈춰라! 달려드는 것은 저 녀석들이 원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적들에게 원하는 걸 줄 셈이냐!”
소리친 안토니오는 천천히 창을 내려 조심스럽게 플레이어를 내려놨다.
“인간을 희롱한 대가는 반드시 받아 낼 것이다. 그러니 조금만 참아라.”
안토니오 바가렐라의 외침에 롱기누스의 눈빛이 돌아왔다. 하지만 끓어오르듯 타오르는 기운만큼은 여전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 * *
“굴욕이군.”
설원 오크들이 모두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에야 롱기누스의 창을 느슨하게 풀어 쥔 안토니오가 말했다.
“치료는?”
“다 됐어요. 일단 붙여 놓긴 했는데 당장 전투는 무리예요.”
미켈의 보고에 안토니오가 미간을 찡그렸다.
“한 명 한 명이 중요한 시기인데…….”
부목을 댄 조반니가 소리쳤다.
“할 수 있습니다!”
“됐어, 넌 뒤에서 보조나 하도록.”
단번에 조반니를 일축한 안토니오의 눈이 나를 향했다.
“미안하지만 이곳의 난이도는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다.”
“…….”
짐짓 심각해진 안토니오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일전에 클리어했던 100m 규격 외 던전 보다도 아득히 높은 난이도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난이도였다면 100m 규격 외 던전을 클리어한 경험이 있는 자가 조금 전처럼 허무하게 팔이 나가떨어지는 일은 없었을 테지.
그런데…….
나는 의아했던 점을 물었다.
“그게 왜 나한테 미안할 일이지?”
잠시 뜸을 들인 안토니오가 말했다.
“앞으로 너희를 지켜 줄 수 없게 됐다.”
그 어이없는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지?”
첫 만남부터 죽일 듯이 창을 내지르던 놈이,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는다는 것이 실로 가당찮아서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애초에 우리는 너희에게 보호받기 위해 들어온 게 아니다. 같이 싸우기 위해 들어온 거지.”
“……자존심이 강한 편이군. 밖이었다면 그 자존심을 한껏 뭉개줬겠지만, 던전 안이니 순화해서 말하지.”
‘지껄여 봐’라고 말하려던 나 역시 애써 언어를 조금 순화했다.
“말해.”
“너희는 약하다. 강한 것은 저 녀석 정도…….”
조금 전까지 흉흉한 살기를 내뿜던 천지현을 가리키려던 안토니오의 눈빛이 한곳에 멈춰 섰다.
나는 조용히 조소를 흘렸다.
그래, 말문이 턱 막힐 테지.
그의 눈빛이 향한 곳은 분노에 찬 표정으로 도깨비방망이를 꽉 그러쥔 박한별이었다.
안토니오 바가렐라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피식 웃음을 참은 나는 양쪽 어깨를 들어 올려 보였다. 몸을 잘게 떨고 있는 박한별이 내뿜는 기세는 평소의 그것과는 결을 달리하는 기운이었다.
‘처음 봤을 땐 나도 놀랐어.’
뱉고 싶은 말을 겨우 참아 냈다.
독살스럽게 내뿜는 그녀의 기운은 정제되지 않았고, 거칠었으며, 표독스럽기까지 했다.
야생의 날것을 연상케 하는 기운은 안토니오뿐만 아니라, 롱기누스 전체의 이목을 잡아끌고 있었다.
“저 여자 강해.”
“그러게, 꼭 풍기는 기운이 몬스터 같아.”
눈 내린 설원. 조금 전 믿기 힘든 장면을 목격했다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여기저기서 쑥덕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전히 무시할 건가?”
웅성거리는 그들에게 조용히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