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61화
61. 바가렐라(2)
안토니오의 창이 쇄도했다.
바가렐라가의 삼신기 중 하나인 롱기누스의 창이 나의 미간을 노리고 맹렬히 돌진했다. 그 기세에 비례해 대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찌르르 울리는 살기 어린 공격. 단숨에 눈앞의 적을 찢어발길 기세로 쇄도하는 롱기누스의 창이 눈앞에서 멈춰 섰다.
파앙-!
창을 막은 것은 다름 아닌 그의 팀원이었다.
“진정하십시오, 마스터.”
말총머리에 플레이트 아머, 등에는 거대한 대검을 멘, 전형적인 검사의 모습을 한 금발의 사내였다.
안토니오는 잠시 나와 자신의 동료를 번갈아 노려보더니 이내 무기를 내려놨다.
“흥, 반응도 못 하는 녀석이 허세는.”
흥미가 떨어졌다는 듯 돌아서는 안토니오 바가렐라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내가 오해했군.’
나는 그가 실력이 떨어져 우리의 실력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조금 전 한 합의 공격을 목격하고 나서 깨달았다. 그게 아니었다.
녀석은 우리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게 아니라, 제대로 보지 않은 것뿐이었다.
평생을 포식자로 살아온 터라,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없던 것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저 녀석을 마주친 대부분의 사람은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힘을 숨기기보다는 오히려 기세를 미친 듯이 뿜어 대는 쪽을 선택했을 테니.
표면상으로 나오는 미세한 기운. 그 단편적인 힘이 그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자 척도였다.
오만한 그의 성격에 걸맞은 부주의함. 그 가벼운 예단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그게 너의 가장 큰 약점이 될 거야.’
모든 인간이 자신보다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 그 오만, 분명 그 점이 녀석의 발목을 잡을 터였다.
멀어져 가는 안토니오 바가렐라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박한별과 천지현에게 말했다.
“인사는 다음에 하죠.”
* * *
게이트 앞에서 있었던 작은 소동에 대한 소식을 들었는지, 가나 협회장이 중재에 나섰다.
“자자, 같은 팀을 이뤄 레이드를 해야 할 사이인데, 서로 인사 좀 하시죠.”
이영우의 도움을 받아 통역을 한 가나 협회장은 회의실에 모인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테이블의 반대편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던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시 한번 소개하지, 천가의 직계 천도윤이다. 이쪽은 천지현과 박한별. 내가 이끄는 팀 천외천의 일원이다.”
소개를 들은 반대 진영이 웅성거렸다.
“이름 한번 거창하군.”
“가만…… 천도윤? 가문에서 쫓겨났던 애 아니야?”
“멍청아, 그건 옛날이야기고! 차기 흑운이 되어서 나타났다는 소문도 못 들었어?”
“흑운? 흑운이 뭔데?”
“천가의 암살대. 일본의 시미즈가와 카토가가 천태산이랑 철용 그리고 흑운. 그 3명에게 멸문당한 거잖아.”
부정확한 정보들이 계속해서 귓속으로 들어왔다.
동료로부터 나에 대한 정보를 들은 안토니오는 돌변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차기 흑운이라고? 저 녀석이……?”
안토니오 바가렐라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나는 녀석에게 나에 대한 정보를 조금도 주지 않고 있었으니까.
기운을 난잡하게 만들었고, 거의 새어 나오지 않던 기운을 미약하게 흘려보내며 자랑하듯 뿜어댔다.
마치 기세등등한 바가렐라 가문에 밀리지 않으려는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듯이.
안토니오의 시선이 박한별로 향했다가, 이내 천지현에게 돌아섰다.
“저 녀석이 아니라?”
무기를 들지 않은 박한별은 그리 특별한 강자의 느낌이 아니었다. 나 또한 저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었으니, 은밀한 기운을 은은하게 내뿜는 천지현에게 시선이 돌아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반대편 진영의 시선이 모두 천지현에게 꽂혔다.
팀 롱기누스의 시선을 단번에 받은 천지현은 눈빛을 반짝였다. 그리고 이내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기세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다급히 잡았다.
“가만히 있어.”
천지현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러고는 자신의 기운을 정돈했다.
“그쪽이나 소개하지.”
내가 말하자, 안토니오가 어깨를 으쓱였다.
“굳이 소개할 필요가 있나? 세상에 롱기누스 팀을 모르는 사람도 있나?”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이었다.
“너는 알지, 롱기누스 팀도 알고. 그런데…….”
나는 안토니오의 오른쪽으로 쭉 도열해 앉은 그의 팀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친 녀석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구겨졌다.
그 모습을 바라본 안토니오는 나를 재밌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는 내 도발을 기껍게 받아들여 주겠다는 듯 일어나기 시작했다.
“좋아, 아무리 우리가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팀 전체를 알지는 못할 테니 설명해 주지. 이쪽은 피에로 바가렐라. 이쪽은…… 알지?”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토니오가 내지를 창을 어렵지 않게 막아 낸 자이자, 롱기누스 팀의 2인자. 가주 쟁탈전에서 밀려 안토니오의 팀에 합류한 바가렐라 가의 네 번째 직계. 피에로 바가렐라였다.
워낙 유명한 녀석이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나의 반응에 흡족한 미소를 지은 녀석은 계속해서 팀원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모두 이름을 들어 본 유명인들이었다.
척척 진행되던 소개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 녀석은 신규 멤버야.”
자신감 있는 안토니오의 말에 고개가 돌아갔다.
그곳에는 유난히 눈에 띄는 외모를 지닌 인물이 앉아 있었다.
금발의 외국인들 사이에 있는 유일한 흑발.
동양인의 외모를 지닌 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쪽은 제니. 유일하게 가문 외에서 스카웃한 맴버지.”
나는 의미 모를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그러고는 계속 갖고 있던 궁금증을 토해 냈다.
“혹시 한국인이세요?”
“네, 맞아요.”
익숙한 언어가 들려왔다.
그녀의 대답에 우리 팀은 모두 화들짝 놀랐다.
“이름이?”
“김진희요. 저희와 같이할 팀이 한국의 천가라니, 반갑네요.”
“네, 저희도 먼 이국땅에서 한국인을 만나니 반갑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요.”
싱긋 웃어 보이는 그녀의 이름은 처음 들어 보는 생소한 이름이었다.
나는 동료들을 향해 속삭였다.
“혹시 저 이름 들어 봤어요?”
“아니요.”
“몰라.”
박한별과 천지현 역시 처음 들어 보는 인물이라고 했다. 이쯤 되면 한국에서 전혀 유명세가 없었다는 소린데…….
바가렐라 녀석들이 그녀를 어떻게 찾아낸 건지, 또 그녀가 무슨 능력을 가졌는지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그때, 가나의 협회장이 박수를 짝 치며 끼어들었다.
“자, 소개는 끝난 것 같으니 작전 회의하죠.”
어느새 다가온 레이드에 긴장했는지, 초조한 표정의 그는 빔프로젝터를 켠 뒤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숫자 몇 개가 적혀 있었다.
“2시간 23분. 6시간 7분, 13시간 12분?”
박한별이 쓰여 있는 시간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자 협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선 레이드가 실패한 시간입니다.”
게이트는 헌터들이 들어가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문이 닫혔다. 그리고 안에 들어간 헌터들이 모두 죽으면 다시 문이 열리는 형태였다.
프로젝터에 떠오른 시간은 그것을 잰 숫자를 나타내고 있었다.
가나 협회장의 발언에 장내가 술렁였다.
“모두 초입부도 벗어나지 못하고 다 죽었다는 소린가?”
등급 외 던전은 짧게 잡아도 15일. 길게 잡으면 삼 개월 이상의 시간을 소요로 했다. 그런데 표시된 시간은 모두 24시간조차 지나지 않은 채였다.
즉, 들어가자마자 죽었다는 소리와 다름없는 것이었다.
장내에 처음으로 긴장감이 돌았다.
자신감 넘치던 롱기누스 녀석들마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수군대는 롱기누스의 소리가 들려왔다.
“난이도를 정확히 파악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피에로의 말을 들은 안토니오가 물었다.
“앞서 실패한 3개의 레이드팀 정보 좀 볼 수 있나?”
“예, 여기 있습니다.”
가나 협회장은 미리 프린트해 놓은 종이를 제공했다.
프린트를 자세히 살펴본 롱기누스 녀석들의 표정이 점점 더 굳어졌다.
“쟤들 왜 저래요?”
나는 열심히 프린트를 읽고 있는 박한별에게 물었다.
“이것만으로는 난이도를 파악하기 더욱 어려워서 그래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너무 약해요. 이 사람들.”
“네?”
그럴 리가. 첫 번째 레이드는 자국민으로 이루어진 팀이라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두 번째부터는 아니었다. 세계에서 레이드 팀을 끌어모아 구성한 팀이었다.
규격 외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약할 리가 있나…….
하지만 이어지는 박한별의 말에 나 역시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들…… 100m는커녕 30m 규격 외 던전도 간신히 클리어할까 말까 한 정도의 사람들이라고요.”
분노에 찬 박한별은 가나 협회장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것은 바가렐라 진영 또한 마찬가지였다.
협회장은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숙였다.
“예, 제 잘못입니다. 돈 한 푼 아껴보려다가…….”
잘못을 인정하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깟 돈 몇 푼 때문에 무고한 플레이어 수십이 목숨을 잃었다.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였다.
그 시선을 모두 받아 낸 협회장은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 일을 끝마치고, 협회장직을 내려올 생각입니다. 자수하고 죗값 다 받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이번 일은 꼭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가나 협회장은 고개를 푹 숙였다.
“이번에 실패하면 저희는…… 아니, 가나는 뒤가 없습니다. 부디 성공시켜 주십시오.”
협회장은 간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레이드는 실패하면 할수록 던전 브레이크의 속도가 빨라지는 법이었다. 이미 세 번의 실패로 던전 브레이크가 임박했을 가능성이 컸다.
이를 알고 있는 협회장은 간절한 모습으로 굽실거렸다.
저 마음이 정말 나라를 위한 것인지, 마지막 체면을 위한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이번 레이드가 실패한다면 가나는 큰 위기에 봉착한다는 것.
최악의 경우 도시 하나 정도는 날아갈 각오를 해야 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안토니오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 셈이지?”
시종일관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안토니오 바가렐라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긴, 들어간다. 그리고 클리어한다. 그것 말고 다른 뭐가 있나?”
안토니오의 대답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맞는 말이군.”
“너희가 발목만 잡지 않으면 충분해. 우리 롱기누스는 이미 단일 레이드로 100M 던전을 클리어한 경험이 있으니까.”
자신감 넘치는 안토니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모습을 바라본 나는 작게 읊조렸다.
“믿어 보지.”
* * *
다음 날.
천외천과 롱기누스는 일렁이는 게이트 앞에 모여 있었다.
레이드를 앞두자, 안토니오는 사그라지지 않을 것만 같은 강대한 기운을 끊임없이 내뿜고 있었다.
“계획대로 우리가 선진입하고 너희가 뒤따라 들어온다. 알고 있겠지?”
나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딱 원하던 포지션이었다. 내가 처음부터 녀석들에게 얕잡아 보이면서까지 힘을 숨긴 이유이기도 했다.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던전.
굳이 선봉에 서 리스크를 감내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몇 가지를 점검한 후, 롱기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 가자!”
“우! 우!”
우렁찬 함성이 대지를 울리고, 안토니오를 시작으로 롱기누스 팀이 하나, 둘 게이트 안으로 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일렁이는 게이트가 출렁이며 사람들을 하나씩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멈칫하고는 미간을 사정없이 구겨댔다.
들어가는 작은 틈새로 흘러나온 미약한 기운.
그것을 느낀 나는 던전 안으로 들어가려는 박한별과 천지현을 다급히 멈춰 세웠다.
“잠깐만요!”
“도윤 씨, 왜 그래요?”
“조심하세요.”
“그럴 생각이에요.”
박한별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다시 한번 인상을 와락 구겼다.
“장난이 아닙니다. 정말 긴장해야 할 겁니다.”
“갑자기…… 네, 알겠어요.”
박한별은 심각해진 내 표정을 보고는 무기를 꽉 그러쥐었다.
나는 시선을 돌려 천지현을 바라봤다.
“너도 조심해.”
“응.”
“혹시 목숨이 위험해지는 순간이 오면 주저하지 말고 특성을 발동시키고.”
천지현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래도 돼?”
“응, 절대로 주저하지 마.”
단호한 대답에 천지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심각함을 느낀 표정이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도깨비방망이를 든 박한별이 입을 열었다.
“도윤 씨, 이제 들어가죠. 롱기누스 팀이 기다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제 말 명심하세요. 두 분 모두.”
그러고는 다시 한번 팀원들에게 위험을 상기시켰다.
“알았어요.”
“알았어.”
“제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발 한 발 뗄 때마다 불안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마치 누군가 가지 말라고 발목을 붙잡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발걸음을 돌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예감이 좋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레이드를 취소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기우다. 첫 경험이라 긴장한 것뿐이다.’라며 나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나 게이트에 들어간 순간 나는 그것이 결코 ‘예감’으로 그치지 않을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살이 에일듯한 추위.
수북이 쌓인 눈 위로 흩뿌려진 혈흔.
눈 속을 파고든 거대한 도끼.
어깨를 감싸 쥔 채 몸과 분리된 팔을 들고는 고통스러워하는 롱기누스의 팀원.
그리고…….
“크롸롸롸!!”
멀리서 그 광경을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바라보고 있는 몬스터 무리.
그것이 던전에 들어온 내가 목격한 첫 번째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