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60화 (60/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60화

60. 바가렐라(1)

“저자가 누굽니까?”

“가나의 헌터 협회장입니다.”

고개를 작게 끄덕인 나는 천천히 협회장을 향해 다가갔다. 화들짝 놀란 가이드가 황급히 내 팔목을 붙잡았다.

“도윤 님, 안 됩니다. 대체 뭘 하시려고.”

나를 말리는 가이드에게 작게 웃어 보였다.

“아무것도 안 할 겁니다.”

“네?”

“아무것도 안 한다고요. 영우 씨, 잠깐 통역 좀 해 주시겠습니까?”

“네, 네. 그럼요.”

가이드 이영우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내 옆에 바짝 붙어섰다.

나는 웃는 얼굴로 협회장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저는 천가의 직계 천도윤입니다.”

그러자 협회장은 인상을 와락 구긴 채 나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와다다 토착어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뭐라는 겁니까?”

“그게…….”

“괜찮습니다.”

“천가에 염화와 뇌룡을 제외한 직계가 또 있었냐고 묻습니다.”

명백한 무시가 깃든 물음이었다.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대답했다.

“여기 있지 않습니까.”

“이야기는 들었지만 영 믿음직스럽지 않다고 하네요. 그냥 빨리 위약금이나 내놓고 가는 게 어떻겠냐고…….”

나는 이영우를 빤히 바라봤다.

고생이 참 많겠구나 싶었다. 저 녀석이 이야기한 말은 분명 이것보다는 몇 배나 수위 높은 욕일 텐데…….

“레이드를 하러 왔는데 무슨 위약금을 말하는 거냐고 물어봐 주시겠습니까? 아, 그리고 이번에는 있는 그대로 통역해 주셔도 됩니다.”

“아, 알고 계셨습니까?”

싱긋 웃어 보이자, 이영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고는 능수능란하게 가나의 토착어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이영우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뭐랍니까?”

“정말 있는 그대로 전해 드려도 됩니까?”

“예, 욕까지 빠짐없이요.”

그러자 이영우는 한숨을 깊게 내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국가의 사활이 달렸는데 뭐? 3명? 100억을 들여 불렀더니, 천지훈도 아니고 천진오도 아닌 놈이 와?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새끼가 와서는…… 이런 양아치 집단을 봤나…… 라고 하는데요.”

있는 그대로 번역하는 이영우는 죽을상이었다.

나는 괜찮다고 그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말했다.

“그리고요?”

“죽을 게 뻔한 새끼들을 내주고 100억이라는 큰돈을 꿀꺽하려는 속셈을 누가 모를 줄 아냐고…….”

이영우는 괴로워하며 통역을 마무리했다.

“잘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번역해 주세요.”

“네?”

“전해 주시겠습니까?”

“예, 예.”

“계약금은 10분의 1인 10억. 만약 우리가 실패하면 3배의 위약금을 물겠다.”

이영우가 통역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곧이어 머뭇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뭔 개소리냐는데요?”

“네?”

“계약금이 100억이라고…… 성공보수는 1,000억이랍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입을 쩍 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아무리 입구가 100m에 육박하는 던전이라지만 성공보수가 무려 1,000억이라니…… 여기엔 내가 전혀 모르던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천진오 천지훈이 밥 먹듯이 해외를 나다니는 이유가 있었구만…….’

나는 녀석들이 왜 기를 쓰고 해외로 돌아다니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나는 막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가 된 기분이었다.

‘길길이 날뛸 만하네.’

처음에는 무례하게 느껴지던 저 태도가 점점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확실하게 레이드를 할 수 있겠다 싶은 뇌룡을 불렀더니,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 세 명 와서는 레이드를 하겠다고 설치는 꼴이었으니…… 나라도 화낼 만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해가 간다고 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심정은 이해한다만 레이드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맡기기로 한 거 아니냐고 물어봐 주십시오.”

“너무 터무니없는 인원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도움을 요청했던 것은 뇌룡이지 당신이 아니라고…….”

녀석은 계속해서 천지훈을 언급하고 있지만, 분명 천지훈으로부터 바뀐 맴버로 토벌을 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을 터였다. 그런데 저런 말을 한다는 건…….

‘역시 인원이 문제라는 건가?’

천지훈도 내가 달랑 3명만 데리고 올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많은 인원을 데리고 던전에 들어갈 거라 생각했겠지…… 그래서 자신감 있게 가나 협회장과 협상할 수도 있었던 것일 테고.

이제 와 녀석의 의도가 명확하게 파악되기 시작했다.

내가 팀을 꾸려 던전 안에서 죽기를 바랐을 것이다. 눈엣가시 같던 내가 죽고, 나와 관련된 한편들이 한곳에서 모조리 죽으면 가장 베스트 시나리오라 생각할 터였다.

한마디로 남의 손으로 코 닦을 양아치 심산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녀석은 계약금 100억까지 꿀꺽하려는 속셈이었다.

나는 코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디서부터 인성이 파탄 난 건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어이가 없어 분노조차 생기지 않았다. 아니, 너무 가소로워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나를 너무 얕게 봤어.”

내가 자신과 겨뤘을 당시의 무력을 가졌거나 그보다 약간 성장한 정도의 무력을 가졌을 거라, 생각하고 짠 판임이 틀림없었다.

불행하게도, 천지훈은 나를 잘 알지 못했다. 녀석은, 자신조차 홀로 레이드 하기에는 조금 버거운 난이도의 게이트를 추천했을 것이 뻔했다. 그래야 내가 살아 돌아올 수 없을 테니까.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나는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되어 있었다. 령수를 빨아들여 격을 미친 듯이 끌어올렸으며, 든든한 동료까지 함께였다.

솔직히 100m의 게이트라고 한들 별로 두렵지 않았다.

문제는 저곳에 어떻게 들어가느냐. 그것 하나뿐이었다. 가나에 생겨난 게이트이니만큼 결정권 또한 모두 가나에게 있었다.

“들어가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만약 레이드에 실패하면 뇌룡이 배액 배상을 해 줄 거라는 말도 함께요.”

이영우가 고개를 끄덕인 뒤, 통역했다.

그리고 곧이어 난색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안 된답니다. 실패할 게 뻔한 레이드를 강행시킨 무능한 협회장으로 보이고 싶지는 않답니다.”

“그럼 어쩌라는 겁니까?”

답답한 상황에 나도 모르게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자, 잠시만요.”

이영우는 사색이 된 얼굴로 뒤돌아섰다. 깜짝 놀란 그의 얼굴을 보고는 빠르게 사과했다. 그리고는, 그가 통역해 주기만을 기다렸다.

이영우의 말을 들은 협회장은 팔짱을 낀 채 인상을 팍 구겼다.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무언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한 모양이었다.

“정말로 들어갈 거냐고 묻는데요? 반드시 죽을 거라고.”

“아주 저주를 퍼붓네요.”

“그러게요. 미안합니다.”

“영우 씨가 뭐가 미안해요. 들어갈 거라 전해 주세요.”

“네.”

통역을 들은 가나의 협회장이 나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고는 이영우에게 뭐라 말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3번의 레이드 실패로 남은 예산이 거의 없답니다. 다른 길드나 가문을 불러 같이 레이드를 진행시켜 주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통역을 들은 나는 눈을 빛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 주세요.”

“네? 그게 무슨…….”

“그냥 전해 주세요.”

“네, 네.”

“…….”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는데요?”

“혹시, 성공 보수 수취인이 뇌룡에게 되어 있나 물어봐 주실래요?”

“……그렇답니다.”

“그럼, 성공보수를 받지 않겠다고 전해 주세요. 그 돈으로 다른 길드를 불러달라고요.”

이영우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괜찮다며 그에게 작게 미소를 지었다.

3번의 레이드 실패,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컸다. 척 보더라도 협회장의 자리는 지금 위험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 고작 3명이 레이드하겠다고 왔으니, 아무리 천가라지만 화가 날 법도 한 상황이었다.

그런 이유로 방금 내가 제시한 제안은 두 가지 불만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이었다. 예산을 줄이면서도 천가와 함께 다른 유명한 가문을 동시에 부릴 수 있는 기회! 모르긴 몰라도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리라.

“도윤 씨. 정말입니까? 정말로…….”

이영우는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말투로 물었다.

“예, 정말입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천지훈 그 새끼한테 주느니 안 주는 게 낫지.’

어차피 돈에 관한 아쉬움은 없었다.

앞으로 레이드 한 번에 몇 십 혹은 몇 백억씩 들어올 터였다. 욕심부리기보단, 녀석의 장단에 놀아나지 않는 게 더 중요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가나 협회장은 화들짝 놀라며 나를 바라봤다.

그게 정말이냐고 묻는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작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가나 협회장은 이영우에게 무어라 말하기 시작했다.

“…….”

협회장의 말을 모두 들은 이영우는 나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아까 화낸 거 미안하다는데요?”

머리를 긁적이는 협회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자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괜찮다고 해 주십시오. 이해한다고.”

이영우가 전하자, 협회장은 돌연 진지해진 얼굴로 이영우에게 무어라 말했다.

“며칠 만 기다려 달랍니다. 최고의 인원들로 붙여 주겠다고.”

바라본 협회장은 한껏 결연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었다.

* * *

성공보수를 받지 않겠다는 계약서에 사인한 뒤, 며칠이 흘렀다.

나와 박한별, 그리고 천지현은 매일같이 모여 위험 상황에 대처하는 전략을 나누고 있었다.

대화를 주도하는 것은 역시 박한별이었다.

박한별은 풍부한 레이드 경험을 바탕으로 비교적 레이드 경험이 부족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도망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적들 사이로 파고들어야 해요. 몸집이 거대한 몬스터들은…….”

“허, 허억. 도윤 씨!!”

회의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이영우였다.

“무슨 일이세요?”

나는 다급하게 들어온 이영우에게 달려갔다.

“도착했다고 합니다.”

“누가요? 아……!”

“네, 같이 레이드 뛸 가문이요.”

“알겠습니다. 금방 나갈게요.”

나는 뒤를 돌아 박한별과 천지현을 바라봤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드륵 의자를 끌고 일어났다.

“가시죠.”

“가요.”

해맑게 웃는 두 명의 여자는 누가 올지 기대된다는 얼굴로 문밖을 나섰다.

게이트 앞쪽으로 향하자, 무리가 모여 있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게이트를 바라보며 무어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고, 장비를 점검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던 중 그들의 시선이 한 곳을 향했다.

“너무 무섭게 노려보는데요?”

“쫄지 마세요.”

박한별을 안심시킨 후, 이쪽을 바라보는 무리를 모두 눈에 담았다. 그러고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바가렐라?”

저들은 분명 바가렐라 가문의 사람들이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천지현과 박한별 역시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었다.

“바가렐라 가문이라고요?”

“예.”

조금 더 다가가자 안토니오 바가렐라의 모습이 보였다. 그를 확인한 박한별은 입을 떡 벌렸다.

“그럼 저희랑 같이 레이드를 하러 온 사람이…….”

“예, 바가렐라 가문의 롱기누스인 것 같습니다.”

“롱기누스라니…….”

박한별은 여전히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롱기누스는 대한민국의 중형길드의 수장이 만나 보기에는 너무나도 스케일이 큰 팀이었다.

롱기누스. 천진오의 천지, 천지훈의 천파만큼이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팀이었다.

호전적이기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대표 가문 바가렐라. 그 가문의 둘째 안토니오 바가렐라가 이끄는 팀이었다.

뛰어난 외모와 개차반의 성격으로 더럽게 많은 팬과 안티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녀석.

호전적인 성격에 바람둥이로도 유명한 녀석은 호색한이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역시나, 다가가면 우리가 다가갈수록 녀석의 눈빛이 변하기 시작했다.

“안녕, 이쁜이들.”

느끼한 영어 발음으로 다가오는 안토니오의 앞을 가로막았다.

안토니오 바가렐라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향해 유창한 영어 실력을 뽐냈다. 유일하게 가문에서 배웠던 것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안토니오. 레이드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뭐야? 너 누군데? 천지훈은 어디 있지?”

“내가 대신 왔다. 천가의 천도윤이다.”

내 말을 들은 안토니오 바가렐라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천가 놈들이 와 있다고 해서 잔뜩 기대하고 왔건만, 어디서 들어 보지도 못한 녀석이 와서는…….”

안토니오는 불쾌한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나 역시 상한 감정을 가감 없이 노출했다.

명성으로만 사람을 판단하는 모습이 실로 가당찮았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녀석에게 말했다.

“같이 레이드에 들어갈 팀이다. 예의를 갖춰라.”

“예의는 무슨. 동양 놈들은 뭔 걸핏하면 예의, 예의!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예의 타령은…… 네가 수장이야? 뒤에 계시는 레이디들은 동료고?”

“그렇다.”

“크핫! 크하하하!!”

안토니오는 장내가 떠나갈 듯 웃기 시작했다.

한참을 웃고 나서야, 그가 입을 열었다.

“한국은 물이 참 좋군. 그런데 실력은…… 형편없어.”

비웃음 섞인 안토니오의 도발이 뇌리를 자극했다.

그러나 이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크큭.”

“왜 웃지?”

미약하지만 날카로운 살기가 온몸을 덮쳤다. 그럼에도 나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크흐흐.”

웃으며 뒤를 돌아봤다. 도깨비방망이를 쥐지 않은 박한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광기의 도살자가 발현되지 않은 천지현의 은밀한 기운 또한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뿌듯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녀석은 천외천의 실력을 조금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말은 곧…….

나는 이제야 실감 나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 팀은 결코 약한 팀이 아니라고.

웃음을 멈춘 나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말했다.

“바가렐라 가문도 별거 아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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