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58화
58. 천외천(天外天)(3)
마주치지 말아야 하는 헌터가 있다.
첫 번째는 광전사류의 특성을 가진 플레이어.
두 번째는 도살과 관련된 특성을 가진 플레이어다.
그런데 눈앞에서 방실 웃고 있는 천지현은 두 가지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무려 전설 등급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도살자도 끔찍한데 앞에 광기가 붙어있으니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거기에 더블 특성이라니…….
특성을 두 가지를 가진 플레이어를 지칭하는 ‘더블 특성’은 십만 명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귀한 것이었다. 거기에 특성 두 개가 모두 전설 등급인 사람? 본적도 없다.
‘괴물이었네.’
흑운이 딸을 꽁꽁 숨긴 이유가 있었다.
“후, 이걸 어떻게…….”
새삼 천지현을 잘 데리고 왔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불안한 감정이 올라오기도 했다.
광기의 도살자.
척 보더라도 눈 한번 까뒤집으면 제어할 수 없을 것 같지 않은가.
피아 식별이 가능하다면 상관없겠지만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 같았다.
광전사류의 특성과 도살 관련 특성은 모두 제어하기 어렵기로 유명한 특성이었다.
오죽하면 이런 특성을 가진 플레이어들에게 레이드를 금지하는 나라까지 생겨났을까.
“흠.”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천지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온몸에 힘이 넘치는데…… 싸울래?”
역시나, 제정신이 아니다.
나는 재빨리 활력 스킬을 풀었다.
“아니, 안 싸워!”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녀석은 줄어든 힘을 보고는 입맛을 쩝 다시며 꺼내 놓은 단검을 내려놨다.
“후…….”
진짜 조금도 방심할 수 없는 녀석이었다.
이런 녀석이 만약 박한별과 만난다면?
최악의 상황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전화기를 들었다. 아무래도 내가 있을 때 첫 만남을 갖는 게 좋을 것 같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지.
* * *
신호음이 몇 번 울리기도 전에 숨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억, 헉. 여보세요?”
“운동 중이셨습니까?”
“아니요. 레이드 막 끝나고 나오는 길입니다.”
“박한별 씨는요?”
“잘 있는데 바꿔 드릴까요?”
내가 전화한 것은 우마 길드의 실세 김지선이었다.
우마 길드에 대한 지원과 박한별의 합류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니 흐르고 흘러 어느새 김지선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모든 건 저한테 상의하세요. 그게 더 빠를 겁니다.
자신감 있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생각난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박한별 씨 좀 빌려 가도 되겠습니까?”
“조건을 쓰시는 겁니까?”
“예.”
“위험한 일입니까?”
“상당히요.”
“……그럼 제가 대답할 문제는 아닌 것 같군요. 한별 씨 바꿔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아, 지원해 주신 장비는 잘 쓰고 있습니다.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필요한 것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호호, 사양하진 않을게요.”
짧게 감사 인사를 건넨 김지선은 곧장 수화기를 넘겼다.
“네, 도윤 씨.”
“박한별 씨, 싸움 잘합니까?”
“뜬금없이요? 네, 잘해요. 그런데 그건 왜……?”
“잘됐네요. 지금 당장 여기로 오실 수 있나요?”
내 물음에 박한별은 황당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조건을 오늘 당장 쓰시는 건가요?”
“아니요. 조만간 레이드를 해야 하긴 하는데 그 전에 팀원들을 만나 보면 좋잖아요.”
“그건 그렇긴 한데…… 못 가요.”
“왜요?”
“지금 정부 요청으로 부산에 내려와 있어요. 레이드는 모두 끝나긴 했는데 아직 뒷정리도 해야 하고, 또 보고도…… 여보세요?”
나는 전화를 뚝 끊었다. 그리고는 전화번호부를 찾아 박한별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영상통화였다.
“여보세요? 영상통화는 갑자기 왜…….”
박한별은 역시 부끄러움이 많은 스타일이라 그런지, 화면을 가리고 있었다.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그녀에게 말했다.
“얼굴이 안 나와도 괜찮습니다. 저 보이시죠?”
“……예.”
“그럼 됐습니다.”
“그게 무슨……?”
나는 곧장 반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반지에서 조그만 생명체가 튀어나왔다.
볼록 튀어나온 배에 앙증맞은 뿔을 가진 귀여운 생명체.
한 손에 잡힐 만한 귀여운 몸집을 가졌으면서도 자신이 가장 강하고 거대한 생명체라고 믿는 듯한 위풍당당한 몸짓.
도저히 귀여워하지 않을 수 없는 생명체가 내 머리 위에 올라가 있었다.
나의 머리칼을 잡은 채 한쪽 손을 앞으로 쭉 내민 우마를 화면에 비췄다.
“우마!!”
동시에 우마는 화면을 보며 꺄륵 웃어 보였다.
퍼벅-!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회색 화면이 비추더니, 괴상한 소리와 함께 검은색으로 변했다.
“여보세요? 박한별 씨!”
나는 놀라 다급히 그녀를 불렀다.
곧 화면이 돌아오고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아 죄송해요, 폰을 떨어뜨려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폰을 들어 올렸다. 우마의 모습이 나오고……. 입을 틀어막은 박한별이 눈에 들어왔다.
“우마!”
우마가 소리치자, 박한별은 심장을 움켜쥐었다.
나는 그 모습을 재밌다는 듯이 킬킬거리며 바라봤다. 그리고는 재빨리 화면을 내렸다.
“헉, 왜…….”
그러자 박한별의 얼굴이 절망적으로 물들었다. 실시간으로 변하는 박한별의 표정을 즐겁게 감상한 나는 말했다.
“아, 못 오신다니 어쩔 수 없죠. 그래도 다음 달에 레이드는 가야 하니까 시간 빼 놔주세요. 그럼, 이만.”
“자, 잠깐만요!”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애써 표정을 굳힌 채 말했다.
“무슨 일이시죠?”
“가, 가겠습니다. 갈게요!!”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통화를 종료했다.
* * *
다급하게 전화를 끊은 박한별은 비행기를 타고 넘어왔다.
얼마나 급했으면 얼굴에 먼지를 가득 묻힌 그대로였다.
“허억, 헉. 보여주세요.”
“뭘요?”
“아까 보여줬던 그…….”
“아, 우마요?”
나는 다시 한번 우마를 꺼내 보여 줬다.
“꺄!!”
우마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단번에 눈이 돌아간 박한별은 우마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가까이 접근할 수 없었다.
뿔 사이로 생성된 우마의 전격이 박한별의 접근을 저지한 탓이다.
“우마!!”
우마는 불만이 한가득인 표정으로 박한별을 노려봤다. 갑작스러운 녀석의 반응에 박한별은 당황했다. 그리고 당황한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소환수 ‘우마’가 저 여자에게 ‘그 녀석’의 냄새가 난다며 싫어합니다.]
알림음을 들은 나는 큭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우마 녀석은 아직까지 우마 길드에 전해준 자신과 똑같이 생긴 동상을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볼을 잔뜩 부풀린 채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우마를 본 박한별은 세상을 잃은 표정과 귀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동시에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우마를 돌려보냈다.
“만지는 건 다음에.”
이후, 간단하게 박한별과 얘기를 나눴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는 둥, 계약 조건을 바꾸자는 둥, 따발총처럼 말도 안 되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언제 이렇게 수다쟁이가 됐는지 원.’
결국 모든 말들은 이 한마디를 위한 것이었다.
“도윤 씨, 제발 한 번만 더 보여 주세요.”
그녀는 참지 못하고 나에게 내뱉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나는 피식 웃었다.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겠다 싶었다. 한 번 더 보여 줄까도 생각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그것보다 더 급한 것이 있다.
“보여 줄 수는 있는데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게 무슨……”
챙!
“크윽!”
박한별은 순식간에 방망이를 꺼내 들었다.
내가 선물해 준 도깨비방망이였다.
“저는 뜯어말렸는데 통 말을 듣지 않아서…….”
난처한 표정으로 말하자, 박한별의 날카로운 시선이 날아 들어왔다. 나는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려 보였다.
말을 안 듣는데 어떻게 하라고…….
“우리 팀에 들어오려면 날 꺾어야 해요! 언니.”
모습을 드러낸 천지현. 해맑게 웃는 그녀는 노란 안광을 뽐내며 박한별에게 달려들었다.
“크윽, 신고식인가요?”
박한별은 천지현의 단검을 막아 내며 내게 물었다.
“음…… 네, 그렇다고 해 두죠.”
천지현의 독단적인 행동이었지만,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궁금했다. 김수민에게 전해 받은 도깨비방망이를 다루는 그녀의 모습이!
매섭게 날아드는 두 개의 단검을 힘겹게 피하면서도 박한별은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그녀는 사선으로 들어오는 공격을 방망이로 막아낸 뒤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놀라지 마세요.”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웃어 보인 그녀는 눈을 노린 천지현의 공격을 그대로 맞았다.
아니 맞았다고 생각했다.
화륵-!
단검이 박한별의 눈을 꿰뚫는 순간 그녀의 몸이 타올랐다.
푸른 불꽃으로 타오른 그녀의 육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놀란 눈을 한 천지현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머리 위로 거대한 방망이가 떨어져 내렸다.
“크윽!”
이번에는 천지현의 신음이 들려왔다.
동시에 눈을 밝게 빛내는 천지현. 그 모습에 나는 긴장을 끌어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안광이 붉게 물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전설급 특성 ‘광기의 도살자’가 피어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말려야 해!’
결투가 생각보다 빨리, 그리고 과하게 진행되려 하는 모습이었다.
‘고작 한두 합 만에 광기가 피어오르다니…….’
결투의 장소는 다름 아닌 내 방이었다. 운동장만큼 넓어 아직 까지는 괜찮았지만, 더 힘을 끌어올렸다가는 집안에 남아나는 물건이 없을 것 같았다.
‘차라리 그거면 다행이지.’
말리지 않았다가는 박한별이 크게 다칠지도 몰랐다.
박한별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전설 등급의 특성을 두 가지나 갖고 있는 천지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 당시 내가 확인한 박한별의 능력은 오직 괴력 특성 하나. 활력의 해금률이 낮아 등급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잘 쳐줘 봐야 유니크 등급으로 보였다.
애초에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능력치였다.
“그만!”
나는 소리쳤다.
그러나 이미 광기에 휩싸인 천지현은 듣지 못했다. 내 말은 모두 무시한 채 무서운 속도로 박한별의 급소를 노리며 칼을 찔러 댔다.
“젠장!”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저 공격. 매섭게 명치를 향해 내지른 저 공격을 막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다.
그녀가 피하기 힘들 거란 생각이 들었다.
박한별이 새로운 스킬 ‘도깨비불’을 사용할 새도 없이 당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투쾅-!
땅에 처박힌 것은 다름 아닌 천지현이었다.
믿을 수 없는 현상에 나는 입을 벙끗거렸다.
바닥에 얼굴을 박은 천지현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던 박한별이 말했다.
“신고식치곤 좀 과하시네요.”
실망이 가득 담겨있는 눈빛이었다. 아마 천지현의 독살스러운 살기를 온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리라. 나는 사과를 하기 위해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내 뜻이 아니었다고 한들, 변명의 여지는 없었다.
나는 천외천의 수장이고, 과했던 것 또한 사실이었으니까.
그녀의 입장에서는 무례하다 느끼는 게 당연했다.
미안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다가가는데, 박한별의 뒤에서 천천히 일어나고 있는 천지현의 모습이 보였다.
눈을 완전히 까뒤집은 채, 붉은 아우라를 흉흉하게 풍기는 모습.
첫눈에 알 수 있었다.
그녀의 특성 ‘광기의 도살자’가 제대로 발현되었다는 것을……!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곧장 박한별에게 활력을 불어넣었다. 동시에 소리쳤다.
“뒤에!!”
천지현의 붉은 안광이 우리를 바라봤다.
그녀의 새빨간 아우라 위로 검은 연기가 덮였다.
천지현의 몸을 덮은 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스킬 흑운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기세는 온몸을 저릿하게 할 정도로 잘 느껴졌다.
포식자와 같은 기세로 적을 얼어붙게 만드는 특성과 은밀함으로 날카로운 공격을 노리는 스킬. 최악의 상성을 자랑하는 것들이었다.
흑운의 기운을 뚫고 붉은 아우라의 기운이 새어 나왔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비효율 따위에는 전혀 관심도 없는 듯 쇄도하기 시작했다.
화륵!
동시에 박한별도 사라졌다.
붉은빛과 푸른 불꽃이 공중에서 맞부딪혔다.
파밧-!
팟!
공중에서 붉은빛과 푸른 불꽃이 수도 없이 부딪혔다.
나는 떡 하니 입을 벌렸다.
활력은 신체 능력을 100%나 끌어올리는 사기적인 스킬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천지현을 따라잡을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그녀는 놀랍게도 천지현의 움직임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 기가 막힌 장관을 나는 멍하니 바라봤다.
공중에서 수도 없이 공방을 나누는 두 여자의 무력.
나도 모르게 침이 꿀꺽 삼켜졌다.
놀라웠다. 천지현의 무력도, 박한별의 무력도.
그리고 내가 더 놀란 것은 따로 있었다.
활력을 통해 엿본 박한별의 상태창.
그곳에는 보고도 믿지 못할 것들이 쓰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