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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57화 (57/175)
  •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57화

    57. 천외천(天外天)(2)

    세계 곳곳에서는 연신 특보를 터트리며 천가를 재조명하는 중이었다.

    “KBNC 박윤태 기자입니다. 현재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천가 앞에 나와 있습니다. 일본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응조차 없는 천가에 수많은 비난이 빗발치고 있는데요. 과연 천가는 앞으로 어떠한 행보를 보일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에효.”

    TV를 보던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느 채널을 틀어도 연신 우리 가문에 관한 이야기만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가문 2곳을 모두 쑥대밭으로 만들다 못해 멸문시켜 버렸으니…….

    일본에서는 현재 천가에 대한 강한 제재와 막대한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중이었다. 이슈 초기, 천가에서 내민 일본의 선제공격 준비에 대한 증거가 있었지만, 세계의 반응은 역시나 과하지 않았냐는 쪽에 치우쳐 있었다.

    반면 천가를 옹호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았다. 공격할 게 뻔한데 가만히 맞고 있었어야 했냐라는 반박부터, 선조들의 한을 풀었다는 여론까지. 천가를 감싸는 대부분은 한국인들이었다.

    바깥의 소문과 평가를 아는지 모르는지 가문 내는 연신 축제 분위기였다. 라이벌로 평가받던 일본의 가문이 사라져 버려 속이 후련한 모양이었다.

    그 누구도, 아버지의 행동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전면전을 하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는 눈치를 보이기까지 했다.

    호전적이고, 단순한 것을 좋아하는 인간들.

    나는 새삼 천가의 진짜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나는 고민에 빠졌다.

    “흠…….”

    아버지는 말했다.

    앞으로 나는 더 주목받을 거라고.

    천가의 흑운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세상에 알려질 것이라고.

    나는 아버지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오늘 일을 겪고 나면, 많은 것이 달라져 있을 터였다.

    옷을 갈아입은 나는 그대로 행사장으로 향했다.

    * * *

    오랜만에 갖춰 입은 격식 있는 옷은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복잡한 시선들이 나를 훑었다.

    시기인지 질투인지, 그것도 아니면 미안함일지도 모르는 시선들.

    그 모든 것들을 무시하고 걸었다.

    간간이 날아드는 아부 또한 무시했다.

    그저 갈 길을 걸었다.

    그러자 그간의 자신들의 행적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 날카로운 시선이 꽂혀 들어왔다. 꼿꼿한 내 태도를 보고는 건방지다 생각하는 듯했다.

    어이가 없었다.

    뒤를 돌아 따지고 싶었지만 애써 참았다.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어차피 전부 달라질 시선들이다.

    숨을 깊게 내뱉은 나는 모두가 도열해 있는 가문의 정 중앙에 섰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표하자, 아버지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일어나거라.”

    몸을 일으켰다.

    아버지 역시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나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모여 있는 자들에게 외쳤다.

    “오늘부터 천도윤을 흑운으로 임명한다.”

    내뱉은 한마디는 간결하고, 묵직했다.

    모인 가문 사람들의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모인 이유는 전혀 다른 이유였기 때문이었다.

    직계 천도윤의 팀 창설할 권리를 부여하고, 첫 임무를 내리는 것.

    그것이 이번 행사의 처음이자 끝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가문 중직의 임명이라니……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웅성대는 가문의 사람들과 터져 나오는 원로들의 반발.

    모두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나는 피식하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억눌렀다.

    “가주님!! 이런 이야기는 없지 않으셨습니까!”

    역시나, 천지훈이 나설 거라는 것까지 빠짐없이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내가 죽으면 다음 가주는 누구지?”

    “……천진오입니다.”

    “그것과 같은 이치다.”

    “흑운은 죽지 않았습니다!”

    “은퇴할 만큼 몸이 상한 것도 사실이지.”

    아버지의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논리적으로 아버지의 말은 구구절절 맞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원로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차기 흑운으로 뽑혔을 당시 더 강하게 반발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눈치였다.

    모두가 나의 진급을 반대하고 있었다.

    자신보다 높아지는 것을 아니꼽게 생각하고 있었다.

    단 한 명만 빼고.

    “저는 찬성입니다.”

    그때, 돌연 예상치 못한 자가 나섰다.

    얼마 전 차기 가주로 임명된 천진오였다.

    나는 놀란 눈으로 형을 바라봤다.

    천진오는 나를 보며 희미하게 웃어 보이더니, 발언을 이어 나갔다.

    “차기 흑운이었습니다. 당연히 도윤이가 흑운이 되는 것이 옳습니다.”

    차기 가주의 발언에 장내가 술렁였다.

    지금 가장 막강한 발언권을 가진 이는 다름 아닌 천진오였다. 그런 그가 대놓고 나를 밀어주고 있으니, 혼란스러운 것도 당연했다.

    나도 당황스러운데 네놈들은 오죽할까…….

    나 역시 천진오의 의중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술렁임도 잠시, 가문 사람들의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개중에는 벌써 나를 바라보는 눈빛을 180도 바꾼 이도 있었다.

    그 간사한 모습에 구토감이 올라왔다.

    “형님! 도윤이는 아직 너무 어립니다!”

    천지훈이 또다시 끼어들었다.

    “도윤이는 강해.”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그때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너와 비등하지 않았느냐?”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제가 압승…….”

    “그만!!”

    날아든 가주 천태산의 외침에 장내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주변을 무거운 눈으로 훑은 천태산이 말했다.

    “따르도록.”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단 한마디만 내뱉었을 뿐이었다.

    “…….”

    영혼이 돌아온 아버지의 한층 더 무거워진 기운에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그 누구도 입을 벙끗거리지 못했다.

    그렇게 상황은 일단락됐다.

    * * *

    곧, 원래의 목적이었던 팀 창설에 대한 행사가 진행되었다.

    형식적인 과정들은 무리 없이 진행됐다.

    그러나 역시 걸림돌이 된 것은 이것이었다.

    “천가의 가주 천태산의 셋째 아들 천도윤은 창설할 팀의 이름을 말하라.”

    진행자의 목소리가 들리고, 나는 망설임 없이 그간 생각해 둔 이름을 외쳤다.

    “제가 창설할 팀의 이름은 천외천(天外天)입니다.”

    장내가 또 한 번 술렁였다.

    팀의 이름을 짓는 것이야, 누구나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천가 내에서 팀의 이름은 그 의미가 달랐다.

    반드시 자신이 감내할 수 있을 만한 것이어야 했다.

    천가에는 오랜 전통이 있었다.

    자신이 내건 이름.

    그 이름에 걸맞은 첫 번째 임무를 수행해야만 비로소 하나의 팀으로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하늘과 땅을 모두 아우르겠다는 천지(天地).

    하늘을 부술 힘을 갖겠다는 천파(天破).

    거창한 이름을 내건 첫째 형과 둘째 형 역시 첫 번째 임무에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힘을 되찾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가 하늘 위의 하늘을 외치니, 모두가 가소롭다는 듯이 비웃어 댔다.

    “흥.”

    “하늘 위의 하늘이라니 주제도 모르고…….”

    한껏 예민해진 감각이 중얼거리는 모든 소리를 잡아냈다. 일본의 일은 대부분 흑운과 아버지가 처리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시선일지도 몰랐다.

    예상한 반응이었던지라, 별 타격은 없었다.

    애써 웃어넘기려는데…… 비웃음 섞인 조소가 날아들었다.

    “크큭, 네깟 놈이…….”

    천지훈을 바라봤다. 녀석은 재밌다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속에서부터 일렁이는 분노를 애써 추슬렀다.

    ‘지금은 화를 낼 때가 아니고, 이용해야 할 때다.’

    나는 녀석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만약 철용과 같은 팀이라면 내가 시미즈 사토히로를 잡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테고, 아니라면 나를 한참이나 낮게 보고 있을 터.

    내가 눈엣가시처럼 느껴지는 녀석은 이번 일을 이용할 가능성이 컸다.

    녀석을 무시하자, 천지훈은 곧장 아버지에게 말했다.

    “가주님! 천외천의 이름에 걸맞은 임무를 제가 추천해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잠시 고민하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말해 보라.”

    아버지의 허락에 천지훈은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가나에서 3번이나 레이드에 실패한 규격 외 던전을 처리해 줄 수 있냐는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아직 수락하기 전 단계인데 그 던전에 보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천지훈의 말을 들은 나는 미간을 와락 찡그렸다. 미션의 난이도 때문이 아니었다.

    A급을 넘어서는 던전은 모두 규격 외 던전이라고 불렸다. 정확한 난이도를 알 수 없는 던전.

    그것이 불만이었다.

    정확한 난이도를 알 수 없다는 것.

    이렇게 되면 녀석이 내 무력을 알고 있는지 아닌지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차라리 네임드 보스가 정해진 던전을 추천하지…….’

    짜증스러운 상황에 얼굴을 와락 구기자, 천지훈은 내 표정을 오해했는지, 의기양양한 태도로 아버지에게 말했다.

    “이름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입니다.”

    아버지는 잠시 말이 없었다. 미동조차 없는 무표정의 얼굴.

    한참을 고민하던 아버지는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허락하마.”

    * * *

    일정은 한 달 뒤였다.

    모든 것을 준비하고 가나까지 넘어가기에는 꽤 빠듯한 시간이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천우진을 우리 팀으로 끌어들일지, 아니면 숨김 패로 사용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던 탓이다.

    “어떻게 할래?”

    “뭘 어떻게 해.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당연히 가야지.”

    “그런 건 신경 쓰지 말고.”

    “제일 중요한 일인데 왜 신경을 안 써!”

    버럭 화를 내는 천우진을 보며 나는 말했다.

    “나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해.”

    “어이구, 그러셨어요?”

    “……뒤질래?”

    “어휴. 무서워서 오줌 지리겠네, 아주.”

    여전히 놀리듯 말하는 천우진에게 나는 주먹을 들어 보였다.

    그러자 천우진은 짐짓 심각한 척을 하며 내게 말했다.

    “가장 베스트는 내가 끝까지 음지에 숨어서 활동하는 거야.”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적을 소탕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팀의 전력은 보여 주지 않되 적의 전력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번 작전은 너 혼자 보낼 수 없어.”

    “그게 무슨 소리야?”

    “규격 외 던전이라며! 얼마나 강한 몬스터가 나올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그건 알고 있어.”

    “아는 새끼가 참 태평하다.”

    천우진 역시 내 무력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는 상태였다. 내가 인버스 타워 40층까지 내려가 이뤄 냈던 성장을 보지 못했으니까.

    천우진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도 기분 나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골려 주려다가 이내 마음을 접었다.

    농담 따먹기나 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으므로.

    심각한 표정으로 돌아온 나는 천우진에게 물었다.

    “음, 어쨌든 베스트는 네가 드러나지 않는 거지?”

    “그래, 근데 어쩔 수 없잖아. 난이도도 쉽지 않을뿐더러 천지훈 그 새끼가 무슨 수작을 부렸을지도 모르는데.”

    “그건 신경 쓰지 마. 알겠어, 그럼 너는 가문에 남아서 인력을 조금 더 물색해 봐.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야, 천도윤! 위험하다니까?”

    “아, 알겠다니까!”

    “이런 미친! 하…….”

    나는 한숨을 푹 내쉬는 천우진을 무시한 채 방을 빠져나왔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다.

    * * *

    천우진의 방을 빠져나온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팀을 모으는 것이었다.

    일단 천지현. 스승님의 딸을 찾아갔다.

    특성이 아닌 스킬을 물려받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었는데, 천지현은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인물이었다.

    나는 천지현을 빤히 바라봤다.

    “늦둥이야?”

    “응.”

    “음…… 대인관계는 완만한 편이고?”

    “아니!”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천지현을 보자 한숨이 푹 새어 나왔다. 걱정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날 것만 같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 팀 단위로 활동할 건데 할 수 있겠어?”

    “너랑 나만 팀 아니었어?”

    “아니야.”

    단호하게 말하자 천지현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며칠 이내로 한 명이 더 들어올 거야. 사이좋게 지낼 수 있지?”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던 천지현이 입을 열었다.

    “강해?”

    “응, 상당히.”

    단호한 대답에 천지현이 말했다.

    “그럼 좋아. 싸워 보고 내가 판단하지 뭐.”

    그 해맑은 웃음에 소름이 돋으며 오싹해졌다. 어찌 보면 스승님을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한 느낌이었다.

    닭살이 오소소 올라왔다.

    저번 만남부터 떨쳐 낼 수 없던 불안한 느낌.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천지현에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너에게 스킬을 걸 거야.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알았지?”

    “응.”

    나는 천천히 천지현에게 활력을 불어넣었다.

    눈에 띄게 밝아지는 천지현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천지현의 상태창이 보이기 시작했다.

    [천지현]

    특성: 천가의 피(전설), 광기의 도살자(전설)

    스킬: 흑운, 피의 연회

    천지현의 상태창을 확인한 나는 욕이 절로 나왔다.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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