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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55화 (55/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55화

55. 침투(4)

앳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탐욕스럽게 입술을 핥고 있는 놈의 발아래 스승님이 보였다.

피를 잔뜩 흘린 채 배에 구멍이 뚫린 모습.

그 모습을 보자, 생각하고 싶지 않던 일이 떠올랐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 천우진의 마지막 모습. 그 장면과 스승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 툭 끊어진 느낌이 들었다.

어느새 나는 녀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오직 녀석을 죽이겠다는 일념. 그 하나의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끄아아아악!!”

소리치며 달려가는 와중에도 나는 생각했다. 침착하라고, 저번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고.

그러나 뜻대로 되기란 쉽지 않았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녀석에게 전격을 퍼부었다.

낙뢰를 떨어뜨리고, 뇌룡을 불러일으켰다. 얼음으로 만든 송곳을 날리고, 맹렬하게 회전하는 흑운의 탄환을 쏴 댔다.

“죽어!!”

“크큭.”

악에 받친 내 외침에도 녀석은 웃고 있었다.

녀석은 자신의 혈통의 힘을 이용해 공격을 굴절시켰다.

시미즈가의 고유 혈통 능력 ‘왜곡’.

기형적으로 꺾인 뇌전이 바닥에 처박혔다.

얼음송곳은 서로 부딪혀 외형을 잃었고, 흑운은 애꿎은 바닥을 갈아 댔다.

나는 다시 한번 힘을 끌어모았다.

그러고는 녀석을 향해 다시 나아가려는데…….

“치, 침착하거라.”

희미하고도 짧은 음성이 들려왔다.

들릴 듯 말 듯 울려오는 나직한 음성.

힘겹게 밀어 올리듯 내뱉은 그 짧은 음성을 듣는 순간 거짓말처럼 머릿속이 맑아졌다.

한순간이었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계획이 잡히기 시작한 건.

슈슉-!

그 와중에도 녀석의 검은 나를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돌진하는 검.

가볍게 피하자, 녀석이 조금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나 나는 속지 않았다. 저것은 연기다.

역시나, 이내 미소 짓는 시미즈 사토히로. 녀석은 먹이를 갈구하는 허기진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표정을 속임수로 사각에서 기형적으로 꺾여 들어오는 공격.

그것마저 가볍게 피하자, 녀석은 그제야 진짜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알고 있었나?”

어색한 한국어가 날아들었다.

[오로치의 검]

전설급. 그중에서도 상급에 속한다는 이지를 가진 검. 미래의 정보를 알고 있던 내가 그것조차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녀석을 무시한 채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죽어 가는 와중에도 나를 위해 한마디를 쥐어짠 스승님이 눈에 들어왔다.

많이 야위었고, 힘들어 보였다.

나는 서둘러 품속에서 작은 병 하나를 꺼냈다. 출정하기 전 스승님께 건네받은 물건이었다.

-위급할 때 마시거라, 귀한 것이니 도움이 될 게다.

스승님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병뚜껑을 따 거친 숨을 내뱉는 스승님의 입에 흘려보냈다.

죽은 자도 살린다는 기묘한 물건이었지만, 장담할 수 없었다.

스승님께 맞아 사경을 헤맬 때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다. 그때는 뼈가 부러지고 피부가 찢겨 졌을지언정, 신체 훼손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스승님은 배에 완전히 구멍이 뚫린 상태. 살 수 있을지 없을지조차 불분명한 상태였다.

한 방울의 남김도 없이 엘릭서를 모두 털어 넣은 나는 사부님을 살폈다. 안색이 조금 밝아진 느낌이 들긴 했지만, 여전히 버거운 느낌이었다.

‘우선 지켜보자.’

무거워진 얼굴로 상황을 주시하고 있을 때, 듣기 거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뇌룡은 아닌데…… 음…… 아! 혹시 천도윤?”

녀석은 이미 망가진 장난감에는 관심도 없다는 표정으로 흑운에게서 눈을 떼고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새로운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듯 거칠고 탐욕스러운 시선이 내 몸을 훑었다. 기분이 더러웠다. 녀석은 나를 망가뜨리고 싶어 안달 난 모습이었다.

‘사람을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머리가 차게 식었다.

천천히 녀석을 향해 걸어갔다. 천우진에게 받았던 사념의 망토를 뒤집어썼다.

그러고는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기분으로 입술을 뗐다.

“곱게 죽을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망령화’를 사용합니다.]

[‘저주의 성배’의 디버프가 제거됩니다.]

디퍼프가 제거되었다는 신호. 새털처럼 가벼운 움직임이 그대로 느껴졌다. 주먹을 한번 쥐었다 편 나는 그대로 흑운의 힘을 운용했다.

“따라와!”

흑운으로 만든 태풍. 맹렬한 속도로 회전하는 태풍의 눈에 갇힌 사토히로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순순히 내 말에 따랐다.

마치 재밌는 놀이기구를 타는 어린아이의 모습 같은 모습. 나는 그가 짓고 있는 미소의 의미를 파악했다.

재밌어 보이니 어디 마음대로 해 보라고, 흥미가 떨어지기 전까지는 놀아주겠노라고…… 그리 말하는 것 같았다.

솟아 올라오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른 혈관이 더욱 솟구쳐 올랐다.

그러나 지금 당장 저 녀석을 공격할 수는 없었다.

뒤에 누워 있는 스승님을 지키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거리를 벌려야 한다.

나는 우마를 몰래 풀어 천태백을 지키게 한 뒤, 조금 더 이동했다.

밖으로 나가자 대나무밭이 무성한 숲속이 펼쳐졌다. 나는 그곳에서 조금 더 이동한 후에야, 흑운의 기운을 없앴다.

“지루해서 부숴 버릴 뻔했네.”

하품을 쩍 하는 사토히로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곧바로 공격하려는데, 시미즈 사토히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린 나이인 것 같은데 대단하네. 뇌전에 얼음에 흑운까지…….”

“…….”

나는 우뚝 멈춰 섰다.

“우리 가문에 안 들어 올래? 나이도 비슷하니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역겨운 소리였다. 저 녀석의 정체를 알고 있는 나에게는 더더욱.

“친구가 아니라 이 몸이 탐났던 거겠지.”

내 대답에 사토히로의 표정이 딱딱히 굳었다. 장난기가 모두 가신 얼굴. 나는 그 역겨운 속내를 다시 한번 들춰냈다.

“나이가 비슷해? 웃기지도 않는군.”

시미즈 사토히로의 입이 조금씩 벌어졌다.

“나를…… 알아?”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했나?”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사토히로는 다시 한번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내비쳤다.

그러고는 이내 다시 장난기 넘치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너…… 아무래도 죽어야겠다.”

“미친년.”

“내 본질도 알고 있어? 하도 남자 몸에만 들어가 살았더니, 나조차 잊고 있던 건데.”

재밌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시미즈 사토히로.

“그것만 알까?”

“크큭, 너 진짜 재밌다. 다른 가문의 아이라 건드리기 싫었는데 슬슬 탐나기 시작하네? 또 뭘 아는데?”

사토히로는 길게 나온 입술로 자신의 입 주변을 쓸었다. 그 탐욕스러운 시선이 거북하게 느껴졌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녀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꼬마야, 너 말고 또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녀석이 있니?”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전혀.”

그 대답에 사토히로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잘됐네. 너만 죽이면 되겠어. 몸뚱이가 아쉽긴 하지만…… 뭐, 어쩔 수 없지.”

“김칫국을 사발 채로 원샷하는군. 누가 준다고 했나?”

“크큭, 네가 원하지 않아도 몸을 뺏을 방법은 많단다. 아가야.”

“해 보던가.”

자신감 넘치는 대답에 사토히로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러고는 대나무 숲이 떠나가라 웃어 재끼기 시작했다.

“설마 너 그 망토…… 저주의 성배를 피하기 위함이 아니라……!”

“…….”

“꺄하하하! 재밌네. 아주 재밌어.”

미친 듯 웃어 대는 광녀와 더 이상 놀아줄 생각은 없었다. 나는 조용히 힘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시미즈가의 초대 가주 시미즈 사사노.”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네.”

마치 그 시절이 그립다는 듯이 하늘을 바라보는 녀석에게 말했다.

“당신만큼 살아온 누군가 말하더군, 인생은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고.”

영혼 수리공 김수민이 입버릇처럼 하던 이야기였다.

“참도 신빙성 있는 이야기…….”

“닥치고, 이제 남의 몸은 그만 뺏고 슬슬 뒤지는 게 어때?”

나는 녀석의 말을 끊고는 손 위에 떠 올랐던 뇌전을 날려 보냈다. 용 모양을 한 뇌전은 무서운 속도로 그녀를 덮치기 시작했다.

“크크큭, 통할 거라 생각했어?”

혈통 특성 ‘왜곡’을 이용해 공격을 흘린 사토히로가 말했다.

“응, 통해.”

하늘에서 다섯 마리의 용이 비처럼 쏟아졌다. 이번에도 역시 그에게 닿지는 못했다.

바닥에 처박히는 용들을 바라보며 나는 무심하게 걸었다.

이 정도의 공격은 통하지 않을 거라 이미 예상했다.

몸을 옮겨 다니며 약 100년을 넘게 살아온 시미즈가의 초대 가주 시미즈 사사노. 그녀의 격이 낮지 않을 거라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안 사실이었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더 해 보라는 듯이.

나 역시 웃었다.

손바닥 위에 작은 검은색 탄환을 둥둥 띄워 둔 채로.

총알처럼 쏘아져 나간 탄환이 그녀의 어깨를 꿰뚫었다.

“끄악!!”

“통한다고 했잖아, 내가.”

그녀는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마치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듯이.

“어, 어떻게?!”

“격은 당신만 높여 온 게 아니야.”

귀하디 귀한 령수를 한 방울도 빠짐없이 모조리 빨아들이며 쌓아 올린 격.

그 영혼의 격은 결코 낮지 않다.

게다가 녀석에게 쏜 탄환은 대악마 록스 대공을 물리칠 때 사용한 기술의 축소판이었다.

한낱 인간 따위가 막을 수 있을 리가…….

“너, 너!!”

그는 분해하는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무엇이 그리 분할까, 혈족의 몸마저 빼앗는 녀석이.

나는 혐오에 찬 얼굴로 사토히로를 바라봤다.

그 원색적인 비난을 담은 시선을 견디지 못한 녀석은 오로치의 검을 든 채 악을 쓰며 달려와 나에게 검을 내질렀다.

사선으로 깊게 쇄도하는 검을 피하며 물러나자, 거짓말처럼 검신이 늘어났다.

끝까지 따라붙기라도 하듯 나를 향해 미친 듯 날아오는 검.

나는 손을 뻗어 검 등을 쳐냈다.

콰앙-!

엄청난 굉음을 내며 오로치의 검이 땅바닥에 처박혔다. 녀석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녀를 향해 웃어 보이자, 사토히로는 표정을 왈칵 구기며 달려들었다.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칼을 휘둘렀다. 뱀처럼 흐물흐물해진 검신이 늘어났다 줄어들기를 반복하며 까다로운 공격을 맹렬하게 쏟아냈다.

그러나 무엇하나 내게 닿지는 못했다.

모두 막아내고는 다시 한번 탄환을 쐈다.

이번에는 허벅지가 꿰뚫렸다.

고통스러워하는 녀석에게 다가갔다.

“원래라면 천가가 졌겠지.”

사토히로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그러면서도 뱀 눈깔의 뒤에 숨어 비장의 한 수를 노리고 있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아버지는 천가의 피가 봉인 당한 채로, 너에게 몸이 뺏겨 처참히 유린당하다가 생을 마감했겠지.”

“……크큭.”

사토히로는 즐겁다는 듯이 킥킥거렸다. 나는 그 거북한 놈의 면상을 발로 찼다.

한참을 뒹굴며 날아간 사토히로에게 다시 다가가 말했다.

“좋아할 게 아니야. 그렇다 하더라도 이후 카토가와 시미즈가는 몰락의 길을 걸었을 테니까.”

“개소리, 우리가 이겼는데 왜…… 우리는 너희가 가진 ‘그것’을 빼앗고 더욱 승승장구했을 것이다!”

악을 쓰며 외치는 녀석에게 나는 단호히 말했다.

“고작 두 명에게 두 가문이 반파 당한 것도 승리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온전한 영혼을 갖추지 못했던 시한부에게 말이야.”

“그게 무슨…….”

그 순간 저 멀리서 폭음이 들려왔다. 지금껏 듣지 못한 거대한 굉음.

나는 그것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안타깝게도, 그 불안전했던 시한부마저 이제는 없네.”

나는 웃는 얼굴로 녀석을 바라봤다. 녀석은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

“이해가 안 가겠지. 이해하라고 한 소리 아니야.”

나는 손을 들어 검은 탄환을 만들어 냈다.

녀석은 공포에 질린 표정을 해 보였다.

“자, 잠깐!”

“늦었어.”

내 단호한 말에 시미즈 사토히로는 사색이 됐다.

하지만 순식간에 뒤바뀌는 얼굴.

“늦은 건 너야.”

그러나, 그 비열한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거?”

내 경동맥 앞에 우뚝 멈춰 선 오로치의 검. 이지가 깃든 기묘한 검은 내 목을 향해 뻗어 나가기 위해 무던히 애쓰는 중이었다.

사토히로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자신의 비장의 한 수가 막혔기 때문인지, 눈앞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신의 존재가 공포스러운 탓인지 알 수 없었다.

오로치의 검은 흑운의 힘을 푼 암살이를 보더니 화들짝 놀라 뒤로 몸을 내뺐다.

“내가 곱게 죽이진 않을 거라고 했지?”

양손 위로 검은 탄환 수십 발이 떠올랐다.

“자, 잠깐만!”

화들짝 놀란 사토히로는 다급하게 외치며 주위를 둘러봤다.

녀석이 생각하는 것은 뻔했다.

옮겨갈 육신을 찾고 있는 것.

사념의 망토를 뒤집어쓴 나의 육신을 뺏을 순 없었다. 찾아야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육신.

그러나 한창 전쟁 중인 본가를 벗어나 뒷마당에서 농땡이를 부리고 있는 녀석이 있을 리 만무했다.

허벅지를 꿰뚫렸음에도 사토히로는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고 있었다.

살고자 하는 집념이 무서울 정도로 묻어 나오는 뒷모습이었다.

그러나 나는 했던 말을 철회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검은 탄환이 맹렬한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달려가던 사토히로의 육신이 격렬히 춤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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