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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53화 (53/175)
  •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53화

    53. 침투(2)

    고즈넉한 저녁, 멀리 보이는 풍경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카토가의 녀석들이었다.

    무기를 정비하고, 대열을 맞추고, 필요한 물품들을 나르는 모습.

    누가 보더라도 큰 전투를 준비하는 군인의 모습이었다.

    그 장면을 조용히 지켜보던 나는 입을 열었다.

    “위급하면 신호하세요, 스승님.”

    “건방진 놈, 죽지나 말거라.”

    언짢은 표정을 지어 보인 스승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칠흑 같은 안개 속으로 모습을 감춘 흑운.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흑운으로 온몸을 감싼 후 스승님의 반대 방향으로 나아갔다.

    내가 맡은 일은 지정된 장소에서 조용히 대기하는 것이었다.

    모든 준비를 맞추고 신호탄이 터져 나올 때까지 숨을 죽이고 기회를 노리는 것.

    그것이 나의 첫 번째 임무였다.

    “……그나저나 살벌하네.”

    무기를 보관하는 창고 옆 거대하게 솟아난 마천루에 등을 기댄 나는 부지런히 움직이는 카토가의 녀석들을 바라봤다.

    형형하게 빛나는 눈빛. 하나같이 결연한 기운을 물씬 담아내고 있는 모습이었다.

    “워후.”

    나는 마른 숨을 푹 내쉬었다.

    그들의 눈빛을 보자, 점차 실감 나기 시작했다. 생과 사를 가르는 전장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살결에 와닿았다.

    송골송골 맺힌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실력이야 자신 있었지만, 적은 무려 아버지를 사지로 끌고 간 범인 중 하나였다.

    절대 방심할 수 없었다.

    “지금이야 손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처럼 보여도…….”

    전투가 시작되면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공명(共鳴).

    카토가가 가장 자랑하는 기술이자, 힘의 원천이 되는 기술이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제대로 갖춰진 싸움에서 카토가에 맞설 수 있는 자는 많지 않을 거라고…….

    카토가는 다수 대 다수의 싸움에서 압도적인 재능을 발휘하는 능력자들이었다. 공명하는 자가 주위에 많으면 많을수록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의 버프를 제공하는 능력.

    그것이 바로 카토가의 혈족 스킬 ‘공명’이었다.

    ‘아마 스승님은 이 사실을 알고 미리 차단했던 거겠지…….’

    흑운은 생각 없이 막 나가는 인물 같아도 전투에서만큼은 말도 안 되는 센스를 발휘하는 인물이었다.

    손쉽게 적장의 팔을 취할 수 있었던 이유도 아마 그것 때문이었으리라…….

    생각에 잠긴 나를 깨운 것은 돌연 날아든 욕설이었다.

    “빌어먹을 새끼들!”

    간단한 일본어였기 때문에 나 역시 알아들을 수 있었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그 뒤의 말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십중팔구 천가를 욕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역시 관두기로 했다.

    괜히 움직여 봐야 계획을 망칠 뿐이다.

    그들은 거대한 상자를 무기 창고로 옮기고 있었다.

    그 상자를 바라보던 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단순한 상자일 뿐일 터인데 왜 이렇게 위화감이 드는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피부에 와닿았다.

    “너무 긴장했나?”

    생각하던 순간.

    콰과광!!

    나는 자리를 박찼다.

    상자가 박살 나고, 돌연 날아든 검기가 나를 양단할 듯 독살스럽게 쫓아왔다.

    “어떻게……?”

    생각이 많아졌다. 어떻게 침투한 것을 눈치챈 것이지. 또 내 위치는 어찌 알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자에 모습까지 숨겨 가며 공격해 오는 것을 보면 단단히 준비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대체 어떻게……?’

    이 작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와 흑운,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와 같이 행동하는 철용과 가문에서 전면전 준비를 지휘하고 있는 작은아버지가 다였다.

    결론은 하나.

    ‘배신자가 있다!’

    역시나 반대편에서도 소동이 일었다. 흑운 역시 들킨 것이다.

    스승님의 실력을 생각했을 때 이렇게 쉽게 간파당할 리가 없었다.

    나는 미간을 구기며 하늘 위로 한 줄기의 신호탄을 쏴 올렸다.

    펑-!

    위치가 노출됐다는 신호였다.

    흑운 역시 준비해 놨던 은빛 섬광탄을 터트렸다.

    우리의 계획은 모두 노출되었다.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개자식이!!”

    욕지거리를 내뱉고는 날아오는 검격을 모두 피해 냈다. 실력으로 보아 상자를 옮기는 녀석들은 별 볼 일 없었지만, 문제는 상자에서 나온 이었다.

    말총머리에 눈이 쫙 찢어진 그는 어색한 한국말로 나에게 말했다.

    “어려 보이는군.”

    그러고는 허리춤에 찬 칼을 뽑아 들었다.

    “지는.”

    콰과광-!

    나는 번개를 그 자리에 내리꽂았다.

    순식간에 상자를 옮기던 검사 넷이 기절했다.

    내 공격을 어렵지 않게 막은 눈 찢어진 검사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뇌룡?”

    “뭐? 이게 뒤질라고.”

    나는 다시 한번 전격을 내리꽂았다. 조금 전 공격의 두 배의 힘으로.

    녀석은 힘겨운 표정으로 겨우 공격을 버텨 냈다.

    “뇌룡, 당신이 왜……?”

    어찌 된 영문인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을 짓는 그를 보자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새끼, 여기까지 관련이 있었던 거야?”

    어쩌면 아버지의 죽음에 천지훈 그 새끼가 연관이 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지만, 실제로 들으니 헛숨이 새어 나왔다.

    또한 철용과 작은아버지 중 한 명은 기밀을 천지훈에게 누출시킬 만큼 가까운 사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나의 표정은 싸늘하게 식어 갔다.

    그 무거운 얼굴로 카토가의 녀석을 날려 버렸다.

    투쾅!

    일검을 뽑기도 전에 일어난 일.

    녀석은 검 한 번 제대로 놀려 보지도 못한 채 기절했다.

    “몬스터가 아닌 걸 다행으로 여겨라.”

    몬스터라면 힘 조절 따위 하지 않았겠지만, 저들은 인간이었다. 어쩔 수 없이 손속에 사정을 둘 수밖에 없었다.

    나는 카토가의 중앙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칼로 찌를듯한 살기를 풀풀 풍기며 한 무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자신들의 무기인 칼을 모두 꺼내든 상태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공명.

    그들이 자랑하는 공명을 전개한 후였다.

    찌르르 울리는 검과 검 사이의 기운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동시에 연쇄 작용을 하듯 그들의 힘은 폭발하듯 커지고 있었다. 그 믿을 수 없는 강대한 힘이 오직 나를 향해 뿜어져 나왔다.

    “어째 계획대로 되는 게 없냐.”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약 15명의 검사를 대동한 채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저 인물. 틀림없이 카토 미츠히로가 분명했다.

    카토가의 차기 가주 후보이자 무력만큼은 이미 가주인 노부유키와 비등한 정도라 평가받은 인물.

    그가 나를 죽이러 오고 있었다.

    공명으로 인해 폭발적으로 늘어난 그의 살기는 온몸의 털을 쭈뼛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대악마에 비하면…….’

    나는 위협적인 살기를 담담하게 받아 내며 생각했다.

    -모든 일이 틀어졌을 때는 딱 두 가지만 하면 된다.

    스승님의 말씀이었다.

    -죽거나…… 쓸어버리거나.

    피식.

    역시 스승님다운 생각이었다.

    계획은 시작하자마자 틀어진 상태였다. 아니, 이미 시작하기 전부터 틀어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스승님이 노부유키의 팔을 취하면서부터 이미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상태였으니까. 애초에 전면전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몰랐다.

    나는 그렇게 위로하며 한발 한발 나아갔다.

    어차피 천지훈, 그 새끼가 연관되어 있었다면 이 녀석들 역시 우리 가문을 멸망시키려 했던 장본인이었다.

    생각이 바뀌었다.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기로.

    나는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작게 읊조렸다.

    “죽거나, 쓸어버리거나…….”

    미츠히로와 그 주변의 검객들이 모두 같은 자세를 취한 채 나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아아악!!”

    쿠구구구.

    기운이 진동하며 폭발했다.

    15명의 검객과 미츠히로의 기운이 합쳐져 마치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고 있었다.

    긴밀하고, 강대했으며, 위협적이었다.

    그 놀랄만한 광경에 나는 작게 감탄했다.

    그러나 그뿐.

    나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당연히 쓸어버리는 쪽이지.”

    그들의 머리 위로 수십 마리의 용이 쏟아져 내렸다.

    * * *

    쿠구구구구.

    콰르르릉!!

    흑운과 대치 중이던 노부유키는 놀란 눈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수십 마리의 뇌룡이 바닥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뇌룡이 왜……?”

    의문을 표하는 노부유키를 본 천태백은 눈빛을 빛냈다.

    “한눈팔 여유가 남아 있나 보지? 그러다 남은 한쪽도 떨어질 텐데.”

    “흥, 허세는…… 네놈 정도야 한쪽 팔로도 충분하다.”

    대답한 노부유키는 미리 시전해 놓았던 공명의 힘을 더욱 끌어올렸다.

    천태백은 노부유키가 힘을 끌어올리기 전에 쇄도했다.

    깡-!

    “크하핫! 큰소리치더니 이게 다인 것이냐!”

    “닥치거라, 애송이 놈!”

    말은 하수를 대하듯 여유 있게 했지만, 흘러가는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결투는 얼마 전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띠고 있었다.

    흑운은 확실히 밀리고 있었다. 노부유키에게!

    노부유키는 주변으로 검사들이 하나, 둘 모여들 때마다, 놀랄 만한 속도로 강해지는 중이었다.

    검사 스무 명이 모였을 때는 흑운과 대등한 실력을 보였고, 서른 명이 넘었을 땐,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막, 추가 인원이 모여 공명을 시작했다.

    노부유키의 얼굴에 자신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끝이군.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 산짐승의 먹이로 던져 주마!”

    카토가의 공명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힘을 내고 있었다. 북처럼 둥둥거리는 공명음이 천태백의 신경을 자극했다.

    그러나 천태백은 압도적인 열세 앞에서도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았다.

    “끌끌, 이렇게 약점 많은 능력을 어디에 쓸꼬.”

    “뭐라는 게냐! 이 미친놈이! 가망이 없으니 센 척이라도 해야 성이 풀릴…… 어엇!?”

    그 순간, 노부유키는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자신의 등 뒤로 생긴 검은 막.

    그것이 공명의 흐름을 완전히 끊어 버렸다.

    흑운으로부터 고립된 인원은 15명이었다. 당황한 노부유키는 서둘러 검은 막을 찢어발겼다.

    “끄아아악!!”

    “크아악!!”

    하지만 그사이, 천태백은 카토가의 검사들을 다섯이나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었다.

    남은 검사들은 35명.

    막이 없어지며 공명의 힘은 돌아왔지만, 노부유키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이고 이런 일을 반복한다면…… 자신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끌끌, 네다섯 번만 더 하면 되겠구나.”

    역시나 흑운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다시 한번 막을 이용해 공명을 일부 단절시켰다.

    그러나, 이번엔 노부유키의 대응이 더 빨랐다.

    검은 막을 찢어발기는 게 아닌, 막 뒤로 돌아가 단절된 인원을 없애려는 흑운을 베었다.

    쏴악-!

    노부유키는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미친!”

    흑운은 자신의 공격을 막을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검은 막 뒤로 돌아간 것이다.

    노부유키의 칼이 다시 한번 휘둘러졌다.

    검은 막이 찢기고, 모습을 드러낸 건 널브러진 다섯의 시체와 가슴이 깊게 베인 흑운의 모습이었다.

    천태백은 자신의 특성 천가의 피를 믿고 죽을지도 모르는 공격을 받아 내며 돌진한 것이었다.

    기가 막힐 정도로 무모한 도전.

    그러나 흑운은 당연한 일인 양, 여유 넘치는 모습으로 웃고 있었다.

    “끌끌, 얼마 안 남았구나.”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흑운은 웃고 있었다. 노부유키는 오싹한 느낌에 몸을 잘게 떨었다.

    “이 미친 새끼가!!”

    악을 쓰며 달려들자,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몸을 내주고, 적을 베었다.

    다시 달려들었다.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어느새 검붉은 피가 흑운의 얼굴을 모두 덮었다. 그러나 그는 역시 웃고 있었다.

    “슬슬 맞을 만하구나.”

    어느새 몰려들었던 40명의 검사는 모두 목숨을 잃은 뒤였다.

    그 귀신과도 같은 스산한 음성에 노부유키는 공포를 느꼈다.

    “이젠 어떻게 할 거지?”

    얼어붙을 듯 차가운 흑운의 음성이 들렸다.

    일순, 죽음의 공포가 노부유키를 집어삼켰다. 노부유키는 생각해야만 했다. 또 한 번 살아남기 위한 묘책을!

    “저주의 성배를 발동해!!”

    노부유키가 악을 쓰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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