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51화
51. 전조(5)
“무슨 일이시죠?”
나의 요청으로 따로 이야기를 나누게 된 박한별은 경계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저번 사건으로 무리한 요구를 할 거라 생각했는지,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요즘 무기 필요하지 않으세요?”
뜬금없는 내 물음에 박한별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떻게?”
“저번에…….”
“아!”
박한별은 저번 던전 브레이크 사건으로 무기가 많이 손상된 상태였다.
다름 아닌 암살이와의 결투 중, 생긴 사건.
박한별 역시 그때의 일을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많이 상해서 바꿔야 할 것 같기는 한데…… 그런데 그건 왜?”
“선물 좀 드리려고요.”
“네?”
박한별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대체 왜 그런 짓을 하느냐는 표정이었다.
나는 밝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말했잖아요. 우리 팀에 들어왔으면 한다고.”
일순, 박한별의 시선이 싸늘하게 식었다.
“말씀드렸을 텐데요. 저는 우마 길드 외에는 전혀 관심 없습니다.”
순진해 보이던 좀 전 상황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그 모습에 더욱 확신이 들었다.
아끼는 사람들을 절대로 배신하지 않겠다는 저 마음.
욕심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배신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나의 대답에 박한별은 이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동료들을 버리고 자신의 밑으로 들어오라는 말인데, 배신하라는 말이 아니라니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길드 전체를 인수하겠습니다.”
박한별의 표정이 굳어졌다.
“청룡 길드의 지창민과 같은 이야길 하는군요.”
그녀의 얼굴 저변에 깔린 감정은 경멸이었다.
나는 서둘러 오해를 풀어야만 했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그녀가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지원만 해 드리겠다는 겁니다. 하고 싶은 일, 맘대로 하시죠. 우마 길드가 더욱 자유로워지도록 돕겠다는 말입니다.”
당연하게도 그녀는 믿지 않았다.
“믿기 어렵군요.”
“물론 원하는 것은 있습니다.”
그녀는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손가락 두 개를 편 채 그녀를 향해 내밀었다.
그녀는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이게 뭐죠?”
“두 번. 일 년에 딱 두 번만 박한별 씨가 저희 팀에 들어와 일을 도와주시면 됩니다.”
“그게 다인가요?”
“네.”
그녀는 여전히 의문스러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내 진위를 떠보는 듯한 태도.
나는 그녀에게 확신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각서를 쓰라면 쓰고, 계약금을 원하면 드리겠습니다.”
내 제안에 한숨을 푹 쉰 그녀가 물었다.
“비하하는 것은 아니고 아까부터 너무 궁금해서 묻는 건데…… 당신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고 쳐도 조형집 직원이 저희한테 뭐를 지원해 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제가 조형집 직원 팀에 들어가서 뭘 한다는…….”
박한별은 차마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내가 내민 명패.
그 의미를 단번에 알아본 것이다.
나는 한참이나 입을 벙끗거리는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을 조형집 직원의 팀이 아닌 천가의 직계, 천도윤의 개인 팀으로 들어오라는 겁니다.”
그녀는 입을 쩍 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그 당시 통성명도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게 무슨…….”
한참이나 믿지 못하겠다는 태도를 보인 그녀는 몇 번이고 명패를 확인하고 난 뒤에야, 힘겹게 입을 열었다.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넋이 나가 있는 상태였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준비한 한 방을 날렸다.
“천가의 이름을 등에 지고 맘껏 날뛰는 우마 길드. 괜찮지 않나요?”
그녀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아마 우마 길드의 미래를 상상하고 있으리라.
“지원 없이 모든 것을 혼자 이루겠다고 해도 말리지 않겠습니다. 그간의 성과가 천가의 이름에 묻혀 폄하될 것을 걱정한다면 세상에 알리지도 않겠습니다. 하지만!”
“…….”
“위기의 순간에 손 내밀 보험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말 안 해도 아실 거라 믿습니다.”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 사건을 통해 그녀는 확실히 느끼고 있을 터였다.
마음먹고 대형길드가 나서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내가 손써 두긴 한 탓에 직접적인 괴롭힘은 없었겠지만, 그녀가 느꼈을 압박감과 두려움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때 만약 천가라는 뒷배가 있었더라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테지.
말하지 않아도 그녀의 생각이 들리는 느낌이었다.
잠시 후, 심각해진 얼굴을 한 박한별이 물었다.
“정말…… 저희 길드에 바라는 게 없습니까?”
“예.”
“믿을 수 없어요.”
“하…….”
정말이지 의심 많은 여자였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는 부분이었다. 그만큼 행동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한다는 말이었으니까. 한편으론 그녀에 대한 신뢰가 더욱 쌓이는 순간이었다.
“각서라도 쓸까요?”
“당신은 천가잖아요. 그깟 각서쯤은…….”
천가의 위치를 잘 알고 있다는 듯한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가라면 그녀의 말처럼 그깟 각서 따위, 없는 일로 만드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러나 그 부분 역시 생각했던 범위 안이었다.
나는 짐짓 심각해진 말투로 물었다.
“천가가 정말 우마 길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자존심을 긁는 문제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편이 그녀를 설득하기에 더욱 쉬운 방법일 테니.
역시, 그녀는 날카로운 눈매로 나를 노려봤다.
“무슨 뜻이죠?”
나는 겨울바람 같은 그녀의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침착하게 생각을 전했다.
“저는 솔직히 말해, 우마 길드 전체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당신이 필요한 거지.”
박한별은 자존심 상한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자신보다 길드가 무시 받는 느낌이 더욱 참기 힘들어 보이는 그녀였다.
“저 역시 날고 기는 형제들 사이에서 투명 인간 취급을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뜬금없이 날아온 인생사에 그녀는 당황한 눈치였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정체를 알게 된 이상 내가 처한 가정 환경을 떠올리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을 테니까.
“수없이 핍박받고 무시당했죠.”
대한민국의 대표 가문 천가.
가주의 막내아들 천도윤이 가문에서 내쫓긴 일화는 유명한 것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다들 어느 정도 제 눈치를 보기 시작했죠.”
그녀는 조금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가문에서 쫓겨난 게 아니냐 묻는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흔들고는 말을 이어 갔다.
“저를 괴롭히던 이들이 저를 향해 조금씩이나마 아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말 한번 걸지 않던 형이 말을 걸기 시작했고요.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 아십니까?”
그녀는 조용히 나를 바라봤다. 궁금하다는 표정과 연민이 동시에 묻어 나오는 오묘한 얼굴이었다.
“강해졌습니다.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그녀의 눈이 조금 커졌다.
“자신이 강해지면, 팀도 강해지는 법입니다.”
이쯤 되면 그녀 역시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들었으리라.
복잡한 표정의 그녀에게 나는 한발 다가서며 말했다.
“제가 당신을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그것도 지금 당장.”
“그게 무슨…….”
나는 웃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당장이라도 놀라 까무러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제 제안을 받아들이면 보여 드리죠.”
“……정말 제안은 그게 다인가요?”
그녀는 여전히 생각이 많아 보였다.
당장 믿기는 힘들다는 말투.
길드의 미래가 달린 일이었으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예, 단 제가 제시하는 임무는 쉬운 임무가 아닐 겁니다.”
“그건 뭐…….”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말투였다.
그 모습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그리 가벼운 문제가 아닐 텐데…….
그녀가 탐나는 인재인 것은 맞지만, 나 역시 땅 파서 장사할 생각은 없었다.
그녀에게 요구할 것은 상상 이상의 난이도를 자랑할 것이었다.
당장 구상해 놓은 몇 가지만 보더라도…….
고개를 작게 저은 나는 짐짓 심각한 얼굴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요.”
“그 말은…….”
“예, 목숨을 걸어야 할 때도 있을 겁니다.”
“…….”
그녀는 입을 헙 다물었다.
헌터 일이라는 게 모두 목숨을 내걸고 하는 일이긴 했지만, 천가의 직계가 이리 말하니, 그 무게감에 덜컥 실감이 났던 거겠지…….
나는 놀란 표정의 그녀를 손을 올려 진정시켰다.
채찍을 줬으니, 이젠 당근을 줄 차례였다.
“단, 한 가지는 확실하게 보장하죠.”
“…….”
눈앞에 나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예비 팀원이 있었다. 나는 흘러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은 뒤,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한민국 3대 길드, 그 어떤 곳도 당신네 길드를 함부로 대하지는 못할 겁니다. 아니, 완전히 반대의 입장이 되겠죠.”
내 제안에 그녀의 입이 조금씩 벌어졌다.
“그 말은…….”
“예, 우마 길드를 대한민국 1등으로 만들 겁니다.”
그녀의 동공이 크게 요동쳤다.
그 모습에 나는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여기서 놀라면 안 되는데…….’
등에 메고 있던 값비싼 아공간 배낭을 바닥에 내려놨다.
“제가 말했죠. 지금 당장에도 강하게 만들어 드릴 수 있다고.”
나는 천천히 배낭을 열기 시작했다. 입가가 씰룩대는 것을 겨우 억눌렀다. 그녀는 여전히 경악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물건을 받아 들고는 몇 배나 눈이 커질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서둘러 손을 넣어 가방 안을 뒤적거리던 나는 마침내 원하는 물건을 찾을 수 있었다.
망설임 없이 손에 집힌 그것을 빼 들었다.
“……!”
나는 그녀의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입이 벌어지지 않을 리가 있나…….
상세 정보를 확인했던 나조차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는데…….
“이건……!?”
스킬도 없이 일신의 무력만으로 체코의 프라하를 점령했었던 공포의 존재 데스나이트와 호각을 이룬 실력자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자, 원래의 무기 형태를 그대로 지닌 새로운 무기.
내 손에는 영혼 수리공 김수민에게 받았던 아이템 ‘도깨비방망이’가 들려 있었다.
원뿔 모양의 돌기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도깨비방망이의 가치를 단번에 알아본 그녀는 처음으로 탐욕스러운 눈을 내비치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도깨비방망이를 그녀에게 넘겼다.
더 욕심을 내라고. 안에 들어 있는 그놈의 진짜 가치를 확인하고는 까무러쳐 보라고.
“만져 보세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아이템을 넘겨받았다. 그러고는 이내 턱이 빠질 듯 입을 떡 벌렸다.
확인한 것이다.
도깨비방망이 안에 달린 옵션과 자신에게 꼭 필요한 스킬을.
사용할 무기를 잃은 그녀에게 도깨비방망이는 가장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가 이 아이템을 잘 다룰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몇 배는 강력해질 거라고.
그녀 역시 이 무기를 들고 싸우는 자신을 상상하는 중인지,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녀에게 말했다.
“계약금입니다.”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도깨비방망이를 내려놓았다. 그러나 아쉬움을 잔뜩 묻힌 얼굴을 하고서는 영 설득력이 없는 행동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말했다.
“리더가 강해지면 팀 전체가 강해지는 법입니다.”
그 한마디에 그녀의 동공이 지진 난 것처럼 흔들렸다.
“강해지세요. 천가의 이름을 등에 업고.”
그녀의 손끝이 보였다.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떨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내 주먹을 꼭 쥐었고, 무기를 있는 힘껏 그러쥐었다.
그것이 그녀의 대답이었다.
나는 작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저희 팀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그렇게…….
천외천(天外天)의 돌격대장 야차(夜叉) 박한별이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