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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50화 (50/175)
  •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50화

    50. 전조(4)

    산전수전 다 겪으며 가문을 일구어 온 노부유키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최선의 판단을 내렸다.

    그는 거리를 벌리며 온 힘을 모았다.

    그러고는 바깥 세계와 자신을 단절시킨 검은 장막을 향해 퍼부었다.

    “끄아아아악!!”

    동시에 왼쪽 팔이 갈려 나갔다.

    하지만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지금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으니까.

    다행히 흑운의 힘을 강력하게 몸에 두르고 있던 탓인지, 공간을 단절시키던 흑운을 어렵지 않게 벨 수 있었다.

    응축된 힘은 흑운을 뚫고 밖으로 터져 나갔다.

    밖에서 근무 중이던 경비원들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뭐, 뭐야!”

    “저쪽은 회의장 쪽인데? 설마……!?”

    경비원들과 수호 단원들은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 * *

    회의장 안에서는 흑운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구나.”

    “흥, 네놈이 도망갈 곳은 이제 없다!”

    “애송이 놈들이 암만 모여 봐야 애송이들이지.”

    비릿하게 웃은 천태백은 소용돌이치는 흑운의 기운을 거둬들였다.

    그러고는 바닥에서 자신의 기운에 갈려 너덜너덜해진 노부유키의 왼팔을 집어 올렸다.

    그러고는 비릿한 미소를 보이며 노부유키를 바라봤다.

    “전리품으로 딱이군.”

    노부유키의 눈에 분노가 가득 찼다.

    “이 쳐 죽일……!”

    노부유키의 분노는 끝을 맺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경고하마.”

    싸늘한 천태백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노부유키는 칼날로 찌를듯한 싸늘한 음성에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

    “엉뚱한 생각 하지 말거라! 다음번에 만나게 됐을 때는 네놈 왼팔이 아니라 모가지를 가져갈 테니.”

    소름 끼치는 경고를 날린 천태백은 그대로 흑운을 몸에 둘렀다.

    그러고는 짙은 웃음을 내비쳤다.

    “명심하는 게 좋을 게야.”

    흑운이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던 노부유키는 고성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악!!”

    도착한 수호 단원들은 경악하며 노부유키에게 다가갔다.

    “가주님!!”

    “가주님, 팔이…….”

    바라본 가주의 왼쪽 손은 믿을 수 없게 변해 있었다. 팔꿈치 아래쪽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검에 베인 상처는 아니었다. 마법에 당한 상처도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무언가에 찢겨진 모양새였다. 난잡하게 베여 있는 상처를 지혈하기 위해 수호단원 중 하나가 다가갔다.

    “치료하시지요. 가주님.”

    노부유키는 수호 단원을 노려보다가 뒤로 물렸다.

    그러고는 자신의 상처를 바라봤다.

    피가 쉬지 않고 떨어지고 있었다.

    “……!!”

    고통스러운 상처보다 더욱 쓰린 것은 조금 전 겪은 치욕스러운 패배였다.

    흑운, 그 녀석은 카토가에 홀로 침입했다.

    “얼마나 카토가가 천가에게 얕잡아 보였으면…….”

    노부유키는 치를 떨었다. 천가가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보다 굴욕적인 취급을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분노로 온몸이 떨리는 기분이었다. 씻을 수 없는 치욕에 노부유키는 이성을 잃었다.

    “끄아아아악!!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개새끼들이……!”

    어느새 발걸음을 돌려 도착한 미츠히로가 보였지만, 체통 따위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홀로 침투한 적군에게 수장의 팔이 잘렸으니 이 얼마나 치욕스러운 일이냔 말이다!

    노부유키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당장 시미즈가에 연락해!!”

    가주의 감정적인 행동에 제동을 건 것은 다름 아닌 차기 가주 미츠히로였다.

    “가주님,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진정 좀 하고 말씀해 보시죠.”

    “진정?”

    차가운 시선으로 노려본 노부유키는 분노의 화살을 미츠히로에게 넘겼다.

    “네놈은 정녕 느끼지 못했느냐?”

    “그게 무슨……!?”

    “병신 같은 놈. 우리 말을 엿들은 쥐새끼 하나 발견하지 못하다니.”

    미츠히로를 힐난한 노부유키는 자신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 또한 흑운의 기운을 회의장을 나가기 전에서야, 미약하게 느낀 것이 고작이었으니 아직 성장 중인 미츠히로가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노부유키는 노성을 멈출 수 없었다.

    분기를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분출해야만 했다.

    그래야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문에 천가의 쥐새끼가 들어왔는데도 몰랐단 말이냐!!”

    당황한 미츠히로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가주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이내 정신을 차린 뒤 소리쳤다.

    “전 병력! 가문 안을 샅샅이 뒤져라!!”

    대기 중이던 병력은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뒤늦은 명령에 노부유키의 눈살은 더욱 찌푸려졌다.

    “되었다. 쓰레기 같은 놈!”

    그리 말하고는 노부유키는 자신의 검을 다시 들어 올렸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결연한 표정이었다.

    뒤늦게 도착한 가문의 사람들은 노부유키의 행동을 보고 가슴을 졸였다.

    경비 혹은 수호 임무에 실패한 자신들에게 책임을 물으려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공포에 떨며 눈을 질끈 감거나 무릎을 꿇으며 용서를 비는 병사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평생 같던 찰나의 시간이 흘렀다.

    서걱-!

    그러나 무심하게도 소름 끼치고도 깔끔한 소리가 카토가 안에 울려 퍼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

    눈을 질끈 감은 카토가의 사람들은 칼끝이 향한 곳을 확인하고는 경악했다.

    검 끝이 향하는 곳은 자신들이 아니었다.

    “검을 잡는 손은 모든 게 온전히 갖추어 있지 않다면 어차피 무용한 것.”

    바닥에는 피 묻은 팔 한 짝이 나뒹굴고 있었다.

    “나는 남은 팔로 외로이 다시 경지를 노릴 것이다.”

    노부유키의 말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너덜거리던 자신의 왼팔을 잘라 낸 노부유키가 선언하기 시작했다.

    일순, 카토가의 사람들의 눈빛이 돌변했다.

    “나를 따라오려거든 검을 들 거라.”

    척-!

    척-!

    모두가 격동하는 그의 의지에 맞춰 동시에 검을 빼 들고는 하늘을 향해 치켜세웠다. 그 울림이 어찌나 큰지 대지가 진동하는 느낌이었다.

    카토가가 자랑하는 공명(共鳴)이 청명한 하늘을 찢어발길 듯 솟구쳤다.

    그 웅장한 모습을 조용히 바라본 노부유키는 생각했다.

    주변에 공명을 이루는 자가 스물만 있었다면 떨어져 나가는 건 나의 팔이 아니라 네놈의 모가지였을 것이라고…….

    카토가의 가주 노부유키는 외쳤다.

    “천지 분간 못 하는 천가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자!”

    “와아아아!!”

    대지가 흔들릴 듯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공명으로 인해 사그라들 줄 모르는 힘이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한참이나 함성은 지속됐다.

    그리고 마침내 우레와 같던 함성이 잔잔해졌을 때, 노부유키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카토 미츠히로.”

    “예, 가주님.”

    “시미즈가에게 연락해라. 그것을 사용하겠다고.”

    미츠히로는 조금 놀란 눈으로 노부유키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가주님.”

    그렇게 조금씩.

    전쟁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 *

    아버지가 말한 기간이 어느덧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전에 할 일을 모두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일본에 다녀온 순간, 가문의 정세가 어떻게 흔들리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겪었던 전생은 몰래 잠입했던 아버지의 패배로 모든 것이 마무리 지어지는 그림이었다.

    이번에도 그렇게 흘러가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나는 이번 작전,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시킬 생각이었다.

    “이때부터였지…….”

    아버지의 죽음으로 천가가 기울기 시작했던 때가.

    가문의 몰락을 막기 위해서는 이번 작전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또한, 이 작전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우리가 일본에서 빼앗아 올 아이템.

    그것만 있다면 가문의 몰락을 확실히 틀어막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나는 조금씩 의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임무.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시킬 생각이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버지에게 받았던 윤식 조형 근처의 연습장에서 우마와 암살이를 불러, 합을 맞추는 일이었다.

    행동 요령을 숙지시키고, 우리만의 신호를 만들었다. 긴박한 상황에서 분명히 도움이 될 만한 것들로만 추려, 녀석들의 머릿속에 때려 박았다.

    내가 일일이 명령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유 의지를 갖고 체계적으로 움직인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터였다.

    나는 한참이나 녀석들을 교육한 후, 윤식 조형으로 향했다.

    “영감, 완성됐어?”

    “그래.”

    땀을 훔치며 박윤식 영감이 대답했다.

    영감은 영 탐탁지 않아 하는 얼굴이었다.

    “왜! 잘 만들었는데.”

    “허, 내 살다 살다 이런 걸…….”

    영감의 손끝에서 완성된 것은 다름 아닌 얼마 전 우마 길드의 박한별이 의뢰했던 길드의 동상이었다.

    박윤식 영감은 생전 이런 캐릭터를 만들어 본 적이 없어, 조금 허망하다고 느끼는 표정이었다.

    반면 나는 썩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내가 짠 도안을 그대로 만들었으니, 영락없는 우마 그 자체였다.

    우마의 대형 버전이랄까? 나는 그것을 보며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소환수 ‘우마’가 거대한 우마 길드의 동상에 질투를 느낍니다.]

    [소환수 ‘우마’가 볼과 가슴을 부풀립니다.]

    반지 안에서 우마가 날뛰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커 보이고 싶어 몸에 바람을 넣는 상상을 하자, 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다.

    나는 저 녀석도 소환수로 만들어 볼까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 커 봐야, 움직임만 둔해지고 제약만 많아질 뿐이었다.

    뇌속성은 빠르고 강력한 공격력이 무기였다. 몸집 역시 작고 빠른 편이 훨씬 유리했다.

    [소환수 ‘우마’가 헤실거리며 웃습니다.]

    내 생각을 읽었는지, 녀석은 전 뒤집듯 태도를 바꿨다.

    “으이그.”

    나는 작게 미소 지으며 박윤식 영감에게 말했다.

    “내가 전달해 줄게. 볼일도 있고.”

    “괜찮겠냐?”

    “그럼, 당연하지.”

    나는 미소 지으며 작업실에서 차 키를 가져왔다.

    크레인을 이용해 동상을 조심히 옮기고, 트럭 위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러고는 시동을 걸었다.

    “조심히 다녀와. 잔금 확실히 받아오고.”

    “누가 잔금을 현금으로 줘, 계좌로 쏘지.”

    “어쨌든.”

    “알았으니까, 빨리 다녀올게.”

    “그래.”

    박윤식 영감은 손을 훠이훠이 저으며 뒤돌아섰다.

    나는 사이드미러로 그 모습을 보고서는 웃으며 출발했다.

    우마 길드는 경기도권을 중심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그리 먼 곳이 아니었다.

    미리 연락하고 온 터라, 우마 길드의 관계자들이 나와 있었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우마 길드의 마스터 박한별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머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반가워요. 오랜만이네요.”

    “네…… 그러네요.”

    인사를 받은 박한별의 시선은 내가 아닌 동상에 꽂혀 있었다.

    나머지 길드 직원들 역시 동상에 시선이 머물러 있었는데, 박한별의 시선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그들의 시선은 경악이었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

    좋아하는 것은 오직 박한별뿐이었다.

    “어디에 세워 두면 될까요?”

    묻자, 박한별은 신난 표정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이쪽이요!!”

    그 모습에 나는 또 한 번 미소가 흘러나왔다.

    “잘 나왔죠?”

    “네, 너무 마음에 들어요!”

    손뼉까지 짝 치는 박한별을 바라보고는 동상을 옮겨 줬다.

    위치까지 정확히 조정하고 나서야, 나는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중형 길드치고는 꽤 거대한 부지를 지닌 길드였다.

    “멋지죠?”

    옆을 돌아보니, 아는 얼굴이 있었다.

    리더 박한별보다 더 리더 같은 모습을 보이던 팀장 김지선.

    “네, 멋있네요.”

    “길드 동상도 멋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요.”

    김지선은 아쉬움에 입맛을 쩝 다시는 중이었다. 아쉽긴 하지만 이미 결정된 사안이니, 포기했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런 김지선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우마는 강합니다. 당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요.”

    “예?”

    김지선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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