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48화
48. 전조(2)
“꺼지거라!”
“아, 영감~~!”
“꺼지래도!”
오랜만에 찾은 박윤식 영감은 단단히 삐져 있는 상태였다.
하긴, 정말 오랜만에 찾아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별일 없었어?”
천연덕스럽게 묻자, 영감은 여전히 눈을 흘기며 나를 노려봤다.
“저는 무단결근만 삼 개월인 무책임한 직원은 둔 적 없습니다만…… 누구십니까?”
아예 나를 모른 척하는 영감에게 나는 서둘러 엉겨 붙었다.
“아, 내가 늦을 수도 있다고 했잖아! 영감.”
“넉넉잡아 한 달이라더니……! 이놈이! 객사한 줄 알고 장례 치를뻔했다, 이놈아!”
당장이라도 나를 때릴 듯 몽둥이를 들고 달려오는 박윤식 영감을 보자, 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아, 미안해, 영감. 그나저나 이상한 사람들 안 왔지? 괴롭히는 사람이라거나…….”
내 물음에 몽둥이를 들고 달려들던 박윤식이 우뚝 멈춰 섰다.
“……네놈이 한 짓이냐?”
“뭐가?”
영감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스토커처럼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녀석들 말이다!”
전혀 엉뚱한 곳을 보고 있었지만, 누군가 윤식 조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나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뭐? 누가 스토킹을 해? 어디!!”
“……맞구만.”
박윤식 영감은 곧장 나를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나는 가볍게 피하며 말했다.
“아니, 좋잖아! 보디가드도 생기고!”
“보디가드는 무슨……! 최소한 영업 방해는 하지 말아야 할 것 아니냐!”
“그게 무슨 소리야?”
놀라서 묻자, 영감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저기 좀 봐라.”
박윤식 영감의 손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넋이 나간 얼굴로 터벅터벅 들어오고 있는 남성이 보였다.
“히익! 죄송합니다.”
“뭐가요?”
나는 어이없는 얼굴로 윤식 조형에 들어온 사내에게 물었다.
“의뢰를 맡기고 싶어서 왔는데…… 으악! 죄송합니다!”
“아니 그러니까 의뢰를 맡기고 싶은데 왜 죄송하냐니까요?”
단순히 궁금해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을 뿐인데, 의뢰인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오줌이라도 지릴 것 같아,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뭔진 모르겠지만, 저희가 죄송합니다. 손님,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 이분에게 말씀해 주시겠어요?”
나는 한발 물러나며 말했다.
“네, 넵. 알겠습니다…….”
손님은 여전히 기가 질린 얼굴로 영감에게 다가갔다.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박윤식 영감을 바라봤다.
영감은 나를 한심하다는 듯한 눈초리로 바라보며 혀를 차고 있었다.
그제야 퍼즐이 하나하나 맞춰지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히익!”
화들짝 놀란 고객에게 다시 한번 사과를 건넨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버지를 처음 만나 내건 조건은 바로 박윤식 영감을 지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흔쾌히 그 조건을 받아들였고, 내가 없는 동안에도 인원을 배치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었다.
‘적당히 해야지…….’
나는 미간이 마구 구겨졌다.
가주의 명령이라고 이놈들이 오버해도 너무 오버하며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것이다.
조금이라도 변수를 줄이기 위해 윤식 조형에 들어오는 손님마다 협박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 융통성이 없을 줄이야…….
어쩌면 아버지의 지엄하신 명령 때문일지도 몰랐다.
뭐가 됐든, 영감에게 피해가 가는 것은 명백했다.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나는 영감이 손님을 상대하는 동안 기운을 넓혀 감시자들을 모조리 찾아냈다.
다섯 명.
교대 인원이 추가로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느껴지는 기운은 다섯이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이 기운…….’
유독 한 명에게서 놀라우리만큼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눈을 밝혔다.
왠지…… 보물을 찾은 기분이다.
* * *
먼저 찾아간 것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녀석이었다.
“얘기 좀 하지.”
나무 뒤에 숨어 윤식 조형을 살피고 있던 복면 하나가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바, 방금!”
가려진 복면이었지만 입이 떡 벌어졌다는 것만큼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목소리가 크네. 잠복한다는 인간이.”
기분이 그리 좋진 않았기에, 고운 말이 나갈 수는 없었다. 상황을 인지한 복면은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막내 도련님……?”
나는 에둘러 말하지 않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무슨 짓이지?”
복면의 사내는 전혀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누가 일반인들을 협박하라고 했냐고.”
추궁하려는 듯한 내 말투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조금 쌀쌀맞은 대답이 들려왔다.
“가주님입니다.”
“뭐라고?”
“가주님이 시키신 임무입니다.”
그 모습에 나는 얼굴이 딱딱히 굳었다. 이 녀석이 생각하는 것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모든 가문의 사람에게 무시 받던 존재가 돌연 차기 흑운이니 뭐니 하며 설치며 간섭하는 꼴이 아니꼽겠지. 그게 아니라면 일반인을 지키는 임무에 질렸거나…….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몰랐다.
“일반인들을 겁박하라 가주님이 시키셨다?”
싸늘한 내 물음에 복면은 입을 달싹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말을 잘못했다고 느꼈던 것일 터였다. 하지만 녀석은 자존심을 굽히기 싫은지 끝까지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것은 아니지만, 저자를 철두철미하게 지키라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독단적으로 사람들을 협박했다?”
“협박이 아니라 경고였습니다.”
“얼굴이 사색이 돼서 오줌 지리기 직전이던데.”
녀석은 말문이 막혔는지 가만히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
“당장 그만둬.”
“그럴 수 없습니다.”
“뭐?”
나는 싸늘한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봤다. 그러나 녀석은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무리 막내 도련님이라도 가주님이 내린 명령입니다.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는 헛웃음이 나왔다.
복면의 태도에 기가 찬 것이다.
마치 가주님의 명령인데 네가 어쩔 거냐? 라고 묻는 듯한 얼굴이었다.
내가 의뢰한 것이기에 잘 알고 있었다. 요구한 바에는 일반인을 협박하라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녀석은 나에게 지기 싫어 가주님을 팔고 있는 것이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얼마 전 차기 가주 임명식에서 많은 것이 바뀌었으리라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다. 어렸을 적부터 길러 온 이미지는 쉬이 변하는 것이 아니었다.
녀석의 마음 저변에 깔린 감정은 무시였다.
나는 차갑게 머리를 식혔다.
그러고는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
“그 말 후회 안 해?”
“……전 가주님의 명령을 따를 뿐입니다.”
복면은 말을 교묘히 돌렸다.
녀석은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천가는 무력이 곧 권력인 곳이고, 뒷배가 곧 명함인 곳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천가의 주인에게 직접 명령받은 자가 낙하산 타듯 하늘에서 떨어진 어린 막내 도련님에게 꿇릴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단단한 착각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능력이 없으면 바꿔야지.”
“그게 무슨…….”
녀석은 황당하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일반인들을 겁박하는 이유. 너희가 능력이 없어서 맞잖아?”
내 대답에 복면은 황당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저희가 능력이 없다니요! 저희는 천가의 기동팀입니다!”
“어쩌라고.”
“저희는 더욱 안전하게 저자를 지키기 위해서…….”
“그게 아니라, 변수에 대비할 만큼의 실력이 없다는 거겠지. 아니면 계속해서 주시하기 귀찮다던가.”
“억측이십니다.”
녀석의 눈가에 분노가 섞였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녀석을 쏘아붙였다.
“너희의 임무는 아무도 모르게 영감을 지키는 거다. 아닌가?”
내 물음에 복면은 입을 꾹 다물었다.
맞는 말이니 할 말이 없는 거겠지.
“이게 지금 아무도 모르는 거야?”
나는 손가락으로 저 멀리, 바들바들 떨며 영감이 건네는 차를 홀짝이는 일반인을 가리켰다.
“…….”
“천가가 양아치냐?”
“아닙니다.”
“보고할까? 감히 천가의 주인을 팔아?”
그제야 복면의 동공이 흔들렸다. 눈가에 잔뜩 분한 마음이 넘실거렸지만, 행동만큼은 확실히 누그러져 있었다.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된 것이다.
내가 가주에게 보고할 경우 일이 커진다는 것을 직감한 것이었다.
녀석은 분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이해는 했지만, 봐줄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영감의 안전이 달린 문제였으니까.
“협박하지 마. 알겠어?”
“예, 알겠습니다.”
녀석은 작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나는 그 모습에 흡족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녀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절대 협박을 막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으니까.
윤식 조형에 기를 펼쳐 녀석들을 찾았을 때 느껴지던 익숙한 기운.
그 정체를 확인할 차례였다.
“말씀하십시오.”
복면의 대답에 나는 반대편 산기슭 초입, 커다란 나무 뒤에 몸을 숨긴 녀석을 가리켰다.
“저 녀석 좀 불러 줘.”
복면의 눈이 커다래졌다. 어떻게 숨은 위치를 정확히 아냐는 얼굴이었다. 나는 피식 웃는 얼굴로 녀석에게 말했다.
“너도 찾았는데 저 녀석은 못 찾겠어?”
녀석은 조금 놀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고개를 까딱였다.
저 녀석의 기운이 네 녀석보다는 몇 배는 은밀한데 왜 긍정하는 것이냐 묻고 싶었지만, 그만뒀다.
급한 것은 그런 자질구레한 것이 아니었기에…….
녀석은 일반인들이 듣기 힘든 주파수의 소리를 내어 신호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복면을 쓴 사내가 도착했다.
도착한 사내를 보고 나는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역시 내가 예상했던 자가 맞았다. 저자가 풍기는 기운은 분명…….
“막내 도련님을 뵙습니다.”
인성도 합격이다.
동료를 부른 복면은 궁금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저희 팀 막내는 왜…….”
“막내야? 오히려 잘됐군.”
“그게 무슨……?”
나는 복면을 무시한 채 조금 더 그자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다가가면 갈수록 나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몸을 이루는 전체적인 선이 너무 가늘었다.
사내가…… 아니야?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고 있는 자는 분명 남자가 아닌 여자였다. 남자조차 버티기 힘든 기동팀이라 여자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 내 편견이었다.
“크흠.”
조금 놀란 것은 사실이었으나,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실력이었으니까.
나는 조금 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동그랗고 커다란 검은 눈매가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더욱 은밀해지는 녀석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진짜배기 실력자.
나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간신히 내리고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많이 서운했겠네. 네가 아닌 나라서…….”
고개를 든 그녀의 동공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동공에 다시 지진이 일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은 못 줘. 그래도 언젠간 줄 거야. 약속할게.”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녀만큼은 알아듣고 있으리라.
그녀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언어도 있는 법이다. 그녀의 감정은 충분히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니…….”
그녀의 목적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자신을 알아봐 준 나에 대한 충성심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그게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내 위치를 노린 것이라고 해도 충분히 감내할 자신이 있었다.
그만큼 그녀는 나에게 필요한 존재였다.
잠시 뜸 들인 나는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우리 팀에 들어오지 않을래?”
잔뜩 긴장한 나와는 달리,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그녀의 대답이 들려왔다.
“들어가겠습니다!”
나는 환하게 지어지는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누구보다 은밀한 기운을 풍기는 자이자, 내가 가장 잘 키울 수 있는 자이며, 전설의 힘을 물려받은 자가 나와 같은 길을 걷는다 선언했는데.
녀석이 풍기는 기운만으로 나는 그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정체는 다름 아닌…….
꼭꼭 숨어 있던 흑운의 딸이 새롭게 만들어질 나의 팀, 천외천(天外天)에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