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47화 (47/175)
  •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47화

    47. 전조(1)

    흙먼지 쌓인 어두컴컴한 동굴 안.

    나는 한참이나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됐을까?”

    김수민의 마지막 얼굴이 잊히지 않았다.

    정신을 잃기 전 본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복잡해 보였다.

    “잘 됐겠지?”

    분명 록스 대공은 사라졌다. 하지만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김수민에게 걸려있는 저주 ‘영혼의 사슬’.

    그 저주를 풀지 않는다면 언제든 악마는 그녀를 노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다시 내려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간다고 하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번 사건을 통해 확실히 느꼈다.

    산 자의 형태로 내려간다면 죽은 자의 땅에 혼란을 주기만 할 뿐이라는 걸.

    그녀를 구출해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 전까지는 잠시 보류하는 것이 옳아 보였다.

    “그럼…….”

    나는 손에 들린 두 가지의 물건을 번갈아 바라봤다.

    하나는 아버지의 영혼이 담긴 상자였고, 다른 하나는 조금 전 김수민이 팔든지 쓰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줬던 자신의 무기였다.

    ‘아마 자신이 죽을 것이라 예상하고 줬던 거겠지…….’

    유품 같은 느낌이 나 영 껄끄러웠지만, 이왕 받은 거 의미 있는 곳에 쓸 예정이었다.

    “생각해 둔 곳도 있고.”

    나는 방망이를 등에 고정한 채, 출입 금지 구역을 벗어났다.

    아버지에게 하루빨리 전해 드려야 할 물건이 있다.

    * * *

    “대체 어디 계셨던 겁니까! 한참 찾았습니다.”

    가주전을 찾아가자, 나를 맞이한 것은 다름 아닌 철용 아저씨였다.

    볼일이 있었다고 대충 둘러댄 나는 서둘러 아버지를 찾았다.

    “가주님은 안에 계십니까?”

    “예, 하지만 지금은 뵐 수 없습니다.”

    “왜요?”

    의문을 표하자, 철용 아저씨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첫째 도련님과 면담 중입니다.”

    “잘됐네요.”

    나는 가주전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이내 저지당했다.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가주님의 명령입니다.”

    “대체 무슨 대화를 하고 있길래…….”

    잠시 고민하던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오늘 안에만 전해 주면 될 일이다.

    ‘그래도 궁금하긴 하네…….’

    입맛을 쩝 다신 나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가주전의 입구를 바라봤다.

    “빨리 전해 줘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가주전의 문이 벌컥 열렸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천진오가 씩씩거리며 나오는 것이 보였다.

    천진오는 나를 발견하고는 금세 표정을 바꿨다.

    언제나 보이던 사람 좋은 미소. 그 가식적인 얼굴을 하고는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어디 다녀왔어? 한참 찾았는데.”

    천지훈이 하이에나라고 한다면 천진오는 여우였다.

    사람을 다루는 데 능통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인물.

    어떻게 보면 천지훈보다 더 조심해야 하는 인물이었다.

    평소의 나였다면 아무것도 모른 채 넘어갔겠지만, 지금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저 가식적인 얼굴 속에 담긴 진심을.

    나는 그 단순한 물음에 내포된 감정을 읽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으나, 확실한 건 저 녀석 또한 나에게 좋은 감정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일단 장단을 맞춰 주기로 했다.

    “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는 형님은 가주전에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웃으며 묻자 천진오가 대답했다.

    “나도 뭐, 일이 있어서……. 그나저나 차기 흑운으로 뽑힌 거 축하한다. 지훈이 녀석이 많이 질투하더라.”

    천진오 역시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 대화 속에서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갑자기 나타난 내 존재에 대한 방어적 태도라면 상관없겠지만…….

    그런 유형의 감정이 아니었다.

    “아, 형님도 차기 가주로 뽑히신 거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성심성의껏 모시겠습니다.”

    “모시기는…… 이럴 줄 알고 우리 천지(天地)에 들어오는 걸 거절한 거야?”

    내 아부에 천진오는 한결 누그러진 태도로 대답했다.

    “하하, 아닙니다. 제가 어찌……. 그냥 제가 너무 부족해서 거절한 것이었습니다. 폐를 끼칠 수는 없으니까요.”

    “이야, 생각도 깊네. 지훈이 녀석이랑 싸우는 거 보니 제법이던데 뭘. 지금이라도 들어올래?”

    “죄송합니다만, 흑운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천진오의 눈빛에 작은 이채가 서렸다.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듯한 뻔뻔한 얼굴로 미소를 유지했다.

    “……아쉽네. 알겠다. 조만간 내 방에 놀러 와. 이야기할 게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짧은 대화를 끝으로 천진오는 돌아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미묘했지만, 역시 평범한 태도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나 간 보는 태도라면 백번이고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느낀 감정은 그게 아니었다.

    분노였다.

    저 녀석이 미묘하게 내비친 감정은 분명 분노였다.

    대체 왜…….

    나는 차기 가주에게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존재였다. 무엇보다 나는 차기 흑운으로 뽑힌 인물이었으니까.

    방어적인 태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나에 대한 분노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예민할 대로 예민해진 감각이 말해주고 있었다.

    무언가 꺼림직하다고.

    저 녀석 또한 조심해야 할 존재라고.

    한참이나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지금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 * *

    “아버지께 뵙자고 전해 주세요.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가주전 앞으로 다가간 나는 철용 아저씨에게 말했다. 진지한 내 태도에 철용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으로 향했다.

    그러고 잠시 후.

    “들어오시랍니다.”

    허락이 떨어졌다.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버지의 방 안으로 다가가면 갈수록 흉흉하게 퍼지는 기세가 살을 저릿하게 자극했다.

    조금 전 천진오와의 대화에서 무언가 틀어진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멀리서 소리쳤다.

    “기운을 조금 거둬 주시지요. 중요한 물건이 상하겠습니다.”

    “…….”

    잠시 말이 없던 아버지는 기세를 누그러트렸다.

    “들어오거라!”

    “예, 실례하겠습니다.”

    아버지의 허락에 나는 방문을 열었다. 찢기고 냄새나는 옷차림이었지만, 지금은 예의나 형식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미간을 좁힌 아버지는, 내 몰골을 보고는 몹시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지금 내가 기분이 많이 안 좋은데 큰 실수를 하는구나.”

    “사안이 급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내 태도에 아버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건방진 건 여전하구나.”

    아버지는 다시금 힘을 끌어올렸다. 가주 천태산은 기운만으로 평범한 인간쯤은 죽일 수 있는 존재였다.

    어쩔 수 없이 힘을 끌어올린 나는 흑운을 이용해 영혼이 담긴 상자를 방어했다.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뭐라?”

    다시 한번 엄청난 기운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일반인이었으면 숨이 턱 막히다 못해 목숨이 위험했을 만한 기운.

    그 짧은 순간에 퍼진 엄청난 기운에, 나는 서둘러 오해를 풀어야만 했다.

    “아버지의 영혼입니다.”

    잔뜩 힘을 끌어올리던 아버지의 힘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리고는 떨리는 동공을 한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어찌…….”

    나는 믿지 못하는 아버지를 향해 상자를 흔들어 보였다.

    아버지는 벌떡 일어나 나에게 걸어왔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아버지의 눈이 커지는 것이 느껴졌다.

    “……!”

    아버지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에 나는 작게 미소 지었다. 내가 아버지의 저런 표정을 볼 수 있다니……. 사진이라도 남겨 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으셨다.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침대로 가서 흡수하시지요. 영혼 수리공이 섭취하면 이틀 동안은 앓아누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다시 한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살아있더냐?”

    “예,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내 대답에 아버지는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죽어도 진즉 죽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자세히 말해 보라!”

    아버지는 나를 서둘러 앉혔다.

    “우선 빨리 흡수하시는 게…… 알겠습니다.”

    서둘러 영혼을 흡수하라 말하려던 나는 차마 말을 끝맺을 수 없었다. 궁금해 죽겠다는 저 표정. 말하지 않는다면 절대 돌려보내지 않을 거라는 걸 온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가 권한 의자에 앉아, 그간 있었던 일을 세세하게 말씀드리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 * *

    오키나와에 본부를 둔 카토가는 심각한 얼굴로 회의 중이었다.

    “흑운의 존재. 알고 있었습니까?”

    “몰랐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자는 카토가의 차기 가주로 거론되는 카토 미츠히로였다.

    그는 죽을죄를 지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카토가의 주인 카토 노부유키는 책상을 쾅 내리쳤다.

    “원로보다 높은 존재를 몰랐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한국에 관련된 모든 일을 맡겨 달라고 하길래 믿고 맡겼는데 이게 뭡니까!”

    “죄송합니다. 보스.”

    미츠히로는 다시 한번 고개를 조아렸다.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흑운의 존재를 몰랐다는 것은 자신의 명백한 잘못이었다.

    “철저히 준비하던 계획이 모두 수포가 될 지경입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노부유키는 들고 있던 찻잔을 박살 냈다. 그럼에도 분노는 가시지 않았는지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철두철미하게 계획했던 작전. 그런데 얼마 전 적진에 나타난 미지의 존재 흑운으로 인해 작전의 위험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게다가 변수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천가에서는 차기 흑운까지 뽑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부분이 노부유키를 더욱 열받게 했다. 그 흑운의 존재가 바로 전력으로 치고 있지도 않던 천가의 쓰레기, 막내 천도윤이라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두 인물의 등장에 카토가는 큰 혼란을 겪는 중이었다.

    “이미 우리의 전략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는 건가요?”

    카토 미츠히로는 재빨리 부정했다.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알았다면 지금처럼 전력을 밝히지 않고 더욱 숨겨놨겠지요.”

    불안한 표정. 더 이상 가주에게 밉보일 수는 없다는 표정이었다. 신뢰를 조금만 더 잃는다면 다른 이에게 차기 가주 자리를 내줘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얼굴에 강하게 묻어 나왔다.

    “말해 보세요.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쏘아붙이듯 묻는 노부유키의 물음에 미츠히로는 재빨리 대답했다.

    “당장 흑운과 천도윤의 전력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보원의 말을 들어본 결과 천도윤은 강하긴 하지만 다행히 천지훈만큼은 아니라고 합니다.”

    미츠히로의 보고를 들은 노부유키는 분노했다.

    “뇌룡입니다, 뇌룡!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차기 가주로 뽑힌 천진오보다 강하다고 평가받는 천지훈이다. 노부유키는 당연한 이야기를 무언가 있어 보이는 것처럼 지껄이는 미츠히로가 영 못마땅했다.

    “죄송합니다.”

    “중요한 건 그 쓰레기 천도윤이 아닙니다. 흑운입니다, 흑운!! 흑운의 전력을 파악하세요. 원로들보다 강하다는 소문이 돌고 있으니, 철두철미하게 전력을 구상하셔야 할 겁니다.”

    노부유키의 노기 어린 시선이 매섭게 미츠히로를 꿰뚫었다.

    “알겠습니다. 시미즈가와 협력해 철저하게 준비하겠습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노부유키의 말에 미츠히로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가보세요.”

    “예, 그럼.”

    미츠히로가 나간 문을 빤히 바라보던 노부유키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많은 생각을 하는 듯한 표정. 오랜 기간 그 표정을 유지하던 노부유키는 중얼거렸다.

    “무력만큼이나 머리도 돌아가면 좋으련만…….”

    아쉬움이 짙게 남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난 노부유키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침실로 향했다.

    “…….”

    그리고 잠시 후…….

    회의장 안에 검은 안개가 흩날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