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46화
46. 영혼 수리공(5)
파지지직-!
장내가 온통 검게 그을렸다.
나를 향해 이빨과 손톱을 세우며 달려오던 악마들은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좀 해 봐!”
“네가 해, 이 미친놈아!”
“그나저나 산 자의 영혼은 팔면 얼마야?”
“모르긴 몰라도 일 년은 배불리 먹을 수 있을걸?”
동족의 죽음에도 저들은 여전히 나를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악마들이 나를 향해 다가오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나보다 약해서.
그것이 아니었다면 나는 탐욕에 눈이 돌아간 저 녀석들에게 처참히 유린당했으리라.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나는 천천히 그들을 향해 나아갔다.
한 발 내디딜 때마다 그들은 한 발 물러났다.
멈추지 않고 발을 뻗었다.
그들은 또다시 물러났다. 한참이나 지속될 줄 알았던 그 같잖은 장난은 열 걸음이 채 되기 전에 멈출 수 있었다.
“백작님!!”
“백작님이다!”
누군가 소리쳤다.
그 희망찬 외침에 나는 걸음을 우뚝 멈춰 섰다.
백작이라 불릴 인간은 이 층에서 단 한 사람뿐이었다. 아버지의 영혼을 가져간 로베루스 백작!
김수민에게 들었던 아버지의 일이 생생히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눈에 작은 분노가 일었다.
뭉쳐 있던 악마들이 홍해처럼 갈라졌다.
그 사이로 턱시도를 말끔하게 빼입은 악마 한 마리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옆으로 두 명의 시중이 따라붙었다.
“반갑습니다. 40층의 지배자, 로베루스 백작입니다.”
내 앞으로 다가온 로베루스 백작은 더러운 속내를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걸어오는 내내 입맛을 다셨고,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내 온몸을 훑었다.
“반갑다고 하기엔 눈빛이 불순하군.”
나의 대답에 로베루스 백작은 크게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핫! 세계 최고의 진미가 제 발로 찾아왔는데 어찌 반갑지 않겠습니까!”
눈썹이 꿈틀댔다.
“진미?”
“산 자의 영혼은 최고급 스테이크와도 같습니다. 부드럽고, 육즙이 가득하죠.”
“꼭 먹어 봤던 것처럼 들리는군.”
“그럼요. 아주 예전에요.”
“…….”
끓어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억눌렀다.
‘아직 정확한 건 아니다.’
정확한 사실 확인이 먼저였다.
“그렇다면 내가 아주 반갑겠군. 네놈이 오랜 기간 구경도 못 했을 산 자가 들어왔으니 말이야.”
내 말에 로베루스 백작이 가소롭다는 듯 반응했다.
“그럴 리가요. 집에는 아직 싱싱한 산 자의 영혼을 보관 중이랍니다. 비록 3분의 1뿐이지만, 최고급 육질이죠.”
로베루스의 말을 들은 나는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다행이군. 아직 먹어 치우지 않아서.”
“그게 무슨…… 아, 설마!”
로베루스는 배를 움켜쥐며 웃기 시작했다.
“…….”
“크하하하핫! 아는 분이셨습니까? 설마, 구하러 내려온…… 크큭,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로베루스는 한참이나 웃어 재꼈다.
그러고는 비웃음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냥 조용히 제 수집품이 되시는 게 어떻습니까? 고통스럽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너나 조용히 영혼을 내놓는 게 어때? 다치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나는 웃으며 말했다.
“크큭, 재밌으신 분이군요. 나약하디 나약한 인간 따위가! 주제도 모르고.”
로베루스 백작의 눈빛이 순식간에 돌변했다.
동시에 엄청난 마기가 터져 나왔다.
대기에 불길한 기운이 깔렸다.
살이 저릴 듯한 살기가 날것의 형태로 나에게 쏘아져 왔다.
“말이 많네.”
콰과과광!
로베루스의 머리 위로 낙뢰가 내리쳤다.
“이깟 힘으로 저를…….”
콰과과광!!
다시 낙뢰가 내리쳤다.
이전보다 정확히 두 배 강력한 힘이었다.
로베루스의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왜? 겨우 그 정도도 버티기 힘들어?”
“미약한 벌레 새끼가! 감히……!”
날카로운 손톱을 세운 로베루스가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
“크큭, 피해 보시지요!”
그러고는 엄청난 속도로 공격을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흑운을 온몸에 둘렀다.
모든 기운을 죽인 채 녀석의 공격을 빠짐없이 받아 냈다.
그 모습을 본 악마들은 경악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그들은 어느새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관람객으로 변해 있었다.
“백작님 이겨라!!”
“죽여 버리세요! 백작님!”
역겨운 소리가 귀에 꽂히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 와중에도, 로베루스는 쉬지 않고 공격을 날리는 중이었다.
“제법 빠른 건 인정하죠. 하지만 이건…….”
“이건 뭐.”
가볍게 받아 내자 로베루스의 얼굴에 당혹감이 물들었다.
로베루스의 공격이 점점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끝끝내 나에게 닿을 수는 없었다.
분노한 로베루스는 거리를 벌렸다.
그러고는 날개를 펼쳐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의 손바닥 위로 검은 구체가 떠올랐다. 그 구체는 점점 몸집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구슬만 한 크기에서 사람 얼굴만 한 크기로, 얼굴만 한 크기에서 나보다 큰 지름을 가진 구체를 완성 시켰다.
이를 확인한 악마들은 소리를 지르며 자리를 이탈했다.
“비켜 병신들아!”
“저거 맞으면 다 뒈진다고!”
시장은 어느새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로베루스 백작은 분노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는 중이었다.
“조용히 제 수집품이 됐으면 좋았을 것을……! 영혼을 상하게 해야 한다니 마음이 아프군요.”
로베루스는 진심으로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만둘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의 눈빛에는 나를 갖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었다.
로베루스는 이내 공격할 준비가 끝났는지 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에게 맞선 것을 후회하게 해 드리지요.”
“그러든지.”
“쓰레기 새끼가 아까부터 자꾸 어딜 그렇게 보는……!”
로베루스는 미간을 찡그리며 내가 바라보고 있는 쪽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는 검은 악마가 있었다. 악마의 손에는 거대한 방망이와 작은 투명 상자가 들려 있었다.
로베루스의 눈이 커졌다.
“저 미친년이!!”
눈이 돌아간 로베루스는 망설임 없이 김수민에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흑운의 힘으로 감싸 놨던 하늘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구구구구.
범상치 않은 기운에 로베루스는 고개를 들었다.
전격으로 만들어진 세 마리의 거대한 용이 로베루스를 향해 쇄도했다.
로베루스의 눈이 커졌다.
그는 커다란 날개를 이용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 마리의 뇌룡은 끈질기게 로베루스를 쫓았다.
“크윽!”
뇌룡을 떨쳐 낼 수 없음을 깨달은 로베루스는 손에 있는 검은 구를 뇌룡에게 날렸다.
콰과과광!!
엄청난 굉음이 40층 전체를 덮었고, 주위에 있던 악마들은 모두 목숨을 잃었다.
3마리의 뇌룡은 소멸했고, 로베루스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끄아아아악!!”
로베루스의 날개가 떨어져 나갔다.
내 손에는 두 개의 날개가 들려 있었다.
핏발 선 눈이 나를 매섭게 집어삼키고 있었다.
“가…… 감히!”
나는 전격을 이용해 녀석의 날개를 모조리 지져 버렸다.
“이젠 추방당하려는 산 자의 영혼을 뜯어내지는 못하겠지.”
김수민에게 들었던 아버지의 그 날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남들의 목숨은 쉽게 빼앗으면서 날개 조금 뜯겼다고 분노하는 모습이 실로 가당찮았다.
나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로베루스를 향해 나아갔다.
다가가면 갈수록 녀석의 눈에 공포감이 깃들었다.
상관하지 않았다.
그저…….
툭.
녀석의 죗값을 치를 뿐이었다.
로베루스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나는 그 모습을 무심하게 바라봤다.
몬스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가능한 시선이었다.
“내가 그랬잖아.”
어느새 다가온 김수민이 말했다.
“가르칠 게 없었다고.”
콰직!
김수민은 로베루스를 마무리 짓고는 나를 보며 빙긋 웃어 보였다.
* * *
그녀의 손에는 작은 투명 상자가 들려 있었다.
그 안에는 둥둥 떠다니는 불완전한 영혼이 있었다.
“자!”
김수민이 손을 내밀어 그 상자를 건넸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상자를 받아들였다. 어쩐지 손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드려. 그리고 꼭 전해 줘.”
“뭐를……?”
“빚은 다 갚은 거라고.”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었다.
“같이 나가시죠.”
그녀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내가 나가면 대악마를 지구에 소환하는 꼴밖에 안 돼.”
자신에게 걸려 있는 증표의 사슬을 이용해 대악마 록스 대공이 지구에 강림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록스 대공이 나보다 강할 거라고 말하는 김수민이었다. 차마 강경하게 권유할 수 없었다.
“어쩌실 생각입니까?”
“여기서 지내야지. 이 빌어먹을 사슬을 끊어 낼 방법을 생각하면서 말이야.”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아쉬움을 애써 털어 버렸다.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암, 내가 많은 도움을 주긴 했지. 그러니 갚는 게 어때?”
“네?”
나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40층의 지배자. 권리 넘겨! 나도 편하게 좀 살아보자.”
“아, 크큭.”
나는 웃었다.
로베루스 백작을 처치하고 들린 알림음.
[40층의 지배자를 처치하셨습니다.]
[새로운 40층의 지배자가 되셨습니다.]
[‘권한’을 부여받습니다.]
…….
끊임없이 올라가는 알림음은 분명 나를 40층의 지배자로 인정한다는 알림음이었다.
“그래서 아까…….”
“혹시나 했지. 목숨이 붙어 있을까 봐.”
김수민이 이곳에 오자마자 로베루스의 머리를 터트린 일은 결코 화풀이가 아니었다.
나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김수민에게 내가 얻었던 40층의 지배자의 권리를 넘겨주었다.
“잘했어.”
권한을 모두 양도받은 김수민은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이 돌변했다. 장난기 넘치던 김수민의 표정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나는 의아했다.
“이곳에 미련 없지? 다신 오지 마!”
어딘가 의미심장한 모습.
그녀가 소리쳤다.
“추방!”
몸이 붕 떠올랐다.
나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향해 그녀의 방망이가 날아왔다.
“귀한 거야, 팔든지 쓰든지 맘대로 하고.”
나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자기 왜…….
그러나 곧 벌어진 일에 모든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쿠구구구구
대지가 눈에 띄게 진동했다.
[대악마 록스 대공이 강림합니다.]
로베루스 백작이 죽고, 풀려 버린 제약을 눈치챈 록스가 40층에 강림하기 시작했다.
김수민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고 있던 것이다.
나는 다시 내려가기 위해 발버둥 쳤다. 내가 돕지 않으면 그녀는 분명 크게 다칠 것이다.
록스를 추방하기 전에 그녀의 영혼을 손쉽게 취할 수 있을 정도의 무력을 가진 악마였다.
록스가 로베루스의 영혼을 뜯어먹었듯이, 김수민의 영혼을 뜯어먹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안 돼!!”
나는 소리쳤다.
그녀는 그런 나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나도 이제 편히 쉬자.”
그 뜻 모를 말이 가슴 한편을 콕콕 쑤셨다.
이대로 끝낼 순 없었다.
김수민을 내버려 두고 나만 도망칠 순 없었다.
시장 한복판에 쩍 갈라진 공간을 찢고 무언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소리쳤다.
“추방시켜!!”
김수민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럴 생각이야. 추방!”
[지배자의 권한으로 대악마 ‘록스’를 40층에서 추방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얼굴이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담담히 받아들이려는 그런 얼굴.
그 모습에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포기하지 마!”
김수민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소리치며 온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세 가지 속성을 모두 사용해 힘을 한곳으로 응집시켰다. 빙과 뇌 속성을 합쳐 전격의 화력을 극대화했고, 흑운을 통해 그 힘을 원 안에 가뒀다.
흑운으로 감싸진 동그란 원 안에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미친 듯이 널뛰는 전격은 조그만 원 안에 갇혀 응축되고 또 응축됐다.
조금 전, 로베루스 백작의 기술을 보고 고안해 낸 것이었다.
“조금만 더!”
아직 부족했다. 조금 더 모아야 내가 생각했던 위력을 낼 수 있다.
‘시간이 필요해.’
“암살아!”
나는 암살이를 불러냈다.
저 공간을 찢고 나오는 대악마 록스를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시간이었다.
김수민이 이미 40층의 지배자 권한으로 록스를 추방하려 했으니 잠깐의 시간만 벌면 되는 것이었다.
록스는 빠르게 강림해 김수민을 먹어 치울 생각이었는지 강림에 속력을 붙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놔둘 수는 없었다.
“뭐라도 해 봐!”
고개를 끄덕인 암살이는 거대한 낫을 휘둘러 참격을 마구잡이로 날려 댔다.
하지만 잠시 멈칫거렸을 뿐. 전혀 피해를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어느새 록스의 거대한 육신이 반쯤 넘어왔다.
동시에 내 공격이 완성되었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녀석에게 흑운으로 감싼 뇌전을 날렸다.
뇌전은 록스를 향해 총알처럼 쏘아져 나갔다.
쿠국구구구.
천지가 뒤흔들렸다.
나의 공격을 받은 녀석은 당황하며 한발 물러났다.
나는 녀석이 나오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공격을 날렸다. 날리고, 날리고 또 날렸다.
모든 힘이 빠질 때까지 녀석을 공격했다.
“허억, 허억.”
탈진한 것처럼 온몸에 힘이 빠졌지만 쉴 수 없었다.
원하는 알림음이 뜨기 전까지는.
그리고 마침내 원하는 알림음을 들을 수 있었다.
[대악마 ‘록스’가 40층에서 추방당했습니다.]
[지배자의 승낙이 있기 전까지, 록스는 40층에 출입할 수 없습니다.]
“허억, 허억. 그러게 내가 포기하지 말랬…….”
나는 그대로 쓰러졌다.
정신을 잃은 내 머릿속에는 두 가지 알림음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인버스 타워 40층에서 추방당했습니다.]
[대악마 ‘록스’가 당신을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