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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45화 (45/175)
  •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45화

    45. 영혼 수리공(4)

    북적이는 시장의 외곽.

    서양풍 목재 구조로 지어진 낡은 여관 위에는 검은 악마가 서 있었다.

    악마의 손에는 이곳에서는 팔지 않는 작은 물건이 들려 있었다.

    긴 원형 통 양 끝에 렌즈가 달린 물건.

    망원경이었다.

    검은 외관의 악마는 망원경을 통해 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애송이 녀석, 이제 가르칠 게 없네.”

    어딘지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악마는 계속해서 남자를 주시했다.

    더러운 누더기를 걸친 남자는 가장 많은 망자와 악마가 몰려 있는 시장의 중심부로 향했다.

    그 걸음에는 긴장감이 잔뜩 묻어 있었다.

    “애송이….”

    검은 뿔 두 개가 곧게 뻗어 있는 악마. 그것의 존재는 다름 아닌 ‘도깨비감투’라는 아이템을 뒤집어쓴 김수민이었다. 그녀는 얼마 전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 피식 웃었다.

    “쫄기는…….”

    김수민은 시장의 정 중앙에 우뚝 선 채 미간을 잔뜩 찡그린 천도윤을 바라봤다.

    녀석은 언제 겁먹었냐는 듯, 시장 안을 썰어 버리기 시작했다.

    사정없이 떨어지는 낙뢰.

    그 진귀한 광경을 보면서 김수민은 작게 감탄했다.

    “그때의 그 애송이 녀석보다도 강한 것 같네.”

    김수민은 천태산을 떠올렸다.

    산자로 죽은 자의 땅에 나타나 자신에게 많은 변화를 일으켰던 녀석.

    그 녀석과 어딘가 빼닮은 천도윤은 김수민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콰과과광!!

    낙뢰와 함께 천지가 진동했다.

    그 우렁찬 포효와 함께 김수민은 생각했다.

    ‘슬슬 나타날 때가 됐는데…….’

    로베루스 백작은 영혼에 미친 인간이었다.

    며칠 전 산자가 나타났다는 소문, 그리고 지금의 소동. 관심을 갖지 않을 리가 없었다.

    역시나, 망원경으로 살펴보던 로베루스 백작의 성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웅장한 성문이 움직이고, 마수가 끄는 마차가 성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수행비서와 집사가 각각 말을 탄 채 호위를 맡고 있었다.

    김수민은 그들을 못마땅한 얼굴로 바라봤다.

    볼 때마다 속이 거북해지는 기분이었다.

    “저 개새끼들.”

    욕을 지껄이고 나자 기분이 조금이나마 나아지는 느낌이었다.

    끼릭.

    갑자기 마차가 멈춰 섰다.

    그리고는 벌컥 문이 열렸다.

    김수민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들켰다……!’

    역시나 로베루스 백작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마치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했다는 듯이.

    로베루스 백작은 마차에서 내려 김수민에게 손짓했다.

    그리고는 등 뒤에 감춰 놨던 날개를 활짝 펴기 시작했다. 악마종, 그중에서도 고위종에게만 허락된 악마의 날개였다.

    펄럭거리며 하늘로 올라간 로베루스는 이쪽을 향해 빠르게 쇄도했다.

    김수민은 벌떡 일어나 망원경을 집어넣고는 자신의 무기를 빼 들었다. 뾰족한 원뿔 모양의 돌기가 가득 붙어 있는 거대한 방망이였다.

    로베루스 백작은 순식간에 김수민의 코앞까지 당도해 있었다.

    그는 탐욕스러운 눈으로 김수민을 훑으며 말했다.

    “오랜만이군요.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자여.”

    “뭐래, 난 엄연히 산 자야!”

    소리친 김수민은 자신의 무기를 고쳐잡았다.

    그 모습을 본 로베루스는 작게 미소 지었다.

    “긴장하지 마세요. 싸우자고 온 건 아니니까.”

    “매일 뒤통수 치는 녀석들이 너희들인데 그 말을 믿으라고?”

    김수민은 발끈하며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수행비서와 집사를 바라봤다. 로베루스의 입가에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못 믿으시면 어쩔 수 없죠. 어쨌든 전 규율대로 당신을 공격할 수 없습니다.”

    “내가 그걸 모를까….”

    김수민이 무시하며 말했지만, 로베루스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자신이 궁금했던 것을 묻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이번에도 역시 당신이군요?”

    “그게 무슨 소리야?”

    “산 자가 내려올 때마다 구해 주시지 않습니까. 오래전 그분도 그렇고….”

    과거를 회상한 로베루스의 면상에 탐욕이 서렸다.

    그 모습을 본 김수민은 분노했다. 하지만 이내 곧 입매를 끌어올렸다.

    “많이 감상했으면 이만 돌려주는 게 어때? 어차피 아무리 진귀한 영혼도 너의 망가진 영혼은 채워 주지 못할 텐데.”

    김수민의 말을 들은 로베루스의 눈에 분노가 서렸다. 보기 드문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영혼을 저당 잡힌 천박한 년이 어디서!!”

    “그런 천박한 년을 공격하지도 못하는 너는 뭐고?”

    김수민은 지지 않고 반박했다.

    도발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로베루스 백작은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저 멀리 보이는 자신의 성을 가리켰다.

    “그렇다면 제약이 들지 않는 성안으로 들어오시지요. 당장 찢어줄 테니까.”

    “내가 거길 왜 가. 죽을 게 뻔한데.”

    김수민은 40층 내에서도 상당이 강한 축에 속했지만 로베루스 만큼은 아니었다.

    40층의 지배자 로베루스는 같은 층에 사는 악마들과는 격이 다른 혼을 가진 존재였다.

    그 사실은 김수민 역시 잘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승패가 명확히 갈린 싸움.

    당연히 시작할 리 없었다.

    입술을 삐죽 내민 김수민은 계속해서 백작을 도발했다. 천도윤에게는 아직 주변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 이런 위험한 도발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악하고 간교한 로베루스가 그런 저급한 도발에 넘어갈 리 만무했다.

    “재밌는 산 자군요.”

    그의 시선은 어느새 낙뢰가 내리치는 시장의 한복판을 향해 있었다.

    “신경 끄시지. 이번에도 영혼을 뜯기고 싶지 않으면.”

    김수민의 도발에 다시 한번 로베루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당장이라도 김수민을 갈아 마시고 싶어 하는 표정. 그러나 그의 표정은 금방 돌아왔다.

    “무슨 수로요? 이번엔 록스 대공이 끼어들 명분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로베루스는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당황한 김수민은 최대한 표정을 숨겼다.

    그러나 김수민은 로베루스의 간악한 시선이 자신을 훑고 있음을 여실히 느끼는 중이었다.

    김수민은 로베루스 백작은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둘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같은 시절, 각기 다른 장면.

    둘은 과거를 회상하고 있었다.

    ***

    모든 사건의 시작.

    천태산이 산 자의 형태로 40층에 내려왔을 무렵. 그들을 살려준 것은 다름 아닌 대악마 록스 대공이었다.

    그 당시 한발 앞서 산 자의 형태로 40층에 내려왔던 김수민은 자신이 갖고 있던 아이템 ‘도깨비감투’를 이용해 오랜 기간 살아가던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40층에 대악마 록스 대공이 방문했다. 극진하고 성대한 파티가 열렸고 40층을 탐방하던 록스 대공은 시장을 돌아다녔다. 그곳에서 김수민을 발견했다. 그는 단번에 김수민이 산 자인 것을 알아봤다.

    당연하게도 록스는 산자의 영혼을 원했다.

    김수민을 콕 집어 선물로 요구하는 록스의 태도에 눈치 빠른 로베루스가 의문을 가지지 않을 리 없었다.

    로베루스는 뒷조사를 통해 김수민이 산 자인 것을 알아내고는 록스에게 보낼 선물을 교체했다.

    진귀하고 값비싼 보석들.

    하지만 록스는 단호하게 거절한 뒤, 김수민을 재차 원했다. 그러나 탐욕과 미식의 악마 로베루스가 이를 받아들일 리 없었다.

    두 악마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흘렀다.

    한 층의 지배자 대 대악마.

    계급과 격은 대악마 록스 대공이 월등히 앞섰지만, 40층은 다름 아닌 로베루스 백작의 지배하에 있는 층이었다.

    둘의 신경전은 불타오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국 저울의 기울기는 록스 대공에게 향했다. 악마들의 세계에서는 힘이 깡패였다.

    끝끝내 록스 대공이 원한 영혼을 넘겨야 한다는 것을 직감한 로베루스는, 그가 돌아가기 전에 김수민을 우연한 사고로 가장해 죽게 만든 후 먹어 치울 생각이었다.

    자신만의 박물관에 전시하지 못하는 것은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눈 뜬 채 코 베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로베루스 백작은 끊임없이 김수민에게 고용한 악마들을 보냈다.

    고용된 악마들은 처음엔 김수민의 상대가 전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김수민은 점점 지쳐갔다.

    하루 이틀만 더 하면 완전히 김수민을 손에 얻을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로베루스 백작의 얼굴에 승리의 미소가 깃든 것도 그때였다.

    하지만 바로 그때!

    천태산이 나타났다.

    그는 성하지도 않은 영혼의 상태로 김수민 앞에 섰다. 그리고는 고용된 악마들을 하나하나 힘겹게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망자의 형태를 하지도 않았던 그는 불안한 육신으로 묵묵히 김수민을 지켰다.

    김수민에게 누구냐 묻지도 않았다.

    공격을 받는 약한 이를 도와주려 한 것 같지도 않았다. 그저 가면 뒤에 숨겨진 김수민의 정체를 훤히 꿰뚫어 보는 눈빛이었다.

    김수민은 위태위태한 모습으로 끝까지 자신을 지켜 주는 남자의 뒤를 묵묵히 바라봤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

    그녀는 그날 밤새 천태산의 몸을 고쳐 주었다. 뜯겨 나간 영혼을 이어주고, 강화했다.

    천태산은 눈 깜짝할 사이에 강해졌다.

    그 무렵, 김수민은 일부러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산 자가 나타났다!”

    “로베루스 백작이 산 자를 노린다!”

    이러한 소문이 돌자, 평범한 악마들은 더 이상 천태산을 노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김수민이 노린 점이 아니었다.

    바로 이것.

    “천박한 악마 새끼가!”

    소문은 당연히 록스 대공의 귀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속이고 김수민을 몰래 노린 것을 확인한 록스 대공은 로베루스 백작을 찾아가 영혼을 뜯어냈다.

    그리고는 아가리를 쩍 벌려 우걱우걱 씹어 먹기까지 했다. 당사자 앞에서.

    보란 듯이…….

    고통스러워하는 로베루스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록스 대공이 외쳤다.

    “내 먹잇감을 건든 버러지 놈들은 죄다 이리 만들어 줄 것이다!”

    자리에 있던 집사의 고막이 터져 나갔다. 식사를 나르던 요리사는 그 자리에서 명을 달리했다.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는 로베루스 백작에게 록스 대공이 다가갔다.

    “네깟 쓰레기 놈이! 감히……!”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록스의 손이 움직인 순간, 로베루스가 소리쳤다.

    “추방!”

    40층의 지배자의 권한으로 록스를 날려 보냈다.

    그러나 대악마는 그리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었다.

    “평생을 후회해라! 지배자가 아닌 도전자의 형태로 계단을 내려오면 갈가리 찢어 죽여 주마!”

    록스는 40층 밖으로 추방당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권능으로 로베루스에게 제약을 걸었다.

    그 제약의 결과는 바로 이것이었다.

    록스는 김수민에게 영혼의 사슬을 걸었다. 자신의 권속으로 인정하는 증표의 사슬.

    동의 없이 강제로 건 것이기에 김수민에게 행동을 강요할 순 없었으나 노리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대악마는 자신보다 하위 악마가 자신의 권속을 건드리면 저주를 내릴 명분과 힘이 생긴다.

    록스 대공은 녀석이 권속을 건드리는 순간 녀석에게 저주를 퍼부은 뒤 다시 40층에 올라올 생각이었다.

    이를 눈치챈 로베루스 백작은 입술을 바짝 깨물었다. 그리고 빠르게 생각했다. 김수민은 포기하더라도 새로 들어온 산 자만큼은 차지해야 한다고!

    그러나 록스 대공은 이미 이것마저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의 권한으로 산 자를 죽은 자들의 땅에서 추방시키려 한 것이다.

    로베루스는 당장 자리를 박차고 성 밖으로 튀어 나갔다.

    창문을 깨고 빠르게 날아올랐다.

    저 멀리, 산 자의 세계로 되돌아가고 있는 천태산이 눈에 들어왔다.

    로베루스는 속력을 높였다.

    전력을 다한 빠르기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로베루스는 날카롭게 세워진 손톱으로 녀석의 영혼을 찢어발겨 추방당하기 전에 그를 망자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리고 생각은 행동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푹!!

    짜릿한 소리가 귓가를 감쌌다.

    하지만 손안을 확인한 로베루스는 인상을 와락 구겼다.

    산 자로 내려왔던 녀석이 몸을 틀어 자신의 공격을 흘려보낸 것이다!

    딱 삼 분의 일 정도의 영혼이 양손에 들려 있었다.

    로베루스는 다시 한번 쇄도했다.

    아직 한 번의 기회는 더 남아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의지를 다진 로베루스의 공격은 더욱 날카로웠다.

    그러나 로베루스가 원하던 감각은 손에 전혀 전해지지 않았다.

    그가 몸을 비틀어 완벽히 자신의 공격을 피한 것이다.

    로베루스는 추방당하는 산 자를 바라봤다.

    그는 형형한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로베루스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나약하디 나약한 인간이…….’

    로베루스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에 담긴 녀석의 영혼을 바라봤다.

    최고의 예술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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