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44화
44. 영혼 수리공(3)
“정신이 들어?”
흐릿한 시야 속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크윽.”
인상을 찡그리며 몸을 일으켰다.
조금 전 느꼈던 정신을 찢어 버릴 듯한 고통이 생각나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차츰 돌아오는 시선.
눈앞에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는 김수민이 서 있었다.
“날아갈 것처럼 가벼워야 정상인데 왜 오바야?”
그 말을 듣고 정신을 차린 나는 온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어?”
이상했다. 분명 그 이상한 물에 들어갔을 때만 하더라도 나는 영락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영혼이 찢기고 온몸이 산산이 분해되는 느낌이 한참이나 지속됐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도 그런 느낌이 없었다.
정신적 트라우마가 남아 조금은 고통스러울 법도 했지만, 마치 오래전 잊힌 기억인 듯 조금도 거슬림이 없었다.
“엄살은.”
김수민은 나에게 따듯한 차를 건넸다.
그 컵을 받아 든 나는 물었다.
“잘 끝났습니까?”
“잘 끝났냐고?”
김수민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
나는 다시 한번 몸을 살폈다.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몸이 한없이 가벼워졌고, 몸 안이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해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변화는 느낄 수 없었다.
“잘 모르겠는데…… 어?”
퍼석.
컵이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그 결과, 안에 들어 있던 차가 모두 침대 위로 떨어져 내렸다.
“이 새끼가!”
김수민이 날린 주먹도 한없이 느리게 느껴졌다. 그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달라졌다!’
인식의 범위도, 살아가는 시간의 단위도 모두 바뀐 느낌이었다.
가볍게 피하자, 김수민이 소리쳤다.
“내 밥줄도 끊어 놓더니, 이젠 내 잠자리까지 망쳐?”
김수민의 호통에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게 무슨…….”
김수민은 나에게 일어났던 일을 간략히 설명했다.
“그러니까 그 령수(靈水)를 내가 다?”
나는 어안이벙벙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그래, 한 방울도 빠짐없이 몽땅!”
김수민은 얼굴을 내리깔며 분노를 내비쳤다.
그 모습에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애초에 령수에 들어간 것도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일이 그렇게 될지 내가 어찌 알았냔 말인가.
황당한 표정으로 김수민을 바라보자 그녀는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일어나.”
나는 군말 없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혹여, 침대가 부서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이미 어느 정도 적응을 마친 상태였다.
“넌 이제 어려운 임무를 하나 해야 할 거야.”
그녀의 표정은 사뭇 진지해져 있었다.
갑자기 임무라니 무슨……!?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아버지 영혼, 구하고 싶다며.”
그녀의 짧은 대답에 나 역시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김수민은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분명 김수민은 아버지의 영혼을 포기하라고 단호히 말하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돌변했다. 이유가 궁금했다.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감은 안 잡혀.”
잠시 뜸을 들인 김수민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솔직히 너의 몸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정확히 모르겠어.”
“당신이 한 거 아닙니까?”
내가 황당한 얼굴로,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묻기도 전에 그녀가 말했다.
“넌 괴물이야.”
인상을 찡그렸다. 사람 면전에 대고 괴물이라니. 그러나 김수민의 얼굴은 너무나도 진지했다.
“…….”
“영혼 수리공이 영혼을 강화할 때 하는 일은 딱 한 가지뿐이거든? 영혼이 잘 자라고 단단해질 수 있도록 튼튼한 뼈대를 만들어 주는 일이야.”
무슨 이야기인지 정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말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내가 너한테 한 것은 그 뼈대를 만들어 주는 일도 아니었어.”
그녀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젓고 있었다. 나는 령수에 몸을 담근 이후, 일말의 기억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궁금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다.
“난 그저 뼈대를 만들기 전의 기초 단계만 밟았을 뿐이야. 회귀로 인해 꼬여 버린 실타래를 풀어 주기만 했다고!”
나는 조용히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넌 스스로 뼈대를 만들기 시작했어. 그것도 내가 만드는 것보다 더 정교하게.”
나는 조금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의 말은 진심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어찌 된 영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털끝만큼의 기억조차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심각한 얼굴의 김수민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뼈대에 살과 근육까지 붙이기 시작했지. 령수를 빨아들이면서 말이야.”
“그럼…….”
“나도 몰라.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또 얼마나 강해졌을지 말이야.”
우리 둘은 똑같이 혼란스러워하는 얼굴을 짓고 있었다. 남이 본다면 이게 뭔 상황이냐며 낄낄대며 놀릴 만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더없이 진지한 상황이었다.
“…….”
“확실한 건 너는 미친놈이라는 거야.”
한층 더 심각해진 김수민이 말했다.
“네?”
“네놈은 거기서도 끝내지 않았어. 내가 볼 때 넌 모든 몸을 구성하고도 부족했는지, 남는 령수로 갑옷과 무기까지 만들려던 기세였으니까.”
영혼에 갑옷과 무기라니…… 확실한 비유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내 몸에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만은 확실했다.
“너는 앞으로 나한테 영혼을 다루는 법을 배울 거야. 그리고 얼마나 강해졌는지도 확인할 거고.”
김수민은 마치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권위적인 태도에 작은 반발심이 일었다.
“누가 한다고……!”
“해야 해! 그래야 아버지를 구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고는 김수민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내가 확실히 인정할 정도의 힘을 갖췄다고 생각되면…… 그땐 알려 줄게.”
“뭐를요?”
“로베루스 백작의 집에서 너희 아빠 영혼을 빼내 올 방법.”
나는 조용히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뗐다.
“왜 그렇게까지 도와주시는 겁니까?”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아무리 봐도 그녀가 나에게 이렇게까지 해 줄 이유는 없었다. 같은 한국인이라 베푸는 친절치고는 차고 넘치는 것들이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나도 빚이 있거든.”
김수민은 아버지에게 빚이 있다고 했다. 과거에 아버지를 도와준 것이 아니냐, 그걸로 어느 정도 빚을 갚은 게 아니냐 물었지만 김수민은 끝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포기한 채 물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 * *
몸을 숨기고 나온 나는 시장의 중앙에서 벌어지고 있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중이었다.
“이겨, 이 더러운 새끼야!”
“아, 죽이라고! 와 존나 답답하네. 저딴 새끼를 왜 넣은 거야! 진짜!”
흥분에 휩싸인 악마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아무렇게나 울타리를 쳐 놓은 공간. 그 안에서는 두 마리의 악마가 치열한 격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살이 찢기고, 내장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 멈추지 않았다.
딱 봐도 상태가 좋지 않은 둘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움직였다. 어째서인지 그들의 눈에는 아픔과 고통보다 더한 공포가 서려 있었다.
‘대체 왜……?’
나는 궁금했다. 대체 왜 저렇게까지 싸우는지, 또 저들을 공포에 몰아넣은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물음에 대한 대답은 오래가지 않았다.
긴 꼬리를 가진 악마가 적의 옆구리를 깊게 뜯어 물었다. 그러자 상대방은 검은 피를 뿜으며 주저앉았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공격. 매서운 공격에 악마는 완전히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와아아아!!”
“크하하하! 그렇지!”
“이길 줄 알았다고!”
“어휴, 병신아! 일어나서 싸워!!”
“너한테 건 돈이 얼만데! 일어나 싸우라고!!”
큰 환호와 함께 희비가 교차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펑!!
패자의 육신이 터져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끔찍한 광경을 본 악마들은 광분했다. 눈이 벌게지고 입맛을 다시는 악마까지 존재했다.
조금 전까지 살고 싶어 발버둥 치던 악마는 허겁지겁 달려가 패자의 영혼을 먹어 치웠다. 그러고는 흘러내리는 검은 피를 누르며 상처를 지혈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관중은 다시 한번 깔깔댔다.
“크하하핫! 소용없어, 병신아!!”
누군가의 비웃음 섞인 외침이 끝나자,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번 선수. 전투 불능으로 실격패 처리하겠습니다.”
사회자의 외침에 악마들은 환호했다.
“크으, 역시 화끈해!”
“놀 줄 안다니까!!”
퍼엉!
다시 한번 검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악마들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폭소를 터트렸다.
그 광기의 현장을 목격한 나는 핏발이 곤두섰다.
그와 동시에.
김수민의 말이 떠올랐다.
-죄책감 없이 쓸어버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을 살아가는 이들은 몬스터들과는 조금 다른 존재라고 생각했다.
언어를 사용하며,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하여 목숨이 노려지었을지언정 분명 다른 종류의 악마도 존재한다 믿었다.
그래서 꺼려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악마는 말 그대로 악마다.
그 어원은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착 가라앉은 눈으로 투기장의 정중앙을 향해 걸어 나갔다.
“뭐야, 저 새끼는!”
“새로운 선수인가?”
“처음 보는 놈인데?”
웅성거림이 심해졌다.
나는 그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기 시작했다.
충혈된 눈으로 자극만을 찾는 존재들. 짐승보다 못한 존재들이 자아내는 역겨움이 속을 메스껍게 만들었다.
나는 등에 걸친 누더기를 벗어 던졌다.
사념의 망토가 땅에 떨어지자, 내 원래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어?”
“내가 잘 못 본 거 아니지?”
캬아아악!!
짐승의 형태를 한 망령들이 그릉거리기 시작하고, 나를 발견한 수많은 악마는 얼마 전 소문의 주인공을 확인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산 자다!!”
누군가 소리쳤다.
어찌나 거대한 외침이었는지 시장 전체에 울려 퍼질만한 목소리였다.
“잡아!”
눈에 탐욕을 가득 담은 악마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산 자의 영혼을 비싼 가격에 팔기 위해, 누군가는 산해진미보다 귀한 영혼을 음미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어쨌든 그 눈알에 담긴 것은 모두 탐욕이었다.
쿠구구구.
심상치 않은 소음이 시장 안을 가득 메웠다. 거뭇했던 하늘이 더욱 검게 물들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중얼거렸다.
“나는 너희를…….”
캬아아악!
“나와! 이 새끼들아!!”
“비켜! 죽여 버리기 전에!”
발광하며 달려드는 녀석들에게 말했다.
“40층을 통과하기 위한 몬스터라고 생각할 거야.”
작은 중얼거림이었지만, 귀가 발달한 몇몇의 악마들은 비웃기 시작했다.
“닥치고 내 입속으로나 들어가!”
“크흐흐, 산 자가 죽은 자의 땅에서 뭘 할 수 있다고!”
입맛을 다시며 달려드는 악마들.
그 악마들 위로 작은 빛이 번쩍거렸다.
콰과과과광!!
“뭐야!”
“크윽!!”
번개를 직방으로 맞은 악마는 순식간에 즉사했다.
“크흐, 병신!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고 뒤지다…… 크헉!”
콰과광!!
땅에 처박힌 악마를 비웃던 악마 또한 즉사했다.
콰과광!!
또 한 번.
콰광!
다시 한번.
한 번의 낙뢰에 최소 하나 이상의 악마들이 절명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악마들은 멈춰 섰다.
하지만 난 그만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쿠구구구.
콰과과과광!!
단 한 줌의 앓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때까지…….
낙뢰를 시장 안에 뿌려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