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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42화 (42/175)
  •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42화

    42. 영혼 수리공(1)

    “그런데 왜 이렇게 화를 내?”

    “…….”

    표정을 유심히 살피던 그녀는 이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속에서 들끓던 분노를 그녀 역시 느낀 것이 틀림없었다.

    “아버집니다.”

    “뭐? 그 애송이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하고…….”

    흥미로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를 뒤로하고, 심각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버지의 영혼은 어떻게 된 겁니까? 이미…….”

    망자들은 영혼을 갉아먹는다. 그 사실을 알게 됐으니, 사실상 아버지의 영혼은 소멸했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확인은 해 봐야 했다.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

    그녀는 말이 없었다.

    표정이 어두워지려던 참,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아니.”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로베루스는 영혼을 먹지 않아. 그 녀석은 진귀한 영혼이 있으면 자신만의 박물관에 전시해 놓거든.”

    그녀의 말에 나는 눈빛을 빛냈다.

    “좋아하지 마. 찾을 수도 없으니까.”

    “그게 무슨……?”

    “조금 전 네 상황 잊었어?”

    그녀의 직설적인 말에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거지새끼 두 명만 붙어도 네 영혼의 반은 날아가. 그런데 백작한테 가겠다고? 정신 나갔어?”

    “…….”

    확실히 40층은 어디를 가든 강자들이 득실거리는 곳이었다. 다 늙어 쓰러지기 직전인 노점상의 노파부터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거지까지. 모두 버거운 상대였다. 분하지만 그녀의 말은 모두 옳은 소리였다.

    “그럼…….”

    “포기해. 네 아버지, 3분의 1의 영혼만 뜯긴 것만 해도 대단한 기적이었으니까.”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듯한 그녀는 미간을 찡그린 채 고개를 저었다.

    “방법이 없습니까?”

    “없어.”

    단호하게 말하는 그녀의 대답에 나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아버지의 영혼을 찾아주고 싶었다. 그래야만 아버지가 살 수 있을 테니까.

    “절대 이상한 생각하지 마, 넌 로베루스를 이길 수 없으니까.”

    그 말을 들은 나는 벌떡 일어나 그녀를 향해 목을 숙였다.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강해져서 반드시 되찾아야만 했다.

    아버지의 영혼을.

    “신세 졌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어디 가? 아직 용무 안 끝났는데.”

    그녀는 일어서는 나를 붙잡고는 다시 앉혔다.

    “내가 널 괜히 구해 준 줄 알아?”

    그녀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감돌았다.

    “그리고 내 물음에 솔직하게 대답해 준다고 하지 않았었나?”

    나는 조금 전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대가로 내걸었던 약속을 떠올렸다.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의자를 드륵 끌어 앉았다.

    “궁금한 게 무엇입니까? 아니, 그 전에…… 하나만. 대체 누구십니까?”

    “나? 아, 그러고 보니 이름도 말 안 했네. 내 이름은 김수민이야. 너는?”

    대답을 들은 나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한국인?”

    “그래, 너도 한국인이지? 그 애송이 놈의 자식이면 천씨겠구나?”

    “네, 천도윤입니다.”

    나는 어딘가 이국적인 이목구비를 가진 그녀를 보고는 다른 세계에서 온 인물인 줄 알았다. 그런데 한국인이라니…….

    김수민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성은 애잔한 눈빛을 띠고 있었다.

    “그립네. 한국…….”

    “그런데 대체 어떻게?”

    “말하자면 길어. 그보다 내 물음에 답해야지.”

    김수민은 나를 보며 눈을 밝혔다.

    나는 약속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질문이든 하라는 신호였다.

    “그거 어떻게 만든 거야?”

    김수민은 내 반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녀석들에게 쫓기고 있을 때, 나와 있던 암살이가 반지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한 모양이었다.

    “제 능력입니다.”

    “오호, 네크로맨서 그런 건가?”

    “아니요.”

    나는 김수민에게 대략적인 능력을 설명했다. 그러자 김수민은 고개를 끄덕하고는 말을 이었다.

    “빌려줄 수 있어?”

    “네?”

    “빌려줄 수 있냐고.”

    “안 됩니다.”

    단호하게 대답했다. 내 자식 같은 새끼를 초면인 사람에게 어찌 빌려준단 말인가. 단칼에 거절하는 나를 본 김수민은 인상을 찡그렸다.

    “생명의 은인한테 치사하게, 너한테도 도움 되는 일이야.”

    “그게 무슨…….”

    황당한 말에 내 경계심은 더욱 늘어났다.

    그 모습을 본 김수민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 직업이 뭔지 잊었어?”

    “영혼 수리공…….”

    작게 읊조리자, 김수민이 냉큼 말을 잡아챘다.

    “그래, 영혼 수리공! 나는 희귀한 영혼 연구할 수 있어서 좋고, 너는 소환수가 강해지니까 좋고. 어때? 서로 좋은 거 아니야?”

    “소환수가 강해져요?”

    놀란 눈으로 묻자, 김수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영혼 수리공은 단순히 영혼을 복구하는 일만 하는 게 아니야. 구멍 난 영혼을 알맞은 영혼으로 채우기도 하고, 필요 없는 영혼을 덜어내기도 하면서 영혼의 균형을 맞춰 주지.”

    장황한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단…….

    ‘저 말이 사실이라면 말이지.’

    “너 지금 나 의심하냐?”

    “아니요.”

    “의심했잖아! 지금 영혼 떨리는 거 다 봤거든!”

    그녀는 놀랍게도 내 생각을 읽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말을 돌렸다.

    “영혼 수리라는 게 어떤 건지 도저히 감이 안 잡히는데요? 설명 좀…….”

    그녀는 한번 넘어가 준다는 표정을 짓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흠…… 그럴 만하지. 여기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보이니까.”

    잠시 설명할 말을 고르던 김수민은 인상을 팍 찡그리더니,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설명하기 귀찮아. 그냥 닥치고 내놔!”

    “뭐, 이런…….”

    “내놓으라고, 밖에 나가서 악마들 불러오기 전에.”

    그녀는 안하무인의 태도로 손을 쭉 내밀며 협박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나는 미간을 좁히며 힘을 개방했다.

    “오호, 나랑 싸우려고?”

    김수민은 웃고 있었다.

    마치 칼싸움하자며 덤비는 8살 먹은 조카를 상대하는 느낌이었다.

    “구해 주신 것은 감사하지만, 제 소환수는 드릴 수 없습니다.”

    나는 날카로운 눈으로 김수민을 노려봤다.

    “후…… 의심 많은 건, 제 아비랑 똑같네. 아주.”

    김수민은 나를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고는 포기했다는 듯 양손을 들어 올렸다.

    “…….”

    “네 아빠도 받았던 수술이야.”

    “그건…….”

    ‘치료를 받았던 것 아니냐’라고 물으려던 찰나, 김수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쩐지 자존심이 상한 듯한 말투였다.

    “허, 애송이 축에도 못 끼는 애새끼가 이 몸을 무시하네? 내가 고작 그 애송이에게 영혼 이어붙이는 작업만 했을까 봐?”

    “왜 아까부터 아버지에게 애송이라고…….”

    아무리 그래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문 천가의 주인이다. 현세의 누군가 들었다면 학을 떼며 기겁할 만한 소리를 저 여자는 거침없이 뱉어 내고 있었다.

    “그럼 애송이한테 애송이라고 하지 뭐라고 할까? 내가 그 녀석보다 50살은 많은데.”

    “네?”

    “왜, 너무 아기 피부라 안 믿겨?”

    히죽 웃은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내가 그놈 영혼 싹 다 뜯어다가 재조립하고 균형 맞춰 주고 강화해 줘서 그 정도지. 아니었으면 여기서 살아서 탈출하지도 못했어.”

    충격적인 말에 나는 입을 떡 벌렸다.

    만약 이 여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버지가 세웠던 놀라운 업적들의 시작에는 이 여자가 있었다는 이야기니까.

    “그놈, 아무리 그 꼴로 나갔어도 밖에선 상대할 만한 상대가 몇 없었을걸? 아니야?”

    “대한민국 최고입니다.”

    “그 애송이가?”

    “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던 김수민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위험한데…….”

    “대체 뭐가……?”

    “그 녀석 영혼이 마모되어 곧 수명이 다할 거야.”

    그녀의 말을 들은 나는 화들짝 놀랐다.

    김수민은 아버지가 했던 말과 정확히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심각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얼마 전에 말씀하셨습니다. 곧 본인의 수명이 다할 거라고.”

    “그 자리까지 갈 정도면 무리를 안 할 수가 없지.”

    김수민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방법이 없습니까?”

    “없어. 남은 3분의 1의 영혼을 때려 박지 않는 이상…….”

    내 눈빛을 읽은 김수민은 양손을 들며 나를 만류했다.

    “너! 안 돼!!”

    “…….”

    “어쩔 수 없는 일이야. 포기해. 그리고 너희는 아직 더 큰 문제가 남아 있어.”

    아버지의 죽음보다 더 큰 문제라니, 나는 솟아오르는 분노를 조용히 다스렸다.

    “그게 뭡니까?”

    싸늘한 내 질문에도 김수민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대답했다.

    “약해. 너무너무.”

    어이없는 대답에 내 표정은 더욱 차갑게 식어 갔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너희들은 너무 약하다고, 지금 마계 쪽에서 지구를 노린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심각해진 그녀의 얼굴을 보자, 더 이상 장난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신빙성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어쨌건, 나는 미래의 정보를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어진 그녀의 말을 듣고는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미래는 바뀌고 있어.”

    “그걸 어떻게……?”

    나는 넋이 나간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너의 영혼의 구성은 예사롭지 않거든. 절대 존재해선 안 되는 것들이 섞여 있어. 이를테면 같은 구성이 반복되어 있다거나, 도저히 존재할 수 없는 경험이 겹쳐 있다거나…….”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느낌의 그녀는 영롱한 빛을 띠는 눈동자로 나를 훑고 있었다.

    “혹시…… 회귀자니?”

    나는 화들짝 놀랐다.

    “역시 이곳에 오는 애송이들은 하나같이 정상이 없네.”

    그녀는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러고는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 나한테 목숨 안 맡길래?”

    * * *

    갑작스레 생긴 수많은 일과 정보가 겹쳐 머릿속을 마구 헤집고 있었다.

    뜬금없이 목숨을 맡기라는 그녀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내 상태와는 무관하게, 결심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김수민이 말했다.

    “로베루스 녀석은 몰라도, 저 밖에 있는 녀석들 무쌍으로 쓸어버릴 정도는 만들어 줄게.”

    “그게 무슨…….”

    넋이 나가 있던 와중에도 그녀의 말은 퍽 흥미로운 것이었다.

    나는 궁금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먹이를 앞에 둔 뱀처럼 나를 훑으며 말했다.

    “단, 살아남을 수 있다면 말이야.”

    그녀의 위험한 유혹에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곧 있을 일본과의 전투. 그곳은 아버지만큼이나 강력한 적들이 있는 곳이었다.

    암살이와의 대련을 통해 가공할 만한 성장을 이뤄 내긴 했지만, 적의 전력은 미지수였다.

    게다가…… 나는 더 강해져야 하는 이유를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이곳에서조차 나는 약자다.’

    40층은 괴물들이 득실대는 곳이었다.

    구걸하는 거지들조차 피해 없이 싸워 이길 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 곳.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지구는 위험해질 것이었다.

    나는 아직 약했다.

    앞으로 닥칠 위기도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의 영혼을 구해 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일었다.

    “하겠습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대답을 들은 그녀는 만족한 얼굴로 나를 한 곳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데리고 간 곳은 거실의 정 중앙이었다.

    나를 한쪽으로 세운 그녀는 발밑에 깔린 붉은 카펫을 옆으로 젖혔다. 그러고는 홈이 파인 나무판자에 손을 집어넣더니 번쩍 들어 올렸다.

    “머리 안 부딪치게 조심히 내려와.”

    그녀의 뒤를 따라 바닥에 생긴 비밀통로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좁고 어두운 공간이었다. 계단을 모두 내려가자, 넓은 공동이 나왔다.

    “어서 와! 내 작업실이야.”

    김수민은 양손을 펼쳐 가며 자랑스럽다는 듯 자신의 작업장을 소개했다.

    나는 천천히 작업장 안을 둘러봤다.

    다양한 문양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처음 보는 물건들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저것이었다.

    정중앙에 떡하니 위치한 거대한 솥.

    솥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거대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푸른색 액체가 펄펄 끓고 있었다.

    영롱한 빛을 띠는 액체. 그것을 신기하게 쳐다보던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는 얼이 빠져 버렸다.

    “뭐 해? 안 들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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