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40화
40. 죽음의 탑(2)
“허억, 허억! 한 번 더!”
나는 숨을 몰아쉬며 암살이에게 외쳤다.
암살이는 내 의지에 반응해 자신의 낫을 들어 올렸다.
쿠오오오오.
녀석은 죽음의 기운을 흩뿌리며 내게 달려왔다.
쾅-!
“어째 더 빨라진 것…… 크윽!”
나는 재빨리 몸을 굴려 녀석의 낫을 피했다.
검은 낫이 허공을 가르고, 방향을 틀어 다시 쇄도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
이제는 물 위를 부유하는 이질적인 느낌도, 바닥 위를 둥둥 떠다니는 허함도 모두 익숙해진 상태였다.
이곳의 시간으로 약 3달째.
나는 매일같이 암살이와 대련 중이었다.
삼삼오오 모여 호시탐탐 나를 노리는 불순한 망자의 거친 공격을 받아 내기에는 많은 리스크가 따랐기 때문에 나는 39층까지 모두 점령한 암살이와만 대련을 하는 중이었다.
한 번 영혼이 훼손되면 복구할 수 없다는 무시무시한 알림음 때문이었다.
캉-!
녀석의 낫이 땅을 움푹 팼다.
날카로운 공격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어찌 됐건, 녀석은 나의 좋은 상대였다.
내 한계를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누구보다 안전한 상대였다.
녀석은 내가 피하지 못할 만한 공격은 속도를 급격하게 줄이거나 앞에서 멈춰 세웠다.
나는 다시 한번 줄어든 공격 속도를 확인하고는 미간을 좁혔다.
“젠장!”
몸을 날려 녀석의 공격을 흘려보냈다.
“하아, 하아.”
이 모든 것은 녀석의 실력이 나보다 뛰어나다는 방증이었다.
“쪽팔리게…….”
소환수보다 약한 주인.
어디 가서 고개 들기도 힘들 만큼 창피한 일이었다.
그래서 난 더 악을 쓰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한 번 더!”
나는 포효하듯 소리쳤다.
* * *
두 달이 흘렀다.
이젠 제법 그럴듯한 대련이 완성되었다.
다시 두 달이 흘렀다.
팽팽한 공방이 오가기 시작했다.
그 후로 다섯 달이 흘렀다.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나는 눈에 띄게 성장해 있었다.
망령들은 더 이상 탐욕스러운 눈빛을 보내지 않았다. 밤이면 밤마다 암살이의 눈을 피해 내 영혼을 호시탐탐 노리던 야욕 넘치던 녀석들의 눈은 어느새 순한 양이 되어 있었다.
카가가각-!
“크윽!”
내가 만들어 낸 밀도 높은 얼음이 녀석의 낫을 막아 내고 있었다.
“오늘은 내가 이긴다!”
묵혀 왔던 감정을 토해 냈다.
눈에 이채를 띤 녀석은 더 이상 힘을 숨기지 않았다. 나 또한 그러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서로를 이기기 위해 합을 나눴다.
쾅-!
그리고 마침내…….
녀석을 흑마 아래로 떨어뜨리는 데 성공했다.
꼴사납게 바닥을 구른 녀석은 벌떡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나 역시 달렸다.
암살이가 흑마에 올라타면 더욱 상대하기 까다로워진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림없지!”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재빨리 몸을 날렸다.
녀석은 그것을 노렸는지, 내 영혼을 양단할 기세로 낫을 휘둘렀다.
나는 재빨리 빙 속성을 이용해 녀석의 팔을 둔화시켰다. 잠깐뿐이겠지만 그것이면 충분했다. 재빠르게 몸을 회전시킨 나는 녀석의 목에 손을 가져갔다.
턱.
“……!”
녀석의 거대한 낫이 땅에 떨어졌다.
손을 축 늘어뜨린 녀석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히이이이잉.
흑마 역시 터벅터벅 다가와 납작 엎드렸다.
“……!”
그 모습을 본 나는 영혼이 불안전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일순 온몸을 뒤덮은 끝 모를 희열이 흥분감을 자아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됐어!!”
이를 구경하던 망령들이 저마다 다른 울음을 짖어댔다.
* * *
자그마치 1년.
그 긴 세월 동안 한 일이라곤 녀석과의 대련뿐이었다.
“밖에서는 고작 12일인가?”
허무했다.
이렇게 긴 시간 수련을 했는데, 바깥의 시간으로는 고작 보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라니…….
하지만 그래서 더 의미 깊었다. 짧은 시간 안에 성장한 것이니.
나보다 더 뿌듯해하는 암살이가 눈에 들어왔다.
새삼 홀로 30층에 빨려 들어가 고생했을 암살이가 대견스러웠다.
“많이 외로웠겠네…….”
흑마를 쓰다듬자 녀석은 기쁘다는 듯 그릉거렸다.
그러다 멈칫했다.
떠올라온 알림음 때문이었다.
[새로운 ‘경계의 지배자’가 되셨습니다.]
[30층 대의 모든 망자가 당신을 우러러봅니다.]
[‘죽음의 입구’가 개방됩니다.]
29층에서 봤던 빛보다 더 어두운 빛이 39층의 정중앙에 생겨났다.
칠흑 같은 어둠이 빛나고 있었다.
“역시…… 가 봐야겠지?”
많은 성과가 있었지만, 내가 바라는 경지는 고작 이 정도가 아니었다.
일본에 가기 위해서는 조금 더 강해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
“죽음의 입구라…….”
이제야 무언가의 시작을 알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 * *
잔뜩 긴장한 상태로 내려온 40층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깡-!
황량한 벌판에 망령들이 뒤엉켜 싸우던 위층과는 다르게 이곳은 어쩐지 평화로운 느낌이었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처음 듣는 언어였지만, 어째선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 거참! 싸게 달라니까!”
“이보다 싸게 어떻게 줘! 굶어 죽으라고?”
“난 이미 굶어 죽게 생겼어, 이 사람아! 우리 아들 박쥐 스프 하나 못 먹고 3일째네.”
투덜거리는 붉은 외형을 지닌 악마와 한쪽 눈을 잃은 돼지 외형의 도살자.
눈에 들어온 것은 한마디로 기형적인 악마들의 일상생활이었다.
“허…….”
나는 어이없는 현상에 헛숨을 들이켰다.
들어가자마자 지옥도가 펼쳐질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40층은 평화 그 자체였다.
걸어가는 나와 암살이를 향해 눈길 하나 주는 이가 없었다.
그 모습에 나는 더욱 황당했다.
‘안 싸워?’
단단히 결심하고 내려왔건만,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동시에 잘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길가는 행인 하나, 하나가 살 떨릴 정도의 기운을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40층은 39층과는 격이 다른 놈들이 사는 곳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북적이는 시장통을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설명하기도 역한 기괴한 물건들이 많이 있었다.
오크의 머리통, 홉고블린의 눈알, 오우거의 아킬레스건 등 어디에 사용하는 물건인지 도통 알 수 없는 것들이 즐비했다.
심지어 인육을 취급하는 곳까지 있었다.
작은 분노가 일었지만, 살기를 내비칠 수는 없었다.
이곳에 존재하는 녀석들은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저 꼬마 아이마저 강자였으니까.
올라오는 구역감을 간신히 참은 뒤 자리를 옮겼다.
혼란스러운 나는 이곳을 한 번 둘러본 뒤 다시 39층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어째서인지, 40층부터는 해당 층을 클리어하지 않아도 포탈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참 다행이다 싶었다.
“악마가 아니네?”
돌연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가 돌아갔다.
바닥에 작은 노점을 깐 노파였다.
나는 인간과 닮은 외형에 머리 위로 작은 뿔이 나 있는 악마를 바라봤다.
노파 역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망자의 형태로 40층까지 내려오다니…… 어지간히 강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인데…….”
쇠약해 보이는 외형이었지만 그녀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마치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의 눈빛과 많이 닮아 있었다.
“혹시 벙어린가?”
갑작스러운 물음에 당황한 나는 입을 뻐끔거렸다.
“어…… 혹시 알아들으시나요?”
“끌끌, 자네 이곳이 처음이구만!”
노파는 재밌다는 듯 흘흘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아닌데요.”
“아니긴…….”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은 노파가 말했다.
“나도 여기 오래 지냈지만, 인간의 외형을 지닌 망자가 이곳에 오는 것은 두 번째야. 자네는 아주 귀한 구경거리군. 흘흘.”
노파의 말에 흥미가 동했다.
“두 번째라뇨?”
“아주 오래전이었지. 그 녀석은 심지어 망자도 아니었…… 가만!”
노파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노파.
“크크크. 크하하하핫!”
그 순간 노파의 입꼬리가 기형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노인과의 거리를 벌렸다.
슈욱-!
그 자리엔 늘어난 노인의 팔이 자리했다. 날카로운 손톱이 위치한 곳은 정확히 내 목이 있던 자리였다.
“뭐 하는 짓입니까!”
사람, 아니 악마들의 이목이 쏠렸다.
그들 중 몇몇은 하던 일을 멈추고 간만에 재미난 구경거리가 나타났다는 얼굴로 나와 노파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찌 된 상황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노파가 소리쳤다.
“죽은 자의 땅에 산 자가 들어왔다!!”
북적거리던 시장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누군가는 망자의 형태를 한 나를 보며 인상을 찡그리고는 다시 제 일을 하기도 했지만, 몇몇은 눈을 밝히며 다가오고 있었다.
“영감, 그게 정말이야?”
“그렇대두!”
노파는 주름진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그 모습을 바라본 선두의 검은 악마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저번에도 그러다 허탕 친 거 알지? 이번에도 거짓말이면 산채로 뜯어먹을 거야.”
“흥! 그러든지 말든지! 대신 저놈 잡으면 영혼의 반은 내꺼다!”
“아무것도 안 하고 코만 풀라고? 양심이 없네. 삼 분의 일!”
“……좋다! 대신 머리는 양보 못 해!”
“콜!”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다가오는 악마.
그리고 그의 뒤를 따르는 젊은 악마들.
나는 식은땀이 흐르는 것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심장이 뛰고 있었다.
‘빠져나가야 해!’
둘러싸이는 순간, 진짜 망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뒤를 돌아 뛰기 시작했다.
동시에 옆에 있던 암살이가 거대한 낫을 휘둘러 참격을 뿌려 댔다.
“크윽!”
“쫓아!”
곧장 위로 향하는 포탈로 향하고 싶었지만, 그곳에는 이미 수많은 악마가 진을 치러 가고 있었다.
지금은 몸을 숨기는 게 최선이었다.
나는 암살이에게 흑운을 사용해 녀석들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크윽, 귀찮게.”
역시 녀석들은 실력이 뛰어나서 그런지 암살이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 말은 곧 나 역시 흑운을 이용해 몸을 숨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어떻게 하지?”
나는 계속해서 달리며 악마가 몰려 있지 않은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시장의 외곽.
구걸하는 악마들이 뜨문뜨문 퍼져 있는 곳으로 향했다.
확실히 더럽고 악취 나는 빈민촌이라 그런지, 앞에서 따라붙는 이는 없었…….
“저 녀석 잡으면 오늘 배 터지게 먹여 준다!”
“진짜? 누구? 저놈?”
“그래!”
“씨발, 너 일로 와! 뒤졌다. 넌!”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악마들이 눈에 불을 켜며 달려들었다.
앞과 뒤 모두 악마들이 달려오는 상황!
나는 하는 수 없이 옆에 보이는 작은 골목길로 들어갔다.
“헉, 허억!”
구불구불한 좁은 길을 쉴 틈 없이 달렸다. 그러다 두 개의 갈림길이 나왔다.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오른쪽으로 달렸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잘못된 선택이었다.
막다른 골목.
앞을 막고 있는 거대한 벽이 눈에 들어오자 눈앞이 깜깜해졌다.
타다다닥-!
저 멀리서 욕설을 지껄이며 달려오는 악마들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결국 체념한 채 심호흡을 길게 내쉬었다.
이렇게 된 이상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1년간의 수련을 확인해 볼 순간이었다.
나는 천천히 활력을 개방하기 시작했다. 응축된 힘이 전신을 감쌌다.
‘암살이와 내가 함께 공격하면…….’
좁은 골목이니 그래도 할 만해 보였다.
타다다닥-!
발소리가 더욱 가까이 들렸다.
이제 저 코너만 돌면 나와 눈이 마주치리라…….
타다다닥!
“시발, 내 밥! 어디 갔어!”
목소리가 더 가까이 들리기 시작했다.
지척이었다.
녀석들이 고개를 내미는 순간이 바로 전투의 시작이었다.
나는 온몸에 뇌 속성의 전격을 둘렀다.
그리고…….
“자살하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