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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36화 (36/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36화

36. 지각 변동(3)

“그저 가정입니다. 가주님! 제가 원하는 것은 천진오와의 대련입니다.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녀석은 뻔뻔스럽게도 질문을 넘기며 자신의 목적을 말했다.

“불허한다.”

단칼에 거절이 들어왔다.

그러나 녀석은 굽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원로들의 의견에 따르는 것은 어떻습니까? 가문의 중대사입니다.”

천지훈은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원로들 대부분이 자신의 편이라는 것을 노리고 발언한 것이다.

하나, 이번에도 천태산은 거절했다.

천지훈의 표정이 굳어졌다.

“가주님 어찌 이리 독단적으로 결정을 하십니까? 가문의 존망이 달린 일입니다.”

“독단이라…… 네가 말하지 않았느냐? 천가가 걷는 길은 패도라고.”

“그게 무슨……!?”

공기가 무거워졌다.

대기가 진동하고 중력이 늘어난 듯 거대한 기운이 몸을 짓눌렀다.

무력이 약한 어린 생도들은 개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중이었다.

하나 천태산은 조금도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내가 곧 천가이고 천가가 곧 나다. 내 의견에 불만 있느냐?”

천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저 궤변에 반기를 들었다가는 천가를 부정하는 꼴이 나 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말한 길을 부정하는 것이기도 했다.

무거운 침묵은 계속되고,

마침내 천태산의 입술이 움직였다.

“하나 묻겠다.”

“무엇을 말입니까?”

“너는 분명 천가는 가장 강한 사람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맞느냐?”

“그렇습니다.”

“그 강함이란 무엇이냐? 현재에 있는 것이냐, 미래에 있는 것이냐?”

“모두입니다.”

천지훈은 당당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너는 가주가 될 수 없겠구나.”

가주의 대답에 천지훈은 당황했다.

“현재 나보다 강한 자는 없다. 동의하느냐?”

“예, 하지만 지금은 ‘차기’ 가주를 뽑는 자리입니다.”

“미래를 보고 투자해라 이 말이냐?”

“예.”

“나는 네놈이 미래에도 가장 강해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구나.”

“가주님!!”

천지훈은 발끈했다.

“제가 천진오…… 아니 형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

천태산은 침묵했다.

그의 눈빛은 어쩐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증명하겠습니다. 제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또, 누가 가장 가주 자리에 어울리는지!”

천지훈은 기운을 끌어올리며 여전히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불허한다.”

“가주님!”

“기회는 주마.”

그 말을 들은 천지훈의 기세가 조금 누그러들었다.

“차기 가주위는 유지한다. 그러나 일 년 뒤, 네놈이 가문의 위상을 드높일 만한 실적을 쌓는다면 대련을 허락하마!”

가주 천태산은 이것으로 차기 가주위에 대한 논란을 잠재웠다.

결정을 들은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천지훈의 조금 전 언행으로 봤을 때, 천지훈은 최악의 상황까지 이미 생각하고 있었을 확률이 높았다.

자신이 가주가 되지 않으면, 가문을 팔아넘겨 버리겠다는 더러운 속내가 은연중에 드러난 것이다.

어쩌면 가주가 되고 난 뒤에도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 가문을 팔아넘기려는 속셈일지도 몰랐다.

‘쓰레기 같은 새끼!’

어쨌든, 결정 시기를 늦춘 것은 아주 바람직한 방법이었다.

가주의 발언에 천지훈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 녀석만큼은 인정 못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불똥이 나에게로 튀었다.

천지훈의 더러운 손이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흑운은 천가를 지키는 방패이자 검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그렇다.”

“그런데 어째서 도윤이입니까? 흑운의 자리는 천진오나 저. 둘 중 차기 가주에 뽑히지 않은 자가 가져가는 게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가주의 물음에 천지훈의 입술이 거침없이 움직였다.

“도윤이는 약하기 때문입니다. 고작 2급 생도에게 쩔쩔맸다고 들었습니다. 가문의 수호를 그런 녀석에게 맡길 셈이십니까?”

천지훈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흥.”

그때 어디선가 비웃음이 들려왔다.

소리의 발원지는 가주의 바로 옆이었다.

“아주, 자기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는군.”

“지금 뭐라고…….”

“누가 네놈이나 저놈을 내 제자로 받아들인다고 했느냐?”

벌레를 보는 듯한 시선이 천지훈에게 꽂혔다.

천지훈은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

“연민입니까?”

“뭐라?”

“연민이냐 물었습니다. 혹여, 스무 살이 되어 겨우 힘을 찾은 도윤이가 불쌍하셨습니까?”

“대답할 가치도 없구나.”

“그것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입니까?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천도윤은 차기 흑운의 자리에 어울리는 인물이 아닙니다.”

천태백의 미간이 좁혀졌다.

“무엇을 보고?”

“아직 걸음마조차 떼지 못한 아이입니다. 인정할 수 없습니다.”

천지훈은 열변을 토해 내듯 말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마치 동의를 구하는 모양새였다.

많은 가문의 사람들이 일리가 있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내뱉어 버렸다.

“네가 인정 못 하면 어쩔 건데?”

* * *

행사장 안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크하하하하!!”

곧이어 웃음을 터트린 것은 천태백이었다.

그는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한참이나 웃어 댔다.

“너…….”

천지훈은 황당해하는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지금껏 벌레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한 녀석이 대드니 당황한 거겠지.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말했다.

“어쩔 거냐고! 이미 결정 난 사안인데.”

천지훈은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향해 성큼 다가왔다.

그의 주위로 작은 스파크가 일었다.

“안 본 사이에 정신이 나갔구나?”

나는 녀석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 냈다. 그리고 천천히 힘을 끌어올리려던 순간, 큰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왔다.

“크하하하, 녀석 말이 맞다!”

“흑운!”

천지훈의 노기 섞인 음성이 행사장 안을 가득 메웠다.

“이미 공표한 사실이다. 불만이 있어 결정을 뒤집고 싶거든 그에 상응하는 것을 걸어야 하지 않겠느냐?”

천태백은 재밌는 스포츠 경기를 보듯 나와 천지훈을 번갈아 가며 보고 있었다.

“이것은 게임이 아닙니다. 가문의 중대사입니다.”

“내가 그것을 모를까…….”

“정말 당신의 결정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야기하는 스승님을 보자 왠지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녀석은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좋습니다.”

“끌끌, 좋다. 무엇을 걸겠느냐?”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한가지 들어드리겠습니다.”

“뭐든 말이냐?”

“예! 단, 녀석의 증명은 제가 원하는 방식대로 하게 해 주십시오.”

흑운은 흥미롭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좋다. 어떤 방식을 원하느냐? 저 녀석과 대련이라도 하겠느냐?”

“예.”

순간 대화를 듣던 모든 가문 사람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말도 되지 않는다 생각한 것이다.

천지훈은 뇌룡이라 불릴 만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헌터였다. 반면 나는 힘을 되찾은 지 몇 개월도 지나지 않은 초짜 중의 초짜.

가문의 사람들은 나를 차기 흑운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나, 내기 자체는 너무 터무니없다고 느끼는 눈치였다.

“…….”

천지훈은 당황해하는 흑운의 얼굴을 보고 싶었는지 큰아버지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큰아버지는 어떠한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아쉬움이 남았는지 입맛을 쩝 다신 천지훈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물론, 능력이 개방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동생에게 많은 것을 바라진 않습니다. 저에게 딱 한 번. 한 번만 공격을 성공시킨다면 제가 진 것으로 하겠습니다.”

“너무 쉬운 내기구나.”

“이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문의 사람들은 천지훈이 어느 정도의 명분은 가져가면서도 절대 질 수 없는 내기를 건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몇 달 전까지 2급 생도에게도 쩔쩔맸던 몸. 아무리 실력이 늘었다 한들 천파의 대표 천지훈에게는 털끝 하나 스치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천태백이 나를 바라봤다.

할 수 있겠냐 묻는 듯한 표정이었다.

걱정이 담긴 얼굴이었다.

그럴만했다.

스승님은 내가 던전에서 나오자마자, 성취를 묻기도 전에 나를 이곳으로 끌고 왔으니까.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미소 지은 천태백이 말했다.

“좋다. 받아들이마.”

* * *

대련의 준비는 간단했다.

거리를 넓히고, 바닥에 거대한 석판 몇 장을 깔고는 안전 막을 치는 것이 다였다.

주위를 둘러보자,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는 눈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어딜 주제도 모르고 그 자릴 넘보느냐는 태도.

그러나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저런 시선이야 늘 받아 왔던 것이었고, 또 지금 신경 써야 할 녀석은 따로 있었다.

“못 본 사이에 아주 건방져졌구나.”

나는 녀석을 본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녀석은 아니었다.

가문을 떠나기 한참 전부터 보기 힘들었으니, 족히 4년은 지났으리라.

“몇 년 사이에 날 본 적이나 있고?”

녀석의 눈썹이 꿈틀했다.

“악감정은 없다. 단지 가문을 위한 일일 뿐이야.”

“가문을 위한 일…….”

나는 녀석의 말을 곱씹었다.

구역감이 올라오는 것을 애써 억눌렀다.

가문을 완전히 팔아넘기고, 일가를 몰살시켰으며, 나와 천우진까지 눈 하나 깜짝 않고 죽인 놈이 가문을 위한다니…….

참으로 가당찮았다.

가슴을 태우는 분노를 꾹꾹 눌러 담았다.

“천석일을 이겼다는 소리는 들었다. 제법이야. 하지만 그걸로는 가문을 지키기엔 턱도 없이 부족하지.”

녀석은 내 실력을 몇 달 전 2급 생도들과 싸울 때 정도로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저리 여유를 부릴 수 있겠지.

나는 조용히 주먹을 말아 쥐었다.

‘아직이다.’

나는 가문 역사상 29층을 통과한 두 번째 인물이었지만, 천지훈은 매일같이 던전을 돌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녀석이었다.

지금 녀석의 실력이라면 29층 정도는 손쉽게 통과하고도 남을 터.

일신의 무력은 녀석이 더 뛰어나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단, 일신의 무력만 따진다면 말이다.

나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비장의 패가 남아 있었다.

바로 암살이와 우마.

녀석들과 함께라면 천지훈과의 대결에서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 패는 최대한 숨길 생각이었다.

내가 만족할 만큼이 되기 전까지는.

“형은 못 본 사이에 말이 많아졌네.”

나는 자세를 잡았다.

뒤이어 자세를 잡을 줄 알았던 녀석은 여전히 여유를 부리는 중이었다.

“준비됐느냐?”

“네.”

“넵.”

우리는 동시에 대답했다.

“그럼 시작해라!”

심판으로 나섰던 큰아버지의 손이 내려가고…… 우리는 서로를 마주 봤다.

녀석은 주먹을 말아쥔 내 모습을 보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크큭! 너 정말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구나?”

“…….”

“내가 너무했네. 가문의 기본 무술조차 배우지 못한 너를 상대로…….”

녀석은 낄낄거리며 불쌍하다는 듯 나를 내려다봤다.

그 역겨운 시선을 느끼자, 속에서 살의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천지훈은 양팔을 으쓱 들어 올리더니 나에게 말했다.

“미안하다. 이제 겨우 기는 너를 상대로. 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으마. 네가 이곳에 들어와서 날 때리면 너의 승리다.”

천지훈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상냥한 말과는 반대로 녀석의 몸 주위에는 엄청난 양의 전격이 날뛰듯 흘러나오고 있었다.

일반인이라면 닿는 즉시 타죽을 만큼 엄청난 위력을 가진 전격!

녀석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동시에 뱀과 같은 눈으로 나를 노리고 있었다.

범위에 들어온 순간 날 태워 죽일 만큼 지질 생각에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천지훈에게 말했다.

“후회하지 마라.”

“후회는 무슨…….”

쾅-!!

그 순간, 녀석의 머리가 바닥에 처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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