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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33화 (33/175)
  •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33화

    33. 인버스 타워(Inverse Tower)(5)

    “누가 될 것 같아?”

    “염화.”

    “뇌룡이 아니라?”

    “응.”

    말을 건 사내는 미간을 구겼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대방은 뇌룡의 우위를 확신하며 점쳤기 때문이었다.

    의문을 표하는 사내에게 백인 남성이 말했다.

    “레닌에게 들었어.”

    “Fuck!!”

    쾅!

    레게머리를 한 정장 차림의 흑인은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쳤다.

    테이블이 산산이 부서졌지만, TV를 보던 백인은 익숙한 일인 양 웃으며 물었다.

    “크큭…… 너 설마?”

    “뇌룡에 오만 불 걸었는데.”

    “크흐흐.”

    “내 오만 불…….”

    “돈도 많은 놈이 꼴랑 그거 가지고.”

    낄낄대는 백인은 흑인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렇듯 천가의 차기 가주 임명식은 지구 반대편 국가에서까지도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이었다. 누가 뽑힐지 내기 도박을 할 만큼.

    염화(炎火) 천진오와 뇌룡(雷龍) 천지훈.

    누가 천가의 주인이 되느냐에 따라 많은 이권과 세력이 움직일 터였다.

    모든 플레이어의 눈이 천태산의 입술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나저나 왜 아무것도 안 보여 줘?”

    TV를 보던 흑인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실시간으로 번역되고 있는 화면에서는 애꿎은 천가의 외관만을 비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공개래.”

    “What the……? 진짜 한국은 존나 재미없는 나라네. 이탈리아 바가렐라 녀석들처럼 모아두고 피 터지게 싸움이라도 붙여야 제맛인데.”

    “걔네들은 늘 과해.”

    “과하긴, 그게 진짜 남자다운 거지. 쟤들은 흠…… 결국 보스한테 아부 잘하는 놈이 이기는 거 아니야?”

    사내는 맥이 빠졌다는 듯 냉장고를 열어 커다란 맥주를 벌컥 들이켰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백인 남성은 짐짓 심각해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계획을 다시 짜야겠네.”

    “염화 녀석이 되면 골치 아파지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둘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TV를 주시했다.

    * * *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죽음을 섭취합니다.]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죽음을 섭취합니다.]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죽음을 섭취합니다.]

    …….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36층을 클리어했습니다.]

    30층으로 내려간 암살이는 순식간에 36층을 넘어 37층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올라오는 알림음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죽음의 시간은 현재보다 빠르게 흘러간다.

    그 밀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것은 30층 이하의 시간은 이곳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이러다가 잡아먹히는 거 아니야?”

    덜컥 겁이 날 정도로 빠른 성장 속도였다.

    [데스나이트 ‘암살이’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잘 오르지 않던 레벨까지 쑥쑥 오르는 것을 보면 확실했다.

    아래층에는 우리의 기준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존재했다.

    “이러면 내려가고 싶어지는데…….”

    폭발적인 성장 중인 암살이를 생각하던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저곳은 죽음의 영역이었다.

    내가 내려간다고 해서 암살이처럼 빠른 성장을 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게다가…… 위험하기도 하고.’

    애써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여기서 이룬 성과만 해도 이미 충분히 만족스러운 상태였으니까.

    나는 20층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우마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작은 몸집, 짧은 다리를 가진 몸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엄청난 속도를 내뿜는 중이었다.

    “우마!! 우마! 우마마!!”

    파지지지직-!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으로 적들 사이를 누비는 우마의 움직임으로 봤을 때, 1급 생도들조차 우마 앞에서는 맥을 쓰지 못할 것 같았다.

    “소환수 한 마리가 1급 생도를 씹어먹는 수준이라니…….”

    정말 키우는 맛이 쏠쏠한 녀석들이었다.

    또 새삼 강해졌다는 것이 피부로 와닿는 순간이었다.

    “우마!!”

    그 순간 마지막 남은 적을 마무리하는 우마의 모습이 보였다.

    20층 클리어.

    이제 남은 층수는 9개뿐이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러나 사건은 우마가 26층에 도전하는 순간 발생했다.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39층을 클리어했습니다.]

    무려 39층을 정복했다는 알림음.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경계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합니다.]

    [데스나이트 ‘암살이’의 격이 올라갑니다.]

    괄목할 만한 성장.

    나는 떠오르는 미소를 지울 수 없었다.

    확실히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좋았어!”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뒤이어진 알림음은 나를 절망에 빠뜨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데스나이트 ‘암살이’의 진화 욕구가 들끓고 있습니다.]

    [데스나이트 ‘암살이’의 진화가 임박했습니다.]

    [소환자와의 격의 차이가 극심합니다.]

    [소환수가 결속을 끊을 수 있습니다.]

    “뭐?”

    마지막 문장.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하는 한마디였다.

    자신의 의지로 소환수의 존재를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 말은 곧 소환수에서 다시 몬스터로 분류된다는…….

    “이런, 미친……!”

    대체 이럴 땐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만약 결속이 끊어진다면? 나는 엄청난 무력을 지닌 몬스터 한 마리를 키워 낸 셈밖에 되지 않았다.

    식은땀이 죽 흘러내렸다.

    뜻밖의 메시지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진화를 거부합니다.]

    “엥?”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메시지였다.

    진화 욕구가 들끓는다며…….

    그런데 왜……?

    그러나 이어지는 알림음에 나는 가슴으로부터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자신의 존재를 만들어 준 주인을 그리워합니다.]

    “…….”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주인을 배신할 수 없다며 자신의 힘을 애써 억누릅니다.]

    “너…….”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생과 사의 경계를 다시 한번 넘길 원합니다.]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주인에게 허락을 구합니다.]

    “진짜……!”

    허락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나는 허락한다는 의지를 반지를 통해 몇 번이고 흘려보냈다.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기뻐합니다.]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경계를 넘을 준비를 합니다.]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들러붙는 망령들에게 꺼지라며 소리칩니다.]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망령들의 손을 대차게 뿌리칩니다.]

    “시발, 존나 멋있네.”

    웃음이 나왔다.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이곳에 오고 있는 암살이를 누구보다 빨리 맞이해야만 했다.

    그래야, 다시 끌려가기 전에 빼 올 수 있다.

    “우마!”

    우마를 크게 부르자, 녀석도 내 의도를 파악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온 힘을 다해 전격을 모으는 우마.

    나 역시 온 힘을 개방해 공간을 얼음으로 가득 채웠다.

    “꺼져, 이 새끼들아!!”

    콰과과과광-!

    한순간에 모든 몬스터들이 잿더미로 변했고,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 * *

    28층까지 돌파하는 시간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나 역시 몇 번이고 오가며 도전했던 곳이었고 우마 역시 엄청난 성장을 거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지막 남은 것은 29층 단 하나뿐이었다.

    “더 빨리 우마!”

    “우마!!”

    파지지지직!!

    그러나 29층은 경계의 마지막 층이라 그런지, 난이도가 급격하게 상승하는 층이었다.

    우마가 전격을 날리며 이곳저곳을 휘젓고 있었지만, 아직 몬스터의 숫자는 어마어마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점점 초조해졌다.

    느낌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암살이가 곧 경계를 넘어온다는 걸.

    밖으로 나가는 포탈을 타기 위해서는 해당 층을 모두 클리어해야만 했다.

    즉, 29층을 빨리 클리어해야 한다는 소리다.

    포탈에 타는 시간이 늦어지면, 암살이는 다시 30층으로 끌려 내려가고 마는 상황이었다.

    “빨리!”

    반지를 통해 암살이에게 기다리라 하고 싶었지만, 경계에 가까워질수록 노이즈 낀 전파처럼 소통을 방해하는 무언가가 흘러나왔다.

    답은 하나뿐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해당 층을 클리어하는 것.

    투쾅-!

    나는 온몸에 활력을 두른 채,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워낙 단단한 몸체를 가졌기에 광역 공격보다는 하나하나 때려잡는 것이 빨랐다.

    “시발! 이걸 다 언제…….”

    히이이잉-!

    그때, 그리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저 멀리 입구 앞에는 벌써 빠져나온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보였다.

    “……젠장!”

    녀석이 나온 건 너무나도 기뻤지만, 시간이 없었다.

    빠르게 이 녀석들을…… 잠깐.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나는 저 멀리 보이는 암살이에게 소리쳤다.

    “암살아!!”

    암살이와 흑마는 동시에 검은 안광을 빛내며 이곳을 쳐다봤다.

    나는 풀썩 주저앉으며 소리쳤다.

    “쓸어버려!!”

    짧은소리와 함께…….

    서걱-!

    29층에 존재하는 모든 몬스터들의 몸뚱이가 양단됐다.

    짧은 단말마조차 들을 수 없는 일격이었다.

    “미친……!”

    나는 입을 떡 벌린 채 녀석을 바라봤다.

    네다섯 마리쯤 썰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외친 거였는데…….

    29층에 존재하는 모든 몬스터들을 지워 버렸다.

    녀석은 내 상상 이상으로 괴물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마냥 넋이 나가 있을 수는 없었다.

    삐이-!

    삐이익-!

    벌써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으므로!

    나는 녀석에게 소리쳤다.

    “달려!!”

    히이이잉-!

    흑마가 기세 좋게 울음을 내뱉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우마 역시 어느새 내 어깨에 올라타 있었다.

    우리는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회포를 푸는 것은 여기를 나간 후에 해도 늦지 않는다!

    삐이-!

    삐이익-!

    나는 더욱 속력을 높였다.

    그리고 마침내…….

    [인버스 타워에 예기치 못한 오류를 발견……. ]

    포탈을 탈 수 있었다.

    * * *

    구구구구-!

    전력을 다해 빠져나온 나는 숨을 몰아쉬며 암살이를 바라봤다.

    암살이 역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암살이는 확실히 이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위압감이 든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압도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이전보다 대하기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었다.

    격의 차이가 너무 많이 나, 스스로 그 연결 고리를 끊어 낼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자신의 힘을 억누르고 이곳까지 찾아왔다.

    마음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고맙다.”

    주인을 버리지 않아 고맙다고 한 것인지, 아니면 살아줘서 고맙다고 한 것인지 나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저 녀석에게 건넨 한마디는 진심이라는 거다.

    “…….”

    히이이잉-!

    흑마는 내 말을 듣더니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개를 낮추고…… 이내 완전히 엎드린 모습이었다.

    데스나이트 역시 흑마에서 내려 나에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주인에게 충성을 맹세합니다.]

    “대체 왜……!?”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녀석은 나보다 강했다. 만난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런데 대체 왜……!?

    내 표정을 읽은 것인지, 녀석은 또 다른 메시지를 전했다.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생과 사를 완벽히 뛰어넘은 존재는 주인님이 유일하다고 말합니다.]

    [데스나이트 ‘암살이’가 주인을 존경 어린 눈으로 바라봅니다.]

    “허.”

    그 메시지를 받은 나는 헛웃음을 들이켰다.

    그런 거였어?

    할 말은 많았지만, 나는 그저 활짝 웃었다.

    어쨌든 모든 일이 잘 풀렸다.

    나는 강해졌고, 소환수도 강해졌다.

    그거면 되었다.

    “이제 나가 볼까?”

    나는 머리 위에 올라탄 우마를 반지 안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암살이 역시 불러들이려던 순간, 녀석의 앙상한 팔이 앞으로 쭉 뻗어 나왔다.

    녀석의 손에는 두 개의 아이템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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