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31화 (31/175)
  •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31화

    31. 인버스 타워(Inverse Tower)(3)

    “허억, 허억. 여기까진가?”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16층.

    단신의 힘으로 뚫을 수 있는 한계는 여기까지였다.

    무리한다면 한 개 층은 더 노려봄 직했지만, 목숨을 담보로 무리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곳에 들어온 것은 어디까지나 강해지기 위함이지, 스릴을 즐기기 위함이 아니었으니까.

    “그나저나, 애들은 잘하고 있으려나?”

    아이들은 아직 12층과 13층을 오가며 사냥하는 중이었다. 딱, 데스나이트인 암살이가 조금이나마 경험치를 먹을 수 있으며, 아직 성장 중인 우마가 위험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나는 녀석들의 선택에 미소를 지었다.

    난이도가 급격하게 상승하는 10층부터 나는 녀석들에게 선택을 맡겼다.

    ‘해 볼 수 있을 것 같을 때 도전해라.’

    녀석들은 기특하게도 자신들의 수준을 정확히 파악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가는 중이었다.

    ‘이 정도면 속도도 나쁘지 않고…….’

    [소환수 ‘우마’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기분 좋은 알림까지 울렸다.

    확실히 레벨이 낮았던 우마는 빠른 속도로 성장 중이었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닥에 앉아 익숙하게 불을 지핀 나는 던전 내에서 구한 몬스터의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플레이어들이 많아지고, 던전에서 취식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레 섭취 가능한 몬스터들의 정보는 퍼져 있었다.

    나는 우연히도 얕게 알고 있던 몇 가지 상식 중에 부합하는 녀석을 11층에서 딱 맞닥뜨렸다.

    “이 녀석이 있었을 줄이야!”

    데빌 피그.

    무시무시한 외형과 극악의 레이드 난이도를 자랑하는 녀석은 엄청난 부드러움으로 혀끝을 자극하는 3대 진미 중에 하나로 뽑히는 놈이었다.

    “먹어도 먹어도 안 질리네.”

    황홀한 식감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이곳에 들어온 지도 어느새 보름.

    아공간 마법이 걸려 있는 작은 배낭에는 들어오기 전보다 더 많은 양의 식량이 비축되어 있었다.

    나는 잘 구워진 데빌 피그의 뒷다릿살을 뜯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내 한계는 여기까지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다음 층수에 도전하면 반드시 위험해질 거라고…….

    이번 층수도 아슬아슬한 정도였다. 10층 이후부터 난이도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모습을 봤을 때, 확실히 다음 층으로 넘어가는 순간, 목숨이 위험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천진오는 19층, 천지훈은 24층…….”

    나는 녀석들의 기록을 곱씹었다.

    확실히 괴물 녀석들이었다.

    물론, 나와는 다르게 그들은 천가의 피를 모두 사용할 수 있었고, 어려서부터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아서 그런 것이겠지만, 자존심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긴…… 너무 욕심인가?”

    생각해 보면 자존심 상할 일이 아니긴 했다.

    그들은 능력을 100퍼센트 활용하며 나아간 것이었다.

    반면, 나는 아니었다.

    저 위층에서 열심히 사냥하고 있는 녀석들은 나의 크나큰 전력이었다. 게다가 나는 아직 해금률이라는 제약을 완전히 벗어던지지 못한 상태였다.

    이들을 빼놓고 단신으로 여기까지 뚫었으니, 나쁜 성적은 아니었다.

    “모르긴 몰라도 녀석들이랑 같이한다면 20층은 가뿐히 넘길 것 같은데…… 아냐, 안 돼!”

    생각하던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합리화하지 말자!

    앞으로 닥칠 위기는 상상 이상의 난이도가 될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철저하게 대비해 놔야 살아갈 수 있었다.

    나는 뺨을 강하게 내리쳤다.

    “조급해하지 말자.”

    어차피 시간은 많다.

    큰아버지는 한 달 정도 걸릴 거라며 식량을 준비해 주셨지만, 나는 그 시간 안에 나갈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골수까지 빨아먹고 나간다.”

    살면서 오직 한 번만 도전할 수 있는 1인 던전.

    한 번뿐인 기회인데 허무하게 날릴 생각은 없었다.

    벌떡 일어난 나는 15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 * *

    희미한 빛만이 공간을 채운 곳.

    싸늘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들어가거라.”

    정신을 차린 30대 남성의 귓가에 들린 첫마디였다. 우람한 체격을 가진 사내는 벌떡 일어나 노인을 내려다봤다.

    “너 뭐야! 여긴 어디냐고! 엉?”

    자신은 분명 다음 타깃을 찾아 한적한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눈을 감았다 떠 보니 이곳이었다. 혼란스러운 사내는 이곳의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당장이라도 노인을 죽일 듯이 위협했다.

    그러나 노인은 전혀 당황해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가소롭다는 듯이 웃을 뿐이었다.

    “말이 짧군.”

    “뭐? 이런 겁대가리 상실한 노인네를 봤…… 끄아아악!!”

    “……입도 험하고.”

    “끄아아악!”

    “버릇도 없구나.”

    “사,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제, 제발…… 끄아아악!!”

    양쪽 손목이 모두 날아간, 30대의 사내는 충혈된 눈으로 위를 올려다봤다.

    “내, 내 팔!”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거라. 다음은 네놈 모가지다.”

    싸늘하고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사내는 말문이 턱 막혔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몰려들었지만, 사내는 죽을힘을 다해 참을 수밖에 없었다.

    입을 뻥끗하는 순간, 저 노인의 말대로 정말 모가지가 달아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대, 대체 왜 이러십니까? 혹시 피해자의 가족이십니까?”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사내는 노인에게 정중하게 물었다.

    노인의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죽어 마땅한 놈에게 살 기회를 주려는 것뿐이다. 들어가거라, 네놈이 도망칠 곳은 저곳밖에 없으니…….”

    노인은 천천히 손을 뻗어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검은색 파동이 일렁이고 있었다.

    “게…… 이트…….”

    사내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척 보기에도 불길함이 물씬 묻어 나오는 게이트였다.

    B급 헌터였던 사내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저곳은 위험하다고!

    그러나 눈앞 저 노인만큼은 아니었다.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 듯 보이는 저 노인은 이미 사람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 그가 게이트에 들어가라 한다.

    들어가야만 했다.

    어기는 순간 정말로 죽을 테니.

    “드, 들어가겠습니다.”

    선택지는 없었다.

    사내는 사라진 손목을 양쪽 겨드랑이로 지혈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노인은 조금의 지체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5초. 늦으면 목을 베겠다.”

    사내는 뛰었다.

    가까운 거리라 5초면 충분했다.

    들어가고 난 뒤의 상황을 생각할 겨를 따위는 없었다.

    일단 살고 봐야 한다.

    살아야 훗날을 도모할 수 있다.

    사내는 일렁이는 검은 파동 속으로 몸을 던졌다.

    [입장 가능 인원을 초과하였습니다.]

    [입장이 불가능합니다.]

    “뭐, 뭐!?”

    텅!

    사내의 몸이 튕겨 나갔다.

    강력한 반발에 바닥을 굴러, 떨어진 곳은 다름 아닌 노인의 발밑이었다.

    “못 들어가는군. …… 아직 살아는 있나 보구나.”

    올려다본 노인의 얼굴은 어째서인지 조금 환해진 기분이었다.

    사내는 살아 나갈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그…… 그럼!?”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콰직!

    연쇄살인범 김철환은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

    * * *

    “살아 있습니까?”

    어둠으로 휩싸인 기둥의 뒤편에서,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기 가주 계승식으로 바쁜 몸이 뭣 하러 내려온 것이냐?”

    모습을 드러낸 이는 다름 아닌 천가(天家)의 주인 천태산이었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얼마나 지났습니까?”

    “두 달하고도 보름.”

    침울해 보이는 대답이 들려왔다.

    “그럼…….”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천태산과 천태백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이쯤 됐으니, 이제는 받아들여야 했다.

    천가의 역사상 인버스 타워에서 2달 이상 시간을 지체한 경우는 딱 한 경우밖에 없었으니까.

    바로 천가의 주인 천태산이 30층으로 향했을 때. 그때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 달 내외로 테스트가 끝났다.

    둘의 침묵은 꽤 오랜 시간 지속됐다.

    “대체 그곳에 무엇이 있는 것이냐?”

    먼저 입을 연 것은 천태백이었다. 그는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살아 있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대체 무엇이 말이냐!”

    답답함에 언성을 높인 천태백의 물음에도 미간을 찡그린 천태산은 입을 꾹 다물었다.

    “처음으로 걷어들인 제자다.”

    “압니다.”

    “그 의미를 모르느냐?”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잠시 뜸을 들인 천태산은 자신의 생각을 묻기 시작했다.

    “정말…… 도윤이가 30층까지 갈 수 있을 거라 믿습니까? 만약, 움직이지도 못할 부상을 당해 회복 중인 거라면…….”

    “여지까지 회복을 못 한 거라면 서서히 죽어 가고 있는 거겠지.”

    천태백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애써 머리를 식힌 천태백은 천태산을 빤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니다. 천가의 피다. 그럴 확률은 적어.”

    “그래도…….”

    “네놈의 자식이 너보다 못하길 바라는 것이냐?”

    “아닙니다.”

    천태산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런 천태산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천태백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녀석은 약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확실히 벌레보다 못한 놈이었지.”

    천태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천태백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내 얼굴에 상처를 내더구나.”

    천태산의 눈이 커졌다.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천태백은 그런 천태산을 이해한다는 얼굴로 바라봤다.

    “안 믿기겠지. 하지만 사실이다.”

    “도윤이는…….”

    “끌끌, 숨긴 패가 많더구나. 여우 녀석…….”

    “…….”

    “무서울 정도로 빨라. 녀석의 성장세는…… 아마 내려가서도 놀라울 정도로 성장했을 거야.”

    천태백은 어쩐지 즐거워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30층은 지훈이도 닿지 못한 곳입니다.”

    “네놈은 닿지 않았느냐?”

    “제 능력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실력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천태산이 가진 능력. 같이 자라온 천태백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천태백은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난 지훈이보다 도윤이가 백배는 낫다고 본다.”

    천태백의 확언에 천태산은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인성은 몰라도 실력만큼은 남다른 둘째였다.

    그런 천지훈보다 몇 배는 낫다고 하다니…….

    빈말을 전혀 하지 않는 천태백의 성격을 알고 있는 천태산은 마음이 혼란했다.

    “내가 그렇게 일렀거늘…….”

    이쯤 되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막내의 잠재 능력을…….

    하지만 인정을 하게 되면 천도윤이 30층에 들어갔을 확률이 높아질 뿐이었다.

    심각해진 천태산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더 기다려 보시죠.”

    그렇게 어두운 금지 구역 안에는 천가의 주인 천태산과 흑운 천태백이 한참이나 게이트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전혀 알지 못한 채…….

    * * *

    “오, 드디어!”

    인버스 타워로 들어가기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홀로 수련하던 천도윤은 벌떡 일어나 한 곳을 주시했다.

    히이이잉~!

    터벅.

    터벅.

    말이 우는 소리가 들리고,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

    천도윤은 29층으로 내려오는 데스나이트와 그 위에 올라탄 작은 얼룩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