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30화
30. 인버스 타워(Inverse Tower)(2)
코를 틀어막은 나는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징글징글하네.”
얼핏 봐도 몬스터의 숫자는 어마어마했다. 저 멀리 무언가를 뜯어먹고 있는 수십의 몬스터가 보였다.
눅진하고 더러운 바지를 입은 채 이족보행과 사족보행을 병행하는 쥐를 닮은 외형. 찢어진 눈으로 탐욕을 한가득 머금은 얼굴.
처음 보는 종류의 몬스터였다.
처음 도착한 낯선 곳에서 나는 녀석들의 흔적은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다.
툭 튀어나온 녀석들의 앞니가 훑고 지나간 흔적은 어딜 가나 눈에 띄었다.
‘쥐가 파먹었다’는 것이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 주고 있었다. 주변의 모든 사물이 이빨 모양으로 뜯겨 있었다.
철근조차 깔끔하게 뜯어져 나간 것으로 보아, 녀석들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대충 감이 왔다.
“이 정도라는 말이지?”
확실히 1층부터 쉽지 않은 난이도였다.
적의 숫자와 난이도를 얼추 파악한 나는 조금 더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곳으로 이동한 뒤,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계획을 세우는 것이 먼저였다.
‘먼저 이것부터.’
큰아버지에게 전해 받은 가방 안을 들여다보자, 약 1달 정도는 버틸 수 있는 식량이 들어 있었다.
그 말은 곧 천지훈이 클리어했던 24층까지 가기 위해서는 하루에 1개 층 이상은 클리어해야 한다는 말과 같은 말이었다.
“아니지. 내려가면 갈수록 난이도는 올라갈 테니까…….”
초반에는 최소한 2개 이상을 클리어해야만 수지맞는 계산이었다.
‘처음에는 최대한 빨리 깨자.’
쉬운 난이도는 빨리 깨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심을 굳힌 나는 천천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주변의 철근을 두드리며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텅텅텅-!
무언가의 육신을 흔적도 없이 먹어치운 몬스터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피 묻은 입가를 지닌 놈들이 나를 발견했다.
녀석들의 눈이 붉게 빛났다.
크르르.
건물 사이에 숨어 있던 몬스터들도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쥐를 닮은 몬스터가 하나둘 나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수백 대 일.
원 모양으로 나를 확실하게 포위한 녀석들은 승자의 미소를 띠고 있었다.
캬아악-!
붉은 안광을 내비치며 당장이라도 달려들 준비를 하는 녀석들.
확실히 1층부터 미친 난이도임에는 틀림없었다.
“크흐흐.”
그러나 나는 웬일인지 두렵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웃음까지 새어 나왔다.
자신감의 이유는 아마도 이것이었다.
나는 꽉 쥔 주먹을 바라봤다.
나는 강해졌다.
전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방계 녀석들에게 괴롭힘을 받던 찌질한 녀석에서, 3대 길드의 수장을 압도하는 실력까지 올라왔다.
2급 녀석들에게조차 쩔쩔매던 실력에서 천지의 절반을 잡아 보자 말하는 경지까지 올라왔다.
말 그대로 엄청난 성장이었다.
그러나 아직 나의 성장은 끝이 아니었다. 성장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었다.
나는 지금 해금률조차 다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지독하게도 느리게 풀리는 잠금이 모두 풀리고 나서야 진정한 시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성장의 첫 번째 발판이 될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이곳에서 해금률을 모두 풀고 나간다.’
나는 속으로 의지를 다졌다. 지금도 많이 늦었다. 최소한 천지훈과 같은 출발선에 서야 한다. 입술을 꽉 다문 나는 조용히 왼손을 바라봤다.
두 개의 반지가 당장이라도 튀어나오고 싶어 하는 것처럼 진동하고 있었다.
“아직 아니야.”
나는 녀석들의 바람을 애써 무시한 채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녀석들이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내가 강해지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캬아아악!!
돌연 날아든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에 고개가 돌아갔다.
허기짐이 한계에 달했는지, 녀석들은 침을 뚝뚝 흘리며 탐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소리쳤다.
“드루와, 쥐새끼들아!”
캬아아악-!
일제히 수백 기의 몬스터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콰과과광!!
녀석들의 머리 위로 수백 개의 번개가 내리쳤다.
* * *
인버스 타워는 이름과 걸맞은 구조로 되어 있었다. 층수를 올라가기 위해서는 지하로 향해야만 했다.
이 역설적인 구조에 나는 계속해서 지하를 향해 내려가는 중이었다.
5층까지 단번에 내려온 나는 지금 한가지 결정을 두고 고민 중이었다.
“한번 올라가 봐?”
5층까지 내려오면서 알게 된 사실 하나.
몬스터는 적어도 플레이어가 그 층에 존재하는 한 리젠되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궁금증이 일었다.
그렇다면 플레이어가 사라진 층은 어떻게 될까?
나는 내려오고 나서도 닫히지 않던 위층의 입구를 바라봤다.
만약 위층에 리젠된 몬스터가 다시 생겨났다면?
나는 내려왔던 계단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만약 내 예상이 맞아 다시 몬스터들이 리젠됐다면 4층과 5층을 한 번 더 깨야 하는 상황이 나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실험하기에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뭐…… 가 보면 알겠지.”
나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육포를 뜯으며 위로 올라갔다.
* * *
“역시!”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4층에는 녹슨 반월 모양의 칼을 든 리자드맨이 득실대고 있었다.
나를 발견한 도마뱀들은 무기를 고쳐 쥐며 미친 듯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입구와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은 리자드퀸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 모습에 나는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가장 바라왔던 이상적인 던전의 모습이었다.
내가 성장하는 것도 방해받지 않으면서 이 녀석들도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곳!
인버스 타워는 나에게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나와!”
나는 왼손을 든 채 반지에 활력을 시전했다.
“우마!!”
“…….”
히이이잉-!
우마와 암살이가 동시에 튀어나왔다.
동시에 부른 것은 처음이어서 그런지, 녀석들은 경계의 눈초리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들의 사나운 시선이 공중에서 맞닿았다.
“우마!!”
파지지직-!
우마의 양 뿔 사이에 강력한 전격이 일었다. 암살이 역시 지지 않겠다는 듯이 자신의 힘을 끌어올렸다.
“우…… 마…….”
그러자, 어깨에 올라타 있던 우마가 목 뒤로 모습을 감췄다.
그 모습을 본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크크, 그러게 왜 이기지도 못할 거 시비를 걸어!”
그래도 우마 녀석은 자존심을 굽힐 수 없는지, 머리를 빼꼼 내민 채 계속 암살이를 향해 뭐라 뭐라 말을 쏟아 냈다.
“우마마! 마마! 우마!”
“…….”
알아들을 순 없지만, 흡사 엄마가 아들을 혼내는 모양새였다. 물론 모양새뿐이지 힘도, 덩치도 무엇 하나 내세울 게 없는 우마였다.
‘이러다 진짜 한 대 맞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던 중.
상황은 내 예상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우마!! 우마마!!”
끊임없이 무언가를 내뱉는 우마에게 암살이가 고개를 숙인 것이다.
나는 그 광경을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봤다.
“뭐야!? 설마…… 선배가 후배 기강 잡는 거야?”
나는 고개를 세차게 휘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내 예상은 이번에도 빗나갔다.
내 어깨에 다시 올라탄 우마는 양손을 허리춤에 얹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허…….”
나는 실소를 터트렸다.
한참을 웃고 나서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꼴랑 두기 있는 소환수가 사이가 안 좋다면 그것만큼 골치 아픈 일도 없었다. 예상과는 정반대였지만, 어쨌든 질서가 생긴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었다.
얼굴에 알 수 없는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서열 정리도 된 것 같으니까! 전투 준비!”
둘이 서열을 정리하는 동안 리자드맨은 이미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이젠 정말 전투를 시작해야 할 때였다.
“아직 약한 우마는 조금 뒤에서…….”
우마에게 조금 뒤에 빠져 있을 것을 명령하려던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우마는 어느새 데스나이트 암살이의 머리 위에 올라타 있었다. 그러고는 마치 선봉장이 된 장수마냥 앞발을 적을 향해 내뻗고 있었다.
“우마!!”
거기에 더 어이가 없는 건, 암살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돌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 광경을 지켜봤다.
“우마!!”
쿠웩-!
크르컥-!
놀랍게도, 둘의 궁합은 상상 이상으로 좋아 보였다.
암살이의 머리 위에 탄 우마가 전격 공격을 이용해 녀석들을 경직시키면 데스나이트의 낫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녀석들을 단숨에 양단했다.
“끼에에엑-!”
위기감을 느낀 리자드맨들은 녀석들을 사방에서 포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마의 상황판단은 가히 놀라웠다.
“우마!!”
우마가 지시하자 데스나이트는 방향을 틀었다. 그러고는 흑운을 이용해 모습을 감춘 뒤, 포위망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나는 녀석들의 전투를 보고 넋이 나가고 말았다.
웬만한 헌터도 저 둘의 조합을 이기지는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녀석들의 플레이는 그만큼 뛰어났다.
우마의 지시 능력도 발군이었지만, 역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암살이었다.
데스나이트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암살이는 무서울 정도로 고요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엄청난 기동력의 흑마. 거기에 흑운의 능력을 더하니 신출귀몰한 움직임이 가능해졌다.
흑운을 이용해 암살이가 몸을 감추면…… 녀석들은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암살이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다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게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미쳤다.”
미쳤다라는 말로밖에 설명이 되질 않았다.
그만큼 암살이는 강력했다.
주인인 나마저도 조금 공포를 느낄 정도였다.
그런 녀석에게 잔소리를 부어 대는 우마가 다른 의미로 참 대단해 보이기까지 했다.
“우마!”
우마의 명령에 따라 벌써 반 이상의 리자드맨이 쓸려 나가고 있었다.
* * *
[소환수 ‘우마’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소환수 ‘우마’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소환수 ‘우마’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
그에 맞춰 우마의 레벨은 빠르게 오르고 있었다.
반면, 데스나이트 암살이의 레벨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아쉬웠지만 납득 가능한 부분이었다.
암살이에게 이곳은 너무 수준 낮은 전장이었다.
그래서 더 완벽한 한 쌍이라고 할 수 있었다.
빠르게 전장을 휩쓸면서 우마의 능력을 끌어올리고, 아래층으로 내려오면서 동반성장!
계획대로만 된다면 인버스 타워는 최고의 사냥터나 다름없었다.
나는 녀석들이 이 층의 보스인 리자드퀸까지 레이드하는 것을 보고 난 후에야 이동할 수 있었다.
“내가 5층 레이드하고 6층에 도착하면 신호할 테니까 너희들은 5층으로 가. 도착하면 아마 몬스터들이 다시 생겨났을 거야. 그럼, 거기 보이는 몬스터들 죄다 쓸어버려. 알겠어?”
다행히 녀석들은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나보다 무조건 1단계씩 천천히 내려오는 거야. 알겠지?”
이번에도 녀석들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이로써 나는 만족할 만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이제부터 폭발적으로 강해질 수 있었다.
나도, 이 녀석들도!
각자 성장해 나가면서 시간까지 아낄 수 있었다.
이보다 좋은 사냥터가 또 있을까?
“이제부터 폭렙 시작이다!”
회심의 미소를 지은 나는 아래층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