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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29화 (29/175)
  •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29화

    29. 인버스 타워(Inverse Tower)(1)

    단 한마디로 모든 일은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나는 천가의 사람이다.

    참을 수 없는 치욕과 분노로 치를 떨던 지창민은 내 한마디에 모든 것을 수긍했다.

    그동안 정체를 밝힐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이미 데스나이트까지 꺼내 보인 이상, 확실한 입막음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 가장 확실한 카드는 역시 가문의 이름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함구할 것과 박한별을 건드리지 말 것을 약속받은 뒤 데스나이트의 손아귀에서 녀석을 풀어 줬다.

    녀석은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였다.

    “확실히 가문이 대단하긴 하네.”

    “뭐라는 거냐?”

    “아닙니다.”

    “……싱겁긴. 이틀 동안 잘 쉬었느냐?”

    “예.”

    눈앞에는 천태백이 서 있었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나는 짧은 대답으로 일축했다.

    “그나저나 오늘은 왜 이곳으로 부른 겁니까?”

    “쉬었으니 다시 달려야 하지 않겠느냐?”

    사악한 미소를 보이는 천태백의 손에는 작은 배낭이 쥐어져 있었다.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보나마나였다.

    생존용품.

    비록 소문으로 접한 것이긴 하지만 나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니, 모르는 것이 더 이상했다.

    출입 금지 구역에 있는 것이긴 했지만, 이곳은 분명 가문 안에 존재하는 곳이었으니까.

    “죽을 수도 있다 하겠느냐?”

    “아니요…… 라고 하면 안 시키실 겁니까?”

    “흘흘, 그럴 리가 있나.”

    큰아버지는 즐거운 듯 웃고 있었다.

    “웃지 마십시오. 제자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

    “흘흘, 그러는 너는 왜 웃느냐?”

    “기대돼서요.”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나는 조용히 바닥에 일렁이는 검은 게이트를 바라봤다.

    일명, 인버스 타워(Inverse Tower).

    가문 내에 존재하는 유일무이한 게이트였다.

    “이곳의 유례는 알고 있느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 닫히지 않는 게이트를 보고 겁먹은 정부가 위험 지역인 이 지역 일대를 저희 가문에 넘긴 것 아닙니까? 저희는 덕분에 이득 본 거고요.”

    “끌끌, 잘 알고 있구나.”

    천가가 구 홍대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게이트 덕분이었다.

    언제 튀어나올 줄 모르는 던전 브레이크를 지척에서 대기하다 잘 막아 달라. 뭐, 그런 의도로 정부가 우리 가문에게 넘긴 것이다.

    불순한 의도가 다분했지만, 가문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오직 서울 한복판에 이렇게 큰 사유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 그것에만 집중한 모양이었다.

    천가다운 발상이었다.

    “짬 처리하려다가 황금 돼지를 넘긴 셈이지. 이 게이트에 던전 브레이크 따위는 없는 것도 모르고, 쯧쯧.”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세요?”

    “들어가 보면 알게 된다.”

    “아, 맞다!”

    금지된 구역에 위치한 인버스 타워는 오직 한가지 용도로만 사용되는 곳이었다.

    바로 직계의 시험용!

    인버스 타워는 직계가 1급 생도를 졸업하고 난 뒤, 진정한 가문의 일원으로 거듭나기 위해 거치는 하나의 테스트였다.

    즉, 큰아버지도 오래전에 이 시험을 통과했다는 말이었다.

    “안에 무엇이 있습니까?”

    “말해 주면 재미없지.”

    큰아버지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사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딱 여기까지였다.

    원래 정보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밖에 나가 있던 시간이 길어 소문을 듣지 못했던 것인지는 몰라도 게이트 안의 내용은 그 누구에게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뭐 들어가 보면 알겠지.’

    생각을 정리하고, 고개를 들자 큰아버지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안 떨려 보이는구나. 1급 생도를 졸업한 녀석들도 죽어 가는 곳인데…….”

    “그냥, 뭐…….”

    나는 살짝 어깨들 들어 올려 보였다.

    그 모습을 본 큰아버지는 작게 미간을 좁혔다.

    “너무 쉬었더니 간덩이도 부은 듯하구나.”

    큰아버지는 다소 오만해 보이는 나를 아니꼽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감 있는 나의 모습은 나름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나는 왼손에 낀 두 개의 반지를 힐끗 바라보았다.

    전격을 내뿜는 얼룩소와 데스나이트의 경지를 초월한 데스나이트!

    든든한 아군이 함께하고 있었다.

    큰아버지가 자리를 비운 이틀 내에 생긴 변화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놀라운 것들이었다.

    ‘이걸 모르니 저러시지.’

    “흠흠.”

    목을 가다듬은 나는 애써 표정 관리를 했다.

    그러자, 천태백의 말이 들려왔다.

    “네 목숨은 네 것이니 네 맘대로 하려무나.”

    “그게 제자한테 할 소리입니까?”

    “긴장하라는 게야. 네놈 첫째 형도 겨우 19층밖에 가지 못한 곳이야.”

    나는 눈을 크게 뜨며 천태백을 바라봤다.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천진오다.

    그런 첫째 형이 겨우 19층이 한계였다니…….

    잘 믿기지 않았다.

    물론, 그 당시에는 1급 생도를 막 졸업한 시기였겠지만, 난이도를 예상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럼 천지훈은요?”

    “눈빛에 살기가 감도는구나.”

    “하하, 제가 언제…….”

    나는 재빨리 표정을 바꾸며 물었다. 큰아버지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모른척하며 넘어가는 눈치였다.

    “둘째는 24층까지 갔다더구나.”

    “24층…….”

    나는 큰아버지의 말을 곱씹었다.

    역대 최고의 재능이라 칭송받는 천지훈 역시 25층을 넘지 못했다.

    인버스 타워의 난이도가 슬슬 실감 나기 시작했다.

    “몇 층까지 있는데요?”

    “모른다. 그러나 50층은 넘을 거라는 게 원로들의 생각이다.”

    “50층…….”

    “흘흘, 무서우냐?”

    “아닙니다.”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무섭냐고?

    절대 아니다. 오히려, 기대돼 심장이 두근거릴 지경이었다.

    천지훈과의 차이를 객관적으로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녀석과의 차이를 알아야, 더 상세한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의지를 다진 나는 천천히 마음을 다잡았다.

    목표는 정해졌다.

    최소 24층 이상!

    그 이상을 해내야만 의미가 있었다.

    “주의해야 할 것은 단 한 가지다.”

    그때 큰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뭇 진지해진 그의 태도에 나 역시 얼굴을 굳혔다.

    “뭡니까?”

    “30층 이하로 내려가지 말거라.”

    지금껏 봐 왔던 그 어떤 때보다 진지한 얼굴이었다.

    “왜요?”

    “죽는다.

    천태백의 대답은 짧았다.

    그러나 장난이 아님은 눈빛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목표는 15층이다. 15층 이상 내려가면 던전을 빠져나올 수 있는 포탈이 생길 게다. 버겁거든 언제든 나와도 된다.”

    “그 말은…… 15층 전까지는 던전에서 나올 수 없다는 말인가요?”

    “그래, 죽기 전까진 나올 수 없지.”

    “그걸 왜 지금 말해 주십니까?”

    나는 어이가 없어 헛숨을 들이켰다.

    가장 중요한 사실을 이제 와 알려 주다니…….

    솔직히 목숨이 위험하면 언제든 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인버스 타워는 반드시 클리어해야만 살아 나올 수 있는 시험이었다.

    즉, 목숨 걸고 하는 시험이라는 이야기다.

    “직계의 시험이다. 쉬운 줄 알았더냐?”

    “그건 아니지만…….”

    “명심하거라, 30층 이상은 절대 내려가면 안 된다.”

    큰아버지는 몇 번이나 강조했다.

    계속해서 강조하니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대체 뭐가 있길래 그러십니까?”

    “모른다.”

    “예?”

    “알다시피 인버스 타워는 한번 들어갔다 나오면 다시는 들어가지 못한다. 내가 시험을 볼 때는 28층이 한계였다.”

    “…….”

    내가 아는 한 아버지와 가장 근접한 무위를 지닌 인간은 큰아버지가 유일했다.

    그런 미친 재능과 실력을 겸비한 큰아버지조차 28층이 한계였다니…….

    생각보다 높은 난이도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었다.

    “그럼 걱정할 필요도 없지 않나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내가 30층까지 도달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커흠, 노파심이다.”

    천태백은 민망했는지, 연신 헛기침을 해 댔다.

    “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나는 얄미운 큰아버지를 뒤로한 채 가방을 둘러멨다.

    그리고 게이트에 들어갈 준비를 하며 물었다.

    “그런데 왜 가지 말라는 겁니까?”

    궁금했다.

    대체 무슨 연유로 그곳에 가지 말라는지.

    무엇이 있기에 저리도 강조해서 말하는지…….

    잠시 뜸을 들인 천태백이 사뭇 진지해진 얼굴로 말했다.

    “그곳엔 죽음이 있다.”

    “예?”

    “……그곳에 최초로 도달한 자가 누군지 아느냐?”

    “누굽니까?”

    “네 아비다.”

    뜻밖의 인물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큰아버지를 바라봤다.

    “30층을 가 본 건 네 아비가 처음이었다. 천가의 역사에서 가장 큰 성과를 낸 셈이지. 얼핏 듣기엔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이지. 하지만 아니었다. 녀석의 인생에서 그건 가장 큰 불행이었다.”

    큰아버지의 얼굴은 어쩐지 슬퍼 보였다.

    “인버스 타워에서 돌아온 네 아비는 꼬박 3년을 누워 있었다. 몸도 마음도 거의 죽어 있었지…… 매일 명약과 신약을 달여 먹이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죽었을 거야.”

    몰랐다. 아버지에게 그런 일이 있었던 줄은…….

    “그 사건이 아니었다면 네 아비는 지금보다 훨씬 강했을 게다. 그때 상한 몸이 아직도 영향을 주고 있으니까.”

    지금껏 살면서 아버지의 과거사를 들은 적은 첨이었다. 왠지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그 아버지가 아픈 몸이란다…….

    솔직히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분위기가 조금 처진 것이 느껴졌지만, 큰아버지는 낮은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무엇이 있었냐 물어도 네 아비는 절대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가주에 올랐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30층 이하로 내려가는 것을 금한 것이었지. 얼마나 가슴에 품고 살았는지 감도 잡히지 않더구나…….”

    큰아버지는 여전히 씁쓸한 표정이었다.

    30층의 존재는 오직 아버지만이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혹여 운이 좋아 29층까지 내려가더라도 더 이상 발을 딛지 말거라.”

    나는 큰아버지의 말을 모두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지 말라는데 억지로 발을 디딜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아버지도 3년씩이나 생사를 오갔다 하지 않았는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들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차피 15층까지 가기도 힘들 게야.”

    “그럼 왜 이야기한 겁니까?”

    울컥하는 감정에 언성이 높아졌지만, 큰아버지의 얼굴을 보고는 이내 감정을 추슬렀다.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하는 농담이었겠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이야기로 전해지던 슬픔이 여전히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걸. 아무리 감추기 위해 노력해도 감출 수 없는 것도 있는 법이다.

    큰아버지의 얼굴에 깃든 감정은 지독한 슬픔과 연민이었다.

    “다녀오거라. 다녀오면 절로 강해져 있을 테니.”

    “네.”

    짧은 대답을 끝으로, 나는 일렁이는 게이트 안으로 몸을 던졌다.

    * * *

    처음 눈에 보이는 것은 폐허가 된 마을이었다.

    먼지 쌓인 구조물과 탁한 공기.

    중세풍의 구식 조형물들이 부서지고 파손되어 스산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중얼거렸다.

    “무슨 영화 세트 촬영장 같네…….”

    확실히, 세트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이질적인 공간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확실한 건 사람이 살 만한 환경은 절대 아니라는 거지.”

    악취가 코끝을 강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시체 썩는 냄새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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