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26화
26. 동료(3)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애써 표정을 감춘 나는 반쯤 몸을 일으켰다.
박한별에게 해야 할 말이 산더미였지만, 지금 이것보다 급한 일은 없었으니까.
[‘데스나이트’를 등록하시겠습니까?]
속삭이듯 점멸하는 치명적인 유혹에 이제는 답해야 할 때였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깊고 음침한 어둠이 데스나이트의 허물어진 육신을 덮기 시작했다.
쏴악-!
날아간 머리통이 몸체에 수복되고, 곳곳에 난 전투의 흔적들이 말끔하게 사라지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말 그대로 순식간이었다.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칠흑을 담은 눈동자, 윤기 나는 털을 곱게 늘어뜨린 매서운 살기를 풍기는 흑마, 죽음도 피해 갈 수 없을 것 같은 날카로운 낫이 한자리에 존재했다.
마주했을 뿐인데도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데스나이트를 등록 중입니다.]
확인이라도 시켜 주듯 떠오르는 알림창에 아드레날린이 미친 듯이 솟구쳤다.
‘네가 내 거란 말이지?’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요동쳤지만 애써 마음을 진정시킬 수밖에 없었다.
다시 일어난 데스나이트를 본 박한별이 벌써 전투태세에 돌입했기에…….
“물러서요!”
박한별은 소리치며 자신의 등 뒤로 나를 물렸다.
아차 싶었던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멀리서 놀란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한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심지어 계속해서 이쪽을 주시하던 김지선 팀장은 자신의 무기를 빼 든 채 달려오고 있었다.
“젠장!”
나는 당장이라도 소중한 나의 펫을 공격할 것 같은 박한별을 보고는 황급히 외쳤다.
“암살이!”
[이름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
“시발.”
“네?”
돌연 날아든 욕설에 박한별은 황당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나 나는 그딴 시선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미친놈이, 이름을 지어도…….’
급한 맘에 아무 이름이나 지껄인 3초 전의 내가 미친 듯이 원망스러웠다.
저 간지나는 모습에 ‘암살이’가 웬 말이냔 말이다.
그러나 아직 등록을 위한 단계는 더 남아 있었다.
[속성을 선택하여 주십시오.]
[부여 가능 속성 – 뇌(雷), 빙(氷), 흑운(黑雲)]
나는 망연자실한 목소리로 외쳤다.
“속성 부여, 흑운(黑雲)!”
[속성을 부여하셨습니다.]
[속성 – 흑운(黑雲)]
[한번 부여한 속성은 변경할 수 없습니다.]
[속성 ‘흑운(黑雲)’을 부여하시겠습니까?]
새로운 펫을 얻었다는 기쁨과 찜찜함이 섞여 알 수 없는 감정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나는 애써 감정을 추슬렀다.
“그래.”
[속성 부여를 완료하셨습니다.]
……어찌 됐든 이름과 속성 부여 모두 완료했다.
이제는 데스나이트에게 흑운의 능력을 이용해 모습을 감추라고 명령하는 일만 남았다. 그러면 아마 사건은 일단락될 것이다.
분명 그럴 터인데…….
“뭐야?”
어찌 된 영문인지, 등록이 완료되었다는 알림창이 뜨지 않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박한별의 은색 배트는 이미 데스나이트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젠장, 스킬 해제!”
나는 박한별에게 걸어 두었던 활력을 비활성화시키고는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뭐 하는 짓이에요!”
“잠깐만요!”
“당신…… 설마!”
박한별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러고는 이내 결심한 듯 다시 방망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제가 반드시 구해 드릴게요!!”
“뭔 개소리야!”
“그쪽은 지금 데스나이트에게 정신지배를 당하고 있는 거라고요! 정신 차려요. 제발!”
박한별은 어째서인지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황당한 모습으로 바라봤다.
‘생각해 주는 건 고맙다만…….’
나는 재빨리 활력을 두르고는 그녀의 앞길을 다시 막아섰다.
이 녀석을 상처입힐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비켜요! 지금 저 녀석을 해치우지 않으면…….”
“1분만요. 1분만…….”
나는 그녀를 덥썩 끌어안았다.
“무슨!?”
“…….”
아무리 그녀가 지쳤다고는 하지만, 일대일로 그녀를 이길 자신은 없었다.
그렇다고 막을 방법이 생각난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감정에 호소하는 일뿐이었다.
“조종당하거나 그런 거 아니에요. 책임은 다 내가 질 테니, 제발 1분만…….”
“지금 뭐 하시는…….”
“1분만요.”
그녀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데스나이트를 확인하고 나서야, 조금 누그러진 말투로 말했다.
“알겠으니까, 이것 좀 놔요. 무슨 다 큰 어른이…….”
나는 확답을 받고 나서야 그녀를 놓아주었다.
1분이 지나면 곧장 데스나이트의 머리통을 날려 버릴 거라는 무서운 협박을 들으며, 나는 녀석을 바라봤다.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데스나이트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녀석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점점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시스템은 더 이상 알림창을 내뱉지 않고 있었다.
…….
혼란스러움이 머릿속에 가득 찼을 때쯤.
기다리던 알림음이 울려왔다.
[적합도 계산을 완료했습니다.]
“……응?”
처음 듣는 소리였다. 적합도라니…….
이어진 알림은 나를 더욱 패닉에 빠뜨렸다.
[대상과 속성 ‘흑운’의 궁합이 최상(最上)입니다.]
[대상의 능력치가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뭐!?”
나는 놀라움에 입을 떡 벌렸다.
속성과 대상의 궁합이라는 것도 존재하다니.
그냥 잘 어울리겠다 싶어 고른 것이었는데 뜻밖의 수확이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대상이 새로운 힘을 부여해 준 주인에게 큰 경외심을 느낍니다.]
[대상의 격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
[대상의 충성도가 최대치에 달합니다.]
[대상의 충성도는 결코,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
[대상에 새로운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대상의 등급이 상승했습니다.]
……!?
미친 듯이 쏟아지는 알림창을 보며 나는 넋이 나가고 말았다.
“미친!”
“왜 아까부터 욕을……!”
“조용히 좀 해 봐요!”
멍해진 나는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 엄청난 행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감조차 잡지 못한 것이다.
“이, 이게!”
완전히 넋이 나간 상태, 하지만 넋이 나간 것은 돌연 나뿐만이 아니었다.
멈춰있던 데스나이트의 시간이 풀렸다.
히이이잉-!
움직이기 시작한 흑마. 데스나이트의 육신이 엄청난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녀석의 검은 아우라가 공간 전체를 덮고 있었다.
우마 길드의 길드장 박한별과 싸울 때와는 완전히 격이 다른 기운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박한별은 원망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녀석이 움직이기 전에 처리했으면 좋았지 않냐며 묻는 듯한 얼굴이었다.
“혹시, 그거 가능해요?”
박한별은 나에게 다급히 물었다.
“그거요?”
“조금 전 저에게 걸어 줬던 버프요!!”
“아, 아뇨!”
박한별의 얼굴에 절망이 깃들었다.
자세히 보니 박한별은 데스나이트의 압도적인 힘 앞에 미세하게 몸을 떨고 있었다.
그때였다.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뭡니까? 대체 저건……!”
청룡 길드의 대표 지창민과 부길드 마스터 신윤호가 엄청난 기운에 발걸음을 돌린 것이다. 그들은 어느새 전투태세에 돌입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박한별 역시 의지를 다지며 자신의 무기를 힘껏 쥐었다.
“무슨 일입니까? 대체 저 힘은…….”
“모르겠어요, 저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으르렁거리던 사이였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쉽지 않을 겁니다.”
“저도 알아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청룡 길드의 대표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만큼 상대가 내뿜는 기운은 흉흉했다.
이름에 걸맞게 죽음의 기운을 흩뿌리는 녀석은 가히 압도적인 포스를 뽐내고 있었다.
“제가 앞에서 버티겠습니다.”
앞으로 나선 것은 청룡 길드의 부 길드 마스터 신윤호였다.
그는 몸만큼이나 거대한 방패를 꺼내 들고는 돌격 자세를 취했다.
확실히 잘 다듬어진 기운이었다.
그에 맞춰 지창민의 손에는 널뛰는 전격이 출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전력으로 갑니다.”
“네.”
“예, 대표님.”
그들의 눈빛은 결연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생각했다.
‘강하다……!’
얼핏 봐도 느껴졌다. 아직 내가 가 보지 못한 경지였다. 그러나 도달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조만간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꾸준히 강해지고 있었다.
당장 저 녀석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나보다 몇 배는 강한 소환수가 내 수중에 들어왔다.
조급해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꾸준히 정진하면 될 일이다.
꾸준히…….
생각을 정리한 나는 작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데스나이트에게 명령했다.
‘모습을 감춰!’
이대로 놔뒀다가는 일만 커질 것이 뻔했다.
속으로 생각하자, 전투태세에 돌입하려던 녀석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흑운의 힘을 사용했다.
검은 먹구름이 녀석의 몸을 감싸고, 이내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녀석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녀석과 연결되어 있는 나뿐이었다.
“이게…… 어떻게?”
당장이라도 달려 나갈 듯 힘을 그러모으던 셋은 당황했다.
“데스나이트가 은신 스킬도 씁니까?”
신윤호가 물었다.
“아니야, 아무리 수준 높은 은신도 이렇게 기운을 완전히 없애진 못해.”
그럼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지창민이 대답하자, 혼란은 더욱 가중됐다.
“사라졌다.”
사라졌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눈앞에서 직접 목격한 일이기에 반박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모습을 완전히 복원한 데스나이트는 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워 내듯 엄청난 기운을 내뿜더니 사라졌다.
이는 레이드 경험이 풍부한 지창민과 박한별 역시 처음 겪는 현상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죠?”
“아직 모릅니다.”
지창민의 한마디에 풀리던 긴장을 다시 끌어올렸다.
그들은 약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조용히 입을 열 수 있었다.
“후, 사라진 거 맞죠?”
“아마도요.”
“다행이군요.”
“그러게요.”
안도의 한숨을 쉬는 박한별에게 지창민이 조금씩 다가가기 시작했다.
지창민의 손이 박한별의 손으로 향했다.
“이게 뭐죠?”
“좋은 물건을 얻으셨네요.”
지창민이 박한별에게 넘긴 것은 반지였다.
낫과 해골 모양이 각인 되어 있는 얇은 은색 반지.
데스나이트를 처치하고 나온 아이템이었다.
데스나이트를 레이드 한 것은 박한별이었기에, 아이템의 소유권 역시 박한별에게 있었다.
“그럼 또 보죠.”
“그럴 일 없을 겁니다.”
탐욕의 시선으로 박한별을 바라본 지창민은 작게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떴다.
그 자리를 한참이나 노려보던 박한별은 바닥에 침을 탁 뱉더니 뒤를 돌아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 걸음이 너무 저돌적이어서 그런지 나는 본능적으로 한발 물러났다.
“고마워요.”
“……네?”
“고맙다구요. 이런 일이 생길 줄 알고 제가 다칠까 봐 막아준 거죠? 데스나이트가 죽기 전에 저런 힘을 낸다는 건 알지 못했어요. 아마 가까이 있었으면 크게 다쳤을 거예요.”
“그게 무슨…….”
무언가 단단히 오해한 눈치였다.
“제 팔을 지켜 준 것도 고맙고, 저희 길드원들을 지켜 준 것도 고마워요.”
“…….”
그녀의 팔을 지킨 것도 나고 밀려드는 언데드 웨이브를 막은 것도 내가 맞았다.
하지만 조금 전 그녀를 막은 것은 순전히 나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그녀가 오해한 것이다.
‘아무렴, 어떠냐 좋은 게 좋은 거지.’
나는 굳이 해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오해해 주면…… 오히려 좋다.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 발 더 다가온 박한별은 나에게 무엇인가를 건넸다.
“받아 주세요.”
시선을 내려 보니, 작고 동그란 물체가 그녀의 손바닥 위에 놓여 있었다.
데스나이트를 레이드하고 얻은 귀중한 반지였다.
나는 단 한 번의 거절도 없이 넙죽 그 반지를 받아 들었다.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제가 더 고맙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싱긋 웃고 있었다.
* * *
나는 영롱하게 빛나는 반지를 쳐다봤다.
[데스나이트의 반지]
등급: 유니크
효과: ??
능력치조차 볼 수 없는 반지였지만, 이 작은 물건은 무려 유니크 등급이었다.
‘유니크 등급이면 볼 것도 없이…… 아, 시발! 깜짝이야!’
반지를 받아 든 나는 흠칫 놀라며 한 발짝 물러났다.
흑운을 이용해 모습을 감춘 암살이가 반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바라본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크큭.”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