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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17화 (17/175)
  •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7화

    17. 갈고닦다(2)

    “이 미친놈아!”

    어느새 방문을 활짝 열어젖힌 천우진은 대뜸 욕을 날렸다.

    “왜 오자마자 욕이야!”

    천우진은 멀리서 빤히 바라보더니, 나에게 다가와 이마에 손을 짚었다.

    “열나는 것도 아닌데…….”

    “……뭐 하냐?”

    불쾌한 감촉에 천우진의 손을 재빨리 뿌리쳤다.

    “혹시 너 중2병이냐?”

    “뭔 개소리야!”

    “다 죽여 줄 테니, 목 닦고 기다리고 있어. 씨발놈들아? 와, 스무 살짜리가 어떻게 이런 대사를 치지?”

    얼굴이 미친 듯이 달아올랐다.

    열이 가슴부터 올라오는 기분이다.

    “닥쳐라, 진짜! 그리고 그건 내가 한 게…….”

    변명이 이어지려던 찰나, 천우진이 입을 틀어막았다.

    장난기 넘치던 얼굴이 순식간에 변했다.

    “어쩌자고 벌써 힘을 내보여!!”

    그리고 벼락같은 호통이 이어졌다.

    “어쩔 수 없었어.”

    할 말은 많았지만 할 수 없었다.

    아직, 큰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긴. 너 때문에 지금 가문 내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중이라고!”

    심상치 않은 천우진의 말투에 나는 황급히 물었다.

    “왜, 어떤데?”

    천우진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원로분들의 회의에서 계속 네 이름이 나온대.”

    “그게 뭐 어쨌다고.”

    “다시 말해 봐. 미친놈아! 그게 뭐 어쨌다고? 죽으려면 혼자 죽어 이 정신 나간 자식아. 괜히 나까지 휘말리게 하지 말고.”

    “지는…….”

    그래 네가 할 말은 아니지.

    나는 실제로 너 때문에 휘말려 죽은 몸인데.

    “…….”

    “할 말 없지?”

    “……이걸 어떻게 죽이지?”

    천우진도 내심 미안했는지 한껏 누그러진 말투였다.

    “그나저나 무슨 이야기를 했다는데?”

    나는 서둘러 대답을 재촉했다.

    “겉으로는 축하한다느니 어쩌니 하는 형식적인 이야기였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대.”

    “자세히 말해 봐.”

    나는 자세를 고쳐 앉고 천우진에게 말했다.

    “자세히 말하고 할 것도 없어. 그냥 간 보는 거지. 같은 편으로 회유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싹을 잘라 내는 게 좋을까.”

    “예상했던 거야.”

    나는 담담히 대답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천우진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왜 그런 짓을…….”

    천우진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어.”

    “뭔 소리야?”

    “객관적으로 봐도 내 실력은 형편없어.”

    “암, 하찮지.”

    천우진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뒤질래?”

    “빨리 말하기나 해.”

    천우진의 재촉에 잠시 뜸을 들이던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내가 그냥 뜬금없이 돌아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오히려 더 위험했을 거야.”

    잠시 생각에 잠겼던 천우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원래 미지의 적일수록 두려움은 커지는 법이다.

    내가 가문에 돌아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면 나를 견제하던 모든 사람에게 불안감을 안겨 줬을 것이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나를 위험에 빠뜨리는 데 박차를 가했을 것이고…….

    의도하진 않았지만, 힘을 내보인 것은 결과적으로 옳은 판단이었다.

    가문 내에서는 이미 첫째 형 천진오의 세력과 둘째 형 천지훈의 세력, 그리고 이를 관망하는 아버지의 세력이 존재했다.

    어느 쪽에서든 나는 골칫덩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한쪽으로 붙는 순간 팽팽하던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어질 수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힘이 부족하더라도 직계는 직계였다.

    부모님을 제외하면 오직 3명뿐인 직계의 힘은 결코 무시할 것이 못 된다.

    “나를 마켓에 내놓을 거야.”

    천진오의 눈빛이 빛났다.

    단번에 의도를 알아챈 눈빛이었다.

    “모두가 너를 지키게 만들겠다는 거지?”

    “그래. 낭떠러지에서 외줄 타는 느낌이겠지만 오히려 이게 더 안전할 수 있어.”

    적의 적은 동지라는 말이 있다.

    아직 내가 세력을 선택하지 않는 이상. 당분간은 모두가 나를 주시할 것이다.

    한쪽에서 내 싹을 자르려 든다면, 오히려 반대편 세력이 나를 지키며 자신의 편으로 회유하려 들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였다.

    이점이 내가 노리는 점이었다.

    내 말을 들은 천우진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

    “무식한 놈인 줄 알았는데…… 너도 머리라는 걸 쓸 줄 아는구나?”

    역시나 장난기 넘치는 모습으로 나를 놀려 대는 모습.

    그 모습에 나도 피식 미소를 보였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결국 나쁘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

    천설아라는 변수도 만날 수 있었고, 나름의 복수도 했으며, 희귀한 속성도 얻어 냈다.

    수확이 적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리고…….

    한 인물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큰아버지는 여기까지 생각한 건가?’

    생각하면 할수록 스승님의 도발은 의미 있는 것이었다.

    나라는 존재가 가문 내에서 어떤 식으로 인식되는지를 파악하고 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동이 다소 과격하긴 했지만, 큰아버지는 나를 순식간에 제거하기 좋은 잡초에서, 잠재력 있는 유망주로 만들어 놨다.

    이 인식의 차이가 위태롭던 목숨줄을 질기게 만들었다.

    ‘대단한 선구안이다.’

    본질을 꿰뚫는 눈.

    스승 천태백에게 배울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들어 봐, 형.”

    나는 천우진에게 천설아에게서 들었던 내용과 앞으로의 계획을 모두 말해 준 뒤 가문을 나섰다.

    * * *

    “못난 놈.”

    천태백은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적어도 네댓 명은 쓰러뜨릴 줄 알았는데, 꼴랑 두 명이 다인 것이냐?”

    가문 내에서 벌어진 소식을 들은 것이 틀림없었다.

    “두 명도 대단한 거 아닙니까? 애초에 무술을 배운 적도 없는데.”

    사실 나도 전력을 다했다면 네 명쯤 쓰러뜨릴 수 있었다는 생각이었지만, 복수보다 탐나는 먹잇감이 눈앞에 있어 어쩔 수 없었다.

    빙(氷) 속성.

    원소 속성 스킬은 가문 내에서 가장 높은 취급을 받는 스킬 중 하나였다.

    염동력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특성과 궁합이 좋다는 이유에서였다.

    천주환이 1군 진급을 앞둔 이유도 바로 이 빙 속성 스킬에 의한 것이었다.

    ‘맛있는 먹거리를 놓칠 수는 없지.’

    빌어먹게도, 죽을 만큼 처맞은 뒤에야 훔칠 수 있는 것이 바로 속성이었다.

    ‘무슨 메커니즘이…….’

    활력의 X망 스킬 메커니즘에도 벌써 3개의 속성을 모은 것이 기적이라면 기적이었다.

    나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스승이 말했다.

    “조금 더 빡세게 굴려야겠구나.”

    듣기만 해도 소름 돋는 이야기였지만, 수련에 들어가기에 앞서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앞으로 감시는 더욱 삼엄해질 겁니다.”

    “알고 있다.”

    “괜찮겠습니까?”

    나는 조금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분명 나를 감시하는 녀석들 또한 엄청난 실력자일 것이 분명했다.

    애초에 천가는 괴물들만 득실대는 곳이니까.

    그런 감시자들을 모두 찾아내 최면을 걸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믿을 만한 아이다.”

    천태백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확신이 부족했다.

    이곳에서 수련한다는 게 들통나면 위험은 두 배로 커질 테니까.

    “돈도 두 배로 넣었으니 걱정할 것 없다.”

    스승님은 조금 속이 쓰린 표정이었다.

    전설의 명약이라 불리는 엘릭서도 들고 다니는 양반이 돈이 들면 얼마나 든다고…….

    “부하 아니었습니까?”

    “부하는 무슨. 나는 혼자 행동한다. 녀석은 가끔 같이 일하는 관계일 뿐이야.”

    의외의 대답이 들려왔다.

    나는 수화기 너머로 들리던 미지의 여성이 점점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대체 누굽니까?”

    “나중에 이야기해 주마.”

    짧은 대답을 끝으로 천태백은 대련장의 정중앙으로 향했다.

    이제 본격적인 수련을 시작할 거라는 이야기였다.

    정중앙에 도착하고 호흡을 가다듬고 있을 때, 스승님이 말했다.

    “나는 너를 앞으로 3개월만 가르칠 것이다.”

    “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아직 나는 약하다.

    무술의 기초도 잡히지 않았고 제대로 싸우는 법도 모른다. 그런데 3개월이라니…… 몸의 중심을 잡는 데만 한 달이 걸렸다. 3개월은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다.

    “왜요?”

    얼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그렇게 한가한 줄 아느냐?”

    “그건 아니지만…….”

    “걱정하지 말거라. 기초는 모두 때려 박아 주고 갈 테니.”

    “기초 가지고 될 게 아닌데…….”

    나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뭐라?”

    “조금 더 있어 주시면 안 됩니까?”

    “중요한 일정이 있다.”

    큰아버지는 너무나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심 서운했지만, 마냥 생떼를 부릴 수도 없는 상황.

    ‘그래도 3개월은 너무 짧은데…….’

    기초는 모두 때려 박아주고 가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적어도 천지훈에게 당하지 않을 정도가 되려면 심화 과정은 물론이요, 대학원 과정까지 필요한 시점이었다.

    “무엇을 그리 초조해하느냐? 너는 고작 스물이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큰아버지에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 답답할 따름이었다. 미래는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틀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스승님의 성격을 생각하면 말하는 순간, 일을 이상하게 꼬아 놓을 가능성이 컸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역시 그 방법밖에 없나?’

    조용히 물었다.

    “3개월이면 제가 어느 정도로 강해질 거라 보십니까?”

    “1급 놈들 절반은 잡겠지.”

    천태백은 자신 있게 말했다.

    평생을 갈고닦은 녀석들을 단 3개월 만에 이기게 해 주겠다니, 꽤 놀라운 성과였다.

    하지만 부족했다.

    이미 천진오와 천지훈은 나를 감시하기 시작했고, 올해 말까지는 딱 3개월이 남았다.

    차기 가주가 발표되면 천지훈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움직일 터였다.

    시간이 촉박했다.

    “한 번 봐 주시겠습니까?”

    “무엇을 말이냐?”

    화악-!

    나는 특성 [천가의 피]의 해금률을 모두 개방했다. 아직 50퍼센트에서 제자리걸음이었지만 전력을 다해 쥐어 짜냈다.

    “천천히 공격해 주시죠.”

    나의 제안에 큰아버지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내 눈이 잘못되었다. 믿고 싶은 것이냐?”

    “…….”

    계속해서 나는 활력 스킬을 개방했다.

    새로운 속성을 얻고 풀린 해금률은 50퍼센트에 육박했다.

    전설 등급에 걸맞게 10퍼센트의 차이는 컸다.

    무려 신체 능력이 50퍼센트나 향상된 몸짓은 예전과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스승님 역시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그러고는 재밌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고는 공격을 시작했다.

    “정정하지. 3분의 2는 잡겠구나.”

    천태백은 점점 더 속력을 높이며 나를 압박해 왔다.

    첫날처럼 한방에 나가떨어질 공격을 하기보다는 나에게 약간 버거운 공격만을 연타로 날리고 있었다.

    “크윽!”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데미지는 누적되고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정도로는 3분의 2가 한계다.”

    큰아버지의 평가는 냉정했다.

    아마 지금의 실력과 앞으로 늘어날 실력을 정확하게 계산한 것이리라…….

    그러나 나는 한가지 보여 주지 않은 것이 있었다.

    [속성을 부여하시겠습니까?]

    활력을 개방한 다음부터 끊임없이 점멸하던 알림.

    애써 무시하던 대답을 이젠 해야겠다.

    “부여, 뇌(雷)!”

    파지지직-!

    끝없이 나를 몰아치던 큰아버지가 처음으로 거리를 벌렸다.

    그의 동공에 작은 지진이 일었다.

    이 능력은 큰아버지 역시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다름 아닌 가문의 가주 후보에게서 훔쳐 온 것이었으니까!

    [반사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집니다.]

    [전격 공격이 가능해집니다.]

    온몸에 넘치는 전기가 파직 거리며 날뛰고 있었다.

    “이젠…… 어떻습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크큭, 크하하하!”

    내 모습을 바라본 큰아버지는 호탕하게 웃고 있었다.

    가주전에 들어가 아버지와 식사하던 그날.

    날 보며 웃었던 그 얼굴과 닮아 있었다.

    항상 뒷짐을 지고 공격하던 큰아버지가 처음으로 자세를 풀었다.

    “들어와 보거라.”

    “예!”

    나는 있는 힘껏 발을 구르며 나아갔다.

    천지 놈들 절반은 잡을 수 있게 해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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