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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16화 (16/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6화

16. 갈고닦다(1)

의식을 찾은 후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낯선 천장이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안고 몸을 반쯤 일으켰다.

“여긴…….”

대련 후 밥 먹듯이 실려 들어오던 치료실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오랜 기간 방치되어 있던 내 방도 아니었다.

“일어났니?”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간을 분리하던 침대 옆 커튼을 걷자 목소리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오랜만이네.”

“천…… 설아?”

“천설아는 반말이고.”

“아, 죄송합니다.”

푹신한 이불을 걷어 내고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천설아.

작은아버지의 첫째 딸이자 나와 지독한 악연으로 묶인 천정일과 천석일의 누나였다.

“그렇게 긴장 안 해도 돼.”

“여기가 어디죠?”

“내 방.”

“제가 왜 여기에…….”

나는 분명 천주환과의 대련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그렇다면 누워 있더라도 치료실이나 내 방에서 일어나야 정상이 아닌가.

“내가 납치했거든.”

천설아는 자랑스럽다는 듯 지껄이고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몸을 살폈다.

무슨 짓을 저지른 건 아닌가 의심이 됐기 때문이다.

다른 이도 아닌 그 새끼들의 친누나가 아닌가!

의심할 이유는 충분했다.

구멍이 숭숭 뚫려 있던 몸은 다행히 서서히 아무는 중이었다.

그러나, 워낙 다양한 능력, 스킬, 신묘한 아이템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이었다.

내 몸에 무슨 짓을 해 놨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뭐 하는 짓입니까!”

나는 소리쳤다.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식은땀이 흐르고 손에 약간의 경련이 일었다.

반면, 고함을 지르고 있음에도, 천설아의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아무 짓도 안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

꼭 귀여운 장난감을 보고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제가 왜 여기 있는지 설명해야 할 겁니다.”

차갑게 대답했다.

생도 생활을 하고 있던 시절, 천설아는 이미 실전에서 뛰고 있는 어엿한 가문의 주축이었다.

마주할 일이 별로 없던 미지의 인물이라 더욱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우선 납치한 건 미안.”

예상치 못한 사과가 들려왔다.

“치료실에서 회복 중인 걸 봤는데, 그만하면 다 나은 것 같기도 하고…… 또 대화도 하고 싶어서 말이야.”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황당함에 헛숨을 들이켰다.

그러면 애초에 납치를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할 말이 있었다면 병실에서 일어났을 때 해도 되지 않습니까?”

의심은 더욱 짙어졌다.

“거기서 할 만한 대화가 아니라서…….”

뜸을 들이는 천설아의 모습에 나는 한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천설아.

천설아는 아버지가 주신 세력도에서 가장 유심히 본 인물 중 하나였다.

나의 첫째 형, 천진오의 최측근이자 가장 핵심 전력.

그곳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요주의!

즉, 아버지조차 신경 쓰고 있는 인물이라는 뜻이다.

그런 자가 나를 납치했다.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 주시죠.”

2급 생도도 온몸에 구멍 바람이 숭숭 난 채로 겨우 이긴 내가 가문 내에서 각광받는 그녀를 이길 자신은 없었다.

잠시 뜸을 들인 그녀가 입을 열었다.

“너 우리 팀에 들어 올래?”

“싫습니다.”

들어 볼 필요도 없는 말이었다.

실력도 없는 지금 누구의 편을 들었다가는 봉변을 당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너무 빨리 거절했나?

이야기 정도는 다 듣고 나서 결정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성급했다.’

성급한 거절이 오히려 반발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다.

첫째 형이 아닌 둘째 형의 편을 들 것이라는 의도로 받아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크흐! 너무 단호한 거 아니니?”

천설아는 웃고 있었다.

마치 기쁘다는 듯이!

나는 그녀의 웃음이 무슨 의도인지 몰라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소문을 들어서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2급 생도들과 비슷한 실력입니다. 제가 어떻게 감히 천지(天地)에 들어가겠습니까?”

천지(天志)는 나의 첫째 형 천진오가 이끄는 팀의 이름이었다.

“겸손한 점도 마음에 들고.”

“그게 무슨…….”

“이거 물어보려고 납치한 거야. 정말 네 몸에는 아무 짓도 안 했어.”

천설아는 양손을 올려 보이며 나를 바라봤다.

여전히 미소를 띤 채였다.

완전히 믿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의심은 애써 억눌렀다.

나는 한층 누그러든 표정으로 그녀를 대했다.

“기분 안 나쁘십니까?”

“내가 왜?”

“거절당하셨잖습니까?”

“진오 오빠가 물어봐달라고 해서 물어본 거뿐이야.”

역시 그녀는 천진오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첫째 형도 나를 의식하고 있다.

새롭게 얻은 귀중한 정보였다.

“죄송합니다.”

나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그리고 그 순간, 예상치 못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죄송하긴, 잘했어. 잘 선택한 거야! 천진오 그 자식도 내가 볼 땐 내 동생들만큼이나 쓰레기니까. 어머, 미안!”

분노나 적개심은 아니었다.

그러나 천설아의 얼굴에는 분명 부정적인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나는 뜻밖의 정보에 조금 더 욕심을 내기로 했다.

“아닙니다. 그런데…… 첫째 형님과 가까이 지내시지 않습니까?”

“가깝긴 개뿔. 그냥 같은 팀이니까 같이 다니는 거지. 아, 나 미쳤나 봐! 미안, 계속 네 앞에서…….”

불평 가득한 얼굴.

천설아는 퇴근 후 직장 욕을 해 대는 평사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저 말이 사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습니다. 저도 형 싫어합니다.”

“정말?”

그녀는 조금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제 슬슬 그녀의 성격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확실히 하기 위해 그녀를 슬쩍 떠봤다.

“그건 그렇고…… 천정일, 천석일은 왜 이렇게 싫어하십니까? 친동생들 아닙니까?”

“넌 걔들이 정상으로 보이니? 그렇게 당해 놓고도 몰라?”

역시!

그녀는 진심으로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확실히…….

요주의 인물이기는 하다.

굉장히 좋은 의미로.

“그렇긴 하죠.”

“그치? 난 또 네가 속도 없이 당해 놓고도 실실거리는 바보인 줄 알 뻔했지, 뭐니.”

천설아는 나와 대화가 통한다고 생각했는지, 점점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사실 널 납치한 건 그냥 오랜만에 네가 보고 싶어서 그랬어.”

“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가문에서 내쫓기기 전, 그녀와 나는 그다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오다가다 인사만 하는 정도.

그녀가 나를 보고 싶어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나는 널 항상 좋게 생각하고 있었어.”

“저를요?”

“응, 멋있다고 생각했거든.”

그녀는 손을 모으며 나를 바라봤다.

잠시 내려놨던 의심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가문에서 내쫓기기 전 내 모습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럴 리가요.”

“진짜! 그렇게 당하는데도 너는 단 한 번도 비굴한 적이 없었잖아.”

“제가요?”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대련하다가 죽도록 처맞고 항복을 외친 것이 몇 번인데…….

“대련을 거절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잖아. 질 걸 뻔히 아는데도 말이야.”

“그건…….”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건 결코 내가 비굴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몰랐기 때문이었다.

어른들이 허락하면 무조건 해야 하는 줄만 알았다.

반항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시발, 존나 억울하네.’

이쯤 되면 그녀가 계속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는 소리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조금 이상한 건 사실이었다.

내가 아는 한, 가문 내에서 이유 없는 호의를 베푸는 사람은 없다.

몇몇 괴짜들을 제외하고는…….

“정말 그게 답니까?”

“응, 정말.”

그녀는 해맑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티 없이 맑은 얼굴.

그러나…….

그 얼굴 속에 알 수 없는 괴리감이 스치는 것은 왜일까?

아버지와 가주 자리를 놓고 반목했던 작은 아버지 천태수. 나를 매일 같이 괴롭혔던 1급 생도 천정일. 그리고 얼마 전 붙어 승리를 거뒀던 막내 천석일.

그녀의 배경이 그녀에 대해 선입견을 만든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속고 있는 것인가.

한순간 보인 미묘한 그녀의 낯빛에 머릿속이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머리가 조금 아프네요.”

“진짜? 심하게 다쳤었다고 들었는데, 그것 때문에 그런가 보다. 조금 더 누워 있어.”

천설아는 화들짝 놀라며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아뇨, 그것 때문이 아니라…….”

“그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모습.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점점 결심이 굳혀졌다.

“말해 주셨으면 합니다.”

“뭐를?”

“저를 납치한 진짜 이유.”

나의 물음에 천설아의 얼굴이 조금씩 굳어졌다.

* * *

“후우…….”

한숨이 방안을 가득 메웠다.

천설아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난 뒤.

나는 깊은 고뇌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생각했던 미래는 조금 더 복잡하게 흘러갈 확률이 높았다.

아버지는 죽게 될 것이고, 작은형은 가족을 몰살시킬 것이다.

천설아가 무언가를 알고 말한 것 같진 않지만…… 그녀의 말이 엄청난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었다.

어쩌면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할지도 몰랐다.

우선, 아버지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그건 철용 아저씨한테 맡기면 될 거고…….’

급한 불은 여전히 나였다.

미래를 흔들 만한 큰 변수가 나여야만 했다.

내가 강해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다시 돌아가야겠어.”

생도와 어른들은 내가 가문에 완전히 돌아온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큰아버지의 도발, 그로 인해 잠깐 들린 것일 뿐이다. 여기서 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무엇보다…….

이곳은 내가 강해지는 데 방해만 된다.

이번 경험을 통해 확실히 느꼈다.

고만고만한 2급 생도들과 실전 경험을 쌓으며 훈련하는 것보다 큰아버지에게 죽도록 처맞으며 훈련하는 것이 백배는 도움 된다는 걸!

조용히 굳은살 박힌 손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확실히 강해졌다!

2급 생도들을 상대하고 느낄 수 있었다.

저 녀석들은 조금만 더 수행한다면 더 이상 내 상대가 되지 못할 거라는 걸.

그만큼 큰아버지의 교육은 대단했다.

한평생 수행해 온 이들의 성과를 한 달 속성으로 끝내 버린다.

‘처음엔 쓸데없는 훈련이라고 생각했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기초 훈련이었다.

무게 중심을 흩트리는 순간, 승세를 잡는 건 한순간이었으니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두근.

실전에 사용 가능한 무술이나 비기를 배울 경우, 얼마나 강해질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성취가 손에 쥐여 있었다.

나름의 복수도 성공했다.

매우 중요한 정보도 입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활력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부여 가능 속성 – 뇌(雷), 흑운(黑雲), 빙(氷)]

아무도 모르는 필살기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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