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5화
15. 돌아온 막내아들(3)
“다음!!”
그동안의 설움을 토해 내듯 외친 나는 조용히 주변을 관망했다.
나약했던 시절, 나를 하나의 놀잇감으로 생각하고 대했던 아이들이었다.
“없어?”
녀석들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었다.
놀람, 혹은 질투심, 혹은 분노…….
다양한 군상이 저기 모여 있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누군가 손을 들며 외쳤다.
“제가 하겠습니다.”
앞으로 나선 것은 익히 내가 알고 있던 녀석이었다.
방계, 그중에서도 세력이 거의 없다시피 한 먼 친척이었지만 오랜 기간 기억에 남아 있던 녀석이었다.
“오랜만이군, 천주환.”
“저를 기억하십니까?”
“잊을 수가 있나.”
당연히 기억한다. 천정일 만큼이나 나를 괴롭혔던 녀석이었으니까.
녀석은 쫙 찢어진 눈을 더욱 찢어 대며 웃고 있었다.
“영광입니다.”
“영광은 무슨…….”
무대로 올라온 천주환은 그대로 자리를 잡았다.
대부분의 천가가 이례 그렇듯 천주환 역시 천가의 비전 무술 천파권(天破拳)의 기본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자세를 마주하자 긴장이 일었다.
천가의 힘이 온전히 느껴지는 기운.
조금 전 그 녀석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강자였다.
‘천석일은 염동력만 뛰어나고 신체 능력은 형편없는 수준이었지만…….’
이 녀석은 다르다!
육체 능력이 월등한 데다가 염동력 또한 준수한 녀석이었다.
‘천석일이 미운 오리 새끼였다면 천주환은 개천에서 난 용이다!’
조금 전처럼 요행을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술을 배운 적 없는 나에게는 더더욱 까다로운 녀석일 수밖에 없었다.
“옛 추억이 생각나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자신감 넘치는 녀석의 태도에 왼쪽 옆구리가 아려 왔다.
언젠가 녀석의 스킬에 관통당한 곳이었다. 흉터는 말끔히 사라졌지만, 그때 느낀 고통만큼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일반인과 다름없던 내 몸에 구멍을 뚫어 버린 녀석.
찢어진 눈만큼이나 음흉하고, 잔인하던 녀석.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천주환이었다.
“할 수 있으면 해 봐.”
먼저 움직인 것은 녀석이었다.
구르는 발에 힘이 느껴졌다.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바람을 가르는 권이 안면을 향해 날아왔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녀석의 권법은 분명 맹렬하고 날카로웠다. 태산을 가를듯한 기세였으며, 야수와도 같은 눈동자였다.
이루 설명할 수 없는 기시감이 온몸을 덮쳤다.
‘보인다.’
‘보인다’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녀석의 공격을 술술 피하는 와중에도…… 분명히 보였다.
“여기!”
쾅!
“크윽!”
녀석의 주먹이 애꿎은 바닥을 강타했다.
틀어진 중심에 손만 갖다 댔을 뿐이었다.
일평생 무술을 배운 적이 없지만 놀랍게도, 어디를 공격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무게 중심이 흐트러지는 곳.
큰아버지였다면 반드시 노려 공격했을 그곳.
그곳이 보이기 시작했다.
* * *
2급 생도.
그렇지만 곧 1급으로 승급 예정인 천주환은 죽을 맛이었다.
“시발, 더럽게 안 맞네.”
딱 한 대. 한 대만 들어가면 자신 있었다.
자신이 자랑하는 연타 공격으로 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건방을 떠는 막내 도련님의 콧대를 눌러줄 자신이!
그러나 공격은 좀처럼 먹혀들지 않았다.
천석일과 붙을 때도 느꼈지만 확실히 몸놀림이 잽싸긴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공격력은 자신보다 약했으며, 몸놀림은 천석일의 쓰레기 같은 원거리 공격만 간신히 피할 수 있을 정도였다.
틀림없이…… 틀림없이 그 정도일 터인데…….
‘젠장! 안 맞는 건 둘째치고 이건……!’
계속해서 공격을 허용하고 있다. 게다가 중심이 풀려 바닥에 처박히는 등, 꼴사나운 모습만 계속해서 보이는 중이었다.
‘크윽, 대체…… 왜!’
영문 모를 일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었다.
분명 녀석의 공격은 볼품없었다.
엉성하고, 기본조차 잡혀 있지 않은 지르기였다.
그러나 피할 수가 없었다.
피하기 힘든 곳만 노려 정확한 공격이 들어왔다.
“왜? 쪽팔려?”
천도윤이 나를 내려다봤다.
평생 내 발아래서 구르던 녀석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능력도 없이 부모 하나 잘 만난 덕에 호의호식하던 새끼가 말이다!
“으아아악!!”
적당히 놀아 줄까 하는 가벼운 생각이, 저 눈깔을 본 순간 뒤바뀌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사용하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기서 진다면 정말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다. 아니, 천도윤 저 새끼한테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
“나는…….”
“너는 뭐.”
여전히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 얼굴이었다.
분노가 일었다.
“능력 있는 누나나 형만 믿고 나대는 천석일과는 다르다!”
“얼씨구.”
녀석은 여전히 나를 무시하고 있었다.
“핏줄만 믿고 까부는 너와도 다르단 말이다!”
소리치는 천주환의 주위로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삭풍처럼 살을 에는 바람이 경기장을 덮쳤다.
조금씩 생겨나는 결정.
수중의 공기가 뭉치고, 얼어 하나의 결정체를 이루고 있었다.
“오랜만이지?”
천주환의 목소리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제대로 꿰뚫어 줄게.”
입안의 피를 내뱉은 천주환은 웃고 있었다.
* * *
‘아프겠지?’
천주환의 얼음송곳을 마주하고 들은 첫 생각이었다.
‘후…… 하기로 했잖아. 침착하자.’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내심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내 생각이 옳다면…… 저 공격은 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것이다.
“…….”
“오른쪽 옆구리였던가?”
몇 년이나 지난 이야기였지만 녀석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설마, 일부러 그랬나?”
“당연하지.”
그 당시 나는 저 녀석의 공격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상급 포션이 아닌 오직 힐을 이용한 치료만 받아왔던 터라 회복하기까지 꽤 고생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말뿐일지라도 그때는 분명 사고라고 했는데…….’
이젠 대놓고 이빨을 들이밀고 있다.
너무 늦은 복귀에 내가 더 이상 가문 내에서 힘을 쓰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어차피 돌아올 생각도 없다만…….
기분이 나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럼 대가를 치러야지.”
나는 녀석을 향해 달려갔다.
천주환에게 다가가면 갈수록 냉기는 심해졌다.
온몸의 근육이 경직되는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은 나아가야 할 때였다.
날아오는 송곳들을 피하며 한발 한발 다가갔다.
대부분 피하고 있었지만, 확실히 천석일과 대련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가까워지면 질수록 급속도로 떨어지는 온도. 몸은 그에 맞춰 점점 경직되고 있었다.
“크윽!”
지척에 다다르자, 어깨에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일단 한 방!”
왼쪽 어깨가 깊게 파였다.
예상치 못한 부상에 초조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반면, 천주환은 완전히 여유를 되찾은 모습이었다.
“올 수 있으면 와 봐!”
녀석의 공격이 더욱 매서워졌다.
살갗이 찢기고, 또 얼어붙었다.
이 상태로는 녀석에게 다가간다고 하더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도 나아가야만 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으니.
인고의 시간이 지나고 녀석 앞에 다다른 나는 숨을 한 번 몰아쉬고는 단숨에 몸을 날렸다.
멀쩡한 오른손으로 강하게 훅을 날렸다.
그러나 경직된 동작은 녀석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간단히 몸을 젖혀 피하는 천주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더 붙였다. 그러고는…….
툭.
“……?”
“…….”
“크하하하. 그 걸레짝 된 손으로 공격한 거야? 느낌도 없는 공격을…….”
“아니.”
투쾅!!
녀석의 얼굴이 땅에 파묻혔다.
내가 노린 것은 약간의 틈이었다.
망가진 왼쪽 팔로는 공격을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완전히 깨부수고 공격을 가했다. 녀석의 예상보다 훨씬, 아니 아예 느낌이 없다시피 한 공격.
녀석을 당혹스럽게 만들기엔 충분한 공격이었다.
그리고 그 짧은 틈이 기회를 만들었다.
“크윽!”
녀석의 이마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나의 계획은 완벽하게 먹혀들었다.
“이 새끼가 비겁하게!”
나는 바닥에 처박힌 천주환이 일어서기 전에 재빨리 녀석의 위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마운팅 자세로 끊임없는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퍽!퍽!퍽!
녀석은 가드 자세를 취한 채 빠져나가려 애썼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시발, 더럽게 아프겠네.”
“이 개새끼가! 너 지금……!”
“너 말고, 나.”
대답과 동시에 정신이 아득할 정도의 통증이 등에 꽂혔다.
울컥하고 피가 쏟아져 나왔다.
“크큭, 이기는 건 나야.”
녀석 역시 피를 토하며 조소를 흘리고 있었다.
“병신.”
나는 계속해서 녀석에게 주먹을 날렸다.
다시 한번 얼음송곳이 몸을 꿰뚫었지만, 주먹은 쉬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악물고 녀석을 끝까지 몰아붙였다.
나의 피와 천주환의 피가 섞여 대련장의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누가 이길지 알 수 없는 상황!
대련을 지켜보던 그 누구도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녀석의 얼음송곳은 더 이상 날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더 이상 녀석을 때릴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한 줌의 여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눈을 완전히 까뒤집은 채 기절한 녀석.
나는 웃는 얼굴로 녀석이 몸에 박아 둔 얼음송곳 하나를 빼냈다.
“시발, 속성 하나 얻기 드럽게 힘드네.”
[‘활력’에 새로운 속성을 추가하겠습니까?]
[추가 가능한 속성 – 빙(氷)]
속성을 등록한 채…….
나 역시 의식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