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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10화 (10/175)
  •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10화

    10. 스승(1)

    놀랍게도 단련장은 윤식 조형과 불과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낮에는 박윤식 영감을 도와 동상을 만들었고, 밤에는 단련장에 찾아가 능력을 시험하며 생활하는 나날이었다.

    “후…….”

    비 오듯 흐르는 땀.

    나름대로 몸을 굴리며 단련하고 있었지만, 해금률은 여전히 40퍼센트에 머무른 상태였다.

    “일주일째 그대로네.”

    지금까지는 가만히 숨만 쉬어도 능력이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했다면 40퍼센트에 다다라서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느낌이었다.

    “……어쩌겠냐, 굴러야지.”

    다시 한번 자리를 잡고 능력을 개방할 준비를 할 때였다.

    “형편없는 솜씨군.”

    뒤를 돌았다.

    그곳에는 처음 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중년의 남성.

    철용 아저씨의 기척도 읽었건만 저 사내의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마치 존재하지 않는 영혼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인한 인상을 지닌 그는 나를 마치 벌레 보듯 쳐다보고 있었다.

    “누구십니까? 여긴 아무나…… 크헉.”

    “이 정도도 피하지 못하는 게냐? 정말 천가의 피가 맞느냐?”

    숨이 턱 막혔지만 올라오는 피를 삼키고는 물었다.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네놈 아버지다.”

    “크헉.”

    또다시 날아온 공격에 바닥을 굴렀다.

    이번에는 어디서 날아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시발…….”

    갈비뼈가 서너 개쯤 부러진 느낌이었다.

    다짜고짜 공격이라니.

    나는 지친 몸을 억지로 일으켜 천가의 피를 모두 개방했다.

    중년과 노인 그 사이의 나이쯤 돼 보이는 사내는 방출된 힘을 보고도 여전히 조소를 흘렸다.

    “쓰레기군. 이런 녀석에게…….”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인 남성은 피를 토하며 간신히 서 있는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천가를 맡기려 한다니.”

    “뭔 개소리……!”

    한순간이었다.

    정신을 집중해 맞을 위치만을 파악했을 뿐이었다.

    빠각-!

    소름 끼치는 소리가 단련장을 메우고.

    나는 덜렁거리는 왼쪽 팔을 마주 봐야만 했다.

    “끄아아아악!!”

    “덜렁거리는 게 꼭 허수아비 같구나.”

    저자는 웃고 있었다.

    나는 핏발 선 눈으로 녀석을 노려봤다.

    죽었다.

    무조건 죽었다.

    방금 공격을 막지 않았다면…….

    더 이상 장난이 아니었다.

    누군지는 모른다.

    그러나 살기 위해선 뭐라도 해야만 했다.

    “활력.”

    [신체 능력이 40% 향상됩니다.]

    짧은 알림음이 들리고, 아직 온전치 않은 활력 스킬이 활성화되었다.

    스킬 [활력]은 애초에 동상이 아닌 인간을 상대로 사용하는 스킬.

    ‘활력’은 해금된 이후 엄청난 효과를 내는 버프 스킬로 자리매김했다.

    나는 빨라진 신체 능력으로 재빨리 거리를 벌린 후 품속에서 얼마 전 받아 뒀던 최상급 포션을 들이켰다.

    순식간에 피가 멎고 팔과 갈비뼈가 조금씩 붙는 것이 느껴졌다.

    ‘괜히 여분의 목숨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네.’

    새삼 놀라웠지만, 지금은 감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다시 날아오는 공격.

    조금 전과 확실히 달라진 점이라면 공격이 조금은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정체불명의 사내는 오른쪽 발을 짧고 간결하게 휘둘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주먹인지 발인지 구별할 수도 없었는데…….’

    이젠 조금씩 보인다.

    가까스로 몸을 젖혀 얼굴로 날아오는 공격을 피했다.

    빡-!

    나는 다시 한번 단련장을 굴렀다.

    “어떻게?”

    “느려.”

    사내는 재밌다는 듯 웃음을 보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쓰레기였던 활력 스킬은 해금되고 난 후, 완전히 탈바꿈했다.

    스킬 활력의 해금률 역시 40%. 그러나 신체 능력을 40%나 올려 주는 사기급 버프 스킬을 사용했음에도 노인의 공격은 막을 수 없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대체 누구십니까?”

    “말했잖느냐. 네 아버지라고.”

    “제 아버지는…….”

    “내 동생이지.”

    아버지는 3남매 중 첫째다.

    위로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 저 사내는 뻔뻔하게도 없는 사람을 사칭하고 있었다.

    그것도 대한민국의 대표 가문 천가이자 나의 가문을.

    “개소리!”

    “큰아버지한테 못 하는 말이 없군.”

    “아버지에게는 형이 없습니다.”

    “대외적으론 그렇지.”

    사내는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며 나에게 무엇인가를 던졌다.

    빠르게 날아온 물건을 잡아챈 나는 손에 잡힌 그것을 확인했다.

    천가(天家).

    천가임을 증명하는 명패, 거기에 금빛 테두리가 쳐진 명패는 원로 이상급의 직책을 가진 이들에게만 허락된 것이었다.

    “이, 이게…….”

    “의심 많은 것은 아비와 똑같구나.”

    나는 이제야 아버지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릴 수 있었다.

    -선생을 한 명 붙여 줄까 하는데. 괜찮겠느냐?

    믿을 수 있는 사람이냐는 물음에 물론이라며 자신 있게 답했던 아버지.

    조만간 보내겠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다.

    “허…….”

    헛숨을 깊게 들이켰다. 맥이 탁 풀려 버렸다.

    “숨겨 왔던 아들도 아니고 아버지라니…….”

    “처음 보는 게지?”

    “정말입니까?”

    “뭐가 말이냐?”

    “이거요.”

    나는 손에 쥔 명패를 흔들었다.

    “보면 모르겠느냐?”

    “누가 봐도 진짜 같아서 그럽니다. 그쪽…… 아니, 큰아버지 같으면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거야 내 알 바 아니지.”

    끌끌 웃는 호리호리한 체형의 큰아버지는 건장한 체격의 아버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나 얼굴만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이 사실을 나만 모르고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마 형들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을 큰아버지라고 소개한 자는 나에게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조금 전 공격하던 자세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지만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웃는 얼굴로 사람을 죽일 뻔한 것이 조금 전의 일이다.

    “천가의 검이라고 들어 봤느냐?”

    “철용 아저씨?”

    “그놈은 잡부고. 뭐, 실력은 꽤 쓸만하지만.”

    사내의 말을 들은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누가 감히 철용을 잡부라고 할 수 있는가?

    명실상부 가주의 검이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그런 자를 일개 잡부 취급하다니…….

    도저히 머리가 현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문득 한가지 단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가문 내 괴담 혹은 낭설로 여겨지는 이야기.

    “흑운……?”

    “끌끌, 조심한다고 하긴 했는데 소문이 퍼지긴 한 모양이구나.”

    “그건 그냥 괴담이…….”

    “흑운은 존재한다.”

    흑운(黑雲).

    가문을 수호하는 방패이자 검.

    구름같이 잡히지도 않으며 잡을 수도 없다 하여 붙여진 이름.

    소문을 만들어 내기 좋아하는 누군가 만든 저렴한 농담인 줄만 알았는데…….

    “그냥 전설인 줄만 알았는데…….”

    “내가 살아 있는 전설이긴 하지, 끌끌.”

    “흑운 소속이신 겁니까?”

    소문에 의하면 흑운은 오직 가주의 말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비밀 부대였다.

    ‘어려서부터 훈련받았다면…….’

    지금껏 나조차 모르던 단체라면 큰아버지의 존재가 조금은 이해되기도 했다.

    “소속? 흑운의 맴버는 나 하나다.”

    “예?”

    “나 하나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내는 어딘가 자신감에 차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딱히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멍하니 큰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 예, 예.”

    ‘혼자 활동하는데 굳이 흑운이니 뭐니 하는 이름을 붙여야 하나? 그냥 이름으로 부르지…….’

    혼자 생각하고 있는데 뭔가 뜨끔한 기분이 들었다.

    머릿속을 다 꿰뚫고 있다는 듯 쳐다보는 사내의 눈빛에 압도된 것이다.

    사내는 한 발자국 더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었다.

    “천태백이다.”

    “아, 천도윤입니다.”

    손을 맞잡았다.

    ‘무슨 돌덩이를 움켜쥐는 기분이네.’

    조금의 물컹함도 없었다.

    그저 딱딱한 물체를 억지로 감싸 안는 느낌이었다.

    “이제 됐지?”

    짧게 자신을 소개한 천태백이 움직였다.

    “네? 대체 뭘…… 커헉!”

    나는 몇 바퀴나 굴러 오른쪽 무기가 잔뜩 세워져 있는 진열대를 뚫고 처박혔다.

    “죽지 마라.”

    * * *

    “아버지와 그 쓰레기가 만났다고?”

    “예.”

    “그 버러지를 왜?”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천가 내 손에 꼽힐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별채. 그곳에는 새하얀 머리를 가진 젊은 사내와 그보다 좀 더 어려 보이는 표독스러운 이미지의 사내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철용 아저씨가 직접 데리고 갔다고?”

    “예.”

    “넌 철용 아저씨한테 처맞았고?”

    “아, 그건…… 예.”

    “흠…… 심상치 않군.”

    양손을 모은 채 새하얀 머리칼을 가진 사내에게 보고하는 인물은 얼굴이 잔뜩 부어 있는 상태였다.

    천정일.

    얼마 전 천도윤에게 시비를 걸다 된통 당한 사내였다.

    그리고 보고를 받는 이는 천가의 직계이자 유력한 차기 가주 후보. 뇌룡이라 불리는 천지훈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

    “무슨 소문이라든가 그런 거 없어?”

    “저…… 떠도는 소문으로는 가주님이 다시 막내 도련님을 천가로 불러들이신다는…….”

    천지훈은 제법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천가는 절대적으로 실력이 지위고 무위가 계급이 되는 곳. 그 쓰잘데기 없는 녀석을 불러 들여와 무엇의 이득이 있단 말인가?

    한참을 고민하던 천지훈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설마……!?

    천지훈의 생각을 알아챈 천정일은 재빨리 말했다.

    “도련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제가 철용 아저씨한테 맞기 전 그 녀석의 실력을 똑똑히 확인했으니까요.”

    “……어땠지?”

    “형편없었습니다. 오히려 나갈 때보다 더 약해진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다만?”

    “사람이 조금 변한 것 같기는 했습니다.”

    “변하다니?”

    천지훈은 궁금한 듯한 발자국 더 다가가며 물었다.

    “뭐랄까, 옛날과는 달랐습니다. 말발이 세졌다고나 할까? 악바리가 생긴 느낌이었습니다. 옛날 같았으면 몇 대 처맞고는 금세 꼬리를 말았을 텐데 저번의 그 녀석은…….”

    “왜, 어땠는데?”

    천지훈은 서둘러 대답을 재촉했다.

    “웃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처맞는데도 말이죠.”

    “웃고 있었다고?”

    천지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별로 신경 쓰실 일은 아닌 듯합니다. 밖에서 워낙 험한 일을 많이 겪어 실성한 것이 분명합니다.”

    “아니야.”

    “네?”

    천지훈은 턱에 손을 올린 채 말했다.

    “너 같으면 아무리 처맞는다고 한들 웃을 수 있겠냐? 그것도 어린 시절부터 매일같이 맞은 사람한테 말이야.”

    “음…… 아뇨.”

    “근데 그 녀석은 웃었단 말이지.”

    “그건…….”

    “아프지 않았던 거야.”

    “네? 그럴 리가요. 저는 진심으로…….”

    “네 말을 들어 보면, 그 정도로 때렸으면 죽었어야지. 네 천가의 피 특성은 유니크 등급이고 그 녀석은 일반인 수준인데 말이야.”

    “아, 제가 당연히 조절은…… 분명 피도 토하고 괴로워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웃었다?”

    별채 내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변했다. 천지훈은 딱딱히 굳은 얼굴을 천정일을 향해 들이밀었다.

    “왜일까?”

    “그건 저도 잘…….”

    “네가 적당히 한 거 아니야? 응?”

    천지훈은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진짜 웃음이 아니라는 것쯤은 천정일은 잘 알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콰과과광-!!

    천정일은 끝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자기 내려친 낙뢰에 의식을 잃은 것이다.

    쓰러진 천정일을 뒤로하고 천지훈은 곰곰이 생각했다.

    천정일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이 녀석은 절대 약자에게 자비를 베풀 녀석이 아니다.

    그렇다면…….

    경우의 수는 딱 두 가지다.

    정말 아프지 않았거나, 철용이 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이 거나.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뜬 천지훈은 조용히 읊조렸다.

    “차라리 후자였으면 참 좋겠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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