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9화
9. 천가(天家)(4)
가주전을 나온 나는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기절 상태에서 깨어난 후 아버지와는 많은 대화를 나눴다.
가장 먼저 나눈 대화는 역시나 능력에 관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어찌 된 영문인지를 물었고 나는 있는 그대로를 짧고 간결하게 말씀드렸다.
‘능력이 해금 중이다’라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천가로 다시 들어오라는 말과 함께 웃음을 보이셨다.
몇 번이나 거절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난 약간의 거짓말을 섞어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천우진을 제외하고 가장 신뢰할 수 있을 만한 인물이었다.
천가의 가주 천태산은 자식보다 가문을 중요시하는 인물임과 동시에, 가문이 몰락하기 전에 생을 마감했던 인물이니까.
가장 먼저 해야 할 말은 가문의 몰락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7년 뒤 가문은 몰락합니다.”
“뭐라?”
“믿을 수 있는 능력자를 통해 미래를 엿봤습니다.”
한참이나 나를 바라보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천가는 네 생각만큼 허술하지 않다.”
“알지요. 하지만 아무리 단단한 물질이라도 내부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갈라지기 마련입니다.”
의도를 알아차린 천태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배신자가 있다는 말이냐?”
“네.”
“미국의 레닌도 100번 중 1번은 예언을 틀린다고 들었다. 정말 믿을 만한 정보더냐?”
여전히 아버지의 눈빛은 의심을 품고 있었다.
능력이 개방된 것은 기쁜 소식이지만 그것과 이것은 별개라는 이야기였다.
“확실합니다.”
“증명해 봐라.”
“예?”
“본 것을 다 말해 보거라. 판단은 내가 할 터이니.”
이건 무슨…….
그냥 아는 정보를 술술 다 불라는 것이다.
아무 대가 없이.
‘누굴 호구로 아나?’
가문의 멸망은 막을 생각이지만 많이 이용당했고, 또 버려졌다. 더 이상 호구 잡히는 일은 사양이다.
“맨입으로 말입니까?”
“가문의 중대사다. 가문의 존폐가 달린 일로 흥정을 하려 드는 게냐?”
다시 한번 공기가 무거워지려 하고 있었다.
“가문이 제게 해 준 게 뭡니까?”
“뭐라?”
“저는 어린 시절 내내 맞기만 했습니다.”
“그것은 네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더냐?”
“제 능력이 잠겨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습니다. 설마 모르셨습니까?”
“대련하다 보면 능력이 깨어날 줄 알았다.”
“그게 어딜 봐서 대련입니까! 천가의 사람들은 대련과 구타도 구별하지 못하는 머저리들입니까?”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옛 생각이 떠오르며 머리가 뜨거워졌다.
나는 분노를 참지 않고 터트렸다.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하니 점점 악과 깡만 느는 기분이다.
“뭐냐?”
“예?”
“원하는 게 뭐냔 말이다.”
“…….”
사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말한 것은 아니었다. 정보만 날로 가로채려는 아버지의 태도가 얄미워서 그랬던 거지. 그러나 생각한 게 없다고 기회를 날릴 만큼 나는 바보가 아니었다.
“첫째, 박윤식 영감의 안전 확보입니다.”
가문이 몰락하기 전까지는 무려 7년이라는 시간이 남았지만, 천지훈의 밑 작업이 시작되는 순간은 아마 올해 말 후계자 발표 직후일 가능성이 컸다.
실력을 키우고 이것저것 대비하려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텐데 운식 조형에 소홀한 순간 무슨 일이 터질지 몰랐다.
대비해둬서 나쁠 것은 없었다.
“알겠다.”
아버지는 흔쾌히 허락했다.
“둘째, 파악하고 계신 가문 내의 세력도를 넘겨주십시오.”
“배신자를 색출하기 위함이냐?”
“예.”
이미 배신자가 누군지 알고 있었지만 어디까지 엮인 것인지 알 필요가 있었다.
아버지가 가지고 계신 정보라면 나름 정확할 터. 이보다 활용적인 정보는 없었다.
“알겠다.”
두 번째도 조건도 오케이를 받았다.
“셋째.”
“또 있느냐?”
“마지막입니다.”
“말해 보거라.”
“아무 감시도 없는 수련장을 혼자 사용하고 싶습니다.”
“그건 곤란하군.”
“예?”
무려 천가다. 가문 내에서도 잘 쓰지 않는 연무장은 넘쳐 날 뿐만 아니라 지방에도 연무장이 수백 개는 된다. 그중 하나 내주는 게 그렇게 어렵다는 말인가?
돈도 많은 양반이 거참 쩨쩨하게.
“연무장은 엄밀히 말하면 내 소유가 아니라 천가의 소유다.”
그러니까 그 천가의 주인이 누군데…….
목 끝까지 차오르는 말을 겨우 삼켰다.
아버지의 의도는 뻔했다.
결국 천가로 들어오라는 거다.
“고생 많았다는 거 안다.”
의외의 말이 들려왔다.
“서러웠겠지. 가문이 싫은 것도 이해가 간다.”
웬일이래? 아버지가 이런 감상적인 말도 할 수 있는 분이셨던가?
“하지만 더는 서러워할 필요가 없잖느냐? 이젠 그냥 재능을 꽃피우기만 하면 된다.”
그럼 그렇지.
결국 회유의 방법 중 하나인 것이다.
“저는 조형집이 좋습니다.”
“평생 그곳에서 살 생각이냐?”
“가능하다면요.”
“……행복하더냐?”
아버지는 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 계셨다.
심장이 간질거리는 기분이었다.
“네.”
이상한 기분이었지만 솔직하게 대답했다.
“……알겠다. 조형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독립 연무장이 하나 있다. 말해 둘 터이니 그곳을 사용하거라.”
왠지 씁쓸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감사합니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제안 하나 해도 되겠느냐?”
“말씀하십시오.”
“너는 약하다.”
“알고 있습니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그건 제가…….”
“설마 해금이 모두 풀리면 달라질 거라 생각하는 것이냐?”
아버지의 물음에 무언가 놓치고 있던 것을 잡은 느낌이었다.
솔직히 해금만 모두 풀리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무려 전설 등급의 특성과 스킬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직계인 천지훈도 마찬가지다.
“네가 아무리 천가의 피를 진하게 물려받았다고는 하나 능력이 모두 풀린다 한들 방계의 2급 이상 생도는 누구 하나 이길 수 없다.”
자존심 상하는 발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1급도 아닌 2급에 비교하다니…….
그러나 이어진 아버지의 말을 듣고는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었다.
“힘의 차이는 기술로 메울 수 있다.”
아버지가 말하는 뜻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아무리 강력한 힘이 있다고 한들 기본기가 없으면 누구 하나 쉽게 이기지 못할 거라는 뜻이다.
생각해 보니 일반인의 수준에 머물러 있던 나는 천가의 전통 무술과 비기 중 어느 것 하나 익힌 것이 없었다.
“선생을 한 명 붙여 줄까 하는데. 괜찮겠느냐? 물론 거절해도 된다.”
“……믿을 만한 사람입니까?”
실력에 관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 점은 아버지도 눈치채고는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물론이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조만간 그쪽으로 보내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감사의 표시를 올렸다.
“자, 그럼 이제 말해 보거라. 네가 본 미래는 무엇이냐?”
모든 요구를 들어줬으니 이젠 내 차례였다.
계속 고민했던 내용이지만 입을 떼는 순간까지도 머리가 복잡했다.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모든 대답은 패가 열려 봐야 알 일이다.
“아버지는 가문의 몰락을 막을 수 없습니다.”
“어떤 짓을 하더라도 말이냐?”
“그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내가 어찌해야 하느냐?”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나를 능멸하는 것이냐?”
“제가 본 미래에서 아버지는 돌아가십니다.”
“뭐라?”
시간이 멈춘 느낌이었다.
잠시 우리 부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후…….’
꺼내기 싫은 말이지만 반드시 꺼내야만 했다.
“도쿄로 가시면 죽습니다.”
아버지의 동공이 흔들렸다.
아마 지금쯤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일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걸.
그리고 아마 벌써 계획을 짜고 계실 터였다. 일본으로 쳐들어가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어찌 알았느냐?”
“말하지 않았습니까? 봤다고.”
반쯤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던 아버지는 이젠 완전히 내 말을 믿는 눈치였다.
“곤란하게 됐군.”
“예, 진퇴양난이지요.”
아버지가 일본에 가지 않으면 죽음을 피할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저희가 움직이지 않으면 일본은 반드시 올 겁니다.”
“그러면 우리의 피해도 만만치 않겠지.”
세계적인 가문은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가문이 우리 천가(天家)라면 일본에는 카토가와 시미즈가가 있었다.
“가뜩이나 일본에는 그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까지 알고 있느냐?”
“예.”
아버지는 깊은 고뇌에 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도 이것 때문에 꽤 골머리를 앓았는데 이 소식을 처음 들은 아버지는 얼마나 골머리를 앓을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그거야…….”
나는 그동안 생각해 놨던 계획을 천천히 그리고 아주 자세히 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