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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8화 (8/175)

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8화

8. 천가(天家)(3)

머리에서는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천정일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고 있지 못하는 상태였다.

별생각 없이 한 일이 이렇게 커질지 몰랐던 것이다.

천정일은 멍하니 서서 나와 철용 아저씨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 수 있었다.

“모, 몰랐습니다.”

“이유가 되진 않는군요.”

언제나 밝은 미소를 보이기로 유명한 철용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셔 있었다.

“저 녀석이 설마 가주님을 만날 거라고는…….”

“그럼 이유도 묻지 않고 이렇게 폭력을 가한 겁니까?”

천정일은 헙 하고 입을 다물었다.

어떤 핑계를 대든 빠져나가기 힘들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철용 보좌관은 함부로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이 아니다.

아니,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철용의 주먹은 무거웠다.

그런 그가 주먹을 휘둘렀다. 그것도 방계라곤 하지만 직계출신인 천정일에게!

원로를 제외한 모든 방계보다 위에 있는 직급이었지만 철용이 방계의 누군가에게 명령하거나 위해를 가한 적은 이제껏 단 한 번도 없었다.

오직 가주를 위한 검.

그것이 보좌관 철용의 위치였다.

그런 그의 손이 움직였다는 건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 이유는 분명 물었습니다. 그런데 저 녀석이 제대로 대답하지 않아…….”

철용은 조용히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나는 입에 고인 피를 땅바닥에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혀 모르는 일이라는 듯이.

“거짓말까지 하시는군요.”

“아, 아니 진짜입니다. 저 녀석에게 분명……!”

“시간이 없으니 지금은 그냥 가죠. 하지만 일정이 끝난 뒤에는…….”

철용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한마디로 각오하라는 거다.

녀석은 밀가루처럼 얼굴이 하얗게 변색 되어 있었다.

철용은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고는 빙긋 웃었다. 그러고는 품을 뒤져 무엇인가를 꺼내 들었다.

“드시죠.”

철용이 넘긴 것은 작은 유리병이었다.

“이건……?”

“포션입니다. 멍든 자국 정도는 금방 사라질 겁니다.”

유리병을 받아 든 나는 조금 놀란 눈으로 철용을 바라봤다.

‘미친!’

나는 이 유리병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고 있다.

이 작은 유리병에 담긴 물건은 이렇게 500원짜리 건네듯이 내밀 수 있는 물건이 결코 아니다.

대형길드의 수장이나 간부들이 여분의 목숨이랍시고 귀중히 들고 다니는 진귀한 아이템이란 말이다.

“조금 과한데요?”

“아, 제가 들고 있는 게 그것뿐이라서…… 그냥 드시죠. 제일 싼 겁니다.”

이 양반이 미쳤나.

하나에 5억이 넘어가는 최상급 회복 포션.

그걸 고작 멍 자국 지우는 데 사용하란다.

‘내가 몇 년을 일해도 못 모으는 돈을…….’

아주 땅바닥에 뿌리고 다닌다.

“됐습니다. 조금 지나면 다 낫는데요 뭘.”

나는 조용히 품속으로 포션을 집어넣었다. 이거 한 병이면 당분간 고생 끝이다.

“지금 누구를 만나러 가시는지 잊으셨습니까? 가주님께 그런 모습을…….”

“아버지죠.”

나는 철용 아저씨의 말허리를 끊었다.

아버지는 분명 아비와 자식 사이로 식사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내가 생각하는 아버지와 자식 간의 식사 자리라면 굳이 격식은 차리지 않아도 된다.

평범한 아버지와 자식 간의 관계라면 말이다.

“……죄송합니다.”

잠시 생각하던 나는 품속에서 포션을 다시 꺼내 들었다.

“아닙니다. 3년 만에 뵙는 아버진데 이 꼴로 갈 순 없죠.”

그렇다.

격식은 차리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은 있는 법이다.

빌어먹게도.

뚜껑을 연 나는 안에 들어 있던 선홍빛의 액체를 벌컥벌컥 들이켜기 시작했다.

한 방울 한 방울이 금값이라 바닥까지 탈탈 털어 입에 털어 넣었다.

‘아까워 뒤지겠네.’

아픈 배와는 달리 효과는 엄청났다.

파랗게 변색 되었던 살갗은 순식간에 돌아왔다. 욱신거리던 통증도 돌아왔으며 피도 멎었다.

심지어 마나량도 조금 느는 듯한 기분이었다.

한마디로 놀라울 만한 치유력이었다.

“신기하네요.”

“한 번도 드셔보신 적이 없으십니까?”

“네.”

마셔봤을 리가 없지.

대련하며 얻어터질 때는 항상 의무실행이었다. 그곳에는 힐러가 24시간 대기 중이었고. 나는 항상 그들에게 치료받았다.

힐은 셀 수 없이 받아봤지만 포션을 마셔본 것은 처음이었다.

철용은 조금 놀란 눈치였다.

“저는 대전 외에는 임무를 수행한 적이 없으니까요.”

던전을 탐사하고 몬스터들을 사냥하다 보면 최하급 포션이라도 포션은 필수다. 그러나 난 가문 내의 어린 연습생들도 한다는 던전 탐험조차 한 적이 없었다.

잠겨 있는 특성 덕에 평범한 남성의 신체 능력밖에 구사하지 못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군요.”

철용은 왠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이것 참 편리하고 좋네요. 갈 때 몇 개 챙겨 주세요.”

“준비하죠.”

오? 이게 통해?

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며 좋아하고 있을 때 철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왜요?”

“옷이…….”

“아!”

고개를 내려 보니 꼴이 말이 아니었다.

피가 굳어가며 쩍쩍 살갗에 달라붙어 있었고 군데군데 찢겨 있는 곳도 있었다.

“옷을 좀 빌릴 수 있을까요?”

“가주전으로 가는 길에 도련님 방이 있으니 들리시죠. 빠듯하긴 해도 괜찮을 겁니다.”

“제 방이 아직도…….”

“있습니다. 관리도 하고 있으니 안심하십시오.”

철용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동시에 나는 조금 놀랐다.

내 방이 아직도 남아 있다니…….

꽤 큰 넓이를 차지하던 방이라 금방 없앴을 줄 알았는데 기분이 묘했다.

동시에 불안하기도 했다.

‘이번에 아버지가 나를 부른 게 설마……?’

방으로 도착한 나는 주변을 살폈다.

내가 쫓겨났을 때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전생까지 합치면 거의 10년도 넘은 과거가 눈앞에 그대로 자리하고 있었다.

“옛날 생각나네…….”

처맞은 기억이 대부분이지만 행복한 기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짧은 감상을 뒤로하고 옷장을 열었다.

17살 시절 입던 옷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갖가지 명품으로, 아끼던 한정판 셔츠도 눈에 들어왔다.

나는 조금 크게 입던 옷을 집어 들어 몸에 걸쳐 봤다. 그동안 키가 조금 더 자라 그런지 오버핏으로 입던 옷이 정사이즈로 딱 맞아떨어졌다.

“이 정도면 무난하겠지?”

시간이 없어 대충 옷을 걸쳤다.

거울을 보고 옷매무새를 확인한 뒤 거울을 보며 말했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아버지와 대화할 때면 언제나 숨이 턱턱 막혔다. 긴장을 심하게 해 제대로 말하기는커녕 체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정신 차려야 했다. 아버지가 나를 정말 보고 싶어서 부른 건지 아닌지 모른다. 가문으로 돌아오라고 부른 걸 수도 있고 무언가 목적이 있어 부른 걸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최소한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듣게끔 하기 위해선 정신줄을 놓아선 안 된다.

“후…….”

한숨을 길게 내 쉰 나는 방문을 열었다.

* * *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기도 전, 나는 깨달았다.

아버지는 절대 나를 보고 싶어 부른 것이 아니라고.

“못난 놈.”

자리에 앉기 전 날아든 비수였다.

묵직한 공기가 온몸을 짓누르고 있는 와중에 아버지의 한마디에 긴장이 풀렸다.

아버지 대한 반발심이 오히려 긴장을 완화 시킨 것이다.

“제가요?”

눈앞에 놓인 의자를 드륵 끌고는 털썩 주저앉았다.

누가 보더라도 예의없는 행동임은 분명했다.

“나가 살더니 겁대가리도 상실한 모양이구나.”

묵직한 음성이 가주전을 울렸다.

공기가 무거워졌다.

짓누르는 힘이 강해지고 숨이 턱 막혔다.

“크윽.”

빌어먹게도 이곳에 사는 인간들은 죄다 괴물이었다. 그중에서도 아버지 천태산은 기운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인물이었다.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

천가의 피를 사용한다면 조금 나아지겠지만, 1%라도 사용하는 순간 아버지가 알아차릴 확률이 높았다.

아직 힘을 꺼낼 때가 아니다.

원하는 상황이 오고 확신이 섰을 때 힘을 꺼내야 한다.

‘그래도 시발.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정신이 혼미해지고 눈앞이 흐릿했다.

‘벌써 이러면 안 되는데…… 젠장!’

아버지의 기운이 사그라진 건 내가 눈을 반쯤 까뒤집었을 때였다.

숨통이 트이자 숨을 쉬지 않고 들이켰다. 뇌에 산소가 충분히 돌기 시작하고 나서야 정신을 조금 차릴 수 있었다.

“허, 허억.”

“여전히 형편없구나.”

실망한 표정이 역력한 얼굴을 바라보자 속이 끓기 시작했다.

“대체 왜 부르신 겁니까?”

“먹어라.”

짧게 말하고는 아버지는 식기를 들었다.

그 후로 천가의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식사를 끝날 때까지 입 한 번 뻥끗하지 않았다.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식사가 끝나고, 우리 부자지간은 서로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건 나였다.

“제가 말을 잘못 전달받았나 봅니다.”

“뭐가 말이냐?”

“아버지가 아들을 보고 싶어 부른 거라고 들었는데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아서요.”

“원래는 그랬었지.”

원래는? 그럼 지금은 아니라는 소린가?

나는 조용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너를 보니 그런 마음이 싹 사라지더구나. 밖에서 대체 뭘 한 거냐? 나는 네가 밖에서 구르다 보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줄 알았다.”

“저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러십니까?”

한번 죽어 봐서 그런가? 아니면 정말로 겁대가리를 상실한 건가?

나는 옛날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언행을 거침없이 쏟아 내고 있었다.

“그깟 동상 조금 움직이는 게 뭐 자랑거리라고 그리 고개를 빳빳이 세우는 게냐?”

“가주님은 저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너는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느냐? 부처라도 사람의 속내는 읽지 못하는 법이다. 그래서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느냐. 사람을 믿지 말고 힘을 믿으라고. 못난 너처럼…….”

“그래서 그리되셨습니까? 가주님이 저에 대해 아는 것보다 저는 가주님을 훨씬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가주님 본인보다 더요.”

“집 밖을 나가더니 허풍만 늘어 왔구나.”

“허풍인지 아닌지는 겪어 보면 알겠지요.”

아버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심기가 불편한 것이다.

공기가 다시 무거워지고 있었다.

‘지금이다!’

지금이 적기였다.

아버지가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듣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인정.

그리고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방법 역시 하나뿐이었다.

힘.

무대는 만들어졌다.

이젠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나는 아버지의 기세에 맞추어 조금씩 천가의 피를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현재 해금률은 39퍼센트.

누구보다 진한 피를 물려받았지만, 전설 등급의 농도를 감안해도 매우 낮은 수치였다. 하지만…….

기대치는 한없이 낮춰 놨다.

아마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리라…….

미세하게나마 아버지의 동공이 흔들리는 것은 목격했다.

필시 놀란 것이다.

순식간에 동공의 떨림은 멈췄고, 아버지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크윽!”

기세를 미친 듯이 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천가의 피를 최대 퍼센트까지 힘을 끌어올려 버티고 또 버텼다.

“크핫, 크하하하!”

돌연 가주 천태산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기억은 끊어졌다.

* * *

“아드님과의 식사는 만족스러우셨습니까?”

철용은 물으나 마나 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몇 시간이 지나서야 가주전의 문이 열렸다.

천도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보다 더 의아스러운 점은 바로 천태산의 얼굴이었다.

가주전 안으로 들어온 철용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천태산은 웃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환하게!

몇 년에 한 번 보기 힘든 미소였다.

아니, 평생을 모셨지만 이보다 환한 미소는 본 적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턱을 괸 채 상념에 빠진 순간에도 천태산은 입가에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궁금해진 철용은 천태산에게 물었다.

“막내 도련님과 무슨 이야기를 하셨길래 이리도 즐거워하십니까?”

그제야 철용을 확인한 천태산은 손을 풀고는 다시 한번 크게 웃기 시작했다.

“크핫, 크하하하. 내가 죽는다더군. 내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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