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7화
7. 천가(天家)(2)
“말이 지나치네, 천정일.”
“큭, 그럼 쫓겨난 새끼한테 쫓겨난 새끼라고 하지 뭐라고 합니까?”
“옛날엔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말이야.”
“이미 가문을 떠났으니 상관없잖아?”
“이젠 반말까지…….”
천정일은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가주가 변경되면서 방계가 되어 버린 불운의 아이콘이었다.
가주 자리를 놓고 끝까지 아버지와 반목하던 작은아버지의 둘째 아들.
가주를 기준으로 방계와 직계가 나뉘기 때문에 천정일은 직계에서 방계로 그 위치가 바뀌었다.
욕심이 많고 남을 부리는 걸 좋아하던 아이였기에 천정일의 상실감은 이루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쌓여 가는 분노를 표출할 대상을 물색하던 중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나였으리라.
능력 없는 직계.
딱 좋은 사냥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분명했다.
녀석은 매일같이 나에게 결투 신청을 해 댔다.
방계가 직계를 합법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것은 대련이 유일했기에…….
아직 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원로나 어른들은 언제나 그 대련을 허락했다.
분노와 앙금이 남아 있던 작은아버지의 사람들 역시 일부러 대련을 붙이기도 했다.
일종의 샌드백.
나에게 기대가 있던 사람도, 못마땅해하는 사람들도 모두 대련에 찬성했다.
‘덕분에 난 매일같이 얻어터졌지.’
어디서나 약한 이들은 좋은 먹잇감이 될 뿐이었다.
‘이런 시발, 또 생각하니 열 받네.’
녀석과 대련하다가 아니 일방적으로 얻어터지다 생긴 어깨의 상처가 욱신거리는 기분이었다.
“가라.”
나는 애써 천정일을 무시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어허! 어디 가십니까, 형님. 오랜만에 돌아오셨는데 대련 한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깨를 꽉 잡은 녀석의 손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평소라면 까무러칠 정도로 고통스러워했겠지만…….
지금은 천가의 피가 해금된 상태였다.
30%를 넘어 40%에 육박하고 있는 지금! 겨우 이런 손길이 고통스러울 리 없었다.
‘그래도 연기는 해 줘야겠지.’
아직 힘을 드러낼 생각은 없다.
“아아아! 안 놔?”
고통스러운 척하며 몸을 베베 꼬았다.
“크큭, 어째 더 약해진 것 같습니다?”
천정일은 능청스러운 얼굴로 손을 떼며 말했다.
“꺼져.”
“내가 왜?”
“뭐?”
“말했잖아. 넌 이제 천가의 사람이 아니라고.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지?”
천가 내에서 직계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아무리 힘이 없는 직계라 할지라도 표면상으로 혹은 형식적으로라도 명령은 수행해야 했다.
내가 천가에 남아 있을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창 시비를 걸긴 했어도 그만하라고 하면 그만하긴 했다. 설렁설렁 듣거나 한껏 속을 긁어 대고 간 적은 있어도 말이다.
이렇게 대놓고 무시한 적은 없었다.
이제야 나는 완전 천가와는 다른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완전 막장이네, 이거.
그래도 내가 한 살 형인데 싸가지 없이!
후…….
“됐다, 갈 길 가라.”
가문의 멸망은 막을 생각이지만 이딴 쓰레기들이 득실거리는 곳에 깊게 발을 들일 생각은 없었다.
똥을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나?
이 일만 끝나면 평생 안 보고 살면 그만이다.
애써 무시하며 발걸음을 떼려고 할 때였다.
척.
서늘한 감각이 목 위에 자리했다.
“뭐 하는 짓이지?”
녀석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이었다.
“뭐 하긴. 원칙대로 하는 중이지.”
“원칙?”
“정확한 목적을 밝히지 않고 천가에 출입한 자는 사살한다. 왜 왔지?”
나는 뒤를 돌아 천정일을 바라봤다.
조용히 넘어가고 싶었지만, 제 무덤을 파고 있다.
“여기까지만 해라.”
“오~ 안 본 사이에 깡다구가 많이 늘으셨네요. 형님? 맞은 지 오래돼서 그런가 봐?”
“큭.”
그 말을 들은 나는 터져 나오는 실소를 참을 수 없었다.
“웃어?”
옛날이었으면 분노를 겨우 삼키며 꼬리를 말았겠지만, 힘이 생기니 그렇게 가소로울 수가 없다.
하긴 19살이 하는 짓이 거기서 거기지 뭐.
“그어 봐.”
“뭐?”
“그어 보라고.”
“형님 진짜 미치셨어요? 네가 나가 살아서 감을 잃은 모양인데, 이제 너를 가문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진오 형님이나 지훈 형님이 네가 반병신 된다고 신경이나 쓸 것 같아?”
“그러니까 그어 보라니까? 왜 이리 말이 많아?”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천정일은 한층 더 가까이 단검을 내밀었다.
스산한 느낌이 들며 목에서 피가 조금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못 할 줄 알아? 네가 아무리 직계출신이라고는 하지만…….”
내뱉는 말과는 다르게 천정일은 당황해하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게 내가 강하게 나오니 당황한 것이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나? 생각해 볼 것이고 생각하면 할수록 답은 더더욱 나오지 않을 것이다.
첫째 형이나 둘째 형도 만나기 힘든 아버지를 보러 왔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못할 테니.
‘큭, 아무리 봐도 구라 같은데 자존심을 굽히기는 더더욱 싫겠지.’
나이 차이는 한 살밖에 안 나지만 살아온 기간은 10년이 넘는다.
천정일의 머릿속이 유리창처럼 훤히 보이고 있었다.
“치워, 깡다구도 없는 새끼야.”
“뭐? 이 쓰레기 새끼가!”
당장이라도 죽일 듯한 기세였지만 녀석의 칼은 끝끝내 움직이지 못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아무리 나를 개무시해 왔고 내가 가문을 떠났다고는 해도 나는 여전히 직계의 핏줄이다.
저 녀석에게는 칼을 움직일 만한 배짱은 없었다.
“못 그을 거면 칼 내려, 이 새끼야.”
“너, 너.”
“이젠 말까지 더듬냐?”
천정일은 수치심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하다.
난생처음 보는 반응일 테니까. 방계 내에서 천정일에게 뭐라고 할 수 있는 또래는 없을 테고, 무엇보다 난 천정일에게 장난감이나 다름없는 존재였을 테니까.
저 녀석의 똥 씹은 표정을 보자 알 수 없는 희열이 올라왔다.
‘인과응보다, 이 자식아.’
지금껏 당한 것을 생각하면 갚아 줘야 할 빚이 산더미지만 지금은 이쯤 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이런 녀석에게 복수하겠답시고 실력을 보여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볼일 끝났으면 그만 꺼지지? 나 바쁜…… 크헉!”
나는 복부를 움켜쥐며 바닥을 굴렀다.
“이 새끼가 감 잃었지? 나 천정일이야!!”
녀석의 주먹이 복부를 강타한 것이다.
생각보다 녀석의 주먹은 강력했다.
방계라곤 하지만 녀석은 직계에 가까운 방계다. 천가의 피를 40퍼센트도 채 발휘하지 못하는 내가 받아 내기에는 벅찬 수준이었다.
씩씩거리던 녀석이 소리치며 말했다.
“그래, 내가 널 죽일 수 없다는 건 인정하지. 하지만 복날 개 패듯이 패는 건 가능하다 이 말이야! 이 미친 새끼야!!”
녀석은 완전히 눈이 돌아가 있었다.
아프다.
미친 듯이 아프다.
아픈데…….
왜 이렇게 웃음이 나지?
“웃어?”
“큭.”
“웃어?”
“크헉, 크흐흐.”
“웃냐고!! 이 씨발! 버러지 새끼야!”
어느새 주변엔 구경꾼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방계의 어린 수련생들이었다.
“저거 천정일 형님 아니야?”
“어? 맞는데? 또 누가 맞고 있네.”
“그러게, 오늘은 또 어떤 놈이 눈 밖에 나서…… 어?”
“저거 막내 도련님 아니야?”
“헐, 맞네. 돌아오신 건가?”
“그런가 보네. 와 그럼 오자마자 천정일 형님하고 대련하는 거야?”
“야 저게 대련으로 보이냐? 일방적인 구타지.”
“하긴, 두 분은 사이 안 좋기로 유명했으니까.”
“두 분이 사이가 왜 안 좋아요?”
“그러니까 원래 천정일 형님은 직계출신인…….”
바뀐 점이 있다면 처맞고 있는 와중에도 주변의 대화가 모두 들린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어째 오늘은 좀 심한 것 같네.”
“신고식 제대로 하시는 거지 뭐.”
“크큭, 하긴 능력도 없는데 아버지 잘 만나서 떵떵거리는 것만큼 보기 싫은 게 어디 있냐? 난 개인적으로 정일 형님 응원한다.”
녀석들의 태도는 그대로였다.
맹세코 나는 그 누구에게도 명령하거나 거들먹거린 적 없다. 다 자기네들이 만들어 낸 피해망상과 역겨운 상상력일 뿐이지.
“내가 이래서 돌아오기 싫었어.”
“뭐래! 누가 받아 준 대냐? 미친 새끼.”
녀석의 주먹질은 강도를 더해 갔다.
입안이 터지고 온몸에 파란 멍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더럽게 아프네.’
약 40퍼센트가량 열린 천가의 피의 능력조차 극도로 낮춘 터라 통증은 몇 배나 늘어났다.
삐리리-!
한창 일방적인 폭행이 이어지던 중 어디선가 벨소리가 울렸다.
구경꾼들은 모두 서로를 바라봤지만 모두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남아 있는 것은 저기서 결투(?)를 벌이고 있는 둘 뿐.
모두의 시선이 둘을 향했다.
그와 동시에 난 한쪽 손을 들었다.
“왜 항복이라도 하게? 그딴 거 없어, 이 새끼야!”
“전화 왔다, 새끼야.”
“큭, 미친 새끼. 전화 받을 기력은 남아 있나 보네? 아직 덜 맞았구나?”
천정일은 역시 그만둘 생각이 없는지 주먹을 들었다. 핸드폰을 재빨리 꺼내든 나는 천정일을 향해 핸드폰을 뻗었다. 결국 녀석의 주먹은 나에게 닿지 못했다.
철용 아저씨.
핸드폰에 적힌 이름이었다.
녀석의 동공이 흔들렸다.
만약 철용 보좌관님을 만나러 온 거라면 일이 커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철용을 가문 내에서 함부로 대할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가주님을 제외하고는.
“너 설마…… 보좌관님을 뵈러……?”
천정일의 얼굴이 공포감으로 물들었다.
‘얼굴은 때리지 말걸 그랬나?’, ‘내가 너무 심했나?’ 이딴 생각이나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한 번 씨익 웃어 주고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녀석은 한 발자국 물러나 상황을 지켜봤다.
전화기 너머로 부드럽지만, 힘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와드릴까요?”
사건이 발생하기 전부터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있다는 것쯤은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가문 내에서 그렇게 나를 감시할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한참 동안 구경했으면서 무슨…….
“됐습니다.”
“오, 의외군요. 많이 맞으신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시간이 얼마나 남았죠?”
“삼십 분 정도 남았습니다. 슬슬 출발하셔야 합니다.”
“삼십 분이라…….”
천정일은 무슨 일인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쩜 내가 생각하는 그대로 상황이 흘러가는지…….
나는 녀석의 얼굴을 보고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녀석은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한 발자국 더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못 가겠네요.”
“네? 도련님! 가주님과의 약속입니다.”
“그러니까요. 아버지와의 식사 약속을 어떻게 이 꼴로 갑니까? 제 상태를 보면 얼마나 가주님이 슬퍼하시겠어요. 오늘은 병원에 가서 치료받고 좀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약속은 다음으로 미루죠. 그럼 이만!”
“도련님!!”
“끊겠습니다.”
“잠시만요!”
“…….”
“후…… 알겠습니다. 일단 제가 가겠습니다. 가서 이야기하시죠.”
“그러세요.”
뚝.
나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천정일을 바라봤다.
“너, 너!”
녀석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너, 너 지금…… 가주님이라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철용 보좌관을 만나러 온 것만 해도 일이 커지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녀석이 만나는 사람이 가주님이라고?’라고 생각하는 듯한 표정.
“네가 어떻게……? 가주님은 우리 아버지도 만나기 힘든 분이신데…….”
“그러게 여기까지만 하라고 할 때 그만뒀어야지.”
녀석은 말 그대로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다리가 풀렸는지 털썩 무릎을 꿇은 채였다.
그리고…….
“빨리도 오셨네.”
투쾅!!
녀석의 얼굴이 바닥에 처박힌 것은 순식간이었다.
“가주님의 손님에게 뭐 하는 짓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