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6화
6. 천가(天家)(1)
“허허, 신기하구나.”
[우마 길드의 버려진 동상]을 본 박윤식 영감은 귀엽다는 듯 녀석을 쓰다듬었다.
“음머.”
“말도 잘 듣는 것 같고.”
“말을 잘 듣긴 개뿔.”
툴툴거리는 내 표정을 본 박윤식 영감은 껄껄대며 웃기 시작했다.
아무렴, 이리 보나 저리 보나 나보다는 박윤식 영감을 따르는 것 같은데.
진짜 창조주라 그런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괘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기분이 묘하구나. 내가 만든 작품이 이렇게 살아 숨 쉬다니…….”
박윤식 영감은 어쩐지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영감이 가질래?”
영감은 재빨리 반색하며 물었다.
“정말이냐?”
“아니.”
“이 싹퉁바가지가……!”
저 녀석이 살아 움직인 뒤 나는 많은 실험을 해 봤다.
지속시간을 확인하기도 했고 다른 사물에 활력을 써 보기도 했다. 그러나 살아 움직이는 경우는 이 녀석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오직 저 녀석만이 활력 스킬에 반응한 것이다.
말은 더럽게 안 듣지만 어떻게 얻은 녀석인데 공짜로 넘겨줄 수야 없…….
“가만, 생각해 보니 이 녀석은 내 것이 아니더냐.”
“뭔 개소리야!”
“이거 내가 만든 것이지 않으냐? 넌 그냥 도색이나 조금 한 게 다이고.”
“음머~!!”
녀석은 맞는 말이라며 울어 대고 있었다.
“그건…….”
박윤식 영감은 자연스레 손을 내밀었다.
“뭐!”
“돈 내놔.”
“뭐 이런 날강도가……!”
“내 물건을 사용하려면 사용료를 내야지. 당연한 거 아니냐? 설마 스승의 물건을 도둑질하려고 한 건 아니겠지?”
“어차피 폐기할 거였잖아!!”
영감은 재빨리 다가와 내 입을 틀어막았다.
“아기 듣는다.”
“아기?”
“크흠. 뭐, 어쨌든 말 가려서 하라는 말이야.”
“벌써 저 녀석을 자식으로 생각하는 거유?”
“내 작품들은 다 내 자식이야.”
“얼씨구!”
화제는 돌고 돌아 원점으로 돌아왔다.
결국 [우마 길드의 버려진 동상]을 사가라는 것이다.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빽빽 우기는 중이었고 영감은 싼값에 넘기겠다며 회유하는 중이었다.
“전생에 돈 귀신이 붙었나 그냥 제자한테 기부 좀 하면 안 돼?”
“내가 몇 날 며칠 밤새 만든 녀석인데 그럴 수야 없지.”
“자식이라면서 돈 받고 팔 생각이나 하고, 어휴.”
한숨이 깊게 나왔다.
박윤식 영감의 작품에 대한 자부심을 알고 있기에 더 이상 조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번 정한 값이 있으면 10원 한 장 깎아주지 않는 것이 바로 박윤식 영감이었다.
조금 깎아준다는 생각을 한 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저 동상의 가격은 무려 23억.
땡전 한 푼 갖고 나오지 않은 터라 수중에 있는 돈으로는 절대 낼 수 없는 가격이었다.
“나 돈 없는 거 알잖아, 영감.”
“그럼 할 수 없지.”
“허, 저것도 스승이라고.”
“저것도 제자라고.”
결국 나의 패배였다.
나는 [우마 길드의 버려진 동상]에 걸어 둔 활력 스킬을 풀었다.
“음머.”
한번 울고는 원래 동상이 서 있던 자리로 돌아가더니 딱딱히 굳어 버리는 녀석.
볼 때마다 신기한 광경이었다.
“영악한 영감.”
내가 저 녀석을 분명 상하게 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맞는 말이었기에 방으로 들어와 입맛만 다시고 있을 때였다.
“내가 만들면 되지 뭐. 내가 서당 개 경력이 몇 년인데…….”
한참을 툴툴거리고 있을 때였다.
“도윤아 나와 봐라. 손님 오셨다.”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저녁까지 이어진 작업. 영감과 끝없는 말싸움. 말 안 듣는 소 새끼에 의한 스트레스까지. 나는 많이 지쳐 있는 상태였다.
“이 시간에 대체 누가……!?”
“오랜만입니다, 도련님.”
“철용 아저씨……?”
싱긋 웃는 인자한 미소를 지닌 중년은 잊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가문 내에서 천우진 다음으로 알게 모르게 나를 챙겨 줬던 사람이니까.
철용 아저씨는 천가의 피를 물려받지 않았음에도 아버지의 가장 큰 신뢰를 받는 자이자 마지막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봤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예, 들어오세요.”
작은 방에 널브러진 옷가지를 휙휙 치우며 철용 아저씨를 안으로 들였다.
“아늑하니 좋군요.”
“누추한 곳이죠.”
가신 철용은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아, 하긴…….’
죽기 전, 그러니까 평소의 나였다면 싸늘한 시선으로 아저씨를 바라보거나 문전박대했을 거다.
무엇보다 이 당시 난 가문의 앙금이 넘치다 못해 폭발하던 시기였으니까.
예상과 다른 반응에 철용 아저씨는 조금 의아한 모양이었다.
지금이야 천우진 녀석의 말도 있고, 천지훈의 천인공노할 짓을 목격한 뒤라 그 전만큼의 분노는 남아 있지 않았다.
“음……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
“그냥 도련님이 잘살고 있나 궁금해서요.”
철용 아저씨는 언제나처럼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철용.
가문 내에서도 입김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강한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단지 안부만 묻겠다고 나를 찾아온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다.
“저는 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일하고 와서 피곤한데 그냥 오신 거라면 그만 가주시겠어요?”
“저…….”
“본론만 말하세요.”
“가주님이 찾으십니다.”
“아버지가요?”
눈썹이 꿈틀댔다. 그 양반은 절대 이유 없이 아들을 찾을 사람이 아니다.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대체 왜 날…….
설마!?
“언제부터 와 계셨습니까?”
“두 시간 전부터요.”
역시!
철용은 숨김없이 대답했다.
두 시간 전부터라는 소리는 내가 [우마 길드의 버려진 동상]에 활력을 쏟아 넣은 순간을 목격했다는 소리였다.
날 감시하다가 우연히 내 능력을 봤고 그것을 아버지에게 보고했다면?
‘낭패다……!’
천지훈과 손을 잡은 인간들이 누군지 모르는 시점에서 능력을 들킨다는 것은 위험도만 올리는 꼴이었다.
“재밌는 능력을 사용하더군요.”
역시나, 철용은 본 것이 틀림없었다.
‘어쩌지?’
“보셨습니까?”
“네, 새로운 능력이라도 얻으신 겁니까?”
“아닙니다. 원래 있던 능력입니다.”
“원래 있던 능력이라면…….”
“활력이요.”
“아! 활력에 그런 능력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철용은 조금 놀란 눈치였다.
“잠깐 움직일 수 있는 게 다인데요, 뭘. 저 녀석 외에 다른 물건에는 통하지도 않고요.”
“그래도 대단한 능력입니다.”
“[잠김]상태가 풀리면 대단한 능력이 되겠죠. 아마 전투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은 5분간 걸어 다니는 소를 만드는 정도일 뿐입니다.”
나는 거짓과 사실을 섞어 꽤 그럴듯한 설정을 만들어 냈다.
[천가의 피]와 [활력]은 아직 잠금 상태.
저 녀석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건 순전히 우연이고 녀석의 전투 능력은 제로.
조금 전 뇌 속성을 부여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어쨌든 최악의 사태는 막았어.’
이 정도의 설정이 가문의 관심 밖에서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었다.
“그렇군요.”
아저씨는 조금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실망한 것 같기도 기뻐하는 것 같기도 한 표정.
그러나 천지훈의 편이 누군지도 모르는 시점에 아무에게나 능력을 보여 주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아닐 가능성이 크지만, 철용 역시 천지훈의 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나는 가능한 천우진에게도 능력을 숨길 생각이었으니까.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필살기쯤은 숨겨 놓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
천우진도 자신의 필살기를 숨기지 않았던가?
그리고 활력의 활용도는 겨우 이 정도가 아니다.
“아버지께 말씀드릴 겁니까?”
“…….”
철용 아저씨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결국 아버지에게 보고한다는 소리다.
어차피 나에겐 막을 힘도 이유도 없었다.
오히려 쓸데없는 능력이라며 기대치가 낮아지면 그보다 좋은 시나리오는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나는 본론으로 돌아왔다.
“그나저나 아버지가 부르신다고요?”
“네, 가주님이 뵙기를 원하십니다.”
“무슨 일로요?”
경계 어린 눈길을 보내자 철용 아저씨는 한쪽 손을 올려 진정하라는 듯한 몸짓을 보냈다.
“그냥 아비 대 자식으로 밥 한 끼 먹자는 겁니다.”
“허.”
어이없어하는 나를 두고 철용은 내 반응이 이해된다는 듯이 덧붙였다.
“제가 설득했습니다. 모두 가주님이 원하는 옷을 입을 수는 없는 법이라고요. 보고 싶으시면 가주가 아닌 아버지로 보는 편이 어떻겠냐고 말이죠.”
“그래서…… 아버지가 알겠다고 하셨습니까?”
“예.”
“그럴 분이 아니신데…….”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
그 냉혈한 인간이 아들을 보고 싶어 찾는다고?
말도 안 된다.
과거의 차갑던 그 아버지만 생각나는 현재로선 믿기 힘든 제안이었다.
오히려 아저씨의 보고에 움직였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일은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일이다. 그건…….
“아!”
“왜 그러십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무언가 생각났다. 무심결에 달력의 날짜를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잊고 지냈던 장면도 조금 기억나기 시작했다.
과거의 난 지금 시기에 그 누구도 다가오길 바라지 않았다.
오늘은 바로 앙금을 품었던 검신 길드의 부 길드 마스터 정재문에게 박윤식 영감이 죽은 날이었으니까!
안도의 한숨이 쉬어지는 동시에 조금씩 무서워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은 무사하지만 언제 그 미친놈이 앙금을 품고 어떤 짓을 할지 모른다.
천가라는 이름으로 감싸두었지만, 위험한 것은 사실. 조만간 손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미래가 빨리 바뀌기 시작했다.
미래가 바뀌기 시작하면 앞으로 내가 알고 있던 사실들은 모두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된다.
그러면…….
“큭.”
머리를 굴리다 돌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무용했기 때문이다.
지난 생은 이미 시궁창이었다. 바뀌어 봐야 아무 상관없을 정도의 작고 하찮은 것들.
보고했든 말든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저들은 나를 티끌만큼도 생각하지 않을 텐데.
복잡했던 머릿속이 한층 밝아졌다.
동시에 철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시겠습니까?”
잠시 뜸을 들인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예, 가겠습니다.”
* * *
며칠 뒤.
나는 다시는 올 일이 없을 거라고 다짐했던 천가의 대문 앞에 서 있었다.
왕궁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대문에 웬만한 사람들은 주눅이 들고 말지만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주눅이 들 리가…… 있다.
“시발.”
손발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평생을 핍박받고 무시당하고 괴롭힘당하던 곳이다. 좋은 기억이 있을 리가 없지.
“후, 빨리 밥 먹고 천우진이랑 한잔 땡겨야겠네.”
아버지와의 식사보다 식사 후 천우진을 만날 합법적인 명목이 생기는 것이 더욱 기뻤다.
발걸음을 옮겨 가주전을 향했다.
약속 시간은 12시.
조금 일찍 도착한 감이 있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역시나 쑥덕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저기 그 막내 도련님 아니야?”
“맞네, 그 버려진 자식.”
“아, 그분이 저분이야?”
“분은 무슨. 이젠 천가의 사람도 아닌데.”
“큭. 야, 들린다, 들려.”
“들리라고 해. 나가기 전에도 저 새끼 나한테 처발렸어. 지금은 내가 이것만 써도 이기지.”
검지를 쭉 편 10대의 아이는 당장이라도 결투 신청을 해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거들먹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거다.
내가 이곳을 떠난 이유.
실력이 권력이며 무위가 곧 계급으로 나뉘는 곳.
천가의 영토 안에는 저런 녀석들이 수백은 존재했다.
“이래서 오기 싫었던 거였는데…….”
나는 무시하고 가주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 할 때였다.
“어이, 막내 도련님! 쫓겨난 새끼가 여기는 왜 오셨습니까?”
도를 지나친 질문이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