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4화
4. 동료?(1)
천우진은 이때 당시만 해도 가문에서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다.
가문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던 특성 [천가(天家)의 피]조차 잠겨 있던 나와는 달리 천우진은 방계임에도 불구하고 꽤 높은 천가의 피 등급과 높은 잠재력 수치를 받아 가문 내에서도 기대가 컸다.
뭐 나중에야 능력을 스스로 봉인하는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자연스레 무시 받고 결국에는 내쫓아지기에 이르렀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가문 내에서 천우진에 대한 기대의 끈은 놓지 않고 있던 시기였다.
천가는 기본적으로 가문의 어린아이들에게 잠재력을 테스트했다.
특성과 잠재력의 총합을 수치로 나타내 주는 신비한 돌을 이용해 모두가 일 년에 한 번씩 검사를 받게 했다.
방계의 일등은 항상 천우진이었고.
직계의 일등은 항상 천도윤.
나였다.
하여 가문 내의 분위기는 항상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각각 일등 하는 놈들이 제구실을 못 하고 있으니 말이다.
천우진은 특성 ‘천가의 피’까지는 나름 잘 활용하고 있었으니 가문 내에서도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며 방관하는 눈치였지만, 문제는 나였다.
신체 능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켜 주는 천가의 피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힘으로 모든 가치를 평가하는 가문 내의 시선은 알만하리라.
쫓겨나기 전까지, 난 그 누구에게도 이겨 본 적이 없었다. 직계의 17살짜리가 10살짜리 방가의 아이조차 상대하지 못했다.
전설급. 그러니까 천가의 피를 진하게 물려받은 직계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결과였다.
가진 스킬도 한몫했다. 특성 ‘천가의 피’에 숨겨진 또 하나의 능력은 바로 염동력이었다. 가진 스킬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해 주는 염동력.
기본적인 스킬은 손에서 뿜어져 나가거나 하늘에서 내리찍거나, 땅에서 솟아나게 하거나 하는 등 일차원적인 공격만 가능한 데에 비해 천가의 피를 가진 사람들은 아니었다.
번개를 휘게 만들 수도 있으며 불길로 그림을 그릴 수도 있었다.
자유자재의 스킬 활용 능력.
그것이 천가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었다.
천지훈이 뇌룡이라 불릴 수 있던 이유도 번개를 자유롭게 가지고 놀아 생긴 별명이었다.
그런데 내가 가진 스킬은 고작 하나에 그것도 활력이라는 쓰레기 스킬이었다.
염동력을 이용할 수도 없는 스킬.
그렇다고 효과가 대단한 것도 아니었으니 아버지와 원로들의 실망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가문에 다시 들어가자고?”
“그래.”
천우진은 다소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늦게 피는 꽃과 영원한 동반자를 활용해 다시는 쓸 수 없게 된 천우진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의 능력을 숨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가문 내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영향력을 키울 것이라고…… 그리고 천지훈 그 새끼의 계획을 죽을힘을 다해 방해할 것이라고. 그리 말했다.
“같이 가자. 날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
천우진의 계획을 모두 들은 나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왜 네가 메인인 척하냐? 하려면 진혈인 내가 메인이 돼야 하는 거 아니냐?”
“넌…….”
천우진은 끝말을 흐렸다. 약하니 뒤로 빠져 있어라, 뭐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거 같은데…….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내가 섭하지.
이제야 빛을 좀 볼까 하는데.
“일단 너는 가문 내로 들어가 있어. 나는 내가 알아서 들어갈게.”
“도윤아.”
“아직 시간도 많이 남았잖아. 자그마치 7년 남았어.”
가문이 몰락한 지는 내가 죽기 3년 전의 일이었으니 앞으로 7년은 남은 미래였다.
“그래도…… 첫째 도련님을 차기 가주로 뽑는 시기는 올해 말이야. 아마 그때부터 천지훈은 모든 걸 계획하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없어.”
“기다려 봐. 나도 할 일이 있어서 그래.”
아직 모든 능력이 해금되기 위해서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적어도 내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고 적의 소굴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나.
천천히 모든 능력을 푼 뒤에, 실험도 해 보고 능력을 정확히 파악한 뒤에 들어가야 했다.
그래야 머릿속에 재생되고 있는 계획들을 하나하나 짜 맞출 수 있다.
“늦지 않을 거야. 그러니 가문 안에 들어가 동향을 좀 살피고 있어 줘. 힘을 키워도 좋고 형이 방계 내에서 방귀 좀 낄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누가 됐던 형에게 접근하려 할 거야. 천지훈이든 첫째 형이든 말이야.”
“……알겠다. 많이는 못 기다려. 빨리 와.”
“알겠어, 이제 여기 오는 것도 자제해야 할 거야. 천가에는 보는 눈이 많잖아.”
“……알겠다.”
* * *
“이야기가 길어졌구나.”
“응. 미안, 영감.”
나를 바라보는 박윤식 영감의 얼굴은 복잡했다.
평생 가문의 욕만 하고 살았던 녀석이 가문의 사람에게 도움을 받고, 가문을 들먹이고, 가문의 사람과 이렇게 길게 이야기를 나누다니.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르고 있는 눈치였다.
“안 어울리게 왜 그래?”
“뭐가 말이냐?”
“아냐, 작업이나 하자고.”
“……그래.”
그 이후론 서로 말이 없었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며 서로 필요할 때만 이름을 불렀다.
나는 이 시간이 좋았다.
온전히 집중할 수 있고, 잡생각이 들지 않는 시간.
온 집중을 다하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고, 도색작업도 어느덧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꾸나.”
“후, 힘들었다.”
“그만 들어가자.”
그렇게 일을 마치고 돌아가려고 준비를 하던 찰나.
“저…….”
“……오늘은 손님이 참 많네, 영감.”
“그러게나 말이다. 뉘슈?”
“의뢰를 좀 맡기려고 왔습니다.”
긴 생머리에 백옥 같은 피부를 지닌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소심해 보였지만, 풍기는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치 가문의 사람들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필시 강자임이 틀림없었다.
의아한 점은 이 여자는 기억에 없다는 것이었다.
10년 전 기억이라 잊고 있던 걸 수도 있지만, 확실히 기억에는 없다. 이런 여자가 밤늦게 찾아온 기억은.
“영감님은 피곤하니 들어가 있어요. 내가 상담할 테니.”
“그래라.”
박윤식 명인은 별생각 없다는 듯 땀을 훔치며 작업실 안 공간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나는 여자를 데리고 상담실로 향했다.
상담실이라고 해 봐야 낡아 빠진 소파 하나에 정수기가 딸랑 있는 곳이었지만.
“어디서 오셨습니까?”
첫 질문은 항상 이것이었다.
어디서 온 줄 알면 대충 무엇을 만들지, 또 단가는 어떻게 책정될지 사이즈가 나오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보던 여자가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우마 길드에서 왔습니다.”
“우마 길드라면……?”
조금 전까지 작업을 하던 동상의 주인인 길드였다. 내일이면 완성이 될 텐데 그새를 못 참고 온 건가? 아니면…….
“추가 의뢰입니까?”
“예.”
“어떤……?”
“사이즈를 더 키웠으면 합니다. 디자인도 조금 바꾸고요.”
“이미 마무리 단계에 들어왔는데요.”
가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손님들이 있다. 한마디로 진상.
개고생시키는 인물들이다.
싸늘한 내 태도에 화들짝 놀란 여자는 몇 차례나 손을 흔들며 말했다.
“물론 만드신 동상의 가격도 내겠습니다. 앞으로 만들 동상도 당연히 낼 거구요.”
한층 수그러진 태도로 말했다.
“혹시 만드신 동상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
“아뇨, 너무 멋있습니다. 그치만…….”
여자는 계속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말을 해야 저희가 맞춰 드리기가 편합니다.”
단호하게 말하자 여자가 용기를 냈는지 입을 열었다.
“귀, 귀엽지가 않아서…….”
“예?”
“귀엽지가 않아서…….”
“허.”
나는 몇 번이고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물은 후에야 헛숨을 들이켰다.
아니 어떤 미친 인간이 길드의 상징인 동상을 귀엽게 만들어 달라고 하냔 말이다.
더 강해 보이고 위엄있게 만들어 달라는 의뢰는 받아봤어도 귀엽게 만들어 달라는 의뢰는 난생처음이었다.
“제가 길드원 모두와의 내기에서 이겼거든요. 시간이 얼마나 걸려도 상관없습니다. 이렇게 만들어 주세요.”
수줍게 내민 그녀의 쪽지를 받아 든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안았다.
“정말 이렇게 만들어 드려요?”
“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진심이었다.
캐릭터처럼 생긴 이 귀여운 소 사진을 진심으로 길드의 상징으로 내밀 셈이다.
“우마 길드 마스터입니까?”
“네.”
우마 길드는 유명한 길드임에도 불구하고 마스터의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다.
저 정도 외모면 눈에 안 띄는 것이 더 이상한데…….
‘왜 그랬는지 알겠네.’
부끄러움도 부끄러운 건데 우마 길드의 마스터는 어딘가 평범하지 않은 느낌이 있었다.
‘길드원들이 고생이 많겠네.’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길드 마스터. 귀염뽀짝한 캐릭터를 길드의 상징으로 내미는 마스터.
내 상사였으면…….
고개가 저절로 저어졌다.
여러 가지로 길드원들이 고생이리라.
그러나 확실히 실력만은 있어 보였다.
풍기는 분위기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뭐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지금 밀려 있는 의뢰가 많아 최소 6개월은 기다려야 합니다.”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머리까지 꾸벅 숙이는 그녀의 얼굴은 밝았다.
“그럼 지금 만든 동상은 어떻게 해 드릴까요?”
“아, 죄송하지만…… 처리해 주시겠어요?”
한마디로 필요 없으니 버려 달라는 거다.
그간 개고생해 만든 영감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그녀는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었다.
“그…… 로고를 만들고 각인하고 하려면 비용이 두 배로 들어서…… 죄송합니다. 고생하셨을 텐데.”
“아닙니다. 최대한 빨리 만들어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시구요. 어디로 연락드리면 될까요? 원래 받았던 곳으로 연락드리면 될까요?”
“아뇨, 여기로 주세요. 길드가 아닌 제가 제작비를 부담하기로 했거든요.”
‘이 여자 진심이었네.’
본인이 제작비까지 부담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길드의 상징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하기 위해 꽤 많은 타협을 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귀여운 게 뭐라고…….’
알 수 없는 정신세계였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뭐 나쁠 것도 없었다.
내일 쉴 수도 있고, 무엇보다 의뢰를 하나 더 받은 꼴이었으니.
우마 길드의 마스터에게 명함을 건네받고 여자는 급한 일이 있다며 자리를 떠났다.
“이상한 여자네, 진짜.”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야외에 떡하니 자리 잡은 뿔난 황소 모양의 동상을 향해 다가갔다.
쓸쓸해 보였다.
비록 나는 오늘 투입되어 만든 느낌이지만 영감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을 동상이었다.
눈가의 주름, 종아리 근육의 디테일.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동상이었다.
이런 걸 그냥 버려야 한다니…… 속이 쓰리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미안하다.”
동상의 등을 어루만졌다.
살아 움직일 것만 같은 성난 황소.
실제 같기에 더욱 기분이 이상한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만든 적은 있어도 폐기한 적은 거의 없네.’
형태가 완성되기 전에 폐기해 본 적은 많아도 이렇게 완성된 동상을 폐기해 본 적은 그동안 없었다.
쓴맛에 입맛을 다시며 다시 한번 동상을 어루만졌다.
그때.
[등록 가능]
“응?”
[활력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사용 가능한 속성- 뇌(雷)]
이상한 알림음이 뜨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