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수의 알
찌릿!
라이트닝 마법에 맞은 것처럼 왼쪽 팔에 전류가 흘렀다. 나는 범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무슨 짓을 한 거지?”
“이 몸이 한 게 아니다.”
쿠차차가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람 마법이 작동한 거다. 웰런이 구슬을 깨뜨렸어.”
“…….”
웰런의 얼굴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구슬을 깨뜨려라.
저택을 구하거나, 혹은 위험에 빠졌을 때.
나는 방에서 나와 아레나 밖으로 달렸다. 도중에 마주친 미쉘이 나의 앞길을 막았다.
“칼리온 님! 어딜 가시는 겁니까?”
“볼일이 있다.”
“밖으로 나가시려면 수행원이 있어야 합니다.”
미쉘이 필사적으로 나를 제지했다. 그동안의 친절을 생각해 가능하면 난폭한 행동을 자제하려 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스스스!
피보다 붉은 살기가 미쉘을 옭아맸다.
“힉! 으으…….”
공포에 질린 미쉘이 눈물을 흘리며 부들부들 떨었다.
“나는 이미 지배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도망가지도 숨지도 않는다. 약속의 날 돌아오지.”
미쉘이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숨을 몰아쉬고 있는 미쉘의 곁을 지나 아레나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곤 오늘을 위해 미리 찾아 둔 인적이 드문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좌표는?”
“여기서 꽤 먼 곳이군. 어지러울 것이다. 텔레포트!”
밝은 빛이 시야를 가렸다.
빛이 사라지자 주변 풍경이 지저분한 뒷골목에서 넓은 방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저택의 구입, 혹은 신변의 위험.
다행스럽게도 구슬을 깨뜨린 목적은 전자인 듯했다.
“오랜만입니다, 형님.”
방의 주인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웰런이 나의 왼손을 향해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입니다, 쿠차차 님. 덕분에 만년설 구경 실컷 했습니다. 저를 발견한 사람들 말로는 얼어 죽지 않은 게 기적이라고 하더군요.”
방긋방긋 웃고 있는 웰런의 얼굴에 으스스한 한기가 서려 있었다. 둔하디둔한 쿠차차조차 이상을 느낄 만큼 차가운 한기가.
“웨, 웰런, 저기, 그러니까……. 에잇!”
스르륵.
쿠차차는 변명을 하는 대신 도망치는 쪽을 선택했다. 그는 스스로 마력을 차단하여 다크섀도우 속으로 몸을 숨겼다.
“멍청한 아티팩트 때문에 고생이 많았나 보지?”
동병상련의 마음이 이럴까.
나와 웰런은 서로를 쳐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말도 마십시오.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을 정도입니다. 이 대가는 반드시 받아 낼 것이니 나중에 쿠차차 님이 깨어나거든 꼭 전해 주십시오.”
쿠차차가 나뿐만 아니라 웰런에게까지 봉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그나저나 이 저택인가?”
“네, 형님. 따라오십시오. 저택을 구경시켜 드리겠습니다.”
나는 웰런을 따라 저택과 저택 주변을 꼼꼼히 둘러보았다.
“생사를 오락가락하고, 동상에 걸린 다리를 잘라야 되느니, 안 잘라도 되느니, 하며 침대에서 낑낑거리느라 저택을 구입하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저택은 크고 고풍스러웠다. 군데군데 부서진 곳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튼튼해 보였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저택 주변에 인가가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다.
“이 저택의 주인이었던 자는 늙은 남작으로 성격이 괴팍하여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인적이 드문 산기슭 아래 저택을 지었지요. 어떻습니까?”
웰런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물었다.
“완벽하군.”
나는 솔직하게 감상을 말했다.
“형님이 좋아할 줄 알았습니다. 하하하!”
저택을 둘러본 후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방 안은 가구 하나 없이 휑했다. 천장 모서리마다 거미줄이 달려 있었고, 퀴퀴한 곰팡내가 사방에서 진동했다.
“형님, 이제 어쩌실 셈입니까?”
“어쩌긴?”
톡톡!
나는 왼손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마력을 주입했다. 꿈틀거리는 느낌과 함께 쿠차차가 잠에서 깨어났다.
“청소할 사람을 불러야지.”
내 말에 웰런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 * *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군요. 팔 하나 정도는 잘려도 좋았을 것을.”
“다행이지?”
리치가 코웃음을 치며 나를 외면했다.
“이 인간은 누구입니까?”
“웰런이다. 앞으로 함께 지낼 테니 네 몸으로 쓸 생각 따윈 절대로 하지 마.”
“멀쩡한 인간도 널리고 널렸습니다.”
리치가 웰런의 하나뿐인 팔을 흘끔 쳐다보며 말했다.
그토록 대범했던 웰런도 언데드 몬스터 리치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불과 얼마 전 자타르 왕국의 수도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대상인이 놀란 얼굴로 황급히 물러섰다.
“그런데 마법사가 보이지 않는군요.”
“마법사?”
“전언 마법으로 저에게 이곳 좌표를 알려 준 마법사 말입니다.”
“주인님, 제가 했습니다.”
쿠차차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이놈은 자신을 만든 리치에게만 묘하게 정중했다.
“이거…… 놀랍군요. 문지기가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당신의 손안에 숨어 있었다니. 대체 어떻게 이식한 겁니까?”
리치는 꽤나 흥분해 있었다. 이런 표정은 처음이었다.
“주인님, 그것은…… 자, 잠깐!”
나는 마력의 공급을 중단시켜 쿠차차를 잠재웠다.
“나도 잘 모르겠는데.”
나의 뻔뻔한 대답에 리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내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리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방을 나갔다.
내가 쿠차차의 입을 억지로 다물게 했다는 것쯤은 리치도 알아챘을 것이다. 부자연스러운 방법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언제 적이 될지 모르는 리치에게 마력과 다크섀도우의 존재를 밝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창가에 서서 창문 너머를 내려다봤다.
리치가 저택 앞마당에 거대한 마법진을 그리고 있었다. 투기장 연합이 적무도에 설치했었던 대규모 텔레포트 마법진이었다.
마법진을 완성하는 데는 꼬박 반나절이 걸렸다.
화악!
눈부신 빛과 함께 10여 명의 사내가 마법진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빛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화악!
화악!
연속적으로 빛이 깜박였다. 빛이 깜박거릴 때마다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
빛 속에서 곰같이 거대한 체구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칼리온, 오랜만이군.”
“마렉?”
덩치와 목소리로 보아 마렉이 분명했지만 생김새가 이상했다.
마치 조개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바닷가의 바위처럼 넓적한 돌이 마렉의 몸 곳곳에 붙어 있었다. 마렉이 움직일 때마다 드드득, 드드득, 돌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변한 것은 외모뿐만이 아니었다.
은연중에 흘러나오는 기세도 예전의 마렉과 사뭇 달랐다. 보다 패도적이고, 보다 가공할 기세가 살기와 함께 쿡쿡 목젖을 찔렀다.
“어떻게 된 거지? 석화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아니. 일종의 기연이지.”
“기연?”
“설명은 나중에 하지. 나는 아직도 네가 한 말을 잊지 않고 있어.”
“무슨 말?”
순간 마렉의 모습이 사라졌다.
태풍과 같은 기운이 왼쪽에서 들이닥쳤다. 나는 반사적으로 팔을 엑스자로 교차시켜 다가올 충격에 대비했다.
쾅!
“큭!”
예상을 훨씬 능가하는 충격이었다. 나는 뒤쪽으로 날아가 저택 벽에 처박혔다.
“젠장!”
나는 머리 위로 우수수 떨어지는 건물의 잔해를 털어 내며 몸을 일으켰다.
“무슨 짓이냐, 마렉!”
“싸우고 싶으면 샌님처럼 물어보지 말고 그냥 선빵을 날리라고 했잖아? 그래서 그렇게 한 것뿐이다.”
“그렇군. 그 말은…… 한 판 붙어 보자는 거냐?”
“그래. 한 판 붙어 보자. 크크크!”
나는 욱신거리는 팔을 주무르며 마렉을 향해 걸어갔다.
목을 돌리고, 팔을 흔들어 관절과 근육을 유연하게 했다. 잠들어 있는 암흑의 기운을 깨워 몸을 전투 상태로 만든다.
고오오오!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포한 기운에 공기가 몸을 떨었다. 마법진 위에 서 있던 투사들이 부리나케 뒤로 물러섰다.
넓은 공터 위에 나와 마렉이 서로 마주 보고 섰다.
“그 기연이란 놈이 부디 강하길 빈다.”
나는 씨익 웃으며 마렉에게 선전포고를 내렸다.
“자, 잠깐! 대련이라고, 대련! 생사결이 아니라!”
나의 각오를 읽었는지 갑자기 사색이 된 얼굴로 마렉이 외쳤다.
이미 늦었다.
기어 올라오는 새싹은 밟아 줘야 제 맛이다. 아니, 뿌리째 뽑아 주마.
“간다.”
다크섀도우를 꺼냄과 동시에 마렉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이익! 그래! 네놈이 죽나 내가 죽나 어디 한번 해 보자! 나도 예전의 그 마렉이 아니라고!”
마렉의 몸에서 회색 빛깔의 마나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그는 주먹을 뒤로 당겼고, 나를 향해 뻗었다.
쾅!
주먹과 주먹이 부딪쳤다.
시커먼 마력과 회색 빛깔의 마나가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발톱을 세웠다.
쾅!
두 번째 굉음은 첫 번째 것보다 훨씬 크고, 훨씬 파괴적이었다.
폭풍이 주변을 휩쓸었다. 저택이 무너질 것처럼 삐거덕거렸다. 땅을 뒤덮고 있던 눈이 하늘로 솟구쳤다. 멀리 떨어져 있던 투사들이 마나를 일으켜 자신의 몸을 보호했다.
순간 뇌리를 스치는 얼굴.
이곳에서 마나를 사용할 수 없는 유일한 인물.
웰런!
“형님! 멈추세요! 구입한 저택을 부수어 버릴 작정입니까!”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를 뚫고 들리는 다급한 음성.
나는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바람이 멈췄다. 떠올랐던 눈이 하늘하늘 춤을 추며 땅으로 떨어졌다.
“인사 끝났으면 저 좀 구해 주시죠, 형님?”
저택 지붕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웰런이 원망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우당탕!
탁탁탁!
저택 이곳저곳이 소란스러웠다.
마법진을 통해 날아온 적무도의 투사는 모두 50명. 그 가운데 49명의 투사들은 모두 저택을 청소하거나 혹은 수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흐흐흐흐!”
조금 전부터 내 앞을 왔다 갔다 하는 중이었다. 음흉하게 웃으며.
나는 정신을 산란하게 만들고 있는 거구의 사내에게 살기를 뿜었다. 눈앞에서 꺼지라는 무언의 협박이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 판 더 해 볼까? 휙! 휙휙!”
마렉은 입으로 바람 소리를 내며 방정맞은 자세로 주먹을 휘둘렀다.
혈압이 머리끝까지 치솟기 직전 웰런이 말했다.
“이곳에선 안 됩니다. 바람에 날아가는 건 이제 그만 사양하고 싶군요.”
“왜? 한 판 더 해 보자니까? 크크크!”
깐죽거리며 도발하는 마렉을 무시한 후 리치에게 물었다.
“저놈 몸이 왜 저렇게 변한 거지? 몸뿐만이 아니야. 마나의 기질조차 변했어.”
마나는 대개 푸른 빛깔을 띤다. 사람의 성정에 따라 조금씩 변하기는 하지만 푸른 빛깔에서 크게 벗어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마렉의 마나.
회색 빛깔의 마나.
하지만 색깔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마렉의 마나가 풍기는 기운이었다.
마렉의 마나는 흡사…….
“당신의 것과 비슷하지요. 어둠보다 검고, 피보다 붉은 당신의 힘과.”
방 한쪽 구석에 서 있던 리치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렉이 얻은 기연과 관련이 있는 건가?”
“그렇습니다.”
“대체 그 기연이 뭐지?”
“그렇지 않아도 메이어를 불렀습니다. 직접 보는 게 빠를 겁니다.”
잠시 후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대장, 부르셨습니까?”
마렉과는 다른 의미로 메이어는 달라져 있었다. 조금 더 근육이 붙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외모는 전과 비슷했다. 달라진 것은 표정이었다.
재능을 받쳐 주지 못하는 육체로 인해 이무기라 불렸던 투사.
“강해졌군.”
“대장 덕분이죠.”
메이어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농담과 유쾌함으로 가려져 있던 지독한 패배 의식이 사라지고,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는 자신감만이 오롯이 남아 있었다.
“네가 가진 겸손함의 반의반만이라도 저놈이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여전히 우헤헤 웃으며 건방을 떨고 있는 마렉을 가리켰다.
“참으십시오, 대장. 저런 게 바로 부대장의 매력이지 않습니까. 하하하!”
“부대장?”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왔다.
호랑이 없는 곳에서는 여우가 왕 노릇 한다더니.
내가 없는 틈을 타서 뭔가 수작을 부린 게 분명했다.
“흠흠! 아무래도 나가 봐야 할 타이밍인 것 같군.”
마렉은 창문을 연 뒤 그대로 뛰어내렸다.
“부대장인 내가 책임지고 애들을 관리할 테니 너는 아무 걱정도 하지 마! 내일이면 벽에 네 얼굴이 비칠 만큼 저택이 깨끗해져 있을 거야! 하하하!”
마렉의 목소리가 조금씩 멀어지다 종국에는 사라졌다.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누르며 리치에게 말했다.
“이제 기연에 대해 말해 봐.”
리치는 품 안에서 주먹만 한 크기의 돌멩이 두 개를 꺼냈다. 돌멩이는 각각 붉은빛과 파란빛을 띠고 있었다.
“마수의 알? 왜 두 개뿐이지? 분명 세 개였을 텐데.”
“하나는 마렉 부대장이 먹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제가 먹을 겁니다.”
메이어가 끼어들었다.
나는 황당한 얼굴로 리치를 쳐다봤다.
“먹어 버리다니? 마수의 알이 무슨 계란인 줄 알아? 마계에 사는 짐승, 즉 몬스터의 알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해 이번 일은 저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마수의 알에 그런 능력이 있을 줄이야. 기연……. 인정하기는 싫지만 마렉의 표현이 정확합니다. 기연이죠.”
리치가 못마땅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마법사가 미치지 않은 이상 마수의 알이 현계로 소환되는 건 제 경우처럼 오직 소환 마법이 실패했을 때뿐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마수의 알을 깨뜨려 버리죠. 덕분에 현계로 소환된 마수의 알이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는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 능력 중 하나를 마렉이 찾아냈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그다음부터는 제가 설명하죠.”
다시 메이어가 끼어들었다. 그는 뭔지 모르게 굉장히 들떠 있었다.
“저와 부대장이 대련을 하던 중 그만 제가 부대장의 손을 베고 말았습니다.”
“네가 마렉에게 상처를 입혔다고?”
대륙으로 오기 전 마렉과 메이어의 실력 차이를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메이어가 혈석을 꺼내 마나를 주입했다. 혈석 안에서 잠자고 있던 하급 마족 모크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모크는 호엔레른 백작가의 검술을 천천히 펼치기 시작했다.
“전투 경험은 이미 충분히 있었으니까요. 제게 필요한 것은 흩어져 있는 경험을 그러모아 줄 틀이었습니다. 정말이지 죽도록 고생했다구요. 하하하!”
자신감의 원천.
노력은 결코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저는 더 강해질 겁니다. 바로 지금. 여기서.”
메이어는 웃고 있었다. 강한 열망을 품고 있는 눈동자가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어떻게 강해진다는 거지?”
“마렉 부대장은 피 묻은 손으로 마수의 알을 만졌습니다. 순간 마수의 알이 빛을 발했고, 그와 동시에 부화하였습니다. 그리고 알에서 부화한 마계의 짐승이 부대장의 몸속으로 스며들었지요.”
“그럼 마렉 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돌덩이들이 마계의 짐승이란 건가? 그리고 너 역시 그 마계의 짐승을 흡수하려는 거고?”
“그렇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지?”
나는 마법적인 현상에 대해 문외한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마렉이 한 것은 일종의 각인이었습니다. 피의 각인을 통해 마수의 주인이 된 것이죠. 분명한 사실은…… 그는 운이 좋았다는 것입니다. 전에도 말했다시피 마수의 알에서 어떤 마수가 깨어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마렉은 성공했지만, 다음번에도 그렇게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운이 좋은 편이거든요. 마렉 부대장이 할 수 있었다면, 저 역시 할 수 있습니다.”
서걱!
메이어가 단검으로 손바닥을 그었다. 붉은 피가 손목을 타고 흘러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어느 것을 고를까요…….”
메이어는 붉은색과 파란색 중 어느 알을 고를지 저울질을 했다. 운이 좋다며 큰소리를 쳤지만 내심은 그렇지 않은지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너로 정했다!”
커다란 외침과 함께 메이어의 손이 파란색 알을 덮었다.
그리고.
“…….”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부, 분명 부대장도 이렇게…….”
당황한 메이어가 피 묻은 손으로 마수의 알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허둥거렸다.
리치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마수의 알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을 텐데. 어쩌면 마렉이 선택했던 것만이 특별한 것이었을 수도 있어.”
“그럴 리 없어! 저 무식한 곰탱이도 해냈는데! 내가 실패할 리가 없어!”
그때였다.
창가 쪽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멍청아, 마나를 불어 넣어야지. 그리고 곰탱이라……. 나중에 좀 맞자.”
멀리 도망친 줄 알았던 마렉이 창가에 매달려 방 안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나?”
마렉의 조언에 따라 메이어가 마나를 일으켰다. 청명한 기운이 메이어의 몸에 어렸다.
잠시 후 일렁거리던 마나가 마수의 알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천천히, 그러나 조금씩 빠르게.
그리고 마침내 마수의 알이 메이어의 마나를 아귀처럼 집어삼켰다.
“아, 알이 마나를 빨아들이고, 크윽!”
마치 흡혈귀에게 피를 빨린 사람처럼 메이어의 몸이 급속히 말라 갔다. 메이어는 순식간에 뼈만 앙상한 미라가 되었다.
“어떻게 된 거지? 실팬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최초의 부하를 이렇게 허무하게 잃을 수는 없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나는 마수의 알을 깨뜨려 버리기 위해 주먹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번쩍!
마수의 알이 푸른 섬광을 내뿜었다. 아니, 방 안에 휘몰아치고 있는 이 기운은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질주하는 폭풍.
모든 것을 파괴하는 바람의 칼날.
휘이이잉!
콰쾅!
눈을 뜰 수 없을 것 같은 광풍과 함께 마수의 알이 폭발했다.
모든 것이 잠잠해졌을 때.
낯선 모습의 메이어가 눈앞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리자드맨 같았다. 몸 전체가 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다. 양팔은 무릎까지 내려올 만큼 길었으며, 귀는 뾰족하고 길었다. 키는 마렉만큼 커졌고, 반대로 불필요한 근육은 전부 사라져 삐쩍 말라 보였다.
“제법 멋있어졌는데?”
마렉이 싱글거리며 말했다.
메이어는 방 안에 있는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췄다.
“이게…… 나?”
몬스터로 오해받을 만한 외모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위로를 해 주기 위해 입을 열려는 순간, 메이어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섬뜩하고, 위험한 미소였다.
오싹!
한기가 척추를 타고 흘렀다.
휘익!
어디선가 바람이 불었다. 본능적으로 몸을 틀지 않았다면 볼품없이 나가떨어질 뻔했다.
거센 바람이 귓가를 스치며 지나갔다.
지이잉.
귀에서 이명이 울렸다.
“한 판 붙어 봅시다, 대장!”
다짜고짜 선빵을 날린 메이어가 주먹을 말아 쥔 채 나를 보고 웃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마수를 잡아먹은 놈들은 죄다 난폭해지나 보다. 게다가 건방지기가 하늘을 찌른다.
이럴 땐 매가 약이다.
슈욱!
다크섀도우를 꺼냈다. 이번에야말로 본때를 보여 줄 생각이었다.
저택?
내 알 바 아니다.
드드드드!
나와 메이어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가공할 기운에 저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젠장!”
현명하게도 웰런은 말리는 것을 포기하고 허겁지겁 저택 밖으로 도망쳤다.
“자아, 네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한번 보여 줘 봐라.”
“실망하지 않을 겁니다, 대장. 혹시 제가 이기더라도 절 너무 미워하지 말아 주십시오.”
“개소리.”
메이어의 신형이 일순 흐릿해졌다.
기습은 두 번은 통하지 않는다.
옆으로 두어 걸음 물러선 후 허공을 향해 발을 올려 찼다. 맞히는 것이 아니라 와서 맞아 준다는 감각으로.
퍽!
뭔가가 발에 차였다.
사라졌던 메이어가 복부를 감싸 쥔 채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사라졌다.
질풍의 메이어라 불릴 만큼 빠른 놈이었다. 그런 놈이 마수의 알을 흡수하여 더욱 빨라졌다.
휙!
휙! 휙!
바람처럼 빨랐던 놈이 아예 바람이 되어 버렸다. 흡사 투명인간이 된 것처럼 메이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내 주위를 맴돌고 있는 바람 소리만이 유일한 흔적이었다.
빠름을 제압할 수 있는 것.
바람을 제압할 수 있는 것.
메이어를 잡을 궁리를 하다 문득 웃음이 나왔다.
“……언제부터 내가 머리를 썼다고.”
처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과거나 지금이나 그리고 미래에도 바뀌지 않을 한 가지.
휘오오오!
마력을 끌어 올린다. 사나운 암흑의 기운이 혈관을 질주한다. 머릿속이 하얗게 불타는 기분.
그래. 이 기분이다. 막힌 것이 뻥 뚫리는 기분. 황홀한 기분.
가로막는 것이 무엇이든. 장애물이 무엇이든.
고민하지 않는다. 망설이지 않는다.
있는 힘껏, 힘으로, 깨부순다.
허리를 쥐어짜듯 비튼 후 그렇게 얻어진 회전력을 어깨로 집중시켰다.
끌어 올린 마력을 주먹에 모았다. 활시위를 당기는 것처럼 주먹을 뒤로 잡아당겼다.
휘잉!
갑작스러운 바람에 머리칼이 휘날렸다. 아무것도 없었던 허공에 뿌연 잔상이 아른거렸다.
메이어는 웃고 있었고, 새로 얻은 자신의 힘에 도취되어 있었다.
“하아아압!”
장전한 주먹을 앞으로 발사했다.
“대장, 느립니다! 하하하!”
메이어의 신형이 다시 사라졌다.
하지만 내가 노리는 것은 메이어의 몸뚱이가 아니었다.
주먹이 허공을 때렸다.
쩌엉!
공간이 마치 얼음처럼 깨어졌다. 공간 너머에 숨어 있던 메이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건초 더미 안에 숨어 있는 바늘을 찾는 방법. 그것은 건초 더미를 샅샅이 헤집는 게 아니라 건초 더미 자체를 불살라 버리는 것이었다.
콰앙!
찢어진 공간이 비명을 질렀다. 벼락같은 굉음.
주먹이 닿았던 공간을 중심으로 강력한 폭발이 일었다.
“커헉!”
폭발의 충격에 휘말린 메이어가 피를 토하며 저택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쩌적!
쩌저적!
폭발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저택이 반으로 쪼개졌다.
“혀어엉니이임!”
멀리서 웰런의 절규가 들려왔다.
* * *
“저택이 반으로 쪼개졌는데 무슨 수리입니까? 어차피 평생 머물 것도 아닌데 그냥 사시죠, 형님?”
웰런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다.
나를 위해 힘들게 구입한 저택이 불과 하루 만에 박살이 났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게다가 두 번의 싸움으로 인해, 한 번은 저택 지붕에 매달리고, 또 한 번은 쓰러지는 저택에 깔릴 뻔했으니 화가 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저놈 목소리에서 독기가 느껴지는데. 기분 탓인가?”
마렉이 옆에서 나를 놀렸다.
메이어가 아니라 이놈을 때려잡았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투기를 일으켰나 보다.
“또 싸우시려고요?”
웰런이 획 나를 노려봤다. 도끼눈을 하고 덤비려는 웰런을 피해 방에서 도망쳤다.
어쨌든 그렇게 저택의 청소와 수리는 모두 중지되었다.
다음 날.
웰런은 투사들과 함께 번화가로 향했다. 그들은 이틀 후에 돌아왔다.
나는 투사들에게 돈을 아끼지 말 것을 주문했고, 그들은 기꺼이 그렇게 했다.
저택을 나갈 때는 빈손이었지만, 돌아왔을 때는 모두 최고의 무기와 최고의 방어구로 무장한 상태였다.
“50명을 무장시키는 데 들어간 돈이 대체 얼마인 줄 아십니까?”
웰런이 분통을 터뜨리자 메이어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역시 대장입니다! 쪼잔한 부대장과는 달리 통이 크시군요!”
“뭐? 쪼잔한?”
‘곰탱이 발언’ 이후로 마렉과 메이어는 쉴 새 없이 티격태격했다.
평소 같았으면 메이어가 마렉에게 쥐어 터진 후 몸을 사렸어야 했다. 하지만 마수의 알 덕분에 메이어는 마렉에게 맞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쥐새끼 같은 놈! 잡히기만 해 봐라!”
기괴한 모습의 투사 두 명이 술래잡기를 시작했다.
마렉이 바위보다 단단한 몸을 손에 넣었다면, 메이어는 바람보다 빠른 속도를 손에 넣었다. 때문에 마렉은 메이어를 잡을 수 없었고, 메이어는 마렉을 때릴 수 없었다.
결코 끝나지 않을 시끄러운 술래잡기가 계속 이어졌다.
이틀 동안 단단히 시달렸는지 투사들이 머리를 흔들며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투사들이 자신들의 무기를 골라 오는 동안 나와 리치는 저택 지하에 연무장을 만들었다.
연무장이라고 해 봐야 별것 없었다. 그냥 지하에 있던 쓰레기들을 죄다 밖으로 내다 버린 것뿐이었으니까.
텅 빈 연무장에 리치가 50개의 마법진을 그렸다.
마법의 이름은 헬 오브 인피니티.
찰나의 시간 동안 억겁의 고통을 줄 수 있는 지옥의 마법.
“그럼 투사들의 수련을 부탁하지. 죽지만 않으면 된다. 아니, 두 명 정도는 죽어도 상관없을지도.”
50명의 생체 실험 도구를 손에 넣게 된 리치가 눈을 빛냈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다른 건 몰라도 사람 괴롭히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는 몬스터니 알아서 잘 굴려 줄 것이다.
투사들은 다양한 상황, 다양한 적, 다양한 고통 그리고 다양한 죽음 속에서 빠르게 강해질 것이다.
마법의 부작용으로 미쳐 버릴지도 모르지만, 일단 적무도에서 가장 강하다는 투사들만 추렸으니 아마도 괜찮을 것이다. 물론 두 명 정도는 괜찮지 않아도 상관없다.
연무장을 나와 웰런을 찾았다.
웰런은 나와 메이어가 싸웠던 방에서 궁상을 떨고 있었다. 그 방은 저택이 V 자로 찢어지기 시작한 곳으로, 다시 말해 사방에 뻥 뚫린 방이었다.
“따뜻한 데 놔두고 천장도 없는 곳에서 찬 바람을 쐬고 있다니.”
“원래 이 방이 가장 좋은 방이었습니다. 남작이 묵었던 방이었지요.”
웰런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아직도 꽁해 있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네 도움이 필요하다. 그것도 많이.”
“어차피 또 뭘 사는 것 아닙니까? 저택처럼.”
웰런은 여전히 툴툴거렸다.
“그렇긴 하지. 다만 저택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물건이다. 이걸 사려면 너도 아마 꽤 힘들 거야.”
“대체 뭐기에 그러는 겁니까? 이래 봬도 얼마 전까지 대상인이라고 불렸던 접니다.”
자존심이 상한 듯 웰런이 얼굴을 붉혔다. 웰런이 더 투덜대기 전에 그가 사야만 하는 물건의 이름을 말했다.
“아레나.”
“아레나?”
웰런이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기억을 더듬어 같은 이름의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정답을 알려 주었다.
“대륙 제일의 투기장.”
“아레나? 설마 그 아레나 말입니까?”
“그래, 그 아레나다.”
“그건 물건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레나를 사 놓으라니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상인들 격언에 이런 말이 있을 텐데. 이 세상에 돈으로 사지 못하는 것은 없다. 영원한 삶을 제외하고.”
“그 돈이 없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돈으론 턱없이 부족합니다! 아레나입니다! 대륙 제일의 투기장 아레나입니다! 상인들을 협박해 빼앗은 돈으로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습니다!”
마침내 웰런이 폭발했다.
웰런이 진정하길 기다렸다 말을 이었다.
“돈이야 불리면 되지.”
“어떻게 말입니까?”
“네가 잘하는 게 있잖아.”
나는 웰런을 향해 웃었다.
“도박.”
아레나의 지배인 아르테타.
그는 작은 체구를 지닌 백발의 노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절대로 불쌍하고 나약한 늙은이가 아니었다.
얼음보다 차갑고, 뱀보다 사악한.
인간의 탈을 쓴 악마.
그런 그가 거짓 미소를 지으며 제안했다.
너라면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살아서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너라면…… 너라면…….
10년에 한 번 열리는 투사의, 투사에 의한 그리고 투사를 위한 투기장 최대의 이벤트.
싸움에 미친 투사들의 마지막 무덤.
단 한 명의 아군도 존재하지 않는 무저갱의 지옥.
대륙의 투기장에 흩어져 있는, 내로라하는 투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최강자를 가리는 전귀戰鬼들의 축제.
참가할 수 있는 정원은 무제한.
승자는 단 한 명.
승자의 조건 역시 단 하나.
전쟁에 참여한 모든 투사를 죽이는 것.
그것이 바로 피의 전쟁.
블러드 배틀Blood Battle.
“휴우…….”
침대에 누워 크게 한숨을 쉬었다.
밑그림은 모두 그렸다. 이제 남은 것은 그림에 색을 입히는 일이었다.
정교하게, 조심스럽게.
단 한 번이라도 붓을 삐끗 잘못 놀렸다가는 커다란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하나뿐인 목숨이 바로 그것이었다.
크게 심호흡을 한 후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렇게 어영부영할 시간이 없었다.
블러드 배틀이 시작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두 달이었다. 피의 축제가 끝나면 투기장 연합은 그 승자를 전면에 내세워 적무도를 공격할 것이 틀림없었다.
즉, 이번이 유일무이한 기회였다.
실패는 용납되지 않았다. 적무도는 쑥대밭이 되고 투사들은 전부 처형당할 것이다.
“하긴…… 실패하면 어차피 죽을 테니 상관없나.”
죽은 후에 벌어질 일을 걱정할 만큼 나는 책임감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만큼 책임감 없는 성격도 아니었다.
나는 가만히 왼손을 내려다봤다.
보물은 그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만 보물이 된다. 쿠차차라고 하는 희대의 아티팩트를 손에 넣었지만, 활용하지 못한다면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블러드 배틀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쿠차차를 수족처럼 다룰 수 있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 쿠차차를 연구하고 분석할 필요성이 있었다.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의 종류는 물론이거니와 쿠차차의 성격, 위기 상황에서의 대처 방식과 같은 전투 패턴 등 모든 것을 알아야 했다.
주어진 시간은 불과 두 달.
불평을 쏟아 낼 틈조차 없을 만큼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문득 쓴웃음이 나왔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 여유가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번 역시 전과 똑같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 역시 같으리라.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 하는 것.
피식 웃으며 왼손의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
손등에서 쿠차차의 얼굴이 스르륵 올라왔다.
“불렀나, 주인?”
“해야 할 일이 있다.”
“무슨 일인데?”
“수련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