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상인 VS. 도박꾼 (31/45)

상인 VS. 도박꾼

클레모니아 대륙은 크게 북부 지역과 남부 지역, 이렇게 두 부분으로 나뉘었다. 북부 지역은 하나의 거대한 제국이 다스렸으며, 남부 지역은 크고 작은 왕국이 각각 자신의 땅을 다스렸다.

과거 클레모니아 대륙을 통일했던 북부의 지배자 아르센 제국은 대륙을 다시 통일하기 위해 호시탐탐 남부 지역을 노렸다. 이러한 아르센 제국의 야욕에 맞서기 위해 남부 지역의 여러 왕국들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운명 공동체를 조직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반反아르센 제국을 목적으로 한 남부 연합, 아스가르드였다.

남부 연합 아스가르드에 소속된 왕국들은 기본적으로 국력에 상관없이 평등했다. 하지만 그것은 허울 좋은 개살구일 뿐이었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듯 아스가르드 역시 몇 개의 왕국이 아스가르드 내의 발언권을 독점하고 있었고, 자타르 왕국 역시 그중 하나였다.

드드드드!

“비켜! 비켜!”

상단을 호위하고 있는 용병들이 대로에 있는 사람들을 가외로 몰아냈다.

순식간에 텅 비어 버린 대로를 수십 개의 마차가 위용을 뽐내며 지나갔다. 마차마다 짐이 한가득 실려 있었다.

나는 마차에 새겨져 있는 상단의 문장을 유심히 관찰했다.

머리가 두 개 달린 거대한 황금 독수리. 낯익은 문장이었다.

상단은 깊이 파인 바큇자국과 자욱한 흙먼지를 남긴 채 떠나갔다.

“에잉! 내 더러워서 진짜! 퉤!”

“같은 상인 주제에 귀족처럼 위세 떨기는!”

“그러게 말이오!”

마차가 지나가자 길 가외로 내몰렸던 보따리 행상들이 침을 뱉으며 욕을 쏟아 냈다. 그들은 흙먼지를 뒤집어쓴 짐을 탁탁 털며 점점 작아지고 있는 상단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저 상단의 이름이 뭐지?”

옆에 있던 행상에게 물었다. 행상은 내 몰골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시큰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리온 상단이오. 요즘 제일 잘나가는 상단이지.”

“그리고 상도商道도 모르는 더러운 놈들이지.”

다른 행상이 추임새처럼 덧붙였다.

그것을 시작으로 리온 상단에 대한 성토가 줄줄이 이어졌다. 대부분의 행상이 리온 상단을 욕했으며, 나머지는 리온 상단을 증오했다.

나는 리온 상단에 대한 행상들의 평가를 들으며, 자타르 왕국을 향해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상도를 모르는 상인이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뭐, 어쩔 수 없나.”

멀리 왕국으로 들어가는 성문이 보였다.

성문 앞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경비병들의 검문이 얼마나 심한지 대열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하지만 소란을 떠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루한 검문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나는 사람들의 속삭임을 통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타르 왕국은 지금 전란에 휩싸이기 일보 직전이었고, 작은 소란에도 목숨이 위험할 만큼 분위기가 흉흉했다.

내가 적무도에 갇혀 있던 시간은 3년.

그동안 나는 여러모로 강해졌다. 기억을 되찾았고, 마력을 제어할 수 있게 되었으며, 덕분에 오러 블레이드를 넘어 다크 블레이드라는 나만의 필살기도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100여 명에 이르는 부하도 얻었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 정도는 손가락 하나로 거꾸러뜨릴 수 있을 만큼 강해졌다.

하지만 그래서 복수를 할 수 있느냐, 하면 그것은 불가능했다.

안타깝게도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했기 때문이다. 내가 복수의 칼을 갈고 있는 사이, 휴멜은 자신의 꿈을 향해 차근차근 전진하고 있었다.

내가 적무도에 갇힌 지 2년 만에 휴멜은 자신의 아버지를 베고 호엔레른 백작가의 주인이 되었다. 그리고 남은 1년 동안 노골적으로 무기와 군량을 사들이고 있었다.

성문 앞에서 수군거리고 있는 사람들은 휴멜, 아니 휴멜 백작의 목적이 찬탈한 백작 위를 지키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생각이 달랐다.

휴멜 백작의 다음 사냥감은 자타르 왕국의 왕위가 분명했다. 그다음 사냥감은 남부 연합인 아스가르드였으며, 마지막 사냥감은 북부 지역의 지배자 아르센 제국이었다.

즉, 휴멜 백작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칼레스 대제 이후로 어느 누구도 하지 못했던 대업, 바로 대륙 통일이었다.

“다음!”

기나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다. 경비병이 사나운 눈초리를 나를 노려봤다.

“자타르 왕국에는 무슨 일로 왔느냐?”

“보시다시피.”

나는 용병 패를 건네주며 말했다.

“이제는 최하급 용병까지 몰려드는군. 젠장! 이러다 진짜 전쟁 나는 거 아냐?”

경비병은 용병 패를 꼼꼼히 살핀 후 돌려주었다.

“뭘 봐? 볼일 끝났으니까 얼른 들어가. 다음! 빨리빨리 오지 못해!”

경비병이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거대한 성문을 통과해 자타르 왕국에 첫발을 내디뎠다.

경비병이 짜증을 낸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척 보기에도 용병임이 분명한 남자들이 거리에 득시글거렸던 것이다.

“왕국 전체가 흉흉하다더니…….”

용병들의 몸에서 은은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평범한 사람들 역시 잔뜩 긴장한 얼굴로 바삐 오가고 있었다. 건드리면 폭발할 것 같은 공기가 거리에 내려앉아 있었다.

자타르 왕국의 변방조차 이럴진대 수도는, 특히 호엔레른 백작가 근처의 분위기가 과연 어떠할지 짐작이 갔다.

일단 여관에 들러 밥을 먹고 목욕을 했다. 그러곤 곧장 방으로 돌진해 푹신한 침대에 몸을 던졌다.

대체 얼마 만에 느껴 보는 안락함이던가.

나는 감동을 느낄 겨를도 없이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

시끄러운 소리가 단잠을 깨웠다. 조금 더 자기 위해 몸을 뒤척이자 소음이 더욱 커졌다.

한편으론 돼지 멱따는 소리 같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포악한 짐승의 울부짖음 같기도 했다.

둘 다 그리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감히 이 몸을 엉덩이로 깔고 앉다니! 이 몸의 분노가 두렵지 않더냐! 이 건방진 주인아!”

이불 안쪽에서 오크 머리가 꽥꽥 소리를 질렀다.

“뒤척이다 잠깐 깔렸을 뿐이다.”

나의 변명은 그를 더욱 화나게 했다.

“깨어 있었잖아! 이 몸께서는 다 알고…… 자, 잠깐! 잠깐…….”

마력의 흐름을 끊자 거짓말처럼 평화가 찾아왔다.

“미치겠군.”

숙면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이트워커의 암살자 페이든과 싸우기 위해 다크섀도우를 꺼낸 것이 화근이었다. 결과적으로 페이든은 순순히 물러갔고, 덕분에 나는 골칫덩이만 깨운 꼴이 되었다.

쿠차차는 에고 아티팩트답게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났다. 그는 잠깐 깨어났던 그 짧은 시간을 이용해 스스로 마력을 빨아들이는 방법을 찾아냈다.

다시 말해, 내가 일부러 마력의 흐름을 끊지 않는 이상 쿠차차는 언제든지 자발적으로 튀어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빌어먹게도.

문제는 내 머리가 하나라는 점이었다.

마력의 흐름에 하루 종일 신경을 쓰며, 남은 뇌의 용량으로 다른 일을 할 만큼 나는 뛰어난 존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한 손에는 검을, 다른 한 손에는 채찍을 들고 두 명의 적을 각각 상대하는 것과 같았다.

그런 식으로 살다간 필시 손발이 꼬여 비명횡사할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슬슬 타협할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나는 침대에 앉은 자세로 왼손을 바라봤다.

잠시 고민한 후.

“……나중에 하자.”

자유와 평화를 조금이라도 오래 간직하기 위해 결국 나는 쿠차차와의 단판을 미루고 말았다.

여관에서 아침을 먹은 후 마을을 떠났다. 목표는 자타르 왕국의 수도 마이엘이었다.

마이엘까지는 최소 일주일 이상 노숙을 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두렵지 않았다.

나에게는 마법 가방이 있었고, 가방 안에는 온갖 먹을거리가 가득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1년 내내 일정한 온도를 유지시켜 주는 마법 로브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이 있었다.

두두두두!

“이럇!”

말을 타고 잘 닦인 도로를 따라 질주했다. 바람을 가르는 기분이 제법 상쾌했다.

인생에서 최초로 구입했던 말은 오우거의 몸통 박치기에 허리가 반으로 접혔다. 하지만 두 번째 말은 좀 더 오래 살 수 있으리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섀도우 헌터라는 별명의 암살자 페이든이 오고 난 후, 나이트워커는 종적을 감췄다.

만약 다음에 다시 온다면 그때는 소수 정예, 어쩌면 페이든 홀로 올지도 몰랐다.

절망과 파멸의 암살자이자 그림자의 지배자.

섀도우 헌터.

그는 두 가지로 유명했다.

한 가지는 한 번도 실패해 본 적이 없다는 경이적인 암살 솜씨. 다른 하나는 매우 보기 드문 무기였다.

대륙을 통틀어 단 일곱 개만 존재한다는, 여신의 숨결이 담긴 최강의 무기.

로열 암스Royal Arms.

폭풍을 일으키는 마창魔槍, 그랜드스피어Grand Spear.

드래곤의 브래스조차 막을 수 있는 절대 방어의 방패, 홀리실드Holy Shield.

겨냥한 표적은 절대로 놓치지 않는 백발백중의 활, 이글아이Eagle Eye.

불과 얼음의 검, 아이스파이어Ice-Fire.

지진을 일으키고 해일을 만드는 신의 망치, 묠니르Mjolnir.

세계수의 나뭇가지로 만들었다고 알려진 마나의 지팡이, 마나완드Mana Wand.

그리고…….

모든 무기가 전설급이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기묘하다고 평가받고 있는 마지막 무기.

빛의 여신 파이레스트가 아니라 쌍둥이 동생인 달의 여신 파트라체의 숨결이 담긴 어둠의 아티팩트.

달빛의 축복으로 태어난 암흑의 로브, 월광月光.

섀도우 헌터 페이든의 무기는 바로 그 ‘월광’이었다.

“로열 암스의 주인이라.”

페이든의 얼굴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잠깐의 만남. 그리고 한두 번의 공방전. 그것만으로도 페이든이 얼마나 강한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단지 월광의 능력을 조금 보여 줬을 뿐이다. 그 결과 나는 옆구리에 구멍이 나고 말았다.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 나를 죽이려 할 때 과연 얼마나 강해질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과연 그것을 막아 낼 수 있을까.

나를 고개를 흔들어 부정적인 생각을 날려 버렸다.

질문이 잘못되었다.

막아 내는 방법이 아니라 이기는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나 자신이 약자라는 생각은 절대로 해서는 아니 되었다.

나는 강하다.

그래, 진실로 강하다.

달걀로 바위를 깨뜨려야 하는 나에게 있어,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이 유일한 필승 전략이었다.

8일 후.

“워! 워!”

고삐를 잡아당기자 말이 걸음을 멈췄다.

산 아래 자타르 왕국의 수도 마이엘의 전경이 펼쳐졌다.

왕국의 수도답게 마이엘은 크고 아름다웠다. 커다란 건물과 높은 탑이 빼곡이 들어차 있었다. 멀리서 보기에도 활력과 생명력이 넘치는 도시였다.

그동안 수고했다는 뜻으로 목덜미를 어루만져 주자 말이 기분 좋은 듯 투루루 투레질을 했다.

“조금만 더 힘내자. 이럇!”

두두두두!

마이엘을 향해 말이 달리기 시작했다.

* * *

마구간에 들러 말을 팔았다.

“좋은 주인 만나라.”

녀석은 자신을 두고 떠나가는 나를 애처로운 눈으로 배웅했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거리를 거닐었다.

수도의 분위기가 험악할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자타르 왕국의 수도 마이엘은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은 들뜬 아이처럼 즐거워 보였다.

“그렇군.”

예상과 현실의 모습이 크게 어긋난 이유를 깨달았다.

사람은 위험 인자를 인식해야만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위험 인자의 위험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절망의 감정은 더욱 증폭된다.

휴멜의 진정한 목적과 그의 실력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그것을 몰랐다.

때문에 자신들이 안, 전, 하다고 착각한 채 이렇게 웃고 떠들 수 있는 것이리라.

그만큼 정보라는 것은 중요하다. 그 중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나는 본격적으로 몸을 움직이기로 했다.

“마이엘에서 리온 상단이 운영하고 있는 가장 큰 상점이 어디지?”

자질구레한 것을 팔고 있는 잡화점 주인에게 물었더니 그가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손님, 웬만한 물건은 저희 집에도 있으니 구입하고자 하는 물건이 있으면 말씀만…….”

“리온 상단의 상점이 어디 있지?”

잡화점 주인의 미소가 일그러졌다.

“큰길에서 쭈욱 앞으로 걷다 보면 큰 사거리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바로 보일 거요.”

잡화점을 나오자 등 뒤로 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쳇! 망할 리온 상단 같으니. 손님을 전부 빼앗아 가는군. 그렇게 장사해서 얼마나 오래가는지 두고 보자.”

큰길 주변에 위치한 상점에서 리온 상단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리온 상단에 대한 상인들의 평가는, 자타르 왕국으로 오는 길에 보았던 보따리 행상의 평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른쪽이라고 했지.”

나는 잡화점 주인이 알려 준 대로 큰길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세간의 평가를 알았으니 이제는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차례였다.

대륙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남부 연합 아스가르드. 그 아스가르드를 주름잡고 있는 거대 왕국 자타르. 그리고 그러한 자타르의 수도에서 가장 큰 상단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리온 상단.

리온 상단은 불과 2년 만에 그러한 위치에 올라섰다. 급격한 성장에는 항상 부작용이 따르는 법이다.

맨몸으로 시작하여 리온 상단을 만든 칼린이란 상인은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었다.

칼린의 평가는 극명하게 두 개로 갈렸는데, 하나는 맹목적인 추앙이었고, 다른 하나는 증오에 가까운 시기와 질투였다.

특히 그가 상단을 만드는 과정에서 보여 줬던, 도박에 가까운 공격적인 투자는 다른 상단들의 반감을 샀다.

굴러들어 온 돌을 쫓아내기 위해 박혀 있던 돌들이 하나로 뭉쳤다. 하지만 굴러들어 온 돌은 평범한 돌멩이가 아니었다. 거대한 바윗덩어리였던 것이다.

그 결과 마이엘의 상권은 뒷골목 건달들의 세력 다툼처럼 바람 잘 날 없는 치열한 전쟁터가 되었다.

“그리고 이곳이 그 중심지란 말이지.”

나는 3층으로 되어 있는 커다란 건물을 올려다봤다.

제일 잘나가는 상단의 상점답게 건물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더운 공기가 훅 밀려왔다. 많은 사람들이 땀을 뻘뻘 흘려 가며 상점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신기하군. 어떻게 이런 곳이 최고가 될 수 있지?”

보통의 상점은 손님이 들어오면 물건을 팔기 위해 주인이나 종업원이 다가와 필요한 상품을 물어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리온 상단의 상점에는 그러한 종업원이 없었다. 각 층마다 물건의 값을 계산하는 종업원이 한 명씩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도 물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단지 계산만을 하기 위한 종업원이었다.

다시 말해 이곳에서는 알아서 물건을 고르도록 손님을 방치하고 있는 셈이었다.

게다가 더 가관인 것은 물건의 진열 상태였다.

“……엉망진창이군.”

작은 손도끼 아래 이가 빠진 검이 깔려 있었고, 그 검 아래에는 구멍 난 가죽 신발이 놓여 있었다. 그렇게 모든 물건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었다.

좋게 말하면 만물상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쓰레기장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나를 가장 놀라게 했던 것은 바로 물건의 가격이었다. 리온 상단의 물건은 거짓말이라고 생각될 만큼 저렴했다.

그리고 이 가격이야말로 마이엘의 상단들이 리온 상단을 경계하는 결정적인 이유였다.

와장창!

“꺄악!”

“뭐, 뭐야?”

물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울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렸다.

쾅!

콰당!

험악한 인상의 용병 다섯이 진열장을 걷어차고 있었다.

“뭘 봐? 나랑 한번 해보겠다는 거냐?”

“눈깔의 먹물을 쪽 뽑아 버리기 전에 고개 돌리지 못해?”

살기를 풀풀 풍기며 용병이 으르렁거리자 그토록 소란스럽던 상점 안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소, 손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물건값을 계산하고 있던 종업원이 겁에 질린 얼굴로 다가왔다.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고, 그것은 곧 현실이 되었다.

덥석!

얼굴에 칼자국이 나 있는 용병이 종업원의 멱살을 쥐고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종업원이 숨을 컥컥거렸다. 종업원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더니 종국에는 시퍼렇게 변했다.

휙!

우당탕!

종업원이 숨 막혀 죽기 직전, 용병이 그를 진열장 위로 집어 던졌다.

“콜록! 콜록!”

용병은 미친 듯이 기침을 하고 있는 종업원에서 주변 사람들로 시선을 옮겼다.

용병과 시선이 마주친 사람들이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하나둘씩 사람들이 상점 밖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상점 안은 한산해졌다.

상점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불과 십수 명뿐이었다.

기침을 멈추고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종업원과 영업을 방해하러 온 다섯 명의 용병 그리고 그 용병들을 같잖다고 여기고 있는, 나름 거칠게 살아온 사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나는 슬쩍 뒤로 물러서 상점 구석에 몸을 기댔다.

“이곳이 감히 어디라고 행패를 부리느냐! 너희들을 사주한 상단이 어딘지 말하면 목숨은 살려 주마.”

손님으로 위장하고 있던 리온 상단의 용병들이 다섯 용병을 에워쌌다.

“어쭈? 이놈들 봐라?”

다섯 용병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어렸다. 자신들을 저지할 누군가가 상점 안에 있다는 정보를 듣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하급 용병이 늘 그렇듯, 다섯 용병 역시 버리는 패가 분명했다. 이들의 역할은 리온 상단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리온 상단의 명성에 흠집을 내면 족했다.

절대적으로 불리했음에도 다섯 용병들은 기어이 검을 뽑았다. 용서를 구걸하기엔 그동안 먹었던 칼밥이 아까웠기 때문이리라.

챙!

챙! 챙!

한 명이 검을 뽑자 다른 용병들도 연쇄적으로 무기를 꺼냈다. 순식간에 살얼음판에 서 있는 것같이 위험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그때였다.

죽은 듯이 누워 있던 종업원이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한 걸음 물러서 있는 나를 제외하곤 어느 누구도 종업원의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종업원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넓적한 냄비를 들어 올린 후 서로 대치하고 있는 용병들 사이로 휙 집어 던졌다.

쨍그랑!

냄비가 바닥을 구르며 날카로운 쇳소리를 냈다.

가는 실로 위태롭게 지탱하고 있던 균형이 삽시간에 깨어졌다.

거의 동시에 검이 움직였다.

휙!

휙!

챙! 챙!

서걱!

“크아악!”

“뒈져랏!”

역시 구석으로 물러나 있길 잘했다. 사방에 흩뿌려진 피로 상점 안이 피 칠갑이 되었다.

전투는 순식간에 끝났다.

애초부터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보무도 당당하게 상점으로 쳐들어온 다섯 용병은 결국 사지가 분리된 채로 실려 나갔다.

물론 다섯 용병을 학살한 리온 상단의 용병들 역시 완전히 무사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단 목숨과 팔다리가 붙어 있으니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 줄 터였다.

“젠장! 리피! 그딴 짓 하지 말라고 했지? 진짜 뒈지고 싶어?”

용병 중 하나가 종업원을 향해 소리쳤다. 그 기세는 금방이라도 검을 휘두를 것처럼 위협적이었다. 살기마저 보이는 것을 보아 그 마음을 간신히 억제하고 있는 듯했다.

“내가 뭘?”

리온 상단의 종업원, 리피가 딴청을 부리며 말했다.

“네놈 때문에 부상자가 나왔잖아. 게다가 파디스는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 저거 보이지? 배때기에 검이 박혀 있는 거.”

용병이 으르렁거렸다.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어? 평소에 실력 좀 쌓아 놓으라고 했지? 이딴 삼류 용병에게 찔려 배때기에 구멍이나 나고. 너희들 앞날도 뻔하다, 뻔해.”

리피가 조롱하자 용병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리피의 지금 모습과 다섯 용병 중 하나에게 멱살이 잡혔을 때의 모습. 그 엄청난 차이에 괴리감을 느꼈다.

둘 중 하나는 연기가 분명했고, 나는 어느 쪽이 연기인지 단숨에 꿰뚫어 봤다.

리피란 이름의 종업원은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여길 만큼, 근본부터 삐뚤어진 뒷골목 출신의 건달이 분명했다.

“재미있군.”

상식을 파괴하는 상술과 무뢰배에 가까운 종업원.

리온 상단은 절대로 평범한 상단이 아니었다.

“너 이 새끼…… 언젠가 후회할 날이 올 것이다.”

“어디서 개가 짖나?”

리피가 멍멍 개 소리를 내며 상점 안쪽으로 들어갔다.

리온 상단의 상점을 나와 여관으로 향했다.

필요한 정보를 대충 그러모았으니 이제는 정보의 가치를 분석하고, 그중에서 필요한 정보를 선별하는 일만 남았다.

그 과정은 꼬박 이틀이 소요됐다.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압박감과 초조함에 괴로웠지만, 때론 돌아가는 것이 지름길이란 옛말을 떠올리며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일의 성사 여부에 따라 복수를 앞당길 수도, 혹은 까마득하게 멀리 미뤄질 수도 있었다.

“버리는 패가 이제 와선 구명줄이 되었군.”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지만, 막상 당하는 입장에선 마냥 쓴웃음만 나왔다.

이틀 후.

여관을 나와 리온 상단의 주인이 살고 있는 저택으로 향했다.

생각해야 할 일이 모두 끝났으니, 이제 남은 건 몸으로 행동하는 것뿐이었다.

칼린의 저택은 웬만한 귀족의 그것보다 크고 웅장했다.

“일개 상인 주제에 이 정도 저택이라니.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군.”

칼린의 저택보다 못한 집에 살고 있는 귀족들이 칼린을 어떻게 생각할지 눈에 훤히 보였다.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잘못하다간 귀족의 손에 죽을 수도 있을 만큼 위험한 허영심이었다.

두꺼운 창살로 만들어진 대문으로 다가가자 문지기가 얼른 다가왔다.

문지기는 뱀처럼 가느다란 눈에 매부리코를 하고 있는 젊은 사내였다.

“무슨 일로 오셨소?”

문지기가 내 차림새를 흘끔 보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장담할 수 있었다.

이 문지기 역시 리온 상단의 종업원 리피와 같은 인종임을.

문지기는 저택으로 찾아오는 손님이 제일 먼저 만나는, 즉 주인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중요한 직책을 맡은 사람이 뒷골목 삼류 건달이라니.

이는 자기 얼굴에 스스로 침을 뱉는 꼴이었다.

“일을 하러 왔는데.”

나는 용병 패를 보여 주며 말했다.

내 용병 패가 최하급 용병 패임을 확인한 문지기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이제는 별 개나 소나 다 모여드네. 저쪽으로 가 보슈.”

문지기는 목젖이 보여라 하품을 하며 안쪽으로 사라졌다. 예의의 예 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내 용병 패가 중급 이상이었으면, 과연 그때도 지금처럼 문지기의 허리가 뻣뻣했을까, 심히 궁금했다.

“이름?”

“칼리온.”

“등급은…… 최하급이군. 죽으러 왔구만. 쯧쯧!”

남을 등쳐 먹을 것처럼 생긴 중년 사내가 건네준 용병 패를 휙 던지며 말했다. 사내의 직업은 집사였다.

“사용할 줄 아는 무기는?”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그중에서 가장 잘 다루는 무기가 있을 것 아냐? 이거 진짜 최하급 중에서도 최하급이군. 저쪽으로 가 봐.”

집사가 짜증 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집사가 가리키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은 저택의 별채였다.

별채에는 수십 명의 용병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들은 시답잖은 농담을 하며 낄낄거렸다. 긴장감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들이 지원한 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모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나같이 실력이 아니라 운을 믿고 찾아온 자들이었다. 또한 전투가 시작되면 제일 먼저 화살받이로 죽어 나갈 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이런 곳인지 몰랐다고 후회하며 투정을 부릴 자들이었다.

나는 불나방들을 지나쳐 별채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많이 먹고, 푹 쉬며 체력을 비축하는 것이었다.

달빛마저 구름 속으로 숨어 버린 밤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잠든 고요의 시간에 천여 명의 용병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사내의 낮은 목소리가 적막을 뚫고 울려 퍼졌다.

“……그 하나가 뭐냐 하면, 바로 나를 상인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상인이라고? 멍청한 놈들. 크크크!”

한참을 웃은 후 사내가 다시 말을 이었다.

“잘 들어라. 나는 상인이 아니다.”

“입지전적인 상인으로 평가받으시면서 상인이 아니라 하시면 대체 칼린 님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용병 중 하나가 넌지시 물었다.

“나? 나는 도박꾼이다. 그것도 패가망신하여 내 몸을 팔아야 했을 정도로 형편없는 솜씨였지.”

“낄낄! 칼린 님이 도박꾼이라니!”

“어떻게 패가망신할 정도로 실력이 없는 도박꾼이 리온 상단처럼 거대한 상단을 만들 수 있단 말입니까? 농담이시지요? 흐흐흐!”

용병들이 숨죽인 채 웃었다.

“남의 돈으로 하는 도박이었으니까. 내 돈으로 하는 것만큼 스릴은 없었지만, 대신 내 돈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진정한 도박을 할 수 있었지. 제법 재미있었어.”

“근데 왜 그런 말씀을 지금 하시는 겁니까?”

사내가 씨익 웃으며 돈주머니를 꺼냈다.

“기회를 주는 거다.”

짤랑!

제법 묵직해 보이는 주머니에서 경쾌한 쇳소리가 울렸다.

“나는 타협하는 방법을 모른다. 배운 적이 없거든. 인생을 살면서 내가 배운 건, 덤비는 놈이 있으면 혼쭐내 줘야 한다는 것이었지. 고로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마이엘의 모든 상단과 전쟁이라도 벌이시겠다는 뜻입니까?”

“그래.”

“…….”

사내의 단호한 의지에 용병들이 입을 다물었다.

리온 상단이 제아무리 잘나간다 할지라도 그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숱한 싸움을 거쳐 현재까지 살아남은 기존 상단들의 저력은 결코 무시할 만한 것이 못 되었다.

짤랑!

짤랑!

사내가 돈주머니를 흔들며 말했다.

“만약 내가 패한다면 보수는 없다. 주고 싶어도 리온 상단이 망할 테니 줄 수가 없겠지. 대신 승리한다면…… 지불하기로 약속했던 보수의 100배를 주겠다.”

“흡!”

용병들이 숨을 들이켰다.

전쟁에 참전한 용병이 받는 보수는 보통 한 달 단위로 계산된다. 그리고 그 금액은 최하급 용병이라 할지라도, 평범한 농민 가족의 1년 생활비에 버금갔다.

물론 낮은 등급의 용병은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대부분 죽어 나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보수를 받는 용병은 드물지만 말이다.

어쨌든 사내가 제시한 보수는 그것의 100배였다. 용병들로선 평생을 모아도 결코 만져 볼 수 없는 거금이 확실했다.

용병이란 돈에 목숨을 던지는 존재. 흔들리지 않을 리 없었다.

말은 하고 있지 않지만 용병들의 얼굴은, 위험한 일이 분명하다는 위기의식과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존 본능과 그것을 능가하는 돈에 대한 탐욕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떠날 사람은 지금 떠나라.”

천여 명 중 불과 10여 명만이 황급히 일어서 자리를 이탈했다. 나머지 용병들은 욕망으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돈주머니를 든 사내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지금 이 순간, 돈주머니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용병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생각은 아마도 하나, 이번 한탕만 뛰고 은퇴하겠다는 욕심이었다.

“나는 도박꾼이다. 도박꾼은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지 않는다. 다만 확률이 낮은 일에 도전할 뿐이지. 용병들이여,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은 오직 두 가지뿐이다. 이 두 가지만 열심히 하면 누구나 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승리하고, 살아남는 것. 간단하지?”

사내의 요구 조건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용병들은 특유의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자신들을 세뇌하기 시작했다. 승리하고, 살아남는 것보다 쉬운 일은 세상에 없다고.

주변의 공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때가 되었음을 깨달은 듯 사내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계약서를 쓰지. 아 참! 그리고…….”

사내는 문득 생각난 게 있는 것처럼 과장된 몸짓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옛날에는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제물을 바쳤다고 하더군. 우리를 배신한 10여 명의 목이면 아마 전쟁의 신도 기뻐하지 않을까?”

눈치 빠른 용병들이 서둘러 몸을 움직였다. 수십 명의 용병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로써 돈보다 목숨을 소중히 여긴 10여 명의 용병들은, 정작 그 대가로 아침 해를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제야 사내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용병대장들과 계약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저놈이 정말 그놈이란 말인가.

능청스럽고 허풍선이였던 그놈이 진짜 이놈이란 말인가.

돈을 미끼로 용병들을 지옥으로 유혹하고 있는 잔인한 악마가 진실로 그란 말인가.

“가자!”

조용한 진격 명령과 함께 용병들이 마이엘에서 두 번째로 큰 상단으로 몸을 날렸다.

와아!

절규와 같은 함성과 함께 용병들이 저택의 담을 넘었다.

땡! 땡! 땡!

알람 마법이 작동하면서 시끄러운 종소리가 밤하늘을 갈랐다.

“뭐, 뭐야?”

“습격이다!”

“모두 일어나! 습격이다!”

저택을 지키고 있던 경비병과 용병들이 허겁지겁 무장을 한 채 튀어나왔다.

그렇게 각오를 새기고 뛰어든 자와 엉겁결에 뒤통수를 맞은 자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챙! 챙!

파팟팟!

서걱!

“크악!”

“대체 너희들은 웬 놈들, 커헉!”

“알 것 없다! 궁금하면 지옥에 가서 물어보든가!”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저택을 지키는 자들이 자신들의 저력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싸움은 죽고 죽이는 아비규환이 되었다.

“살려 줘!”

서걱!

푸슛!

솟구치는 핏줄기가 달빛을 붉게 물들였다. 죽음을 부르는 단말마의 울부짖음이 공기를 찢어발겼다. 신체의 일부분이 주인을 찾아 바닥을 굴러다녔다.

싸움은 달이 하늘 중앙을 지날 즈음 끝났다.

완전히 뒤통수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절반에 가까운 용병이 목숨을 잃었다. 물론 슬퍼하는 용병은 아무도 없었다.

끼이익!

굳게 닫혀 있던 저택의 대문이 열렸다.

피로 물든 길을 밟으며 리온 상단의 주인이 저택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지옥이 되어 버린 저택을 휙 둘러본 후 하늘을 쳐다봤다.

“……오늘따라 밤이 길군.”

리온 상단의 주인은 용병들을 모아 다음에 해야 할 일을 지시했다. 그는 밤이 지나기 전 한군데를 더 습격하길 원했고, 피에 취한 악귀들은 그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드드드드!

수백 명의 용병이 달리기 시작하자 지축이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나는 용병들의 뒤를 쫓으며 생각에 잠겼다.

3년 전.

열 종류의 무기에 통달하였다 하여 웨펀 마스터라 불린 투사가 있었다. 그는 한쪽 팔이 잘린 채 투기장에서 쫓겨났으며 그 후로 연락이 두절되었다.

리온 상단의 주인이자, 현재 칼린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외팔이 사내.

웨펀 마스터 웰런.

“그때의 약속을…… 너는 기억하고 있느냐?”

나는 선두에 서서 용병들을 이끌고 있는 웰런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 * *

자타르 왕국의 수도 마이엘이 발칵 뒤집혔다.

마이엘 최고의 상단이었다가 리온 상단으로 인해 이인자로 밀린 라이돈 상단과 또 다른 중소 상단 하나가 하루아침에 괴멸된 것이다.

파장은 제법 컸다.

리온 상단의 습격은 상단 사이의 앙금을 폭발시키는 기폭제가 되었고, 그것을 시작으로 상권을 둘러싼 전쟁이 본격적으로 발발하였다.

본래 왕국의 수도에서는 그 어떤 군사적 행동도 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수도는 왕이 사는 곳이었고, 때문에 왕의 정원에서 군사를 일으키는 것은 반란으로 몰려 삼족이 죽어도 할 말이 없는 위험천만한 짓이었다.

즉, 리온 상단과 리온 상단의 도발에 넘어간 다른 상단은 반란죄로 잡혀가 교수형을 당해도 될 만큼 중죄를 저지른 것이었다.

하지만 왕궁에서는 상단을 제압하기 위한 기사와 병사를 내보내지 않았다.

미천한 장사치들의 세력 다툼에 참견하면 왕의 위엄이 손상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그것이 아닐 것이다. 굳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막대한 양의 뇌물이 왕궁으로 흘러들어 갔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돈으로 왕이 무관심을 사 버린 상단들이 마이엘의 낮과 밤을 피로 물들였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은 예상외로 길게 이어졌다.

기존 상단들의 저력은 생각보다 강했으며, 그들을 상대로 홀로 싸워야 하는 리온 상단의 자금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기존 상단들이 심혈을 기울여 키워 놓은 암중의 무력 집단이 등장했고, 리온 상단은 수도 내의 모든 용병을 돈으로 끌어들였다.

산 넘어 불구경하듯 상인들의 이전투구를 즐기고 있던 귀족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수천 명 단위의 전투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난 후였다.

위기감을 느낀 귀족들이 자신들의 저택을 지키기 위해 돈을 풀었다.

수요는 많고, 공급이 부족하니 자연스럽게 보수가 올라갔다. 덕분에 살판난 것은 용병들이었다. 마이엘 근처 도시의 용병들이 소문을 듣고 수도로 모여들었다.

폭풍과도 같은 한 달이 흘렀다.

마이엘의 주민들은 밤낮 할 것 없이 계속되는 비명 소리에 겁먹어 집밖으로 나오질 못했다.

텅 비어 버린 거리에는 황량한 바람만이 지나갔다.

결국 참다못한 왕은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고 장사치들의 전쟁에 끼어들고 말았다. 이로써 진짜로 왕의 위신이 손상을 입게 되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하루빨리 피의 전쟁이 끝나고 수도가 안정되는 것. 이것이 모든 이들의 바람이었다.

왕이 선택한 것은 기사들을 이용한 강압적인 진압이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전쟁의 종결이었지, 상인들의 몰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그에게 돈을 바치는 고마운 존재였다.

왕은 중재를 선택했다.

“양쪽 진영의 가장 강한 자가 서로의 진영을 대표해 대리전을 치르게 하라. 승리한 자의 진영이 모든 것을 얻게 되리라. 원한다면 목숨까지도.”

수십 년에 걸쳐 자신의 세력을 키워 온 자와 불과 몇 년 사이에 세력이 불어난 자의 차이가 여기서 벌어졌다. 그 차이는 결코 돈으로 메울 수 없었다. 바로 시간이었기에.

기존 상단의 주인들은 왕의 제안, 아니 명령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그들의 수하들은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태어날 때부터 상단에서 자라 온 자들이었기에 상단을 떠나 도망친다는 생각은 어느 누구도 하지 못했다. 단지 대리전에 나갈 강자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될 뿐이었다.

반면 리온 상단의 용병 대다수는 왕의 칙명이 떨어진 그날 밤 야반도주를 했다. 돈이 아무리 좋아도 타인의 싸움에 자신의 목숨을 맡길 정도는 아니었다.

도망친 것은 용병들뿐만이 아니었다. 애초에 리온 상단의 가솔과 종업원은 뒷골목 건달패였고, 그들에게 의리란 먼지보다 못한 것이었다. 그들은 급료 대신이라며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죄다 뜯어가 버렸다.

장식용 촛대, 그림, 접시, 양탄자는 물론, 문짝과 불쏘시개까지 싹쓸이해 갔다.

리온 상단의 저택은 순식간에 텅텅 비어 버렸다. 저택은 폐허로 변했고, 남은 이는 단둘뿐이었다.

“크크크! 이것이 저력인가.”

칼린, 아니 웰런은 의자에 몸을 파묻은 채 낮은 목소리로 낄낄거리고 있었다.

저벅.

저벅.

일부러 발소리를 숨기지 않은 채 다가갔다.

“아직도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니. 누구지? 내 목이라도 베러 왔나? 하긴 내 목이라면 제법 비쌀 테지. 크크크!”

“필요 없다. 지금 네놈의 목을 베면 왕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과 다름없지. 능멸 죄로 현상수배범이 되고 싶지는 않거든.”

“네놈……인가…….”

“칼린 님이라고 불러 주길 바라는 건가?”

“어차피 진짜 이름도 아니었으니 미련은 없다. 아니, 솔직히 조금은 있군.”

“도망치는 게 어때?”

나는 웰런의 뒤통수를 향해 넌지시 물었다.

“그럴 수는 없지.”

체념했거나, 아니면 최소한 망설일 줄 알았건만 웰런은 의외로 단호했다.

“어째서?”

“약속이 있다. 이곳에서 만나기로 한 분이 있지. 그분이 올 때까지 나는 이곳에서 떠날 수 없다.”

이런 젠장.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솟구쳤다.

“밑바닥을 기며 벌레처럼 살아야 할 인생이 왕이 나서야 할 정도로 거물이 되었으니 후회는 없다. 내 삶에는 후회가 없지만 다만 한 가지, 빚을 갚지 못하고 죽는 것은 좀 찝찝하군.”

냉정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잔인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밑바닥을 전전했던 자가 많은 돈을 벌고, 또 그것을 지키기 위해선 그런 방법밖에 없었을 것이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선.

“도박꾼이라며? 불가능한 일은 하지 않는다며?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가만히 기다리는 게 무슨 도박꾼이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말했을 텐데. 난 패가망신한 도박꾼이라고. 다시 말해, 도박 실력이 형편없다는 뜻이지. 하하하!”

웰런이 호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소리가 무척 거슬렸고, 또한 유쾌했다.

“기억해 둬. 죽으면 아무것도 소용없다는 것을. 그리고 내일 있을 대리전은…… 내가 나가지.”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

“잠깐 기다려! 근데 네놈은 대체 누구냐!”

웰런이 황급히 뒤를 돌아보며 외쳤지만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다음 날.

마이엘의 광장은 인산인해였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모여든 것처럼 광장이 북적거렸다. 그들의 표정은 마치 축제를 기다리는 어린아이 같았다.

자신들을 한 달 동안이나 공포에 떨게 했던 전쟁의 승패가 결정 나는 시간이었다. 그것도 각 진영을 대표하는 강자의 1 대 1 결투를 통해서 말이다. 심지어 승자 진영이 패자 진영의 생살여탈권까지 얻을 수 있는 진검승부였다.

이런 화려한 이벤트에 사람들이 달아오르지 않을 리 없었다.

결투가 이루어질 무대는 광장 한가운데 마련되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왕궁 마법사들이 무대 주변에 보호 마법을 겹겹이 둘러치고 있었다.

나는 높은 탑 위에서 광장을 내려다봤다.

보호 마법으로 뒤덮인 무대. 무대를 에워싼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내뿜는 흥분과 광기.

“이건 마치…….”

낯익은 광경이었다.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광장과 광장을 메운 사람들의 모습은 과거 투기장의 그것과 똑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 가지, 분위기를 더 뜨겁게 달궈 줄 사회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와아아!

거대한 함성과 함께 사람들이 좌우로 갈라졌다.

그 사이를 탄탄한 체구의 사내가 천천히 걸어왔다. 그는 대머리였는데, 머리가 햇볕을 반사하여 보름달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다.

무대 위로 올라간 대머리가 큰소리로 외쳤다.

“어디 숨어 있느냐, 이 쥐새끼야! 썩 튀어나오지 못하겠느냐!”

화악!

사나운 기세가 왕궁 마법사의 방어 마법을 단번에 꿰뚫었다.

폭풍과도 같은 바람이 광장에 휘몰아쳤다. 천지를 들썩이던 함성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무대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대머리의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졸도했다.

“강하군.”

대머리의 투기가 멀리 떨어져 있는 나에게까지 송곳처럼 파고들었다.

대리전에 나갈 사람을 찾기 위해 적들이 얼마나 고심하고, 노력했을지 눈에 선했다.

그만큼 마음에 드는 상대였다.

“헉! 버서커다!”

“광전사? 진짜 광전사야?”

“지, 진짜다! 광전사 투드란이다!”

대머리의 이름이 투드란이었나 보다. 그리고 투드란이란 사내는 제법 유명한 대머리였나 보다.

우와아아!

와아!

투드란의 기세에 눌려 숨을 죽이고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질렀다.

“닥쳐! 광대 짓 하려고 온 줄 알아? 주둥이를 찢어 버리기 전에 닥치지 못해!”

투드란이 발광을 할수록 사람들의 열광은 더욱 커졌다. 결국 먼저 포기한 쪽은 투드란이었다.

“썅! 리온 상단의 쥐새끼! 얼른 튀어나오지 못해?”

그때였다.

투드란이 등장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물결이 좌우로 갈라졌다.

그 사이를 웰런이 덤덤히 걸었다.

함성이 일시에 높아졌다 이내 서서히 잦아들었다.

저벅.

저벅.

침묵과 고요 속에서 웰런의 발소리만 울렸다.

“어째서 혼자 온 거지?”

“설마 직접 싸우려고 하는 건가?”

“외팔이 주제에 무슨. 듣자니 모두가 도망쳤다고 하던데 그래서 혼자 온 게 아닐까?”

“그래도 한때는 상인의 신으로 추앙받던 사람인데 안됐네.”

“상인의 신은 무슨! 운이 좋았던 것뿐이야.”

무대로 향하고 있는 웰런을 보며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동정, 비꼼, 원망, 조롱을 들으면서도 웰런은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진실은 죽음을 마주 보았을 때 드러난다. 웰런의 당당함은 결코 연기가 아니었다. 아니, 연기여도 상관없다. 죽음을 각오한 연기는 그 자체로 진실과 다름없기에.

“정말 많이 변했구나.”

새삼 감탄이 나왔다.

나는 웰런에 대한 평가를 크게 수정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온갖 편견과 과거의 이미지를 뜯어고쳤다.

웰런은 결코 버리는 패 따위가 아니었다.

“네놈이 직접 나와 싸우겠다는 것이냐? 건방진 놈! 사지를 부러뜨려 벌레처럼 기게 해 주지! 아니, 외팔이니 사지가 아니라 삼지인가? 크하하하!”

투드란이 광소했다.

사람들이 다시 함성을 질렀고, 승자가 될 것이 확실한 대머리의 조롱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든 모욕을 웰런은 담담히 받아들였다.

나는, 더 이상 그를, 혼자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슈욱!

다크섀도우를 꺼냈다.

“가자. 약속한 것은 잊지 않았겠지?”

“물론이다. 주인이나 약속을 잊지 마라.”

“자아, 그럼 시작해 볼까, 파트너?”

팟!

휘익!

나는 탑 위에서 하늘을 향해 점프했다. 마치 새처럼 하늘을 활공하다 중력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 순간.

“리버스 그래비티Reverse Gravity!”

쿠차차가 중력 역전 마법을 시전했다.

마나의 파동이 나를 훑고 지나갔다. 그러자 떨어지는 속도가 급감하기 시작했다.

쿠차차의 마법 운용은 실로 정교해, 나는 무대 위에 사뿐히 내려앉을 수 있었다.

“웬 놈이냐!”

투드란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나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사람들이 깜짝 놀란 얼굴로 숨을 삼켰다.

그리고 웰런 역시 경악을 숨기지 못했다.

“혀, 형님? 어, 어떻게 여기에…….”

웰런은 다리가 풀린 듯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을 더듬었다.

“대리전은 내가 나간다고 했을 텐데.”

나는 웰런을 향해 씨익 웃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목숨을 걸고,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이제 그것에 대해 보답을 해 줄 시간이 왔다.

깡!

나는 양 주먹을 힘차게 부딪쳤다. 그러곤 투드란을 향해 거만한 자세로 손짓했다. 마치 동네 강아지를 부르듯.

“한번 붙어 보자, 이 대머리야.”

와아아!

나의 도발에 사람들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열기가 달아오르다 못해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역시 이곳은 그곳과 닮았다.

사람들의 광기에 피부가 찌릿찌릿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 천천히 내뱉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흥분.

투드란이 씩씩거리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안됐지만, 너는 이미 졌어. 이곳은 나의 성역이나 마찬가지니까.”

“무슨 개소리냐? 내가 누구인지나 알고 하는 소리냐? 나는 위대한 자타르 왕국 왕실 기사단의 부단장인 투드란 드 호엔레른이다.”

친숙하면서도 증오스러운 단어가 귀를 잡아챘다.

“호엔레른?”

“응? 근데 네놈…… 낯이 익은데?”

투드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의 말을 들으니 나 역시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원래 돌은 던진 놈보다 돌에 맞은 놈이 훨씬 더 잘 기억하는 법이다.

투드란이란 이름의 대머리…….

휴멜에게 잡혀 백작가 연무장의 말뚝으로 끌려갈 때, 검집을 휘둘러 나의 정강이뼈를 부러뜨린 바로 그 대머리 기사가 분명했다.

“대머리, 네놈이 죽을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어디 한번 해 보시지? 크크크!”

투드란이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스르릉!

화아악!

투드란의 검이 하얀빛을 뿜었다. 검에서 솟아오른 빛의 기둥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크크크! 오러 블레이드다. 어때? 간담이 서늘하지?”

대머리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나는 어제 병기점에서 구입한 싸구려 철검을 뽑았다. 그러곤 마력을 집중시켰다.

화아악!

싸구려 철검이 순식간에 오러 블레이드가 되었다.

“네놈도 간담이 서늘하지?”

“크윽……. 오러 블레이드라니! 네놈 정도의 실력자를 내가 못 알아볼 리 없는데. 대체 네놈은 누구냐?”

처음으로 대머리의 얼굴에 긴장이 떠올랐다. 그는 신중하게 나를 살폈다.

하지만 그는 결코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때의 나는 벌레보다 못한 존재였으니까.

나는 대머리를 무시한 채 아직도 멍하니 주저앉아 있는 웰런에게 말했다.

“3년 만이군. 몰라볼 정도로 변했어. 물어볼 것이 제법 많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웰런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괜찮습니다. 시간은 많으니까요. 그렇지요, 형님?”

나는 대답 대신 대머리를 향해 뛰어갔다. 조금이라도 빨리 웰런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좀이 쑤실 지경이었다.

“하앗!”

쾅!

오러 블레이드와 오러 블레이드가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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