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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다 (2/45)

부활하다

눈을 떴다.

지독한 악몽이라도 꾼 것처럼 정신이 몽롱했다.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세상이 뿌옇게 보였다.

눈을 깜박이자 조금씩 안개가 걷혔다. 초점이 흐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넓은 공터였다. 공터 주변을 나무들이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었다. 공터 한가운데에는 반쯤 부서진 돌기둥과 제단처럼 보이는 넓적한 바위가 있었다.

건물의 형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폐허였다. 폐허는 온통 잡초투성이였다.

“여기는…….”

낯선 장소, 낯선 풍경이었다.

낯선 것은 장소만이 아니었다.

바람이 머리칼을 헤집었다. 싱그러운 풀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엉덩이에 느껴지는 딱딱한 흙바닥의 감촉. 이름 모를 산새의 울음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모든 감각이 낯설고 신기했다.

아아…….

그렇구나.

돌아온 것이구나.

뭉클.

벅찬 감동으로 가슴이 요동쳤다.

나는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처럼 필사적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땅이다! 나무다! 산토끼다! 하늘이다! 태양이다!

그리고…….

“빛이다, 빛이야! 진짜 빛이다! 하하하…… 하하하!”

눈물과 함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바닥을 뒹굴며 울다가 웃다가, 다시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했다.

온몸의 기력이 다 빠져나가 더 이상 웃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웃음을 멈출 수 있었다. 앉아 있을 기력도 남지 않았기에 아예 바닥에 드러누웠다. 물먹은 솜처럼 몸뚱이가 축 늘어져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없었다.

어스름한 땅거미가 폐허가 된 건물을 좀먹고 있었다. 붉게 물든 하늘 위로 구름 몇 조각이 흘러갔다.

아름다웠다. 모든 것이 아름다워 참을 수가 없었다. 다시 슬금슬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자아, 이제부터 어쩐다…….”

시원하고 청량한 바람이 불었다. 산새 소리가 멋진 화음을 만들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가지가 파도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할 일이 생각났다.

스르륵.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한밤중이었다.

시커먼 하늘에 무수히 많은 보석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구름에 반쯤 묻혀 있는 보름달이 은은한 빛으로 세상을 밝혔다.

그것이 또 아름다워 한참이나 밤하늘을 쳐다봤다.

우드득.

“크윽…….”

몸을 일으키자 온몸의 뼈가 삐거덕거렸다. 한기가 올라오는 땅 위에서 알몸으로 잠을 잔 까닭이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피곤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춥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배가 고팠다.

하지만 이 모든 감각을 초월하는 문제가 있었다.

나는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채 머릿속을 헤집었다.

“내 이름은 칼리온……. 그리고…… 그리고…….”

기억의 바다에서 한참이나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끝내 나에 관한 것을 기억해 낼 수 없었다.

어렴풋이 스쳐 지나가는 기억들은 있었다. 그러나 완벽하게 하나의 추억으로 이어지는 것은 없었다. 모든 기억이 희미했으며, 특히 ‘나’에 관련된 것은 너무하다 싶을 만큼 깨끗이 삭제되어 있었다.

확실하게 기억나는 것은 오직 하나뿐.

이름이 칼리온이라는 것.

혹시나 하는 마음에 머리 이곳저곳을 만졌다. 상처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뒤통수 쪽에 혹이 있었다. 하지만 기억상실의 원인이 되기에는 변변찮을 만큼 작은 혹이었다.

“……기억상실인가.”

그때였다.

번쩍!

한 장의 그림이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치며 지나갔다.

시커먼 연기. 수천 마리의 까마귀.

시체. 불타 버린 시체. 목이 잘린 시체. 으깨진 시체.

그 시체 한가운데 서 있는 괴물.

썩어 문드러진 해골의 모습을 하고 있는 반인반골半人半骨의 악마.

적색의 흉광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악마의 눈동자.

악마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두근!

가슴 깊은 곳에서 거대한 감정의 덩어리가 솟구쳤다.

“컥…… 컥!”

가슴이 터질 것처럼 답답하고 숨이 턱턱 막혔다. 불처럼 뜨거운 감정이 머릿속까지 하얗게 불태웠다.

나는 그 악마가 누구인지, 왜 기억 속에 남아 있는지, 끝내 기억해 내지 못했다. 악마가 뿜어내고 있는 분노와 증오, 파멸과 절망의 기운에 부들부들 몸을 떨 뿐이었다.

한참 만에 몸이 진정되었다.

“헉, 헉…….”

나는 숨을 몰아쉬며 기억상실의 이유를 납득했다.

기억 속의 악마가 나를 노려보는 눈빛과 내가 그 악마에게 느끼는 감정은 놀랄 만큼 일치했다. 바로 압도적인 분노와 증오였다.

악마는 나를 죽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나 역시 악마를 멸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을 것이다. 정말로 ‘뭐든지’ 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악마에 대한 나의 감정은 파괴적이었다.

기억은, 아마도, 그 ‘뭐든지’의 대가로 잃은 것이리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모든 것을 잃고, 심지어 내가 누구인지도 잊었지만 나는 만족할 수 있었다.

이 정도의 분노와 증오라면 생명조차 바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물며 겨우 기억 아닌가.

나는 기억상실에 대한 충격을 깔끔하게 털어 버렸다.

기억나는 것이 없으니 미련도 없었다. 기억상실의 이유를 알고 있으니 후회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세상을 다시 살아가는 것.

“그 전에…….”

나는 내 몸을 살펴보았다. 완벽하게 알몸이었다.

내가 잃은 것은 나에 대한 기억이었지, 세상의 상식이 아니었다. 때문에 보는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발가벗은 채로 있는 것이 묘하게 창피했다.

바람이 불자 닭살이 돋았다. 산속이라 그런지 바람이 더욱더 차게 느껴졌다.

주변에 있는 것이라곤 온통 나무와 바위뿐이었다.

“하는 수 없지.”

나는 널찍한 나뭇잎 두 장을 뜯어 앞과 뒤를 가렸다.

“이 정도 크기면 중요한 부위는 다 가릴 수 있겠군.”

나뭇잎 두 장을 잘 챙긴 후 나는 폐허를 떠났다.

* * *

어둠으로 물든 밤의 산길.

나는 캄캄한 숲 속을 쳐다본 뒤 다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시커먼 구름이 달빛을 가로막고 있었다.

다시 숲 속을 쳐다봤다.

나무 밑동에 숨어 있는 다람쥐의 모습이 보였다. 심지어 귀 끝에 있는 하얀 반점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흠…….”

빛이 없는 곳에서 사물을 분간하다니.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시력이었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것은 시력뿐만이 아니었다. 몸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날랬다. 고무공처럼 몸에 탄력이 넘쳤다.

나는 시험 삼아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볍게 뛰는 수준이었는데 어느덧 전력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주변의 풍경이 빠른 속도로 바뀌었다. 점점 보폭을 넓게 벌리자 종국에 가서는 하늘을 나는 것처럼 체공 시간이 길어졌다.

바위와 바위를 풀쩍풀쩍 뛰어다니는 기쁨에 쉼 없이 산을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오솔길을 벗어나 야생동물이나 지나다니는 숲길을 뛰고 있었다.

“헉, 헉…… 여긴 어디지?”

길을 잃고 말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폈다.

동쪽 하늘에서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빛의 기세에 밀려 어둠의 장막이 서서히 걷혔다.

시야가 환해지면서 빽빽이 솟은 나무 사이로 수려하고 장중한 산의 경치가 보였다. 굽이굽이 물결치듯 이어지는 산맥의 형상은 마치 뱀이 꿈틀거리는 듯했고, 세월에 의해 조각된 거대한 바위들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신비로웠다.

잠에서 깨어난 매미가 시끄럽게 울었다. 숨을 들이마시자 촉촉한 공기가 가슴을 적셨다.

나는 평평한 바위에 앉아 산의 풍경을 감상했다.

바위는 아침 햇살에 알맞게 달궈져 있었다. 엉덩이가 따뜻해지자 갑자기 몸이 나른해졌다.

“음?”

눈에 힘을 줘 뚫어지게 쳐다보니 멀리 산 중턱 깊은 골짜기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의 형상이 보였다. 우거진 나무숲으로 가려져 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어려울 만큼 은밀한 곳이었다.

“역시 비정상적일 만큼 눈이 좋아. 보통 인간이라면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거리인데 이렇게 선명하게 보이다니. 그나저나 이 산속에 웬 마을이지?”

휴식을 취하면서 마을에 가 볼지 아니면 그냥 지나칠지를 고민했다.

“가서 옷이나 하나 빌려 오자.”

눈으로 가늠한 것과는 달리 마을까지의 거리는 상당히 멀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속도로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한낮이 돼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새삼 나의 시력이 얼마나 좋은지 실감했다.

계곡 위쪽으로 올라가 마을 안쪽을 살폈다.

마을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만큼 작고 아담한 곳이었다.

집은 10여 채뿐이었고, 모두 통나무로 지어져 있었다. 마을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동물 가죽으로 된 옷을 입고 있었다. 그것도 곰이나 호랑이 같은 덩치 큰 동물의 가죽이 아니라 작은 동물의 가죽을 겹겹이 이어 붙여 만든 누더기 같은 형태의 가죽옷이었다.

“가죽옷이라…….”

마을의 유래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나는 조심스레 마을로 다가갔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 밖에 위치한 산비탈에서 개간한 땅을 열심히 일구고 있었다. 덕분에 마을로 진입하는 데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마을 안을 한차례 둘러본 뒤 나는 비어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일단 집 안을 뒤져 먹을 것을 찾았다.

나무로 만든 항아리 모양의 그릇에 각종 식용 풀이 가득 차 있었다. 그 밖의 먹을거리 역시 모두 산에서 구할 수 있는 과일과 풀뿌리 종류였다.

달달한 향이 나는 과일을 집어 한 입 베어 물었다. 달콤한 과즙이 혀를 자극했다. 너무나도 배가 고팠던 탓에 순식간에 예닐곱 개의 과일을 모두 먹어 치웠다.

“하나만 먹을 생각이었는데…….”

나는 씨앗만 남은 과일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예닐곱 개나 먹었지만 허기는 반도 채워지지 않았다.

나무 의자 위에 가죽옷이 걸려 있었다. 가죽옷을 들어 올려 크기를 가늠해 보았다. 몸통과 사타구니만 간신히 가릴 만큼 효율적으로 가죽을 사용한 옷이었다.

세상과 교류가 없으니 큰 동물을 잡을 수 있는 쇠붙이 무기를 구할 수 없었으리라. 그래서 이렇게 덫으로 잡을 수 있는 작은 동물의 가죽을 이어 붙여 만든 것이리라.

이 누더기 같은 옷 한 벌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까.

먹을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마을은 모든 면에서 결코 풍족한 마을이 아니었다.

햇빛도 잘 비치지 않는 계곡 안쪽에 모여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영지에서 도망친 농노들인가.”

농노는 영주의 소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또한 평민과 다르게 영지에 얽매여 있어 이전의 자유가 없었다.

하지만 농노도 인간인 이상 자유로운 삶을 꿈꿀 수밖에 없었고, 특히 부역과 세금을 과도하게 착취하는 영주의 농노일수록 그 바람은 더욱 컸다.

야반도주를 한 다음 깊은 산속에 숨어 버린 농노들의 이야기가 언뜻 떠올랐다. 결말이 전원 처형으로 끝나는 비극적인 이야기였다.

“어쩌지…….”

옷을 훔치기 위해 들어왔지만 기분이 찝찝해 도저히 그냥 가져갈 수가 없었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게 하면 되겠군.”

나는 가죽옷을 들고 마을을 빠져나왔다.

마을을 벗어난 후 기억을 더듬으며 산을 올랐다. 산을 오르면서 납작하고 동그란 모양의 돌멩이를 주워 모았다.

조금 헤맨 끝에 목표로 했던 연못에 도착할 수 있었다. 커다란 아름드리나무가 연못을 둘러싸고 있었다.

잎사귀 사이사이로 빛 화살들이 관통했다. 햇빛이 닿은 수면이 은빛 빙어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잠시 숨을 돌린 후 가죽옷을 입었다. 가죽옷은 목 부분이 축 늘어질 만큼 헐렁했다.

“작아 보였는데 생각보다 크군.”

연못가로 다가가 수면에 모습을 비췄다. 가죽옷을 입은 소년이 수면 위에 떠올랐다. 소년의 모습이 물결을 따라 잔잔하게 흔들렸다.

나이는 대략 열일곱 살쯤 됐을까.

순진하고 앳돼 보이는 인상의 소년이었다.

손으로 얼굴 이곳저곳을 만져 봤다. 수면 속 소년이 똑같이 따라 했다. 수면에 비친 팔목이 무척이나 가늘었다.

“이게…… 나?”

나에 관한 기억은 모두 잃었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수면에 비친 소년의 얼굴이 나의 본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잃은 것은…… 기억뿐만이 아니었어.”

기분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잃었던 기억을 되찾을 수도 있을 거라 내심 생각했었다.

헛된 희망이 상처가 되어 심장을 죄어 왔다.

기억을 잃었으니 아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고, 외모를 잃었으니 반대로 아는 사람이 나를 찾아올 수도 없었다. 이로써 완벽하게 혼자가 되었다.

수면에 비친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물속으로 얼굴을 집어넣었다.

풍덩!

숨이 가빠 올 때까지 물을 마셨다.

“푸하!”

숨을 토해 내며 고개를 쳐들었다.

머리를 담갔던 곳을 중심으로 동심원이 멀리 퍼져 나갔다. 수면에 아른거리던 얼굴은 이미 지워진 후였다.

차가운 물로 머리와 가슴을 식히고 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어떻게든 되겠지. 어차피 생각할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하자. 천천히…….”

나는 마음을 다잡은 다음 해야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연못에서 멀리 떨어졌다.

그러자 나무 뒤에 숨어 있던 토끼 한 마리가 내 눈치를 살피며 연못가로 다가왔다.

나는 딴 곳을 쳐다보는 척하며 토끼의 행동을 관찰했다.

쭈뼛쭈뼛 연못가로 다가온 토끼가 물을 마시려는 순간.

미리 주워 놨던 돌멩이를 던졌다.

쉐에엑!

퍼억!

돌멩이는 토끼의 몸통에 정통으로 꽂혔다. 토끼가 공중으로 펄쩍 뛰어올랐다.

나는 한 번 더 돌멩이를 던져 토끼의 머리를 맞혔다.

가까이 가 보니 토끼의 머리가 박살 나 있었다.

“음…….”

마땅한 사냥 도구가 없어 돌팔매질을 선택했지만 이 정도 위력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부상을 입힌 후 뛰어가서 잡는 게 원래 계획이었으니까.

돌멩이의 날아가는 속도와 머리뼈를 한 방에 부숴 버리는 파괴력.

평범한 인간의 완력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 번 더 해 볼까?”

주변을 둘러보자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여우 한 마리가 서성거리고 있었다. 여우는 자신이 사냥감으로 전락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다시 말해 나는 야생동물의 인식 범위 너머에서 사냥을 시도하고 있었다.

돌멩이를 든 손을 뒤로 힘껏 당겼다.

거리와 바람, 각도를 계산한 후 호흡을 멈췄다. 그러곤 허리를 앞으로 튕기면서 그대로 팔을 휘둘렀다.

돌멩이는 활시위를 떠난 활처럼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던진 나조차 깜짝 놀랄 만큼 가공할 속도였다.

쉐에엑!

퍼억!

파공성을 내며 날아간 돌멩이가 하품하던 여우의 머리에 정통으로 꽂혔다.

나무 그릇 깨지는 소리와 함께 여우가 풀썩 쓰러졌다. 머리의 절반이 깊이 함몰되어 있었다. 가서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즉사였다.

나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며 돌멩이를 던진 손을 쳐다봤다. 과거를 삭제당한 대가로 얻은 힘이 분명했다. 이 힘으로 악마와 싸움을 벌였을 것이다.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했다.

물론 힘이 없는 것보다는 백배 나았다.

어차피 나는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야 했다. 어떤 위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지금으로썬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힘이 생겼다는 것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무작정 좋아할 수가 없었다.

이 힘을 얻은 대가로 내가 무엇을 잃었는지는 아마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나는 가라앉은 마음을 휘파람에 날려 보내며 여우의 시체를 주우러 갔다.

가죽옷에 사용된 동물 가죽의 양만큼 사냥하려면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미친 듯이 일하는 게 최고다.

쉐에엑!

퍼억!

사냥이 시작되었다.

토끼 여섯 마리.

여우 두 마리.

멧돼지 한 마리.

사냥을 하다 보니 재미가 붙어 너무 많이 잡고 말았다.

수북이 쌓여 있는 사냥감을 보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걸 어떻게 가져다 놓지?”

한 번에 가져다 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무리 은밀하게 잠입해도 부피가 부피인지라 마을 사람들 눈에 들킬 가능성이 컸다.

나는 그들에게 모습을 드러낼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기억의 잔재가 낯선 장소, 낯선 사람에 대한 위험을 계속 경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해져라.

어떤 위험이 다가와도 극복할 수 있을 만큼 강해져라.

그 무엇보다 먼저 강해질 것을 기억의 잔재가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었다.

어찌 됐건 지금 믿어야 할 것은 직감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몸을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해진 후에 사람들과 만나기로 결정을 내렸다.

“어쩔 수 없지. 한 마리씩 가져다 놓는 수밖에.”

마을 근처까지 사냥감을 들고 이동한 다음 양손에 토끼 한 마리씩을 들고 마을 안으로 잠입했다.

토끼는 두 마리씩, 여우는 한 마리씩, 그렇게 서너 번을 왔다 갔다 했다. 멧돼지는 들킬 가능성이 컸기에 그냥 내가 먹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집을 나오기 전에 부싯돌을 훔쳐서 나왔다.

다시 멧돼지를 어깨에 메고 산을 올랐다.

정해 놓은 목적지 없이 무작정 걷다 보니 어느새 날이 저물어 버렸다. 해가 서산에 걸리자 숲이 금세 어두워졌다.

음침한 올빼미 울음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나뭇가지 그림자가 기괴한 모습으로 흔들렸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나뭇잎이 스산하게 바스락거렸다.

길을 잃어 똑같은 장소를 빙빙 도는 게 아닌지 의심이 될 때쯤 마침내 보금자리로 삼을 만한 동굴을 찾을 수 있었다.

동굴의 크기는 상당히 컸다.

곰이 겨울잠을 준비하는, 그런 작은 동굴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동굴 주변과 동굴 안쪽을 슬쩍 살펴봤지만 동물의 배설물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임자가 없는 동굴이 확실했다.

시커먼 입구에서 차가운 바람이 새어 나왔다. 바람 소리가 마치 지옥의 파수꾼이 부는 휘파람 소리처럼 음산했다.

“안쪽은 어떤지 살펴봐야겠어.”

나는 동굴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동굴 안은 어두웠다. 밤눈이 밝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나 돌부리에 걸려 거꾸러질 뻔했다.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서늘한 기운이 점점 강해졌다. 처음에는 시원했지만 어느 순간 시원함이 추위로 돌변했다.

통…….

통…….

어디선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물방울 소리는 마치 자장가처럼 몽롱했다. 그 반복되는 소리에 둔감해질 때쯤 동굴 안이란 말이 무색해질 만큼 넓은 광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광장 바닥에는 거대한 연못이 있었고, 천장에는 기암괴석이 가득했다. 거대한 자연의 피조물被造物 앞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런 곳이 있었다니…….”

예상보다 훨씬 좋은 장소였다.

“괜찮은데.”

임시로 머물기엔 최고의 장소였다.

나는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때였다.

미약한 빛 하나가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별똥별처럼 궤적을 만들며 날아다니는 빛의 정체는 놀랍게도 벌레였다. 불그스름한 머리에 검은색 몸통을 가진, 더듬이가 긴 벌레였다. 벌레의 배 부분에서 노란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반딧불?”

빛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짙은 어둠 속에서 빛 알갱이들이 퐁퐁 솟아났다.

흙 알갱이가 수백, 수천, 수만 개 모여 산을 만들듯 빛들의 집합체가 거대한 광장을 환히 밝혔다. 태양처럼 강렬하지는 않지만 보름달만큼 부드러운 빛이었다.

나는 나의 판단이 실수였음을 깨달았다. 이곳은 임시로 머물 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결정했어.”

반딧불이 만드는 빛의 향연은 이성을 마비시킬 정도로 아름다웠다.

동굴 밖으로 나오자 사방이 캄캄했다. 밤공기가 무척이나 맑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청량한 공기 사이로 비릿한 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피 냄새였다.

황급히 멧돼지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멧돼지를 먹고 있던 늑대 몇 마리가 화들짝 놀라 어디론가 도망쳤다.

“내일 아침 식사로 네놈들을 잡아먹겠다!”

늑대들이 사라진 곳을 향해 한차례 소리를 지른 후 멧돼지의 상태를 살폈다.

벌써 절반이나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나쁜 것은 늑대 침으로 범벅이 된 멧돼지의 상태였다.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먹기로 했다. 그만큼 배가 고팠던 것이다.

그 전에 늑대들의 입이 닿았던 곳을 도려내기 위해 날카로운 돌멩이를 찾았다. 아무리 둘러봐도 날이 서 있는 돌멩이는 보이지 않았다.

“손으로 찢어 볼까?”

돌팔매질의 위력을 생각해 봤을 때 가능할 것도 같았다.

육체의 힘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도 확인해 볼 겸 나는 멧돼지의 가죽을 손으로 잡고 좌우로 힘껏 잡아당겼다.

찌이익!

“…….”

너무도 쉽게, 마치 종이를 찢듯, 가죽이 찢어졌다. 그 바람에 피가 튀어 얼굴과 가죽옷이 더러워졌다.

“……이 정도 힘이면 거의 몬스터 수준인데.”

나는 맨손으로 멧돼지의 가죽을 벗기기 시작했다.

찌이익!

찌이익!

가죽을 찢고 늑대의 입이 닿지 않았던 부분의 살코기를 뜯어냈다. 그리고 그 살코기를 들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 피를 씻어 냈다. 겸사겸사 얼굴과 가죽옷에 묻은 피도 닦아 냈다.

다시 동굴 밖으로 나와 끝이 뾰족한 나뭇가지 몇 개를 주워 살코기를 꿰었다.

그다음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와 마른 나뭇잎을 대충 그러모아 모닥불을 피웠다. 부싯돌이 오래되었는지 불을 피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불길이 거세지길 기다렸다가 나무 꼬챙이에 꿴 고기를 불가에 비스듬히 꽂았다. 고기는 금세 노릇노릇 익어 갔다.

향기로운 고기 냄새를 맡으며 암청색 밤하늘을 바라봤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늑대 한 마리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멧돼지를 먹다 도망친 늑대 중 한 마리가 고기 냄새를 맡고 돌아온 것이었다.

돌멩이를 던져 아까 한 약속을 지킬까 하다 이내 포기했다. 심술을 부리기엔 달빛이 너무나 고왔다.

멧돼지 고기가 노릇노릇하게 익자 꼬챙이를 뽑아 고기를 뜯었다. 양념이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아 노린내가 심했다.

산을 올라오면서 따 온 달달한 과일로 입가심을 하자 나름 괜찮은 요리가 되었다.

역시 시장이 반찬이었다.

나는 꼬챙이의 고기를 순식간에 뚝딱 먹어 치웠다.

배가 부르자 잠이 슬슬 몰려왔다.

그러고 보니 부활한 직후를 제외하곤 제대로 잠을 잔 적이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기 무섭게 이틀 내내 기회를 노리고 있던 수마가 갑자기 공격을 시작했다.

모닥불 옆에 누워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의 개수를 하나, 둘 세다 천천히 눈이 감겼다.

그렇게 어둠 속에 의식을 묻었다.

* * *

짹짹!

짹짹짹!

시끄러운 새소리에 의식이 돌아왔다.

눈부신 빛 화살이 눈꺼풀을 찔렀다. 눈을 뜨자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보였다. 눈이 시릴 만큼 새파란 색이었다.

“우선 밥을 먹고…….”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일을 하려면 배가 든든해야 했기에 토끼 한 마리를 잡아 과일과 함께 배를 채웠다.

모닥불의 불씨가 꺼지지 않게 숯을 잘 정리한 다음 가볍게 몸을 풀었다. 본격적으로 수련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 산에 머물면서 내가 할 일은 산더미처럼 많았지만 종류는 한 가지뿐이었다.

바로 강해지는 것.

강함에 대한 기준은 정하지 않았다.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만큼이면 충분했다.

“자아, 가 볼까.”

우선은 달리기부터.

목표는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달리기의 목적은, 첫째, 산의 지리를 익히기 위함이었고, 둘째, 체력의 한계를 측정하기 위해서였다.

달렸다. 또 달렸다. 계속 달렸다. 지평선에 떠 있던 태양이 하늘 꼭대기에 올 때까지 달렸다.

“헉, 헉……. 대체 얼마나 더 달려야 하는 거야?”

역시나 나의 육체는 평범한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내달렸건만 숨이 차는 게 고작이었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 보자.”

독하게 마음을 먹고 전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마치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는 것처럼 빠른 속도였다.

절대 지치지 않을 것 같던 체력이 마침내 고갈되기 시작했다.

세 번째 산봉우리 정상에 올라서자 다리가 후들거려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엉금엉금 나무 그늘로 기어가 대자로 누웠다.

심호흡을 크게 하면서 빠르게 박동하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한여름에 가죽옷을 입고 달리기를 한지라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첫 번째 목적인 산의 지리는 어느 정도 익힐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목적인 체력의 한계 측정은 실패하고 말았다.

측정하는 것이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상식을 벗어날 만큼 괴물 같은 체력이었다.

선선한 바람이 코끝을 간질였다. 바람이 뜨겁게 달궈진 몸을 식혔다. 나뭇잎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햇볕을 막기 위해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러다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다시 깨어나 보니 몸 상태가 거의 정상으로 회복되어 있었다.

“근육통도 하나 없잖아? 오크의 체력에 트롤의 회복력이라……. 진짜 몬스터가 된 것 같은데.”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내심 만족스러웠다. 이상하게도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묘한 안도감이 생겼다.

포근한 바람을 느끼며 조금 더 쉰 후 돌팔매질을 시작했다. 얼마나 세게, 얼마나 정확히 던질 수 있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산속에서 구할 수 있는 살상용 무기는 그리 많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것은 돌멩이였고, 따라서 돌팔매질의 위력을 좀 더 갈고닦을 필요가 있었다.

비록 돌팔매질이었지만 몬스터에 버금가는 육체의 도움을 받는다면 충분히 위력적인 무기가 될 것이다. 게다가 장거리 공격이 가능했고, 쉽게 구할 수 있는 돌멩이가 무기란 점도 마음에 들었다.

나는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있는 솔방울을 목표로 돌멩이를 집어 던졌다.

휘익!

휘익!

처음에는 허공으로만 날아가던 돌멩이가 조금씩 오차 범위를 줄이더니 어느 순간부터 솔방울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시력이 좋아서인지 멀리 떨어져 있는 목표물도 바로 앞에서 던지는 것처럼 곧잘 맞혔다.

“아무래도 소질이 있나 본데.”

자화자찬으로 마무리하며 정확도에 대한 확인을 일단락했다.

다음 순서는 파괴력이었다.

나는 돌멩이를 쥔 손에 힘을 준 후 힘껏 휘둘렀다.

쉐에엑!

퍽!

돌멩이가 나무에 깊숙이 박혔다.

변함없이 굉장한 위력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최선을 다했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좀 더 세게 던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팔을 뒤로 잡아당긴 후 힘껏 휘둘렀다.

쉐에엑!

퍽!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세게.”

내 생각이 맞았다.

돌멩이를 세게 던지려고 할수록 돌멩이는 진짜로 더 세게 날아갔다. 육체의 힘이란 한계를 지니고 있기 마련이건만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더! 조금만 더!”

점점 빨라지고 점점 강해지는 돌멩이의 위력에 나도 모르게 흥분했다. 이제 돌멩이는 거의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만족할 수 없었다.

분명히 더 세게 던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가 그것을 가로막고 있었다.

돌멩이를 던질 때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움츠리고 있는 활화산 같은 기운이 분출될 듯 말 듯 애간장을 태우며 꿈틀거렸다.

“헉, 헉……. 젠장!”

속에서 열불이 올라왔다. 눈에 불꽃이 튀었다. 독기로 똘똘 뭉친 마음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났다.

“그래, 어디 한번 해 보자 이거지.”

나는 내 힘을 폭발시키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성을 송두리째 앗아 가 버리는 그, 것, 에 정신을 집중했다.

‘……내가 돌멩이를 던져 맞히려고 하는 것은 나무가 아니다. 악마다. 그 빌어먹을 해골바가지다. 그놈이 내 앞에 있다. 내 앞에서 나를 비웃고 있다. 해골바가지를 산산조각으로 부숴 버리고 싶다…….’

결과는 놀라웠다.

증오와 분노가 머릿속을 하얗게 불태웠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눈앞의 나무를 노려봤다. 아니, 지금 내 눈에 비친 것은 나무가 아니라 해골바가지 형상을 한 악마였다.

무엇을 망설이고 있느냐.

가슴이 뜨거워졌고, 입에서 단내가 풍겼다. 숨을 제대로 쉬기가 힘들었다.

돌멩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두근!

심장이 격렬하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기세였다.

두근!

두근두근!

혈액이 미친 듯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온몸의 혈관이 툭툭 불거져 나왔다. 끝내 코의 혈관이 터져 코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콰광!

마침내 활화산의 분출을 막고 있던 뭔가가 부서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활화산이 폭발했다. 해일 같은 기운이 온몸에 휘몰아쳤다.

나 역시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폭발한 기운을 팔에 실어 있는 힘껏 휘둘렀다.

쒜에에에엑!

소리부터가 달랐다. 고막이 아플 만큼 날카로운 소리였다.

쾅!

돌멩이는 우렛소리와 함께 아름드리나무에 푹 꽂혔다. 여기까지는 전과 똑같았다.

하지만.

우지끈!

돌멩이가 나무를 부러뜨렸다.

돌멩이는 두 번째, 세 번째 나무를 부러뜨린 후 네 번째 나무에 깊숙이 박히고 나서야 간신히 움직임을 멈췄다.

나는 내가 해낸 성과를 멍하게 쳐다봤다.

공성 병기인 투석기와 같은 위력이었고, 해낸 나조차 믿기 힘든 위력이었다.

한참 만에 제정신을 차렸다.

“돼, 됐다. 하하하! 성공이…… 컥!”

성공의 희열을 압도하는 고통이 별안간 찾아왔다. 온몸에 경련이 일어났다.

툭!

툭툭!

온몸의 혈관이 우둘투둘 불거져 나왔다. 마치 오크의 몸처럼 흉측하게 변했다.

주르륵.

다시 한 번 코피가 쏟아졌다. 코뿐만이 아니었다. 입에서도, 눈에서도, 귀에서도, 칠공에서 모두 피가 쏟아졌다.

쿵!

바닥에 뺨이 닿는 순간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끄응…….”

다시 정신을 차리자마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격통이 덮쳤다. 무리하게 힘을 끌어 올린 탓인지 온몸의 근육이 끊어질 것처럼 아팠다. 사막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지독한 갈증과 허기를 느꼈다.

힘겹게 바닥을 기어 연못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간신히 연못에 도착한 후 연못가 주변에 피어 있는 버섯을 닥치는 대로 뜯어 먹었다. 그리고 물을 마셨다. 그제야 좀 살 것 같았다.

나는 고통을 참으며 축축한 물가에 널브러졌다.

“어째서 이 힘을 사용하지 못했는지 알겠어.”

미지의 힘을 막고 있었던 것은 생존 본능이었다.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힘에 육체가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본능이 필사적으로 방해한 것이었다.

본능을 무시한 대가는 제법 괴로웠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힘이라니. 함부로 사용할 게 못 되는군.”

몸이 완전히 회복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불과 이틀 만에 산을 뛰어다닐 정도로 건강해졌다. 정말로 놀라운 회복력이었다.

몸이 회복되자마자 나는 본격적으로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이라고 해 봐야 별것 없었다.

산을 달리고, 가죽으로 감싼 주먹과 발로 나무를 때리고, 돌멩이를 던져 목표물을 맞히는 것이 수련의 전부였다.

제대로 된 무술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육체의 힘을 끌어낼 수 있는 수련 위주로 계획을 세웠다.

체계적이지 못한 수련이었지만 나는 내가 만든 수련 방식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의문을 품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수련을 하면 할수록 뚜렷하게 성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하면 할수록 몸놀림이 날래졌다. 주먹과 발로 나무를 때릴수록 나무 기둥이 움푹움푹 파였다. 돌멩이를 던질수록 정확도와 파괴력이 올라갔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느껴질 만큼 눈부신 성과였다.

수련의 성과에 재미를 느끼자 나는 먹고 자는 것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수련에 쏟아부었다. 놀라운 속도로 회복되는 체력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갔다.

계절은 여름의 중심을 향해 치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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