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루니 백작 (34/37)
  • 클루니 백작

    후버가 용병단의 일행을 감시한 지 4일째 처음으로 용병단이 외부의 사람과 접근하는 정황을 포착할 수 있었다.

    “저쪽이 진짜인 것 같군.”

    “확실히 다르군요.”

    하루 종일 슬렌을 용병단 근처에 두는 것이 낭비라고 생각한 후버는 슬렌이 용병단 중 한 명을 할퀴어서 확보한를 이용해 그들을 뒤쫓을 수정구를 공중에 띄우고는 한스와 교대로 영주관의 집무실에서 용병단을 감시 하고 있었다.

    “소리를 좀 더 키울 수는 없는 것입니까?”

    “그야 가능하지.”

    후버가 영상을 전송하는 통신구를 조작하자 용병단과 연락책이 나누는 말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내일 모레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내일 모레 운반되는 병장기를 자네가 이곳에다가 묻어두면 된다.”

    “양은 어느 정도입니까?”

    “한 사람당 10개 정도의 무기를 들면 충분하니 양이 많을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알겠습니다. 병장기를 묻고 나면 어디로 이동하면 됩니까?”

    “이곳에서 조금 더 전진한다. 자세한 사항은 지도에 표시해 두었다.”

    “알겠습니다.”

    “뭔가 보고할 사항은 없겠지?”

    “아직까지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언제든지 보고할 사항이 생기면 최우선으로 알리도록.”

    “명심하겠습니다.”

    일방적으로 명령을 전달한 남자가 떠나자 단장은 용병들을 불러서는 자신이 전달받은 사항을 다른 용병들에게 재차 알리고는 다시금 은신에 들어갔다.

    “별 영양가는 없군.”

    “아무래도 용병들은 전체적인 것은 전혀 모르는 모양입니다.”

    “이해가 가지를 않아 우리를 그만큼 우습게 보는 건가?”

    적들의 허술한 행동에 후버는 적들이 자신을 우습게 보는듯하여 짜증이 밀려왔다.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블렌드 공작에 비하면 우리들의 능력은 한참 아래로 보이겠지요.

    막말로 설사 저들이 이곳 영지에 무기를 파묻었다는 사실을 폭로해도 안티구아 공작이 잡아떼면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용병들은 전체적인 상황을 모를 것이고 방금 본 연락책도 쉽게 입을 열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스도 후버의 생각에 동조하듯 부정적인 의견을 말하고 있을 때 슬렌에게서 통신이 왔는지 통신구가 반짝였다.

    “하나 더 발견이요!”

    용병단을 감시하는 일을 수정구가 대신 하게 되자 후버는 슬렌에게 마나석만 공급이 된다면 샤프니스 마법을 무한정 발현할 수 있는 목걸이와 함께 마나석을 수십 개 주고는 산속을 수색하게 했다.

    후버가 하던 식으로 아티팩트가 무언가 반응을 보이면 슬렌은 그 자리를 지도에 표시하고는 후버에게 알리는 방식으로 벌써 발견하지 못했던 구덩이를 10여 개 더 발견 하였다.

    “수고했어. 지도에 표시하고 좀 더 수고해줘.”

    “예이~ 예이.”

    야생의 본능이 남아 있는지 슬렌은 하루 종일 산속을 헤매이는 일에도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후버가 요구하는 대로 열심히 수색을 하였다.

    “슬렌이 구덩이를 찾아내는 것으로 봐서는 들어오는 통로뿐만이 아니라 영지를 빙 둘러서 병장기를 묻어 놓은 듯합니다.”

    “고딕은 뭐한 건지…….”

    “그래도 이제는 전부 영지의 재산이 아닙니까?”

    긍정적인 한스의 말에 후버도 실소를 지었다.

    “요즘 고딕과 친하게 지내더니 친구라고 편들어 주는 건가?”

    후버의 농담에 한스가 손사래를 치며 그런 일이 없다고 말했고 후버는 교대 시간이 되었으니 들어가서 쉬라고 전했다.

    한스가 휴식을 취하기 위해 후버의 방을 나간 지 수 시간이 흐르고 죽은 듯이 한 자리에서 대기 할뿐 아무런 움직임이 없던 용병단 중 한 명이 조심히 자리를 떴다.

    “볼일이라도 보러 가려는 건가?”

    괜한 더러운 꼴을 보기 싫은 후버는 대화를 감청하기 위해 놓여 두었던 볼륨을 낮추고는 여전히 움직임이 없는 다른 용병단에게 집중했다.

    숲 속으로 사라진 한 명에 대해 후버가 신경을 끊으려 했지만 수정구가 추적하는 것이 숲 속으로 이동하는 한명이었는지 후버의 의지와는 다르게 수정구는 숲 속의 남자를 비추었다. 무조건 적으로 상대의 혈액 샘플로 채취한 마나의 흔적을 따라가는 추적 수정구의 작동 방식을 조만간 손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후버였지만 당장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제길, 더러운 꼴 보겠군.”

    모여 있는 용병단의 대화를 듣기 위해 할 수 없이 다시 볼륨을 높인 후버가 아예 고개까지 돌려 버렸다.

    비위 상하는 소리를 들을 것이란 생각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후버의 귀에 처음 듣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뭐지?’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후버가 고개를 돌리고는 화면을 확대했다.

    “돌아가지 않겠다.”

    “백작님께서는 런팅 도련님의 생사를 걱정하고 계십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아버지는 나의 소식도 모를 텐데? 살로만 집사가 아버지에게 내 행방을 알린 건가?”

    “자세한 것은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우선 이 통신구를 받으십쇼. 저는 도련님에게 돌아오라는 말과 통신구를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뿐입니다.”

    “누구하고 연결된 통신이지?”

    “살로만 집사님입니다. 집사님은 제발 이야기라도 들어보라고 하셨습니다. 가능하면 빠른 회신을 부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알겠네. 바로 연락을 해보지.”

    “저에게 부탁하는 살로만 집사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반드시 부탁드립니다.”

    “돌아갈지는 모르겠지만 연락은 반드시 하겠네. 다른 사람이 수상해 할 수 있으니 빨리 돌아가게.”

    런팅의 말에 통신구를 전해준 남자가 고개를 한번 숙이고는 숲 속으로 사라졌고 품 안에 통신구를 넣은 런팅은 다시 일행들에게 돌아갔다,

    “저놈도 좀 수상하군…….”

    런팅과 살로만이라는 이름을 양피지에 적은 후버가 고딕을 불렀다. 늦은 밤이지만 후버에게 한소리를 들은 이후로 바짝 긴장이 든 고딕은 후버가 부르자 지체 없이 후버의 집무실로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후버 님.”

    “이 둘에 대한 조사를 부탁하네. 귀족가의 자식이거나 부유한 상단의 자식 같으니 그쪽으로 주로 알아보고.”

    “살로만과 런팅이라… 귀족가라면 한 시간도 걸리지 않습니다. 집사 정도의 위치나 자제라면 저희 길드에서 항상 새로운 정보를 입수하는 대로 반영을 하니까요. 지금 바로 길드로 연락해서 관련 정보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정보 길드 쪽의 정보도 필요하신지요?”

    “아니, 외부로 유출될 수 있는 가능성은 가능하면 막고 싶군.”

    “그럼 길드 내에서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빠르게 부탁하지.”

    후버의 지시를 받은 고딕이 후버의 집무실을 나갔고 후버는 한동안 지루하게 수정구를 바라보았다.

    한 시간여의 시간이 지나고 후버가 고딕이 후버의 집무실로 다시 들어왔고 무언가 말을 하려는 순간 후버가 고딕을 제지했다.

    “잠깐, 런팅이 이동하는데.”

    “저자가 런팅입니까?”

    후버의 말대로 런팅이 일행을 벗어나서는 숲 속으로 들어가서는 통신구를 이용해 누군가에게 통신을 시도했다.

    “집사 내 목숨이 걸려 있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내가 있는 곳을 알리지 말라고 했잖아.”

    “제가 알린 것이 아닙니다… 도련님 백작님께서 알고 계셨습니다.”

    “아버지가 어떻게?”

    “얼마 전 백작님께서 안티구아 공작의 부름을 받고 치알디니 영지로 간 적이 있습니다. 도련님이 계신 위치는 그때 공작에게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공작님이 내 위치를 알 리가 없잖아?”

    “아닙니다. 지금 도련님에게 의뢰를 한 것이 안티구아 공작입니다. 동시에 도련님을 죽이라고 명령한 것도 공작이구요.”

    “공작이? 나를? 어째서?”

    “도련님이 백작가의 자제니까요. 도련님이 그곳에서 사망하시면 그것을 이용해 드라고니아 포레스트의 영지를 공격하려는 계획입니다.”

    살로만의 말에 런팅은 분노를 느꼈지만 조용한 숲 속에서 소리를 지를수는 없기에 목소리를 더욱 낮추고 집사에게 물었다.

    “그래서? 아버님은 뭐라고 하시던가?”

    “지금 엔트로 영지에서 1왕세자와 블렌드 공작을 만나고 계실 겁니다.”

    “그곳에는 왜?”

    “도련님을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미 도련님을 죽이기로 마음먹은 안티구아 공작이 살려줄 리는 없으니 상대편에게 도련님의 생사를 두고 거래를 하려는 생각이십니다.”

    “아버지께서…….”

    “제발 백작님의 노력을 헛되게 하지 마시고 영지로 돌아오십쇼. 영지로 오신다면 안티구아 공작도 도련님을 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동료가.”

    “도련님만 빠져나오셔야 합니다. 그들이 도련님을 주시하고 있다고는 하나 전부가 함께 움직이는 것보다는 도련님 혼자서 몸을 빼시는 것이 더 안전할 것입니다.”

    “그럴 수는 없다. 영지의 기사들을 보내서 모두를 보호해 주면 될 것이 아닌가?”

    런팅의 말에 살로만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확신하지는 못하나 이미 안티구아 공작의 세작이 영지내로 잠입했을 것입니다. 영지에서 군사가 나가는 순간 도련님의 목숨이 위험해질 것입니다. 백작님께서도 그 사실을 알고 영지에 들리지 않은 채 바로 엔트로 영지로 방향을 잡으셨습니다.”

    “그런… 하지만 나는 저들을 버릴 수가 없다. 무려 5년이다. 5년간 서로의 목숨을 맞긴 용병단을 어떻게 버린단 말인가?”

    “그 다음을 책임지시면 됩니다. 백작님께서 그들의 가족이 살아가는 데 충분한 보상을 하실 겁니다. 백작님은 도련님을 위해 가문의 모든 것을 던졌습니다. 백작님의 그런 노력을 도련님께서는 무시하실 생각이십니까? 도련님께서 집을 나가셨을 때도 백작님의 결심은 굳건했습니다. 그 결심을 도련님을 살리기 위해 마음을 바꾸신 겁니다.”

    살로만의 열변에 런팅이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가문전체의 흥망이 걸린 아버지의 결정을 무시한다는 것은 런팅으로서도 생각할 수 없었다.

    “하루만 시간을 주게 하루만 생각해 보고 결정을 내리겠네.”

    “시간은 제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 안티구아 공작이 도련님이 계신 용병대를 공격할지 모릅니다. 아니 직접 공격을 하지 않는다면 2왕세자의 세력을 용병대가 있는 곳으로 유도 할 것입니다.”

    “알고 있네… 하지만 나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좋습니다. 어려서부터 도련님을 보필해왔던 제가 도련님의 성격을 모르지는 않으니… 안티구아 공작이 머물던 치알디니 영지에서 우리 영지까지는 7일의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이미 4일의 시간이 지났으니 앞으로 3일 안에 영주님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안티구아 공작이 이상하게 여길 것입니다. 고민을 하셔도 그 전에는 자리를 피하셔야 합니다.”

    “알겠으니 살로만 자네는 걱정하지 말게.”

    “그럼 도련님과 무사히 통신을 끝마쳤다는 것을 백작님께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하지.”

    그 말을 끝으로 살로만과 런팅의 통신은 끝이 났다. 생각을 정리하듯이 잠시간 자리에 서 있던 런팅이 이내 몸을 돌려서는 일행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좋은 놈인데?”

    “좋은 놈이네요.”

    후버의 말에 간단하게 맞장구를 쳐주는 고딕.

    “일단 보고부터 드리겠습니다. 살로만 집사와 런팅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곳은 클루니 백작이 가주로 있는 로체 백작가입니다. 국외가 아니라면 확실합니다.”

    “대화를 들어보니 국내라는 것은 확실하고 그자의 성정은 어떤가? 백작이라는 자 말이야.”

    “강단 있는 인물입니다. 아시다시피 안티구아 공작 세력에 속해 있었고 영지의 위치는 조지아 공작가의 세력이 강한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점 때문에 몇 번이나 조지아 공작가에서 그를 회유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안티구아 공작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의 심복인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안티구아 공작이 주관하는 각종 이권에 끼어든 적도 없고… 안티구아 공작의 이득을 본거라고 해도 안티구아 공작의 후광으로 인해 그저 조지아공작가의 직접적인 공격은 받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건 회유를 받았을 때 조지아 공작가로 고개를 숙이면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가 아닌가?”

    “그러니 저도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지금 어느 곳에 있는지는 아는가? 대충 듣기로는 엔트로 영지로 조지아 공작을 보러 간 것 같은데.”

    “알수 없습니다. 저희가 무슨 정보길드도 아니고… 이 정도만 해도 많이 아는 것 아니겠습니까?”

    당당하게 모른다고 말하는 고딕 정보부장을 한번 노려본 후버가 다음 지시를 내렸다.

    “지금부터 두가지 지시를 하달한다. 첫 번째로 엔트로 영지로 파견 나가 있는 도둑 길드원들에게 클루니 백작의 얼굴을 상세하게 전달하고 그와 직접적인 연락을 할 수 있도록 24시간 길목을 감시하라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두 번째로 앞으로 저 용병단을 24시간 감시하고 보호한다. 명색이 도둑 길드인데 은신은 자신 있겠지?”

    “뭐 문제없습니다. 딱 봐도 허접해 보이는 용병단한테 걸릴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서 산을 뒤지면서 그 허접한 놈들 흔적 하나 못 찾았냐?”

    “구덩이 찾으랬지, 언제 사람 찾으라고 하셨습니까? 산을 그렇게 빨빨거리고 돌아다녀도 저들이 우리를 모르는 것만 봐도 은신 하나는 예술인 거 아닙니까?”

    꼬박꼬박 말대답을 하는 고딕을 손짓으로 쫓아낸 후버는 한스의 방으로 가서 잠자고 있는 한스를 깨웠다.

    “한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너와 내가 용병단을 보호해야 할 것 같다.”

    “용병단을 보호해야 한다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방금 전가지만 해도 영지를 공격하려던 괘씸한 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에 한스가 의구심을 나타내었다.

    “설명은 이동하면서 해줄 테니 우선 짐부터 챙기도록 하루에서 이틀은 노숙을 해야 할 것 같으니 식량과 물도 챙기고.”

    후버의 지시에 한스가 후버의 몫까지 짐을 꾸렸다. 하루에서 이틀이라는 말에 한스는 침낭은 따로 챙기지 않고 식량과 물만을 챙겼고 후버에게 준비가 다 되었다는 것을 알렸다.

    “일단 아까 봤던 용병들이 있는 곳까지 이동하고 슬렌도 부르도록.”

    “알겠습니다.”

    한스에게 슬렌을 불러오라는 지시를 내린 후버가 습관처럼 통 안에 든 몬스터의 피를 마시고는 앞장서고 그 뒤를 슬렌과 한스가 따랐다.

    후버가 런팅이 속한 용병단을 보호하기 위해 감시를 시작한 지 만 하루의 시간이 지나고 붉게 타오르던 해가 자취를 감추었다.

    “지루하구만.”

    “슬렌, 경계를 똑바로 하도록.”

    “도둑 길드가 알아서 할 텐데…….”

    “걔들은 믿음이 영 안 가.”

    “그런데 런팅은 살려서 뭐에 쓰시려구요? 그냥 죽도록 놔두고 시체만 처리하는 게 편하지 않아요?”

    “그 생각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살아 있는 게 더 쓸모가 있으니깐.”

    처음 경계를 설 때는 당장이라도 누군가 용병대를 공격할까 잔뜩 긴장을 한 후버 일행이었지만 만 하루가 지나고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자 슬슬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고 지루함을 달래주는 것은 고딕이 가지고 오는 클루니 백작에 대한 서류가 전부였기에 서류를 꼼꼼히 읽어본 후버는 런팅을 반드시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기 누가 움직이는데요.”

    불빛이 흘러나갈까 검은 천으로 꽁꽁 싸맨 수정구의 확대기능으로 용병단을 바라보았다.

    “신경쓸 거 없어 용병단장이야.”

    “아무튼 뒷일 한번 오지게도 자주 보네요.”

    한 명, 한 명 일어날 때마다 긴장을 해서인지 또다시 별일 없이 일어나는 듯한 용병단장의 움직임에 슬렌이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아니, 잠깐! 단장이 용병들을 지목하는데.”

    후버의 말대로 3명의 용병이 지목되어서는 단장의 뒤를 따랐다.

    “다행히 런팅은 없군. 신경 쓸 필요는 없겠어.”

    후버의 말에 긴장감을 올리고 있던 슬렌과 한스가 몸의 힘을 풀었다.

    “용병 4명 이동 중입니다. 5명 따라붙습니다. 교전을 허락합니까?”

    “주요인물 아니니 내버려 둬. 상황만 보고하도록.”

    도둑 길드원 중의 한 명의 교전 허락을 구하는 말에 후버는 불허하였다.

    “이동합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와 만났습니다.”

    “두 명이 짐마차 안으로 들어갑니다. 마차 안에서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더 나오네요.”

    “하나 죽었습니다. 한 방이네요.”

    “둘 죽었습니다. 도망가다가 등에 활 맞았네요.”

    “마차 안에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만 나옵니다. 총 8명 안에 더 있는지는 확인이 안 됩니다.”

    “마차는 온 방향으로 다시 사라지네요. 총 8명입니다. 이상 이쪽은 상황 종료.”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상황을 전달하던 도둑 길드의 누군가가 통신을 종료했고 모두가 죽었다는 말에 후버와 슬렌, 한스 역시도 몸의 긴장감을 높였다.

    후버가 런팅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수정구의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좀 더 높은 하늘 위로 띄우자 멀리서부터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용병단이 있는 곳으로 서서히 접근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상을 수신하는 수정구를 다시 품속에 넣은 후버는 한스와 슬렌에게 수신호를 주고는 앞장서서 용병단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접근했다.

    후버는 대충 감으로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용병단 근처에 접근했을 즈음 런팅의 머리 위에 떠있는 수정구의 마법진을 비활성화시켰다.

    퍽!

    “컥!”

    “뭐야?”

    런팅의 머리 위에 떠 있던 수정구가 수직 낙하하여 런팅의 머리에 강하게 부딪혔다.

    “잘못하면 죽었겠는데요.”

    잔뜩 목소리를 낮추어 말하는 슬렌.

    “나대다가 죽는 것보다는 낫지 깨졌으면 좀 찢어지고 말았겠지만 수정구가 깨진 것 같지는 않고 머리로 그 충격을 다 흡수했으면 진짜 죽었을 수도 있겠는데?”

    아무런 보호 장구 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수정구를 맞은 런팅은 그 자리에서 기절했고 런팅이 기절한 것을 본 남은 용병단의 대원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저기에 누군가가?”

    용병단원들이 마침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안티구아 공작의 부하들을 보고는 단장을 맞이하기 위해 그들을 향해 걸어가려는 찰나 용병단원 중 한 명이 그들의 경각심을 일깨웠다.

    “저건 핀가? 단장이 없어?”

    용케도 희미한 달빛을 이용해 안티구아 공작의 부하들의 브로드 소드에 묻은 핏자국을 보았는지 용병들이 한걸음 뒤로 주춤하며 물러서고는 외쳤다.

    “단장은 어디 있는가?”

    “알 것 없다.”

    그 말을 기점으로 나머지 안티구아 공작의 부하들도 브로드 소드를 뽑았고 한 발 늦었지만 용병들도 자신의 병기를 뽑아서는 안티구아 공작의 부하들에게 전력 질주하였다.

    “역시 싸움은 선빵이지.”

    용병단의 인원들이 안티구아의 부하들에게 달려드는 것을 확인한 후버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커다란 나무 뒤로 숨었다.

    “일루전!”

    후버의 일루전 마법이 펼쳐졌다. 일루전 마법이 목표는 가로 세로 10여 미터의 런팅이 쓰러져 있는 사각형 공간.

    챙!

    드디어 싸움이 시작되었는지 금속성 소리가 후버의 귀를 자극했고 동시에 후버가 외쳤다.

    “훔쳐와!”

    일루전 마법에 이은 후버의 명령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도둑 길드원 4명이 소리 없이 런팅을 향해 달려갔고 그중에는 고딕 역시 포함이 되어 있었다.

    의외로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빠르게 달려가는 고딕의 모습에 후버는 무력을 사용할 필요는 없겠다는 안심이 들었다.

    언젠가는 안티구아 공작과의 일전을 벌일 수밖에 없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런팅의 근처로 다가간 고딕과 3명의 일행은 각기 런팅의 사지 중 하나씩을 잡고 다시 후버 쪽으로 빠르게 달려왔고 후버는 통신구를 이용해서 도둑 길드 전원에게 후퇴 명령을 내리고는 자신도 천천히 영지 방향으로 후퇴하였다.

    “쯧쯧 멍청한 것들… 부하 교육을 저렇게 시켜서야.”

    이미 런팅은 고딕과 부하들에 의해 영지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지만 후버가 일루전 마법을 통해 만든 런팅이 스러진 허상만을 볼 수 있을 뿐 런팅이 사라진 것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후버는 안티구아 공작이 고용했던 두 무리의 사용인들이 검을 섞는 소리를 들으며 빠르게 전장을 벗어나서는 영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도둑 길드원을 해산시킨 후버는 영주관 응접실에 아무렇게나 널브러트린 런팅의 뺨을 툭툭 쳤다.

    “야! 야! 일어나봐! 일어나봐 이 자식아!”

    “죽은 거 아니에요?”

    “숨은 쉬던데?”

    “식물인간이 됐다거나?”

    “부정타게시리 조용히 해라!”

    한참을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런팅을 본 후버는 힐링 마법으로 부어오른 런팅의 머리를 치료하고 웨이크 업 마법을 이용해 런팅의 정신을 깨웠다.

    “컥!”

    일어나자마자 신음성을 내지를 런팅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긴 어디? 내 동료들은?”

    “말이 짧네?”

    “내가 기절한 지 얼마나 흐른 건가? 동료들은 어디에? 당신은 누구?”

    “하나씩 하나씩 기절하고 깨어나기까지는 얼마 시간이 흐르지 않았고 동료들은 아마 전부 죽었을 거고, 나?”

    후버가 런팅의 뺨을 툭툭 치며 말하다가 한손으로 턱을 잡고는 자신과 시선을 맞추었다.

    “네가 무기 묻은 곳의 대리 영주다 이 새끼야!”

    갑작스럽게 런팅의 싸대기를 때리는 후버를의 양손을 한스가 잡고는 말렸다.

    “후버 님!! 진정을…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아니, 저 새끼가… 어리버리하게 지가 누굴 해치려고 했는지도 못 알아보잖아! 이 새끼를 그냥!”

    후버가 다시 발길질을 하려는 순간 한스가 후버의 몸을 당기고는 후버를 진정시켰다.

    “아니다. 아마도 저거의 부작용인가 보다 고맙다. 한스.”

    후버가 몬스터의 피가 담긴 액체를 가리키자 한스가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후버의 손을 놔주었다.

    “전투를 생각해서 조금 많이 드셔서 그런가 봅니다. 전투를 통해서 좀 푸셨어야 하는데…….”

    “그러게 말이다. 언제 시간 있으면 정확한 양을 계산 하던가 해야지.”

    “당신이 후버?”

    “아… 존칭… 이 새끼가 매를 벌지 벌어… 고딕, 인사해라. 네 동생님이시다.

    후버의 화풀이 대상이 애먼 고딕에게 향지만 다시금 한스가 말려서 고딕의 정강이가 까이는 일은 발생 하지 않았다.

    “내가 공적으로는 후버 자작지만 사적으로는 너의 생명의 은인 아직도 상황 판단이 안 돼?”

    유난히 자작이라는 단어에 힘을 줘서 말하는 후버.

    “그게 무슨?”

    “딱 한 번만 설명해 줄 테니깐 확실하게 들어 질문은 받지 않는다. 안티구아 공작이 사람 보내서 너네 용병단 싸그리 몰살시키려고 하는 걸 내가 너만 살려 줬다. 이해가지?”

    “모두 죽은 것입니까?”

    “모두, 한 명도 빠짐없이.”

    “그럼 저는 어째서 살려주신 겁니까? 아니… 살려주시려면 다 살려주시지 왜 저만…….”

    “네가 로체 가문의 클로니 백작의 아들이니깐 대답이 되었나?”

    “그게 무슨 상관이……?”

    “상관이 있지… 여기서 부터는 작위가 있고 영지가 있는 귀족들끼리 할 이야기이니…….”

    후버가 오른손을 런팅에게 내밀었다.

    “다 알고 있으니 살로만과 연결할 수 있는 통신구를 나에게 주게나.”

    “그것을 어찌 아는 겁니까?”

    “그 역시도 작위가 있고 영지를 가진 자들 사이의 대화이니 어서 통신구를 주게.”

    “후버 님께서 이 통신구로 무슨 일을 할 줄 알고 넘겨준단 말입니까?”

    런팅의 말에 후버가 황당하다는 듯이 실소를 흘렸다.

    “이 사람아, 내가 그 통신구를 가지고 뭘 할 것 같은가? 왜? 살로만에게 욕이라도 할까봐 그러는가? 연로한 살로만이 욕 듣다가 고혈압으로 죽을까 봐?”

    후버의 비아냥 섞인 말에 얼굴을 붉히던 런팅은 품 안의 통신구를 후버에게 넘겨주었다.

    “고맙군.”

    통신구를 넘겨받은 후버가 잠시 몸의 신성력을 활성화 하고는 가장 최근 연결된 통신구의 고유 번호를 확인하고는 바로 통신을 연결하였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살로만은 곧바로 후버의 통신에 응하였다.

    “런팅 도련님! 무사하십니까?”

    “클루니 백작님의 자제님은 무사하십니다 살로만 집사님.”

    “누구신지?”

    낯선 후버의 목리에 살로만의 목소리에서 놀람과 경계심이 느껴졌다.

    “저는 후버라고 합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런팅 도련님께서 모종의 일을 하시던 곳의 영주이지요.”

    뜻밖의 후버의 신분에 놀랐는지 살로만이 다음 말을 잇지 못했고 잠시 기다려준 후버는 뒷말을 이었다.

    “살로만 집사님께서 처리하실 수준은 이미 넘으셨다는 것을 잘 아실 겁니다. 런팅 도련님께서 무사하시기 위해서라도 클루니 백작님과 제가 대화를 해야 할 것 같은데 클루니 백작님께서는 영지로 돌아 오셨습니까?”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그럼 클루니 백작님의 통신구와 연결할 수 있게 접속번호를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그건…….”

    “이미 클루니 백작님께서 블렌드 공작님을 뵈러 가셨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제가 가진 정보길드가 밥값을 좀 한 덕분이지요. 어찌 하시겠습니까?”

    “백작님의 접속번호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대답을 한 살로만 집사가 후버에게 클루니 백작의 접속 번호를 알려주었고 후버는 곧바로 클루니 백작에게 통신을 연결하였다.

    “누구신가?”

    “클루니 백작님이 맞으십니까?”

    “맞네, 자네는 누구인가?”

    “저는 백작님의 아드님을 대리고 있는 후버라고 합니다.”

    “후버라면… 후버 자작? 자네가 내 통신구의 접속 번호는 어떻게 안 건가?”

    “살로만 집사님께서 알려 주셨습니다. 아드님에 대한 부분이라고 하니 저에게 호의를 베푸셨지요.”

    호의라기보다는 런팅의 신변을 확보한 후버의 협박성 발언에 넘겨 준 것이지만 상황을 알 리 없는 클루니 백작은 후버의 말에 덜컥 아들에 대한 걱정부터 들었다.

    “내 아들은? 내 아들은 무사한 건가?”

    “직접 통신을 하시는 것이 나을 것 같군요.”

    후버가 통신구를 런팅에게 던졌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아니다.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저는 무사합니다. 하지만…….”

    뒷말을 잇지 못하는 런팅의 반응에 클루니는 런팅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통신구를 후버 자작에게 넘겨 주거라.”

    클루니의 말에 런팅이 짧은 통신을 끝내고는 통신구를 후버에게 넘겼다.

    “우선 내 아들을 구해주어서 고맙소. 그리고 내 아들이 자작의 영지에서 한 일에 대해서 심심한 사과를 전하는 바이오.”

    “아닙니다. 런팅 도련님께서도 아시고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어서 고맙소.”

    “블렌드 공작님은 만나셨는지요?”

    “만나보았소. 방금 전 공작님을 만나 뵙고 병력의 지원을 약속 받았소 후버 자작의 영지 까지 가려면 최소 10여 일은 걸렸을 텐데 덕분에 내 자식의 목숨을 구했소. 눈앞에 후버 자작이 있다면 절이라도 하고 싶은 생각이오.”

    “백작님께 절을 받다니요 자작인 제게는 당치도 않은 일입니다. 직접 아드님을 데리러 오시겠습니까? 아무래도 제가 영지를 비우기는 힘들어서 말입니다. 또 안티구아 공작의 수하들을 물리칠 자신도 없고 말입니다. 안티구아 공작을 견제할 수 있는 것은 블렌드 공작님 밖에 없지 않습니까?”

    “정말, 그래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후버의 파격적인 말에 클루니 백작이 놀라서는 반문 하였다.

    지금 같은 예민한 시기에 후버의 영지에 블렌드 공작의 수하를 이끌고 가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았고 블렌드 역시 그러한 점을 이유로 병력을 내주는 것에 대해서 장고를 하였기 때문이다. 반면 후버는 너무나 시원스럽게 자신의 영지로 병력을 이끌고 방문해도 된다는 허락을 하자 클루니는 후버의 의도를 짐작할 수 없었다.

    “나로서는 너무나 고마운 제안이오. 만약 공께서 런팅을 홀몸으로 영지 밖으로 내 쫓았다면 아마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오.”

    “열흘 정도 기다리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사실 예전부터 클루니 백작님을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백작님을 뵙고 싶은 저의 욕심도 충족하는 것이니 부담 가지지 말고 천천히 준비하시고 오시지요.”

    “고맙소. 내 비록 1왕세자와 조지아 가문에 투신한 몸이지만 후버 자작이 필요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돕겠소. 이는 귀족으로서의 약속이니 우리 가문이 살아 있는 한 항구히 지켜질 것이오.”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니 백작님께 무거운 짐을 지워 드리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계속해서 고마워하는 클루니 백작을 달랜 후버는 통신을 마치고 한숨을 길게 쉬었다.

    “런팅 도련님 제가 무례를 저지른 것이 있으면 용서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까전은 저 역시 처음 겪는 일에 정신이 없어 실례를 범한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후버 님께서 저의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제가 어찌 감히, 저의 죄를 물어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후버의 사과에 런팅이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오히려 자신의 죄를 청하였다.

    “그럼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그러 하셨든 저 역시 자작님의 은혜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가문의 기둥이신 두 분께서 이렇게 겸손하시고 타인에게 베푸시려고만 하시니 로체 백작가는 선대에 베푼 온정이 후대에까지 전해져 영원히 번창할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전에도 동료 분들을 찾으셨지요?”

    후버의 질문에 런팅이 자신의 동료들이 걱정이 되는 듯 얼굴이 찌뿌려졌다.

    “아직 제가 힘이 부족하여 안티구아 공작의 기사들을 막을 만큼의 능력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위로가 될지는 모르나 그들의 시신이 온전하다면 날이 밝는 대로 시신이라도 수습하겠습니다.”

    “그래만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거듭 신세를 져서 죄송합니다.”

    이후 후버는 런팅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 후 직접 런팅이 묵을 방을 안내해 주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고 한스는 방금 전 후버의 다혈질적인 행동이 지금 먹고 있는 약의 부작용이라는 식으로 둘러대면서 다시 한 번 런팅에게 후버를 대신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고 런팅은 이해한다는 답으로 한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우아~ 주인님 완전히 다른 사람 같던데요.”

    “그저 마음에서 시키는 대로…….”

    말을 하려던 후버가 책상 위에 있는 나무통을 집어서는 벌컥벌컥 마셨다.

    “푸하! 백작 새끼 혀 참 길더라~ 명 짧은 놈은 듣다가 아주 그냥 저세상으로 가겠어!”

    한마디를 내뱉은 후버는 다시 한 번 나무통의 몬스터의 피를 마셨다.

    “그렇게 티나냐?”

    “주인님 스스로 생각해보세요. 지금의 모습과 아까의 모습… 진짜 저는 소름이 돋았다니까요.”

    슬렌이 자기 팔을 보라는 듯이 후버에게 내밀었다.

    “뭐 별거 없구만.”

    “아까 보여 드렸어야 하는데, 소름이 그냥 쫙쫙 끼치는 게 주인님 안 같았어요. 이게 신성력을 몸에 지닌 부작용이라는 거죠?”

    “그런가 보더라. 근데 말이다… 내가 이 신성력을 몸에 지니고 생각을 해본 건데 말이야… 신관들의 정신력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단 말이지… 어떻게 이런 강력한 힘에 저항을 하고 탐욕을 부리는 건지…….”

    “주인님처럼 벼락치기로 얻은 거랑 그들이랑 같겠어요? 그들은 천천히 적응이 된 거겠죠. 신성력이 강해질수록 그들의 탐욕도 강해지고 그렇게 비등비등하다가 마법사가 그렇듯이 정체기가 오는 순간! 탐욕이 신성력을 압도해 버리는 거죠.”

    슬렌의 그럴 듯한 말에 후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이제 어쩌실 생각이세요? 지금 이대로라면 우리가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잖아요?”

    “글쎄? 우선 풀어줬던 생쥐를 다시 잡아야지.”

    후버의 이해 못할 말에 슬렌이 몇 차례 후버에게 무슨 뜻인지를 물었지만 후버는 몰라도 된다면서 침대에 누워서 잠에 빠졌고 후버를 향해 칭얼대던 슬렌 역시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같은 시간 런팅을 놓쳤다는 보고에 안티구아 공작은 분노에 휩싸여 보고를 받던 통신구를 던져 버리는 것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했다.

    후버가 안티구아 공작의 작전을 방해한 시간은 채 5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일로 인해서 후버를 향한 안티구아 공작의 무력 도발은 현재로서는 무기한 연장되고 말았다.

    똑똑!

    클루니 백작이 영지에 도착하기로 한 날의 아침 후버의 방에 울리는 노크 소리에 후버가 문을 열자 문 앞에는 고딕이 서 있었다.

    “후버 님 부탁하신 물품을 가지고 왔습니다.”

    “오! 수고했어. 로체 백작가와 아가스틴 공작가의 관계에 대한 보고서는 틀림없겠지?”

    “저희가 조사할 수 있는 선에서는 그렇습니다. 저도 믿겨지지 않지만 어떤 경로로 알아봐도 그 외의 설득력 있는 설명을 찾기는 힘들었습니다.”

    고딕의 설명에 후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이군. 로체 가문이 손실을 감수하면서 아가스틴 공작가를 돕는 이유가 수백 년 전의 약속 때문이라는 건가?”

    “조사한 저도 이해가 가지는 않습니다만 사실로 보였습니다. 아가스틴 공작가가 공작으로 승작하기 전 로체 백작가와 아가스틴 백작가의 가주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서로를 돕기로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한때는 두 가문이 서로에 대한 무제한 적인 상호조약을 맺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로체 백작가는 그 약속을 지키고 있고 아가스틴 공작가는 홀라당 까먹었다는 거군.”

    “대충 요약하자면 그렇습니다. 아가스틴 백작가가 승작을 하는 과정에서 점차적으로 중앙 귀족과의 관계는 끈끈해진 반면 지방 소귀족인 로체 가문과의 관계는 소원해 졌습니다.

    “그럼 원래 두 가문의 영지가 서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건가?”

    “아가스틴 백작가였던 시절 기존의 영지 대신 중앙의 영지를 영지전을 통해 흡수하면서 아예 근거지를 옮겨 버렸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뭐 아가스틴 백작가는 승작을 거듭하면서 더 이상 로체 백작가와는 급이 안 맞는다고 생각했는지 정기적으로 하던 왕래마저 끊겼다고 합니다.”

    “하긴… 성공한자가 굳이 과거의 친우를 챙길 필요를 느끼지는 못했겠지.”

    후버의 시니컬한 말에 고딕 역시 동조했다.

    “저도 그렇습니다. 처음 도둑 길드에 들어왔을 때 친하게 사귀던 녀석들과는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으니까요.”

    어깨를 으쓱하는 고딕의 모습에 후버가 쓴웃음을 지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백작가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대체로 평판은 좋습니다. 지금까지 부당한 행위로 지탄을 받은 적은 신기할 정도로 없습니다. 굳이 이미지를 따지자면 그냥 조용한 영지의 조용한 영주 그리고 남에게 피해는 안 주는 그런 느낌입니다.”

    “내 질문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부분이네.”

    “사람 속을 알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조사 범위 내에서는 믿을 수 있습니다.”

    “좋아, 너의 판단을 믿어주지.”

    고딕의 조사를 신뢰 하는 것도 있지만 후버가 고딕의 생각에 동의하는 데는 통신구를 통해 런팅과 살로만이 나눈 대화의 비중이 컸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런팅은 백작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백작가를 떠났고 런팅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클루니 백작은 런팅을 잡지 않았다는 말 그리고 런팅이 생사의 위기에 처하자 조지아 공작가로 자신을 투신했다는 말이 의미하는 것과 고딕이 조사해온 약속이라는 것이 전후가 매끄럽게 연결이 되기 때문이었다.

    “클루니 백작은 백작가보다 약속을 소중히 여겼고 차기의 백작가를 이끌어 갈 런팅은 그런 약속을 지키는 가주가 마땅찮게 보였겠지 결국 둘은 그렇게 사이가 멀어지게 됐지만 이번에 안티구아 공작이 런팅을 처리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아무런 실익도 없이 의무만이 강요되는 약속을 파기한 거지.”

    “그런데 안티구아 공작은 그런 약속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은 것이구요?”

    “요약하자면 상황이 그렇지 클루니 백작가의 가풍은 참 좋은 사람들만 모아놓았나 보군.”

    후버와 고딕이 대화를 끝낼 즈음 집사가 와서 클루니 백작의 도착을 알렸고 후버는 고딕이 전해준 책을 자신의 품속에 넣고는 클루니 백작을 맞이하기 위해 온몸에 신성력을 돌렸다.

    신성력으로 한껏 저자세가 된 후버는 영지에 온 클루니를 그야말로 융숭하게 대접하였다.

    수대에 거처 끈끈한 혈맹을 맺은 상대를 대하는 듯한 후버의 행동에 처음 클루니 백작은 당황한 모습을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후버의 태도에 자신도 감화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영지 상태를 둘러보며 클루니는 후버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여러 차례 해주었고 후버는 클루니 백작의 조언을 그 자리에서 함께 영지를 순찰하고 있던 실무자에게 지시하여 클루니 백작의 채면을 세워주었다.

    “아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범위가 작지만 짜임새 있는 영지입니다. 미개발지를 포함한다면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매우 기대되는군요.”

    “감사합니다.”

    “아모르 왕세자님과 후버 님의 사려 깊음을 영지 곳곳에서 볼 수 있어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래도 어디 전통과 역사가 있는 로체 백작령만 하겠습니까?”

    “영지병의 사열식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이런 결과물을 반년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만들다니… 지금껏 제가 너무 게을렀던 것 같습니다.”

    “다 왕세자님의 덕분입니다. 저는 그저 지금 클루니 백작님의 조언을 따르는 것처럼 왕세자님의 말씀을 따랐을 뿐입니다.”

    “지시를 내리시는 왕세자님도 대단하시지만 그것을 막힘없이 따르는 후버 자작의 능력이 대단합니다.”

    후버, 클루니, 아모르 셋은 서로 간의 덕담을 주고받으며 3일에 거쳐 드라고니아 포레스트의 모든 것을 샅샅이 훑어보고는 마침내 영주관으로 돌아와 늦은 저녁 식사를 하였다.

    “후버 자작, 내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소. 나에게 이런 대접을 해주는 이유가 무엇이오? 나로서는 도저히 공의 뜻을 이해할 수가 없소.”

    복잡한 표정의 클루니가 후버에게 물었고 후버는 그저 미소를 지으며 클루니에게 식사를 권했다.

    “솔직히 말하겠소. 처음 이 영지에 와서 후버 자작이 영지군의 사열식을 보여준다고 했을 때 이제 1왕세자의 사람이 된 나에게 무력시위를 하는 것으로 생각했소. 하지만.”

    클루니 백작이 말을 해야 하나 아닌가에 대한 고민으로 잠시 말을 멈추었을 때 후버가 클루니 백작의 뒷말을 이었다.

    “저희 영지군의 숫자가 너무 작지요? 아마 백작님께서 가지신 영지군에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직설적인 후버의 말에 클루니 백작이 잠시 뜸을 들였지만 이 분위기를 수습할 말을 생각해 내었다.

    “질이 중요한 것 아니겠소.”

    “제가 지향하는 바이지만 아직 멀었지요.”

    “조만간 이루실 수 있을 것이오. 단순히 영지군의 수로 내 생각이 바뀐 것이 아니오. 후버 자작 그대는 진심으로 나를 친우로서 대해 주었소. 나는 드라고니아 영지의 발전 가능성을 보았지만 동시에 이 영지의 발전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상세한 정보를 얻게 되었소. 내가 이 사실을 블렌드 공작님에게 전한다면 자작과 2왕세자님 모두 곤란해지지 않겠소?”

    “백작님, 백작님께서 아시다시피 저는 본가인 레빌리온 백작가와의 관계가 현재 단절된 상태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제가 의지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무슨 말이오?”

    “평소 클루니 백작님의 올곧음은 익히 들어왔습니다. 아니 백작님이 아니라 로체 가문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겠군요.”

    “그게 무슨 말인가? 자네가 우리 가문을 어떻게 안다고?”

    후버의 말에 클루니 백작이 의문을 표하자 후버는 낡은 양피지로 엮은 책 한 권을 식탁 위에 올리고는 페이지를 넘겨서 클루니가 볼 수 있도록 책의 방향을 돌렸고 그 책에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희미한 글이 유려한 글씨체로 적혀 있었다.

    “로체 가문이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아가스틴 공작가와의 친밀한 관계를 다진 것은 까마득한 선대 간의 약속 때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비록 당대의 아가스틴 공작가의 가주인 안티구아가 그 약속을 잊고 백작님에게 천인공노할 짓을 한다고 하나 저희 가문의 초대가주이신 라일러스 님께서는 그러한 사실을 귀족의 귀감으로서 이렇게 문서로 남겨 두었습니다.”

    후버의 말에 클루니 백작은 눈앞의 책에 얼굴을 파묻고는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가리키며 희미한 글씨의 자취를 더듬었다.

    “아… 우리 가문에서도 대가 바뀔 때마다 잊혀질 듯 내려온 약속을 레빌리온 백작가가 기억한다는 말이오?”

    “이 책의 마지막 글귀를 보시면 저희 가문이 어째서 이 책을 이렇게 보관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후버가 가리킨 부분에는 다른 페이지와는 다르게 이 세월을 거스른 듯 선명한 필기체로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오직 이곳에는 다른 곳과 다르게 강력한 보존 마법을 걸어둔다. 만약 시간이 흘러 다른 페이지의 기록이 읽기 어려울 정도로 손상되었을 때도 이 책에 적힌 약속이 지켜지고 있다면 그 가문을 대함에 있어서 항상 예의와 신의를 잃지 말도록 하여라.

    -라일러스.

    “아…….”

    “레빌리온 백작가의 가주이신 아버지께서는 제가 가문을 세운다는 소식을 듣고 이 책을 저에게 물려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소중한 레빌리온 백작가의 가보이지요.”

    “그렇다면… 이 책이 정말로 대마도사인 라일러스 님의?”

    “그렇습니다. 마법 분야를 제외하고 초대 가주님께서 남기신 유일한 기록임과 동시에 저희 가문의 가보입니다.”

    클루니 백작은 한참 동안 빛바랜 페이지를 쓰다듬으며 살펴보았다.

    “실례되는 질문입니다만 안티구아 공작을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후버의 질문에 책에서 눈을 뗀 클루니의 시선이 흔들렸고 이내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해해야 하지 않겠소?. 공작가로서는 그게 최선이었을 테니.”

    공작을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클루니 백작이었지만 그것을 티 낼 만큼 어수룩하지는 않았다.

    “안티구아 공작가는 크게 후회할 것입니다. 신의를 저버리는 자의 결말 치고 좋게 끝난 자가 없지 않습니까?”

    “고맙소. 아가스틴 공작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대의 가문이 이 약속을 기억해 준다는 것이 너무도 고맙소. 사실 전대부터 그 약속을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오.”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아가스틴 공작가와 벌어지는 격차에 세상 사람들은 그 사실을 우리가 가문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퍼트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이오. 언제부턴가 우리가문은 기회주의자라는 비판을 항상 받아왔소.”

    클루니 백작이 한숨을 한번 쉬고는 식탁 위의 와인잔을 가져다가 가볍게 입을 축였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소. 매번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또 질문하고 세상의 평가와 가문의 기록 그 둘 사이의 큰 차이에 백작가를 이끄는 것이 참으로 무거운 짐이자 내려놓고 싶은 짐이었소.”

    침중한 클루니 백작의 말에 후버는 말없이 자신의 앞에 놓인 포도주를 마셨다.

    “이 침묵이 너무도 좋구려. 백작가의 집무실에서도 느끼지 못한 마음의 평안을 이곳에서 느낄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소.”

    클루니 백작과 후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동안 조용히 와인병을 기울였다.

    “오늘은 피곤하니 이만 쉬어도 되겠소?”

    “오늘은 마지막 날인 만큼 저의 방을 준비 하라 이르겠습니다.”

    한 영지의 영주로서 자신의 방을 손님에게 내주는 것은 최고의 예우에 가까웠다. 후버가 자신의 방을 내준다고 하자 거부하려던 클루니 백작은 후버의 눈빛에 서린 진심을 보고는 후버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그럼 실례하도록 하겠소.”

    허락의 답변을 들은 후버는 시종에게 방을 준비하라고 알렸고 시종은 후버가 방을 준비하라고 한 것을 고딕에게 알렸다.

    방이 준비되는 동안 후버와 클루니 백작은 약간의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종이 방이 모두 준비되었음을 알렸고 후버는 클루니 백작을 자신의 침실로 안내해 주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넘치는 환대에 감사하오.”

    “신의의 상징이신 분을 모시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그럼 편안한 밤이 되시길 바랍니다.”

    깊은 밤 후버의 침실에 두 명의 인영이 녹아내리듯이 스며들었다.

    클루니 백작의 낮은 코골이 소리를 장막삼아 고딕이 살금살금 후버의 방으로 들어갔다.

    클루니 백작이 확실히 잠에 든 것을 확인한 고딕은 클루니 백작의 귀에 액체를 한 방울 떨어뜨렸다.

    “그런데 그거 확실한 방법은 맞는 거야?”

    “믿으십쇼! 저희 길드 빈집털이의 비결입니다.”

    후버에게 조용히 하라는 손동작을 한 고딕이 반대쪽 귀에도 액체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좌우에 한 방울에 액체가 들어간 것을 확인한 고딕과 후버는 들어온 창문으로 나가면서 외부 벽에 통신구 하나를 붙이고는 임시로 정해진 후버의 숙소로 들어갔다.

    “그러니깐 이게 뭐라고?”

    “잠재의식을 조정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후버 님 꿈이란 건 말입니다. 깨기 직전 딱 5분 동안의 기억입니다.”

    “그래서?”

    “아까 귀에 떨어트린 액체가 하는 역할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사람의 의식을 몽롱한 상태로 빠트리는 것이고 두 번째는 외부의 소리에 둔감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럼 통신구는?”

    “이제 이 통신구로 메시지를 주면 됩니다. 작은 소리로 의구심을 심어 주는 거죠. 이제 후버 님의 책상 서랍 안에 위험한 무언가가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겁니다.

    보통 우리 길드가 빈집을 털 때는 집 안에 있는 게 위험하다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보냅니다.

    그럼 상대방은 불길한 꿈을 꾸고는 집 밖으로 열흘에서 한 달 정도 여행을 하지요. 그 틈에 우리가 들어가서 싹 쓸어버리는 거구요.”

    “뭐 결과야 해보면 알겠지 한 번 해봐.”

    후버가 허락을 하자 고딕은 조용조용히 통신구에 말을 하면서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했다.

    후버의 책상 서랍에 자신을 위협할 만한 위험한 물건이 있다는 경고가 2시간가량 지속되었고 후버가 지겨움을 이기지 못하고 뭐라고 한마디하려는 순간 고딕이 손을 들어서 후버를 제지했다.

    “조용히.”

    고딕의 말에 후버가 다시 자리에 앉아서는 통신구를 바라보았고 통신구에서 약간의 소음이 들렸다.

    “들리십니까? 곧 일어날 겁니다.”

    정말로 반응을 보이는 듯하자 고딕이 보라는 듯이 가슴을 쭉 내밀고 후버를 바라보았고 후버는 그런 고딕에 대해서는 신경을 끄고는 통신구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잠에서 덜 깬 클루니 백작이 무언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딕 역시 후버가 별 반응 없이 통신구에 집중하자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통신구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5분여가 지나고 나자.

    털썩.

    “뭐야?”

    “그게… 저…….”

    별말을 하지 않는 고딕을 보고 후버가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하는 일이…….”

    “2단계가 있습니다. 2단계! 거 참, 실망 너무 빠른신 것 아닙니까?”

    후버의 뒷말이 듣고 싶지 않은지 고딕이 쏜살처럼 밖으로 나갔고 후버는 그런 고딕을 따라나섰지만 금세 사라져 버린 고딕으로 인해 다시 방으로 들어와야 했다.

    고딕이 사라지고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창문 밖에서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별 짓을 다하는구만.”

    과정을 보지 않아도 고딕이 시킨 짓이란 것을 짐작한 후버가 한숨을 내쉬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딕이 후버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무래도 약을 너무 많이 쓴 것 같습니다. 저 약이 다 좋은데 양을 조정하는 게 좀 까다롭습니다. 너무 많이 쓰면 완전히 긴장이 풀려서 저렇게 다시 잠에 듭니다. 그래도 아직 선잠에 든 상태일 테니 곧 깨어날 것입니다.”

    고딕이 후버에게 변명을 하는 동안에도 기사로 변장한 도둑 길드원 들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영지관의 사람들을 하나둘 깨우고 있었다.

    “다 좋은데 괜한 사람까지 잠에서 깨겠네.”

    “약간의 부작용은 항상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고딕의 변명에 상대할 생각을 하지 않은 후버가 그저 조용히 다시 통신구를 연결해서는 클루니 백작의 동태를 살폈다.

    “일어나라… 일어나라 쫌.”

    고딕의 염원을 알았는지 다시금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고딕은 창가로 가서는 손을 흔들어 소음을 내는 것을 멈추라고 지시했다.

    “거참 복잡하네.”

    “거 쫌 자작님은 뭐 안 그렇습니까?”

    “너랑 나랑은 다르지… 결과가.”

    “결과? 이제 똑같아질 겁니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나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통신구를 통해서 클루니 백작의 발걸음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지금 클루니 백작은 갈등하고 있을 겁니다. 본인의 본능은 후버 님의 서랍을 열라고 시키고 있고 양심상 타인의 서랍을 여는 것은 좋지 않은 행동이라는 생각이 안에서 싸우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이리저리 저렇게 왔다 갔다 하는 거죠.”

    고딕의 상황 설명에 후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먹혀는 들고 있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고딕의 설명이 끝나고 갑작스레 클루니 백작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후버와 고딕은 통신구에 더 고개를 들이 밀고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소리를 듣기 위해 집중했다.

    탁.

    상황을 설명하려는 고딕의 입을 후버가 막았고 무언가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 장, 두 장 양피지를 넘기는 소리가 계속 될수록 고딕과 후버의 표정에 웃음이 번졌다.

    “거 보십쇼. 제가 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생색은…….”

    고딕의 말대로 종이를 넘겨본 클루니 백작은 중얼거리면서 방을 서성였다.

    “이제 결과만 기다리면 되겠군.”

    클루니 백작은 그 후에도 한참을 방 안을 서성였지만 후버와 고딕은 피곤함을 느끼고는 편안한 숙면에 빠졌다.

    다음 날 아침, 후버는 아침부터 길을 떠나겠다고 서두르는 클루니 백작을 굳이 잡지 않았고 후버에게 환대의 고마움을 표시한 클루니 백작은 도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블렌드 공작가의 기사들에게 호위를 받으며 떠나갔고 한동안 북적거리던 영지관에도 조용한 평화가 찾아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