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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보이지 않는 위협 (33/37)

귀환, 보이지 않는 위협

“고맙소. 다음에 보게 되면 꼭 사례하겠소.”

운이 좋았는지 후버는 아침부터 분주히 지름길을 질러가는 마차를 발견할 수 있었고 마침 마차의 목적지가 다음 마을에 기다리고 있는 손님을 태우는 것이라 하여 후버는 어렵지 않게 마차꾼에게 양해를 구하고 빈 마차를 탈 수 있었다.

마이트가 몰던 속도에 비하면 완행에 가깝지만 지름길을 질러가서인지 마차는 저녁이 되기 전에 목적지였던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내린 후버와 마이트는 마차의 주인에게 감사의 말을 건넸다.

“마차가 부서지다니 참 안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말씀만으로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잠시 다른 곳을 들렀다가 가겠습니다.”

지름길을 질러오면서도 마차의 바퀴가 헐거운 것 같다며 연신 투덜거리던 마차꾼이 불안한지 마차를 수리할 수 있는 마을의 반대편 입구를 향해 방향을 돌다 점점 작아지는 마차꾼을 배웅한 후버와 마이트는 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저는 이곳에서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돌아가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마차가 없으니 말이 있어도 손님을 더 이상 모시기 힘듭니다. 저의 미숙함으로 생긴 일이니 제가 선급으로 받았던 돈은 사죄의 뜻으로 돌려 드리겠습니다.”

마이트는 품 안에서 후버에게 받은 금화를 꺼내서는 공손하게 후버에게 두 손으로 건네주었다.

“사람이 그렇게 소심해서야… 마차도 부서지고 금화도 돌려주고 자네는 말하고 함께 풀만 뜯어 먹고 살려는 건가?”

가벼운 후버의 타박에 마이트가 한숨을 내쉬었고 후버는 그런 마이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둘의 나이차를 생각하면 썩 어색한 광경이었지만 신분제 사회임을 감안할 때 단정하고 깨끗한 옷을 입은 후버가 허름한 옷을 입은 마이트를 위로 하는 모습은 어찌 보면 더 당연해 보였다.

“기운을 내게. 이곳은 마을이 작아서 힘들겠지만 앞으로 하루거리에 조금 규모가 있는 마을이 있다고 알고 있으니 그때 내가 자네의 마차를 사주겠네.”

“마차를 사주신다니요?”

“내가 말했지 않은가? 서두르라고 한 내 책임도 적지 않다고. 다행히 다른 상한 곳은 치료가 되었으니 부서진 마차는 내가 변상하도록 하겠네.”

“어찌… 제가, 부러진 제 팔도 고쳐 주셨는데…….”

“내가 상하게 했으니 원래대로 바꾸어 보상해 주었을 뿐이네. 모쪼록 내가 책임을 다 할 수 있도록 해주게.”

어깨를 토닥이며 후버가 하는 말에 사내는 완전히 감동을 받았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울음을 터트렸다.

‘이건 좀 난감하군.’

“정말 …저는 손님 같은 분은 다시는 못 모실 겁니다.”

이제는 완전히 몸을 기대고 우는 통해 후버는 난감함을 느꼈다. 한참을 흐느끼는 마이트를 달래던 후버는 울음을 그친 듯하자 마이트를 두고 숙소에 들어오는 것으로 난감한 상황을 피하였다.

“이거…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한데 지금이야 마차 한 대 정도이지만 괜히 전시에도 이런 생각을 한다면.”

그저 본능이 시키는 대로 말을 했던 후버는 마이트의 격한 반응을 보고서야 자신의 행동에 심각한 문제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이 후버의 신분이 평민이라면 그저 마음씨 좋은 이웃이겠지만 후버의 위치를 생각하면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능력이 없는 자가 매우 선한 마음을 가진다면 그는 주변의 좋은 평판이라도 얻을 수 있지만, 후버와 같이 어느 정도 능력이 있는 사람이 매우 선한 마음을 가진다면 그것은 결국 자신의 모든 것을 잃는 것은 물론 과자 부스러기 하나라도 떨어질까 주위를 기웃거리는 실없는 사람만이 주위를 가득 채운다는 것을 후버는 모르지 않았다.

“앞으로 길면 3년, 빠르면 1년 안에 나는 내 주변을 감싸고 있는 수많은 영지와의 일전을 벌여야 한다. 혹시라도 사로잡는 적의 기사를 내 손으로 풀어주는 날에는…….”

평소 자신이라면 하지 않을 어처구니없는 상상에 후버는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자신의 적을 용서한다는 상상에 후버는 자신이 성자가 되지 않는 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과 동시에 며칠 만에 자신의 성격을 지배한 신성력에 대해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일단 이 빌어먹을 일의 원인부터 파악을 해야 돼!”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장 먼저 후버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팔찌였다.

한 번도 시도해본 적은 없지만 모든 것을 기록하는 팔찌 안, 그곳에 자신에 대한 기록도 있을 것이 분명했기에 후버는 팔찌에 신경을 집중하고 잠에 들었다.

풍덩!

‘이때가 약물에 빠진 때고.’’

평소와 다르게 배속을 적용하지 않은 후버의 눈에 자신이 정화되지 않은 몬스터의 피에 빠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래서야…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있나’

피상적인 모습만 보여주는 팔찌의 기능에 후버가 실망감을 느끼는 순간 눈앞이 확대되는 듯하더니 자신의 몸에 자리 잡은 3가지 기운이 한눈에 보였다.

첫 번째는 몸을 잠식하기 시작한 마성, 두 번째는 그러한 마성을 몰아내고 있는 신성력, 세 번째는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마나.

강력한 마성이 몸 안의 신성력을 모두 먹어치우고 심장의 마나까지 사라지게 하자 머리 부분부터 신성력이 투사되어 왔다.

차근히 영역을 넓히던 신성력이 가슴 즈음에서 더 이상의 전진을 하지는 못했다.

‘내가 저때 신성력으로 고리를 만들었지.’

자신이 생각해도 마나를 읽은 몸으로서는 최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 후버가 시간이 지날수록 표정이 어두워졌다.

‘저게 문제였군… 저게 문제였어.’

후버가 신성력을 가슴에 붙잡아 두고 마나의 고리를 만드는 동안 머리를 통해서 투사된 신성력이 정도 이상 쌓였고, 결국 신성력은 후버의 뇌 부분에 작은 덩어리를 만들면서 뭉치기 시작했다.

만약 정상적으로 머리 부분이 그저 신성력이 흐르는 통로의 역할만을 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라는 생각에 후버는 자만하던 마음이 사라지고 금방 자신을 자책했다.

‘근데 난 왜 저걸 느끼지 못하는 거지?’

앞으로 수 시간 지루하게 계속될 신성력과 마성의 싸움을 빠른 속도로 진행시키면서 보던 후버의 눈에 어느새 콩알만 하던 신성력의 덩어리가 사라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없어졌으니 느끼지 못한 건가?’

그 후 신성력의 덩어리는 주교와의 대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후버가 마이트의 마차를 타고 신성력을 통해 마법진을 만드는 순간 후버의 눈에 이질적인 신성력의 덩어리가 보였다.

마치 후버가 신성력을 사용하는 것에 반응하듯이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신성력의 덩어리의 모습에 후버는 언제 덩어리가 나타나는지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니깐… 나는 마법을 사용하려고 하면 할수록 착해지는 건가? 미친, 이러다가는 전쟁에서 적군이 죽는 게 불쌍해서 캐스팅을 하던 중 취소하겠군.’

신성력이 뇌를 장악한 암울한 미래를 그리던 후버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이트…….”

“…오래만…….”

자신이 직접 참여한 대화가 아니라서 그런지 희미하게 들리는 대화였지만 자신의 마차꾼이 마이트의 대화라서 그런지 후버는 마이트의 대화에 호기심이 생겼고 마침 우울한 기분을 풀 마음에 후버는 소리를 좀 더 자세히 듣기 원했고, 후버가 소리를 더 잘 듣기를 원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팔찌에서 둘의 대화를 여과 없이 후버에게 전했다.

처음 둘의 친밀한 모습에 웃음 짓던 후버의 표정이 대화가 진행이 될수록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무기의 이동이라…….’

설사 국왕이 금지한다고 해도 어떤 방식으로든지 영지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 후버였지만, 상대의 준비가 벌써부터 이렇게 구체적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정보를 준 오쇼라나 마이트는 영지 주변 숲 속에서 무기가 사라진 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후버는 쉽게 그 현상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진군 속도를 빠르게 하고 일반인으로 위장하여 이쪽을 칠 생각이로군.’

영지간의 이동의 자유가 보장된 만큼 영지민들의 이동이 추수가 끝난 겨울이나 여행하기에 알맞은 여름에 편중될 것이고 그 인원의 대부분이 3곳의 영지로 향할 것이라는 것은 자명했다.

‘유민으로 속여서 병력을 집결시키시겠다?’

중무장이 필요한 기사라면 몰라도 일반 병사가 전장에서 착용하는 장비라고는 창, 검 두 개 중 하나인 무기와 기사들의 풀 플레이트 메일에 비하면 방어력이라고는 형편없는 가죽 방어구 혹은 심장을 가려주는 얇은 금속판이 전부였고, 전쟁이 일어나기 전 경비가 심하지 않을 때 그러한 물자를 땅에 묻어두고 영지의 근처에서 무장하여 기습한다면 갑작스러운 기습에 상대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후버는 모르지 않았다.

‘문제는 당황하는 대상이 나라는 건데, 제법 머리를 썼는데… 1왕자? 3왕자?’

위와 같은 행위를 노련한 전쟁의 기술이라고 보느냐? 아니면 비겁한 짓이냐고 보냐에 따라 누가 될지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는 힘들었지만 후버의 심증은 1왕자를 모시는 강직한 블렌드보다 3왕자를 모시는 안티구아 공작에게 심증이 갔다.

“능력 없는 도둑 길드 새끼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받아준 도둑 길드에서 아무런 연락도 없다는 생각에 후버는 갑작스럽게 머리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차피 일어난 일이라고 자위한 후버는 그 이후의 일까지 빠르게 돌리며 살펴보았고 결국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략적인 무기 이동에 대한 사실 관계를 확인한 후버는 처음 목적과 다르게 영지를 침범 당했다는 더러운 기분을 가지고 다시금 관심을 신성력에 돌렸다.

“마성이나 신성력이나 활용하는 당사자에게 깊은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지 않군… 빌어먹을 그나마 여기서는 좀 생각이 자유로운 것 같은데 밖으로만 나가면 문제야.”

느낌상 슬슬 아침이 다가온 다는 것을 직감한 후버는 팔찌의 접속을 끊고는 생각한 해결책을 실행하기 위해서 드라고니아 포레스트로 가야 할 필요가 있기에 팔찌에 대합 접속을 끊고는 아침을 맞이하였다.

어제와 다르게 기운이 넘쳐 보이는 마이트와 함께 후버는 마차꾼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고 어렵지 않게 다음 목적지로 가는 마차를 구할 수 있었다.

마이트가 가지고 있는 말을 두고 갈 수 없기에 허름한 마차는 졸지에 4두 마차가 되었고 그 만큼 다음 목적지에 빠르게 도착한 후버는 약속한 대로 마이트 에게 썩 괜찮은 마차를 사주었다.

후버의 호의에 수십 차례 고맙다는 말만을 반복한 마이트가 다시 고삐를 잡았고, 후버의 당부로 인해 전보다는 여유 있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새로운 마차를 타고 보내는 첫 번째 야영지에서 후버는 마이트에게 의외의 제안을 건넸다.

“자네만 괜찮다면 드라고니아 포레스트에서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은 어떤가?”

“새로운 인생이라니요?”

“뭐 거창하게 말하면 새로운 인생이지만 자네도 이주를 하는 것이 어떤가 묻는 거라네? 내가 이래 봬도 실력은 어느 정도 있어서 드라고니아 영지에서 일을 못할 것 같지는 않은데, 내 전속 마차꾼이 되는 것은 어떠한가? 보수는 섭섭지 않게 주도록 하겠네.”

후버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마이트가 당황했다.

“자네도 이제 현역으로 뛰기에는 적합하지 않고 말도 그렇지 않은가? 보아하니 여행을 처음 떠나올 때와 지금의 말 상태가 안쓰러울 정도로 다른데.”

“그야 당연합죠. 말들도 늙어서 이런 강행군을 버티기는 힘든 모양입니다.”

“나야 영지 안에서 일하면 바쁜 일이 있겠는가? 그저 영지 안을 시찰하거나 할 때 천천히 마차를 운전하기만 하면 되니 말에게도 좋고 자네도 힘이 적게 들고 안정적이니 좋지 않은가?”

“그래도…….”

“한 달에 부지런히 일을 하면 얼마 정도를 버는가?”

“대략 3골드 정도 법니다.”

“적지 않은 수입이군. 그럼 나도 3골드씩 매달 지급하겠네. 그래도 부족한가?”

후버의 제안에 마이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돈 때문이 아니라… 손님 제가 지금부터 말하는 것은 저에게 들었다고 하시면 안 됩니다.”

“무슨 말이기에 그렇게 뜸을 들이나?”

“꼭 약속하셔야 됩니다. 꼭이요.”

“알겠네. 내 약속하지.”

“사실은 말입니다. 저에게 친구 한 명이 있는데 말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후버는 마이트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주었다.

“그러니 손님께서도 부득이한 사정이 아니시라면 그곳에 정착하시는 것은 좀 더 생각해보심이 맞을 것 같습니다.”

“우선 충고 고맙네. 하지만 나는 이 영지에 반드시 정착해야 할 사람이니 이제 자네가 한번 대답을 해줘보게. 나의 전속 마차꾼이 될 텐가?”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후버의 모습에 마이트는 답답함을 느꼈다.

“그러니깐 손님, 이곳에서 영지전이 일어날 수도 있단 말입니다. 굳이 그런 영지에 머무시려는 이유가 뭡니까?”

후버가 자신의 신분을 설명하려는 찰나 일단의 일행들이 후버를 발견하고 숲에서 나왔다.

“후버 님!”

반가운 듯이 목소리를 높인 것은 영지의 대외적, 내적 정보를 담당하고 있는 고딕이었다.

“어서들 오시게.”

“연락을 받고 급히 왔습니다.”

“급박한 연락의 와중에도 이렇게 빨리 와줘서 정말 고맙소.”

“별말씀을.”

평소와 다른 후버의 어투에 고딕이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우뚱해 보였다.

“마이트, 자네가 드라고니아 영지에 온다면 여기 있는 고딕 정보부장이 자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장해 주겠소. 물론 자네의 가족을 포함해서 말이야.”

“그렇다고 해도…….”

병장기를 각자 하나씩 들고 흉흉한 인상을 보이고 있는 도둑 길드원들의 모습에 위축이 된 듯이 마이트가 뒷말을 흐렸다.

“뭐 당장 결정하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하네. 우선 자네가 준 정보에 대한 대가를 주지.”

후버가 품 안에서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를 하나 던져 주었다.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생각해보도록 하면 될 것이야. 여기서 부터는 이자들과 함께 돌아가기로 했으니.”

“알겠습니다.”

갑자기 주머니를 던져주는 모습에 마이트는 당황했지만 인상이 험악한 사내들에 둘러싸여서인지 자리를 얼른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별 말없이 자신의 마차를 돌렸다.

“고딕 정보부장, 두 분을 보내서 마이트를 보호해 주도록 하게.”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후버의 지시에 고딕은 자신의 부하 중 쓸 만한 자 2명에게 후버의 명령을 전달했고 둘은 말을 타고 마이트를 뒤따라갔다.

“그리고 내가 부탁한 것을 가지고 오게.”

후버의 명령에 고딕이 어른의 팔뚝만 한 나무통을 마차에서 꺼내서는 후버에게 건넸고 후버는 따라오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고 고딕이 준 나무통을 들고는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2분여를 고딕 일행이 후버를 볼 수 없는 곳까지 들어간 후버는 마개를 따고 통 안에 든 액체를 시원하게 들이키기 시작했다.

꿀꺽, 꿀꺽.

“크아! 비리구만! 빌어먹을 사제 새끼들은 이런 개 같은 액체에 나를 빠트렸단 말이지? 치료 두 번 했다간 냄새 난다고 아무도 곁에 안 오겠네. 씨발 것들!”

몬스터의 피가 농축된 액체를 마신 후버는 며칠간 쌓여 있던 스트레스를 풀듯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욕으로 풀어내었다.

“똑똑한 나이니 망정이지, 평범한 새끼였으면 평생 호구 새끼처럼 살아야 됐을 거야. 빌어먹을 아오 씨발! 입만 열면 반 존대가 자동으로 나오니 영주 체면이 살겠냐고, 쓰바!”

자신의 언어가 평소와 같이 제대로 나오는 것을 확인한 후버는 고딕이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야 이 새끼야!”

“넵?”

아까와는 180도 다른 후버의 평소 말투에 고딕이 친밀감을 느끼려는 찰나 후버의 주먹이 고딕의 얼굴에 쑤셔 박혔다.

“야이 새끼야! 똑바로 안 하냐? 똑바로 안 해? 아주 영지 정보부대 상태가 개판이야! 너 나한테 보고할 것 있어 없어?”

“갑자기 다짜고짜 무슨 말씀이십니까?”

“있어 없어 이 새끼야?”

“보고 할 것이야 있지요. 있는데 뭐 범위를 정해줘야지 보고하지 짐작으로 다른 거 보고하면 또 때리실 것 아닙니까? 부하들 보는 앞에서 그래도 쫀심이 있지.”

“부하들? 쫀심?”

“그렇지 않습니까? 영지 내에서 저는 그래도 정보부장이고 길드 내에서도 서열이 2위인데 이렇게 막대하시면 제가 뭐가 됩니까?”

“쫀심? 좋지. 네 밑으로 다 머리 박아!”

“네?”

“보는 앞에서 쪽이 팔리신다면서? 다들 땅만 처박혀서 보게 해줄 테니까 대가리 박으라고 이 새끼야!”

어리둥절해 하던 부하들도 후버가 고딕의 정강이를 걷어차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모두 머리를 땅에 박았다.

“쫀심? 좋지. 근데 쫀심 챙기려면 혼나는 소리도 안 들려야겠네? 대가리 박은 상태에서 바닥에 흑 귓속에 처박는다. 실시!”

자신의 말 한마디로 인해 부하들이 땅에 머리를 박고 귀에 흙을 집어넣고 있자 고딕이 당황했다.

“물어보십쇼. 물어보면 다 대답하지 않겠습니까?”

“영지 방어, 3번 기회 줄 테니까 중요한 순서대로 말해보세요.”

“네?”

씹어 뱉듯이 말하던 후버가 마지막으로 귀속에 흙을 처넣던 부하들이나, 그런 부하들은 안쓰럽게 바라보며 이야기 하던 고딕이나, 말을 한 후버나 당황을 했고 조용한 와중에 후버가 손에 들고 있던 통에 든 몬스터의 피를 마셨다.

“으으! 그거 마시라고 가져오라고 하신 겁니까?”

혐오감이 담긴 고딕의 시선을 무시하고 후버가 몬스터의 피를 마셨다.

꿀꺽!

“그럼 구경하려고 가져 오라고 했겠냐? 맨날 피에 쩔은 고기도 덜 익혀 먹는 것들이 이깟 거 마신다고… 너 눈에 힘 안 푸냐? 이 새끼! 이거 다방면으로 불손하네, 영지 방어에 대해서나 읊으라고!”

“영지 방어는 아무 문제없습니다.”

퍽.

“다시!”

“첩자야 조금 들어와 있지 않겠습니까?”

퍽!

“마지막이다. 다시!”

“아직 병사들에게 무기가 다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시급한 것은 병사들을 무장시키는 것입니다.”

“이 새끼가… 비슷한데 틀렸어, 이 새끼야! 실패!”

“그럼 뭡니까?”

세 번째로 까인 정강이를 부여잡은 고딕이 후버에게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를 높였다.

“너 영지 관리 어디까지 하냐?”

“특별한 범위가 어디 있습니까? 수상하다 싶으면 의심이 해결될 때까지 무한정 신경 쓰고 있습니다. 제가 일 대충하는 줄 아십니까?”

“그러니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일은 완벽하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아니면?”

“제가 다 책임지겠습니다.”

“좋아, 그 말 기억해두겠어. 지금부터 전 인원 이 일대를 수색한다. 부하들 일어나서 귓속에 박힌 흙 빼내라고 해라!”

후버의 말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고딕의 부하들이 일어나서는 귀에 박힌 흙을 떼기 위해 제자리 뛰기를 하였고 그런 고딕의 부하를 본 후버가 고딕의 부하들의 정강이를 한 번씩 걷어차고 고딕의 정강이는 부하들의 수대로 걷어찼다.

“얼마나 대충 처넣었기에 내가 하는 말이 그냥 들리냐? 정보부장 너는 네 새끼들이 명령에 불복종했으니깐 몰아서 맞는 거고, 니들은 상관의 명령을 대충 따랐으니 맞는 거고 똑바로 들 해라! 이 빌어먹을 새끼들아!”

“너무 하십니다. 수도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다고 저희를 이렇게 패십니까?”

“수도에서는 좋은 일만 있었어. 이 새끼가 어디서 넘겨 집고 있어? 아주 입만 열면 매를 자동으로 벌어, 지금 이 시간부로 보물찾기를 시작한다. 니들 9명 한편으로 하고, 나 혼자 편먹고 보물은 여기서부터 영지까지 가는 길 산속어딘가에 숨겨져 있다. 내가 니들보다 먼저 찾으면… 고딕 정보부장이 모든 것을 책임질 것이다.”

“보물이 뭡니까?”

“각종 병장기가 산속 여기저기에 묻혀 있다. 아주 그냥 나보다 늦게 찾으면 응? 니들은 구덩이 하나하나에 토막 나서 빈 자리 메울 각오해, 알겠어?”

“말씀 참 끔찍하게 하십니다. 만약에 저희가 먼저 찾으면 어쩌시겠습니까?”

“보상을 바라면 일주일 전에 찾아 놓던가? 제일 못한 줄은 모르고 어디서 조건을 걸고 있어? 그리고 영지에 연락해서 정보부원들 50명쯤 더 오라 그러고. 올 때 이 주스 한 통씩 가지고 오라 그래. 농축 더 잘된 걸로. 수색 끝나고 나보다 적게 찾으면 각오 단단히 하게 정신 교육시키고 지금부터 시작!”

“발견하면 어떻게 합니까?”

“지도에 위치 표기하고 건드리지 말라고 해. 이곳 여기저기에도 무기 파묻은 새끼들이 대기하고 있을 테니까 움직일 때는 은신엄폐하고 식사는 조리가 필요 없는 빵으로 통일하고 배설물은 반드시 묻어서 뒤처리 깔끔하게 하라고 해 알겠나?”

“알겠습니다.”

“이제 진짜 시작!”

후버의 시작 신호가 다시 떨어지자 고딕은 영지로 통신을 넣고 나머지는 산개하여 주변 숲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산개해서 흔적을 찾는 정보부원을 본 후버는 혀를 몇 번 차서 안쓰러움을 표시하고는 주변의 마나를 있는 대로 끌어들여서 땅에 대고 샤프니스 마법을 광역 시전했다.

“여기엔 아무것도 없고.”

“후버 님 마법을 쓰는 것은 반칙 아닙니까?”

“그럼 내가 허리 굳히고 땅만 보고 걸으랴? 억울하면 너도 마법을 사용하던가?”

괜한 문제제기를 해서 본전도 못 찾은 고딕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숲 속으로 들어가서 흔적을 찾기 시작했고, 후버는 일정거리마다 마법의 사용을 반복하며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몇 번을 마법을 이용해 흔적을 찾던 후버에게 마침내 처음으로 마나가 소모되는 느낌이 잡혔다. 동쪽으로 100미터 즈음에 땅으로 흡수되는 마나의 흔적을 따라온 후버가 조심스럽게 땅을 팠고, 50cm 정도 파자 차가운 금속성의 물질이 손끝에 감지되었다.

“하나 찾았다.”

수정구를 통해서 고딕에게 소식을 전한 후버가 샤프니스 마법을 정밀하게 조정하여 대략적으로 땅속에 파묻힌 병장기의 수를 가늠하였다.

“구덩이 하나당 대략적으로 50여 명이 무장할 수 있는 병장기가 파묻혀 있다. 그쪽은 찾았나?”

“아직 흔적도 찾지 못했습니다.”

이후 일주일간 후버는 영지로 가는 길의 한쪽 방향을 맡아서 철저히 수거했고 약 20개의 무기를 감추어둔 구덩이를 찾을 수 있었고 고딕과 부하들은 10여 개의 구덩이를 찾을 수 있었다.

처음 약속한 대로 후버는 자신보다 낮은 성과를 낸 고딕을 모든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한 시간 여의 연설을 통해 지옥을 느낄 정도로 갈구었다.

풀이 잔뜩 죽은 고딕을 비롯한 영지의 모든 가신이 모이는 회의에서 고딕이 발견된 구덩이의 위치와 그 양을 보고하였다.

*

*

*

“후버 님에게 그저 죄송할 뿐입니다.”

먼저 사과의 발언을 하는 체이서를 시작으로 영지 가신들이 줄줄이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밝혔고 후버는 그런 그들을 위로하였다.

“뭐 어쩌겠소? 100명이 속이려는 일을 한 명을 못 막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니, 과거의 일을 이야기하기보다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을 것 같소. 모두를 대신해서 죄를 뒤집어 쓴 고딕 정보부장에게 위로의 말을 해주고 싶소.”

“아닙니다.”

“정보부장은 긍지를 가지고 일을 해주시기 바라오. 나 역시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대비하지 못하였을 것이오. 그대에게 기대가 높으니 바라는 게 많은 것뿐, 이번 일에 대해서 누구의 실수라고도 생각하지 않소.”

“그렇게 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먼저 풀이 죽은 고딕에게 적절한 위로의 말을 건넨 후버가 다른 가신들을 둘러보았다.

“수도에 가서 있었던 일은 간단하게 요약해서 답변해 주겠소. 먼저 수도에 가서 한 일은 성공적이었소. 그 일에는 고딕 정보부장의 공이 크오.”

공연히 고딕을 추켜세우는 말에 너도 나도 고딕을 함께 칭찬하는 것으로 분위기를 맞추었고 의기소침해 있던 고딕도 어느 정도 기분이 풀린 듯 얼굴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신전과 적극적인 관계를 맺어서 이곳에 신전이 들어설 예정이니 모두 그렇게 알고 있으면 될 것 같소.”

“안 됩니다!”

“왜 그렇게 놀라시오? 매터 상단주?”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매터를 보고 후버가 물었다.

“신전이라니요? 신전은 재앙입니다. 후버 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신전이 들어서는 순간 영지는 황폐해지고 신관과 놀아나는 영지민으로 인해 가정이 무너지고 무너진 가정은 사회를 무너트립니다. 마땅히 영지의 발전을 위해 써야 할 재물이 모두 신전 안으로 흡수되어서 수도로 보내집니다. 그들은 농작물을 디룩디룩 처먹는 살찐 빌어먹을 메뚜기 때들입니다.”

“저 역시 매터 상단주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저 역시… 재청합니다.”

마치 더러운 것이라도 본 듯이 치를 떠는 매터 상단주와 그러한 매터의 의견에 조용히 동조하는 카운팅 재무장관과 스케일 총재까지. 후버는 그 모습에 자신이 뽑은 인재가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오. 그들이 수도로 물자를 가지고 가는 경우는 없을 것이오. 오히려 그들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바칠 것이오.”

“무슨 말씀이십니까?”

“차차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지만 일단 우리 영지의 1년 예산을 웃도는 부분을 그들이 현물 출자할 것이오. 식량, 목재 등등 필요한 부분은 거의 무제한 적으로 지원할 테니 그 효과를 스케일 총재가 분석해보시오. 일차적으로 상세 리스트는 여기에 있소.”

후버가 양피지로 만들어진 두루마리를 건네자 스케일은 그 두루마리를 공손히 받아들었다.

“밤을 새서라도 내일까지 보고 드리겠습니다.”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요청해도 좋소.”

“유념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치료사가 아니겠소? 그들도 대량으로 들어오기로 했으니 전염병이 돌 일은 없을 것이오.”

“그럼 그들이 가져가는 반대급부는 무엇입니까?”

“없소! 아니지 굳이 말하자면 연필 몇 자루를 주긴 했지만 받아갈 것은 없소. 단지 그들이 이곳으로 오게 되면 내 행동이 다소 변할 것이니 미리미리 적응을 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오.”

“행동이 변한다 하시면?”

“일단 나는 더 이상 마법사가 아닌 사제에 가깝소. 그러니깐…….”

설명함의 난감함을 느낀 후버는 몸 안에 있는 신성력을 주변에 풀어내었다.

갑작스러운 신성력의 발현에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대충 이렇게 된 것이오.”

뭔가 많은 것이 생략된 후버의 설명에 가신들은 놀라기만 할뿐 의문을 표하기가 힘들었다. 후버가 수도에 갔다 온 것은 고작 한 달, 길 위에서 보름을 보냈다고 한다면 남은 보름 동안 어지간한 대사제와는 비교도 안 되는 신성력을 뿌리는 후버의 모습은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조금만 더 부연 설명을 하자면 그들은 나를 신의 사자라고 생각한다오.”

“그 작전이 먹힌 겁니까?”

“먹히다니, 그 무슨 상스러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오. 고딕 정보부장, 그저 그들과 나의 뜻이 통했을 뿐이오.”

고딕의 물음에 후버가 웃으며 답하자 고딕은 그럴 리가 없다는 듯이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부정하였다.

“말도 안 되는 것 같소?”

후버가 탁자 위에 놓여 있는 나무통을 만지면서 말을 하자 고딕이 고개를 저으며 후버의 말을 부정했다.

“믿습니다. 믿고말고요.”

고딕이 빠르게 후버의 말을 믿는다고 했지만 이미 후버는 한모금의 피를 마신 상태였다.

“다행이군, 어찌 된 일인지는 자네가 가신들에게 설명을 해주면 될 것 같은데, 해줄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저의 존재 이유지요.”

“좋군, 일단 30개 정도 되는 그러니까 대략 1,500명 정도가 무장할 수 있는 분량의 무기가 사실상 영지 근처에 묻혀 있는 것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군요. 이 무기들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습니까?”

후버의 질문에 체이서가 먼저 대답했다.

“노획했다고 생각하고 부족한 영지병의 무장을 다듬는 게 어떻습니까?”

“녹여서 공방의 재료로 쓰는 것도 좋을 것 같고…….”

뒤를 이어 자신이 없는 듯 뒷말을 흐리는 미캐닉을 필두로 가신마다 여러 가지 방안을 내놓았다.

각자 자신이 맡은 부분에서 사용하자는 의견이 대다수였고 공통된 부분은 일단 영지 근처의 병장기를 회수하자는 의견이 주를 이었다.

“대다수가 일단 병장기를 회수하겠다는 의견인데 다른 의견은 없습니까? 회수후의 분배는 이후의 문제이니 회수 외의 다른 생각이 있으신 분은 기탄없이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후버의 질문에 모두가 혹시 후버가 생각하는 다른 답이 있는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모두가 머리를 굴리는 시점에 항상 회의에 참석하기만 할뿐 이렇다 할 발언을 하지 않던 아모르 왕세자가 대답을 하였다.

“노획외의 방법이라면 저에게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아모르가 방법이 있다고 하자 모두의 시선이 왕세자에게 쏠렸다.

후버는 혹시라도 왕세자라는 허울 때문에 모두가 왕세자가 잘못된 의견을 말하여도 왕세자의 명예를 생각해 동조할까 걱정했기 때문에, 왕세자가 아직 어리고 경험 없다는 이유로 회의에 참석을 하게 할뿐 발언권을 주지 않고 있었다.

그런 후버의 생각을 아는지라 조용히 있던 왕세자가 발언을 한다고 하자 모두의 시선이 왕세자에게 몰렸다.

“무엇입니까? 기탄없이 말씀하시지요.”

후버는 일순 왕세자가 발언을 하려고 하자 그 발언을 제지해야 할지, 아닌지에 대해서보다는 존칭을 해야 할지, 아니면 평소대로 말을 편하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였지만 주변의 눈도 있기에 존대를 택하였다.

“후버 님은 모르시겠지만 왕성에서 오래 생활한 저는 이런 짓을 누가 할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3왕세자를 등에 업은 안티구아 공작의 행동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근거는 있으신지요?”

“근거라기보다는 저의 개인적인 경험입니다. 국왕전하께서 이번 영지전을 어디까지나 평화로운 방식으로 치루기를 명령하신 것은 여기 계신 분들 모두 아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후버가 대표로 가볍게 왕세자의 말에 동조를 해주었다.

“조지아 가문은 대대로 우리 왕국을 보호해온 가문입니다. 음으로나 양으로나 최고의 인재를 바탕으로 왕국의 실질적 힘이 되어 주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왕국에 해가되는 결정을 하지 않습니다. 아쉽게도 이번에는 서로간 뜻이 통하지 않았지만 그들 역시도 왕국에 최선이 되는 방향으로 경쟁에 임할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안티구아 공작이 가주로 있는 아가스틴 가문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까?”

“아가스틴 가문이 그렇지 않다고는 하지 못하나, 둘 중 누가 먼저 국왕전하의 명을 어길지를 평가한다면 아가스틴 쪽의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하지만 조지아 가문 역시 국왕전하께서 아모르 왕세자를 간택하겠다는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후버의 적절한 지적에 아모르는 입을 다물고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제가 2왕세자인 한계가 아니겠습니까?”

착잡한 듯이 내리깔린 아모르의 목소리에 회의장의 분위기도 함께 무거워졌다.

“그럼 왕세자님의 말씀대로 조지아 가문이 아니라 아가스틴 가문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까? 저희는 아직 왕세자님의 해법을 듣지 못했습니다.”

“저희는 조지아 가문이 담당하고 있는 엔트로 영지의 실상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곳에도 무기가 묻혀 있다면 확실한 것이 될 테니까요.”

“만약에 아니라면? 그러니깐 그곳에 아무런 병장기도 묻혀있지 않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것은…….”

생각할 시간을 주려는 듯 후버가 왕세자의 다음 말을 기다려 주었다. 하지만 한참을 생각해도 결론이 나오지 않는지 아모르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군주라면 항상 예비책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왕세자님.”

“죄송합니다.”

“만약 발견되지 않으면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에게 파묻은 병장기의 일부를 꺼내서 공작가에도 파묻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우리에게 파묻은 병장기를 모두 노획하는 방법입니다. 어느 것이 더 합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모르는 자신이 읽어왔던 후버에 대한 기록을 생각해 보았다.

왕세자로서 다소 자존심이 상하긴 하지만 평소 후버의 성향을 봤을 때 지금 해야 할 답은 너무나 명확해 보였다.

평소 이런저런 함정을 파두는 것을 좋아하는 후버의 성정대로 아모르 왕세자는 답을 하였다.

“우리 쪽에 묻힌 병장기를 1왕세자가 있는 엔트로 영지 부근에 파묻어야 합니다.”

아모르의 말에 대한 반응은 후버가 아닌 가신들의 입에서 탄식으로 터져 나왔다.

“그 부분은 제가 왕세자님에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후버 님.”

고딕의 말에 후버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뭐… 제가 왕세자님께서 보시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도둑 길드 서열 2위! 그리고 이곳에서는 정보를 총괄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말씀드리자면 왕세자님의 계획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인가요?”

“첫 번째로 사실상 안티구아 공작이 모르게 영지 주변의 병장기를 노획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어쩌면 벌써 그들은 우리가 병장기의 위치를 파악한 것을 눈치챘을 수도 있습니다. 그 많은 병장기를 누가 묻어 놓았겠습니까? 그 인원은 아직도 영지 내부 또는 외부에 있을 것입니다. 즉 몰래 그러한 행위를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두 번째로 공작과 우리의 전력 차이를 무시하셨습니다. 만약 안티구아 공작이 블렌드 공작이 관리하고 있는 엔트로 영지를 친다면 고작 이정도의 병장기만을 준비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최소 이것의 7~10배는 되겠죠. 객관적으로 공작가와 우리의 힘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아… 역시!”

객관적으로 공작들과 자신을 지지하는 후버의 세력에 대한 단적인 이야기를 들은 아모르 왕세자가 탄식을 내뱉었다.

고딕의 말대로 단순 병력의 수부터 차이가 나는 두 영지의 현실을 직시하자 자신이 왕이 되는 일은 더욱더 승산이 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가 이번에 후버 님에게 올린 계획의 중요성이.”

“그만!”

아모르의 감탄성을 배경으로 자랑을 하려던 고딕이 후버의 제지로 말문을 닫았다.

“앞서 고딕 정보부장이 잘 설명해 주었듯이 우리로서는 엔트로 영지 근처에도 병장기가 묻혀 있지 않다면 노획을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후버가 간단하게 왕세자의 말을 정리했다.

“그래도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엔트로 영지에 대한 조사를 생각하셨으니 금방 군주의 자리에 적응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체이서 기사단장을 시작으로 몇몇이 아모르를 칭찬하는 말을 던졌고 아모르는 그들에게 고맙다는 말로 대답을 하였다.

“그럼 고딕 정보부장 엔트리 영지로 가서 사실을 확인 하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 같은가?”

“대략적으로 1주일 정도는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하루나 이틀 정도의 변동은 있을 듯 하구요.”

“좋아. 그럼 고딕 정보부장은 아모르 왕세자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엔트로 영지를 조사해보도록. 그리고 나머지 인원들은 오늘 결정된 사항을 기반으로 노획된 물자의 사용법을 연구해오도록 하시오.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소.”

후버의 말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자신의 집무실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회의실 밖으로 나섰다.

*

*

*

영지로 돌아온 후버는 만 하루 동안 회의를 제외한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고 간만에 자신의 시간을 보냈다.

후버가 없는 동안의 일을 보고하는 보고서를 받아본 후버는 대충 영지의 일이 자신의 힘없이도 아무런 문제없이 운영되는 것을 보고 영주로서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권한을 가신들에게 넘기는 것으로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가로이 자신의 수련실에서 신성력을 이용한 마법에 대해서 실험을 하던 도중 후버는 손님이 찾아왔다는 집사의 말에 창문 밖을 바라보았고 눈에 익은 로펜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뭘 저렇게 주렁주렁 달고 와?”

후버가 처음 이곳에 올 때만큼은 못했지만 많은 준비를 한 듯 짐꾼, 성기사, 치료사, 사제까지 대략적으로 100여 명 정도 되어 보이는 인원이 영주관 앞에서 주섬주섬 짐을 풀고 있었다.

“다시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로펜 치료사님.”

“저 역시 하루라도 빨리 이곳에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의례적인 인사로 대화를 시작한 후버는 로펜에게 앞으로 성전이 위치할 곳을 구경시켜주었다.

“이곳이 저희 영지의 중심이 될 곳입니다. 앞으로 100년간 이곳을 아무런 조건 없이 사용하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앞으로 이곳의 영주가 될 수 있을지, 아니면 한시적으로 영주의 이름을 달게 될지 모르기에 그 이상의 기간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후버 님의 배려에 감사할 뿐입니다.”

“제 능력이 부족하여… 그저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이미 교단을 위해 많은 것을 해주신 후버 님에게 더 이상 바라는 것은 없습니다. 성전을 건설하기 전에 우선 치료소부터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반드시 이곳을 축복으로 가득 채울 것입니다.”

“마침 저희 영지에 일거리가 필요한 사람이 있으니 우선적으로 신전과 치료소를 건설하는 작업에 투입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주신다면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 후 한동안 로펜과 후버는 신앙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후버 역시 처음과는 다르게 로펜과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썩 싫지는 않았기에 대화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마침 주제도 이스마엘의 신성한 계획에 대한 내용이었기에 과거의 사례를 열거하는 로펜과의 대화는 후버가 몰랐던 여러 가지 사실을 알게 해주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그럼 저는 이만 영지의 일을 하러 돌아가 보겠습니다.”

“살펴 가시기 바랍니다.”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후버와 로펜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후버는 로펜이 신전이 건축될 때까지 머물 곳을 알려주라고 시종에게 지시한 후 영지의 외부로 나가는 길로 몸을 옮겼다.

“주인님 오랜만이에요!”

심하게 반가워하며 후버의 다리 사이에 몸을 문대는 슬렌을 본 후버는 한번 피식 웃고는 슬렌에게 물었다.

“본거지는 파악 했고?”

“물론이죠! 저만 따라오시면 돼요. 한스는 벌써부터 가서 기다리고 있어요.”

“좋군, 안내하도록.”

후버는 슬렌의 지시에 따라 숲속을 빠른 속도로 걸어가며 손에 쥐고 있는 나무통 안의 몬스터 피를 마셨다.

“아예 오늘 박살을 내려고요?”

“박살이라기보다는 약간의 경고를 할 필요는 있겠지. 저들이 우리가 병장기를 파묻는 것을 이미 안다면 말이야. 그거에 대한 정보는 없는 거고?”

“그걸 알아보려고 주인님이 오신 거잖아요?”

“그거야 맞다만.”

뻔뻔스럽게 책임을 돌리는 말을 한 슬렌은 후버에게 고개를 숙일 것을 지시했다.

“아! 주인님 여기서 부터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돼요.”

자신을 따라서 몸을 낮추라는 듯 슬렌이 작은 몸을 더 낮추었다. 슬렌을 따라 후버도 몸을 한껏 낮췄다.

“저기 있는 큰 나무 두 개가 겹쳐 있는 곳 보이시죠? 한스는 저기에 있어요.”

슬렌의 말을 들은 후버는 한스가 있는 곳으로 가서는 간만에 만난 한스와 수신호를 통해 인사를 나누었고, 한스는 후버에게 자신이 보는 방향을 보라고 수신호로 지시했다.

후버가 한스가 바라보는 방향을 한참을 바라보자 어두운 숲 속에서 꾸물거리는 몇 명의 형태를 분간할 수 있었다.

검은 옷을 입었다는 것 외에 그들을 구분할 만한 특이한 것을 확인할 수 없어 답답함을 느끼는 후버의 눈에 어두운 인형을 향해서 슬렌이 다가가는 모습이 보였다.

야~옹.

긴장감 없는 슬렌의 울음소리가 산속에 퍼졌고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던 검은 옷을 입은 자들도 슬렌을 보고는 약간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기에 산짐승한테 먹이를 주지 말라고 했잖아.”

“계속 따라오는데 그럼 어떻게요? 이렇게 따라올 줄 누가 알았나요?”

누군가를 타박하는 남자의 목소리에 대답을 한 것은 의외로 여성의 목소리였다.

“빨리 쫓아내!”

단장님은… 너무 그러지 마세요. 이렇게 귀여운데… 우리 이번 일 끝나면 용병단 마스코트로 데려가는 건 어떨까요?

“시끄러 이년아! 밥은 누가 주고?”

“밥만 챙겨주면 데리고 다녀도 되고요?”

“밥 잘 먹고 똥 잘 싸면 생각해보지. 대신 일 나올 때는 데리고 나오면 안 되고.”

“일 년 중 200일이 사무소 밖에 있는데 사무소에 놓고 키우려면 뭐 하러 키워요?”

“그럼? 일하는데 업고 다니리?”

투닥투닥하는 두 명의 말소리에 집중하던 후버는 별 영양가 없는 대화가 계속되는 것을 보고 대화보다는 그들의 행동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대략적인 은신 상태를 살펴보던 후버가 의외로 전후방을 철저히 살피는 그들의 모습에 용병단치고는 제법 절도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산 고양이 치고는 상태가 참 깨끗하네요.”

“키우는 사람이라도 있나보지. 차라리 잘됐다. 괜히 정주지 마라.”

야~옹.

슬렌은 능청스럽게 고양이를 연기하면서 혹시 후버가 용병단의 인원을 모두 파악하지 못할까 봐 한 명씩 다가가서는 용병들의 발치에 얼굴을 부볐다.

‘저런 거는 참 잘한단 말이야.’

후버가 용병단 전원을 인식할 수 있게 한 번씩 얼굴을 비빈 슬렌이 용병단을 두고 후버의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서 숲 속으로 사라졌고, 그런 슬렌을 본 여자 용병이 아쉽다는 듯이 대화를 나누던 단장에게 괜한 볼멘소리를 했다.

슬렌이 숲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후버도 한스와 함께 반대편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후버와 한스가 10분 정도 영지 방향으로 걷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슬렌이 후버에게 말했다.

“일단 무장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아요. 그냥 중급 정도… 좀 더 분위기를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주인님의 생각은 어떠세요?”

“나보다는 한스 너의 생각은 어떻지?”

“제가 보기에는 특별히 강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안티구아 공작이 생각이 있다면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정예병을 보냈을 텐데 그런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그 부분은 나도 동감이야. 고작 10여 명 남짓의 용병단이 하기에는 스케일이 좀 크지…….”

“선발대일 가능성은 없나요?”

“선발대였다면 후발대가 지금쯤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인데, 그런 것 같지는 않고 뭔가 수상한데?”

“전체적으로 능력이 부족한 자들입니다. 공작의 입장에서는 기껏해야 단순 소모품에 불과할 전력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한스의 말에 후버와 슬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가까이에서 그들의 무장 상태를 직접 본 슬렌은 한스의 말이 맞다며 자신이 본 것을 말하면서 거들었고, 자세한 무장 상태를 들은 후버는 저들을 지금 공격해서는 아무런 실익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가까이 있어도 아무런 의심을 받지 않는 슬렌이 힘을 좀 써줘야 할 것 같다. 저들의 행동에 수상한 점이 있는지, 또 새로운 병장기를 영지 근처에 묻어 두지는 않는지 한번 확인해 보도록. 앞으로 5일간은 슬렌이 밀착 마크를 하고 한스도 수고스럽겠지만 슬렌의 뒤를 따르도록.”

“아~ 싫다. 그럼 앞으로 5일간이나 야외에서 먹고 자야 하는 거예요?”

“5일이 될 수도, 10일이 될 수도 있지.”

“뵙자마다 또다시 이별이라니 너무 아쉬워요!”

애교를 부리는 슬렌을 무시한 후버가 한스에게 말했다.

“한스, 슬렌을 잘 부탁한다. 그리고 슬렌 너는 저 중에서 중추가 되는 인물을 확인해두도록. 기회가 되면 내가 신호를 주면 그 사람의 손이 되었던지 몸이 되었던지 확실하게 할퀼 생각을 하고 말이야.”

“왜요?”

“네 일 덜어주려고 하는 거니깐 시키는 대로 해.”

후버는 한스에게 수고하라며 어깨를 두어 번 쳐주었고 볼멘소리를 하는 슬렌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 주고는 둘의 배웅을 받으며 영주관이 있는 영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안티구아 공작님! 그들이 숨겨놓은 병장기를 발견한 것 같다는 보고입니다.”

“벌써? 너무 빠른 것 아닌가? 올리버, 기밀의 유지는 확실한 것인가?”

의외의 소식인 듯 보고를 받던 안티구아 공작의 목소리에 약간의 놀람이 서렸다.

“예. 기밀의 유지는 확실합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벌써 3일전에 발견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든다고 합니다.”

기밀은 확실하다는 말에 안티구아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올리버의 말에 동의하기보다는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 없는 일을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안티구아 공작에게 든 탓이다.

“3일전이라… 근거는?”

“저의 부하가 추가로 병장기를 묻으며 기존의 병장기들이 묻힌 곳을 확인하였다고 합니다. 그 결과 처음 병장기를 땅에 묻을 때 표시해두었던 돌의 위치가 바뀐 곳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산이니 들짐승들이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고 보기에는 인위적인 흔적이 있고 또 단 3일 새에 바뀐 곳이 많아서 아무래도 누군가 병장기가 묻혀진 곳 주변을 직접 파본 것 같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지금까지 묻어둔 병장기가 어느 정도 양이지?”

“대략적으로 병사 5,000명 정도는 무장시킬 수 있는 양입니다.”

이미 상당히 진행이 되었는지 실제 파묻힌 병장기의 수는 후버가 파악한 1,500명이 무장할 수 있는 병장기의 수를 가볍게 넘고 있었다.

“그중 위치가 발견된 곳은?”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1천 명 정도의 병사들이 사용할 정도의 양이라고 합니다.”

“결국 찾아낸 것보다 묻혀진 게 더 많다는 소리인데… 돌들의 위치로 추정 했다는 것은 발견된 곳이 아직도 묻혀 있는지 아닌지 확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닌가?”

“그 부분을 확인해서 보고 하라고 전해 두었습니다.”

안티구아 백작은 보고하는 올리버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미끼로 보낸 용병들에게는 아무 일도 없는 건가?”

“아직 용병들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그들의 존재를 눈치챈 자들은 없는 것 같다는 보고입니다. 지금부터 병장기는 그들을 시켜서 기존의 묻은 곳과 다른 곳에 묻도록 지시를 내렸으니 곧 반응이 있을 겁니다…….”

“아니야, 이미 걸린 것 같다면 그 주변에다가 병장기를 묻으라고 전하게. 상대의 반응도 봐야 하니 용병들의 뒤에 약간씩의 흔적을 만들도록 지시하고. 너무 티 나지는 않도록, 무슨 말인지 알겠지?”

“명령하신 대로 처리하겠습니다.”

대답을 한 올리버가 공작의 명령을 정확하게 따르기 위해 공작이 말한 반응의 의도를 물었다.

“공작님이 원하시는 반응이 어떤 것인지 알려 주신다면 바로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딱히 원하는 반응은 없네. 그저 후버 그자의 역량을 보고 싶을 뿐이지. 자네도 알다시피 이런 종류의 일은 정해진 답이 없어. 그저 반응이 있을 뿐이지.”

“그렇다면 모든 일을 지체 없이 보고 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하지.”

보고를 하던 올리버가 공손히 인사를 하고 나가자 안티구아는 한참 전부터 문가에서 시립해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클루니 백작, 내가 자네를 왜 불렀는지 알겠나?”

지금까지 자신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안티구아 공작의 부름을 받은 클루니로서는 자신을 부른 이유는 물론 지금의 대화가 도무지 무엇을 의미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 안티구아 공작이 자신을 중요한 회의에 참석시킨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왕위가 걸린 일에 대해 보고하는 자리에서 자신에게 밖으로 나가라는 명령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지금 왕국에 3명의 왕자가 왕위를 걸고 싸우는 것은 자네도 알고 있을 것이야. 자네에게 간단한 질문을 좀 하지 자네가 정확하게 대답을 한다면 자네는 나의 최측근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될 걸세, 나와 함께 분노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는 자리를 말이야.”

“무슨 말씀이신지?”

“이제부터 이해를 하게 해주겠네. 방금 전에 말했듯이 3명의 왕자가 싸우고 있네. 여기서 첫 번째 질문, 1왕자는 무엇을 가지고 있을까? 시간은 10초를 주지.”

안티구아는 말이 끝나자마자 책상 위에 가지런히 올려져 있는 모래시계를 뒤집었다.

클루니가 안티구아의 집무실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안티구아의 이상한 취향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처음 뒤집는 것은 대답을 할 때까지의 시간을 재는 모래시계로 질문을 받은 자는 모래가 모두 떨어지기 전에 안티구아 공작이 물어본 질문에 대답을 해야 했다.

“그것은…….”

탁!

클루니 백작이 대답을 하려고 하자 안티구아 공작은 다시 다른 모래시계를 뒤집었다.

이번 모래시계의 목적은 대답까지의 시간을 재기 위한 것 통상적으로 생각할 시간의 절반을 허용해 주었다.

“명분입니다.”

“간단해서 좋군, 그럼 두 번째 질문 그럼 2왕자가 가진 것은 무엇일까?”

탁!

“국왕의 총애입니다.”

“이번 답변 역시 간단해서 좋군. 그럼 마지막 질문이네.”

“3왕자가 가진 것은 무엇일까?”

클로니 백작 역시 당연히 짐작한 질문이지만 쉽게 답이 떠오르지 않는지 모래가 거의 다 떨어지도록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안티구아 공작님이십니다.”

안티구아 공작이 완전히 다 떨어져가는 모래시계를 바라보는 찰나 클로니 백작이 대답을 하였다.

“이번 것은 좀 모호하군. 스스로를 칭찬하는 것 같아서 민망하니 답변의 이유는 묻지 않도록 하지.

자네의 말대로 3왕세자에게는 내가있네 그리고 나에게는 자네가 있고 그리고 자네에게는 장성한 자식이 있다고 알고 있네.”

“그렇습니다만.”

“그리고 그 자식이 지금 외부에서 용병 일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 자식을 아끼기 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는 자네의 의도를 존중하네.”

“감사합니다.”

클루니 백작은 감사의 말을 하면서도 안티구아 공작이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지금까지 안티구아 공작이 자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확신 하지 못했다.

“방금 전 나누었던 대화… 그러니까 지금 미끼로 2왕자가 있는 드라고니아 포레스트의 북쪽 숲에 있는 용병대에 자네의 자식이 속해 있네.”

“그런?”

“자네가 자식을 사랑 하는 만큼 많은 보상을 받게 될 것이네 자식을 너무 사랑 하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겠나?”

클루니 백작이 아무런 답을 하지 못하자 안티구아 공작은 탁자에 있는 모래시계를 뒤집어서 시간을 쟀다. 5분정도의 시간을 표시하는 모래시계의 모래가 모두 떨어지려는 찰나 클루니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안티구아의 물음에 대답을 대신했다.

“잘 생각했네. 자네는 다 좋은데 대답이 항상 늦어 그 점만 고치면 자네는 나의 오른팔이 될 수 있을 것이야.”

“감사합니다.”

의외로 덤덤한 클루니 백작의 목소리에 안티구아의 표정에서 잠시 놀람의 표정이 어렸다가 사라졌다.

“앞으로 공작님의 곁에서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기대하지.”

뒤이은 클루니 백작의 대답에 흡족함을 느낀 안티구아는 손짓으로 클루니 백작에게 나가보라고 지시했고 안티구아 공작은 클루니 백작의 자식이 2왕세자의 영지 주변에서 영지병에게 사망한 것을 어떻게 이용할 지에 대한 명령서를 양피지 위에 작성하였다.

“하아~”

안티구아 공작의 눈앞에서는 침착함을 가정하였지만 마차를 타고 공작의 성을 벗어난 클루니 백작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자식! 나를 우습게 봐도 정도가 있지 내 앞에서 자식의 사형선고를 내려!”

다른 누구가 아닌 자기 자식의 일인 만큼 클루니의 마음은 무거웠다. 자식에 대한 사실상의 사형선고를 들은 만큼 클루니 백작은 안티구아 공작에 대한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고작 미끼라니! 내 자식이 고작! 누대로 맹약을 지켜온 우리 가문이 고작 그런 식으로 보였단 건가!”

아직 공작령을 벗어나지 않아 속으로 화를 참던 클루니 백작이 영지를 벗어나자 터져 나오는 화를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얼마나 자신만만하기에 나에게 그따위 통보를 내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안티구아 공작! 네가 원하는 대로 순순히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한바탕 고함을 질러댄 클로니 백작이 마차 안에 준비된 통신구를 꺼내서는 영지의 마법사에게 연결했고 마법사에게 집사인 살로만을 연결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영주님?”

“살로만! 자네의 도움이 필요하네.”

“도움이 필요하시다니요?”

“자네는 내 자식과 연락이 가능하겠지?”

“그렇지 않습니다. 백작님 도련님께서는 저에게도 아무말씀도…….”

“그만! 뻔히 보이는 거짓말은 그 정도면 충분하네. 내 아들의 목숨이 걸린 일일세 지금 드라고니아 포레스트에 있지 않은가? 용병단 따위에 소속되서 말이야.”

클루니 백작의 말에 살로만이 침묵을 지켰다.

“다른 말하지 않겠네. 어려서부터 나보다는 자네를 더 따른 내 아들이 자네에게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다른 것은 필요 없네. 자식 놈에게 전해주게 생명이 위험하니 연락을 받는 즉시 그곳을 벗어나라고.”

“무슨 일이 있으신 겁니까?”

“안티구아 공작이 2왕세자를 치기 위해 내 자식을 미끼로 쓰려고 하고 있어 이대로 뒀다간 이유도 없이 2왕세자의 병사에게 죽거나 아니면 안티구아 공작이 직접 손을 쓰게 될 거야. 그 전에 내 아들을 빼내야만 하네.”

다급한 클루니 백작의 목소리에 살로만도 상황을 파악 한 듯했다.

“하지만… 안티구아 공작이 직접 손을 쓴다면 도련님이 없어지면 가문으로 불똥이 튈 것입니다.”

“그건 감수해야하지 않겠나? 정 안 되겠으면 1왕세자 쪽으로 붙으면 되네. 우리 영지의 위치상 조지아 공작가의 보호를 받는다면 안티구아 공작도 우리를 어쩌지 못할 거야.”

“뜻이 그러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도 직접 연락을 하는 것이 아니기에 사나흘 정도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이런, 답답한! 통신구도 없단 말인가?”

“도련님은 용병으로 세상을 떠돌고 있습니다. 일개 용병이 어찌 통신구 같은 마법 물품을 가지고 다니겠습니까? 통신구는 용병단의 대장이 하나 가지고 있을까 말까한 물건입니다.”

“융통성 없는 자식! 아무튼 살로만 자네만 믿겠네. 반드시 그곳에서 내 자식을 빼주게 나는 바로 1왕세자께서 계시는 엔트로 영지로 가겠네.”

“안 됩니다. 안티구아 공작이 백작님을 주시하고 있을 것입니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대리인을 보내서 그들이 만나주지 않으면 그것이 오히려 더 위험하네.”

“하지만…….”

“자네는 내 자식을 잘 부탁하네. 모든 걸 각오했으니 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네.”

“알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영지의 병사들을 모두 전투태세로 돌려두겠습니다.”

“부탁하네. 우리 영지가 조지아 공작가로 첩자를 심어두는 통로로 사용된 만큼 안티구아 공작이 보낸 첩자는 모두 알고 있지만 영지 내에는 내가 모르는 첩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은지 모르니 모든 것은 조용하게 부탁 하네.”

“말씀하신 대로 신중하게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통신을 끝낸 클루니 백작은 마부에게 목적지를 인근의 영지로 변경한다는 것을 알렸다.

1왕세자가 있는 엔트로 영지까지의 거리는 마차로 빨리 달려도 7일의 거리, 최대한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인근 영지에서 말을 구입해 직접 말을 타고 간다면 3일은 단축할 수 있다는 생각에 클루니 백작은 우선 휴식을 취할 요령으로 마차의 소파에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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