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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고니아 포레스트로 (30/37)

드라고니아 포레스트로

척박한 영지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마차와 그 뒤를 따르는 기나긴 행렬이 영주성으로 급조된 저택으로 들어서자 후버는 막막함과 함께 기대감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허수아비 변경백의 실질적 지배자. 멋지군.’

영지로 떠나오기 전 아스트라에게 확답 받은 부분은 영지 운영에 대한 모든 결정권의 완벽한 위임이었다.

비록 대외적으로는 자작에 불과한 후버가 아모르를 보필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가는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영지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후버는 아스트라를 찾아갔고 아모르가 있는 앞에서 앞으로 5년간 영지의 모든 권한에 대한 위임과 함께 아모르에 대한 통제권을 얻어 내었다.

아스트라는 후버의 요구를 듣고 처음에는 큰소리로 호통을 치며 거부감을 표출하였지만 의외로 아모르가 자청하여 후버를 형으로 따른다는 대답을 하여 일사천리로 권한의 위임과 함께 위계질서를 금세 바로 잡을 수 있었다.

“이곳인가요? 듣던 것 보다 많이 허름하군요.”

“허름하지, 하지만 앞으로 5년간 영주성에 사용될 예산 따위는 없다는 것은 이해해 줬으면 좋겠군.”

“저는 어차피 왕성으로 돌아갈 테니까요.”

자신감 넘치는 아모르의 말, 그러고 보니 후버는 아모르가 자청해서 후버가 말한 위계질서의 정립이라는 조건을 받아들인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다는 것이 기억났다.

“한 가지 묻지. 아모르 왕세자는 어째서 내가 말한 조건을 받아들이겠다고 자청한 건지 알려줄 수 있나?”

“글쎄요… 답이 없으니깐 그랬다고 하면 이상하려나요?”

답이 없다는 아모르의 말에 후버가 의문의 시선을 아모르에게 보냈다.

“저의 아버지여서가 아니라 크랩스 왕국의 통치자로서 아스트라 전하의 판단은 저 개인만을 위해서 이 판을 만들지는 않았을 겁니다. 뭔가 제가 모르는 이유가 있겠죠. 그리고 그 이유를 아는 것은 후버 자작이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에 후버 자작의 뜻을 따른 것입니다. 그게 우리 크랩스 왕국을 위하는 아스트라 전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모르의 대답에 후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모르가 모르는 이유는 후버가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를 위해서라… 가능하면 자신의 생각을 했으면 좋겠군. 아스트라 전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내일 가신 회의 때 보도록 하지. 아침부터 할 일이 많을 테니, 여독은 충분히 풀어 두도록.”

후버가 먼저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 시녀를 대동한 아모르도 자신의 방을 찾아서는 들어갔다. 영지 부임의 첫 날은 조용히 새로운 영지에 자신의 짐을 푸는 것으로 시작했다.

영지에 부임하고 가지게 된 첫 번째 회의 후버는 먼저 아모르를 소개하는 것으로 인사를 시작했다. 모두가 나이로만 치자면 후버보다는 연장자이지만 신분과 고용관계의 특성상 후버가 상석에 앉아 회의를 주도했다.

“이쪽은 앞으로 영지 전반의 협작을 맡아 줄… 이름이 뭐였지?”

“앞으로 트라고니아 영지의 협작 및 정보의 통제를 맡게 된 고딕이라고 합니다. 어감이 조금 좋지는 않지만 제가 하는 일을 잘 나타내는 말이니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참고로 전직은 도둑길드의 부길드장이었습니다.”

“소개 고맙군. 말한 대로 앞으로 훌륭한 정보조작과 협작을 통해서 영지의 불만 세력의 추출과 추방. 그리고 약간의 재판권을 가지게 될 거야. 불만 있으면 이야기하고 직위는 정보부장이니 다른 사람도 그렇게 불러 주도록.”

후버의 말에 아모르는 벙찐 표정을 지었지만 다른 가신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서신을 통해 후버의 뜻을 이해하면서 충격을 받았던 터라 고딕의 자기소개에 놀라는 단계는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처음 자신과 함께할 영지의 가신을 소개 받았을 때 황당한 마음은 있었지만 후버의 자세한 설명에 이미 가신의 면면에 대해서는 납득이 끝난 상태였다.

“그리고 이쪽은 경제 분야를 맡게 될 스케일 총재. 일정 금액 이상의 결제가 필요한 경우에는 모두 스케일의 총재의 허락을 받도록 하도록.”

“감사합니다. 하지만 걱정하지는 마십쇼. 단순한 품위 유지비 정도는 제가 아니라 여기 있는 회계를 담당하는 카운팅 재무장관님이 도움을 줄 것입니다.”

“카운팅이라고 합니다. 혹시 기억하시는지 모르시겠지만 불순한 무리들이 저의 회계조작으로 바파인 상단을 말아먹었다고 하는데 조사결과 무죄가 나왔습니다. 그러니 너무 부정적인 인식은 가지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카운팅의 자기소개에 그 사건이 기억나는지 몇몇은 카운팅에게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당시 바파인 상단의 몰락과 함께 사라진 수십만 골드에 대해서는 여전히 행방을 알 수 없어 이런 저런 추측이 난무하는 만큼 사건의 당사자에 대한 관심이 생긴 것이다.

“추측하다시피 일반적인 회계 담당자와는 다르게 굉장히 창조적인 회계를 지향하는 사람이니 자신이 창의성이 부족한 사람은 카운팅과 상의하도록 하고. 그다음으로는 도시계획의 컨스트 건설부장님이 수고해 줄 것이고.”

“컨스트입니다. 로스 님에게 후버 자작님을 소개 받고 후버 자작님을 돕기 위해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보아하니 정상인 사람은 저밖에 없어 보이는군요. 영지를 함께 운영할 분들에 대한 서신을 받았을 때 여러분들에 대한 흥미를 느꼈습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서로 간의 친목과 경험을 나누었으면 좋겠군요.”

컨스트의 농담에 몇몇 사람이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상단의 운영을 맡아줄 매터 상단주.”

“매터입니다. 이미 안면이 있는 카운팅 재무장관의 소개로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 영지의 방어를 맡아줄 군사부 담당 체이서 기사단장.”

“체이서입니다. 용병으로 장기간 활동해서 여기 계신 카운팅 재무장관님, 매터 상단주님과는 의뢰인과 피고용자 관계로 약간의 안면이 있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특히 고딕 정보부장님은 빠르게 처리할 걸리적거리는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저와 한번 호흡을 맞춰 보도록 하죠.”

의미심장한 체이서의 말에 고딕이 눈을 한 번 찡긋하는 것으로 친밀감을 표시했다.

“공학부의 미캐닉 기술개발부장, 간단하게 말하면 대장간을 업그레이드한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노파심에 말하는 거지만 체이서 기사단장은 괜히 부하들 칼날 갈아달라고 부탁하지는 않았으면 하네. 그건 대장간에서 처리해 줄 테니깐.”

“미캐닉이라고 합니다. 뭐든지 괜찮은 물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오시면 제가 좋은 물품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모두를 모으는 데 가장 많은 노력을 해준 로스 총재님은 아직도 인재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해매이고 있으니 나중에 영지로 오게 되면 거창한 환영파티를 하도록 하지. 질문 있는 사람 있는가?”

후버가 영지의 가신들의 얼굴을 한 명씩 바라보며 눈을 맞추는 중에 고딕이 손을 들었다.

“질문이라기보다는 정말 우리가 이야기한 대로 해도 되는 겁니까? 특히 저 같은 경우는 도둑길드를 거창하게 만들라고 하시니…….”

“보고해서 허가가 떨어진 일이라면 그리고 정도만 넘지 않는다면 기본적으로 뭐든지 가능하니깐 부담 가질 필요는 없어, 고딕 정보부장.”

후버의 말에 고딕이 허리를 굽히며 감사를 표시했다.

“대충 이 정도면 서로 간의 인사는 끝난 것 같고, 여기 있는 여러분이 저를 도와서 이 영지를 발전시키게 될 것입니다. 각자 생각한 방안을 문서로 넘겨주고 일단 이곳에는 상단을 맡고 있는 메터, 도시계획을 맞고 있는 컨스트, 그리고 마지막으로 회계를 담당할 카운팅. 이렇게 세 분만 남아주면 되겠어. 그럼 모두 해산.”

후버의 말에 세 명을 제외한 모두가 급조된 응접실을 나갔고 후버는 품 안에 있는 수정구를 벽면에 투사했다.

“이건 봐도 봐도 신기하군요. 저에게 주신 화면은 정지해 있는데 여기 꾸물거리는 것이 이번에 도착한 행렬입니까?”

도시계획을 담당하는 컨스트의 말에 후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후버가 보여주고 있는 화면은 영지의 전경인 만큼 최근 대량의 물품과 식량이 영지 내부로 운송되었지만 대부분의 물자와 인원이 영주성 인근에 집중된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런 셈이지. 여기에 컨스트와 내가 짠 도시계획을 오버랩하면.”

몇 번의 동작을 하자 수정구 위에 주거 지역과 농지 지역을 표시하는 마커가 차례로 나타났다. 중앙으로부터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도로를 기점으로 동쪽에는 주거지역을 남쪽에는 상업 지역을 배분하는 한편 성 밖의 거주자들을 위한 농업 지역과 300명 정도의 영지민들이 한 단위의 마을을 이루는 것까지 고려한 계획이었다.

“일단은 주거 지역과 상업 지역 모두 대단위 가건물을 통해 이주해오는 영지민들을 위한 임시 수용소 역할을 하는 건물을 짓는 것이 목표입니다. 완료까지는 대략 3개월 정도가 걸릴 것입니다. 식량을 보관하는 창고 지역을 감싸는 형태로 지은 후 인구의 본격적인 유입이 끝나는 1년 후 영지의 창고시설이나 고급 주택단지로 개조할 것입니다.”

“좋군, 필요한 것은 있는가?”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건설자재도 처음 일 년 치는 확보되어 있습니다. 일반 건물 1만 채 연인원 7만 명을 먹일 만한 식량을 이미 확보해둔 상태입니다. 기본적인 수요는 모두 충족되었기에 추가적인 공급이 필요하다면 말씀 드리겠습니다.”

“목재의 일부분을 다른 곳으로 사용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도 문제가 없겠나? 대략 2천 동 정도의 목재를 사용하려고 하는데.”

“그 정도라면 추가 발주를 통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메터 님 처리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 정도야 문제없소, 카운팅 님. 영지의 예산은 어느 정도입니까?”

“제가 금년도 예산으로 배정 받은 것은 현재 확보한 물량을 제외 하고 금괴로 200kg 정도입니다. 금화로 따진다면 대략 66,600골드가 됩니다. 일반적인 백작가의 예산이 대략 8만 골드 선인 것을 생각해보면 다소 모자란 감이 있습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예산은 생각하는 것보다 충분하게 집행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규모가 큰 예산의 집행은 스케일에게 맞기면 됩니다.”

매터와 카운팅은 후버의 말에 다행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한층 안심이 되는군요.”

“그리고 내가 조사한 바로는 이 지역은 지질에 수분이 조금 많은 편이고 배수가 잘 되지 않더군. 그래서 영지 내부를 관통하는 지하관에 하나의 층을 더 추가해야 할 것 같아. 컨스트 건설부장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보내주신 설계도를 검토하고 테스트를 이미 맞췄습니다. 미세하게 뚫린 파이프를 천으로 감싸는 것만으로 토양의 수분을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그런데 천이 땅속에서 썩을 염려는 없는 것입니까?”

“특별히 마탑에 주문해서 쉽게 부패하진 않을 것이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걸세. 파이프 역시 마찬가지이고.”

“그렇다면 추가적인 예산은 그다지 소요되지 않을 것입니다. 기존 식수의 배관로, 하수 처리용 배관공사와 함께 묻는다면 추가적으로 소요되는 건설비용은 기존 계획대비 10% 정도 추가될 뿐입니다.”

“컨스트 건설부장은 지금 말한 대로 처리해 주면 될 것으로 보이고. 매터 상단주 알다시피 이곳에는 팔 만한 물건이 거의 없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추수가 돼서 풍작이라고 해도 첫해에는 기존 영지민을 먹이는 돈도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영지의 수입만을 생각했을 때입니다. 자작님께서 지금처럼 지원해주신다면 걱정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작님이 가신 재산도 무한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결국 비용과 수익이 균등점을 이룰 획기적인 무엇인가가 필요합니다.”

“그거 참 문제군. 그래서 말이야, 내가 간단하게 만들어서 팔 물건을 생각해보았는데 이건 어떤가?”

후버는 품속에서 길쭉하게 깎인 나무토막을 꺼내 매터 상단주에게 넘겼다. 단순한 모양으로 육각 형태에 한쪽은 원뿔형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연필이라는 걸세. 아직은 시제품이다 보니 형태나 모양이 엉망이지만 지금 미캐닉 기술개발 부장이 개선을 진행하고 있으니 조만간 괜찮은 제품이 될 거야. 그걸로 한번 글자를 써보게.”

매터는 뾰족하게 깎인 연필을 이용해서 방금 전 후버가 한 이야기를 양피지에 옮겨 적었다.

“이건… 깃털 펜보다 훨씬 편하군요. 하지만 약간 깃펜에 비해서는 흐린 감이 있습니다. 이 검은 것이 잉크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지금 사용하는 제품은 일반적인 필기용이기 때문에 검은 부분 이 단단하지 않게 만들었지만 마법사처럼 정밀하게 글을 쓰는 사람을 위해서 단단하게 만드는 것도 연구하고 있으니 곧 결과가 나올 거야.”

“연필이라… 홍보가 문제인데 가격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법사용 최고급품은 한 자루에 1골드 상인용 중급품은 5실버 그리고 하급품은 50쿠퍼 정도의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이 어떤가, 하네만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중급이나 하급품은 그렇다고 처도 최고급품은 너무 가격이 비싼 것 아닙니까? 원가는 어느 정도입니까?”

“원가는 최고급품 기준으로 한… 20실버 인건비를 포함하면 30실버 정도 될 것이네. 중급품은 10쿠퍼 하급품도 그 정도이고.”

생각보다 너무나 저렴한 원가에 매터의 표정이 벙찐 표정으로 변했다.

“그럼 더더욱 이렇게 비싼 가격은 경쟁자만을 불러들일 뿐입니다. 가격을 낮춰야 합니다. 특히 그저 필기만을 하는데 1골드라는 가격은 너무 터무니가 없습니다.”

“아니야, 마법사용은 한 가지 좋은 점이 있거든.”

후버가 매터가 들고 있던 양피지와 연필을 뺏어서는 양피지를 가로지르는 굵은 선을 그렸다.

“겉보기에는 그저 선일뿐이지만 이렇게 반대쪽에 수정구를 넣고 반대쪽에서 마나를 흘려주면.”

후버가 마나를 흘려주자 수정구에서 약간의 빛이 새어 나왔다.

“마나가 진행되는 통로가 되거든. 물론 효율은 굉장히 나쁘지만 말이야.”

“간단히 연필로 그리는 것만으로 마나가 통한다는 말입니까? 그게 어떻게 가능한 것입니까?”

“이 연필의 검은 부분 그러니까 심을 만들기 위해서는 흑연과 점토를 섞는데 점토와 일정 비율로 곱게 갈은 수정구를 넣어봤더니 의외로 마나가 통해서 마법사에게 팔 생각을 했지.”

“마법과 관련된 물품이면 가격이 너무 저렴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처음과 달라진 매터 상단주의 말에 후버가 매터 상단주를 달랬다.

“효율이 나빠 그나마 돈이 썩어나는 마법사들이니 효율과 상관없이 간단한 마법실험을 위해서 사용하겠지만 그 정도 가격이면 적당하니 너무 욕심을 부리지는 말았으면 좋겠어.”

“후버 자작님의 뜻이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생산과 동시에 판매할 수 있는 판로를 확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매터의 긍정적인 답변에 후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륙 전체 마법사와 상단 그리고 귀족들의 수를 생각해볼 때 연필은 당분간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판매가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다음 안건으로 매터 상단주 그리고 카운팅 재무장관 일반적으로 전쟁터에 공급되는 화살촉의 가격이 어느 정도 되지?”

“철의 가격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적인 가격은 3실버에서 5실버 수준입니다. 화살의 가격은 5실버에서 7실버 수준입니다.”

“그럼 그 가격을 절반 정도로 낮추는 대신에 위와 같은 모양으로 판매한다면 가격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가?”

후버는 간단한 원통형 화살촉을 매터와 카운팅에게 보여주었다.

“성능상의 문제는 없는 것입니까?”

“관통력은 비슷한 수준이네. 하지만 화살촉보다 크기가 약간은 작으니까 내장이 딸려 나오는 효과는 좀 부족할 것이라고 체이서 기사단장이 말하더군.”

화살촉이 세모난 모향으로 만들어진 이유는 비거리를 위한 것도 있지만 복부 등에 깊숙이 박혔을 경우 화살을 뽑아내기 힘들게 하기 위한 이유가 더 컸다.

상처를 헤집으면서 박힌 화살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당겨서 화살을 뽑아야 하는데 화살촉의 뒷부분이 화살을 뽑아내는 것을 방해하고 동시에 화살을 뽑을 때 내장 등을 상하게 하는 것이 주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관통상의 경우에는 화살의 뒤를 자르고 촉을 잡아내고 뽑아내서 내장이 다치는 것을 최소화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팔리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대신 허벅지 등에 맞았을 경우 화살을 뽑아내기가 더 힘들지. 상처 부위가 염증에 의해 부풀어 오른 만큼 둥그런 화살촉의 뒤편이 뽑아내는 것을 방해할 테니깐.”

후버의 말을 듣고 한참 화살을 살펴본 매터가 후버에게 물었다.

“그냥 평범한 모양으로 만들면 원가를 절감할 수는 없는 것입니까?”

“그래도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네. 하지만 강도가 약해지는 것이 문제라서 말이야. 원가절감의 대부분은 이 방식에 대장장이가 필요가 없다는 것에서 발생하는 것이거든. 원뿔형이 사용되는 철의 양이 적은 것도 한 몫을 하고 말이야.”

“그렇다면 원뿔형의 제품이나 세모꼴로 만든 것이나 모두 판매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아마도 후버 자작님께서 말씀하시는 원가 절감 방식이 주조 방식으로 제조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닙니까?”

“잘 알고 있구만. 뭔가 문제가 있나?”

“많은 상단이 주조 방법을 사용한 화살촉을 납품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만 강도가 부족하여 모두 사장되고 여전히 단조 과정을 거친 화살촉만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아마 생산을 한다고 해도 군부에서 받아주지를 않을 것입니다.”

예상한 반론이라는 듯이 후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캐닉 개발부장도 동일한 문제를 후버에게 지적했기 때문이다. 틀에 넣어서 뽑아내는 주조를 통해 생산된 화살의 강도가 대장장이가 두드려서 만든 단조 방식보다 그 강도 면에서 부족하다는 것을 모르는 자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나중에 자리를 한번 마련해서 시험사격과 함께 제조법을 설명해 주도록 하지. 만약 비슷한 효력을 보인다면 판매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일선의 장교들이 저와 같은 편견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들의 편견을 무너트릴 정도가 아니라면 공급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매터의 말에 후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말이 맞네. 하지만 알다시피 전쟁 물자의 공급에 대한 결정권은 일선 장교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네.”

“그럼 누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물품을 공급하는 상단이 가지고 있지. 자네는 영지에서 화살촉을 생산하기 시작할 때 적절한 로비활동으로 보급을 맡고 있는 관료들을 구워삶기만 하면 되는 거고 성능만 만족스럽다면 불만도 없을 것이고 그러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일단 생산이 된 시제품을 보고 결정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앞으로 1개월 안에 대량의 철광석을 공급 받을 수 있는 주변 영지를 수배해 보도록 해주게. 생산은 6개월 후부터 시작하게 될 테니 미리 창고에 비축해 둘 수 있다면 좋을 거야.”

“연철을 수입하는 것이 더 좋지 않습니까?”

“그건 자네가 판단하도록 운송비가 저렴한 인근 영지라면 철광석이 유리할 것이고 먼 곳이라면 연철을 수입하는 것이 더 좋겠지. 어느 쪽이든지 나는 상관없네.”

“그럼 제반 사항을 고려하여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자네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네. 부디 실망시키는 일은 없도록 했으면 좋겠군.”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영지의 공산품에 대한 대략적인 상의와 의견을 수렴하고 후버는 그들을 돌려보냈다. 연필의 경우 그래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화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기에 좀 더 개선의 필요를 느낀 후버는 미캐닉과 공동연구를 할 생각을 가지고 앞으로 영지 운영 방향에 대한 계획을 약간 수정하였다.

<5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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