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와일리 상단의 새 주인! (29/37)
  • 와일리 상단의 새 주인!

    “자네가 르페르브인가?”

    “예, 전하. 용안을 뵙게 되어 영광이옵니다.”

    로한이 필사해준 엘더 영주의 회계장부를 꼼꼼히 살펴본 르페르브는 엘더에게 와일리 상단을 인수할 재산이 없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이리저리 덧씌워진 듯한 흔적을 토대로 엘더 영주의 와일리 상단 소유에 대해 부정한 무언가가 개입했을 가능성에 대해 조사를 해 국왕에게 제출하였다.

    일주일후 직접 보고를 듣고 싶다는 국왕의 요청으로 인해 마련된 자리 국왕과의 독대는 처음이여서인지 르페르브의 몸이 긴장으로 잔뜩 굳어져 있었다.

    “그대는 긴장하지 마라. 그대를 탓하고자 하는 자리가 아니니.”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대의 조사보고서는 내가 여러 차례에 걸쳐 살펴보았다. 그대에게 물어볼 것은 그대의 개인적인 감상이니 기탄없이 질문에 답하도록.”

    “하문하시면 성심성의껏 답하겠나이다.”

    “그대는 의문의 남자에게 타이킨이라는 자의 귀족 임명서를 전해 받았다고 적어두었더군 그자에 대한 단서는 있는가?”

    “그저 그자가 스스로 밝힌 로한이라는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군, 국법의 집행을 돕는 자가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야. 그렇지 않은가?”

    의외로 아스트라가 로한의 존재에 대해 다른 질문이 없이 긍정하자 르페르브는 위화감을 느꼈지만 딱히 국왕의 말에 부정을 할 수는 없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자네는 와일리 상단과 엘더를 이어주는 직접적인 근거를 발견한 것은 아니로군. 크럭스라는 자는 죽었고 타이킨이라는 자는 아직도 행방불명이니 말이야.”

    “그렇습니다.”

    “하지만 엘더 영주의 잘못을 추궁하기에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네. 자네의 생각은 어떠한가?”

    “저 역시 국왕전하의 생각과 같습니다.”

    “그럼 이러한 행위를 한 자에 대한 처벌은 어느 정도가 좋다고 생각하는가?”

    아스트라의 말에 긴장이 풀려가던 르페르브의 몸이 다시 긴장으로 굳어졌다.

    “그저 참고할 것이니 기탄없이 대답하도록.”

    “그자는 국왕전하께서 임명한 영지의 관리인으로 사실상 작위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그자의 선대는 백작의 작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렇다 할 공을 세우지 못하여 가문의 작위는 세를 거듭할 때마다 국법에 따라 강등되었고 영지의 관리인이라는 직책을 제외하면 평민이나 다름없다네.”

    “귀족 간의 서열은 그렇다고 하여도 영지 내에서 엘더의 위치는 다른 작위가 있는 영주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야 영지의 주인이니 영지 내에서는 다른 귀족들도 한 수 접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자는 사사로이 귀족의 자리를 매매한 자이오니 국왕전하께서 부여하신 영주의 자리를 박탈하시고 영주의 권한을 부정하게 사용하여 획득한 와일리 상단역시 그자의 손에서 빼앗아야 될 것이라고 생각하옵니다.”

    “그리고?”

    추가적인 사항에 대해서 묻는 국왕의 의도를 잘 알고 있는 르페르브였지만 이에 대해서 말하기는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르페르브가 아스트라의 질문에 어떤 식으로 대답하여야 할지 고민할 때 국왕이 재차 르페르브에게 다시 질문하였다.

    “백작위의 임명서는 고작 영주가 발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그쯤은 자네도 알 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네. 그자의 윗선을 어떻게 조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가?”

    국왕의 질문에 잠시 대답을 머뭇거린 르페르브가 답하였다.

    “국왕전하께서 저에게 1년의 시간을 주시면 그들에 대한 모든 증거를 확보하여 국왕전하께 드리겠나이다.”

    “자네의 목숨이 위험할 텐데?”

    “국왕전하에게 충성할 수 있다면 목숨 따위는 아깝지 않습니다.”

    결연한 르페르브의 말에 국왕이 흥미가 동한다는 듯 반질반질한 바닥에 반사된 르페르브의 눈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숙이고도 아래로 한껏 눈을 깔고 있는 르페르브로서는 국왕이 자신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는지 알 수 없었다.

    “오랜만에 충성스러운 신하를 본 듯하여 기분이 좋군. 엘더 영주가 영지에서 추방되면 자네가 그 뒤를 이어서 영지를 다스리도록 하게 영지의 이름은 자네의 성을 따서 에드윈이 좋겠군.”

    “전하… 그게 무슨…….”

    파격적인 아스트라의 말에 엘더가 고개를 들어 아스트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신하로서 국완인 아스트라의 얼굴을 뻔히 바라보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 일이지만 아스트라는 르페르브의 그런 실수에 대해서는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엘더의 부정을 파헤치기 위해서는 부정이 일어난 곳의 모든 사항을 자네가 알아야 할 것 아닌가?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면 사양하지 말도록.”

    아스트라의 단호한 말에 다시 고개를 숙인 르페르브가 온몸이 바닥에 닿을 정도로 깊이 아스트라에게 절을 하였다.

    “전하께서 믿어주신 만큼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 마음이 변치 않기를 바라네.”

    *

    *

    *

    르페르브와 국왕의 합의가 있은 지 일주일이 흐르고 엘더 영지 주번의 텔레포트 게아트는 게이트가 만들어진 이례 가장 많은 인원들이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 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번쩍번쩍하게 광을 낸 풀 플레이트 아머를 걸친 기사들 그리고 비록 풀 플레이트 아머를 걸치지는 않았지만 절도 있는 동작으로 게이트 앞에서 오와 열을 맞추는 모습에 영지민들이 기사와 병사를 구경하기 위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전군~! 속보로~! 엘더 영주의 영지로 이동!”

    우렁찬 지휘관의 목소리에 순차적으로 엘더 상단으로 향하는 병사와 기사들 텔레포트 게이트의 부하를 막기 위해 주변 영지의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해서 엘더 영지로 모이는 병력이 이제 막 출발을 했다면 재판관과 지휘관 등 핵심 수뇌부와 정예기사들은 단번에 엘더 영지의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해서 영주의 영주성 앞에서 성문을 지키고 있던 기사에게 명령했다.

    “국왕전하의 사자 머친스키 프 리마이니스 후작이다. 죄인 엘더는 무릎을 꿇고 국왕전하의 명을 받들도록 하여라!”

    눈앞의 경비병을 무시하고 영주성에 직접 고함을 질러대는 모습이 별로 타인에게 권할 만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효과는 확실히 있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엘더가 머친스키 앞에 고개를 숙이고 예를 취하였다.

    “너는 너의 죄를 아느냐?”

    “무슨 일이십니까? 국왕전하에 대한 알현을 허락해 주시면 제가 직접 뵙고 오해를 풀겠나이다.”

    “오해는 무슨 이 서류를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머친스키의 손에서 펄럭이는 타이킨에 대한 임명장을 확인한 엘더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그게… 타이킨이라는 자가 가지고 있을 물건이 아닌데…….”

    “그럼 누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냐?”

    “그것이…….”

    “작위의 매매는 엄격하게 금지된 일! 간도 크군. 국왕전하께서 직접 내려주신 영주의 위치를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고 작위를 매매하다니.”

    “아닙니다. 제가 어찌 작위를…….”

    “멍청하군. 끝까지 시비를 따지겠다는 것인가? 너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 줄 것이니 조용히 있도록.”

    고함을 치던 모습과 다르게 엘더에게만 들릴 정도로 나직하게 말하는 머친스키의 목소리에 엘더가 하려던 말을 속으로 삼켰다.

    ‘젠장 그냥 버려지는 건가?’

    느닷없는 상황전개에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최악의 상황이 떠오르는 엘더였다.

    ‘아니야…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일단 지금은 상황 파악이 우선이다. 말실수를 할 뻔했어… 아니 벌써 말실수를 한 건가?’

    최소한 생명이라도 구걸하기 위해서는 언급을 하는 시늉조차 하지 않아야 할 이름이 입 밖으로 나올 뻔했다는 사실에 엘더는 자신을 자책했다.

    “오늘부로 엘더의 영지 관리자로서의 직위를 해제한다. 위 조치에 불만이 있는가?”

    “없습니다.”

    “부정하게 얻은 와일리 상단의 주인의 직위 역시 박탈한다. 위 결정에 불만이 있는가?”

    “없습니다.”

    “앞으로 일주일 내에 엘더를 영지 밖으로 추방한다. 오직 양손에 들 수 있는 것만을 영지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있으며 그 외의 모든 소유권은 박탈한다. 위 결정에 불만이 있는가?”

    “없습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결정이 내려진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저의 죄를 듣고 반성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엘더로서는 현재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국왕의 명령을 전하러 온 사자에게 죄를 부정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는 것은 알고 있기에 일단은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죄를 모른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엘더 너는 와일리 상단의 어음을 누구에게 받았지?”

    “그건…….”

    자신이 만났던 바이스에 대해 언급하려 했던 엘더가 입을 다물었다.

    현재로서 가장 수상한 인물은 그 출신도 이름도 알 수 없었던 자신에게 귀족이면서를 받고 와일리 상단의 어음을 대량으로 건네준 자였기에 혹시라도 그자가 자신이 모시는 분이 사용하는 사용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크럭스가 자네에게 오랜 기간 동안 상납한 것은 이미 파악하고 있네. 자네는 그 대가로 크럭스의 하수인인 타이킨 총관에게 작위를 부여한 것이고 내 말이 틀렸나?”

    ‘그렇게 처리하기로 한 것인가? 그렇다면 크럭스 역시 그분과 연줄이 있다는 건가?’

    오해로 인한 것이지만 엘더는 크럭스가 상납을 한 주체와 자신의 뒤를 봐주는 주체가 같은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것은 기회?

    이유야 어쨌든 자신이 죄를 뒤집어쓴다면 다른 하수인들을 다독이기 위해서라도 죄를 뒤집어쓴 자신을 홀대할리 없다는 생각이 엘더의 머리를 스쳤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이후 엘더는 자신의 죄를 하나하나 집어가며 설명하는 머친스키의 말에 긍정하는 것으로 모두가 보는 앞에서의 공개 재판은 싱겁게 끝이 났고 추방 명령을 이행하겠다고 한 엘더는 아무것도 지니지 않고 영지의 외부로 연결되는 대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수많은 기사들과 병사들을 동원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엘더 영주의 추방 명령은 아무런 저항 없이 집행되어 구경꾼들은 오히려 현실감을 느끼지 못했다.

    *

    *

    *

    사만다 상단에 마련된 후버의 집무실의 문이 벌컥 였렸다. 문을 연 것은 상기된 표정을 하고 있는 사만다 상단주.

    “후버 님! 엘더가 영주 직을 박탈당하고 영지 밖으로 추방당했습니다.”

    한껏 나른함을 만끽하고 있던 후버가 고개를 돌려서 더 말해보라는 듯이 턱짓으로 사만다 상단주를 채근했다.

    “그게 전부인가? 유형 사태는 없었고?”

    “전혀 없었습니다. 모든 죄를 시인한 엘더 영주가 아무것도 챙기지 않고 판결을 받은 즉시 영지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고 합니다.”

    후버는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격양된 사만다 상단주에게 자리를 권했다.

    “아무런 반박을 하지 않았다는 건가?”

    “예, 그저 머친스키 그러니깐 재판을 위해 온 국왕전하의 사자가 하는 말을 전혀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사만다가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자 조용히 듣고 있던 후버는 엘더 영주가 딱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이거… 엘더 영주가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엘더 영주가 크럭스가 자신에게 꾸준히 상납해온 사실을 인정했다고 했지? 그리고 그 대가로 타이킨에게 귀족작위를 임명하는 임명장을 발급했다는 사실도 인정했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자가 그걸 인정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아니야. 잘 생각해보면 이유는 충분히 있지 엘더 입장에서 생각해보자구 이번 조사는 처음부터 국왕파나 귀족파의 입김이 많이 들어간 판결이 나올 것이란 예측이 주를 이루었다는 것은 사만다 상단주도 잘 알고 있을 거야?”

    “그렇지요. 그런데 르페르브란자는 그런 인물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자는 그런 외압에 대해서 자유로운 자이기에 귀족파나 국왕파에서 그자를 조사관으로 파견하는 데에 반대를 하지 않은 거고 본인들이 이용 할 수는 없지만 이용당하지도 않을 테니깐 말이야.”

    “그렇다면 르페르브의 보고서는 정확하게 사실만 반영했다고 보는 것이 좋겠군요.”

    “그렇지, 그럼 르페르브 입장에서 얻을 수 있는 최선의 정보가 뭐라고 생각하나?”

    사만다가 후버의 질문에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지만 뻔한 대답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너무 고민하지 않아도 돼. 우리가 와일리 상단을 조사한 이유와 일치하겠지.”

    “최초 와일리 상단의 출자금의 출처를 모른다는 것, 정기적인 상납이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준 정보인 타이킨의 작위 임명서… 그 정도 아닌가요?”

    “그리고 하나 더 추가해야겠지 엘더 영주가 와일리 상단을 집어삼킬 만한 돈의 출처, 아마 르페르브는 확인된 위와 같은 사실만을 가지고 조사 보고서를 국왕에게 보고 했을 거야. 문제는 이 중에서 엘더가 르페르브가 몰랐다고 생각한 정보가 무엇인 것 같나?”

    “타이킨이 작위 임명서의 존재와 자신의 재정 상태에 대해서는 르페르브가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정답이네 그리고 크럭스가 엘더에게 지속적으로 상납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실제로 상납을 받지 않은 엘더가 더 정확하게 알고 있지 실제로도 크럭스가 상납한 대상은 엘더가 아니라 리버모어 공자이기도 하고…….

    그런대 재판관은 마치 엘더가 크럭스에게 상납을 받았다는 것이 벌써 확인이 된 듯이 판결해지 이 판결을 들은 엘더가 무슨 생각을 할 것 같나? 한 가지 힌트를 주자면 엘더 영주가 귀족의 작위 임명서를 직접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생각해보도록!”

    다시한번 머릿속으로 사건을 정리하던 사만다가 감을 잡았는지 입을 열었다.

    “윗선, 이 모든 게 자신의 윗선을 보호하려고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면 자신은 이후에 윗선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으니…….”

    “그렇지 영지도 재산도 모두 잃을 것이 왕명으로 확실시 된 엘더 영주가 지금과 같은 호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조사의 범위가 자신의 윗선에게 까지 올라가지 않게 확실하게 모든 죄를 뒤집어쓰는 것이니깐.”

    “어쩌면 엘더는 르페르브의 조사결과가 자신의 윗선에서 모두 조작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럴 가능성이 크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앞뒤가 맞으니깐 그리고 엘더로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하기도 할 테니깐.”

    후버의 설명에 모든 것이 이해된 듯 사만다 상단주가 인사를 하고 후버의 방을 나가려 하다 무엇인가 생각이 난 듯이 후버에게 물었다.

    “그런데… 정말로 윗선에 대한 조사는 하지 않으실 생각인가요?”

    “애초에 엘더 영주나 그 윗선이나 나에게는 도구였을 뿐 어떠한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아 괜한 오지랖은 적만 늘릴 뿐이다. 그 일을 해줄 사람은 따로 있기도 하고.”

    “따로 있다니요?”

    “그건 나중에 상단주도 알게 될 테니깐 그때 한번 호흡을 잘 맞춰보도록 해봐.”

    “타이킨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타이킨? 그자는 아직 쓸데가 있어서 잘 보관해두고 있지… 그것도 나중에 알게 될 테니 그때의 즐거움으로 남겨두면 좋을 거야.”

    “그렇군요…….”

    궁금증이 모두 해소되지는 않았는지 아쉬움의 여운을 남기는 대답을 한 사만다가 후버의 방에서 나갔다.

    *

    *

    *

    엘더가 영지를 떠나고 와일리 상단의 주인이 없어지자 영지의 상인들과 영지민들의 관심은 와일리 상단의 차기 주인과 영지의 새로운 영주에 대해서 집중되었다.

    영주의 자리는 상업 지구의 특성상 국왕이 직접 임명을 하겠지만 와일리 상단의 주인은 누구나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여러 상단이 주판알을 튕기고 있었다.

    상단들의 과감한 와일리 상단의 인수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과연 마탑이 와일리 상단의 독점적 거래를 계속해서 인정해 줄 것인가 하는 문제.

    두 번째는 불과 하루 만에 모두에게 퍼진 소문인 누군가가 와일리 상단의 크럭스가 죽었을 때 헐값으로 와일리 상단의 어음을 대량으로 매수하여 아직도 보유하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저희 상단은 이번 일에 빠지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상단역시 와일리 상단은 좀 찜찜해서…….”

    마탑과의 거래에 필요한 초기 자본금에 대비하기 위해 여러 상단이 조합을 만들어서 와일리 상단을 인수하자며 모임을 만들었지만 모임의 첫 시작부터 소문으로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두 명의 남자가 와일리 상단의 인수 조합에 가입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상인들도 손을 들어 포기할 의사를 내비쳤다.

    그렇게 하나둘 조합의 사람이 떠나고 남은 것은 그나마 이 영지에서 제법 큰 규모를 가진 5개의 상단. 더 이상 자리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자 그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나마 와일리 상단에 있던 금괴를 비롯한 모든 자산을 국가에서 회수한다고 합니다. 지금 와일리 상단은 마탑과의 거래를 제외하면 그저 빈껍데기일 뿐입니다.”

    “그나마 그 거래도 존속될지 아닐지 모르는 것 아닙니까?”

    “엘더 영주가 와일리 상단을 인수했을 때 마탑이 거래를 계속한 것을 보면 누가 인수를 하든지 계속해서 거래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엘더는 그나마 영주였고… 우리는 상인이지 않습니까?”

    “아니, 우리가 엘더 영주에 비해서 뭐가 모자란다고! 막말로 재력이야 엘더와 우리를 비교하면 우리가 더 튼실하지 않습니까?”

    부정적인 말이 계속되는 것에 흥분한 듯 잔 여자 중 한 명이 목소리를 높였다.

    “거! 흥분하지 마세요. 레비트 상단이 튼실한 거 우리는 잘 알지요. 하지만 그런 걸 마법사가 알겠습니까?”

    “그래요 영지의 영주… 그 정도의 위치가 아니면 마탑이 독점권을 취소할 가능성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나는 독점권보다 소문이 더 걱정이에요. 빈껍데기만 남은 곳에 독점권하나 믿고 들어가서 쏟아지는 어음물량 온몸으로 다 받아냈는데 마탑이 독점권 부여를 취소한다고 하면 저는 뒷감당 못합니다.”

    “왜 그렇게 부정적이십니까? 여기서 한번 찬반 투표를 해봅시다. 먼저 와일리 상단 인수를 반대 하시는 분?”

    레비트 상단의 상단주인 레비트가 거수로 찬반을 나누자고 하자 5명 중 두 명이 손을 들었고 득의한 표정을 한 레비트 상단주가 찬성자의 거수를 요청하자 레비트를 포함한 두 명이 손을 들었다.

    “여기까지 와서 기권이라도 하시는 겁니까?”

    “답이 없지 않습니까… 답이.”

    돌아온 대답에 한숨을 쉽 레비트가 힘없이 말했다.

    “그럼 3일 정도 생각을 해보고 그때 결정해보도록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모두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지 레비트의 동조하는 것으로 상단들의 회합이 끝났다.

    다시 한 번 공중에 붕 뜬 와일리 상단의 소유권을 두고 곳곳의 상단에서 인수의 가능성을 타진할 때 후버는 가지고 있던 와일리 상단의 어음의 일부를 시장에 풀면서 와일리 상단이 아직 처리하지 못한 어음이 상당하다는 소문에 근거를 심어주기 시작했고 마탑 역시 독점거래를 할 새로운 상단을 찾고 있다는 소문을 흘리기 시작하자 와일리 상단에 대해서 인수 가능성을 타진하던 상단의 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정차적으로 여론이 매물로 나온 와일리 상단을 아무도 인수하지 않겠다는 쪽으로 기울자 새롭게 어음을 발행하고 그 결재를 맡을 곳에 대한 필요와 정리되지 않은 와일리 상단의 어음을 누가 정리해 줄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해지기 시작했고 어음을 가지지 않은 상단이라고 해도 와일리 상단을 인수했던 엘더가 한 약속인 20% 금액에 상당하는 세금의 감면을 다음에 부임하는 영주가 지킬 것인가에 대해서 위기감이 팽배해지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날이 지나가고 국왕이 공지한 와일리 상단의 인수 신청이 일주일 남은 시점에서 아크바 상단이 와일리 상단을 인수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사만다 상단주는 입찰이 3일 남은 상황에서 주변의 소문을 긍정했다.

    “경쟁 입찰 결과는 아크바 상단의 단독 입찰로 사만다 상단주님께서 와일리 상단을 인수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습니다. 와일리 상단의 인수 가액은 1골드입니다.”

    1골드라는 소리에 결과를 듣던 주변 상단주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망한 상단이라지만 1골드라는 인수가액은 너무나 작기 때문이었다.

    와일리 상단의 입찰 결과를 발표한 사회자가 술렁이는 장내를 진정시키고는 와일리 상단을 입찰한 소감에 대해서 말해달라며 사만다를 단상 위로 호명했다.

    “제가 이곳에 오니깐 와일리 상단의 인수가액에 대해서 불만이 있으신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술렁이던 장내가 사만다의 등장으로 조용해졌다.

    “그럼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누구든지 원하신다면 와일리 상단을 무료로 그분에게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단, 저희 상단이 이곳을 인수한 조건을 그대로 승계해야 합니다.”

    “그 조건이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1골드에 와일리 상단을 넘겨받는다는 것이오?”

    다소 공격적인 억양으로 따지듯이 묻는 말에 사만다가 웃음을 지었다.

    “우선… 아크바 상단의 후원자가 누구인지부터 밝히겠습니다. 아크바 상단은 레빌리온 백작가의 가주님의 명으로 세워진 상단입니다.”

    아크바 상단이 후원자가 있다는 말에 여러 상단주들이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레빌리온 백작가라면… 상단을 운영해본 경험이 없는 가문이 아니오? 그리고 지금 그 일에 대해서 굳이 말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무관하지 않소?”

    “무관하지 않습니다. 저는 상인으로서 와일리 상단과 같은 빈껍데기 상단을 인수하는 데는 1실버 아니 밀 한 줄기도 아깝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이번 와일리 상단의 인수가 레빌리온 백작가의 뜻이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레빌리온 백작가의 가주님께서 친히 내리신 명령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백작님께서 이러한 명령을 내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만다의 질문에 모두가 대답은 하지 못하고 옆 사람과 조용히 속삭였다. 모두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유는 있었지만 설마하는 생각에 자신들이 생각한 이유를 말하지는 못했다.

    “아무도 없으시군요. 얼마 전 엘더가 말했던 입 발린 이유 상계의 안정 그것이 레빌리온 백작가의 가주님께서 염려하신 것이었습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레빌리온 백작가는 엘더 영주가 알량한 협작으로 생색을 내는 동안 묵묵하게 상계의 안정을 위해 자금을 투입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순수하게 상계의 안정인지 아니면 엘더와 같은 검은 속내인지 어떻게 안다는 말이오?”

    모여 있던 상단주 중 한 명의 말에 사만다가 그를 노려보았고 뜨끔한 느낌을 받은 상단주는 연신 헛기침을 하며 사만다의 시선을 피했다.

    “그럼 레비트 상단에서 받아보시겠습니까? 공짜로 넘겨 드리죠.”

    “꼭 내가 넘겨받겠다는 것은 아니지 않소? 엘더 역시 처음에는 선의인 것처럼 보이지 않았소?

    레비트의 말에 주변에 모인 상단주들도 공감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말씀드렸을 텐데요. 저라면 이딴 껍데기에 밀 한 줄기도 투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저의 상인으로서의 경력에 오점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도대체 조건이 무엇이길래 와일리 상단을 그렇게 무용하게 보시는 겁니까?”

    다소 어투는 온화해졌지만 의문을 표하는 레비트 상단주를 본 사만다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자신이 와일리 상단을 입찰할 때 약속한 조건을 천천히 말해 주었다.

    “첫 번째 와일리 상단이 발행한 어음에 대한 무제한적인 인정. 두 번째 엘더 영주가 약속한 20%의 세금 감면에 해당하는 현물의 지급. 세번째 마탑과의 독점적인 거래 포기.”

    사만다의 말이 끝나고 나서도 주변에 모인 상단주들은 얼어붙은 듯이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잠시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자신이 지금 들은 것이 사실인지 주변의 반응을 살피던 상단주들이 마침내 입을 열어서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지금 사만다 상단주가 세금 감면 약속을 자신이 이행하겠다고 하는 건가?”

    “그런 것 같은데?”

    “그게 말이 되는가? 어음이면 몰라도 사만다 상단주가 뭐 하러 세금을 책임지는가?”

    “그보다는 마탑과의 독점거래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술렁이는 상단주들이 서로 답이 없는 질문만을 반복하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단주들의 질문은 단 두 개로 압축이 되었다.

    “그럼 레빌리온 백작가가 손실을 보는 금액이 얼마나 되는 거지?”

    “왜 레빌리온 백작가가 이런 손해를 감수하는 거지?”

    상단주들이 서로 간 질문을 하는 것에 지쳤는지 답을 내려줄수 있는 유일한 사람, 사만다 상단주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질문 받겠습니다.”

    사만다의 말에 눈치를 보면 상단주 중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먼저 사회자분에게 묻겠습니다. 지금의 약속이 공식적인 문서로서 기재된 사실입니까? 사만다 상단주의 구두 약속입니까?”

    “공식적으로 기록된 입찰 이행 사항입니다.”

    그 말에 여기저기서 탄식과 감탄이 섞인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레빌리온 백작가가 그와 같은 금액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까?”

    “레빌리온 백작가의 재산은 비밀이기 때문에 밝힐 수가 없습니다만 레빌리온 백작가보다 와일리 상단이 먼저 파산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 역시도…….”

    “백작님의 명예를 모욕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귀족의 명예를 운운하는 말에 질문을 하려던 상단주의 입이 다물어졌다.

    “레빌리온 백작가가 무슨 이유로 이런 호의를 베푸는 것입니까?”

    “귀족으로서의 의무입니다. 사실 레빌리온 백작가의 처음 생각은 그저 뒤에서 조용히 어음을 매입하여 와일리 상단을 인수한 엘더의 부담을 줄여주는 것으로 귀족으로서의 책임을 다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엘더 그자가 와일리 상단을 삼키기 위해서 부덕한 행위를 한 것이 국왕전하의 조사를 통해서 밝혀졌습니다.”

    사만다의 입에서 귀족의 의무와 책임에 대한 말이 나오자 장내가 숙연해지는 듯했다. 사만다가 제시한 조건과 태도에서 단순히 말뿐인 의무나 책임을 운운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왕전하께서 와일리 상단의 새로운 인수자를 찾을 때도 레빌리온 백작가는 차기 인수자를 위해서 조용히 어음을 매입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입찰 기한이 일주일 남은 시점에서도 모두가 이익과 손해를 저울질할 뿐 진정으로 상계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은 여러분들께서도 잘 아실 것이고 이번 입찰에서 단돈 1골드를 적어내서 제가 낙찰을 받은 것으로도 충분히 아실 것입니다. 레빌리온 백작님께서는 이러한 자정작용이 없는 상계에 대해서 많은 안타까움을 느끼셨기에 저를 대리인으로 와일리 상단의 인수의사를 밝히셨습니다.”

    담담한 사만다의 말에 모두가 부끄러움을 느꼈다. 평소 자신들이 상계를 움직인다고 생각했던 상단주들이 땅만을 바라볼 뿐 사만다가 하는 말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지금은 레빌리온 백작님의 뜻만 전해야 하지만 말 놓고 상인으로서 딱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크랩스 왕국 상인들 지급까지 뭐 했습니까? 나도 잡일부터 시작해서 원행도 다녀보고 다 했는데 툭하면 매점매석하고 흉년기에 곡물 쌓아두고 했는데, 상계를 위해서 뭘 했습니까? 자기들 국가, 자기들 지역, 자기들 상계 질서 하나 지키지 못하면서 ‘내가 상계를 움직인다’, ‘곡물 시장은 내가 지배한다’ 그렇게 부정이익 취하면서 거들먹거리고 엘더 영주가 마탑과의 거래 독점한다고 뒷담화나 하고… 직무 유기 아닙니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우리가 언제 상계안정시킨다고 말이라도 했습니까?”

    사만다의 발언에 정곡을 찔린 듯 상단주 중 한 명이 반박하는 말을 하자 모두의 싸늘한 시선이 그를 향했다.

    “말 안 했지만은… 당연히… 당연히 잘 해야지요…….”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자신이 했던 발언을 뒤늦게 수습하는 발언을 하자 모두의 시선이 다시 사만다로 집중됐다.

    “레빌리온 백작님께서는 자신이 와일리 상단을 인수함으로서 아무도 피해를 보기를 바라지 않으셨고 귀족으로서의 특혜를 본다는 뒷말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셨기에 마탑과의 독점적인 거래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시는 것이 모두의 불안감을 불식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을 하셨습니다.”

    “뭐라고 할 말이 없구려…….”

    “거듭 말씀드리자면 이미 손해를 본 금액이나 앞으로 손해 볼 생각을 생각하면 와일리 상단의 인수의 결정은 상인으로서 제 경력에 크나큰 오점을 만들 것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이미 레빌리온 가문에 투신한 몸 레빌리온 백작님의 명령을 거스를 수 없기에 손해를 무릅쓰고 이렇게 와일리 상단을 인수하게 된 것입니다. 이번 저희 상단의 입찰에 불만을 가지신 분, 와일리 상단을 같은 조건에 인수하실 분은 앞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아닙니다. 제가 사만다 상단주님과 백작님의 의중을 읽지 못해 실례를 한 점 사과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저의 무례에 대해서 백작님께서 언짢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힘없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레비트 상단주의 말에 모두가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모두 이견이 없으신 줄 알고 저는 이만 상단의 인수를 위한 절차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음의 교환은 일주일 후부터 이곳에서 이루어질 예정이니 교환을 하실 분은 그때 다시 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세금 감면에 대해서는 저희에게 감면 금액을 알려주신다면 상품 등 현물로 드리거나 아니면 대납하여 드리겠습니다.”

    “내가 모두를 대표할 만한 권한은 없지만 레빌리온 백작가의 결정에 모두가 감사드린다는 말을 백작님에게 꼭 전해 주셨으면 하오.”

    고개를 숙이는 레비트 상단주의 행동에 따라 다른 상인들 역시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동조의 뜻을 표시하고는 힘없이 와일리 상단을 벗어났다.

    레비트를 비롯한 상인들은 사만다에게 더없이 좋은 조건을 들었지만 레빌리온 백작가의 일방적인 희생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지 돌아가는 발걸음이 희소식을 들은 것치고는 너무나 무거웠다.

    와일리 상단을 레빌리온 백작가가 인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세간의 반응은 두 개로 나뉘었다. 직접 사만다 상단주의 인수 연설에 참여한 사람과 자리에 참가한 많은 상단주들의 증언을 들은 크랩스 왕국을 위시한 여러 국가의 상단을 운영하는 인물들은 연신 레빌리온 백작가의 와일리 상단의 인수에 대해서 격찬을 보내는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기존 귀족들은 레빌리온 백작가의 행동을 쓸데없는 곳에 가문의 재산을 축내는 바보 같은 짓으로 폄하하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이 레빌리온 백작가가 와일리 상단을 인수하였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수도에서 처음 벌어진 귀족들의 파티에서는 레빌리온 백작가에 대한 뒷담화가 주를 이었다.

    “과거에는 꽤나 괜찮은 곳이었지만 이제는 그저 멍청한 촌 귀족일 뿐입니다. 공명심을 향한 탐욕의 대가는 결국 레빌리온 백작가를 망하게 할 뿐이겠지요. 조용히 촌구석에 박혀 있었으면 100년은 죽은 듯이 가문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시골 귀족이 가진 발상의 한계가 아니겠습니까?

    신랄한 평가에 주변에 모인 귀족들이 레빌리온 백작가에 대한 비웃음으로 동조의 뜻을 표했다.

    후작 가문에서 주최한 파티답게 화려한 실내 장식과 고급스런 음식이 즐비하였지만 모두들 각자의 친분을 뽑낼 뿐 준비된 음식에 손을 대는 사람은 없었다.

    “멍청한 상인 놈들은 레빌리온 백작가의 뜻에 동참한다며 보유 중인 어음을 청구하지 않고 모두 찢어버린다고 합니다.”

    레빌리온 백작가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상인들에게로 돌아갔다.

    “저 같은 경우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평민 놈을 우리 가문의 상단 책임자를 임명했더니 레빌리온 백작가에 세금 감면액만큼의 현물요구를 못하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그런 멍청한 놈이…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듣기도 전에 내쫓아버리고 새로운 책임자를 앉혔지요. 그런 개소리를 하는 놈을 어떻게 계속 책임자로 두겠습니까?”

    “잘하셨습니다. 관대하신 백작님의 성품을 그런 식으로 이용하려 하다니… 은혜도 모르는 놈이군요.”

    파티에 참여한 인원들에 의해서 이리저리 레빌리온 백작가와 상인들이 재단되고 있을 때 한 명의 사내가 파티장안으로 들어왔고 문 앞에 있던 집사는 사내의 방문을 파티에 참석한 모든 귀족에게 알렸다.

    “페이스 자작님께서 입장하십니다.”

    집사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정문으로 몰렸다. 귀족의 계급으로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개 자작일지 몰라도 타고난 외모의 우월한 탓에 상위 귀족의 여식은 물론 결혼한 부인들마저 페이스에게 빠졌다는 이야기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사교계의 이슈메이커에게 집중되었을 무현 페이스는 모두의 시선을 무시하고 커피 한잔을 시종에게 주문했다.

    “자주 뵙는군요. 페이스 자작님.”

    “반갑습니다. 아스틴 님 백작님께서는 무탈하신지요?”

    “사실 요즘 건강이 안 좋으셔서 이번 파티에는 제가 대신 참가한 거랍니다.”

    “외람되지만 영애를 만날 수 있어 저는 행복하군요.”

    페이스가 뻔뻔하게 낯간지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아스틴에게 할 때 페이스가 시종에게 주문한 커피가 페이스가 않은 자리의 탁자위에 놓여졌다.

    “잠시 실례.”

    아스틴에게 양해를 구하고 페이스는 주머니 안에서 파이프와 담뱃잎을 채우고는 부싯깃을 이용해서 종이에 불을 붙였다.

    “이 종이는 무엇인가요?”

    바로 담뱃잎에 불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종이에 불을 붙이는 모습이 신기한지 아스틴이 페이스에게 물었다.

    “이제 망해버린 와일리 상단이 발행한 어음입니다. 휴지쪼가리가 된 어음을 사용하는 가장 유용한 방법이죠.”

    “아직 소문을 못 들으셨나봐요? 레빌리온 백작가에서 와일리 상단의 어음에 대해서 무제한적인 책임을 지기로 한 것을 모르게요?”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는 것이 흥분되었는지 페이스와의 대화가 즐거워서인지 목소리가 다소 높아진 아스틴의 목소리에 주변에 있던 귀족은 물론 파티장에 모여 있던 모든 귀족들이 아스틴을 바라보았다.

    “다른 귀족의 행동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은 귀족스럽지 않은 행동이지요. 제가 그리 곤궁한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대답과 함께 남자와는 어울리지 않는 우아한 모습으로 파이프에 불을 당기는 페이스의 모습에 주변에 있던 귀족가의 여성들이 페이스의 환심을 사기 위해 페이스의 행동을 추켜세웠고 흡연을 즐겨하는 여성들은 페이스에게 자신의 파이프에 불을 붙여 달라고 요청하기도 하였다.

    조용한 파티장이 페이스 근처에 모인 여자들의 수다스러운 목소리로 인해 소란스럽게 느껴졌다.

    “쳇, 얼굴만 반반한 주제에 영지도 없는 귀족 놈이 허세 부릴 돈의 출처 따위야 뻔하지.”

    질투심이 느껴지는 남자 귀족의 목소리에 페이스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지만 페이스 주변에 모인 귀족여성들이 무언의 눈 흘김으로 페이스에게 비난을 하는 귀족을 압박했다.

    “페이스 자작님 같은 배포도 없으시면서…….”

    누군가 흘린 한마디가 페이스에게 파트너를 뺏긴 박탈감을 느낀 귀족남성들의 자존심을 건드렸지만 파티장에서 여성과 다투는 것만큼 귀족스럽지 않은 행동은 없기에 여성의 말에 대해서 반박하는 귀족 남성은 없었다.

    “저 때문에 파티장이 소란스러워진 것 같습니다. 아스틴 님 잠시 저와 시원한 바람으로 기분을 전환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아스틴이 승낙의 말을 하자 페이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살짝 숙이는 것으로 예를 표하고는 아스틴의 손을 잡고 파티장을 벗어났다.

    *

    *

    *

    정식으로 와일리 상단이 기전 발행했던 어음의 상환과 감면된 세금만큼의 현물을 요청하는 상단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정기적인 보고를 위해 통신구를 꺼낸 사만다가 후버에게 통신을 연결했다.

    “후버 님! 그쪽은 어떤가요?”

    ―답이 없군, 지금은 자제를 보관할 창고를 건설하고 있네. 일단은 마법 가방째로 보관을 해야겠어.

    “듣던 것보다 척박한 영지인가 보네요.”

    ―생각보다 더 암울하더군. 사교계의 반응은 어떤가?

    “후버 님이 말씀하신 대로 귀족들이 어음으로 담뱃불을 붙이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좋군, 어음교환소에서도 반응이 나타나고 있나?

    “소액권 중심으로 기존 와일리 상단의 어음을 풀었더니 벌써 집사들을 통해서 귀족들이 상당 부분 어음을 구매해 갔습니다.”

    ―귀족들의 과시욕은… 정말 멍청하군. 내가 귀족인 게 부끄러울 정도야.

    “덕분에 와일리 상단을 운영할 운영 자금은 차곡차곡 쌓이고 있어요. 저는 귀족분들의 그런 과시욕이 고맙기만 한 걸요!”

    ―그렇게 봐주니 고맙군. 이제 페이스 그자에게 영상구를 돌려줘도 될 것 같군.

    “그만 돌려주시게요? 아직 쓸 만한 곳이 많을 것 같은데…….”

    ―제 버릇 개 못준다는 말이 있지 귀족부인과의 불륜장면이야 원한다면 언제든지 확보할 수 있으니 괜한 반감을 가지지 않도록 풀어주는 게 더 좋을 것 같군.

    “후버 님의 뜻이 그러시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후버로서도 무한정한 자금을 가진 것은 아니기에 당장 와일리 상단을 운영할 만한 자금이 필요했다.

    기본적인 운영자금은 크럭스가 실토한 비자금으로 보충할 수 있었지만 다른 상단들이 감면된 세금만큼의 지불을 요청하면 상단의 운영이 곤란해질 염려가 있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귀족들의 허영심을 자극하는 방법이었고 후버는 페이스의 불륜 장면을 촬영한 후 영상을 돌려받고 싶다면 파티에서 와일리 상단의 어음으로 담뱃불을 붙이라는 지시를 내렸고 페이스의 행동은 후버의 생각 이상으로 귀족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다음 날부터 귀족들의 집사들이 어음교환소에 들려 소액권을 중심으로 기전 와일리 상단의 어음을 구매해서 태우는 것이 하나의 유행과 부의 과시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상계의 반응은 어떤가?

    “귀족들과 마찬가지로 상인들 역시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와일리 상단이 발행했던 어음을 폐기하고 있습니다. 레빌리온 백작가의 뜻을 존중해 주는 의미로 엘더에게 약속 받았던 세금 감면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상단주들도 적은 수가 아닙니다.”

    ―생각보다 크랩스 왕국의 상단들이 썩어 있지는 않군.

    “저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추세대로 계속된다면 제가 가지고 있던 1톤 금괴 분량의 어음을 어음 교환소를 통해서 모두 처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부터 교환소에 푸는 어음의 액면가를 지금의 2배로 높이도록.

    “2배로 말입니까? 그럼 너무 비싸서 아무도 구매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자네는 귀족을 모르는군. 귀족의 허영심은 자네가 생각한 것 이상이야 아마 소액권의 어음 공급이 감소하고 고액권의 어음이 풀리기 시작하면 오히려 소액권을 중심으로 품귀현상이 벌어질 거야. 그리고 고액권이 소모되기 시작하면 더 큰 액면가를 가진 어음을 푸는 방식으로 점차적으로 금액을 올리면 귀족들은 구매를 못해서 난리를 칠 거야.

    후버의 말에 사만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점차적으로 교환소에 풀리는 어음의 액면가를 높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가진 어음 중 가장 고액권의 어음이 얼마짜리이지?

    “금괴 30kg의 가치를 가진 어음이 최고액권입니다. 총 가지고 있는 양은 3장입니다.”

    ―어쩌면 그걸 경매를 통해서 팔 수도 있으니 따로 빼놓도록 하게 밑져도 본전이니 본격적으로 고액권도 품귀현상이 벌어지면 경매장을 통해 수도에서 판매하면 될 거야.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귀족들은 허영심을 자극하고 상인들에게는 동료의식과 죄책감을 자극한다는 후버의 생각이 맞아 떨어졌고 후버가 드라고니아 포레스트에 머무는 한 달 동안 사만다는 기존 와일리 상단의 어음을 액면가인 1톤의 금괴보다 비싼 금액에 어음교환소와 경매장을 통해 처분 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상행과 어음발행을 위해 사만다는 와일리 상단의 이름을 자신이 운영하던 와일리 상단으로 바꾸었다.

    드라고니아 포레스트에서 기초적인 사항을 점검한 후버는 국왕인 아스트라를 알현해서 약속한 사항을 이행해 달라는 요청을 하였고 아스트라는 레빌리온가에서 발행한 어음에 대해 국왕의 이름으로 지불의 보장과 유통의 보장을 한다는 사실을 천명하고 상계에 안정에 힘쓴 와일리 상단에 금괴 2톤을 하사하는 것으로 공을 치하했다.

    아스트라의 결정에 대해 귀족들은 단체로 아스트라의 결정에 대해서 항명의 뜻을 밝혔지만 상계에서는 아스트라의 결정이 상계를 안정시키기 위한 과감하고 적절한 결정이라며 아스트라의 결정을 옹호하였고 결국에는 상계의 일은 상인의 의견을 따르겠다는 아스트라의 말에 귀족들은 레빌리온 백작가로 지원하는 금괴의 양을 1톤으로 줄이는 것에 만족는 수준에서 아스트라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사만다 상단주가 이끄는 아크바 상단이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자 기존 와일리 상단을 이용하던 상인들은 물론 크랩스 왕국의 신생 상단이나 중소상단들은 어음의 발행을 모두 아크바 상단을 통해서 발행하는 기현상이 벌어졌고 상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아크바 상단은 성공적으로 크랩스 왕국의 제1어음 보증상단으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

    *

    *

    사만다가 본격적으로 아크바 상단의 대소사를 독자적으로 처리하기 시작하자 여유시간이 많아진 후버는 실제 부임할 영지를 바탕으로 만든 가상의 시뮬레이션을 상정한 여러 가지 질문을 통해 양질의 지원자를 선별하는 후버는 어느 때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훌륭하군요~! 지원서를 보면 나이가 50세로 나와 있습니다. 로스 씨 마지막으로 두 가지 질문을 더 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자신감을 표현 하듯이 가슴을 앞으로 쭉 뻗는 로스의 모습에 후버가 웃음을 지었다.

    “이미 이 영지에 대한 상황은 아실 것입니다. 영지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인구의 부족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방식을 사용하면 될 것 같습니까?”

    “식량을 사 모으면 됩니다.”

    “좀 더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아시다시피 우리 크랩스 왕국의 경우 평년작이라고 해도 식량의 여유가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래서 평년작보다 못하면 수입을 통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있습니다.”

    로스의 말에 후버가 동의를 표했다.

    “매년 상당량의 식량을 수입하고 있지요. 크랩스 왕국의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구요.”

    “충분한 자금이 있기만 하다면 식량을 사 모아서 흉년을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지간의 이동이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 문제점이긴 하지만 흉년이 발생하면 적지 않은 평민들이 자신이 살던 영지를 포기하고 이동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아실 것입니다.”

    영지를 가진 귀족들에게 평민들은 일종의 사유 재산인 만큼 로스가 말하는 대로 쉽게 유민들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평민들의 급작스러운 이동이 발생하면 일반적으로 영지를 가진 귀족들은 명문화된 거주 이동의 자유에 대해서는 모른 척하였고 오히려 영지를 폐쇄하는 방식으로 매우 직접적인 제한을 가하였다.

    평민들의 이동을 제한하는 이유 중에는 정보의 부족역시 중요한 이유였다. 평민들에게 소식을 전할 만한 수단이 전무하기 때문에 이주를 결심한 영지민들도 어느 영지가 식량이 풍부한지 알 수 없기에 최후의 순간 이주를 망설이게 되고 결국은 앉은 자리에서 흉년의 고통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영지 몇 개만 사이에 껴있어도 일부 상인들을 제외하고는 일반 평민들에게는 다른 영지의 소문은 전쟁 등의 큰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전해지지 않는 것이 일반적 이기에 극심한 흉년이 아니면 목숨을 걸고 영지 밖으로 나가는 평민의 수는 어느 정도 제한적이었다.

    현실적인 적용의 문제가 있긴 하겠지만 후버는 로스의 생각이 마음에 들었다. 앞의 많은 면접자들의 두루뭉실한 ‘살기 좋은 영지’를 만든다는 말보다는 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두 번째 질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씀하시지요.”

    “만약 1년의 시간이 있다면 로스 님과 같은 성향을 가진 영지의 운영을 담당할 행정가와 무력을 담당할 기사나 병사를 얼마 정도 확충할 수 있습니까?”

    예상치 못한 질문에 로스가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몇몇 자신과 교류하는 학자들의 이름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그들이 과연 실제로 영지를 잘 다스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걱정이 되었다.

    “어떤 인물들을 원하시는 것입니까?”

    “로스 씨와 함께 영지를 운영해갈 때 아무런 불협화음 없이 최선의 결정을 할 능력이 있는 사람, 그리고 입이 무거운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 외에는 어떠한 조건도 보지 않을 것입니다.”

    “까다로우시군요. 그런 사람이라면… 몇몇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후버는 품 안의 마법 주머니를 열어서는 1kg의 금괴를 로스에게 내밀고는 통신구도 하나 탁자 위에 올려 두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1년간의 활동비입니다. 부족하다면 얼마든지 지원을 해드리겠습니다. 연락을 주신다면 얼마든지 추가적인 지원을 해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이것은 너무 많은 양입니다.”

    “제가 기대하는 인재는 무에서부터 유를 창조할 사람들입니다. 이 정도의 지원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왕국의 발표를 눈여겨보시길 바랍니다.”

    후버가 로스의 사양을 일축하고는 금괴를 강제로 로스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저 레빌리온 백작가의 가신을 뽑는다는 생각에 가볍게 면접을 보러온 로스는 이제야 자신이 답변한 여러 가지 내용들이 실제 상황을 상정 하고 질문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지형도를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로스가 주섬주섬 시뮬레이션용의 영지 지형지물과 관련 서류를 챙기고 있을 때 후버가 마법주머니를 하나 던져 주었고 주머니에 모든 것을 담은 로스는 후버와 악수를 하고는 헤어졌다.

    처음 모든 영지의 가신들을 직접 면접을 통해 고용하려던 후버의 생각은 로스를 만난 후 모든 것을 로스에게 위임하는 것으로 귀찮은 일을 모두 덜어 버렸다.

    일주일간 100여 명의 면접을 봤지만 로스 외에는 마음에 차는 인물을 발견할 수 없었기에 기한 없이 인재가 나타나는 것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로스의 인맥을 믿어보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아스트라와의 협상만 하면 되겠군.”

    먼접으로 쌓인 피로를 털어 버리듯이 기지개를 한번 쭉 편 후버는 3일 후로 정해진 아스트라와의 접견에서 최종적인 조율을 준비하기 위해 휴식에 들어갔다.

    *

    *

    *

    다시 찾은 아스트라 국왕의 집무실 아모르와 아스트라 후버 이렇게 셋 간의 가벼운 덕담이 있은 후 본격적으로 영지에 관해 조율을 시작했다.

    “저와 아모르 님이 함께 영지를 세우는 것이 결국에는 아모르 님을 차기 국왕으로 추대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까?”

    당연한 상황을 이야기하는 후버의 말에 아스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왕 이렇게 된 거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공개적이라는 게 무슨 뜻인가?”

    후버가 자신이 생각한 후계자 결정 방법을 설명했다. 나름대로 머리를 짜내서 2왕자인 아모르가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설정한 것을 이야기하자 아스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후버 님과 함께 그곳으로 부임을 하면 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왕자님의 후견인이자 대리영주의 자격으로 그곳에 부임을 하게 될 것입니다.”

    “공개적인 방식의 장점은 잘 알겠소. 하지만 1왕자와 3왕자를 밀고 있는 국왕파와 귀족파의 견제가 만만치 않을 텐데 그것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물리적인 위치를 떨어트리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귀족들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지는 말게. 가끔 그들은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하곤 하니깐.”

    “아마 제가 생각한 대로 될 것입니다.”

    “공개적인 왕위의 다툼이라… 이게 왕국의 전통으로 굳어지지는 않았으면 좋겠군.”

    한두 번이라면 후버가 생각한 방법이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계속해서 반복된다면 아마도 국력을 깎아먹는 하나의 요소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아스트라의 수심이 깊어졌다.

    “그래서 기간을 한정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5년 후에 시작해서 딱 5년간의 성과를 겨루는 방식 그리고 누가 왕이 되든지 왕권은 크게 강화될 것입니다.”

    “왕권이야 강화 되겠지…….”

    “그들은 스스로의 목줄을 죄게 될 것입니다. 사실 1왕자와 3왕자의 경우 후견인이 이미 정해진 것과 다름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사실상 영지 역시 정해진 것과 마찬가지일 거야.”

    아스트라가 다시금 집무실 뒤편에 걸려 있는 크랩스 왕국의 지도를 탁자위에 올려 두고는 후버, 아모르, 그리고 자신의 찻잔을 움직여서는 각각 지도의 한 곳씩에 놓았다.

    “이미 아모르가 부임할 곳은 정해 두었으니 내 생각에는 아마도 1왕자와 2왕자는 이쪽으로 부임이 될 텐데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아스트라가 가리킨 곳은 각각 엔트로 영지와 치알디니 영지 후버가 대리영주로서 통치할 드라고니아 포레스트의 북쪽령와 선을 연결하면 정확하게 정삼각형으로 크랩스 왕국을 감싸는 지형이었다.

    “저의 생각 역시 같습니다. 처음에는 각각 귀족파와 국왕파가 자신들의 기반이 있는 곳으로 부임할 영지를 고르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상대를 견제하기 위한 최적점을 선택하겠지.”

    아스트라가 선택한 영지는 귀족파가 미는 3왕자의 경우에는 국왕파의 귀족들이 몰려 있는 지역에 위치하였고 국왕파가 미는 1왕자가 부임할 영지의 경우에는 귀족파들의 영지가 모여 있는 곳의 한복판에 있었다.

    “그리고 2왕자님의 영지는.”

    잠시 2왕자의 눈치를 보는 후버의 모습에 아스트라가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처음에는 이렇다 할 견제를 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견제를 받도록 만들어야지요.”

    국왕의 총애를 받는 다는 것은 왕성 안에 살고 있다면 절대적인 지지이지만 왕성에서 멀어질수록 그 영향력은 감소할 것이 틀림없었다. 따라서 2왕자는 초반에는 그 어떤 견제도 받지 않을 것이란 것이 후버의 생각이었다.

    “그럼 견제를 받게 할 만한 방법은 있는가?”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이 있습니다. 새로 부임할 드레고니아 포레스트의 북쪽 영지에서부터 크랩스 왕국의 가장 먼 곳까지 걸어가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겠습니까?”

    “대략적으로 4개월 정도 걸릴 것이오. 말이나 마차를 타고 간다면 더 빠르겠지.”

    아스트라의 대답에 후버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후버는 자신이 생각한 방법을 하나씩 풀어내었다.

    아모르가 부임할 영지에 대한 10년간의 계획이 대략적으로 설명 될수록 아스트라와 아모르의 입에서는 경탄이 끊이질 않았다.

    일견 허무맹랑할 정도의 계획이었지만 후버가 하는 말이 사실이라면 아모르에게 충분한 승산이 있어 보였다.

    매일 왕성을 방문해서 내리 3일을 설명하고서야 끝난 후버의 10년간의 영지 운영 계획에 대한 평가를 마친 아스트라는 2주간 자신의 집무실에서 생각을 정리한 끝에 국왕파와 귀족파를 대표할 수 있는 귀족들을 각각 10명씩 뽑아서 왕성으로 불러들이는 것으로 10년간의 왕권을 둔 경쟁의 시작을 알렸다.

    아스트라 국왕과 국왕파 귀족파는 처음에는 각 각 자신들이 내걸을 조건만을 말할 뿐 상대방의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 방식으로 처음부터 평행선을 달렸다.

    그렇게 서로 간의 이견이 좁아지지 않은지 일주일 국왕이 후계자 간의 경쟁에 귀족들의 무제한 적인 개입이 가능하다는 규칙을 넣어줄 것을 요구하는 귀족들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하나씩 하나씩 서로 간의 이견을 좁혀갔다.

    최종적으로 3개월여의 시간이 지나가 국왕파와 귀족파 그리고 국왕이 모두 만족할 만한 시안이 완성되었고 그 시안을 문서로 정리하는 데 또 6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최종적으로 후버가 아스트라를 만난 지 10개월 만에 영지 운영 실적에 의한 후계자 선택에 대한 방향이 모두 조율되어 마지막 후계자 선정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러니까… 1왕자의 경우에는 엔트로 영지를 선택하였고 후견인으로는 조지아 가문의 마운틴 공작이 담당하는 것이 맞소?”

    아스트라의 질문에 1왕자의 뒤에 앉아 있던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는 마운틴. 대대로 이름 있는 기사를 배출한 조지아 공작가의 가주 답게 50의 나이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몸과 함께 국왕 앞에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고 당당한 태도가 왠지 모를 위압감마저 느끼게 해주는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블렌드 경은 안녕하시오?”

    “전하께서는 농담도 제 동생은 항상 저보다 건강하지 않습니까?”

    조지아 가문이 다른 가문과 구분되는 큰 특징 중 하나는 가문에서 가장 강한 자는 국경을 지키기 위해 왕국에 투신하고 남은 자중에서 가문의 차기 가주를 정한다는 점이었다.

    당대의 가주인 마운틴은 5명의 후계자 중 검에 있어서는 검에 대해 가장 낮은 성취를 보였지만 가문을 위하는 충성심과 높은 지략 덕에 당대의 공작으로 선출된 인물 이었다.

    왕국에 투신한 자들은 검의 가문인 조지아 가문에서 가장 강한 자라는 명예를 얻고 무력이 부족한 자중 인성과 지력을 평가해 차기의 가주를 선출 하는 것이 오랜 기간 동안 내부의 분열을 일으키지 않고 꾸준히 성장을 해온 조지아 가문의 비결이었다.

    “이거 내가 실수했군. 그럼 3왕자의 후견인으로는 아가스틴 공작가의 안티구아 공작께서 담당하실 것이고 치알디니 영지를 관리할 것이라고 했소?”

    이번에는 3왕자의 뒤에 앉아있던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그렇습니다. 전하 소신도 많이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1왕자를 담당하는 마운틴 공작과는 다르게 평범한 체형을 가진 남자였지만 마운틴 공작과는 다른 종류의 위엄이 느껴졌다.

    “전하 2왕자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마운틴의 물음에 안티구아 역시 궁금하다는 듯이 아스트라를 바라보았다. 자신들의 신분이 각각 귀족파와 왕당파를 지지하는 입장인 만큼 자신들과 대립각을 세울 만한 인물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거 내가 그것을 깜빡했군. 안 그래도 이곳에 와 있으니 잠시 만나보도록 하겠소?”

    “서로 경쟁할 사이에 통성명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운틴과 안티구아와 한 번씩 눈을 마주친 아스트라가 가볍게 종을 한번 흔들자 총관이 밖으로 나가서는 후버와 함께 아스트라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저자는 누구입니까?”

    생경한 후버의 모습에 마운틴이 후버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아스트라를 바라보았다. 평범한 귀족가의 자제 정도로 보이는 후버의 모습에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어깨 위에 올라가 있는 고양이 한 마리, 공식적인 자리에 자신의 애완동물을 데리고 오는 것도 이상하지만 국왕의 집무실에 동물이 들어오는 것을 허락한다는 것도 그들의 상식으로는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자신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정말 자신들과 경쟁하는 대상이 맞느냐는 듯한 마운틴의 물음에 아스트라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레빌리온 백작가의 차남인 후버라고 합니다. 두 분 공작님을 뵙게 되어 가문의 영광입니다.”

    후버가 정중히 허리를 숙이며 자신을 소개하였지만 마운틴과 안티구아는 오히려 더 모르겠다는 듯이 서로 눈을 마주칠 뿐이었다.

    “레빌리온 백작가라면 나도 알고 있네만 자네의 이름은 너무나 생경하군. 아스트라 국왕전하 저자가 정말로 2왕자인 아모르 님을 보필하는 것입니까?”

    “그렇다네. 소개한 대로 레빌리온 백작가의 2남이지, 아마 자네들도 장남인 큐리오는 알고 있을 것이네.”

    “예, 이번 레빌리온 백작가가 나라를 위해 큰 결정을 해주었고 그 결정에 백작가의 후계자인 큐리오가 큰 역할을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후버와는 다르게 큐리오의 경우에는 이번 와일리 상단의 실질적인 인수를 추진한 인물로 잠시간이지만 중앙 귀족 사이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다.

    “후버는 그 일을 추진하는 데 뒤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지 중앙에는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괜찮은 능력을 보여주었기에 이번 일에 이자를 쓰기로 했다네. 그리고 현실적으로 왕국의 2대 공작이 나서는 일에 대각마로 설 만한 인물이 현재 귀족 중에 있겠나?”

    아스트라의 설명에 두 공작은 약간은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어느 정도는 납득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조금은 의외군요.”

    “그건 마운틴 자네가 이해해 주시게. 사실 2왕자가 가는 영지가 다른 영지에 비해 다소 부실하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네.”

    “그야 그렇습니다.”

    “두 공작 모두 내가 다른 왕자보다는 아모르를 편애하는 것은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네.”

    “전하의 뜻을 어찌 제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아스트라의 직설적인 말에 마운틴과 안티구아가 약간은 당황한 듯 한목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그래서 사실 아모르가 지낼 영지 하나쯤은 내려 주려고 하네. 마침 지금의 기회가 그러기에 딱 좋지 않은가? 혹여라도 아모르가 잘 해낸 다면 왕위를 물려 받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고 말이야.”

    “그것이 저자를 선택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잘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아모르 그 아이는 이제 떨어지는 별과 같은 신세이지. 내가 아모르 그 아이를 아낀다고 해도 괜히 다른 귀족가를 함께 떨어트릴 만큼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지는 않는다네. 레빌리온 백작가의 경우에는 최근 들어서 이름을 떨치고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후버 저 아이는 가문의 명맥을 이어가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아이일세.”

    “그렇다면 사실상 아모르 왕자님은 후계구도의 경쟁에서 빠지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마운틴 경 너무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면 후버 저 아이가 섭섭지 않겠는가?”

    “이미 전하께서 저의 위치를 모두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가벼운 농담 같은 후버의 말에 아스트라가 작게 웃음을 흘리자 새로운 인물의 등장과 함께 긴장되었던 분위기가 약간은 풀리는 듯했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지금으로서 나는 아모르 그 아이에게 변경백의 작위와 함께 아모르를 보필해줄 후버를 함께 보내주려고 하는 것뿐이네. 그리고 두 공작도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있네.”

    “저희가 이해해 주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후버, 그것을 가지고 와주게.”

    안티구아의 질문에 아스트라가 후버를 부르자 후버가 품속에 있는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서는 아스트라에게 공손히 바쳤고 아스트라는 후버에게 두루마리 하나를 주었다.

    “레빌리온 백작가의 가주께서 후버를 아모르에게 붙여주는 대신에 하나의 조건을 걸었다네. 공식적으로나 비공식 적으로나 더 이상 후버는 더 이상 레빌리온 백작가의 사람이 아니네. 그러니 두 공작도 혹여라도 레빌리온 백작가에 대한 견제는 하지 않아 주었으면 하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그렇다면 후버는…….”

    “새로운 귀족의 신분을 받게 될 것이네. 후버 자네는 혹시 생각해둔 성이 있는가?”

    “블랙스완이라는 성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가문에 동물의 이름을 넣다니 무슨 의미라도 있는 것인가?”

    “이제부터 만들어갈 것입니다.”

    “좋군, 그럼 이제부터 자네를 블랙스완 자작가의 후버 자작으로 부르도록 하지. 신분에 불만은 없겠지?”

    “전하께서 내려주신 작위에 누를 끼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좋군! 블랙스완 가문의 번창을 바라네.”

    오른 주먹을 가슴에 대며 허리를 숙인 것으로 작위를 이어받는 귀족으로서의 충성 맹세를 간소하게 끝마친 후버나 그것을 덕담으로 받아주는 아스트라의 모습에 두 공작은 반대를 할 만한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이것으로 내가 레빌리온 백작가와 한 약속은 모두 끝났네. 두 공작은 이 조치에 반대할 것이 있는가?”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저 역시 마운틴 공작의 생각과 같습니다.”

    “두 공작은 너무 신경을 쓸 필요는 없네. 그래봐야 단승작인 변경백과 자작의 작위를 주었을 뿐이네. 그리고 더 이상 레빌리온 백작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도 확실히 했으니 큰 문제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아모르가 부임하는 곳은 드라고니아 포레스트의 초입 부분이네 레빌리온 백작가와 약속을 한 나의 위신을 세워 주었으면 좋겠군.”

    아스트라의 말대로 드라고니아 포레스트의 성질을 생각해 보면 그 영지가 선택된 시점부터 왕위쟁탈전에서 아모르가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미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저는 더 이상의 이견은 말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왕가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마운틴 공작은 아스트라의 체면을 세워 달라는 말에 후버의 작위 승작에 대해서 물문에 붙일 것을 약속하였다.

    “저 역시 마운틴 공작과 생각이 같습니다.”

    “고맙소. 내 두 공작의 이해심을 잊지 않도록 하겠소. 그럼 두 공작을 증인으로 전 레빌리온 백작가의 자제 후버에게 새로운 성인 블랙스완과 자작의 작위를 내리도록 하겠소.”

    *

    *

    *

    후버가 국왕으로부터 자작의 작위를 받은 지 일주일.

    사만다를 통해 드라고니아 포레스트로 떠나기 위한 최종 준비를 하던 후버는 뜻밖의 방문자가 왔다는 시종의 말에 응접실 안으로 들어갔다.

    “마운틴 공작님 그리고 블렌드 님께서 이런 곳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갑작스레 미안하군. 후버 자작 이제 곧 드라고니아 포레스트로 출발한다는 말을 듣고 그곳에 가기 전에 잠시 대화를 나눌 것이 있어서 이곳에 오게 되었네.”

    후버의 등장에 마운틴은 별것 아니라는 듯이 준비된 차를 마시며 후버를 맞이했고 블렌드는 자신의 정체를 한 번에 알아보는 후버의 아래위를 가볍게 훑어보았다.

    “안 그래도 두 분 공작님을 한번 찾아뵙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가? 이거 내가 괜히 서둘렀군. 내가 자네에게 반드시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 발걸음을 서둘렀네.”

    “하문하시지요.”

    “하문이랄 것까지야. 사실 자네에 대해서 조금 조사를 해보았네. 그런데 말이야 아무리 조사를 해도 아스트라 전하께서 자네를 선택한 이유나 자네가 그것을 받아들인 이유를 모르겠네. 조금은 서로 속을 터놓고 이야기 하는 것이 어떤가?”

    “저의 역할은 아모르 2왕세자님의 말동무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전하를 향한 충심에 작은 걱정거리를 덜어주려는 충심이었을 뿐입니다.”

    납득이 가지 않는 후버의 설명에 마운틴이 후버에게 사실을 확인하였다.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레빌리온 백작가가 충성하는 것은 크랩스 왕국인가? 아스트라 전하인가?”

    “저는 이제 레빌리온 백작가와는 관계가 없는 외지인일 뿐입니다.”

    “이곳 아크바 상단은 레빌리온 백작가가 운영하는 곳이 아닌가?”

    “저는 그저 이곳의 고객일 뿐입니다.”

    후버의 대답에 마운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니 준비할 것이 많은 만큼 상단에 모든 것을 의뢰하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레빌리온 백작가와 관계가 없다는 자네의 말은 믿어 주도록 하지. 그럼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크랩스 왕국인가? 아니면 아스트라 전하인가?”

    “반드시 답변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까?”

    “자네의 대답 여하에 따라 자네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이네.”

    말뿐인 것은 아닌지 대답과 동시에 마운틴의 몸에서 한 줄기의 기세가 후버의 심장을 향해서 집중되었다.

    “저는 아모르 2왕세자님께 충성의 맹세를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지금 일으키는 기세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공작가답지 않군요.”

    다소 삐딱한 후버의 반응에 블렌드가 흥미롭다는 듯이 후버의 눈을 살폈다.

    “아직 젊은 것 같은데 단지 심장이 튼튼할 뿐인가? 아니면 어느 정도의 실력은 있다는 건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저는 대답을 드렸습니다. 마운틴 공작님과 블렌드 님께서는 왕국입니까? 아스트라 국왕전하입니까? 아니면 아스킹 왕세자입니까?”

    “공작가는 왕국에 충성할 뿐 특정 인물에게 충성을 하지는 않네.”

    “그렇다면 아스트라 국왕전하의 뜻을 따라 아모르 왕세자를 돕는 것이 순리에 맞는 것이 아닙니까?”

    “순진한 생각이군. 평균적으로 30년마다 한 번씩 국왕의 자리는 다음대로 이어진다는 것을 자네도 알고 있을 것이네. 지금까지 크랩스 왕국은 계속해서 1왕세자가 국왕의 자리를 이었지. 그러한 전통성이 이어지는 덕분에 왕국은 별다른 소요 없이 왕권의 위축되지 않고 주변 국의 견제를 이기고 발전을 해올 수 있었지. 이제 와서 2왕자나 3왕자가 차기 왕권을 잡는 전례를 남긴다면 30년마다 왕가는 피로 피를 씻는 국왕의 자리를 둔 쟁탈전을 하게 될 것이네. 어떤 나라가 그러한 상황에서 발전할 수 있겠는가?”

    마운틴의 말에 후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표면적으로는 마운틴이 말했듯이 1왕자가 계속해서 왕권을 이어왔고 그 덕분에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왕권을 놓고 벌이는 권력 쟁탈전이 없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일리 있으신 말씀이군요. 그래서 공작님께서는 국가를 위해 1왕세자의 후견인을 자처한 것이구요. 하지만 저로서는 한 가지 궁금하군요. 정말 순수하게 왕국을 위해서입니까? 하나의 사심도 들어가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으십니까?”

    “이런 무례한!”

    후버의 말이 마운틴의 신경을 거슬렸는지 마운틴 공작이 책상을 손으로 치고 일어나서는 후버를 노려보았다. 그와 동시에 짜릿하게 압박되는 심장의 고통.

    ‘마운틴은 아니군.’

    눈으로 보기에는 후버를 압박하는 것은 마운틴이지만 심장을 압박하는 마나의 흐름은 마운틴이 아닌 블렌드로부터 느껴졌다.

    “나이도 어린놈한테 힘으로 압박해서 무릎이라도 꿇리려는 겁니까?”

    침착한 척 말을 하는 후버였지만 압박된 심장에서부터 힘차게 펌프질된 혈액이 후버의 두 눈을 붉게 물들였다.

    “치졸하군. 이게 조지아 공작가의 방식인가?”

    쾅!

    “닥쳐라!”

    다시금 책상을 강하게 치는 것은 마운틴이었지만 후버는 그런 마운틴에게는 조금의 시선도 주지 않았다.

    “국왕전하의 앞에서는 공정한 경쟁을 한다더니 결국하는 게 무력으로 협박이라니… 소드마스터쯤이나 되는 분이 부끄러운 건 모르시는 모양이십니다.”

    이죽거리는 후버와 블렌드 사이에 작은 불꽃이 튀며 사방에 비산하였다.

    고위급 기사와 마법사 사이의 전투에서 마법사가 기사의 기세에 위축되는 것을 막기 위한 안티포스 필드 마법으로 인해 무형의 기세가 불꽃의 형상으로 유형화되었다.

    “지금 상황에서 나를 도발해봐야 후버 자작 자네만 손해일 뿐이야.”

    한 층 더 강해지는 기세에 후버 역시 몸의 마나를 끌어 올렸다.

    “손해고 자시고 일체의 사심이 들어가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만.”

    “그건 공작가와 크랩스 왕국의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그러는 자네는 일체의 사심이 없는가?”

    “이미 마법사로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약속을 아모르 2왕세자님께 하였습니다. 더 이상의 답변이 필요합니까?”

    후버가 언급한 마법사로서의 최대의 약속이 마법사의 맹세를 의미하는 것을 아는 블렌드는 자신의 기세를 거두었다.

    “그 말이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후버의 말에 마운틴은 자리에 앉아서는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의 일을 정리하는 듯 손가락 끝으로 책상을 규칙적으로 두드린 지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마운틴이 후버에게 짧은 질문을 했다.

    “왜지?”

    “그것이 왕국을 위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니야 2왕자가 왕권을 잡으면 후계구조에 대한 나쁜 선례를 남기는 것뿐이네.”

    후버의 진심을 확인했다고 생각하는 탓인지 블렌드의 목소리가 후버를 추궁하는 어조에서 설득을 하는 어조로 바뀌었다.

    “이유는 말할 수 없지만 왕국을 위한 최선의 조치입니다.”

    확신에 찬 후버의 말에 마운틴과 블렌드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객으로서 주인을 내쫓는 게 실례인 것은 알지만 잠시 자리를 피해주지 않겠나? 잠시 나와 블렌드가 상의할 것이 있네. 자네에게도 나쁜 일은 아닐 거야. 그리고 좀 전의 일은 미안하게 됐네.”

    영문을 모를 마운틴의 부탁이지만 고개를 끄덕인 후버는 마운틴과 블렌드를 응접실에 두고는 밖으로 나왔다.

    탁.

    “어떻게 생각하는가?”

    후버가 나간 것을 확인한 블렌드가 마운틴에게 후버에 대한 감상을 물었다.

    “판단하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나이와 행동이 일치하지가 않습니다.”

    “무슨 말인가?”

    “제가 알기로는 저 아이의 나이가 고작 20살 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느끼셨겠지만 처음에는 장난으로 시작한 기세를 나중에는 거의 최대치까지 끌어올렸습니다. 그런데 능숙하게 방어를 해냈죠.”

    기세를 끌어올렸을 때 블렌드가 생각한 후버의 반응은 최소한 각혈 혹은 기절이었다. 하지만 아직 20살밖에 되지 않은 후버가 자신의 기세에 대해서 능숙하게 방어를 하는 모습에 블렌드는 당혹감마저 느껴야 했다.

    “인정할 정도인 것인가??”

    “인정이라… 인정해야겠지요. 특히 그 아이가 기세를 방어하기 위해 안티포스 필드를 사용했을 때 자세히 보셨습니까?”

    “마법사이니 그 정도의 방어는 당연한 것이 아닌가?”

    “아닙니다. 일반적인 저서클 마법사는 제가 쏟아내는 기세를 막아내지 못하지요. 마법을 성공시킨 것 만해도 대단한 것입니다. 제가 기세를 풀 때까지 마법을 유지 시키는 방식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최소한 그 나이의 평범한 마법사가 시행할 방식은 아니니까요.”

    “어떤 면이 다른 것인가?”

    “기세를 흘렸습니다. 심장에 고통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통증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안티포스 필드가 방어할 수 있는 양 만큼만 방어하고 나머지는 심장으로 받아냈습니다. 실전을 격은 마법사라면 모르겠습니다만 아직 전장의 경험도 없는 마법사가 사용할 만한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고통이 가해지면 고통을 피하는 것이 사람의 본능인데 이성으로 본능을 누를 수준의 정신력을 가진 것이겠지요.”

    마운틴은 느낄 수 없었지만 기세를 뿜어낸 블렌드는 후버의 방어 방식에 대해서 호감을 느낄 정도의 경탄을 했다.

    말은 쉽지만 후버는 자신이 방어할 수 있을 만큼의 방어와 나머지를 무식하게 몸으로 받아내었다.

    후버의 방식은 마치 블렌드 자신이 마스터의 반열에 오르기 전 실전에서 자신보다 강한 자슬린 백작의 검에 갈비뼈를 내주고 적의 목을 쳤던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저와 자슬린 백작간의 결투를 기억하십니까?”

    “기억하다 뿐이겠는가? 그때 동생의 모습을 보고 내 위치를 깨닫고는 공작위를 물려받을 후계자 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을 정도였지.”

    “그때의 저와 같은 모습입니다. 대충 이 정도면 제가 후버자작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아시겠지요?”

    “그 정도는…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이 아닌가?”

    “아닙니다. 제 눈은 틀림없습니다. 최소한 전투에 대해서는 앞으로 크게 성장할 인재입니다. 제 곁에 두고 싶을 정도니까요. 형님이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인성이나 지성적인 면에서 말입니다.”

    “최소한 지능에 대해서는 너와 평가와 같아 어쩌면 머리가 좋으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인성에 대해서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싶네.”

    “왕국에는 도움이 될 것 같습니까?”

    “왕국에는 분명히 도움이 되겠지만 그게 저자 자신을 위한 것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군 당장은 분명히 도움이 될 거야.”

    “애매하군요. 능력은 있는데 인성이 부적절하다면 결국 크게 쓰기는 힘들다는 것 아닙니까?”

    “한번 떠보는 것이 어떤가? 어차피 대화는 내가 주도 하고 있으니 반응을 보고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 나을 것 같군.”

    “그렇게 하지요.”

    블렌드가 긍정적으로 대답하자 마운틴이 응접실의 문을 열고 후버를 불렀다.

    “일단 아까의 일은 다시 사과하도록 하지. 미안하게 됐네. 후버 자작.”

    “잘은 모르겠지만 이해하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자네를 찾은 것은 짐작했겠지만 이번 후계자 구도에 대해서 질문할 것이 있기 때문이라네.”

    “하시지요.”

    심드렁한 후버의 반응.

    “기분이 많이 상했나 보군. 간명하게 말하지, 이번 경쟁에서 괜한 피해를 보기 싫다면 빠지도록 하게. 괜한 국력의 낭비를 원하지는 않으니, 자네도 앞길을 망치고 싶지는 않겠지?”

    “이미 아모르 왕자님께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왜 이리 답답하나? 자네의 충성이 결국 왕국에 독이 될 거라는 것은 모르나?”

    “어째서 그게 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마운틴 공작님에게는 왕가에 대한 충성이 독인 겁니까? 단순히 지지하는 분이 다르다는 것으로?”

    마운틴은 비아냥대는 후버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일단은 후버에 대한 평가를 위해서 잠시 성질을 눌렀다.

    “평가는 영지의 발전에 따라서 정해질 거라는 것은 알고 있겠지? 그리고 중요 사항 중 하나가 영지민의 증가율이고 자네라면 어떻게 하겠나?”

    “평가 초기의 상대편 인구는 늘리고 자신의 영지에 들어오는 영지민의 수는 감소시키겠죠.”

    “그래도 기본은 아는군. 귀족파와 왕당파 양쪽에서 서로에게는 물론 2왕세자님의 영지로 영지민을 엄청나게 이동을 시키겠지. 최소한 5만 이상의 영지민이 일순간에 영지로 유입될 것이네. 앞으로 봄이 오기 전에 말이야. 자네는 그 영지민들이 모두 배고픔 속에서 개죽음을 당하길 원하나?”

    “누가 개죽음을 당한다는 겁니까? 그 정도 준비는 이미 6개월 전에 끝나 있습니다.”

    ‘이 새끼가…….’

    비웃음이 섞인 여유로운 후버의 답에 화를 내려던 마운틴은 후버의 말에 이상함을 느꼈다.

    “6개월 전이라니……?”

    “설마 제가 정말 급조되어서 아모르 왕세자님을 모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하필 아스트라 국왕께서 가장 아끼시는 아모르 왕세자님을 그런 불모지로 보냈을까요? 마운틴 공작님 기본을 한번 물어 봅시다. 국가의 부는 어디서 나옵니까? 제국와 왕국의 차이가 어디서 기인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갑작스럽게 대화의 주도권이 후버에게 넘어간 듯하여 대답하기가 불쾌한 마운틴이었지만 일단은 후버의 인성을 평가하기 위해서라도 대답을 해주었다.

    “그야 당연히 토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토지에서 농산물이…….”

    후버의 질문에 답하려던 마운틴의 말이 멈추자 후버가 그런 마운틴을 보고는 다시금 비웃음과 비슷한 웃음을 날리고는 마운틴이 아닌 블렌드에게 물었다.

    “돌아가십니까?”

    “무슨말인가?”

    “블렌드 님께는 마운틴 님께서 잘 설명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이만 바뻐서.”

    마운틴이 미처 제지하기도 전에 후버가 응접실의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지금 후버 자작이 무슨 소리를 한 건가?

    “하하하, 귀족파 놈들이 당했군… 아니, 귀족파뿐만이 아니라 국왕파 역시 국왕에게 엮였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어. 내가 멍청했군. 다들 당장의 일만 생각하고 있을 때 후버와 아스트라 국왕전하만이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네.”

    갑작스레 마운틴이 웃음을 터트리자 블렌드는 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블렌드를 바라보았다.

    “왕국의 고질적인 문제가 무엇인가? 일부 귀족들이 영지민을 장악하고 있으니 영지들의 고른 발전이 불가능하고 고질적인 농산물 부족 사태가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제국과 왕국의 차이 그건 식량의 차이일세. 국가의 부는 땅에서부터 나오는 것이지.”

    “그렇지요.”

    “알다시피 경쟁의 평가 요소인 영지민의 증가율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귀족파나 왕당파나 모두 영지민을 당분간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야. 오히려 상대 영지로 영지민을 보내게 되겠지. 강제로 영지 밖으로 내쫓아진 영지민들은 유민이 돼서 이곳저곳 영지민이 부족한 영지로 흘러들어가게 될 것이고 귀족파와 국왕파가 모두 영지민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한다면 결국 유민들의 적지 않은 수가 미개발지인 드라고니아 포레스트 지역으로 이동하게 되면 주요 귀족들의 파워는 상대적으로 약해지겠지. 이러한 이동이 수번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이후에 일어날 일은 블렌드 역시 짐작할 수 있었다. 당장은 국왕의 뜻에 반할지 모르겠지만 국왕파가 전체 영지의 7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고른 영지의 발전은 결국 왕의 권한이 강력해지는 것을 의미했고 동시에 국력의 강화를 의미했다. 귀족들의 힘이 서로 간 균등해질수록 상대적으로 국왕의 힘이 강력해지는 것은 상식이었다.

    “당했군, 당했어. 영지민의 증가수가 아니라 증가율을 보고 판단한다는 의미가 그런 의미인 것입니까?”

    “그렇지. 공정한 평가를 위해서 누구도 앞으로 5년간 영지민이 스스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지 못한다고 했으니 틀림없어. 그리고 세 영지의 공통점은 서로 간의 견제를 위해서 가장 발전이 되지 않은 영지였습니다. 국왕파와 귀족파 모두가 낙후된 영지를 최선을 다해서 발전시키려고 하겠지.”

    “그런데 저나 형님이나 파악 못한 것을 후버 자작은 어떻게 아는 것입니까?”

    “국왕께서 따로 언질을 주었거나 뭐 그런 것 아니겠는가? 우선 영지로 돌아가봐야겠어.”

    “그러시죠.”

    마운틴과 블렌드가 몸을 일으키고 나가자 넓은 응접실이 텅 비었다. 창틀 뒤의 한 마리의 고양이를 제외하고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