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버크래프트 4권-공격과 방어 (25/37)
  • 후버크래프트 4권

    목차

    공격과 방어

    아스트라와의 회담

    함정 설정

    와일리 상단의 새 주인?

    와일리 상단의 새 주인!

    드라고니아 포레스트로

    공격과 방어

    “기사들은 모두 와일리 상단에 고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상단에서 3서클 마법사도 고용했다고 하더군요. 대기소에서는 우연히 지나가던 마법사라고 하던데 아무래도 결과가 안 좋지 않습니까?”

    타이킨 총관과의 만남이 있은 후 와일리 상단에 가기보다는 여관에서 적당히 시간을 때우며 보고 받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슈웨거에 대한 암살에 대해서는 의외로 슈웨거 자작은 공격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후버는 크럭스의 생각에 대해서 짐작이 가지 않는 혼란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일단 기사들은 모두 고용이 되었다고 하니 그 점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광고를 보고 지원한 기사들이 와일리 상단에 하나둘 성공적으로 고용되었고 마탑에서도 와일리 상단을 최종적으로 경쟁 입찰의 승자로 지정하면서 상단들은 와일리 상단에 줄을 대기 위해 노력하였다.

    일견 와일리 상단의 모습은 성실하게 상행을 하는 상단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 점은 그렇습니다만…….”

    “너무 조용하니깐 오히려 이상하단 말이야. 마탑의 고위 마법사들은 이번에 수거된 가짜 인장이 사용된 금괴에 방사성 물질을 첨가하느라 바쁘지만 이곳은 와일리 상단에 줄을 대기 위해서 분주한 상인들을 제외하고는 너무 한가하니까…….”

    경쟁 입찰이 끝나고 한 달 이내에 보증금으로 제공했던 금괴를 돌려주기로 했기에 마탑의 고위 마법사들은 모두 금괴의 주조에 매달려 있는 실정이었다.

    보통의 경우에는 3D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 일에 그만한 고급 인력이 동원되는 일은 없겠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입이 무거운 고위급 마법사들과 왕국에 속한 공방의 장인들 모두가 동원되어서 밤낮없이 금괴를 녹이고 다시 굳히는 작업을 반복하고 있었다.

    왕국의 거의 모든 상인들이 참가한 만큼 그 규모는 상당하였고 지역별로 구분하여 왕성에서 확인해본 결과 와일리 상단과 거리가 멀어질수록 가짜 인장이 사용된 금괴가 감소하였기에 와일리 상단에 대한 의심은 단순한 의심을 넘어 확증으로 인식되었다.

    “국왕에게서는 아무런 언질이 없었습니까?”

    “일단은 수고했다는 연락이 왔지만 마지막 배후를 밝혀 달라고 하더군. 마탑이 전쟁에 대비해서 비축한 아티펙트를 풀고 있는 만큼 왕의 입장에서도 빠른 결과를 바라겠지만…….”

    “현실적으로 방법이 없군요, 지금으로서는 로한에게 모든 기대를 거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후버와 한스가 한담을 주고받을 때 후버에게 타이킨 총관으로부터의 연락이 왔다.

    해줄 일이 있으니 와일리 상단으로 와달라는 요청에 후버와 한스는 각자 무장을 하고는 와일리 상단으로 향했다.

    “이쪽으로.”

    타이킨은 후버와 한스를 보자마자 자신의 방으로 후버를 안내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다른 것은 아니고 혹시 지금 스태프를 제외한 마법물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있소?”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하는 타이킨의 말에 후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인 만큼 여러 가지 마법 물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필요한 것이 있습니까?”

    후버가 메고 있던 마법 가방을 타이킨 총관에게 내밀면서 이야기했다.

    “특별히 필요한 것이라기보다는 죄송하지만 잠시 가지고 다니는 마법물품을 두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두고 가야 합니까? 죄송하지만 저는 마법사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마법사라면 당연한 말이었다.

    마법사의 가치는 야지에서의 전투보다는 공성전에서 발휘되듯이 준비란 것은 사실상 마법사가 마법사로서 존재할 수 있는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저도 곤란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크럭스 상단주님을 만나기 위한 예비 절차라고 생각하고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후버가 고민이 된다는 듯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스태프도 두고 가야 합니까?”

    “스태프도 가지고 가실 수 없습니다.”

    후버로서는 고급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크럭스를 만날 필요가 있었다.

    스태프를 들지 못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약간의 모험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 후버는 마법 가방과 스태프를 모두 타이킨에게 맡겼다.

    “한스 경도 부탁드립니다.”

    “어쩔 수 없지요.”

    한스 역시 자신의 검을 풀어서 타이킨에게 건네주었다.

    “그럼 이쪽으로 오시지요.”

    후버와 한스에게 모든 물품을 받은 타이킨은 집무실 한쪽에 물품을 놔두고는 책장을 밀고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후버는 이 통로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주저하며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상단의 비밀통로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조심스럽게 통로 안으로 들어가는 후버를 본 타이킨이 발걸음을 서둘렀다.

    “총관님께 두 분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신뢰 가능한 분이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한번 꼭 뵙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신뢰할 수 있는데 무장을 해제시키다니 그건 너무하는군요.”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두 분의 실력이 너무 좋고, 요즘 시기가 뒤숭숭하다보니…….”

    “이해합니다. 얼마 전에도 습격이 있지 않았습니까?”

    후버가 자신이 타이킨 총관을 구해주었던 날의 사건을 언급하자 타이킨 총관의 얼굴이 붉어졌다. 생명의 은인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자신이 염치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땐 제 목숨도 구해 주셨는데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 역시 총관님과 같은 입장이었으면 무장을 풀라고 했을 것입니다.”

    “후버 님은 뭔가 상대방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시는군요. 이제 문을 열면 크럭스 상단주님이 계실 것입니다. 두 분이야 걱정이 되지 않습니다만 노파심에 말씀드리자면 오해를 받을 행동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렇게 큰 상단을 소유하신 분에게 어떻게 실수를 할 수 있겠습니까?”

    후버의 답을 들은 타이킨이 벽에 있는 스위치를 눌러서는 문을 열자 직사각형 공간이 나타났다.

    “그대들이 한스와 후버인가?”

    “처음 뵙겠습니다. 크럭스 상단주님.”

    상석에 위치한 크럭스를 중심으로 좌측에 5명의 기사 우측에는 4명의 기사와 1명의 마법사가 지키고 있었다. 기사들의 얼굴은 와일리 상단에서 근무를 하면서 여러 차례 마주친 덕분에 눈에 익었지만 마법사의 경우에는 새롭게 고용되어서 그런지 눈에 익지는 않았다.

    후버는 익숙한 기사에 대한 관심 보다는 마법사에 대해서 눈으로 살피며 탐색했다. 특히 후버는 마법사의 손과 입에 대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지속적으로 마법사를 살폈다.

    “내가 그대들에게 물을 것이 있어서 그대들을 불렀네. 혹시 그대들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이곳에 들어온 것인가?”

    “대기소에서 가장 저희가 하기에 적합한 일을 선택했을 뿐입니다.”

    크럭스의 질문에 후버가 아닌 한스가 대답했다.

    “이 지역으로 온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

    “록시나 자작가의 상단을 호위하다가 이 지역으로 흘러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자세히 설명 드리기는 곤란하지만 처음에 별생각 없이 맞게 된 호위 임무가 너무 위험한 일인 것을 알게 되어 그들과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이 지역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미 조사가 끝난 일을 확인하는 것을 보니 나를 어지간히도 못 믿는 모양이군.’

    “그렇군. 그전에는 무슨 일을 했지?”

    “그저 전장을 떠돌면서 실력을 키웠을 뿐입니다.”

    후버의 대답에 크럭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항과 크게 다르지 않고 만약 록시나 자작가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면 자신의 질문에 록시나 자작가와 관련된 부분을 사실과 다르게 답변을 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기에 후버와 한스에 대해서 약간의 신뢰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록시나 자작가라면 슈웨거 자작이 현재 가문의 주인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얼마 전에 그자에 대한 암살을 지시했을 때 거절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록시나 자작가와는 어떤 관련도 없는 건가?”

    “슈웨거 자작을 암살하라고 했단 말입니까?”

    후버가 놀란 표정으로 크럭스를 바라보았고 한스 역시 놀란 표정으로 크럭스와 타이킨 총관 그리고 주변에 도열한 기사와 마법사의 얼굴을 빠르게 훑었다.

    크럭스 역시 후버와 한스의 표정 변화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놀란 척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던 후버에게도 약간 이색적인 모습이 비춰졌다.

    ‘기사들이야 이곳에 속한 정예부대이니 그럴 수도 있지만 이번에 고용되었다는 마법사는 왜 놀라지 않는 거지?’

    “크럭스 님 후버에게는 슈웨거 자작의 암살을 하려고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암살자를 따라가서 결과를 확인하라고만 말을 했을 뿐입니다.”

    “아… 모두 말하지는 않은 건가?”

    “예, 아직은 신원이 확실치가 않아서…….”

    경계심을 끌어올린 후버와 한스와는 별개로 타이킨 총관과 크럭스는 여유 있게 대화를 나누었다.

    “너무 긴장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어차피 암살은 실패했으니 말이야. 슈웨거 자작도 괜히 자신의 상단 이미지에 마이너스가 될 일인 암살 시도에 대해서 떠들고 다니지는 않을 것이고…….”

    “실패…한 것입니까?”

    “생각보다 슈웨거 자작이 뛰어난 마법사여서 그런지 실패하고 말았네.”

    여전히 크럭스는 후버를 믿지 못하는지 사실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였다.

    ‘슈웨거 자작은 습격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하는데 이들은 습격을 했다고 주장을 한다는 것은 아직도 크럭스는 나에대한 의심을 풀지 않닸다는 거군’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에 후버의 머리가 불일치 하는 상황을 풀기 위해 분주하게 돌아갔다. 자신을 떠보기 위해 슈웨거 자작을 공격했다고 했지만 사실은 공격 따위는 없었다는 점이 후버가 생각을 정리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이번에 고용되었다고 하는 마법사의 비정상적인 반응 역시 후버에게 생각의 단초를 제공해 주었다.

    “당시 의뢰를 받은 쪽에서 저를 믿을 수가 없다며 동행을 허락하지 않아 자세한 상황을 알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타이킨 총관님께서 확인한 혈액은 누구의 것이었던 것입니까? 혹시 그들이 총관님을 속인 것입니까?”

    후버의 직설적인 질문에 이번에는 타이킨 총관의 표정에 당황이 떠올랐다.

    “그때 내가 확인한 것은 혈액이 누구의 것인지 확인한 것이었네. 임무가 실패하면 자신의 혈액을 보내기로 했었네. 그것을 확인한 것이지.”

    ‘앞뒤가 맞지 않는군, 이럴 때는 직설적으로 물어보는 게 최선이지.’

    “총관님은 저에게 의뢰가 성공했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혹시 저희를 믿지 않은 것입니까?”

    약간 격양된 후버의 말에 타이킨 총관이 또다시 당황했다.

    “그런 것은 아닐세. 내가 성공했다고 한 것은…….”

    “아니야, 타이킨 괜히 서로에 대한 의심을 키울 것은 없어. 사실대로 말하지. 타이킨과 다르게 나는 자네와 한스를 의심했네. 의뢰를 맡긴 것은 자네를 신뢰할 수 있는가 아닌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일 뿐이야.”

    “겨우 확인을 하기 위해서 그 정도로 많은 금화를 소비했단 말입니까?”

    후버가 자신이 받은 의뢰금을 언급하며 크럭스에게 물었다.

    “그 정도로 중요한 일이기에 어쩔 수 없었지. 자네가 보기에는 와일리 상단이 어떻게 보이나?”

    “매우 성공한 상단으로 보입니다.”

    “그렇지 매우 성공한 상단이지. 일반적으로 10년 남짓한 기간 안에 이 정도로 상단이 크는 것은 불가능하지. 하지만 와일리 상단은 이 정도의 성공을 이뤄냈지. 그게 무엇을 뜻하는 걸까?”

    “글쎄요, 저는 상행에 대해서는 무지해서 그런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긴 마법사는 상인이 아니니깐 잘 모르겠지.”

    “말씀해주신다면 경청하겠습니다.”

    후버의 말에 크럭스가 크게 한번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상황에서 여유 있는 후버의 태도가 크럭스에게도 새롭기 때문이다.

    마법사이니 후버가 머리가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충분히 알고 있는 크럭스로서는 후버 자신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정도의 여유를 보인다는 것은 지금 여기서 주제가 되고 있는 후버의 신분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떳떳하거나 배짱을 부리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그러려고 자네와 한스를 부른 것이니 잠시만 기다리게. 결과가 나오면 바로 말을 해 줄 테니깐.”

    ‘결과라니?’

    후버가 무슨 결과가 나온다는 것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아크바 상단을 지키고 있던 슬렌은 크럭스가 말한 결과로 가는 과정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15명이라… 바이스! 바이스!”

    한밤중 갑작스럽게 울리는 알람마법에 슬렌이 수정구를 통해 알람마법이 설치된 부분을 살펴보던 중 4명의 남자가 담벼락을 넘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생각보다 많은 적의 출현에 혼자서 처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 슬렌은 바이스를 불렀다.

    이미 바이스는 슬렌이 말을 할 수 있는 것을 알기에 슬렌이 부르자 슬렌 옆에 나타났다.

    “바이스, 가자. 안내는 내가 한다!”

    한 손에 수정구를 든 슬렌이 바이스에게 말하자 바이스가 자신의 어깨를 내밀어 한쪽 어깨를 슬렌에게 양보했다.

    “적은 일단 15명 퇴로는 열어주고 최소한 한 명을 살려서 보내야 되니깐 바이스 가라!”

    슬렌이 기세 좋게 외쳤지만 고개를 젓는 바이스.

    “왜? 뭐가 문젠데?”

    슬렌의 물음에 바이스가 평소 가지고 다니는 종이와 펜을 꺼내서는 ‘용병’이라는 2글자를 적었다.

    “아! 맞다. 용병들 그들이 있었지. 좋아, 바이스 너는 그들을 깨워서 방어를 하도록 해. 이미 적이 근접했으니 한쪽부터 무너트린다는 기분으로 중앙의 사만다가 머무는 건물로 후퇴를 한다는 느낌으로… 무슨 말인지 알았지?”

    가볍게 고갯짓을 한 바이스가 슬렌을 어깨 위에 태우고는 용병들이 묵고 있는 장소로 달려갔다.

    슬렌과 바이스가 용병들을 전투에 참여시키기 위해 서두르는 동안 침입자 역시 자신들의 역할을 배분하고 있었다.

    “2명씩 흩어진다. 목표는 사만다 상단주가 묵고 있다고 생각되는 중앙은 건물 목표를 확인하면 주저 없이 처리하도록. 나는 이곳에서 대기하도록 하겠다.”

    “넵.”

    15명의 인형은 담을 넘자마자 좌우로 흩어지며 자신들의 최대한 흔적 없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전문적인 어쌔신은 아닌지 은밀함은 충분하지 못했지만 과감한 신속성만은 어쌔신 못지않은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잠깐, 잠깐. 적이 흩어진다. 2명씩 진형 짜서 오는 것 같은데 너는 이걸 가지고 가서 처리해. 나는 한 개 더 있으니깐.”

    슬렌이 손에 들고 있던 수정구를 앞으로 던져 바이스에게 넘겨주고는 자신은 원래 있던 곳으로 달려서 돌아갔다.

    적이 노리는 곳은 어차피 사만다 상단주가 묵고 있는 중앙의 건물이라는 생각에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적은 바이스에게 맡기고는 원래 자신이 머물고 있던 후버의 방으로 이동하기 위해 바이스의 어깨에서 뛰어 내렸다.

    “바이스 화이팅!”

    상황에 맞지 않는 슬렌의 쾌활한 목소리에 바이스도 손을 한 번 흔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디 주인님이 만든 트렙이 얼마나 효과가 좋은지 한번 보도록 할까?”

    평소 후버가 머무르는 방, 슬렌이 약간의 조작을 하자 수정구는 벽면에 영상을 비추는 방식으로 슬렌에게 적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전달해 주었다.

    전체적으로 공중에서 적의 움직임을 볼 수 있는 수정구가 중앙에 영상을 쏴주었고 중앙을 기점으로 중앙에 쏘아지는 화면의 1/4만 한 화면 총 12개가 중앙의 화면을 감싸듯이 배치되어 있었다.

    중앙의 화면과는 다르게 아직 비추는 것이 없어 검게만 나왔지만 슬렌의 조작에 따라서 이 화면도 곧 활성화가 될 것이었다.

    “우선 디텍트 이블부터 활성화를 시키고.”

    슬렌이 패널을 조작해서 마나석과의 연결을 시키자 아크바 상단 전체를 감싸는 디텍트 이블이 활성화되며 15개의 붉은 점이 중앙 화면에 투사되었다.

    혹시라도 아크바 상단이 후버가 없을 때 적의 공격을 받았을 때를 상정하여 만들어둔 복잡한 컨트롤 패널 후버가 혼자서 상단에 머무는 시간이 지겨워 간단하게 시작한 작업이 점점 규모를 키우더니 어느새 아크바 상단 전체를 감쌀 정도의 규모로 확장되어 버렸다.

    아직까지 시험해본 적은 없기에 대략적으로 후버가 생각한 성능은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 적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줄지는 후버나 슬렌 역시 알지 못했다.

    ‘흐흐, 심심할 때마다 연습한 보람이 좀 있으려나.’

    정작 만든 후버 역시 여러 가지 마법과 패널을 연결하는 것에 빠져서 이 패널을 빠르게 조작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심심할 때마다 가상의 적을 상정하고 연습하던 슬렌은 운용에 있어서 만은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자신했다.

    “타깃 지정은 한 조씩 위치와 연동되게 하면 되겠고 어디 2서클 대마법사님의 능력을 한번 느껴 보라고!”

    후버의 경지가 4서클밖에 되지 않기에 설정 가능한 마법이 2서클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마법사를 대적하기 위한 장비가 아닌 일반적인 용병에게는 2서클도 충분한 정도의 성능이었다.

    곧장 7개의 화면이 활성화되며 1조씩 개별 화면에 활성화되었다. 앞으로 아크바 상단은 물론 10km 범위까지는 무리 없이 이들의 위치를 쫓을 수 있는 기반이 완성되자 슬렌의 동작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나는 용병들, 하나는 바이스, 하나는 사만다 상단주, 하나는 팔짱 끼고 폼 잡고 있는 놈, 나머지 3개는 그 외의 움직이는 대상을 자유롭게.”

    슬렌이 하나하나 타깃을 지정해주자 어두웠던 화면이 모두 밝아졌다.

    “좋아! 마나석 충분하고 일단 가볍게 전체에게 그리스 마법을 걸어주는 것으로 시작하자고!”

    디텍트 이블과 연계된 그리스 마법이 발동하자 침입자 중 몇몇은 뒤통수를 박고 쓰러지기도 하고 몇몇은 앞으로 꼬꾸라지며 진형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이번엔 슬립!”

    다시 패널을 조작하는 슬렌의 손길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대상자가 아닌 빠르게 빛을 잃어가는 마나석이었다.

    돈이 썩어난다면 아크바 상단 전체에 미스릴을 방사형으로 깔아둠으로써 마나의 소모를 줄여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겠지만 단순히 수정구를 이용한 현재로써는 한계는 패널을 중심으로 반경 250~300m까지의 범위가 마력이 미치는 한계였다.

    적을 추적하는 것은 최장 10km까지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마법이 미치는 범위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기에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서 적의 침입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것이 슬렌의 목적이었다.

    “안 되지, 안 되지. 완전히 망가지면 주인님한테 엄청 혼날 테니깐.”

    일반적으로 마나석에 일정량 이상의 마나가 존재한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모했던 마나를 주변의 마나를 흡수하면서 채우지만 완전히 마나를 소비한 마나석은 그저 돌멩이와 다를 바가 없기에 빛을 일어가는 마나석을 본 슬렌은 얼른 마나석에 연결된 회로를 보조 마나석이 있는 회로로 변경하였다.

    “다시 슬립!”

    동시에 15명에게 슬립 마법을 거는 만큼 이번에도 역시 마나석은 빠르게 빛을 일어갔지만 다행히도 마법이 캔슬되거나 마나석 자체가 폐품이 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아… 생각보다 별 효과가 없네.”

    슬렌의 말대로 먼저 번의 그리스 마법으로 인해 경계심이 강하게 든 침입자들에게 마법사가 직접 사용하는 것이 아닌 아티펙트를 통한 슬립 마법은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이 있다면 이미 기절한 침입자들의 경우 더 깊은 기절을 한다는 것과 침입자들이 약간의 피곤함을 지속적으로 느낀다는 정도의 효과는 볼 수 있었다.

    “이번엔… 이미지 오브젝트.”

    2서클의 이미지 오브젝트가 실행되자 침입자의 침입 경로의 직선상에 기사나 용병들이 주로 사용하는 브로드 스워드의 검집이 벽 뒤에 빼꼼 빠져나온 형상이 만들어졌다.

    낮이라면 흐릿한 형상으로 인해 환영으로 만들어진 검집이 가짜라는 것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지만 어두운 밤 짧지 않은 거리가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벽 뒤에 튀어나와 있는 검집을 보고 그것이 대번에 환영마법을 이용한 장난이라는 것을 간파하기는 쉽지 않았다.

    “고민될 거야. 벽 뒤에 있는 게 누구인지 기사인지 아니면 자신과 같은 용병인지. 그리고 왜 빨리 튀어나오지 않는지 열심히 고민을 해보라고.”

    침입자들의 동작이 정지하자 완전히 여유를 찾은 슬렌은 투사된 화면을 주시하는 한편 보조회로를 마나석에 연결하며 밝은 빛을 내지 않는 마나석을 교체하였다.

    “당황하지 마라, 허상일 뿐이다.”

    누군가 용기 있게 정면으로 달려가서 벽 뒤를 확인했는지 수정구를 통해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히 어쌔신은 아니네. 어쌔신이면 멍청하게 소리를 지르지는 않을 테니깐.”

    그 소리를 들었는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인지 잠시 동안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침입자들이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4명은 기절에서 깨어나지 못했는지 움직이는 것은 고작 10명 남짓 슬렌이 화면을 보며 적절한 마법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용병을 깨운 바이스가 최초의 접전을 시작하였다.

    “역시 바이스 필요한 곳에는 항상 네가 있구나. 그럼 먼저 기절한 놈들은 디마킹을 하고 매직 미사일로 도와주지.”

    슬렌의 조작에 따라 기절한 쪽의 불빛은 다소 어두워졌다.

    그리고 침입자의 등 뒤에서 생기는 두 발의 매직 미사일이 생성되어 시아를 교란하였다.

    “주인님이 직접 조정하셨다면 좀 더 효율이 좋겠지만 이 정도 거리에서 직접적인 타격 능력은 의미가 없으니.”

    사정거리의 가장 바깥쪽 부분인 250m 정도의 거리에서 발현된 매직 미사일인 만큼 목적은 어디까지나 시간을 버는 것이지 직접적인 타격은 아니었다. 타깃이 컨트롤패널에서 50m 이내로 들어왔다면 어느 정도의 직접적인 타격 능력이 확보되지만 가능하면 원거리에서 견제를 하는 것이 슬렌의 목적이었다.

    “진짜 마나석 잡아먹는 괴물이네, 괴물이야.”

    슬렌의 말대로 보조 마나석까지 최대 수량인 5개를 추가로 연결하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나석은 뚜렷하게 빛을 읽어 가는 것이 슬렌의 눈에도 보이고 있었다.

    “오히려 가까이 끌어들여야 하나…….”

    실효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한계선인 100m까지 적을 끌어 들일까? 아니면 지금처럼 시간을 끌면서 바이스와 용병들의 선전을 기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슬렌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겨우 대략 1분에 하나씩은 사용한다고 생각하면 최대 30분까지 시간을 끌고 남은 20개로 직접적인 타격을 준다고 한다면…….”

    슬렌의 시야가 바이스를 비추는 화면으로 향했다. 2명의 A급 용병과 바이스가 침입자와 마주친 지 1분여가 지난 상황에서 한 조를 이루고 있는 2인 중에 벌써 1명의 침입자를 처리하고 남은 침입자 한 명을 처리하기 위해 두 명의 용병이 침입자를 에워쌌다. 결과야 보지 않아도 짐작 가능하지만 문제는 시간.

    “너무 애매한데… 9명이 남았고 그중 5명은 혼자 있으니 빨리 처리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생각해도 처리하는 데 한 명당 1분 남짓 이동하는 데에는 또 그만큼의 시간이 걸리니깐 최소한으로 잡아도 모두를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분 남짓.”

    정신계열 마법의 최대 단점인 한 번 사용해서 실패한 대상은 더 높은 서클의 마나를 들이 붓지 않는 이상 일정 시간 동안은 자연스럽게 면역이 된다는 사실이 슬렌의 발목을 잡았다.

    어느 정도 가까운 거리로 접근한다면 대상을 집중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직접적으로만 작용하지 않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건데… 요지는 여기로만 들어오지 못하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마나의 공급이 부족했는지 침입자의 주변을 맴도는 매직 미사일들이 점차적으로 빛을 잃어갔다.

    지금은 미약한 변화일지 몰라도 시간이 더 지나면 침입자들 역시 그러한 변화를 알게 될 것이기에 슬렌은 매직 미사일을 캔슬시키고는 마나석을 교체하고 다시 패널을 조작해서 매직 미사일을 생성시켰다.

    마나석을 교환하고 다시 매직 미사일을 발동하는 데 걸린 시간은 20여 초 남짓 그 짧은 순간 침입자들과 본관의 거리는 어느샌가 80미터나 줄어 있었다. 이제 본관까지 남은 거리는 약 170미터 정도.

    ‘마나석 하나가 전부 소모되는데 약 1분이 걸리고 보조 마나석까지 생각하면 매 6분마다 한 번씩은 마나석을 교환해 주어야 한다는 건데 그냥 가까운 거리로 끌어들여서 한 방에… 아니지, 하지만 한번만 더 마나의 흐름이 끊겨도 자택 안까지의 접근을 허락하게 되고 그때까지 바이스가 처리할 수 있는 침입자의 수는 많이 잡아봐야 3~4명 남짓 정도. 아무리 바이스라고 해도 7:3은 좀 힘들지…….’

    슬렌의 눈이 패널을 빠르게 훑었다.

    ‘최대 출력으로 한번 가볼까?’

    슬렌이 쓰다듬고 있는 것은 2클레스 마법 중 상대의 피부에 발진이 발생하게 하거나 가려움을 유발하는 마법인 이리테이션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버튼 직접적인 물리적 타격이야 거의 없지만 불길한 느낌만 주어도 상대가 주춤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2서클을 최대 출력으로 사용하면 저 마나석은 그냥 돌덩이가 될 텐데… 아~ 몰라몰라. 그만큼 상황이 급박했으니까…….”

    슬렌은 눈을 감고는 자신이 쓰다듬던 버튼을 꾹 눌렀고 동시에 마나석은 폐품이 되어 버렸다.

    ―실패 했습니다.

    후버가 크럭스를 만난 지 30여 분이 지났을까? 한편에 마련된 간의 의자에서 영문도 모른 채 지루하게 가던 시간이 어딘지 모르게 초조한 느낌으로 바뀔 무렵 크럭스가 들고 있던 통신구에서 짤막한 신음성과 함께 실패했다는 말이 흘러나오자 장내의 분위기에 약간의 긴장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유는?”

    ―아크바 상단에는 최소 4서클 마법사가 있는 것 같습니다. 1서클 마법과 2서클 마법이 수십 번 이상 사용되었고 그 범위 또한 아크바 상단 전체를 커버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4서클 마법사라고?”

    일반적인 상단이라면 4서클 마법사를 고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크럭스였다.

    특히 마법사의 경우에는 2서클 마법사까지는 역량의 한계로 인해 그 고용 비용이 저렴하여 상단의 물품에 대한 표식인 위저드 마크를 사용하기 위해서 많이 고용되곤 했지만 4서클 마법사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크럭스 자신 역시 3서클 마법사를 2명 고용하는 것이 4서클 마법사 1명의 고용 비용보다 저렴하기에 2명의 3서클 마법사를 고용했던 만큼 그 비용 차이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1서클 혹은 2서클 마법이라지만 수십 번이라니 그 정도라면 4서클을 초과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인지 부조화가 일어날 정도로 터무니없는 추측이었지만 2서클을 수십 번 사용할 수 있다면 오히려 4서클이라는 것이 더 터무니없는 추측으로 보였다.

    합리적인 수준에서 아크바 상단의 마법사의 수는 4서클 마법사 한 명과 3서클 마법사 한 명 정도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해보였다.

    일개 상단이 5서클 마법사를 고용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이미 속한 곳이 있는 마법사가 파견이 되었던가… 어느 쪽이든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상황이야.”

    아무리 귀족가에 속한 상단이라고 하지만 4서클 이상의 마법사를 파견해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가는 상황이었다.

    크럭스의 머리에 처음 아크바 상단을 대했을 때 머릿속에 스쳤던 가설이 떠올랐다.

    “만약 그들이 정말로 특정 국가에서 직접 전쟁 용품을 구매하기 위해서 만든 상단이라면…….”

    “생각을 정리하시는데 죄송합니다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까?”

    적절하게 끼어들 타이밍을 살피던 후버가 크럭스에게 말했다.

    이미 아크바 상단을 공격했다는 것에서부터 대략적인 상황이 파악되어 자신이 만든 컨트롤패널이 제대로 작동되었다는 뿌듯한 성취감을 느꼈지만 그것은 최대한 나타내지 않은 채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이 크럭스에게 묻자 크럭스가 후버를 바라보았다.

    “자네도 마법사라면 이미 짐작했을 테니 전부 말하도록 하지. 오늘 자네를 부른 것은 자네와 아크바 상단과 모종의 관계가 있지 않나 하는 의심 때문이었네. 요즘 아크바 상단이 우리 와일리 상단을 상당히 곤란하게 만들고 있어서 그들에게 약간의 경고를 주려 했는데 오히려 내가 당하게 되었군.”

    그저 약간 씁쓸하다는 듯이 평정을 가장해서 말했지만 후버는 크럭스의 목소리에 어린 현재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황당한 감정과 허탈을 느낄 수 있었다.

    “총관님께도 그렇고, 아크바 상단에 대해 상당히 신경을 쓰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봐야 와일리 상단에 비하면 군소 상단 중 하나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후버의 말이 옳았지만 이미 한 번 아크바 상단의 사만다에게 치욕에 가까운 추궁을 당한 적이 있던 크럭스의 생각은 그렇지가 않았다.

    “상단 간의 일이니 마법사가 이해하긴 힘든 부분이지, 아무튼 자네와 아크바 상단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 같군. 이만 돌아가 봐도 좋네.”

    “사람을 불러 놓고 고작 그게 전부인 겁니까?”

    그냥 돌아가도 상관이 없지만 그렇게 했다간 너무 자신을 소심하게만 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타이킨 총관이 말했던 중요한 일에 대한 말은 단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결국 그저 왔다 갔다 시간만 낭비했다는 생각에 후버는 대담하게 나가기로 했다.

    “일단 오늘은 돌아가게 지금은 잠시 생각할 게 있어서 자네를 상대할 수가 없어.”

    “겨우 4서클 마법사에게 쫄아버린 겁니까? 게다가 상단의 크기를 비교하면 아크바 상단은 와일리 상단의 10분의 1도 되지 않을 텐데요? 상단주님의 옆에 서 있는 마법사도 어느 정도 실력은 있어 보이는데 말입니다.”

    비아냥대는 후버의 목소리에 크럭스가 후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쪽은 실력이 어떻게 되십니까?”

    그런 크럭스는 상대할 필요도 없다는 듯 옆에 있는 마법사에게 말을 거는 후버의 태도에 크럭스는 불쾌함을 느꼈다.

    “겨우 마법사 하나 죽이는 데 대단한 명분이 필요한 것은 아니네. 더 이상 무례하게 군다면 뒷감당은 자네 혼자서 할 수 없을 거야.”

    크럭스의 말에 한스는 결코 크럭스에게 어떤 정보를 듣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다. 애초에 크럭스는 후버를 동등한 대화의 상대나 신뢰의 대상으로는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생기지도 않을 신뢰에 목숨 걸 필요는 없지.’

    어느 정도 고개를 숙여주고 정보를 얻으려던 후버는 생각을 바꿨다. 크럭스가 자신을 믿어주기를 바라는 것보다 협박을 해서 정보를 알아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무례? 주변을 둘러보고 이야기하는 게 어떠십니까? 애초에 수틀려서 나와 아크바 상단이 관계가 있다고 판단을 했다면 저들이 모두 나한테 칼 한 번 박아보겠다고 살풀이 할 게 뻔한데 무례?”

    [한스 준비해라. 확실하게 저놈들이 무시하지 못하게.]

    후버의 말에 한스가 한껏 자세를 낮췄다가 몸을 튕겼다.

    가장 가까이 있는 기사에게 가장 빠른 경로로 이동한 한스가 기사의 검집에서 브로드 소드를 뽑는 동작과 함께 기사의 배를 아래에서 위로 밀어 올리듯이 크게 베어 버렸다.

    “이게 무슨 짓인가!”

    의외로 가장 빠르게 반응한 것은 타이킨 총관 아무런 무력도 없어 보이는 타이킨의 빠른 반응에 후버는 타이킨에게 약간의 흥미를 느꼈다.

    ‘그저 당황해서 소리를 지른 것인가? 아니면 장내의 다른 사람들의 정신을 깨우기 위해서인가?’

    타이킨 총관의 외침과 상관없이 한스는 베는 동장과 연계하여 검극을 기사의 심장에 박아 넣었다. 가벼운 흉갑 아머라고 하지만 그래도 금속과 천을 이용해서 만든 만큼 일정 이상의 내구도를 가지고 있는 흉갑을 최소한의 동작으로 끊어 버리듯이 뚫고 지나가는 한스의 동작에 흉갑과 검극이 만나는 지점에서 약간의 불똥이 튀었다.

    “타이킨 총관 당신이 말해보시오. 중요한 일이 나와 한스의 생사를 결정하는 것입니까? 짧은 기간이지만 서로 간 어느 정도의 신뢰는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나 보군요.”

    “그것이 아니라… 서로 간의 오해가 아닌가? 일단 지금은 돌아가 주면 다음에 다시 부른다고 하지 않았었나?”

    자신을 부르는 후버의 목소리에 타이킨이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는 듯이 후버와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스캔.]

    타이킨과 후버의 대화를 들으며 완전히 정신을 차렸는지 크럭스의 옆에 있던 마법사가 후버의 몸을 스캔하기 위해서 마법을 사용하였다.

    일반적인 전투에서라면 상대의 실력을 먼저 파악한다는 점에서 매우 좋은 자세였지만 안타깝게도 상대가 별로 좋지 않았다.

    ‘스캔이… 안 된다. 분명히 3서클이라고 들었는데.’

    마법사의 시선이 후버, 크럭스, 타이킨 순으로 돌아가며 지금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묻는 듯했다.

    이미 총관에게 들어서 후버의 수준을 알고 있던 마법사는 그저 혹시라도 다른 아티팩트를 숨기고 있을까봐 습관적으로 살펴보았지만 황당하게도 후버의 마나량이 스캔되지 않았다.

    자신과 같은 3서클이라면 스태프를 들고 있는 자신이 유리하다고 생각했고 이미 5년 전 3서클을 모두 마스터했기에 동 서클의 마법사와의 전투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있었다.

    “듣던 거랑은 좀 다르지?”

    당황한 자신을 비웃듯이 말하는 후버의 모습에 마법사는 가능성 중 하나로 두었던 아티펙트로 인해 마나량의 스캔이 불가능하다는 가정을 금세 지워버렸다.

    팅.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금화를 튕기는 후버의 행동에 모두의 시선이 하늘로 튀어 오른 금화에 모였다. 그 틈에 마법사를 향해 달리는 후버의 모습에 모두들 의아함을 느꼈다.

    ‘멍청하군… 마법사끼리의 육탄전이라도 할 생각인가?’

    마법사 간의 1:1 상황이라면 서로 간 버닝 핸드나 칠터치를 이용해서 육박전이 벌어지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특히 동 서클 마법사끼리의 1:1이라면 최후의 마나를 쥐어짜며 생과 사를 결정짓는 경우가 흔하다면 흔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법사와 마법사 간의 1:1 상황, 이미 마법사와 크럭스를 보호하는 기사들의 검이 검집에서 절반 이상 뽑힌 상태였다.

    ‘한 번의 오판 치고는 대가가 꽤 크겠군.’

    크럭스가 최소한 후버의 팔 하나쯤은 잘릴 것이라고 생각한 순간.

    텅!

    날카로운 금속음이 한스가 있는 곳에서부터 밀실 안을 울렸다. 한순간에 모두의 시선이 한스에게서 옮겨졌을 때 크럭스는 한스의 손에 있어야 할 검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발견했다.

    “막아!”

    이미 크럭스가 외치기 전에 기사들의 최대한 팔을 틀어서 크럭스를 보호하기 위해 검을 뽑아냈다. 하지만 급하게 뻗은 만큼 가장 앞에서 크럭스를 보호하던 기사의 검과 부딪혀도 한스가 날린 검은 힘을 잃지 않았다.

    챙, 챙, 챙, 철그렁.

    크럭스에게는 다행히도 한스가 날린 검이 3번째 기사의 검에 맞고는 그 힘을 잃었다.

    “손들어, 움직이면 찍어 버릴 거니까. 아무리 마법사가 힘이 없다고 하지만 부드러운 인간의 피부를 뚫고 두부처럼 말랑한 뇌간까지 헤집지 못하는 건 아니니깐.”

    크럭스의 오른편에 있던 마법사의 오른쪽 눈에 깊숙이 박힌 금화와 심장에서 쏟아지는 피, 후버의 손에 들린 스태프, 따로 설명을 안 해줘도 크럭스로서는 현재 상황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끝이 날카롭게 갈린 스태프가 주는 서늘한 감각과 스태프의 끝에서 목을 타고 자신의 척추를 따라 흐르는 따뜻한 피의 느낌이 정신을 강하게 일깨우는 듯했다.

    “후버, 자네 무슨 짓인가? 일단 스태프는 내려놓도록 하게.”

    “됐소. 이게 총관과 상단주가 나에게 하려던 짓 아닙니까? 설마 남을 처리할 생각을 하면서 자신은 처리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오해라고 하지 않았나! 자네는 마법사면서 왜 그렇게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건가?”

    평소 후버가 보이던 모습과 다른 다혈질적인 모습에 타이킨 총관이 후버를 나무라듯이 다그쳤다.

    “성격이 좋으면 마탑에 박혀 있지 이렇게 밖으로 나왔겠습니까? 상단주님께서 말씀해보시지요. 목울대에 대고 있는 것도 아니니 목젖을 움직여 말하는 데는 아무런 방해도 없지 않습니까?”

    “일단 내 목 뒤의 스태프는 치우고 이야기하지.”

    후버의 말대로 말을 하는 데에 지장은 없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는 크럭스의 전문 분야가 아니었다. 그는 상인으로서의 협상에는 익숙하지만 이런 방식의 협상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물론 치울 거야. 나는 상단주를 죽이기 위해서 이곳에 온 건 아니니깐, 하지만 그전에 상단주 당신도 나에게 향하고 있는 저 칼 쪼가리를 치우는 게 순서가 아닐까?”

    은근히 스태프에 힘을 주면서 말하는 후버의 행동에 크럭스의 고개가 약간씩 숙여졌다.

    “먼저 이것부터 치워줘야 말을 할 거 아닌가?”

    크럭스가 후버를 달래듯이 말했지만 후버는 오히려 스태프에 실린 힘들 더 강하게 하는 방식으로 크럭스의 질문에 답하였다.

    “상단주가 말하기 힘들다면 내가 대신 말해주지, 상황파악 안 되는 새끼 빼고 전부 무기 내려놔!”

    챙그랑.

    후버와 크럭스의 눈치를 번갈아 보던 시사들은 타이킨이 그렇게 하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하나둘 들고 있던 무기를 바닥에 떨구었다.

    후버와 가장 가까운 1명부터 하나둘씩 무기를 아래로 떨구면서 금세 9명 모두가 무기를 땅에 껄궜다.

    “너! 제임스.”

    후버가 안면이 있던 기사 중 한 명인 제임스를 불렸다.

    “전부 수거해서 한스 옆에 쌓아놔.”

    후버의 말에 제임스가 주섬주섬 떨어진 브로드 스워드를 주워서는 한스의 옆에 대충 떨궜고 한스는 그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고르고는 후버의 옆으로 이동하였다.

    후버 한 명이 지키는 것만으로도 상인인 크럭스가 빠져 나갈 염려는 없었지만 한스마저 가세하자 크럭스는 아예 지금 상태에서 무력을 이용해서 무언가 시도를 할 생각을 포기해 버렸다. 후버가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가야 좋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작스레 후버의 머리 위에서 강력한 마나의 유동이 느껴졌다.

    “누가 오기로 했나?”

    타이킨 총관에게 묻자 무슨 말인지 영문을 모르는 타이킨은 오히려 무슨 말인지 후버에게 물었고 후버는 위층에서 강력한 마나의 파동이 느껴진다고 대답했다.

    “아세타이트 님이십니다.”

    ‘살았다.’

    아세타이트라는 말에 고개 숙인 크럭스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고작해야 3서클 마법사인 후버 따위가 아세타이트의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지금 상황을 눈치챈 아세타이트라면 당연히 자신을 도와줄 것이고 금세 지금의 상황이 반전될 것이다.

    “모두 최대한 소리를 낮춘다. 아세타이트가 마탑의 그 아세타이트인가?”

    한껏 목소리를 낮춘 후버의 물음에 타이킨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라도 나를 풀어준다면 없던 일로 하지. 자네가 이 영지를 떠난다면 굳이 찾지는 않겠네.”

    착각에서 비롯된 자신감을 회복한 크럭스의 목소리가 후버의 신경을 긁었고 후버는 아세타이트의 등장에 당황한 듯이 얼굴의 표정을 찡그렸다.

    “닥쳐! 마나의 유동이 이곳을 향하는 순간 너 죽고 나죽으면 되니깐.”

    오히려 스태프를 쥔 손에 더 강한 힘을 주는 후버의 모습에 크럭스는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반응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크럭스 상단주는 내가 계속 인질로 잡고 있겠다. 살리고 싶으면 아세타이트 님을 돌려보내도록. 아세타이트 님이 돌아간다면 더 이상 사람이 다칠 일은 없을 거다.”

    “내가 올라가겠소.”

    타이킨이 얼른 후버의 말을 받아서 대답하자 후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스, 내가 타이킨 총관의 몸을 수색하는 동안 잠시 이걸 부탁해.”

    후버는 한스에게 스태프를 넘기고는 타이킨 총관의 몸을 수색해서는 여러 가지 물품을 압수했고 그중 통신구를 보면서 의외의 소득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통신구는 잘만 사용하면 확실한 우위를 확보할 수 있겠군.’

    “내려올 때는 내 가방과 한스의 브로드 스워드도 가지고 와주십쇼.”

    한스를 올려 보낸 후버는 모두에게 약간의 소음도 발생시키지 말라고 경고를 하는 한편, 위층에 있는 아세타이트와의 대화를 했고 어떻게 된 일인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사만다 상단주의 연락을 받고 오시게 된 거군요.

    ―그렇다네. 나는 후버 자네가 잘못된 줄 알고 서둘러서 왔네만 다행이도 자네가 상황을 주도 하고 있군.

    아세타이트가 해준 설명에 후버는 현재 상황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슬렌이 후버와 대화를 하기 위해 여러 차례 통신구를 이용했지만 후버가 통신을 받지 않자 일 차로는 여관으로 바이스를 보내고 여관에도 없자 후버가 위험에 빠진 줄 알고 일단 이곳으로 아세타이트를 보냈다는 것이 아세타이트의 설명이었다.

    ―아세타이트 님, 혹시 모르니 와일리 상단의 근처에서 저를 기다려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물론 눈앞의 타이킨은 아세타이트 님께서 떠났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야 어렵지 않지. 그럼 잠시 후에 보도록 하겠네.

    후버와의 대화를 끝낸 아세타이트는 평소와 같이 마법 가방을 던져주고 타이킨에게 금괴를 받는 것으로 거래를 끝내고 다시 텔레포트 마법을 이용해서 와일리 상단을 떠났다.

    “아세타이트 님이 떠나셨군.”

    “이제 약속대로 나를 풀어주도록 하게.”

    “그전에 아세타이트 님이 왜 이곳으로 오는 겁니까?”

    “그건 말해 줄 수 없네. 상단 내부의 일을 외부인에게 말할 수는 없지 않나.”

    후버 역시 실제로 알고 싶은 것은 아니기에 더 이상은 물어보지 않았다.

    서로 할 말이 없어 타이킨 총관을 기다린 지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타이킨 총관이 후버와 한스의 물건을 가지고 밀실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 있네. 후버, 자네에게는 미안하게 됐네. 약속대로 자네를 쫓지는 않을 테니 이만 떠나주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총관님, 저는 총관님은 믿을 수 있지만 크럭스 저자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크럭스 저자가 나를 믿지 않듯이 말입니다.”

    “이해는 가지만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피를 보지 않겠다는 약속은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아침까지는 이곳을 봉쇄하도록 하겠습니다.”

    후버는 자신이 파악했던 비밀통로에 대해 떠올린 후 주변을 탐색하듯이 여러 번 디텍트 마법을 사용하면서 크럭스를 비롯해서 기사들 중에 아티펙트를 가진 자에게 아티펙트를 압수하는 반면 가방 안의 로프를 꺼내서는 한 명, 한 명 확실하게 몸을 결박했다.

    “이곳이 수상하군요. 문을 열어주시죠. 다른 물품을 손대지는 않겠습니다. 저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통신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물품뿐이니까요.”

    후버가 말했듯이 크럭스와 기사에게 빼앗은 여러 가지 물품 중 후버가 자신의 마법 가방 안에 넣은 것은 오직 통신용 수정구뿐이었다.

    “안전하게 이곳을 벗어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입니다. 만약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이곳에 계신 모든 분들의 생명을 뺏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약속이 틀리지 않나? 어느 상단에든지 감추어야 할 비밀은 있는 법이네. 저곳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거래한 모든 장부가 보관된 곳이네. 외부인의 출입을 허가할 수는 없어!”

    “외부인이 아니면 되는 것 아닙니까? 다행히도 저곳에서 느껴지는 마법적인 기운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타이킨 총관님이 그것을 가지고 나오면 될 일입니다.”

    타이킨의 시선이 크럭스와 교차하였다. 후버의 요구대로 해도 되냐는 물음이 담긴 눈빛에 크럭스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타이킨이 가지고 온다면 나도 저 방의 아티펙트를 가지고 오는 것을 거부하지 않겠네. 하지만 한 가지 약속을 해줘야 하네.”

    “뭡니까?”

    “자네 짐작대로 저곳에 있는 아티펙트는 통신용 수정구가 맞네. 통신구를 자네에게 확인시켜 줄 수 있지만 자네도 통신구를 이곳에서 파괴해주어야 하네. 저것으로 자네가 장난을 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나?”

    “굳이 밀실의 밀실 안에 숨길 만큼 중요한 것이라는 거군요.”

    “그렇네. 어떻게 할 텐가? 저곳은 최소한 6서클 마법사가 오지 않는 한 강제로 열 수 없는 곳이네. 혹시라도 누군가 이곳을 침입한다면 몸을 피신할 패닉룸을 겸하고 있는 곳이지.”

    “그런 곳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으니… 상단주님은 보기보다 이기적이시군요. 위기 상황에 혼자만 살아남을 생각을 하시다니 양심에 찔리지는 않습니까?”

    후버는 크럭스가 대담하게 통신구를 넘겨주었다면 모른 척 통신구를 모두 회수하고 밀실 안의 통신구를 연구할 생각이었지만 파손된 통신구는 후버에게도 아무런 가치가 없었기에 그저 크럭스에게 무안만을 주는 것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상단의 신용과 관계된 것이네.”

    “좋습니다. 출입구가 어디입니까? 타이킨 총관과의 정을 생각해서 저곳에 있는 통신구를 파손하지는 않겠습니다. 상단의 신용과 관계되어 있다면 훼손 자체가 와일리 상단에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 아닙니까?”

    후버의 말에 타이킨 총관이 이해해줘서 고맙다는 답변을 하였고 크럭스는 밀실의 문이 있는 위치를 알려주었다.

    후버는 밀실의 입구에 위저드 락을 걸어 두는 것으로 통신구의 파괴를 대신하겠다고 했고 크럭스와 타이킨은 후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럼 우리의 안전을 위해 모두에게 슬립 마법을 걸도록 하겠습니다. 단 한 분이라도 슬립 마법에 저항을 한다면 모든 분들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미 몸을 결박하고 슬립 마법까지 건다는 말에 크럭스가 질린 표정을 지었지만 후버는 그런 표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크럭스부터 한 명씩 슬립 마법을 걸고는 정말 잠이 들었는지 마나스캔을 이용해서 일일이 확인하였다.

    모두가 슬립 마법이 걸린 것을 확인한 후버가 통신구로 아세타이트를 불렀다.

    “아세타이트 님, 아세타이트 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후버의 요청에 와일리 상단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세타이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잠들었군. 그런데 이 문은 이상하군. 이 위자드 락은 자네가 걸어둔 것인가?”

    “그렇습니다.”

    “이거… 허락받은 자가 아니면 최소한 7서클 마법사가 아니면 열 수 없는 곳인데… 마법사의 던젼도 아닌 이곳에 무슨 이유로 이런 거창한 마법이 걸린 문이 있는 것이지?”

    “크럭스는 6서클이라고 했습니다. 6서클이 아니라 7서클인 것입니까?”

    “이거 참 마지막까지 독을 푸는 남자로구만. 6서클 마법사도 문을 열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흔적이 남게 되어 있네. 문을 여는 순간부터 후버 자네는 너무나 수상한 사람이 되는 거지. 이 문은 나로서도 흔적 없이 여는 것이 불가능하네.”

    “그럼 안에 있는 물건 하나를 이곳으로 옮긴 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거라면 가능도 할 것 같네만 여기에도 문제가 하나 있네. 잠시만 기다려보게나, 정밀하게 문을 살펴볼 필요가 있으니.”

    잠시 손을 푼 아세타이트가 수인을 맺고는 한참을 문을 노려보았다. 위에서 아래로 신중하게 훑어보는 아세타이트의 모습에 후버까지 덩달아 긴장이 되었다. 그렇게 5분여간 문을 살핀 아세타이트가 문에서 눈을 떼고는 후버에게 관찰한 결과를 말해주었다.

    “다행이군, 문에 사용된 기록 방식이 아카식 레코드 방식은 아니야. 그저 문이 열리고 닫힌 기록만을 기록해 두는 것뿐이니 문을 열려는 시도만 하지 않는다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문에 기록될 여지는 없겠어.”

    “그럼 텔레포트를 사용해도 괜찮은 겁니까?”

    “그건 불가능하네.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하면 그 역시 문을 열려는 시도를 한 것으로 흔적이 남게 되니깐 말일세. 게다가 이 문 안으로는 텔레포트 마법이 불가능하도록 문에서 흐르는 마나가 방해를 하고 있다네.”

    4서클인 후버는 느끼지도 못한 문에 대한 설명에 후버는 곤란함을 느꼈다. 통신구를 살펴볼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신구를 살펴보지 못하는 것에 답답함을 느꼈다.

    “그럼 방법이 전혀 없는 것입니까?”

    “그런데 통신구를 통해서 얻으려는 정보가 결국에는 통신이 어느 곳으로 연결되는지를 알기 위한 것 아닌가?”

    “그렇습니다.”

    “자네 바보인가? 그 정도라면 굳이 텔레포트를 이용해서 직접 들어갈 필요도 혹은 텔레포트를 응용해서 안에 있는 물체를 밖으로 뺄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 그저 벽 너머의 통신구에 약간의 마나를 주입하고 안에 있는 생물 아무것에나 페밀리어를 걸어서 살피면 되는 것 아닌가? 굳이 나까지 불러놓고는 4서클인 자네를 기준으로 생각을 하면 어떻게 하는가? 좀 생각을 유연하게 하게나.”

    아세타이트의 말에 후버가 충격을 받은 듯 허공을 응시했고 아세타이트는 그런 후버를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다 아쉬운 표정을 지었고 그것은 후버도 다르지 않았다.

    “이번만이 기회는 아닐세. 너무 실망하지는 말게나.”

    “장소도 부적절하니 어쩔 수 없지요.”

    드디어 4서클을 졸업하고 5서클로 진입을 할 수 있는 계기가 왔지만 후버의 말대로 장소가 부적절해서인지 다른 이유때문인지 무아지경에 이르던 후버는 그저 단서만을 잡았을 뿐 5서클로의 진입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자네의 나이를 생각하면 오히려 너무 빠른 것이니 미련을 가지기 보다는 이번 기회에 좀 더 정진하도록 하게.”

    후버에게 조언을 해준 아세타이트는 패밀리어 마법을 사용하고는 통신구의 고유 번호와 최근 접속한 통신구의 접속 번호를 후버에게 불러 주었다.

    “그럼 나는 먼저 마탑으로 돌아가도록 하겠네. 아까도 말했지만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는 않는 것이 발전을 위해서는 더 좋을 거야.”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후버에게 충고를 남기고 아세타이트는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하여 마탑으로 돌아갔고 후버는 한스와 함께 타이킨 총관의 집무실로 이동해서는 통신구를 통해 로한을 호출했다.

    도둑길드에 로한의 몸값을 지불하고 로한에게 후버가 요청한 일은 자신이 미리 파악해둔 와일리 상단의 비밀통로를 좀 더 자세히 조사하기 위해 비밀통로를 직접 탐사할 것을 주문한 것이었다. 후버의 부름을 받은 로한은 단번에 비밀통로를 통해 타이킨 총관의 집무실로 들어왔고 후버는 로한에게 앞으로 3시간 안에 타이킨 총관의 집무실에 있는 각종 서류의 내용을 최대한 암기하여 모두 필사할 것을 지시하고는 정문을 통해 와일리 상단을 빠져 나왔다.

    “그런데 왜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신 겁니까?”

    “글쎄… 너도 봤지만 크럭스 그자는 절대로 남을 믿을 타입의 사람은 아니었어. 아마도 이런 저런 방식으로 우리를 계속해서 테스트했겠지. 아마 최후에는 너와나 한 명은 자신의 손에 목숨을 잃어야 믿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

    “그건 그렇습니다만… 이제 와일리 상단의 내부 정보를 얻기는 힘들지 않습니까?”

    “로한이 잘해주길 바래야지. 이제 비밀통로는 모두 정리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혹시라도 밀실 안에서의 이동이 있을 때마다 보고하라고 말해뒀으니까. 그리고 이걸 얻었으니깐 상대가 마법사를 고용하기 전까지라면 안전할 거고, 용병 대기소의 정보는 사만다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까…….”

    “통신구의 접속 번호는 무엇 때문에 필요한 것입니까?”

    “이 발신자가 표시되는 형식의 통신구를 만든 게 나라는 건 한스 너도 알고 있지?”

    “네. 그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것입니까?”

    “이 통신구를 만들 때 한 가지 장치를 해놓은 게 있거든. 그래서 아카이브 님에게 자세한 제조 방법에 대한 것은 비밀로 해달라고 한 거고.”

    약지 손가락을 살짝 칼로 베서 상처를 만든 후버는 가지고 있던 통신구 중에 하나에 피를 묻히고는 마나를 불어 넣었다. 그와 동시에 활성화되는 통신구에 접속자명과 함께 입수한 접속 번호를 입력하고는 땅에 묻었다.

    “이제 이 통신구는 크럭스와 정체모를 사람과의 대화를 충실하게 우리에게 전해 줄 거야. 그리고 이 일은 한스 너와 나만의 비밀로 하는 게 좋을 거야.”

    “다른 기사들에게도 말입니까?”

    “기사는 물론 슬렌에게까지 비밀로 해야겠지. 너도 알겠지만 왕국에서 파견된 인원 중 누군가는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보내고 있을 거야.”

    “그야 당연합니다만…….”

    “시간문제이겠지만 이런 방식의 통신구 조정은 지금으로써는 그쪽에도 비밀로 해두는 게 좋지. 세상사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거니깐…….”

    “그럼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정말 위험했군. 한스, 수고했어.”

    뒤늦은 칭찬과 함께 후버와 한스는 전투에 대한 감상을 나누며 아크바 상단으로 복귀를 서둘렀다. 앞으로 한동안은 슬렌과 함께 아크바 상단에 칩거를 할 생각을 하니 답답한 마음도 들었지만 일단은 푹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모든 게 순조롭네… 와일리 상단은 좋겠어.”

    일주일이 지났지만 별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후버가 와일리 상단에서 분탕질을 한 아침부터 한바탕의 난리와 함께 크럭스가 밝힌 투자자에게 통신을 시도할 것이라고 생각한 후버의 예상은 간단하게 빗나가 버렸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평소의 상단의 모습을 보여 주었고 심지어 내부로 용병으로 잠입해 있는 기사들에게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는 말에 오히려 어리둥절한 것은 후버였다.

    ‘약속을 너무 철저하게 지키는데?!’

    당연히 뒤늦게 추적자를 보내면서 노발대발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건만 로한에게서 온 보고에 따르면 마법사의 시체마저 비밀통로를 통해 처리하는 최대한의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 후버는 집에 보낼 아카데미의 일상의 이야기를 창작하기 위해 골머리를 쥐어짜고 있었다.

    ‘이것 참… 따분하기 그지없네.’

    처음 하루이틀간은 품 안의 통신구에 최대한의 주의를 기울이며 상황을 살폈지만 지금은 그저 가끔가다 떠오를 때면 한번 꺼내볼 뿐 어쩌면 꺼림칙한 느낌에 크럭스가 통신구를 교체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생각난 김에 한번.’

    후버가 품 안의 통신구를 꺼내려고 손을 집어넣는 순간 가슴 오른쪽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왼쪽이라면 일반적으로 후버가 기사단원, 슬렌, 혹은 사만다 상단주와 통신을 하기 위해 사용 하는 것이지만 오른쪽의 통신구는 크럭스 상단주의 통신구를 복제한 것이니 만큼 후버의 손끝이 떨렸다. 근 일주일 만에 연결된 통신, 후버는 디멘션 사일런스 마법을 사용하여 주변의 모든 소음을 차단하고 레코딩 마법이 걸려 있는 수정구를 활성화시키고는 통신구를 연결했다.

    ―그러니까… 마법사가 당했다는 것이냐?

    ―송구스럽습니다. 워낙 경황 중에 일어난 일인지라…….

    ―일을 벌인 자에 대한 정보는?

    ―그저 용병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그다지 정보는 없는 상태입니다.

    ―정보도 모르는 자를 밀실 안으로 들렸단 말인가?

    은은한 분노가 느껴지는 목소리에 크럭스의 목소리는 더 움츠러들었다.

    ―그것이 타이킨 총관이 워낙 그자의 쓰임새에 대해서 강력하게 주장하는 터라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자를 이번 기회에 제거하려는 생각이었습니다.

    ―타이킨 그자가?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왜 제가 그 많은 기사와 마법사를 준비했겠습니까?

    크럭스는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기 위해서 필사적인 노력을 했다. 주변의 이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밀실로 들여 처리하려는 의도가 컸으며 그자를 신뢰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그만, 타이킨 그자가 백작 자리를 스스로 포기하는군. 너 역시 허락 받은 자리를 얻지 못할 가능성은 배제하지 말도록.

    ―감사합니다.

    ―그 외의 다른 사항은 있는가?

    ―모든 것이 순조롭습니다. 4서클 이상의 마법사와 병사 20명만 지원해 주신다면 바로 수송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지원을 해주도록 하지, 하지만 더 이상의 병력 손실은 자네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도록 하지. 앞으로 2년, 더 이상 내가 이곳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군.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이후 크럭스의 보고와 변명이 섞인 내용이 몇 번 오간 후 통신구의 통신이 끊어졌고 후버는 아카이브에게 연락을 취해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 국경을 넘어오는 4서클 이상의 마법사에 대한 기록과 왕국 내에서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 이동하는 4서클 마법사의 기록을 모두 기록해 달라는 요청을 하였다.

    “이제 슬슬 끝이 보이는군.”

    배후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인해 와일리 상단의 처리를 미루고 있던 후버는 이제 모든 일이 끝날 것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도 믿을 건 슬렌과 사만다 상단주밖에 없으니…….”

    자신의 방 밖으로 나간 후버는 사만다 상단주와 슬렌을 불렀다.

    “사만다 상단주도 알겠지만 이제 끝이 보입니다.”

    후버의 간단한 말에 사만다 상단주는 기대에 찬 표정을 지었다. 기사와 같은 인물들은 나름대로의 무력으로 일정한 공을 세웠지만 자신의 일은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눈에 보이는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일인 만큼 이렇게 따로 부른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는 이제 왕성으로 가서 마지막 절차를 위해 국왕을 알현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만다 상주께서는 앞으로 이곳에서 계속해서 일을 봐줘야 할 것입니다. 혹시 왕성 안으로 들어가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그렇다면 왕성 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힘을 써드리겠습니다.”

    “왕성으로 말입니까?”

    후버의 말에 사만다가 고민에 빠졌지만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후버 님께서 아시다시피 저는 평민 출신입니다. 그곳에 들어가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군요.”

    현실적인 판단에 후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평민 출신의 사만다가 왕성에 들어간다 한들 왕성에 있는 흔하디흔한 관료 중 한 명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좋습니다. 그럼 이만 나가 보셔도 됩니다. 사만다 상단주의 앞으로의 위치는 제가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일견 듣기에는 무책임한 말이지만 사만다 상단주는 오히려 웃는 얼굴로 후버의 방을 나갔다.

    “바이스 너도 내려오도록.”

    후버의 명령에 바이스가 슬렌의 옆에 섰다.

    “왕성에 올라간 보고 중에 슬렌에 대한 부분은 어디까지 기록했지? 슬렌이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전했는가?”

    당황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바이스의 모습에 후버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슬렌의 공이 적지 않다는 것도 적어 뒀겠군.”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는 바이스.

    “좋아, 이제 마지막으로 너희 둘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슬렌 너는 이 통신구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대화를 녹음하도록 하고, 바이스 너는 와일리 상단의 비밀통로 어딘가에 있을 로한을 데리고 오도록. 내일 나는 왕국으로 간다. 일정은 일주일 정도. 그리고 나는 국왕께 와일리 상단의 업무를 레빌리온 백작가가 인수하고 싶다는 청을 드릴 것이다. 무슨 뜻인지 알겠지?”

    바이스는 고개를 끄덕이자 후버는 대충 손짓으로 바이스에게 밖으로 나갈 것을 명령했다. 이제 남은 것은 슬렌.

    “아마도 슬렌 너는 이번 일로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혹시 뭔가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내가 국왕에게 전해 줄 테니 말해봐.”

    “글쎄요… 돈이 있어도 사용하기 곤란하고…….”

    슬렌이 머리를 굴려 봤지만 딱히 자신이 가질 만한 것이 있지는 않았다.

    “뭐 그렇다면 천천히 생각해 보도록 해.”

    각자에게 해야 할 일과 약간의 보상에 대한 언급을 한 후버는 다시금 자신의 방에서 늘어져서 팔찌를 활성화시키고 잠에 빠져 들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언제 연결될지 모를 크럭스의 통신을 기다리느라 소모한 체력적, 심적인 피로를 풀는 것과 동시에 과거 국왕과 알현한 적이 있는 나일러스의 기억을 재생시키고는 왕성에서의 예절을 머릿속에 각인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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