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와일리 상단으로 (23/37)

와일리 상단으로

“주인님, 일어나 보세요!”

“어? 왜?”

밤새 혹시 모를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경우해서 저택으로 복귀한 후버와 기사들은 아침 해가 떠서야 저택으로 복귀할 수 있었고 모두들 마지막으로 전과를 보고하고는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하지만 추적의 염려가 없는 슬렌으로서는 복귀 후 아침 일찍 일어나 수정구를 보던 중 와일리 상단의 총관이 서둘러 상단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는 후버를 깨워서는 눈앞에 수정구를 들이 밀었다.

“총관이 어딘가로 서둘러서 가는 것 같은데 어디인지 아실 것 같아요?”

“어디 보자… 바이스!”

평소와 다르게 아무런 나타나지 않는 바이스의 반응을 보고 후버가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어째 어쌔신이란 놈이 뭐 이리 둔감한지. 슬렌, 네가 사만다 좀 깨워올래?”

“네, 주인님.”

슬렌이 방밖으로 나가서 사만다의 옷자락을 입으로 물고 들어오자 후버가 수정구 위에 보이는 한 저택을 가리치고는 사만다에게 질문했다.

“이곳이 어디인지 아나?”

“이곳은… 제가 보기에는 용병들을 고용하기 위한 곳인 것 같은데요.”

“흠… 용병대기소인가보군. 사만다 지금 용병대기소에 등록되어 있는 용병들의 등급을 알 수 있나?”

“예, 저도 용병대기소를 자주 이용하기에 통신구를 이용하면 대략적인 등록 상황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A급 용병의 유무부터 B급까지의 수를 알아와 주겠어? 그리고 나가는 김에 한스도 불러 주면 고맙고.”

“예,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만다가 후버의 집무실을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는 한스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후버 님, 부르셨습니까?”

“자고 있는데 깨워서 미안해. 아무래도 한스와 내가 직접 와일리 상단으로 침입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건 기사들을 이용하기로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무래도 한스와 내가 직접 들어가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기사들 보다는 직접 하는 것이 더 확실하니깐 이곳에 내가 머무를 필요도 별로 없는 것 같고.”

“저야 상관은 없습니다만 그럼 기사들과 사만다는 누가 관리합니까?”

“그러라고 있는 게 통신용 수정구 아니겠어? 그 정도의 짬은 있겠지. 지금 한스와 내가 용병단에 어떻게 등록이 되어 있지?”

“이곳에 오시면서 후버 님은 3서클 마법사로 등록을 하였고 저는 A―S급 용병으로 등록이 되어 있습니다.”

“좋아. 그 정도라면 와일리 상단이 원하는 실력이 되고도 남을 거야. 마침 우리가 처리한 마법사의 실력이 3서클 정도의 수준이고 한스는 와일리 상단에 현재 근무하고 있는 기사들 보다 수준이 한 등급 더 높으니깐.”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어, 그래. 들어와.”

사만다가 간략하게 현재 이 지역 용병대기소에 대기하고 있는 용병들의 신상에 대한 사항을 적은 양피지를 후버에게 건넸다.

“생각보다 별 볼일 없군.”

“이 지역은 분쟁보다는 상행에 필요한 호위 용병의 수요가 많기에 B등급 이상의 용병은 후버 님과 한스 씨 외에 3명 이하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조치를 취해두었습니다.”

“조치를 취해두었다니 잘했어. 그런데 혹시 와일리 상단이 어느 정도 수준의 용병들을 원하는지도 알 수 있었나?”

“직접적으로 알 수 없어 어제 용병대기소에서 받은 대기 용병 목록에서 오늘 고용된 용병들의 리스트를 뽑아내었습니다. 대부분의 고용된 용병들의 수준이 B―C등급 수준이었습니다.”

“일단 용병대기소에 한스와 내가 용병 일을 하기를 원한다는 의사를 전해야겠군.”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한스가 자리에 일어나면서 대기소에 갈 것을 자청했다.

“아니야, 잠시 후 같이 가도록 하지. 그전에 해야 할 일이 있으니.”

후버가 품 안에서 통신용 수정구를 꺼내서 컨텍트 상단으로 통신구의 연결을 시도하였다.

“사만다, 현재 우리 상단의 이름이 아니라 다른 상단이 발행한 어음 중에서 와일리 상단이 청구처로 되어 있는 어음이 어느 정도 양이 있지?”

“후버 님의 지시에 따라서 최대한 많이 사 모았습니다만 오늘 청구 가능한 수량은 대략 금괴로 3.5톤 정도의 양일 것입니다.”

“좋군, 그걸 준비해 주도록.”

“알겠습니다.”

사만다와의 대화를 하는 동안 수정구가 밝게 한 번 점멸하였다. 컨텍트 상단과 연결이 되었다는 뜻.

―칼입니다. 후버 님 어쩐 일이십니까?

“세이건은 지금 자리에 없나?”

―예, 세이건 상단주는 가짜 인장이 박힌 금괴를 최종 점검하느라 밤을 세서 현재 잠에 들었습니다. 깨울까요?

“아니야, 칼 자네가 잠시 이곳에 와 주어야 하네. 지금까지 파악된 가짜 인장이 찍힌 금괴를 모두 가지고 와주었으면 좋겠네.”

―예, 알겠습니다.

칼 역시 상단의 골칫거리인 금괴가 드디어 정상적인 금괴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목소리가 처음 보다 밝아졌다.

“그럼 30분 후 저택으로 와주게 마탑의 게이트를 통한다면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하겠지?”

―예, 충분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사만다는 금괴를 준비해주고 어음은 나한테 주면 돼.”

사만다가 어음 뭉치를 후버에게 전해주고 금괴를 정리하기 위해 나갔다.

“그런데 와일리 상단 내부로 들어가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글쎄? 일단 들어가 봐야 알겠지만 지금 보다는 와일리 상단의 정보를 더 많이 얻을 수 있겠지.”

그 후 후버와 한스 간의 와일리 상단으로의 잠입 이후의 계획에 대해서 이러저러한 말이 오가는 동안 시간은 흘러 칼이 저택에 도착했다는 알림이 사만다로부터 도착했다.

칼을 만난 후버는 어음 뭉치를 건네받고 가짜 인장이 찍힌 금괴를 진짜 인장이 찍힌 금괴로 교환을 하고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후버에게 들을 수 있었다. 처음 계획은 컨텍츠 상단을 통해서 경쟁 입찰이 끝난 후 가짜 인장이 찍힌 금괴를 회수해 오는 것이었지만 작전을 조금 바꾸기로 하였다.

“그러니깐 저는 그저 어음을 와일리 상단에 청구하면 되는 것이군요.”

“그렇지, 용병으로 위장한 내가 자네가 어음을 청구할 때 자네가 촬영을 위한 아티펙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와일리 상단에 알리면 자네는 그저 평소에도 구두계약에 대해 확실히 하기 위해 지니고 있던 것을 깜빡하고 있었다고 둘러대면 되는 거고.”

“알겠습니다. 간단하군요. 그런데 이런 큰 금액을 한 번에 요청하게 되면 의심을 받지 않겠습니까?”

“아니, 오히려 크럭스는 좋아할 걸세. 당장 내주는 금괴가 아까울지 모르지만 자네의 상단이 마탑에 마법 재료를 판매해서 그 규모가 커지고 있는 것을 모르는 상인은 없지 않나? 단순히 재료를 판매하는 데도 저렇게 큰 금액이 오가는데 완성품을 독점하게 된 자신들의 입지가 얼마나 커질지에 대해서 상상하게 되겠지.”

“그렇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좀더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이것을 모두 청구하는 것은 좀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가?”

칼의 말에 후버가 궁금한 기색을 하고는 되물었다.

“후버 님은 아직 상단들의 생리를 잘 모르시겠지만 사실 어음을 이렇게 한 번에 대량으로 요청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특히 저처럼 거래가 없던 상단이 와일리 상단이 보증하는 어음을 다량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은 특히 의심을 할 만한 것이지요.”

“그야 그렇지만…….”

“그들에게 제가 이정도의 어음을 청구하는 것에 대해서 타당한 이유를 주는 것은 어떻습니까?”

“타당한 이유라? 그런것이 있던가?”

“후버 님께서 말씀 하신대로 저희 상단은 마탑에 재료를 재공하여 줌으로서 그 규모를 키우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저희같은 아티펙트를 취급하는 상단이라면 로비를 해서라도 지금의 마탑의 경쟁입찰에서 승리를 하고 싶어하겠죠.”

“그렇겠지.”

“그래서 말입니다. 그들을 협박 하고 회유하기 위해서 방문을 한 것 처럼 꾸미는 것입니다.”

“어떻게 말인가?”

“저희와 와일리 상단이 거래가 없는 만큼 와일리 상단의 어음을 사채시장에서 매입해서 한번에 청구를 한다면 와일리 상단으로서도 단기간에 매우 큰 자금 압박을 받게 되는 것은 틀림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저희 상단은 특히 이곳과의 거래가 없는 만큼 기존 이 지역의 상인들에게 크럭스 상단주가 한 협박도 통하지 않습니다.”

“300kg 이상을 청구하면 서로 상쇄를 하겠다는 말. 말인가?”

“그렇습니다. 이곳에 저희 상단의 어음은 전혀 유통이 되지 않으니까요.”

“그렇지.”

“그래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저희가 어음을 무제한 적으로 사들여서 청구한다고 협박을 하면서 동시에 나중에 마탑에서부터 독점적인 아티펙트의 공급을 약속 받는다면 그중 일부분을 우리와 거래해 주기를 부탁하는 겁니다.”

“그럴 듯하군… 그렇다면 확실히 컨텍트 상단이 와일리 상단이 보증하는 어음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것에 합리적인 설명이 되는군.”

“뭐… 저희 상단의 이미지가 조금 나빠질 테지만 어차피 이 지역에서는 거래를 하지도 않고 와일리 상단으로서도 떠들고 다닐 만한 일은 아니니, 소문이 세기 보다는 와일리 상단 내부에서만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와일리 상단은 곧 망해버릴 테니깐 이미지에도 그다지 타격이 오지는 않을 거야.”

“그렇습니다. 제 생각이 어떻습니까? 후버 님.”

“좋아. 그럼 내가 먼저 한스와 함께 용병길드에 들러 의뢰를 맡겠다는 의사를 표하고 와일리 상단으로 이동하면 칼 자네가 나와 30분 정도의 시간을 두고 와일리 상단주를 만나기를 요청하여 주게나.”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확실히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주변인의 도움을 받으니 좀 더 나은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생각을 하며 후버는 용병대기소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주변의 구경을 하며 움직인 지 10여 분 눈앞에 보이는 용병대기소 안에 들어가서 접수를 받고 있는 남자에게 한스가 용병 의뢰를 받고 싶다는 뜻을 전하자 남자는 한스와 후버를 번갈아 보더니 등급이 어찌 되는지를 물었다.

“나는 A―S등급이고 이쪽은 3서클 마법사다.”

“아! 정말 마법사이십니까? 용병패를 보여 주실 수 있으십니까?”

후버의 복장이 마법사가 입는 로브 등을 걸치고 있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후버의 모습이 어려보이기 때문인지 접수인은 후버에게 용병패를 보여줄 것을 요청했고 후버는 주머니에 넣어둔 용병패를 꺼내서는 접수원에게 보여주었다.

“정말 3서클이 맞으시군요. 실례지만 이쪽에 있는 수정구에 손을 올리고 라이트 마법을 사용해 주시겠습니까?”

“어렵지 않지.”

만약 후버가 1서클이었다면 자유롭게 손을 사용해서 라이트 마법을 사용할 것을 요청했겠지만 보통 자신의 서클보다 2서클 낮은 마법에 대해서는 수인과 영창이 없이 발현하는 것이 가능하기에 접수원은 후버에게 수정구에 손을 올리고 마법을 발현해 주길 요청하였다. 여기서 수정구의 역할은 이 마법이 아티펙트나 다른 마법용품이 아닌 후버의 마나의 움직임으로인한 것이란 것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의 역할도 동시에 하였다.

후버가 수인이나 영창 없이 간단하게 라이트 마법을 성공시키고 수정구에서 약한 빛이 나오자 접수원은 후버에게 확인이 끝났다는 말을 하고는 A급 이상의 용병에게 들어온 의뢰를 확인하였다.

“한 가지 의문이 있는데 후버 님의 용병 기록을 보면 처음에는 D급 용병으로 등록을 하셨다가 금세 마법사로 등급을 바꾸셨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저희 지역은 상단의 상행을 주로 회위하는 의뢰를 주선하기에 신분이 확실하지 않으면 소개해 드리기가 곤란합니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후버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간단한 이야기를 꾸몄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그저 처음 용병일을 할 때는 이런저런 실수가 많다는 한스 용병의 충고로 낮은 등급의 의뢰를 받기 위해 실력을 숨긴 건 뿐이지 다른 뜻은 없다. 한번 의뢰를 받아보니 그다지 힘든 것은 없더군. 그래서 원래의 실력으로 용병등급을 올린 것이고 이 정도면 설명이 되었나?”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이 이야기를 의뢰인에게 하여도 되겠는지요?”

“뭐 편할 대로 하도록 하게. 하지만 나도 그전 의뢰인과의 관계가 있으니 누구의 의뢰를 받았는지는 발설하지 않아 주었으면 하네.”

후버로서는 록시나 자작가와의 연결을 숨기기 위한 조치이었고 접수원 역시 후버의 요청이 그다지 무리한 요청이 아니기에 쉽게 받아 들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다시금 의뢰 목록을 뒤적거리던 접수인이 의뢰 내용을 정리한 책 중 한 페이지를 손으로 집었다.

“우선 아크바 상단의 의뢰가 있습니다. 기간에 비해 보수가 꽤 괜찮은 편입니다. 2주간의 상행에서 상단을 보호해 주면 5골드 정도의 의뢰금을 지급해 준다고 적혀 있습니다. 현재 들어온 의뢰 중에서 가장 좋은 조건입니다.”

“아크바 상단? 처음 들어보는 곳이군. 의뢰금은 크지만 왠지 마음에 내키지 않는군. 비싼 만큼 위험한 일일 테니 아직은 그런 일을 하는 것보다는 적당한 난이도의 일을 하고 싶군.”

“그 외의 A등급의 용병을 찾는 일이라면 현재 와일리 상단의 의뢰가 유일하군요. 이것도 보통의 의뢰보다는 의뢰금이 크긴 하지만 3개월 이상 장기 계약이 가능한 용병을 원하기 때문에 다들 아크바 상단의 의뢰로 몰렸군요. 아크바 상단 역시 재계약은 2개월 이상 보장해 준다고 했으니 이 지역에 오래 머무는 용병이나 단기로 일하는 용병이나 와일리 상단보다는 아크바 상단의 일이 좀 더 매력적이니까요. 안 그래도 용병 중 한 명은 와일리 상단의 의뢰를 받아들이려고 하다가 아크바 상단의 의뢰가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 그쪽의 의뢰를 받아 들였습니다.”

사만다가 말한 조치가 이것인지 접수원은 계속해서 와일리 상단보다는 아크바 상단의 의뢰를 받는 것이 유리하다는 뜻을 역설하였다.

“이거 수상한데 혹시 아크바 상단이 자신들에게 용병을 보내 달라고 뒷돈이라도 찔러준 건가?”

“뭐… 흠, 그런 것이 아니라 기왕이면 용병들이 좋은 대우를 받았으면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접수일만 십수 년 하다 보니 용병들의 입장에서.”

“뜻은 고맙지만 왠지 내키지 않는군. 와일리 상단으로 하지. 그쪽으로 연락을 넣어 줄 수 있는가?”

“정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통신구를 집어든 접수원이 안쪽으로 들어가 와일리 상단과 통신을 시도했다. 다행히 일이 잘 이루어졌는지 후버와 한스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을 하고 후버의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다른 용병들에게 적정한 의뢰를 배정해 주었다. 그렇게 5~6명의 용병이 안내를 받고 용병대기소를 나간 후 와일리 상단의 총관이 용병 소개소 안으로 들어왔다. 이미 수정구를 통해 총관의 얼굴을 알고 있는 후버였지만 모르는 척 한스와 의뢰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고 총관을 발견한 접수원이 손짓으로 한스와 후버를 가리키자 총관이 한스와 후버를 향해 인사했다. A―S급 용병과 3서클 마법사라면 상단의 총관정도 보다는 높은 신분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와일리 상단의 총관의 직책을 수행하고 있는 타이킨이라고 합니다.”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제가 A―S등급인 한스 이쪽이 3서클 마법사인 후버입니다.”

“예, 후버 님, 한스 님. 만나 뵈어서 반갑습니다. 제가 상단을 오래 비울 수 없어 상단으로 이동하면서 의뢰내용을 설명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평소보다 다소 선이 굵은 목소리로 대답한 후버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용병대기소 밖으로 나가자 한스와 타이킨 역시 뒤를 따라서 용병대기소 밖으로 나갔다.

“마차를 대기시켜 두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배려 고맙습니다.”

용병대기소 밖에서 한스와 후버가 나올 것을 기다리던 칼이 그 모습을 보고 천천히 마차 뒤를 따라갔다. 상대가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만큼 자신은 천천히 딴짓을 하며 걸어간다면 후버와 약속을 한 시간에 와일리 상단에 도착할 수 있기에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두 분께서 상단주님을 뵙고자 하시면 상단주님과 직접 계약을 하도록 하고 아니라면 제가 대리하여 계약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등급이 높은 만큼 A등급 이상은 직접 상단주나 영주와의 접견을 통해 의뢰의 범위를 확실히 하고자 하는 용병들이 많았기에 총관이 후버와 한스를 향해 질문하였다.

“뭐 바쁘신 상단주님께 피해를 끼칠 수야 없지 총관이 잘 설명해 주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이미 크럭스와는 수정구를 통해 오랜 시간 동안 통신을 한 경험이 있기에 괜히 후버의 목소리를 알아채기라도 하면 문제가 있기에 후버는 총관과 계약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평소보다 목소리를 굵게 하여 차이를 두었다고 해도 직접 만나는 것은 그다지 좋지 않다는 판단이 든 것이다.

“그럼 이쪽으로 오시지요.”

총관이 자신의 집무실로 후버와 한스를 안내하였다. 화려하지만 천박하지 않은 세공품들이 후버의 눈을 즐겁게 하였다. 귀금속 등 겉보기에 값이 비싼 물품으로 치장되어 있지는 않지만 일개 상단의 총관의 집무실이라고 보기에는 장식되어 있는 물품의 양이나 질적인 면은 거의 백작가와 비슷한 수준을 보여 주었다.

“집무실이 매우 아름답군요. 전체적인 조형미가 아주 훌륭합니다.”

“오! 그것을 알아보시다니 역시 마법사님은 눈이 높으시군요.”

후버 역시 어린 시절부터 백작가에서 자랐기에 어느 정도 예술품을 보는 눈은 있었다. 아니, 어쩌면 전생에서의 미디어를 통해 수많은 작품을 본 만큼 지금의 인물들의 기준으로 보자면 상당한 미술 부분에 대한 감식안을 가졌다고 할 수도 있었다.

“이 정도로 절제된 미학이 있는 집무실은 처음 보았습니다. 천박하게 금장으로 장식된 귀족들의 집무실과는 수준이 다르군요.”

3서클 정도의 수준이라면 충분히 준귀족으로서의 대우를 받을 수가 있기에 후버는 귀족을 깎아내리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였다.

“제 자랑 같지만 주어진 범위 내에서 최대한 보기 좋게 꾸며보았습니다.”

경계심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저 미술품을 보고 감탄하는 한 명의 마법사를 연기하고 있지만 후버는 지금의 총관의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단순히 상단의 총관이 자신의 앞에서 귀족을 깎아 내리는 발언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은근한 동조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상대의 신분이 최소한 준귀족이나 혹은 그 이상의 신분이 되지 않는다면 여기서 나올 모범 답안은 자신의 집무실을 귀족의 집무실에 비교해 준 것만으로도 황송하다는 대답을 하는 것이 모범 답안에 가까웠다.

“겸손이 과하십니다. 제가 한번은 자작가에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의 집무실은 그저 돈 자랑 이상의 것이 되지 않더군요. 이 집무실에서 보이는 통일감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수준인 것이 이곳의 예술품은 주인을 잘 만나서 행복하겠습니다.”

“그렇습니까? 저 역시 가끔 귀족과의 거래를 위해 집무실을 방문하면 안타까운 심정을 느끼곤 합니다. 자연의 보이지 않는 마나를 다스리시는 마법사님께서 해주시는 칭찬 감사히 듣겠습니다.”

최소한 자작 혹은 그보다 높은 신분일 가능성이 후버에게 떠올랐지만 이 이상 백작 등의 집무실을 언급하며 작위를 올리면 테스트하는 것은 타이킨에게 의심을 살 수도 있기에 후버는 이쯤에서 질문보다는 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생각 같아서는 계약을 핑계로 이 집무실에 오랫동안 눌러 있고 싶지만 바쁘신 총관님에게 미운털이 박힐 수가 없으니 일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후버 님이시라면 얼마든지 오래 계셔도 환영입니다. 하지만 저도 상단주님께 게으름 피운다는 타박을 듣기는 무서우니 계약에 대한 설명을 해드리도록 하지요.”

약간의 엄살을 부린 타이킨은 계약 상황에 대해 후버에게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내용은 간단하게 상단의 저택을 지켜주는 것이 주임무이고 간혈적으로 주요한 물품을 운송하기 위해 외부로 나가는 경우 해당 상행의 호위였다. 설명을 들은 후버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는 총관에게서 알람마법을 걸어줄 위치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함께 집무실 밖으로 나왔다.

“총관님, 혹시 저 말고도 다른 마법사가 상단 안에 있습니까?”

“후버 님을 제외하고는 마법사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저기 일렬로 줄을 서 있는 분들은 이 상단의 사람이 아닌 것입니까?”

“예, 저분들은 저희 상단에 어음을 청구하기 위해 대기를 하고 계신 분들입니다. 저분들 중 마법사가 있습니까?”

“이거 자세히 느껴보니 제가 착각했군요. 마법사가 아니라 아티펙트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혹시 모르니 좀 더 자세히 가서 확인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티펙트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 타이킨이 호기심을 보였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후버가 칼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앞의 3명의 대기자를 두고 어음을 교환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칼에게 후버가 말을 걸었다.

“이거 실례합니다. 혹시 어음을 교환하기 위해서 이 줄에서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까?”

“누구신지?”

“저는 이 상단에 소속된 마법사입니다. 실례지만 그쪽분의 품에서 아티펙트가 작동하고 있는 듯한데 무슨 용도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후버의 말에 칼이 짐짓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들켜서는 안 될 것을 들킨 듯이 한걸음 뒤로 물러나기까지 하는 칼의 모습에 총관이 수상스럽다는 듯이 칼의 위아래를 훑었다.

“흠흠, 그렇게 쳐다보지 말아 주시오. 나는 컨텍트 상단의 부상단주의 직책을 맡고 있는 칼이라고 하오. 그저 몸을 보호하기 위한 아티펙트를 항시 켜두는 것뿐이니 그게 문제가 된다면 작동을 중지시키도록 하겠소.”

“그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칼이 품 안에 든 아티팩트를 정지시키 듯이 품속의 손을 몇 번 움직였다.

“상단 안에서 아티펙트의 사용은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런저런 거래가 이루어지는 상단 안이니 만큼 아티펙트를 허가 없이 사용하는 것은 다소 예의에 어긋난 일에 속했다.

“알았소. 내 실례하였소.”

―총관님, 저자의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아티펙트를 정지시킨 것은 맞지만 저자의 품에서 느껴지는 마나의 흐름은 일반적으로 몸의 보호를 위하여 작동시키는 아티펙트가 마나석에서 아티펙트로 마나의 흐름이 흐른다고 한다면 저자의 몸에 있는 아티펙트는 아티펙트에서 시작된 마나의 흐름이 다른 곳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혹시 모르니 따로 이야기를 나누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혹시 그가 다시 아티펙트를 작동시키면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후버가 매직마우스를 통해서 총관에게 설명을 하자 총관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 했다.

“아닙니다, 칼 님. 오히려 저희가 무안을 주어서 죄송합니다. 사과의 뜻으로 제가 차 한 잔을 대접하고자 하는데 잠시 괜찮으신지요?”

총관이 자연스럽게 칼과의 독대를 청하자 칼은 흔쾌히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실례를 범했는데도 이렇게 대접을 해주시니 거절할 수 없지요.”

“그럼 이쪽으로.”

“저는 좀 더 상단의 경계를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칼과 타이킨 총관이 총관의 집무실로 움직이는 것을 본 후버와 한스는 저택의 이곳저곳을 살피었다. 아직 총관에게 설명을 듣지 못했으니 괜히 나서서 일을 하는 것보다는 기다리는 것이 더 좋다는 판단이 들었던 까닭이다.

“안 그래도 총관님이나 상단주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먼저 자리를 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리에 앉은 칼이 대뜸 자신의 용건을 꺼냈다. 타이킨은 자신이 먼저 청한 자리에 처음부터 자신이나 상단주인 크럭스를 보고자 했다는 칼의 말에 의문을 느꼈다.

“어음을 청구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까? 굳이 저나 상단주님을 뵈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없지 않지요. 지금 같은 시점에 이 정도의 금액을 청구하려면 총관님은 최소한 봬야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짐짓 거만한 자세로 품 안에 들어 있던 어음 뭉치를 타이킨 총관의 책상 위에 ‘탁!’ 소리가 나도록 던지듯이 내려놓았다. 표면적으로 우호적으로 흐르던 분위기가 칼의 행동에 따라 약간은 냉각됐다.

“흠… 어음 뭉치군요. 어느 정도 양입니까?”

“대충 금괴로 3.5톤 정도의 양입니다.”

생각보다 적은 양의 어음에 타이킨이 비웃듯이 반문하였다.

“이 정도 양이 저희 상단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타이킨 총관이 허세를 부리며 칼의 눈을 쏘아 보았다.

“이거 왜 이러십니까? 같은 상인끼리 요즘 금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데 와일리 상단이 금광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이 정도의 청구가 계속되면 버티실 수가 있으십니까?”

칼이 타이킨이 노려보는 것이 가소롭다는 듯이 비웃으며 바라보자 타이킨의 속에서 울컥하는 감정이 치솟았다. 하지만 상대의 말대로 이런 어음 청구가 계속된다면 불리한 것은 사실이었다. 이제 보니 상대는 단순히 어음을 청구하기 위해 온 것은 아닌 듯하였다.

“무엇을 바라십니까?”

“일단 크럭스 상단주님을 만나서 이야기하기를 바랍니다. 바라는 것은 그때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다시 한 번 칼을 쏘아 보았지만 타이킨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잠시 여유가 생긴 칼은 후버가 그랬듯이 타이킨 총관의 집무실을 보고 순수하게 감탄하였다. 그렇게 집무실을 구경한 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타이킨 총관을 대동하여 크럭스 상단주가 타이킨 총관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크럭스 상단주님.”

“대충 총관에게 이야기는 들었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지, 원하는 것이 뭔가?”

“이미 이야기를 들으셨다고 하니 더 이상의 소개는 생략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 마탑의 경쟁 입찰에 참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네.”

“그리고 현재로서는 경쟁 입찰에서 다른 상단보다 우이에 있는 곳이 와일리 상단이라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습니다.”

“얼핏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시치미를 떼는 크럭스의 모습은 칼 역시 전모를 모른다면 믿어줄 수밖에 없는 진실성이 느껴졌다.

“저 역시 마탑과의 거래를 지속적으로 하는 만큼 적지 않은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정보를 많이 가지신 분께서 직접 참여하지는 않고 이게 무슨 짓인가?”

“공정한 경쟁이었다면 직접 참여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상단주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점점 의미모를 소리를 하는군. 어음은 지불하도록 할 테니 이만 돌아가주게. 총관, 나가는 길을 안내해 주도록.”

“왜 이리 성급하십니까? 타이킨 총관으로부터 모든 상황을 듣지는 못 하신 모양이십니다. 금괴를 청구하는 것이 이번 한 번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번 한 번만이 아니라면?”

“오늘은 저 혼자 왔지만 다음에는 일꾼을 동원하고 오도록 하지요. 크럭스 상단주님께서 이 지역에서의 어음의 청구를 300kg으로 제한하셨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음을 소화할 수 있는 곳이 오직 와일리 상단뿐이겠습니까? 이미 와일리 상단의 어음이 사채시장에서 평소보다 저렴하고 활발히 거래되는 것을 모르시지는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보가 생각보다 늦으시군요.”

칼의 말대로 약간의 금과 다른 어음을 교환해주는 대가로 와일리 상단의 어음은 평소의 시세보다 저렴하게 교환 되곤 했다. 금의 유출을 막기 위한 크럭스의 조치가 만든 부작용이었다.

“그게 어쨌다는 건가? 컨텍트 상단이 그 많은 어음을 모두 사서 청구할 능력이 있단 말인가? 그런 식으로 지금의 상황을 악용한다면 컨텍트 상단과 누가 거래를 한단 말인가?”

총관이 그랬듯이 크럭스 역시 배짱을 부려 보았지만 상대가 잘못되었다.

“독점적인 기회가 모두에게 돌아갈 텐데 반가워하지 않을 상단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히려 저희 상단과 거래하고자 하는 상단은 더 많아지지 않겠습니까?”

처음 금괴의 청구를 막기 위한 크럭스의 조치가 점차적으로 중소 상단의 연합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중 소상단은 다시 한정적으로 대상단과의 연계를 통해 몸집을 키워가는 도중이기에 시중에는 더 많은 금괴의 수요가 생겨나고 있었다.

“조건을 말해보게.”

“일단 이번에 청구하는 어음의 반만큼의 금괴를 내어주시고 두 번째로 와일리 상단이 마탑의 아티펙트를 독점적으로 공급받게 된다면 거래 지분의 10%를 약속해 주셨으면 합니다. 대신 어음 청구 금액의 절반만큼을 계약금으로 걸어 두도록 하죠. 만약 와일리 상단이 마탑과의 경쟁 입찰에서 패배한다면 깨끗하게 이 금액을 포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상단이 입찰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는가?”

“저도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통로가 있습니다. 왜 그런 결론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와일리 상단이 유리한 경쟁을 하고 있다는 정보가 들리더군요. 만약 제 정보가 틀렸다면 그만큼의 책임을 지면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상인끼리 오랫동안 전해오던 경구인 확신을 한다면 떠들지 말고 배팅하라는 말을 대충 인용하며 하는 칼의 말에 크럭스가 칼의 눈을 바라보았다.

“괜한 헛소문일 뿐이지. 고작 그런 소문을 믿고 이 정도의 금액을 배팅한단 말인가?”

“기사에게는 기사의 싸움 방식이 있듯이 상인에게는 상인의 싸움 방식이 있지 않겠습니까? 확신을 하는 만큼 자금을 배팅하는 것 외에 어떤 방법이 있겠습니까? 받으시겠습니까? 아니면 끝까지 해보시겠습니까?”

크럭스의 표정에 불쾌한 빛이 어렸다. 마탑과 조용히 일을 마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어딘가에서 누설되었는지 몰라도 지금 눈앞에 그 누설의 결과가 있는 것이었다.

“정보의 출처가 그렇게 신뢰할 만한가?”

“의심할 여지가 없지요.”

“그럼 그 정보의 출처의 입은 무거운 편인가?”

“무거운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마탑의 내부 사람이 아니라면 만나기 힘들 정도의 사람이라고 해두도록 하죠.”

크럭스가 칼을 한동안 노려보았다. 자신의 잘못은 아니지만 성과가 떨어질수록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왕세자는 자신의 능력을 의심할 것이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컨택트 상단 외에는 이 정보를 아는 사람은 없는 듯하지만 앞으로 경쟁 입찰이 끝날 때까지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몰랐다.

“거래를 받도록 하지. 대신 그 금괴를 앞으로 경쟁 입찰이 끝날 때까지 시장에 풀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군.”

“뭐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자네가 사채시장에서 우리 상단의 어음을 매입한 것을 누군가는 알고 있겠지, 그런데 자네가 금괴를 시장에 풀어 버리면 지금껏 금괴의 교환을 제한하던 우리의 입장은 난처하게 되지 않겠나? 한 배를 탄 당사자를 곤란하게 할 이유는 컨택트 상단으로서도 없을 텐데.”

들어보니 합리적인 이유이기에 칼의 고개가 끄덕였다. 후버가 그랬듯이 칼 역시 크억스라는 인물은 이 짧은 대화를 통해 재평가 하게 되었다. 칼이 보는 크럭스는 단순히 급조한 가짜금괴를 풀기 위한 대리인이라기 보다는 본업이 상인인 듯이 보였다. 어쩌면 이러한 단편적인 정보다 크럭스의 존재를 입증 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칼은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그런 이유라면 납득 하도록 하겠습니다.”

“총관 계약서를 작성하고 금괴를 내어주도록.”

크럭스는 마탑과의 거래에서 쓰일 진짜 인장이 사용된 금괴를 내어주지 않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상황에서 오는 더러운 기분을 참을 수 없어 이후의 조치에 대해서는 총관에게 위임 하였고 총관역시 크럭스가 낮은 평가를 받을수록 자신의 평가 역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불쾌한 표정으로 칼과의 계약을 마무리 하였다. 하셀로프와의 거래와 마찬가지로 칼 역시 새벽에 컨택트 상단으로부터 일꾼을 요청해 금괴를 옮기는 것으로 다른 이들이 모르게 금괴를 운반하는 것으로 거래를 무사히 마칠 수가 있었다.

와일리 상단 안에서는 서로 아는 척을 할 수 없는 관계로 칼은 후버에게 통신구를 이용하여 사후 보고를 하였다.

―하하하, 후버 님께서 그들의 표정을 봐야 했습니다.

혼자 지내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이유로 알람마법을 걸어주는 것을 끝으로 근처의 숙소로 돌아온 후버는 그때의 상황에 대해 칼에게 보고를 받았다.

“그렇게나 재미있었나?”

―이럴 줄 알았으며 기록용 아티펙트를 하나 더 챙길 걸 그랬습니다. 아주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컨트롤하지 못하더군요. 소문으로 들은 크럭스 상단주는 냉철한 인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마냥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항상 냉철할 수가 있겠나? 그런데 칼 내가 이해가 잘 안 가는 느낌이 있어서 그런데 자네가 네 느낌을 듣고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지 한번 거래 과정을 다시 집어 보게.”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일반적으로 알려지기로 크럭스나 그 총관인 타이킨이나 평민 출신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지, 어쩌면 그들이 귀족일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사실 저도 크럭스 그자에게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지만 설명하기가 힘듭니다. 후버 님께서는 어째서 그런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타이킨 그자 앞에서 자작급의 귀족을 깎아내리고 그를 높이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네. 자네라면 이런 말에 어떻게 반응을 하겠나?”

―저라면 당연히 전혀 그렇지 않다고 부정했을 것입니다. 그런 말에 동조했다는 말이 새나가게 된다면 귀족모독죄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기에 어떠한 경우에도 그런 말에는 귀족을 높이고 저를 깎아내리는 식의 답변을 합니다.

“자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게 정상적인 반응이건만 타이킨 그자는 그런 나의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넘기더군. 혹시 그자가 총관으로서 상단내의 사용인들에게 높힘 받는 것이 익숙해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가?”

―그건 아닐 겁니다. 상인이라면 귀족을 자주 접하기에 은연중에라도 그런 실수를 할까봐 경계를 하는 것이 더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후버 님의 말씀대로 자신의 집무실 안이다 보니 방심한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군. 나는 이러한 이유로 타이킨이 귀족 출신 그것도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귀족으로서의 신분을 잃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네. 그렇다면 그자를 다루는 크럭스 역시 귀족이 아닐까 생각하고 작위는 최소한 백작이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네. 이런 나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지만 칼 자네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하니 안심이 되는군. 자네는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가?”

―저는 그들의 눈빛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방문하여 요청한 것이 그 둘에게 불쾌한 내용이긴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단순히 거래에 제3자가 끼어서 나누어 먹으려는 것을 불쾌한 눈빛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상인이기에 그런 눈으로 상대를 쳐다보기도 하고 또 누군가 저를 그렇게 바라보는 경우를 적지 않게 격곤 합니다. 그들의 눈빛은 좀 더 본질적인…….

“귀족 특유의 오만함인가?”

―그런 것은 아니고 그저 제가 느끼기에는 저를 아랫사람으로 여기는 듯이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태생적인 카리스마 같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하하하, 역시 칼 자네는 잘 빠져나가는군. 곤란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네. 그럼 칼 자네의 생각에는 그들이 귀족일 가능성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잘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후버 님과 제가 같은 느낌을 받았다면 완전히 근거 없는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적게 잡아도 절반 이상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행이군. 나 혼자 받은 느낌이라면 헛수고가 될 가능성이 높지만 와일리 상단이 설립된 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혹시 아나?”

―제 기업에는 약 10여 년 전에 설립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고만고만한 중소 상단 중에 한 곳이었지만 지금의 크럭스와 타이킨이 영입되면서 본격적으로 덩치를 불리기 시작해서 10년 만에 지금은 왕국의 3대상단 중에 한곳으로 편입되었습니다.

“고속성장을 한 이유는 혹시 아는가?”

―저도 정확하게는 모릅니다. 그저 짐작으로는 대형투자자가 투자를 하면서 이렇게 컸다는 것과 주로 어음만을 담당하기에 거래규모에 비해 자금력 자체는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 평가이지만 이번에 직접 상단주를 격어 보니 단순하게 그런 이유 같지는 않습니다.

“기존상단을 인수해서 정체를 숨겼지만 크럭스와 타이킨이 성장의 핵심이라는 거군. 그들의 신분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있는가?”

―딱히 알려진 것은 없습니다. 그저 이 왕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토박이라는 점과 평민이라는 점인데 후버 님이나 제가 격어 본 그들은 귀족의 느낌이 많은 것으로 보아 신분은 위장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국외에서 유입된 인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겠군. 혹시라도 그들의 출신에 대해 조사할 만한 단서라던가 하는 것이 있다면 아무거나 말해줄 수 있겠나?”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들의 대륙어 억양에서 약간의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저희 상단이 아직 타국과의 거래에는 경험이 적기에 어느 국가인지 아니면 우리 왕국내의 지방에서 사용하는 사투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희미하게 이질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전형적인 상인식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 그들이 상인이라는 말인가? 그것도 외국에서 들어온? 범위가 많이 좁혀지는군. 사투리, 상인, 귀족, 외국인…….”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크럭스 그자는 불쾌함을 표현하는 동시에 손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이끌어 갔습니다. 전형적인 상인의 방식이 아닌가 합니다.

“전형적인 상인의 방식이라는 것이 어떤 뜻이지?”

―말 그대로입니다. 표면적으로 불쾌하다는 모습을 보이면 뭔가를 요구하는 상대는 자연히 위축이 되곤 합니다.

“아무래도 그런 면이 좀 있을 것 같군.”

―예, 심리적으로 더 큰 요구가 불가능하게 됩니다. 노련한 상인이라면 그런 것에 영향을 받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평소라면 칼 자네나 세이건은 그런 것에는 신경도 안 썼겠군.”

―예, 사실을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확실히 귀족은 불쾌함을 표현하면서 고상함을 잃지 않으며 화를 내려고 노력을 하곤 하지. 귀족의 화내는 방식이 평민과 다르듯이 상인들의 화내는 방식도 일반인과는 다른가 보군.”

―예, 그래서 상인이 웃고 있을 때나 불쾌함을 표할 때나 변함없이 머리는 최대한의 이익을 향해 굴러가는 중일 것입니다.

“그렇군, 그럼 그 부분을 중심으로 염두에 두고 조사활동을 해야겠군. 의견 고맙네. 세이건과 마릴린에게 안부를 전해 주었으면 좋겠군.”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가짜 인장이 박힌 금괴는 어떻게 처리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조만간 마탑에서 수거해 갈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이 일이 끝나면 모두 모여서 저녁 식사라도 한번 같이 하지. 지금은 워낙 이 일이 바빠서 손님 대접도 못해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후버 님께 제가 대접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할 뿐입니다. 피곤하실 텐데 이만 잠자리에 드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칼 부단주도 이만 잠자리에 드는 게 좋겠군. 다음에는 좋은 소식을 들고 통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네.”

―감사합니다.

후버는 칼과의 통신구 연결을 끊고는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잠에 들었다. 크럭스의 출신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은 그보다는 좀 더 용병마법사로서의 직무에 충실하면서 가까운 거리에서 그들의 신분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를 찾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총관님, 밤새 별일 없으셨습니까?”

“아… 후버 님 별일 없었습니다. 혹시 알람이 해제된 곳이나 덫이 작동된 곳은 없었습니까?”

“다행히 그러한 흔적은 없었습니다. 안 그래도 지금 사용인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길에 알람마법과 간단한 마법트랩을 설치하려고 하는데 총관님께서 잠시 위치를 봐 주시겠습니까?”

후버가 그린 그림에는 상단 내의 각종 창고와 주요 건물이 표시되어 있었다. 어느새 이러한 분석을 마쳤는지 총관이 살펴보기에도 낮에는 사람들의 출입이 흔하지 않는 곳이 표시되어 있었다.

총관에게 있어서 후버의 이미지는 용병이나 마법사들의 이미지인 게으르고 건방진 이미지가 아닌 매우 성실한 마법사의 이미지로 굳어가고 있었다. 첫날부터 자칫 외부로 알려지면 위험할 뻔했던 대화 내용을 담으려 했던 아티펙트의 존재를 눈치챈 것부터 기존 와일리 상단이 고용했던 마법사 보다 실력 면에서 더 월등하여 보였다.

“벌써 이렇게 준비를 해두시다니 과연 마법사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창고들의 내부에는 왜 알람마법을 걸어두는 것입니까?”

“오늘 상단의 물품 출입 예정을 보니 이 창고들은 사용하지 않는 듯하여 다른 곳과는 다르게 더 강력한 마법을 걸어두기 위해서입니다.”

상단을 위해서 솔선수범하는 후버의 모습은 고마웠지만 이곳들 중 일부는 밀실로 통하는 통로나 입구가 있는 곳이기에 내부에까지 알람마법을 사용한다면 곤란하였다.

“마법사님께서 이렇게 꼼꼼히 준비해 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상단이다보니 갑작스레 예정되지 않은 상품의 요청이 있을 수 있어 이렇게 마법을 걸어두면 매번 마법사님을 귀찮게 할 수가 있습니다. 창고 안에는 알람마법을 걸지 않는 것이 좀 더 편하실 것입니다.”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창고는 제외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외부로 물품을 보내는 일은 점점 더 줄어들 것입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입니까?”

“요즘 들어 상단이 외부의 공격에 노출되는 일이 많아서 인력이 많이 필요합니다. 특히 내부의 인원은 최소한의 수준만을 유지 하고 있어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외부 상행을 하지 않으면 상단의 운영이 어려워지는 것은 아닙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지요 당장 급한 불을 끄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알겠습니다. 좀 더 내부 단속에 심열을 기울이 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다른 저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염치 불구하고 혹시 낮이 아니라 밤에 근무하여 주실 수 없으시겠습니까? 사실 얼마 전 누군지 알 수 없는 적의 습격이 밤에 있었습니다. 부끄럽게도 그들의 공격에 저희 상단의 병사가 12명이나 목숨을 잃고 적의 흔적조차 잡지 못했습니다.”

“당장 밤낮을 바꾸기는 힘들 것 같으니 하루에 3시간씩 근무 시간을 뒤로 미루는 것은 어떻습니까? 아무래도 마법을 사용할 때 정신적인 피로가 크다보니 한순간에 밤낮을 바꾸면 제 실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 것이라면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그럼 오늘부터 당장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저 역시 한스와 근무 시간이 달라 심심하던 차에 잘 되었습니다.”

“긍정적으로 받아주신다니 감사합니다.”

타이킨 총관은 급하게 고용한 마법가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마법사보다 적극적으로 상단의 요구를 받아들이자 어제 칼과의 일로 기분 나쁜 감정이 조금은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안 그래도 상단의 외부적인 일이 아닌 내부적인 일에도 일손이 부족한 만큼 이 마법사를 회유해서 최소한의 정보만 주면서 이용한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상단주에게 보고하기 전에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타이킨 총관이 다른 곳으로 떠난 것을 본 후버는 타이킨 총관이 설치하지 말라고 했던 창고를 반영한 지도를 보면서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이것으로 좀 더 확실하게 내부 비밀통로의 흐름을 알겠군.’

타이킨 총관의 실수는 급하게 상품의 이동이 있을 수 있으니 창고에는 알람마법을 사용하지 말라고 요청을 했으면서 사용인들이 창고에서 상품을 운반하기 위해서 반드시 지나가야 할 최단거리의 통로에 설치하는 알람마법 등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미 아세타이트가 마법가방을 통해서 비밀통로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려 주었지만 이 경로는 당시 크럭스 상단주가 금괴를 가지고 가기 위해서 지난 경로의 비밀통로에 대해서만 파악했을 뿐 전체의 유기적인 연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면 후버는 타이킨 총관이 알람마법을 설치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며 창고를 지정하는 순서를 따라가 보니 대략적인 흐름을 알 수 있었다.

“위저드 마크.”

이러한 흐름을 확실히 하기 위해 후버는 창고 곳곳의 물품에 위저드 마크를 걸어두었다. 만약 통행에 방해가 되어서 물품의 위치를 바꾸거나 한다면 어느 부근에 통로가 이어져 있는지에 대한 정보 역시 좀 더 세밀하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군.’

수십 개의 위저드 마크 마법을 사용하고 그 움직임을 추적하는 것은 확실히 후버에게 쉽지 않았다.

수십 개의 위저드 마크 마법을 사용하고 그 움직임에 일일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확실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나하나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함과 동시에 상단 내에서의 일상적인 대화나 업무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대해야 하기에 후버는 자연스레 마나의 집중과 컨트롤에 익숙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후우… 오늘은 별 성과가 없군.”

하루를 마감할 동안 지속적으로 움직임을 살폈지만 낮에는 비밀통로를 그다지 이용 하지 않는 듯 별다른 움직임을 느낄 수 없었다.

“한스, 이제 같은 시간에 근무하게 되었군.”

“밤낮을 바꾸느라 힘들었을 텐데 별로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자연스럽게 한스는 후버에게 말을 낮추었고 후버 역시 그런 한스를 친구처럼 스스럼없게 대했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 둘의 모습은 영락없는 용병으로서 만난 친구 사이로 보였다.

―오늘이야, 목표는 타이킨 총관이 될 테니 그의 곁에서 멀리 떨어져 있도록.

후버의 매직마우스를 통한 명령에 한스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알아들었다는 표시를 하는 한편 별것 아닌 이야기로 대충 시간을 때웠다. 한스와 함께 순찰을 도는 척하던 후버는 총관의 몸에 위저드 마크를 멀리서도 식별할 수 있게 강하게 걸어 두었다.

많은 마나를 소비한 만큼 컨텍트 상단으로부터 빌린 아티펙트를 사용하는 기사들도 먼 거리에서 이 마크를 식별할 수 있을 것이다.

“총관님, 늦은 밤까지 고생하시는군요.”

―고생은 앞으로 아침까지 근무를 하실 후버 님께서 더 하겠지요. 저는 한 바퀴 더 상단을 돌아보고는 이제 좀 쉬어야겠습니다.

“밤공기도 찬데 저와 함께 한 바퀴 돌지요.”

―그래주시면 저야 든든하지요.

총관과 후버가 순찰을 돌기 위해 한쪽으로 움직이자 한스는 그런 후버를 바라보다가 다른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원래라면 알람마법이 설치되어 있어야 할 장소였지만 후버가 미리 디스텔을 해버렸기에 한스가 이곳에서 통신구로 통신을 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신호는 식별 가능합니까?

“문제없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총관은 후버 님과 함께 상단을 한 바퀴 돈 후에 자신의 방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외관을 순찰할 때 공격을 해야 자연스럽습니다.

“알겠습니다.”

통신을 마친 기사들은 주저 없이 저택의 담을 넘었다. 직선상으로 후버와 총관과 가장 가까운 담을 뛰어넘는 순간 후버가 앞서가던 총관을 제지했다.

“잠시만요.”

소곤거리는 후버의 목소리에 타이킨 총관이 걸음을 멈추었다.

“왜 그러십니까?”

“지금 이 앞에 알람마법이 작동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소리도 안 들리는데…….”

“제가 있는 동안은 저에게만 소리가 들리도록 설정해 두었습니다. 배후를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혹시 적이 모르게 상단의 병사들과 이 소식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제가 가지고 있는 통신구를 이용하면 가능합니다.”

“그럼 병사들에게 통신구를 이용해서 이 소식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타이킨 총관이 품 안에서 통신구를 꺼내 통신을 시도하자 통신이 연결되었음을 알리는 불빛이 잠시 반짝였고 후버는 혹시라도 그 불빛을 기사들이 보지 못했을 까봐 손을 등 뒤로 돌리고 살짝 라이트 마법을 사용하여 신호를 보냈다. 동시에 총관에게 보내는 경고성.

―총관님, 통신구의 불빛을 가리셔야 합니다.

매직마우스를 통한 후버의 다급한 음성에 타이킨 총관이 허겁지겁 자신의 옷으로 통신구를 가리는 사이 반대편 기사들에게서도 통신구가 내는 약한 불빛이 후버에게도 보였다.

불빛과 동시에 후버가 타이킨 총관의 몸을 밀어 바닥에 쓰러트렸다.

팅!

무언가가 금속성 물체에 부딪히는 소리.

“총관님, 엎드려서 병사들을 호출하십쇼. 적이 우리의 위치를 눈치챘습니다.”

“알았네, 서쪽 담으로 지원 병력을 적의 기습이다.”

팅, 팅, 팅 ,퍽.

총관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세 발의 금속성화 한 번의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총관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훑듯이 지나간 한 발의 화살이 땅에 깊숙이 박혀 몸체를 부르르 떠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때마침 화살의 공격으로 인해 해제된 화살 한 발이 총관의 옆에 내리 꽂힌 것이다.

“히이이익.”

“총관님 제 뒤로 피하십쇼. 쉴드가 깨졌습니다. 메모라이즈된 쉴드 마법이 없어 다시 발현하는 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알… 알았네.”

다시금 세 발의 화살이 후버의 몸을 스치듯이 빗겨가 탕에 박혔다. 위축되어 몸을 웅크린 타이킨 총관과는 다르게 자신을 보호하듯이 최대한 자신의 몸을 크게 부풀린 듯한 후버의 모습에 총관은 후버의 등 뒤에서 지금의 상황과는 다르게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고맙네.”

총관의 말과 함께 일단의 병사들의 뜀박질 소리가 들렸다.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것은 한스.

“후버, 내 뒤로 파이어 볼을 부탁해.”

“한스, 적의 공격수단은 활 아니면 석궁인 것 같다. 최소 3명 이상의 적이 발사하고 있고 이미 7방 이상이 발사됐어.”

“오케이, 앞으로 2발에서 5발 정도 더 날아오겠군.”

“그럼 부탁한다!”

후버의 말이 끝나자마자 화답하듯이 3발의 석궁이 한스의 뒤에 있는 후버를 노리고 날아왔다. 모두 한 곳을 노렸는지 후버의 가슴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확인한 한스는 검을 들어 전면을 방어했다.

팅, 팅팅.

세 발의 화살이 나란히 날아와 한스의 검 한가운데를 강하게 때렸다. 충격으로 인해 검이 살짝 밀리긴 했지만 한스가 끝까지 검끝을 몸과 수평으로 한 덕에 모든 화살이 허공으로 튕겨 올라갔다. 어둠으로 인해 튕기는 세 번의 불똥이 석궁의 위력을 보여 주는 듯했다.

“파이어 볼!”

후버의 영창과 함께 붉은 빛 덩어리가 한스를 지나쳐 일직선상에 있는 적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적의 위치를 정확히 확인할 수 없는 밤이기에 지향 사격으로 발사된 파이어 볼은 적의 5m 좌측을 때릴 뿐이었다. 덕분의 적의 위치를 확인한 듯 한스가 후버에게 소리쳤다.

“우측으로 약 5m. 적의 수는 3명 남은 석궁은 각 1개씩으로 추정.”

짧은 시간 동안 모든 것을 파악했다는 듯이 한스가 외치자 후버는 다음 파이어 볼의 캐스팅에 들어갔다.

“위치가 발각되었다. 후퇴.”

작은 목소리가 담장 위에 살짝 솟아오른 둔덕 위에서 들려왔다.

“적이 후퇴한다. 후버 매직미사일로.”

한스의 지시에 후버가 다급하게 파이어 볼의 캐스팅을 취소하고 매직미사일로 캐스팅을 바꾸었다. 파이어 볼은 발사한 후의 조정이 쉽지 않아 소수의 적이 후퇴할 시에는 효력사가 발생하기는 어렵지만 발사 후에도 조정이 쉬운 매직미사일은 위력이 약한 것이 흠이지만 도주하는 적을 추적하는 기능이 있으니 시의적절한 선택이었다.

“매직미사일.”

이미 적의 후퇴가 진행되어 파이어 볼로 인한 약간의 조명이 닿지 않는 어두운 숲으로 모습 모습을 감추었지만 한 발의 두 발의 매직미사일이 연달아 날아가며 어두운 숲에서 나무와 사람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는 조명을 제공해 주었다.

도주하는 적도 그것을 알고 있는지 한 발의 매직미사일의 표적이 된 적이 직선으로 달리다가 갑자기 몸을 틀었다. 한정적인 시야로 인해 추적을 하며 미사일을 조정하는 후버가 미처 반응을 하기 이전에 적의 앞에 있던 나무에 한 발의 매직미사일이 꽂혀서 사라졌다. 남은 것은 한 발 좌측의 적을 쫓던 매직미사일의 움직임에 따라 후버의 손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매직미사일을 조정하였고 매직미사일의 목표 역시 기만한 반응을 보여 주었다.

앞선 적이 그랬듯이 갑작스러운 회피 동작을 보이듯이 오른쪽으로 튀는 적의 움직임에 이번에는 나무에 맞추지 않기 위해 후버 역시 매직미사일을 갑작스럽게 멈추었다.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오른쪽으로 움직이던 몸을 멈춰 완전히 한 바퀴를 돌면서 검집에 있던 검을 발검하며 위로 처내버렸다. 검의 움직임에 따라 위로 들어 올려진 매직미사일이 후버의 의지를 벗어나 하늘로 튕겨 올라갔다. 너무나 정석적이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동작으로 매직미사일을 무용화시킨 적들이 달아나는 순간 타이킨의 품속에 있는 통신구가 다시 불을 번쩍였다.

―총관님께 보고합니다. 적의 침입이 동쪽과 남쪽에서 있었습니다. 갑작스럽게 물러났습니다만 병사 3과 용병 2이 전사하였습니다.

병사와 용병이 사망하였다는 말에 총관이 침음성을 뱉었다.

“이런…….”

―적을 쫓을까요?

“아니다, 대기하라.”

―알겠습니다.

엎드린 채로 통신을 하는 총관을 일으킨 후버가 총관의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주었다.

“경황이 없어서 거친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괜찮으십니까?”

“아닐세, 나는 괜찮네. 덕분에 목숨을 구했어. 고맙네.”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혹시라도 적이 다시 침입할 수도 있으니 병사들이 있는 곳으로 가시지요.”

총관의 연락을 받고 달려온 용병과 기사 역시 털레털레 후버와 총관의 뒤를 이어서 병사들이 있는 상단의 중앙으로 이동했다. 총관은 공격으로 인한 흥분이 가시지 않는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후버와 한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말 대단했네. 자네와 한스는 얼마 동안이나 용병 생활을 한 건가? 호흡이 아주 딱딱 맞는 게 마치 군인을 보는 듯했어… 아니, 군인들도 그렇게 호흡이 맞기는 힘들 것 같더군.”

“과찬이십니다. 그저 2년 정도 함께 제가 용병으로 등록을 하기 전부터 함께 다니고 훈련을 했기에 서로 간의 신뢰가 있는 것뿐입니다.”

“아니야… 정말 인상 깊었네. 그런데 후버, 자네는 적이 화살을 쏘아 공격할 것을 어떻게 안 것인가?”

“우연히도 달빛에 화살촉이 반짝였습니다. 그 크기가 검보다는 작고 이전에 총관님께서 공격을 당한 적이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기에 화살이라는 직감이 들었을 뿐입니다.”

“그래도 그런 신속한 움직임이 가능하다니… 만약 자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최소한 오늘 팔 한쪽은 내주었을 거야.”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귀하신 분은 그렇게 쉽게 몸에 상해를 입지 않습니다. 그나저나 적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은근히 아부와 함께 대답을 하는 후버의 말에 후버에 대한 총관의 호감이 더 깊어지는 듯했다.

“한 명, 한 명의 실력은 대충 A―B등급의 용병인 듯 보였어. 매직미사일을 회피하는 것을 보니 전투의 경험은 많은 듯했고.”

“한스, 네 말대로 전투의 경험이 많아보였어. 특히 마지막에 매직미사일을 처내는 동작이 상당히 깔끔한 것이… 예사 움직임이 아니었어.”

“한스, 자네와 적들의 움직임을 비교한다면 자네는 저들을 막을 수 있나?”

“힘들 것 같습니다. 저 혼자 2명 후버와 함께한다면 4명까지는 막을 수 있겠지만 적이 원거리 공격을 하여 저나 후버의 힘을 빼놓고 공격을 하거나 다른 방향을 공격한 5명이서 함께 화살을 발사한다면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럼 용병의 고용을 늘리는 것이 좋겠나?”

“최소한 A급 용병을 몇 명 더 고용하는 것이 합당해 보입니다만 제가 듣기로는 A급 용병들은 모두 다른 상단에서 고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다른 상단에서 고용을 하다니?”

“저도 처음 들어보는 상단이라서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납니다만 후버 상단의 이름 혹시 기억하나?”

“글쎄… 무슨 상단이었는지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여자가 상단 주인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마 용병대기소에 가면 아직도 의뢰 중일지도 모르겠는데.”

“혹시 여자가 상단주라면 그 이름이 사만다가 아닌가? 상단의 이름은 아크바 이고.”

“맞습니다. 총관님 제가 기억하기에 그곳과 이름이 비슷했습니다.”

후버의 맞장구에 한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혹시 무슨 의뢰였는지 기억이 나나?”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상단을 호위하는 일이었습니다. 2주 단위로 계약을 갱신한다고 해서 매번 계약을 갱신하기도 귀찮기도 하고 돈을 다른 곳보다 많이 준다는 것이 의심스럽다고 생각해서 한스나 저나 이곳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몇 명이나 아크바 상단의 의뢰를 받았는지 아십니까?”

“접수원의 말로는 3명 정도라고 이야기를 들은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들을 고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곳으로 오겠습니까? 조건적인 면이나 기존에 일하던 곳에서 일하는 것이 좀 더 편하다고 생각할 듯합니다.”

“그건 금액을 올려서라도, 물론 두 분의 의뢰금도 함께 올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혹시 다른 곳의 피해가 있는지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잠시만, 총관님. 저에게 다른 의견이 있는데 잠시 들어보시겠습니까?”

“무슨 의견이십니까?”

“아무래도 용병대기소를 통해서 고용하는 것은 정체모를 적에게 상단의 전력을 노출시킬 염려가 있으니 차라리 상단 앞에 용병이나 검술실력이 좋은 사람 혹은 마법사를 뽑는다는 광고를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광고를 말입니까?”

“예, 광고를 통해서 사람을 뽑는다면 다소 실력이 모자란 자라고 해도 뽑아만 놓으면 상대는 용병대기소의 인물들처럼 쉽게 상대의 실력을 알 수가 없으니 공격을 단념할 가능성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다가 지원자 중에 적의 첩자가 스며든다면 어떻게 합니까?”

“그것이 문제이긴 합니다만 그것은 용병대기소를 통해도 같은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대신 고용기간을 짧게 해서 주기적으로 교체해주면 적의 병력이 한 번에 모두 채용되는 일은 없지 않겠습니까?”

“좋습니다.”

타이킨이 생각하기에도 이곳에는 하루에도 수십 명의 용병이 유입되고 나가기도 하는 만큼 대기소를 통해 고용하는 것보다는 더 안전할 듯싶었다.

“그럼 상단주님께 상의를 하고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그저 제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니 총관님께서 편하시는 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마법사님처럼 자신의 일같이 의뢰를 처리하는 분만 오게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말에 후버가 총관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고 총관 역시 그런 후버를 보고 마주 웃었다. 크럭스는 몰라도 최소한 총관의 후버에 대한 신임은 날이 갈수록 올라갔다.

이미 잠을 설친 크럭스와 공격을 받은 총관이 점차적으로 줄어가는 병사들에 대해 용병을 광고로 모집할 것을 요청했다.

“광고라… 오히려 그 방법이 나을 수도 있겠군.”

“적의 능력을 생각할 때 아무래도 적은 최소한 정규군 이상인 듯이 보입니다.”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크겠지… 혹시 예전 상단을 습격한 자 같지는 않던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외부로 상행 활동을 간 그때의 책임자를 불러 들여 용병을 뽑는 데에 활용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크럭스는 잊고 있었던 유일한 생존자였던 책임자에 대한 생각을 못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용병을 뽑을 때 이용한다면 확실히 위험한 인물을 걸러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생각이군, 그럼 살로스를 불러들이도록 하지. 그런데 그가 이곳에 돌아오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지 않은가?”

“마탑의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한다면 금방 이곳으로 불러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 삼 일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가?”

“이틀 안에 불러들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광고도 그쯤에 올리도록 하지. 위험한 인물이 들어오는 것보다는 그게 더 안전할 거야.”

크럭스의 말에 총관이 품속에 있던 수첩을 꺼내서는 짧게 지시 사항을 메모하였다.

“그런데 크럭스 님, 보고 드리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가?”

“이번에 새로 들어온 용병 중 마법사와 검사의 실력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들이 의심스럽다는 말인가?”

“아닙니다. 오히려 신뢰할 수 있는 자들인 것 같습니다. 마법사도 까다롭지 않고 잘 협조하고 검사의 실력 역시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의심스러운 것이 아닌가? 그들의 등급은 어느 정도이지?”

평소라면 크럭스의 말에 동의하였을 타이킨이지만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후버와 한스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기에 크럭스의 그런 의심에 대해 부정하였다.

“떠돌이 용병으로 둘의 등급은 마법사는 3서클 그리고 검사는 A등급 정도입니다. 믿을 만한 상대로 보입니다.”

타이킨이 둘을 변호하는 듯한 발언을 하자 크럭스는 그 둘에 대한 약간의 호기심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타이킨, 자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을 텐데 그 이유는 뭐지? 설마 목숨을 구해준 것 단 하나는 아니겠지?”

“의심의 눈으로 본다면 저 역시 실력이나 그들이 등장한 타이밍이 너무 적절해서 약간의 의심이 듭니다만.”

“계속 말해보게.”

“적에게 습격당할 때 후버란 자가 보여준 모습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검을 익힌 자가 석궁을 정확하게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 것입니다.”

“그렇지. 검만을 익히기도 빠듯한데 석궁은 그저 위협용일 뿐이지 매우 정밀한 사격을 하는 용도는 아니니깐 말일세.”

크럭스가 동의의 뜻으로 타이킨의 말을 받아주자 타이킨이 뒷말을 이었다.

“크럭스 님께서는 검을 익힌 자가 단 한 동작에 추격하는 매직미사일을 피하는 동시에 베어 버린다면 어느 정도의 실력으로 보이십니까?”

“최소한 소드 익스퍼트 중급 이상 그 정도쯤이 되겠지.”

“예, 이번에 상단을 습격한 인물들의 솜씨는 대략 그 정도였습니다. 그런 그들이 석궁을 매우 정밀하게 조준하여 쏠 정도의 궁술을 연마했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3~4명 정도가 말입니다.”

“그렇지, 한 명 정도라면 특이한 케이스겠지만 그건 힘들겠지… 그런데 그게 후버라는 자를 신뢰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가?”

“예, 만약 후버와 습격자가 서로 입을 맞추고 이번 공격에서 적들은 후버를 맞추지 않기 위해 저의 호출을 받고 달려온 병사들을 향해 석궁의 표적을 옮겼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후버가 석궁에 맞는다면 어렵게 상단 안으로 침입시킨 마법사의 생명이 위험했을 것이니까요.”

“병사들은 몇 사망했다고 보고를 받았는데 그들의 공격이 아닌가?”

“병사들이 사망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반대편에서 습격한 자들로 인해 습격을 받았습니다. 저를 습격한 인원과는 별 상관이 없는 인원들이었지요.”

“그럼 후버란 자가 위험을 무릎 쓰고 자네를 보호한 것 자체가 신뢰할 이유가 된다는 것이군.”

“그렇습니다. 특히 쉴드가 깨진 이후에도 후버란 자는 위축되는 것 없이 석궁에서 저를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 와중에서 화살 중 하나가 후버의 옆을 살짝 스치고는 제 머리 위의 땅에 박혔습니다. 그 한 발뿐만이 아니라 나머지 석궁의 화살 역시 저와 후버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 것으로 보아 습격자들이 모두 석궁을 상당 기간 훈련하지 않았다면 약간의 조준 실수만으로도 후버의 몸을 꿰뚫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습격자들의 검술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것으로 보아 석궁만을 전문적으로 익히지 않았다는 것이군.”

“예, 뿐만 아니라 습격에서 석궁을 사용한 자들은 이번 습격이나 얼마 전 습격이나 대부분 몸통을 노렸습니다. 만약 석궁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면 한 방에 절명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머리를 노렸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정황상 후버란 자를 믿을 만한 증거는 되는군, 한스라는 자는 무슨 이유로 그의 실력을 높이 평가하는 것인가?”

“한스란 자가 들고 있는 것은 흔하디흔한 철검이었습니다. 그 철검을 가지고 연달아 발사된 3발의 석궁을 동시에 막는 것과 병사들이 없는 오른쪽으로 화살을 흘렸습니다.”

“최소한 경험이 많기만 해서 용병의 등급이 된 자는 아니란 말이군.”

크럭스의 말대로 한스가 단순히 용병일의 경험이 많다는 것으로 승급을 했다면 한 번에 3발의 석궁을 동시에 막아내는 것은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석궁들이 모두 한스와 2m 덜어진 바닥에 박혀 있었습니다.”

“그것이 의도된 것이라고 보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3발 모두 깔끔하게 처내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동시라고 하지만 분명 석궁의 화살이 한스란 자의 검면에 닿는 데는 약간의 시간 차이가 있었을 것입니다.”

눈으로 잡아내기 힘든 차이일지 몰라도 석궁이 모두 동시에 도착했다는 것보다는 약간의 시간 차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했기에 크럭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력과 경험 둘 중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화살의 힘에 의해 첫 번째 한 발과 나머지 화살이 튕기는 방향이 모두 달랐을 것입니다. 순간적인 충격에 대비해서 일정한 각도를 유지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20여 년 이상 검술을 익히신 크럭스 님께서도 잘 아실 것입니다.”

타이킨의 말을 들은 크럭스는 자신은 과연 그런 동작이 가능한지 생각해 보았다. 일반적인 화살이면 모를까 기사의 풀 플레이트 메일도 꿰뚫는 석궁의 진로를 일정하게 바꾸는 것은 힘들 것 같았다.

“손목의 힘이 조금 강하다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괜한 자존심이 손상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은 크럭스는 타이킨의 말에 반박하듯이 대답하였다.

“예, 그렇습니다. 크럭스 님의 경지가 낮지 않은 만큼 한스라는 자의 경지가 낮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둘의 움직임이 수년간 서로 손발을 맞춘 듯이 보이는 것이 어딘가에서 양성되었다면 마법사와 검사가 그렇게 손발을 맞추는 경우는 흔치 않지 않습니까? 아마도 그들이 오랜 기간 동안 함께 방랑한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최소한 습격자들의 정체라고 추정되는 탈영병의 수준은 아닌 듯합니다.”

즉각적으로 대답하던 크럭스가 이번에는 장고에 들어갔다. 이 둘을 받아들인다면 일이 편해지겠지만 만약 이 둘이 적과 어떤 관계라도 있다면 오히려 일이 힘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야, 타이킨. 자네는 중요한 두 가지 포인트를 놓치고 있어. 둘이 함께 오랜 기간 방랑했다고 해도 최근 누군가의 의뢰로 이곳에 잠입하였을 가능성이 있지 않나?”

크럭스의 말에 타이킨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시간 손발을 맞춘 경험을 거짓으로 만들 수는 없어도 누군가의 의뢰를 받는 것은 언제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적중에 소드 익스퍼트 중급 이상으로 추정되는 존재가 있다면 그들을 단순한 탈영병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겠지. 그런 자들을 사용할 상대가 적이라면 후버나 한스 같은 자를 고용하는 것도 쉽겠지.”

그 말에 타이킨이 오히려 크럭스의 말대로 후버나 한스란 자가 누군가에 의해서 고용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에 설득되기 시작했다. 흥분이 다소 가라앉고 생각해 보니 자신을 구해준 것 외에는 크럭스의 말대로 의심해 볼 만한 요소가 다소 있기 때문이다.

“크럭스 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제가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좁은 시야를 넓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닐세, 자네의 말도 일리가 있어. 혹시라도 그들이 정말 실력이 있는 자라면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으니 말이야. 특히 운송에 필요한 인원은 늘어나는데 본국에서는 병사들을 파견해 주는 것이 계속해서 늦어지니 말일세. 일단 둘에 대해서는 살로스가 돌아올 때까지 평가를 유보하도록 하지. 아니면 그들에게 무언가 그들의 신분을 확인할 만한 과제를 내주는 것이 좋겠군.”

“일단 크럭스 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살로스가 돌라올 때까지 판단을 유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부탁하지. 둘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함께 용병대기소에 뒷돈을 줘서라도 둘이 과거 어떤 의뢰를 받았는지 알아보도록 하게나.”

“알겠습니다.”

크럭스에게 인사를 한 타이킨이 방밖으로 나가자 집무실에서 약간의 업무를 처리한 크럭스 역시 자신의 침실로 돌아갔다.

한밤중 타이킨과 크럭스는 둘만의 대화라고 생각했지만 둘의 대화에 참여하는 침묵의 동조자 한 마리는 둘의 대화를 모두 듣는 것은 물론 중요 사항을 기록해 두기까지 하였다. 아세타이트가 크럭스의 집무실에 던져두고 간 마나석을 통해 둘의 대화가 고스란히 슬렌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슬렌에게 전해진 상황은…….

“그자의 이름이 살로스였나?”

근무가 끝나고 숙소에서 통신구를 통해 모든 상황을 보고받던 후버가 통신구 너머의 슬렌에게 물었다.

“그런데 살로스가 주인님의 얼굴을 기억할까요?”

―글쎄… 어두웠기도 했고 가능성이 그리 크지는 않지만 위험 요소인 것은 확실한 것 같은데.

“그럼 어떻게 하지요?”

―살로스가 어디로 상행을 갔는지는 알 수 없는 건가?

“그건 내가 아니라 주인이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쉽게도 도청기는 크럭스의 사무실에만 있으니까요.”

―이건 답이 없는데 텔레포트 마법진이 가까운 것은 둘째치더라도 그들이 우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면 마탑에서부터 살로스의 호위를 누구에게 맡길지는 뻔하니까.

“아무래도 호위는 주인님과 한스가 맞지 않을까 해요.”

―그렇겠지, 그가 테스트를 하려 한다면 그것만큼 확실한 것은 없으니까.

“그럼 살로스는 반드시 이쪽 영지의 마탑의 텔레포트로 돌아오기 전에 처리해야겠네요…….”

―아니면 그가 나를 못 알아볼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어야겠지.

“총체적 난국이네요,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으니까요.”

―아니지, 죽이는 것은 안 되지만 살리는 것쯤이야 간단하지… 지금 상황은 여러모로 와일리 상단의 일손이 딸리는 상황이지 특히 와일리 상단에서 비밀을 요하는 일을 할 인원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깐.

“그렇죠, 주인님이 한둘을 죽인 것도 아니니까요.”

―그런데 살로스라는 자는 밖으로 돌렸단 말이지… 그게 의미하는 바가 뭘까?

“무슨 뜻인가요?”

―대충 며칠간 편제를 보니 상단 안에서 외부의 일을 하는 인물과 내부에 머무는 일물이 일정한 것을 알 수 있었단 말이야.

“그럼 살로스는 외부로 돌리는 인물이라는 건가요? 이렇게 일손이 부족한 시기에요.”

―사만다에게 이야기해서 살로스란 자에 대해서 완벽하게 조사하도록 기한은 하루밖에 없으니 다른 모든 일보다 최우선으로 하고 모든 사항은 선조치 후보고로 하도록 하기로 하고.

“네, 주인님. 그런데 저는 사만다 앞에서는 말을 못하는데요.”

―대충 네가 적어주고 바이스가 전해주면 되겠지. 아무래도 나나 한스는 감시를 받고 있으니 오랜 시간 이렇게 사일런스 마법을 사용하면서 통신을 하면 수상하게 여길 거야.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 말을 끝으로 후버는 통신을 종료하였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위해 약간의 소음을 만든 후버는 슬렌에게 전해 받은 사항을 정리하여 한스의 방으로 찾아갔다. 지금까지 알게 된 사항을 한스도 알아야 앞으로도 자연스럽게 용병 친구라는 설정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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