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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질 (21/37)
  • 입질

    ‘할 수 있어. 아자아자!’

    다소 경직된 표정으로 웃는 연습을 하는 사만다의 모습 오늘이 처음으로 아크바 상단주로서 와일리 상단을 방문하는 것이 사만다로서도 다소 부담스러웠던 탓이다.

    “상단주님께서 뵙고자 하십니다.”

    기별을 넣은 지 1시간 만에 허락된 만남이지만 사만다는 웃는 얼굴로 와일리 상단의 크럭스를 만나기 위해 그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이번에 레리하이트 상단과 아크바 상단을 흡수한 사만다라고 합니다.”

    “그렇군. 무슨 용무인가?”

    “이번에 제가 상단 두 개를 인수하긴 했지만 이곳에서의 저희 상단의 신인도가 그리 높지 않습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이곳을 경유하여 거래를 하기 위해서 이렇게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을 경유해서 거래를 한다고 하면…….”

    “부족한 신뢰도를 보충하기 위해서 이곳에서 저희 상단의 수표 발행을 부탁하려 합니다.”

    신생상단이 기존상단의 신인도를 이용하는 것은 그다지 흔한 일이었다. 신생 상단의 신뢰도를 믿을 수 없기에 신생 상단은 기존 상단에 금이나 귀금속을 맡겨두고 기존 상단의 이름으로 어음을 발행하여 거래를 원활히 하는 것은 일종의 관행이었고 동시에 기존 상단들에게 지불하는 권리금과 같은 성격을 하였다.

    그러한 권리금의 가치를 알아보고 시장을 선점한 상단이 와일리 상단이라는 것이 표면적으로 알려진 와일리 상단에 대한 평가였다.

    “그거야 어려울 것이 없지요 문제는 수수료인데…….”

    “발행하는 수표나 어음의 2%를 수수료로 지불하겠습니다.”

    2%라는 말에 크럭스는 잠시 자신의 손익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어음을 발행해주고 받는 수수료가 0.5% 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남는 장사였다.

    “얼마 정도의 금전을 거치 하고 어느 정도의 어음을 발행할 생각이십니까?”

    “금괴 500kg 정도를 맡기고 최대 그의 10배에서 20배까지의 어음을 발행하겠습니다. 단 15배를 넘는 시점에서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금괴가 500kg이라는 말에 크럭스의 태도가 처음의 심드렁한 상태에서 사만다에게 좀 더 집중하기 위해 상체를 숙인 자세로 바뀌었다.

    금괴 500kg 게다가 처음으로 이 지역에 들어온 상단의 금괴라면 분명히 깨끗한 금괴일 것이다. 상인으로서의 호기심과 자신이 맡은바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생각이 크럭스의 태도를 바꾼 것이다.

    “금괴는 이번에 제가 인수한 아크바 상단의 것이고 다른 방법으로는 준비금을 아티팩트로도 받아주신다면 15배까지 그리고 10배 수준이 된다면 미리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이거 생각보다 거물인데.’

    은영준 크럭스의 시선이 사만다의 위아래를 훑었다. 단정할 뿐 복장 자체에서는 자신이 처음 느꼈듯이 돈 냄새가 나지는 않았다.

    이런 경우 돈을 초월할 정도의 거부이거나 아니면 흔히 말하는 바지사장일 것이다. 이것을 알아보는 방법은 단 한 가지 협상의 조건을 흔들어보는 것뿐 생각을 정리한 크럭스가 슬며시 운을 띄웠다.

    “거래 자체는 어렵지 않소만 신생상단의 무엇을 믿고 그리 큰 금액을 받고 어음을 발행하겠소? 어음의 규모가 10배만 되어도 금괴로 5톤이오.”

    “그 정도가 맞을 것입니다.

    “그럼 대략적으로 일 년에 발생하는 수수료 만해도 금괴가 400kg 정도가 될 것이오. 통상 어음이 3개월 단위로 발행을 하니 그다지 계산이 박한 것은 아닐 것이오.”

    “그야 저도 그 정도의 수수료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럼 1분기 분의 수수료인 100kg의 금괴를 먼저 지불할 수 있겠소?”

    “그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저도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어떤 조건이 필요하시오?”

    “아티팩트를 준비금으로 받아주시면 1분기치가 아니라 2분기 치를 미리 드릴수도 있습니다.”

    사만다가 위축되는 기색이 없이 자신의 조건을 밝히자 오히려 크럭스가 다시금 생각에 잠겼지만 그 생각이 깊지는 않았다. 어차피 어음을 유통하여 상단의 부를 축적하는 형태이니 나쁜 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좋소. 아티팩트를 받아 주는 대신 2분기 어치의 수수료를 미리 받겠소. 대신 전체 수수료에서 10kg 만큼의 금괴는 제해주도록 하지.”

    선심을 쓰듯이 제시한 조건에 사만다가 만면에 미소를 짓고는 자신의 깃펜을 꺼내 들었다.

    “그러 계약서를 준비해 주시지요. 이견이 없다면 말씀 하신 대로 처리하겠습니다.”

    그 후, 크럭스와 사만다는 꼼꼼히 계약 상황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계약 기간은 앞으로 3년 쌍방의 이견이 없을 경우 계약은 자동으로 갱신되며 사만다 측은 수표의 발행금액이 준비금의 10배가 넘는 순간 크럭스에게 통보 후 충분한 준비금이 마련되도록 최선의 조취를 취해야 했다.

    계약서에 특별한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사만다가 먼저 사인을 하자 뒤이어 크럭스 역시 사인을 하는 것으로 계약을 마무리 지었다.

    “우선 오늘 안으로 사람을 통해서 금괴 500kg과 아티팩트로 200kg에 상응하는 양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어음을 작성할 용지는 총관이 챙겨줄 것입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출내기 상인을 대하는 자세에서 동등한 상대로 인정 한다는 듯이 크럭스가 먼저 고개를 숙여 보였고 사만다 역시 깊이 고개를 숙이며 서로 간의 예의를 표했다.

    사만다는 총관에게 들려 충분한 양의 어음용지를 받는 것으로 자신의 일을 마무리했다.

    은색실을 이용해 표를 마감 처리한 깔끔한 문양의 와일리 상단의 어음이 사만다의 손에 들어왔다.

    당장은 그저 손바닥만 한 종이에 지나지 않지만 앞으로 3개월 후 이 종이의 가치는 와일리 상단에게는 재앙이 그리고 후버와 사만다에게는 더없이 가치 있는 종이가 될 것이다.

    “총관 저 상단과 사만다라는 자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해주게.”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큰 거래를 이렇게 쉽게 하시는 것은…….”

    “계약이야 언제든지 파기할 수 있지만 저 정도의 거래규모를 가진 상단과의 거래가 쉽지 않은 것은 총관도 잘 알 터.”

    “그럼 지급으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빠른 것뿐만이 아니라 은밀하게도 부탁하겠네.”

    “알겠습니다. 크럭스 상주님.”

    총관의 말을 들어보니 자신이 너무 신중치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크럭스에게도 들었지만 일단은 점점 고갈되어 가는 정식 인장이 박힌 금괴 500kg이 주는 유혹이 크게 느껴지는 것은 크럭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후버 일행이 머물고 있는 작은 저택.

    난데없는 방문자로 인해 저택 안은 갑작스럽게 부산해 졌다. 사만다가 와일리 상단과의 계약 결과를 가져오기를 기다리던 기사들과 후버 등은 의관을 정제하고 왕의 사자라고 자신의 신분을 주장하는 자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위대하신 아스트라 국왕의 전언이다. 모두 예를 갖추도록.”

    척!

    기사들은 자신의 검을 뽑아 가슴에 대는 것으로 예를 표했고 후버는 스태프 위에 달린 마나석을 가슴에 가져다 대는 것으로 왕에 대한 예의를 표했으며 바이스는 그런 기사들의 뒤에서 조용히 무릎을 땅에 대고 있는 것으로 예를 표했다. 후버 일행이 예의를 갖춘 것을 확인한 왕의사자는 손에 들고 있던 두루마리를 펼쳐서 모두에게 읽어 주기 시작했다.

    “경들의 충정에 대해 높이 사고 훌륭하고 단호한 수행능력에 대해 사의를 표하는 바이다. 아직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나, 경들의 노력을 높이 사서 경들에게 비공식적인 진급을 약속하도록 하겠다. 아직 구체적으로 어떠한 지위인지에 대해서는 밝힐 수가 없으나 경들이 모든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공과의 계산에 반영하도록 하겠다. 당장은 경들에게 물질적인 보상인 금화 300골드를 내리는 것으로 약소하나마 보상을 대신 하고자 한다. 호명 받은 자들은 순차적으로 금화를 수령하도록.”

    왕의 사자라는 자의 약간의 공치사가 이어지고 후버부터 차근히 금화를 수령하였다.

    “마지막으로 슬렌 경은 나오시오.”

    잠시간 기사들 간의 의문의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 지붕 위에서 꼬리로 파리를 쫓으며 따분하게 기사들의 사열을 바라보던 슬렌의 몸이 날래게 지붕 아래로 내려왔다.

    “슬렌 경은 어디 있으시오?”

    야~옹.

    “이 고양이가 슬렌입니다.”

    후버의 낮은 목소리에 왕의 사자가 잠시 당황하기는 했지만 이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고양이에게 돈주머니를 건네려는 순간 다시금 얼굴에 당황의 표정이 나타났다.

    왕이 하사하는 물품을 동물의 아가리에 물릴 수는 없고 그렇다고 함부로 땅에 내려놓을 수도 없는 상황 왕의사자가 난감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때에 슬렌이 두 발로 서서는 기사들이 그렇듯이 한쪽 가슴에 자신의 앞발을 대는 것으로 간단하게 예를 표하고는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허… 참… 여기 있소 슬렌 경.”

    슬렌의 손 위에 돈주머니를 올려주자 슬렌은 주머니를 조이기 위해 달려있는 끈을 이용해서 목에 걸고는 다시금 예를 취하는 것으로 깔끔하게 예식 행사를 끝내었다.

    “국왕께서 다른 명령은 없으셨습니까?”

    “다른 말은 없으셨네. 그저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는 말을 꼭 전해 달라고 하셨네.”

    사자의 말에 슬쩍 후버가 주변을 둘러 았지만 그 말의 의미를 아는 이는 오직 슬렌뿐인지 왕의사자를 바라보는 기사들과는 다르게 슬렌만 후버를 바라보았다. 마치 무슨 말인지를 궁금해 하는 듯한 표정… 후버는 다시금 주변에 인재가 없는 자신의 상황을 탓하며 남모르게 한숨을 내뱉었다.

    “감사합니다.”

    “사만다 경은 언제쯤 돌아오는 것인가?”

    “저 역시 정확하게 알기는 힘듭니다.”

    “그럼 여기 국왕께서 내린 편지와 사만다 경에게 내리는 상금을 두고 가도록 하겠네. 틀림없이 전해주도록 해주게나.”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후버의 대답에 왕의사자는 후버 앞으로 온 한 장의 편지와 사만다에게 줄 300골드가 든 돈 주머니를 남기고 저택 밖으로 빠져나갔다.

    “인정받은 기분이 어떤가?”

    “아… 예.”

    기사들은 지금의 상황을 정리 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지 별 다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국왕께서 너희들을 주시하고 계시다. 그리고 벌이 아닌 상을 주셨지. 이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라고 생각 하는가? 아직도 불만을 가진 자가 있는가?”

    후버의 말에 모두가 잠시 동안 비록 사신을 통해서 이지만 왕에게 이름을 불리었다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후버의 말대로 국왕이 자신들을 주시하고 있는 것 이상의 보상은 없었다. 국가에 귀속된 기사에게 주군은 왕가 전체 특히 그중에서 왕을 보호하는 것이 그들의 업무인 만큼 왕에 대한 충성심은 다른 무엇과도 비할 바가 없었고 적지 않은 기사들이 국왕의 직접적인 하사품을 받기는커녕 평생 이름 한 번 왕에게서 간접적으로나마 불리는 경우 역시 매우 드물었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들의 이름을 왕이 기억하거나 정식적인 기록물로 남는다면 수세대에 거쳐 학자들에게 연구되면서 자신들의 이름이 높아질 기회가 생긴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은 자신들이 처리하는 일의 결과에 달린 것이었지만 그것으로도 기사들의 사기를 올리는 데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럼 왕께서 저희를 직접 살피신다는…….”

    “대충 그런 이야기이지.”

    심드렁한 후버의 말이었지만 기사들은 감격을 받은 듯 컨틀렛이 으스러져라 자신의 주먹을 강하게 조였다.

    “기사도 사람은 사람인가 보군 왕께서 직접 살펴 준다는 것에 이 정도로 감동을 받다니 말이야.”

    다소 불경스럽게 느껴질 만한 발언이지만 기사들은 그런 후버의 말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기사로서 왕에게 주시를 받는다는 감동이 어떤 것보다 큰 탓일 것이다.

    “이거 너무 공을 밝히는 것이 아닌가?”

    “그, 그렇지 않습니다.”

    “별로 그렇지 않아 보이는 게 아닌데 말이야.”

    후버의 말에 부인을 한 기사의 얼굴이 붉어졌다. 기사라면 누구나 명예를 추구하지만 그 사실을 대놓고 말하는 것은 터부시되기 때문이다.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기 위해 명예를 탐한다면 그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받기 힘든 행위로 치부되지만 만약 그 기저에 왕에 대한 충성심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명예를 얻게 된다면 이는 기사의 귀감으로서 여겨지게 되는 복잡한 명예의 성격상 기사들이 대놓고 명예를 탐하는 것은 기사의 명예를 깎아먹는 괜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저희는 명예를 추구하기 위해…….”

    “추구하는 거나? 탐하는 거나? 업어치나 매치나의 차이 아니겠어?”

    다시금 후버의 비아냥이 기사들에게 들렸지만 아무도 그 사실에 대해서는 반박하기 힘들다는 듯이 얼굴이 약간 빨개질 뿐 반론은 나오지 않았다. 컨틀렛을 사정없이 쥐어 얼굴만큼이나 붉어진 손바닥이 괜히 부끄러워진 까닭일 것이다.

    “그렇게 부끄러워할 것 있나? 기사도 사람인 것을 이번 일을 계기로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말라고.”

    후버가 말했듯이 기사도 사람인만큼 재물이나 명예 혹은 권력에 대해서는 욕구를 가지고 있고 왕국으로서는 기사들을 관리하는 방편으로 이를 인정함으로서 기사들의 사기를 높이고 충성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방책을 사용하고 있었다.

    “모두 주목.”

    평소의 불만가득한 표정이 아닌 또렷한 기사들의 눈이 후버를 향했다.

    “국왕께서 포상을 내려주시는 일이 기사에게 불명예스러운 일인가?”

    다시 한 번 비꼬듯이 이야기하는 후버의 목소리에 기사들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아닙니다!”

    아직 감동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탓인지 기사들의 목소리가 전에 없이 커졌다.

    “이 새끼들아 소리 낮춰 비밀인 거 벌써 까먹었냐?”

    한결 낮아진 목소리

    “아닙니다.”

    방금 전보다 다소 소곤하게 대답하는 기사의 눈빛에 후버의 눈치를 보는 기색이 확연하게 나타났다.

    “흠흠… 이제 말을 할 만한 조건이 되었군.”

    “예, 말씀하십쇼 후버 님.”

    “뭐 별거는 아니고… 앞으로 너희들에 대한 인사 고과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는데 말이지.”

    후버의 손에 한 묶음의 양피지가 팔랑거리며 기사들의 눈을 유혹했고 2명의 기사가 그 양피지의 흐름을 따라서 눈알을 또르르륵 굴렸다.

    “감히 상사가 말하는데 딴 생각하면서 눈알을 굴리는 게 두 명… 오늘 날짜가 언제더라…….”

    “6월 21일, 오후 5시입니다.”

    “좋군, 상급자의 작은 물음도 쉽게 넘기지 않는 자세가 좋아. 그러고 보니 제프 자네는 와일리 상단과의 충돌에서 내 명령에 따라 훌륭하게 적의 마법사를 처리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적 기사 중 4명의 목을 일검에 베어내고 적진 한가운데에서 두 명의 마법사를 쉴드 채로 베어 넘기는 검술의 실력은… 대략 소드익스퍼트 중급 이상의 실력이었지, 검을 잘 모르는 나도 그 정도는 알아볼 수 있네. 단 한마디의 명령에 적진의 한가운데로 뛰어 들어가는 용기 역시 기사의 귀감이야.”

    “제프가 언제?”

    옆에 서 있던 알렉스가 후버의 말에 궁금증을 표하자 대번에 제프의 고개가 알렉스를 향해 돌아갔다. 그리고 알렉스의 얼굴이 화끈해질 정도로 다른 기사들의 고개가 알렉스에게 향했다.

    “아! 그런 일이 없었던가? 그걸 잘못 본 거라면 스멧이 적의 기사를 생포하기 위해 검병만을 이용하여 2:1로 결투를 벌인 것이라던가, 세르파가 적을 최대한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해 적진을 둘로 가르는 지략을 사용 한 것 모두 내가 잘못 기억하는 것인가?

    이거 다시 한 번 저번의 전투에 대해서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겠군. 그런 나는 이만 생각하러 집무실로 들어가야겠군. 그러고 보니 바이스는 적군이 후미에서 우리를 감시하기 위해 추적에 특화된 어쌔신을 이용할 때 흔적을 지우고 그를 처리한 공이 있었다고 기억했는데 그게 다 사실이 아닌가 보군.”

    나무위에 올라가 있던 바이스마저 모습을 드러내고 알렉스의 허리춤, 풀 플레이트 메일의 상체와 하체를 이어주는 이음새 부분에 단도를 살짝 가져다 대었다.

    “아닙니다.”

    “목소리 줄이라니깐 알렉스 뭐가 아니라는 거지?”

    “후버 님께서 기억하시는 그것이 모두 사실입니다.”

    “흠… 정말인가? 그런데 기억에 따르면 자네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서 말이야.”

    “그건…….”

    기사들의 시선이 다시 알렉스를 향해 강하게 박혔다.

    “그건… 그래도 사실이 맞습니다.”

    “그런가? 그럼 그렇게 적어야겠군. 자네도 전투에 참가 했으니 자네가 한 역할에 대해서 곰곰이 집무실에서 창작… 아니, 생각을 해봐야겠군 이만 피곤하니 해산.”

    입꼬리를 한쪽으로 올리며 뒤돌아 집무실로 돌아가는 후버를 기사들이 깊이 허리를 숙이며 배웅하였다. 자신들의 공이 하나씩 생긴 기사들이었지만 기사들의 표정에 씁쓸함이 떠올랐다.

    ‘모두… 사실은 아니었나보군.’

    ‘그들도 우리처럼 조종당한 건가?’

    모두의 머릿속에는 어린 시절의 유치하고 과장된 언어로 기록된 기사의 이야기부터 차츰 나이가 들면서 접한 기사들의 기록들이 어떤 식으로든 과장되었다는 생각이 기사들의 머릿속에 동시에 들었다.

    그들은 환상과 동심을 잃는 대신 명예로 보상을 받았으나 당장의 씁쓸함이 쉬이 가시지는 않았다.

    ‘그래도 만약 나의 이야기가 후대에 전해져서 내가 그랬듯이 후대의 기사들이 나를 롤모델로 기사의 길을 걷는다면.’

    기사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공통된 생각 문자 그대로 역사가 만들어 지는 순간. 잠시간의 달콤한 상상에 빠졌지만 생각보다 역사의 한순간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 참 씁쓸하게 느껴지는 기사들이었다.

    과장을 좀 보태면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의 앞에서 사만다와 한 명의 상인이 마지막 주판알을 만지고 있었다.

    “금괴 30kg 정도의 가격에 모든 것을 넘기겠소. 그 이상은 나도 불가하오.”

    약간 비만한 체격의 사내가 물건들을 바라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판단에는 앞으로 크게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구매한 물건이건만 눈앞의 상품들은 점점 그 가치를 잃어가고 조금씩 물품의 대금을 결제해야 할 대금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 정도면 그다지 나쁘지는 않은 금액입니다만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군요.”

    “뭐가 그리 불만이란 말이오? 이미 판매가를 기준으로 60%나 할인된 금액이오. 상품의 운송비 등을 포함하면 나도 본전만 겨우 건지는 것을 사만다 상단주께서도 알지 않소?”

    다소 흥분한 음색으로 자신의 처지를 강변하는 남자의 모습에 사만다는 생각에 잠긴 척하며 상품들을 바라보았다.

    “뭐 그러시다면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무슨 조건이오? 운송이라면 댁의 상단까지 내가 해주도록 하겠소.”

    “운송은 필요 없습니다. 저희도 자체적으로 운송을 담당하는 조직이 있으니 그것보다는.”

    “무엇이오?”

    “어려운 사정을 감안하여 결제 대금의 70%는 어음으로 지불하겠습니다. 나머지는 금괴로 지불하도록 하지요. 단, 한 가지 조건을 걸도록 하겠습니다. 어음의 상환 시기는 3개월하고 3일 이후 그리고 사채시장에서 어음을 할인하여 파는 것은 금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음의 기간이 구체적인 것은 이해를 하겠습니다만 왜 할인하여 팔 수 없는 것입니까?”

    “저희가 신생상단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정도의 상품을 모두 여기서 소화할 수는 없으니 왕국 곳곳으로 운송하여 판매해야 하는데 최소한 2달 정도의 기간이 걸리지요 그런데 첫 상행을 마무리 짓기도 전에 저희 상단의 어음이 사채시장에서 거래된다면 저희 상단의 신인도가 떨어질 것입니다. 괜한 의심을 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말에 비만한 체형의 상인 역시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역시 처음 상행을 하던 시기가 있으니 사만다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 거래 사실 역시 비밀로 해야 하는 것이오?”

    “부탁드리겠습니다. 대신 골드로 총 상품 금액의 3%를 더 드리지요.”

    “그렇다면…….”

    다시금 상인이 주판알을 튕기기 시작했다. 냉큼 사채시장에서 할인 받아 어음을 판매하고 싶지만 잠깐의 기간 동안만 참으면 3%의 물품 가격을 더 쳐주는 것이니 자신이 손해 볼일은 전혀 없을 듯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겠소.”

    “계약서를 작성해 주시지요. 창고비로 물품 가액의 1%를 드리고 15일 안에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비만한 사내의 안색이 좀 더 밝아졌다. 이런저런 조건을 거는 사만다의 모습에 당연히 창고 보관비는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사만다가 창고 보관비 역시 챙겨주는 것이 기꺼운 탓이다.

    “여부가 있겠소. 어서 계약서를 마무리 짓도록 합시다. 이제보니 사만다 상단주 역시 마음이 통하는 분이구려.”

    “칭찬 감사합니다.”

    상인으로서 다른 상인을 칭찬하는 경우는 거래 상대방이 손해를 보는 경우뿐이니 사만다가 정말 상인이라면 그다지 기쁜 말은 아니지만 사만다 역시 예의상 그를 보고 웃어주었다.

    왕의 하사금이 내려온 이후로 사만다는 좀 더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기위한 박차를 가했고 벌써 이러한 거래를 1주일 사이에 10여 건을 처리 하고 있었다. 일반 상품을 취급하는 상단은 물론이고 아티팩트를 판매하는 상단까지 모든 일이 일사천리였다.

    일반상단으로부터 인수한 상품은 창고에 쌓아두고 일부를 판매하거나 판매하는 척 이곳저곳으로 운송하는 동시에 아티팩트들은 창고의 한 구석에 쌓아두고 나중 와일리 상단의 추가 준비금 요구에 응하기 위해 비축해두고 있었다.

    “다 되었소. 이곳에 사인만 하면 되오.”

    단순하게 본다면 물건을 사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러 저러한 조건을 걸 필요가 있는 사만다로서는 다소 피곤한 일인 것이 사실이었다.

    “예, 여기 있습니다.”

    서로 간의 계약서를 마지막으로 검토하고 사인을 한 사만다의 머릿속에 다음 행선지가 떠올랐다. 우선 구매한 아티팩트를 와일리 상단에 약간의 가짜 인장 금괴와 진짜 금괴를 섞어서 예치해 두고 다시 다른 상단과의 거래를 하는 하나의 동선이 그려졌다.

    이미 사만다가 보유한 창고는 포화 상태에 가까워 상단 근처에 새로운 창고를 짓는 한편 마탑과의 대량 거래를 통해 최대한의 물품을 소화시키고 있었다.

    저렴한 가격에 사서 다시 최소한의 이익만 보고 판매하는 것이기에 많은 돈은 벌 수가 없었지만 가짜금괴가 와일리 상단에 차곡차곡 쌓일 생각을 하니 뿌듯한 보람이 느껴졌다.

    지금 이 상단 역시 와일리 상단을 통해서 어음 거래를 하는 상단이니 후버가 마탑에서 공수해온 가짜 인장이 찍힌 금괴가 와일리 상단으로 더 몰릴 것이다.

    “돈 쓰는 게 이렇게 일이 될 줄은 몰랐네.”

    사만다는 계약을 마치고 지친 발걸음으로 상단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와일리 상단의 집무실.

    크럭스는 상단의 장부를 보며 이맛살을 구겼다.

    “빌어먹을 산적 놈들 결국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군.”

    요즘들어 크럭스의 얼굴에 웃음이 지어질 날이 없었다. 사라져 버린 기사와 마법사에 대한 조사를 위해 산적의 거래 요구에 응했지만 산적들은 자신들에게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훔친 몰건과 금괴를 교환했다.

    게다가 최근 여러 상단에서 들어오는 금에서 자신들이 유포한 가짜 인장이 찍힌 금괴의 비율이 너무 높게 유지되고 있었다.

    “요즘 우리가 시장에 풀어 넣은 금괴가 다시 우리 쪽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졌어. 이 사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딱히 누군가를 향한 물음이 아닌 혼잣말에 가까웠지만 가장 가까이 있던 총관이 그 질문에 대답을 하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죄송합니다. 저로서는 해법을 모르겠습니다.”

    “아니야 죄송할 것은 없어 모르는 것이 당연하지. 나 역시도 그 해법을 알 수가 없으니 이제 슬슬 상단의 위치를 옮기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나?”

    “그 역시도… 그래도 지속적으로 사만다라는 여자를 통해 적지 않은 금괴와 아티팩트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당장 다른 왕국에서 판매하여도 3배 이상은 남는 장사이니 만큼 그들이 아티팩트를 준비금으로 삼는 것이 끝날 때까지는 기다리시는 것이 더 나은 판단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말도 틀리지는 않지만 왠지 불안하단 말이야. 그들이 준비금으로 맡긴 금액이 금괴로 환산하면 어느 정도의 가치이지?”

    “대략적으로 아티팩트가 3톤의 금괴만큼의 가치가 있고 그리고 순수하게 금괴를 예치시킨 것은 1톤 정도의 양입니다.”

    “그런데 아직 2개월 동안 상환 요구를 받은 어음은 없고?”

    “지금으로서는 준비금을 추가로 예치할 때마다 그 양에 따라 수수료를 선취하고 있을 뿐 정확한 규모를 알 수는 없습니다. 딱히 어느 상단과 크게 거래를 한다는 이야기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아직은 상단의 내부적인 부분을 가다듬는 중인지 기존의 낡은 창고를 헐고 새로 짓거나 신규 창고를 건설하고 있다고 합니다.

    금괴 역시 창고를 부수게 되어 마땅히 보관할 곳이 없어 신뢰할 수 있는 우리 상단에 맡긴다는 것이 사만다 상단주의 설명입니다.”

    “그런데도 수수료를 먼저 낸다는 것인가? 그건 좀 이상하군. 다른 특별한 상황은 없나?”

    “아직은 없습니다. 주로 곡물을 거래하기 위해 커다란 창고를 짓고 있다는 정보와 기존 상단과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 기존 상단에서 처치 곤란한 물품을 적당히 웃돈을 주고 사서는 팔고 있다는 이야기는 뒤쪽의 소문으로 간간히 들릴 뿐입니다.”

    아직 특별한 상황은 없다는 자신의 심복의 말에 크럭스는 이러한 상태가 지속 된다면 자신이 새로 만들고 있는 지부가 안정될 때까지는 이곳의 사업을 접을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양곡을 거래하기에는 큰 금액이지만 현재 여러 왕국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기에 그저 대량으로 양곡을 구매하여 전쟁 중인 국가에 판매하거나 전쟁 중인 국가가 은밀히 양곡의 구매를 위해 세운 상단정도라는 판단이 들 뿐이었다.

    그들의 말을 전부 믿을 수는 없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최근의 골치 아픈 일들과 사만다로부터 나오는 이익이 적지 않기에 그 부분은 그냥 좋게 생각하기로 한 크럭스였다.

    “아직은 괜찮겠군. 수고했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문 밖으로 나가는 것으로 크럭스와의 독대를 끝낸 남자는 품 안에서 울리는 수정구 소리에 품을 뒤져서 수정구를 꺼내서 통신을 연결했다.

    “무슨 일인가?”

    ―어떤 노인이 총관님을 뵙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내가 만날 필요가 있는 사람인가?”

    ―그것이… 잘은 모르겠지만 노인의 분위기가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아무래도 마법사님이신 듯 보입니다.

    “마법사? 잠시만 기다려 보거라 그리고 그 노인 아니 마법사를 최대한 정중하게 대접하도록.”

    ―알겠습니다.

    “크럭스 님, 노마법사가 상단을 방문하였다 하여 제가 만나보고 오겠습니다.”

    “내가 갈 필요는 없는 것인가?”

    “부하의 보고로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크럭스 님께서 만나볼 자라면 제가 바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평상시에는 총관의 말대로 하는 것이 정석이겠으나 크럭스는 왠지 모르게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야… 내가 직접 가도록 하지. 마법사 그것도 늙은 마법사라면 낮은 수준은 아닐 테니.”

    “그럼 제가 모시겠습니다.”

    총관과 크럭스가 밀실을 빠져나가 상단의 창고 중 한 곳을 통해 노마법사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놀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이 상단을 책임지고 있는 크럭스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군. 나는 마탑의 아세타이트라고 하네.”

    아세타이트라는 말에 크럭스가 다시 한 번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마탑의 높은 분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내심 놀라는 마음과 함께 아세타이트가 자신의 상단을 방문한 것에 놀란 크럭스는 다시 한 번 마탑의 중요인물인 아세타이트의 모습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초상화와 비교해보았다. 다행히도 아세타이트의 모습은 초상화의 그 모습과 큰 차이가 없기에 정체를 확인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과례는 거두도록 하게나. 나는 상인으로서의 거래를 하기 위해 이곳에 오게 된 것이니.”

    “무슨 말씀이신지?”

    “자네에게도 나쁜 일은 아닐 것이야. 오히려 많은 이익을 주는 일이지. 요즘 마탑에 들어오는 어음 중에 자네 상단의 것이 많더군.”

    어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크럭스는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탑에서 어음을 회수해 갈 때 만약 가짜 인장이 사용된 금괴를 주었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처음 이곳에서 거래할 때는 대부분이 진짜 인장이 찍힌 금괴이니만큼 가짜와 진짜의 비율을 1:9로 섞어서 지불했지만 최근의 경우에는 3:7까지 그 비율이 올라갔기에 마탑에서 인장을 관리하였다면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예, 저희 상단이 다른 상단보다는 신뢰도가 높아 이러저러한 상단이 저희를 통해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혹시 상단의 어음 중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도 있으신지요?”

    은근슬쩍 어음의 핑계로 떠보며 눈앞의 마법사의 눈치를 살폈지만 마법사는 정말 문제가 없다는 듯이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닐세… 그런데 자네의 총관이라고 해도 외부인은 가능하면 이 이야기를 듣지 않기를 바라네만 둘이서만 독대를 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아세타이트의 말에 크럭스는 슬쩍 총관에게 눈짓을 통해 방 밖으로 나갈 것을 명령했고 총관 역시 자리를 피해주는 것으로 아세타이트의 지시를 따랐다.

    “고맙군. 사실 이 이야기는 마탑의 치부와 관계된 일인지라 쉽게 외부인에게 발설할 성격의 것이 아니네.”

    마탑의 치부와 관련된 일이라는 말에 크럭스의 후각에 강력한 돈 냄새가 느껴짐과 동시에 안심이 들었다. 상식적으로 자신이 유통한 금이 문제가 된다면 상단에 와서 치부라며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상단과 관련된 마탑의 치부라면 돈을 꿔주기를 원하는 것이든지 아니면 투자를 원하는 것이든지 어찌 되었건 나중에 상단에 큰 이익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저야말로 아세타이트 님의 심중을 헤아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흠… 이런 말이 실례인 줄 알지만 와일리 상단의 어음만을 많이 보았지 실제 규모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 하네 여러 상단을 두고 비교해본 결과 겉으로 드러난 부분에는 와일리 상단이 가장 적합하지만 만일의 경우가 있을 수 있으니 솔직하게 와일리 상단의 재정상태를 파악하게 도와줄 수는 없는가? 물론 여기서 듣는 것은 마탑의 원로를 제외하고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도록 하겠네.”

    “재정상태라 하심은?”

    “실제 금괴나 금화 등으로 지불 가능한 정도의 금액을 말하는 것이네 어음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말일세.”

    “어음을 제외하고 말씀하라 하시면 대략적으로 동원 가능한 금괴의 규모는 40톤 정도의 금괴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림짐작으로 와일리 상단이 가진 진짜 금괴를 어림한 크럭스가 아세타이트에게 상단의 재정상태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덧붙이기였다. 5분 간의 간략한 설명을 들은 아세타이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굉장한 규모이군… 아까도 말했지만 마탑의 치부이기에 다른 곳에서 이 사항을 발설해서는 안 되네 이것을 상인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는가?”

    “예, 아세타이트 님 맹세할 수 있습니다.”

    “고맙군. 이렇게 일방적으로 찾아온 것은 조만간 마탑에서 대규모로 아티팩트를 판매할 것이네.”

    “아티팩트를 말씀이십니까? 어느 정도의 양이나?”

    “어지간한 상단은 소화하기 힘들 정도의 양이네 자네의 상단이라고 해도 1년 정도를 꾸준히 투자해야지 판매가 가능할 정도의 양이지 그런 만큼 앞으로 1년간은 독점적으로 마탑의 마법 물품을 독점적으로 판매할 것이고.”

    “그것이 어째서 마탑의 치부가 되는 것입니까? 무지한 저에게 가르침을 주시면 감사히 받들겠습니다.”

    “흠흠, 마탑에서 아티팩트를 판매하는 것 자체는 치부가 아니지 문제는 외부에는 다른 이유로 공표되겠지만 이 아티팩트의 판매에 대해서 정확한 세금을 매기기 위해서 왕국차원에서의 거래에 대한 조사가 실시될 것이네.”

    “왕국 차원에서 말입니까?”

    왕국차원이라는 말에 크럭스의 머릿속에 경고 등이 반짝했다.

    “그렇네.”

    지금까지의 긴장된 분위기와 다르게 크럭스로 인해 팽팽하던 실이 살짝 느슨해지는 것을 아세타이트 역시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일이 저희 상단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왕국에서 아티팩트에 부과하는 세금은 알다시피 30~40% 수준이라네.”

    “그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의 세금을 내면 아무리 마탑이라고 해도 재정적으로 곤란할 수밖에 없다네.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거래되던 가격이 있는데 무작정 가격을 저렴하게 판매할 수도 없는 일이고 현 왕국의 왕이신 아스트라 님께서는 이번의 거래가격을 앞으로 마탑에서 아티팩트를 거래할 대마다 부과하는 세금의 기초 자료로 쓴다고 하니 마탑으로서도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상인인 자네가 더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하네.”

    “그렇지요…….”

    “서론은 이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면 국왕은 최고 가격으로 아티팩트를 판매하기 위해 경쟁 입찰 방법으로 판매할 것을 지시하였네. 만약 생각보다 높은 가격이 형성된다면 마탑으로서는 매우 불리한 일이 되겠지.”

    “그렇게 되겠지요.”

    적절한 추임새를 넣으며 크럭스가 말을 받자 아세 타이트는 빠르게 본론을 이야기하였다.

    “그래서 그렇게 세금을 내느니 차라리 적당한 상단을 물색해서 사전에 어느 정도의 가격에 판매할 것인가에 대해서 미리 정하고 물품가액의 15% 정도의 리베이트를 받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지 여기서 적당한 상단에 오른 여러 상단의 리스트 중에서 와일리 상단이 거론된 것이고.”

    “이해가 가는군요… 하지만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런 만큼 이득도 크지… 그래서 자네의 의중이 중요한 것이고 만약 이 제안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다른 상단에 같은 제안을 하도록 할 것이네 한 가지 정보를 더 주자면 경쟁 입찰이 시작되는 것은 앞으로 한 달 뒤 그래서 너무 많은 시간을 자네 상단에 할애할 수는 없네. 가부는 이 자리에서 결정해주었으면 좋겠군.”

    “만약 저희가 참여하게 된다면 아티팩트의 가격은 어느 정도로 생각하십니까?”

    “대략적으로 시중에 팔리는 가격의 절반 정도로 판매 할 생각을 하고 있네.”

    “게다가 대부분의 아티팩트가 실제 전투에서 많이 소모되는 물품을 중심으로 판매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상단이 취급하기에 가장 좋은 아티팩트들이지.”

    “저 역시 법을 위반하지 않는다면 참여하고 싶습니다만…….”

    “미안하네. 시간은 30분밖에 주지 못 하네 어떻게 할 것인가?”

    아세타이트의 최후통첩에 가까운 마감시간의 고지에 크럭스가 손익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아세타이트가 자신의 재정상태를 듣고 모든 설명을 해주었다면 재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태일 것이다. 게다가 바로 판매하면 하면 운송비 등을 생각하더라도 총 투자금의 30%가 넘는 이익이 생기고 전시 국가들에게 판매를 하면 대략적으로 50~100%의 순이익을 볼 수도 있는 것이 아티팩트였다.

    마침 사만다와의 거래를 통해 재정 상태는 평소보다 더 좋은 상태에 속했다. 5분여의 고민 끝에 크럭스가 결정을 내렸는지 아세타이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희 상단이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리베이트의 제공시 리베이트를 드리는 만큼의 금액을 경쟁 입찰가로 아티팩트를 구매할 수 있다는 약속도 얻을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아무래도 좀 곤란한 감이 있네.”

    “단기간에 많은 금전이 소모되는 일입니다. 저희 상단도 본업이 있기에 항상 어느 정도 이상의 금괴를 창고에 쌓아 두어야 합니다.”

    사실 마법사로서는 조금이라도 많이 그리고 빨리 금괴를 회수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만 일부러 뜸을 드리며 크럭스의 애를 태웠다.

    “마탑에 한 번 안건으로 넣어 보도록 하겠네.”

    “감사합니다.”

    “그럼 그 조건만 충족되면 거래를 하는 건가?”

    “예 제가 원하는 것은 리베이트의 제공 금액만큼 마법 물품을 구매하는 것 그것 하나뿐입니다.”

    “잘 생각했네. 마탑 역시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은 일이니 이렇게 한 번에 승낙의 말을 들으니 한시름 놓게 되는군. 자세한 상황은 한 달 정도 후에 전국에 동시에 공표될 것이네. 그때 자네는 참가 의사를 밝히고 경쟁 입찰 금액에 아무것도 기입하지 않는다면 나머지는 마탑에서 알아서 처리하도록 할 것이네.”

    “알겠습니다.”

    “그럼 나는 이만 마탑으로 돌아가도록 하겠네. 오늘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아무도 모르도록 해주었으면 좋겠군.”

    “살펴가도록 하십쇼. 만반의 준비를 해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경쟁 입찰이 끝난 후 보도록 하지.”

    아세타이트는 마법사답게 이런저런 계약서를 요구하지 않고 재빠르게 텔레포트 마법을 이용해서 원래 그 자리에 없던 것처럼 사라졌다.

    다음 날 후버의 집무실에는 미끼를 물었다는 짧은 서신이 남겨짐과 동시에 후버는 사만다를 호출하여 좀 더 열심을 다해서 어음을 발행할 것을 주문했다.

    그렇게 한 달은 마치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갔고 왕국에서 내려온 포고문이 모든 성의 광장에 내걸렸다. 상인에게는 다시없을 기회를 뜻하는 단 한 장의 포고문은 매우 짤막하였지만 왕국 전체를 뒤흔들기에 충분 하였다.

    최소 계약금 300kg 금괴 행정상의 이유로 금괴 외의 다른 담보물은 받지 않는다.

    금괴를 사용하는 이유는 상단의 신속한 지불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모든 거래는 국가가 관여할 것이며 금괴의 보관 역시 국가가 책임지며 거래상의 어떠한 불공정한 행위도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을 약속한다.

    계약금의 접수는 포고문이 성문 광장에 걸린 날부터 15일까지 유효함 최종 입찰은 경쟁 입찰이 될 것이다.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상단의 조직된 시기도 무엇도 조건에는 없었다. 오직 한 가지 조건 15일 안에 금괴를 계약금으로 납부하기만 하면 모든 상단이 참여 할 수 있다는 것에 소규모 상단끼리의 갑작스런 연합체가 결속되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상단은 독자적으로 계약금을 준비하기 위해 보유하고 있던 어음의 상환을 어음을 발행해준 상단들에 지급으로 지불 요청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가장 바쁜 것은 다름 아닌 와일리 상단 이었다. 기존 상단 역시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 최대한 어음의 지급을 유예하거나 더러는 파산을 선언하고 자신이 가진 금괴를 타 상단과 합쳐 필요한 금괴를 조달하기 시작했다. 일순간에 시장에 금괴수요는 급증하지만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 모든 일이 포고령이 붙은 주말을 기점으로 상단들이 공식적으로 영업을 하지 않는 2일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와일리 상단은 그 기간 동안 주변 비밀 장소에 숨겨둔 진짜 인장이 사용된 금괴를 회수하여 창고 안에 채워두는 것으로 대규모 인출 사태를 대비하였지만 준비가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총관은 아침부터 크럭스의 주위에서 현재 상황에 대한 보고를 하는 것으로 자신의 맡은바 소임을 다하였다.

    “영업시간이 시작되기 전부터 어음을 청구하기 위한 행렬이 저희 상단을 에워싸기 시작했습니다.”

    총관의 다급하고 호들갑스러운 말에 크럭스가 한 달 동안 하던 고민의 결정을 내릴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말간 혹시나 모를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비상사태를 위해 적립해 두었던 금괴까지 모두 털어 두었지만 마지막 결정만은 아직까지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왕국이 이번 경쟁 입찰에 관여한다는 정보를 아세타이트에게 들은 때부터 하던 고민인 과연 이 어음을 청구하는 자들에게 왕국의 인장이 정식적으로 찍힌 금괴를 내주어야 할지 아니면 평소처럼 인장이 위조된 금괴를 주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쉽게 결정이 나지 않았다.

    상단의 개점시간까지는 앞으로 1시간여가 남았지만 지금부터 창고를 열고 준비를 해야지 개점과 동시에 어음청구를 받는 영업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주변 상단들의 동태는 어떠한가?”

    “다행히 크럭스 님께서 퍼트려둔 소문 덕분에 상단들끼리의 연합을 시작했습니다.”

    “그럼 그 상단들은?”

    “연합을 맺고 최소한 필요한 금괴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청구를 보류할 생각으로 보입니다. 연합을 해서 계약금 조로 지불할 300kg 정도는 충분히 확보했다고 생각 하는 듯합니다.”

    “그건 다행이군.”

    크럭스가 나름대로 주말을 이용해 주변 군소상단이 연합해야 한다는 소문을 뿌려 청구 금액이 줄어들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적지 않은 금액일 것이다.

    상단 입구를 둘러싼 청구자들의 행렬만큼 크럭스의 고민역시 그 끝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마지막으로 크럭스는 총관에게 의견을 구하기로 했다. 현재로서 아세타이트와 자신의 약속 그리고 이 경쟁 입찰의 내막을 알고 있는 것은 그와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총관 어찌하는 것이 좋겠나?”

    “아세타이트 님께서 하신 약속은 확실한 것입니까?”

    “아세타이트 정도 되는 마법사가 허언을 하기 위해 상단을 방문하지는 않았겠지.”

    “그럼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방법을 말해 보게.”

    “우선 어음을 모두 수거한 뒤 서로 같은 금액과 거래 상대방을 가진 어음의 경우는 상쇄하여 거래를 마무리 지어주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진짜 금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가짜 인장이 찍힌 금괴를 내주었다가 저희가 의심을 받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우선 아세타이트와의 거래는 계속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두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나도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저들이 순순히 서로 간 상쇄를 통해서 거래를 마무리 지어줄까?”

    “저들이 요구하는 모든 금괴를 내주다가는 상단이 망해 버릴 수가 있습니다. 최소한의 마탑과의 거래를 위한 계약금으로 지급할 금괴를 제외하고 모든 금괴를 내주어야 합니다.

    물론 상쇄를 시켜도 금괴의 양이 모자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들도 지금의 상황을 생각하면 상쇄하는 것을 거절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당장에 청구되는 금괴만큼의 추가 준비금을 납부하라고 하신다면 저들 역시 거부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크럭스 역시 총관의 생각에 동의하고 싶었다. 따지고 보면 저곳에서 어음을 청구하는 자들의 대부분이 채권자임과 동시에 채무자인 상태 이 상황에서 모든 어음을 청산하다 망해버려 이 좋은 기회를 날릴 생각을 가진 상인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이기에 가능한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럼 우리가 아세타이트와 거래할 대금은 어떻게 치른다는 말인가?”

    “실무 협상을 핑계로 최대한 시간을 끄신다면 저들이 찾아간 금괴는 다시 상단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이번 입찰에서 승리한 것이 알려진다면 저들 모두가 우리 상단에 투자를 하기 위해 금덩이를 싸들고 올 것입니다.”

    총관의 정확한 지적에 크럭스의 안색이 밝아졌다. 총관의 말대로 입찰만 하면 금괴는 모두 와일리 상단이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상단주님께서 의연하게 요구하신다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는 못 할 것입니다.”

    “좋다. 상단의 문을 30분 일찍 열도록 하고 진짜 인장이 찍힌 금괴가 보관된 창고를 열도록 해라 남은 30분 동안 진짜 인장이 박힌 금괴의 뒤에 가짜 인장이 박힌 금괴를 쌓아 두어 와일리 상단의 지불 능력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준비하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총관이 황급히 허리를 숙이고 크럭스의 집무실 밖으로 뛰듯이 걸어 나갔다. 크럭스가 조금 더 빨리 결정을 내렸다면 시간의 여유가 있었겠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한 탓이었다.

    집무실 밖에서 일꾼들을 독려하는 총관의 목소리를 들으며 크럭스는 잠시 눈을 감았다.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대해서 최대한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몸의 긴장을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활을 사용하지 않는 동안에는 활시위를 활에 걸어두지 않듯이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하기 위해 잠시의 휴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크럭스가 집무실의 의사에 깊숙이 파묻혀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창고를 정리한 총관이 집무실에 들어와 모든 준비가 끝났음을 알렸고 크게 심호흡을 한 크럭스가 집무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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