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차 무력 충돌 (19/37)
  • 1차 무력 충돌

    후버의 걱정과는 다르게 와일리 상단 일행은 충실하게 후버의 뒤를 쫓고 있었다. 단지 어두운 밤에서의 흔적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아 속도가 느려지는 것일 뿐 차근차근 후버의 매복 지점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잠시 정지.”

    선두에서 무리를 이끌던 기사가 오른손을 높이 들면서 정지 신호를 보냈다.

    “기사님, 무슨 일이십니까?”

    “갑자기 바퀴의 자국이 깊게 파였다. 잠시 이곳에서 상황을 살핀다.”

    와일리 상단의 추적자들이 꾸준히 후버 일행을 추격한 덕에 후버가 마차를 무겁게 하고 되돌아온 끝 지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어두운 밤임에도 불구하고 기사의 눈썰미는 급격하게 깊어진 마차바퀴의 흔적을 구분 할 수 있었다.

    이 흔적에 대해서 기사가 어떤 식으로 판단하느냐에 따라 후버의 작전이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는 중요한 상황이었다.

    “뭔가 특이한 상황이 있는가?”

    “다른 특별한 상황을 발견 하지는 못했습니다.”

    한차례 주변을 정찰한 병사들이 특별히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다고 하자 기사는 자신이 직접 주변을 살펴보았다.

    “특별히 다른 점을 확인 할 수 없군…….”

    병사의 말대로 마차 바퀴 자국을 제외하고 다른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바퀴가 낸 자국이 깊어졌다는 것은 마차에 있는 화물이 증가 했다는 것을 뜻했다.

    점차 얕아지는 흔적을 보며 추적에 곤란을 격던 기사에게 깊은 바퀴의 자국은 희소식 이었지만 동시에 큰 의문점이기도 했다. 기사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때 숲의 초입에서 처음 바퀴자국을 발견한 병사가 기사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기사님, 제가 전쟁에서 보급 부대를 했을 때 이렇게 마차의 바퀴 자국이 두꺼워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갑자기 마차에 실린 물품이 무거워질 리는 없지 않은가?”

    “종종 보급품을 운반하면 전장을 이탈하거나 부상 입은 병사를 마차에 태우면 이렇게 바퀴자국이 깊어지곤 했습니다.”

    “사람이 증가했다라… 그럼 이곳에서 산적들의 공범과 합류했을 수가 있겠군.”

    그 말에 병사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그럼 지금까지 마차 바퀴의 자국이 얕아진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지?”

    “그건 아무래도 산의 초입과는 다르게 바닥이 딱딱해지고 물기가 없어지기에 그런 일이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희 마차의 바퀴자국 역시 그렇지 않습니까?”

    기사가 처음 자신의 마차가 만들어낸 바퀴 자국을 떠올리자 병사의 생각이 일리가 있어 보였다. 정도는 다를지 몰라도 자신의 바퀴 자국도 점점 더 얕아 졌다는 것이 떠오른 것이다.

    “그렇다면 적의 산채가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마법사님에게 말씀 드리는 것이 어떨는지요?”

    병사의 말에 얀센이 마법사가 타고 있는 마차의 문을 두드리고는 현재까지의 상황을 보고 하였다.

    “그렇다면 마차 바퀴의 자국 외에는 어느 흔적도 발견 할 수 없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럼 이 근처에서 적의 발자국은 있었는가?”

    기사가 잠시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마차 바퀴가 깊어진 지점부터 어떠한 형태의 발자국도 찾기 힘들었다.

    ‘이건 좀 이상하군.’

    “잠깐 다시 병사들은 주변의 발자국을 찾도록 사람뿐만이 아니라 말의 발자국도 같이 찾도록 하도록!”

    얀센의 외침에 병사들이 주변의 말의 발자국을 비롯하여 여러 발자국을 찾았다.

    “저 기사님 발자국은 보이지 않지만 말의 발자국은 희미해서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병사중 한 병이 얀센에게 정리해서 보고하자 얀센은 그 사실을 다시 마법사에게 알렸다.

    “마차 바퀴의 자국은 남아 있지만 발자국이나 말의 발자국은 확실 하지 않다는 건가?”

    흥미를 느낀 마법사가 마차 밖으로 나와서는 얀센에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바퀴의 자국은 분명하지만 말의 발자국은 무언가가 위를 쓸고 간 듯이 형체가 모호해서 확신 할 수가 없지만 간격과 크기로 보아 말의 발자국으로 보입니다.”

    “멍청한 놈들이군.”

    “무슨 뜻이십니까?”

    “아마도 놈들은 자신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막대 같은 것을 마차 뒤에다 묶고는 마차를 운전했을 거야.”

    “그렇다면 제법 머리를 쓴 것이 아닙니까?”

    그 말에 마법사가 쯧쯧쯧 하고 혀를 찾다.

    “그러니 멍청한 것이 아닌가? 아마도 막대의 크기를 마차에 보관하기 위해서 잘라냈을 테지 자네도 마차의 모양을 보면 알겠지만 바퀴의 폭보다는 사람이 탑승하는 마차의 폭이 더 좁지 않은가?”

    그 말에 잠시 마차를 바라본 기사는 알겠다는 듯이 약간의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래서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는 마차 외부에 막대를 걸어서 보관한다던가 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데 이 멍청한 놈들은 마차 안에 보관 할 정도의 크기로 잘라 보린 듯 하구만.”

    “그렇군요. 그럼 저들이 지금까지는 말의 발자국을 숨기지 않다가 지금 와서 숨기기 위해 노력한 이유는 혹시?”

    “놈들의 본거지가 이 근처에 있다는 것이겠지.”

    마법사가 자신의 통찰력을 자랑하듯이 으쓱한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자 얀센은 그런 마법사의 통찰에 감탄 하였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역시 마법사님의 혜안은 대단하십니다.”

    후버로서는 단순히 말의 발자국이 역방향으로 남은 것을 수상히 여길까봐 급조해서 흔적을 가린 것이지만 마법사로 인해 재창조된 사실은 무식한 산적의 단순성을 보여주는 듯하여서 기사나 병사들에게 좀 더 설득력이 있었다.

    “뭐 그 정도야, 당연한 것이지.”

    “그럼 마법사님 마차에 오르시면 추적을 서두르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마차의 승차감이 안 좋아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부탁하겠네.”

    마법사가 마차 안으로 들어가자 얀센이 목소리를 높혔다.

    “모두 마차에 탑승하라 전속력으로 적의 흔적을 쫓는다.”

    “옙.”

    다시금 와일리 상단의 추적자들을 태운 마차가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희미해져가던 마차 바퀴의 자국과 다른 마차의 흔적이 섞여 점점 추격하기가 힘들어지던 참에 깊이 파인 마차의 자국은 추적을 쉽게 해주는 요소였고 운이 따라준다면 산적을 일망타진하여 상단주에게 상을 받을 수도 있는 기회인만큼 기사의 채찍질에 힘이 실렸다.

    “적이 접근한다. 모두 긴장감을 끌어올려라.”

    후버의 말에 숲 양쪽에서 매복하던 기사들이 양발에 신고 있는 부츠의 뒷굽을 부딪혀 작은 소리를 냈다. 명령이 정확하게 전달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뒷굽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은 후버 역시 긴장감을 높이고 수정구를 주시했다.

    대략적인 거리는 2km 남짓 시시각각 거리가 좁혀지는 모습을 보며 후버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후버의 기대보다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히는 마차의 속도에 자신이 생각하는 작전이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든 탓이다.

    어느새 후버와 마차의 거리는 한밤중 수정구가 보여줄 수 있는 거리의 한계인 2km에서 500m까지 가까워졌다.

    400m…….

    300m…….

    마차의 속도는 여전히 후버가 기대하던 속도보다 빠르게 후버를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100m 이제 후버의 육안에도 확인될 정도로 가까워진 마차의 모습.

    50m…….

    티잉~

    ‘됐군.’

    줄의 장력이 충분 하지는 못했는지 줄이 끊어지는 소리가 후버의 귀에 들려왔다. 어차피 미스릴 같은 특수한 금속을 이용한 것이 아닌 활시위를 만드는데 사용하는 탄성이 강한 줄을 여러 겹 꼬아 사용한 만큼 줄 자체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란 기대는 후버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마차를 끌던 말의 한 걸음만 앞으로 못 디디도록 하는 정도면 충분했다.

    와지끈!

    단 한 걸음의 차이지만 말이 정확하게 한 걸음을 디딘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너무나 컸다.

    말이 다리를 접질림에 따라 선두의 마차 역시 한쪽으로 기울여지며 바닥과 측면이 충돌했다.

    일반 병사와 같이 가벼운 무장을 한 경우라면 몰라도 풀 플레이트 아머를 두른 기사들은 분명히 목이 부러지던가 어느 한 곳은 부러졌을 것이다.

    문제는 후미에 있던 마차였다.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해서인지 선두의 마차와는 다르게 급격히 속도를 줄이는 말을 모는 병사의 숙련된 손길에 가까스로 선두의 마차 바로 앞에서 마차를 멈출 수 있었다.

    ―디텍트 마나.

    후버의 디텍트 마나 마법이 후미의 마차를 감쌌다. 상대가 후버보다 높은 서클의 마법사라면 후버의 마법을 느낄 수 있기에 다소 긴장하고 있던 후버지만 다행히 상대의 서클은 3서클 수준.

    가장 좋은 것은 마법사가 선두의 마차에 타고 있다가 목숨을 잃는 것이지만 아쉽게도 후미의 마차를 조정하는 병사의 마차를 모는 기술이 좋았던지 바라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정도만 되어도 만족할 만했다.

    ―모두 후미의 마차 입구를 겨냥한다. 마법사는 그곳에 있다.

    다시금 5쌍의 눈이 후미의 마차로 집중 되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해서 마차 밖으로 나오는 병사와 기사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마법사로 보이는 자는 마차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편재를 갖추지 않고 나오다니… 설마 내가 사용한 디텍트 마법도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마법사의 부상이 심한 것인가?’

    마법사가 디텍트 마나를 느꼈다면 설사 본인이 공격 마법을 사용하기 힘들다고 해도 병사나 기사들에게 후버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편재도 갖추지 않고 아무렇게나 나오는 기사와 병사들의 모습을 보아서 마법사는 아무런 경고도 해주지 않은 듯하였다.

    혹시라도 마차가 급정거할 때 마법사의 몸에 뭔가 큰 이상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고 후버가 안심하는 찰나 마차 안에서 마나의 파동이 느껴졌다.

    ―디텍트 이블이다. 매복은 발각되었다. 모두 내가 신호하는 순간 기사를 타깃으로 석궁 각 2발씩 속사로 발사한다.

    ―그리스.

    기사들이 후버가 말하는 신호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때 3명의 와일리 상단의 기사 중 2명의 다리에서 밝은 빛이 잠시 생겼다.

    기사들의 부츠에 기본적으로 사용된 안티 그리스 마법이 후버의 그리스 마법에 반응해서 약간의 빛을 뿌리며 기사 주변의 그리스 마법을 디스펠해 버린 것이다.

    직감적으로 후버가 보낸 신호라고 판단한 기사들은 장전된 석궁을 두 명의 기사에게 집중해서 발사했다.

    팅!

    곡면에 맞은 화살은 풀 플레이트 메일을 뚫지 못하였지만 평평한 곳에 맞은 석궁은 당연한 수순으로 두 기사의 풀 플레이트 메일을 뚫고 몸 이곳저곳에 박혔고 후버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석궁을 이용해 타깃팅되지 않은 한 명의 기사를 향해 석궁을 발사했다.

    방어가 가장 까다로운 발 부분부터 시작해서 검을 쥐고 있는 오른쪽 팔꿈치, 마지막으로 복부에 각 1발의 석궁을 받아낸 기사는 그대로 바닥으로 몸을 쓰러트렸다.

    “적이다!!!!”

    뒤늦은 한 병사의 외침이 정적을 걷어냈지만 병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병사들은 후버의 지시에 따라 한 발, 한 발의 화살을 몸으로 받아 낼 뿐이었다. 기사와는 다르게 병사들이 석궁의 빠른 속도에 반응 하는 것은 무리였다.

    ―파이어 볼!

    아직까지도 마차 안에서 밖으로 나오지 않는 마법사를 마차 밖으로 빼내기 위해 후버가 마차를 향해 파이어 볼을 날렸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마법사가 수정구를 이용해 와일리 상단과의 통신을 하는 것 그것만은 막을 필요가 있었다.

    쾅!

    마차의 측면에 충돌하여 강력한 화염을 뿜어내는 파이어 볼의 위력에 쉴드를 두른 마법사가 양손을 올리고 마차 밖으로 뛰쳐나왔다.

    “공격하지 마시오! 항복하겠소.”

    다급한 마법사의 외침과 함께 기사들이 마법사를 향해 뛰었고 순식간에 마법사와 기사의 거리가 좁혀졌다. 아무리 마법사가 항복의 뜻으로 양손을 들고 있다고 해도 마법사에게 거리를 주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지 모르는 기사는 이 중에 없었다.

    “제프 마법사의 스태프를 빼앗고 양손을 결박하라!”

    후버의 지시에 기사 중 한 명이 마법사의 손에 들린 스태프를 빼앗고는 양손을 결박하여 무릎을 꿇렸다.

    “제프를 제외한 나머지는 선두의 마차를 확인하고 생존자가 있다면 확인 사살 하도록 하라. 단, 한 명의 생존자는 내 앞으로 데러 오도록.”

    후버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흩어진 기사들이 선두 마차의 측면을 떼어내고는 혹시 모를 생존자들에게 한 번씩 검을 이용해 확인 사살을 하였다.

    후버의 예상대로 무거운 풀 플레이트를 입은 기사들은 모두 목이 꺾여 사망하였지만 병사 중 몇몇은 기절을 했을 뿐 아직은 생존해 있었기에 기사들의 검이 찔릴 때마다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느 곳의 소속이기에 우리의 뒤를 쫓는 것이지?”

    장내를 정리한 기사와 후버가 마법사를 빙 둘러싸고 심문을 하기 시작했다.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이지만 후버는 마법사의 대답 하나하나를 천천히 곱씹으며 마법사를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고민 하였다.

    “저는 와일리 상단 소속입니다. 상단주 크럭스의 지시를 받고 행동한 것입니다.”

    “와일리 상단이라면 우리에게 물건이 털렸던…….”

    “예, 그렇습니다. 물건을 회수하는 것의 목적이었을 뿐 여러분을 해할 의도는 없었습니다.”

    “하하하~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가 너희들이 우리를 추적해서 물품을 달라고 하면 네! 가져가세요! 라고 주지도 않을 텐데 결국은 둘 중 하나는 죽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 말에 마법사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면 변명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의 목적은 그저 위저드 마크를 추적해서 상단의 물건이 숨겨진 곳을 알아내는 것이 목표였을 뿐입니다.”

    “흐음… 그러니깐 악감정은 없었다. 이 말이군. 그런데 우리가 있는 곳은 어떻게 알았지?”

    “그건…….”

    “군용 통신구가 최하급 마나석을 이용해서 통신할 수 있는 거리가 30km 정도라는 건 상식이까 그걸 이용했을 테지… 그래 상단주는 우리가 탈영병이란 것을 믿던가?”

    후버의 말에 마법사의 표정에서 낭패한 빛이 어렸다. 처음부터 자신들의 추적을 염두에 둔 설정이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친 탓이다.

    게다가 이런 계획이 산적 중 마법사에게 나왔다면 그 이후의 조치 역시 모두 계획되었다고 짐작했다. 기사와 병사들이 힘을 못 쓰고 목숨을 잃은 것도 처음부터 모두 계획되었다는 생각에 마법사는 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을 받았다. 마법사의 오해가 깊어지려는 순간 후버가 마법사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사실 우리가 너희들을 공격할 생각은 없었어. 하지만 작전이 바뀐 거지… 그리고 바뀐 작전 덕분에 너와 저 병사가 살아날 기회가 생겼는데 어떻게 하겠나? 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둘의 목숨은 살려 주도록 하지.”

    “제안이라 하시면?”

    마법사의 귀에는 저런 말 역시 무언가 다른 것을 예비한 거짓 허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버가 생각하지 못한 효과지만 마법사는 그저 포로로 잡힌 상태보다 심리적으로 더 위축되었다.

    “간단해 너는 상단주와 통신을 할 수 있는 통신용 수정구를 가지고 있겠지?”

    “예, 가지고 있습니다.”

    “좋군, 너는 상단주에게 우리가 탈영병이고 총 숫자는 30명 정도라는 내용으로 통신을 보내도록 하고 다른 병사와 기사는 우리의 기습으로 목숨을 잃었지만 너는 살아남아서 우리들이 있는 은신처를 발견했다는 내용으로 통신을 보내도록 상단주가 그 말을 믿는다면 너를 살려 주도록 하지.”

    “저만 살아남았다는 것을 크럭스 상단주님께서 믿지 않으실 겁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분위기는 내가 만들어 줄 테니까 마지막으로 상단주와 통신을 한 것이 언제지?”

    “대략 1시간 정도 전입니다.”

    “그래? 제프 이 마법사를 잠깐 시야가 미치지 않는 곳으로 안내해 주도록.”

    제프와 마법사가 멀어진 것을 확인한 후버는 품 안에 든 군용 수정구를 다시금 꺼내 들고는 상단주의 통신구에 연결을 하고는 다짜고짜 크럭스에게 고함을 질렀다.

    “이봐. 이건 경우가 아니지 않아? 앞으로는 협상을 하자면서 뒤로는 병사를 보내다니.”

    ―그… 그게 무슨 소리인가?

    침착함을 가정했지만 통신구 너머의 상단주의 목소리에 약간의 떨림이 느껴졌다.

    “무슨 소리긴! 끝까지 그렇게 의뭉떨 건가? 기사만 5명이나 우리에게 보내놓고는 무슨 소리인지 모른단 말인가?!”

    ―그게 무슨 말인가? 나는 자네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기사를 보낸단 말인가?

    “흥! 개자식 끝까지 딴소리군! 원래 상인이란 새끼들이 이런 식이지 직접 볼 수 있도록 도와주지.”

    후버는 크럭스의 속을 뒤집는 말을 한마디 하고는 수정구를 조작하여 음성 전송에서 영상까지 전송이 가능 하도록 설정을 바꾸었다.

    아직도 밝게 타오르는 마차 불빛으로 인해 대략적인 현장의 상황이 수정구를 통해 크럭스 에게도 전해졌다. 뒤집혀진 마차와 온몸에 화살을 꼽고 쓰려진 기사와 병사들의 모습에 크럭스는 분노를 느꼈지만 이내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무신경하게 대답했다.

    ―이게 뭐 어쨌다는 건가? 어디 다른 곳이라도 또 털어 먹은 건가? 괜한 트집으로 협상하는 금액을 올리려는 시도는 안 했으면 좋겠군.

    전후 사정을 몰랐다면 정말 크럭스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크럭스의 목소리는 완전히 평정을 찾은 듯했다.

    “뻔뻔하군. 상품을 돌려주는 것은 없던 일로 하겠다. 이제 더 이상 연락하지 말도록 기사들이 입고 있던 풀 플레이트 메일만 가져다가 팔아도 그 정도 돈은 충분히 구할 수도 있으니깐 아무튼 장사치 새끼들은 근본이 없어 근본이 빌어먹을 새끼들.”

    후버는 수정구를 바닥으로 던져서 깨버렸다. 적당히 화를 돋우고는 교섭을 결렬하여 크럭스를 도발했으니 대략적인 조건은 갖추어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마법사가 얼마나 연기를 잘 해주냐에 달려 있었다.

    “마법사를 다시 데리고 오도록.”

    후버의 지시에 따라 마법사가 다시 후버의 앞에 무릎이 꿇려졌다.

    “분위기는 만들어졌다. 이제 너에게 달렸다. 아까 내가 말한 대로 한다면 너를 살려 주도록 하지 하지만 그전에 한 가지 더 해주어야 할 일이 있어.”

    “그것이 무엇입니까?”

    “어렵지 않은 일이야. 저기 저쪽에 정신을 잃은 병사가 보이지? 그와 운명 공동체가 된다는 마나의 맹세를 해줘야겠어. 허튼소리를 하면 그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져야 하니깐 나도 마법사라서 알고 있지 마법사의 입은 너무 빨라서 막을 수가 없거든.”

    “그건…….”

    “아니면 저 녀석을 깨워서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 어느 쪽으로 할 텐가?”

    지금의 상황에서 쓸모가 없어진다면 상대적으로 다루기 힘든 마법사의 가치가 바닥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아는 마법사는 주저 없이 후버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일단은 사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겠소.”

    “잘 생각 했어. 누구나 목숨은 소중한 거야. 괜한 수작을 부리지는 않기를 바라네.”

    10여 분간 마나의 맹세를 마친 마법사는 지쳤는지 한동안 축 늘어져서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기를 20여 분 겨우 몸을 추스른 마법사는 후버가 전해주는 수정구를 받아서 크럭스와의 통신을 시도했다.

    마법사가 크럭스와의 통신을 시도하자 후버의 무리 중 한 명이 기절한 병사의 목울대 위에 당장 검을 박아 넣을 듯한 자세를 취했다.

    기사의 손에 조금의 힘이라도 들어가면 마법사의 목도 병사의 목과 같이 몸통과 분리될 것이란 것을 마법사 역시 모르지 않았다.

    “상단주님 사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지? 방금 전에 그 빌어먹을 산적 놈과 통신을 했소. 그의 말이 사실인가? 모두 산적 놈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인가?

    후버와 통신할 때와는 다르게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크럭스의 목소리가 적막한 관도를 시끄럽게 만들었다.

    “목소리를 낮추어 주십쇼. 저희가 적을 너무 과소평가 했습니다. 마법사가 포함되어 있을 때 알아차려야 했습니다. 제가 확인하기에는 산적의 수는 2서클 마법사 한 명을 포함해서 약 30여 명 정도입니다.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상단주님… 그냥 물품은 잊어 버렸다고 생각하고 포기하셨으면 합니다.”

    ―포기하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제가 지금 있는 곳이 적의 본거지 근처입니다. 상단주님의 짐작대로 저들은 탈영병으로 보입니다. 일반적인 산적 나부랭이랑 똑같이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순간적인 기습으로 인해서 기사나 병사가 별 힘을 쓰지 못했다고 하지만 그 정도의 지휘 통제능력은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살아 있는 건가?

    상단주의 질문이 핵심을 찔러오자 마법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만약 상단주가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면 눈앞에 있는 자가 자신을 죽일 수도 있는 것이다. 혀를 움직여 입술을 축인 마법사가 비통하다는 듯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저는 본대와 상당한 거리가 떨어져 있어서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얀센 기사의 부탁으로 하늘에서 산적들의 흔적을 찾던 중 제가 없는 사이에 기습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병사나 기사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단 말인가?

    책망과 경멸이 섞인 말에 마법사의 목이 움츠러들었다. 차라리 자신이 개입하기 힘든 상황이라면 몰라도 실제로는 마법 한 번 써보고는 사로잡힌 자신이 한심한 탓이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고… 플라이 마법 중에 공격 마법을 쓰는 더블 캐스팅은 저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마법사의 말에 크럭스가 대략적인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얀센의 부탁으로 하늘 위에 있는 마법사를 탈영병들이 눈치채지 못했고 마법사 역시 플라이 마법을 사용 하느라 전투에 개입할 수는 없었다.

    30명의 적이 쏜 화살에 말과 마차가 쓰러지면 대응 할 틈이 없었을 것이다.

    ―현재 위치가 어디지?

    “상단에서 동쪽으로 10km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적이 30명인 것은 확실한가?

    “30명 정도로 보입니다. 적의 숙영지에는 5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군용 천막이 6개 정도 있습니다. 마법사와 무리를 이끄는 리더가 하나씩의 천막을 사용한다면 수는 20명 내외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마법사의 수준이 고작 2서클이라면 3서클인 자네 혼자서도 충분히 적의 마법사는 처리할 수 있지 않나?

    “그건 그렇습니다만 저는 현재 마나가 고갈된 상태이기에…….”

    마법사가 부끄럽다는 듯이 뒷말을 흐리자 크럭스는 대충 마법사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전투의 시작부터 끝까지 플라이 마법을 통해서 몸을 숨기고 적이 본대에 복귀할 때까지 적을 추적했다면 마법사의 마나가 고갈 된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 3서클인 젠슨과 함께 처리한다면 충분할 것 같은데.

    “그건… 그렇습니다만…….”

    크럭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적막감이 드는 산속에 무거운 침묵이 이어진지 5분여가 지났을까? 통신구에서 다시 크럭스의 목소리가 울렸다.

    ―젠슨과 병사 20명 기사 5명을 보내도록 하지. 이건 더 이상 이익과 손실의 문제가 아니야. 그 빌어먹을 산적 놈들!

    분노가 느껴지는 크럭스의 목소리

    “아… 알겠습니다. 상단주님 제가 마나를 회복하는 대로 정확한 위치를 전송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부탁하지.

    상단주가 통신구의 연결을 끊자 긴장감이 풀린 마법사는 크게 한숨을 쉬고는 후버를 바라보았다.

    “고맙군. 하지만 이제 상단의 병사들을 적당한 곳으로 유인해줘야 하니 너무 긴장을 풀지는 말아줬으면 좋겠다.”

    후버가 이번엔 장전된 석궁을 기절해 있는 병사의 머리에 겨누고 말하자 마법사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적극적으로 협력할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슬렌, 현재 상황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어요. 병사들도 정렬 하고 있구요. 대충 30명은 될 것 같은데요.

    “30명이라 쉽지 않겠어. 마법사도 포함이 되어 있나?”

    ―예, 마법사 한 명도 포함되어 있어요.

    “이제 상단을 지키는 인물은 확실히 줄어들었겠군. 바이스, 목표로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응, 바이스가 가능하대요. 마법사가 가장 문제였는데 마법사만 없어졌으니 충분히 가능하대요.

    “그럼 끝까지 신중하게 처리하도록.”

    ―옙! 주인님.

    통신을 끝낸 후버는 피곤이 몰려옴을 느꼈다. 처음 생각은 그냥 적당히 와일리 상단의 상단주를 놀려주고 병사들을 피곤하게 할 생각이었지만 일이 점점 커진 지금은 이 사태를 어떻게 마무리 할지에 대한 방향도 확실 하지 않았다.

    해결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첫 번째로 여기서 앞으로 이곳으로 쳐들어올 30명의 적과 싸워서 와일리 상단의 군사력을 줄여두는 것.

    두 번째는 슬렌이 작전을 마쳤다는 보고를 하면 인질로 잡은 와일리 상단의 병사를 통해서 마법사를 처리하고 도주를 하는 방법.

    잠시간 고민을 하던 후버가 결국 마음의 정리를 했다. 앞으로의 편의를 위해서라도 상대편의 마법사를 끝장내는 것이 더 편할 것이라는 판단이 든 것이다. 지금이 아니라면 바이스를 이용해서 암살을 하는 수밖에 없지만 그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흐름을 만들 가능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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