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각? 몸통? 일단 흔들어보자! (18/37)
  • 마각? 몸통? 일단 흔들어보자!

    단순히 말뿐이 아닌 정식 서류를 사만다의 손에 쥐어주자 사만다는 깊이 고개를 숙이고는 후버의 방을 나갔다.

    연락을 한 것은 크롤라이드. 크롤라이드는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에 대해서 후버에게 질문을 했다.

    ―지금까지 특별히 문제되는 것은 없나?

    “일단은 착실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실 안 그래도 앞으로의 진행을 위해서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부탁하고 싶은 것이라? 무엇인가?

    “와일리 상단이 현재까지 가장 의심이 되는 상태입니다. 조만간 확실한 결과가 나올 것 같습니다만 그들은 금괴를 받으면 두 곳으로 나눠두고 있었습니다.”

    ―정확하게 위조와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던가?

    “이제 그것을 확인할 차례입니다. 제가 데리고 있는 마법사의 경지가 낮아서 아직 위저드 마크 마법을 원거리에서도 차이를 둘 정도로 정교하게 사용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확인하는 방법은 있는 것인가?

    “현재 아크바 상단을 통해서 진짜와 가짜를 섞은 금괴를 와일리 상단에게 맡겨두었습니다. 이번에 제가 산적단으로 행세하여 인질의 몸값과 상품의 가격을 요구했으니 어떤 금괴를 주느냐에 따라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말에 크롤라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일을 너무 복잡하게 하는 것 아닌가?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어음의 청구를 요청해서 금을 확인하면 될 것을.

    “그 생각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만 슈웨거 자작의 말에 따르면 상단끼리 금괴를 요청하는 경우가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합니다.”

    대부분 상단끼리의 거래에서 금괴를 요구하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았다. 사실상 이리 저리 얽혀 있는 수표의 결제를 위해 예치를 해두는 경우가 많다보니 실제 수령하는 금액은 소액인 만큼 금괴보다는 금화를 주로 사용 하였다.

    ―그렇군… 그래서 내가 도와줄 일은 무엇인가?

    “와일리 상단이 문제의 원흉이라고 해도 금괴를 회수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크롤라이드 님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나의 도움이라…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필요한 것인가?

    “마탑 차원에서 마법 물품을 대량으로 민간에 판매하셨으면 합니다.”

    ―마법 물품을? 그건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쉽게 동의를 받기는 어려울 걸세.

    “그냥 해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마탑에 있는 인장이 위조된 금괴를 제가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마탑에서도 그 금괴는 처리하기 곤란한 것이 아닙니까?”

    이 부분은 현재 마탑에서도 골치가 아픈 부분이었다. 원칙적으로는 마탑은 금과를 취급할 때마다 그 금괴가 진짜인지 아니면 가짜인지에 대한 검사를 해야 할 일종의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처분하기 쉬운 금화를 위조하는 일은 벌어져도 금괴를 위조하는 일은 거의 이루어 지지 않고 있었기에 마탑은 금괴의 위조 여부에 대해서는 방심해 버렸고 이번 일을 계기로 마탑 내에 쌓여 있는 금괴의 총양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어 크롤라이드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다.

    민간에 돌고 있는 인장이 위조된 금괴에 대해서는 몰라도 마탑 내에 인장이 위조된 금괴가 있으니 이것 역시 처리를 해달라고 국왕에게 부탁을 하는 것은 마탑으로서도 매우 체면이 깎이는 일이었다.

    ―금괴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고 있나? 결코 개인이 처리할 양이 아니란 것을 자네도 모르지 않을 텐데?

    “대략 어느 정도의 양입니까?”

    ―정확히는 밝히기 곤란하지만 대략적으로 8만 골드 정도 될 걸세. 금괴로 치면 240kg 정도 되는 양이라네.

    “적지 않은 수준이군요. 공작가의 2년 수입 정도인데다가 왕께서 제게 빌.려.주.신 금액의 절반 정도 되니까요.”

    ―대충 그 정도이지. 이 정도를 후버 너 혼자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냐?

    후버가 씹어 뱉듯이 말한 ‘빌려주신’이라는 단어를 슬쩍 받아 넘긴 크롤라이드의 말에 후버가 한숨을 한번 쉬고는 대답했다.

    “너무 많군요. 대략 200kg 정도는 제가 처리할 수 있습니다. 대신 마탑차원과 왕국 차원에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좋아! 한번 이야기를 들어보지. 단, 내가 확답은 해주지 못하네. 어디까지나 마탑의 다른 원로 분들에게 이야기를 전해줄 뿐.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크롤라이드의 허락이 떨어지자 후버는 자신이 생각한 해법을 풀어 놓기 시작했다.

    후버의 설명이 다 끝날 때까지 경청을 한 크롤라이드는 몇 번의 의문 사항에 대한 질문을 하고는 후버의 계획에 찬성의 뜻을 밝혔다.

    분명히 이것은 마탑이 없다면 실행에 옮길 수가 없는 계획이지만 마탑 역시도 생각하기 힘든 발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탑을 설득해도 남은 문제가 하나 있는 만큼 그 부분을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왕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분명히 도와줄 것입니다. 아니, 도와주지 않는다면 저도 이 일에서 손을 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역시 마탑의 도움이 있으면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마탑의 도움이라? 글쎄다. 국가에 도움이 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양보를 하겠지만 지금 후버 네가 요구하는 것도 간단한 것은 아니다.

    “양보가 아니라 발상의 전환을 한번 해보자는 겁니다.”

    그 말에 크롤라이드의 턱이 살짝 올라가며 더 말해보라는 듯이 후버를 향했다.

    “일단 국왕의 명령은 매우 간단하였습니다. 타국에서 눈치채지 못하게 인장이 위조된 금을 최대한 빠르게 확보 하라는 것이었지요.”

    ―그렇지… 어느 정도의 양인지는 몰라도 일단 국왕이 모두 회수한 후에 적절한 처리를 한다면 공식적으로 우리 왕국의 금괴가 되는 것이니깐.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금괴 500kg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지만 국왕의 입장에서 그런 많은 금을 저에게 맡기신다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일 것이고 운반을 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그렇지… 쉽지 않은 일이지. 양이 양인만큼 누군가는 운반 사실을 알 수밖에 없으니깐.

    “그렇지요 왕국전체가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눈과 같지 않습니까? 아마도 국왕이 이 일에서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 어떻게 그 많은 금괴를 저에게 전해줄까? 바로 이 부분일 것입니다.”

    ―그렇겠지… 마법 가방도 한계가 있고 무엇보다도 왕실의 금고를 지키는 모든 사람의 눈을 속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니.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 인장이 위조된 금괴를 가지고 왕국과 거래를 하는 것입니다.”

    ―거래라… 그 거래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게.

    “별것 아닙니다. 그저 마탑에서 원래 왕이 저에게 빌려줘야 할 금괴 중에 200kg을 마탑이 빌려주겠다는 당근을 제시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깐 너는 인장이 위조된 금괴 2,000kg이면 충분하게 이 일을 진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아닙니다. 국왕에게는 인장이 위조된 금괴와 정상적인 금괴를 각각 150kg씩 3개월 후 요청을 할 것입니다. 그 금은 또 사용할 곳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장 필요한 것은 200kg 정도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크롤라이드는 잠시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여러 생각을 한데 묶으니 후버의 계획의 밑그림이 대충은 그려졌다. 그리고 마탑이 제공할 200kg의 금괴를 사용할 곳 역시 대략적인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좋다! 현재로서는 이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구나. 일단 내가 최대한 마탑의 수뇌부를 설득하도록 하겠다.

    “예, 보안에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걱정하지 마라. 마탑이 그리 만만한 곳은 아니니.

    “그럼 좋은 결과 기다리겠습니다.”

    ―일주일 후 다시 연락하도록 하겠다.

    그 말을 끝으로 크롤라이드와의 통신이 끊겼다.

    마지막 크롤라이드의 표정에서 뭔가를 알아낸 듯한 표정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런 만큼 크롤라이드가 이 계획을 수정하거나 보안을 하는 일이 있어도 아예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분 좋은 짐작을 가질 수가 있었다.

    “이제 와일리 상단이랑 통신을 할 차례이군.”

    딱히 언제라고 정해진 적은 없지만 크롤라이드의 생각 보다 빠른 답변이 기대 되는 만큼 자신 역시 뭉그적거리기보다는 빠르게 일을 처리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어디 보자… 통신기 번호가…….”

    잠시 기지개를 풀면서 여유를 즐기던 후버는 서랍을 뒤지며 얼마 전 와일리 상단의 상점을 털 때 적어두었던 수정구의 번호를 찾고 있었다.

    “여기 있군. 지금 시간에 이자가 응답하려나 모르겠지만.”

    번호를 찾은 후버는 이번에는 다른 서랍을 뒤져서 끝까지 명령을 거부했던 기사가 반납하고 간 수정구를 들고는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마차를 타고 대략 30여 분 거리로 이동한 후버는 상단과 충돌이 있던 산의 초입으로 들어가서 편한 자세로 않고는 통신을 연결했다.

    ―자네가 산적단의 두목인가?

    통신구를 연결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상태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행히 상대도 아직까지는 업무를 수행 하던 중이었는지 목소리에서 묘한 활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후버가 대화를 했던 인물과 목소리가 다르기에 후버는 혹시나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의 목젖을 오른쪽 위를 살짝 눌러 목소리를 변조시켰다.

    “그렇다. 그런데 내가 통신구를 준 사람과 목소리가 다른 것 같군.”

    평소 후버의 목소리와는 다소 굵은 목소리가 통신구를 타고 상대에게 전해졌다,

    ―예리하군. 자네의 짐작대로 나와 그는 동일 인물은 아니네. 듣자하니 2천 골드 정도를 요구했다고 하던데 아직도 그 요구에는 변함이 없는 건가?”

    “일단 먼저 확인하지 당신이 2천 골드 정도를 다룰 권한은 있는 것인가?”

    ―당연한 소리를. 자랑 같지만 내가 자네가 습격한 상단의 상단주이니 나와 이야기하는 것이 더 확실할 거야. 내 이름은 크럭스라고 하네.

    상단주라는 말에 후버 역시 대화하기가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군. 요구는 변하지 않았다. 인질과 물품 값을 포함해서 대략적으로 2천 골드, 2천 골드에 1만 5천 골드 어치의 물품과 인질까지 포함되어 있다면 저렴한 편 아닌가?”

    그 말에 잠시 동안 수정구 너머에서 와일리 상단주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직접 물품을 훔친 당사자가 저런 소리를 하니 우스운 것이다.

    ―저렴하군. 인정해주도록 하지 듣자하니 금괴로 값을 치러 달라고 하던데 꼭 그렇게 해야 하나? 금괴보다는 금화가 쓰기 편할 텐데.

    “완전한 보고를 받지 못했나 보군. 우린 이 일을 끝으로 각자 뿔뿔이 흩어질 거야. 한 사람당 한 덩이씩의 금괴면 충분하지.”

    ―그렇군…….

    잠시 와일리의 상단주가 무언가를 생각하는 사이 후버는 고의적으로 통신구로 전해지는 마력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잠시간의 시간이 지난 후 최하급의 마나석을 이용해서 다시 와일리 상단주에게 통신을 연결했다.

    ―이거 미안하게 됐어. 중간에 마나석이 모두 소모되어 버리는 바람에 통신이 끊어졌네. 예비로 가지고 다니는 것이니 통신 상태가 그다지 좋지는 않을 거야.

    후버의 말대로 새로 연결된 통신에는 약간의 잡음과 함께 통신 중 일부 단어가 누락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전형적인 저급 마나석을 이용하면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그 정도가 일반적인 경우보다 심하다는 것을 상단주는 느낄 수 있었고 상단주는 한편에 걸려 있던 무음 차임벨을 울렸다.

    시종을 부르기 위해 문 밖으로 연결된 많은 차임벨 중 하나지만 그중에서 특히 마법사를 호출하는 신호를 보냈다.

    짧게 두 번 흔들고 길게 한 번. 지금쯤 시종은 상단의 마법사를 호출하기 위해서 발에 부리나케 뛰어갈 것이다.

    “확실히 그런 감이 있군. 다른 수정구는 없는가?”

    ―챙겨올 경황이 없어서 말이야. 그나마 지금 있는 게 마지막 최하급 마나석이니 대화는 빨리 끝냈으면 좋겠군.

    후버의 말에 상단주는 빠르게 지금의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묘하게 절도 있는 움직임과 불량한 통신 상태 그리고 최하급 마나석이 뜻하는 바는 한가지였다. 그리고 상단의 마법사는 그 사실을 확인해 줄 것이다.

    생각과 동시에 급하게 놀린 오른손이 양피지 위해 몇 개의 단어를 적었다.

    무음, 군용 통신 수정구, 최하급 마나석, 최초 위치 동쪽 숲, 대략적인 거리와 위치를 조사하시오. 지급 요함!

    상단주가 대충 휘갈긴 메모를 쓰자 기다렸다는 듯이 상단의 마법사가 조심스레 문을 열고 집무실로 들어왔다. 손짓으로 와일리가 마법사를 자신의 책상 앞의 의자에 앉혔다.

    “그런가? 이거 협상을 빨리 끝내야 되겠군. 그런데 상단 사람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지?”

    후버에게 말을 거는 것과 동시에 자신이 휘갈겨 쓴 양피지 위를 손가락으로 두어 번 두들겼다.

    마법사는 한눈에 양피지를 읽고는 최하급 마나석을 이용해서 군용 통신 수정구의 최대 송수신 거리인 30km를 적어줌과 동시에 수정구와 이어진 마나의 흐름을 잡기 위해서 통신구를 향해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믿든지 말든지 확실한 건 그쪽이 허튼 수작을 부리지만 않는다면 인질은 100% 무사할 것이라고는 약속하지.

    “인질의 상태를 보여줄 수 없다는 건가?”

    ―당연하지 상단 놈들은 음흉해서 말이지…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단순한 말에도 암호를 섞어 놓는다고 하더군. 자신의 위치를 알릴 수 있도록 말이야.

    크럭스는 자신의 노림수가 통하지 않자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목소리만 전해주는 수정구를 통해서 후버가 그것까지는 알 수 없었다.

    “간단하게 무사한지만 보면 되네. 대화는 안 해도 되니까 그들의 상태를 확인하게 해줄 수는 없는가?”

    ―더 이상 인질에 대한 요구는 협상의 결렬로 받아들이지. 정 원한다면 한 명 죽여서 시체는 확인시켜줄 수는 있어. 막 죽은 시체가 경련하는 건 방금 전까지 인질이 살아 있다는 걸 증명하기엔 충분하니깐.

    후버의 말에 상단주가 잠시 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사실 인질의 생존 여부보다는 통신 시간을 충분히 길게 끄는 것이 목적인만큼 시체라도 보여달라는 말이 나올 뻔했지만 정상적인 상단주가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는 생각에 입 밖으로 나오던 말을 다시 삼킨 것이다.

    “그건… 너무하군.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네. 그럼 물건이 무사하다는 것은 확인하고 싶군.”

    상단주가 후버의 대답을 기다리는 순간 눈을 뜬 마법사가 상단주의 지시가 적힌 종이 위에 쓰여 있는 동쪽에 동그라미를 쳤다.

    대략적인 거리를 가능한 상단주는 대략적으로 동쪽 30km쯤에 상행이 습격당한 산의 초입이라는 것을 기억해 내었다.

    다행히 산적들은 크게 위치를 옮기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지시를 하기가 편했다. 적들의 본거지가 그 부근이라면 대략 300m 범위까지만 접근하면 위저드 마크를 통해서 적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물건도 확인해줄 수는 없어. 상인들은 믿을 수가 없으니까.

    “그럼 나는 당신을 그저 믿을 수밖에 없는 건가? 내 물품을 강제로 빼앗아 간 자에게 신뢰를 하라니 그건 너무하는군.”

    병사와 기사를 차출하도록 기사는 3명 이상, 병사는 10명 이상.

    다시 한 번 상단주가 글을 이용해서 지시를 하자 마법사가 한번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심스레 집무실 문을 열고 나갔다.

    “어차피 우리는 그만한 물품을 처리할 능력이 없어. 그저 안전한 거래를 위한 물품 이상의 가치는 없으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런가? 이건 명심하도록 하게. 만약 자네가 그 물품을 다른 곳에서 처분하려고 한다면 우리가 가장 먼저 알 수 있다는 것을.

    ―이거… 무서워 죽겠군. 각설하고 시간과 장소를 정하도록 하지 최하급 마나석이라서 그런지 통신이 언제 끊길지가 불안하거든.

    “생각해둔 장소는 있나?”

    ―우리가 멀리 가기는 힘드니 와일리 상단을 기준으로 서쪽으로 20km 정도 거리를 가다보면 한적한 농지가 계속 되는 지역이 있는데 그곳을 알 고 있나?

    “물론. 세리아 마을 인근이군.”

    ―정확해. 그럼 세리아 마을 인근에서 보도록 하지. 그리고 돈을 가지고 오는 것은 오직 두 사람. 그 이상은 안 돼. 그쪽도 알다시피 그쪽은 개활지이기 때문에 매복도 불가능한 곳이지.

    “시간은?”

    ―3일 후, 이 시간으로 하지.

    “좋아. 세리아 마을 인근에서 3일 후 부디 서로 간의 약속을 어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

    ―그쪽이야말로.

    후버가 마지막 말을 남기고 통신구에 공급되는 마나를 끊어버리자 상단주의 집무실이 정적에 잠겼지만 신경질적으로 상단주가 흔든 차임벨에 기사 한 명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정적이 오래되지는 않았다…….

    “준비는 됐는가?”

    “옙, 말씀하신 대로 기사 4명과 병사 15명을 준비시켰습니다.”

    마법사가 자신이 명령한 것보다 여유 있게 준비해 둔 것을 보고받은 크럭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하라!!! 목표는 동쪽 숲 초입이다.”

    “옙, 크럭스 상단주님.”

    잠시간의 소란이 있은 후 미리 준비된 기사와 병사 그리고 통신구의 위치를 찾아낸 마법사가 한조를 이루어 와일리 상단을 빠져나갔다.

    같은 시간 후버는 자신이 평소에 사용하던 통신용 수정구를 이용해서 와일리 상단 근처에서 잠복하고 있던 바이스와 슬렌에게 통신을 보냈다.

    “슬렌 현재의 상황은?”

    “방금 전에 기사와 병사를 합해서 20명 정도의 인물이 빠져 나왔어요. 마법사도 한 명 있었구요.”

    “좋아. 그곳에 대기하고 바이스는 내부로 잠입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하나?”

    “문제없대요.”

    바이스가 고개를 까딱하자 말을 못하는 바이스를 대신해서 슬렌이 후버에게 대답했다.

    “바이스, 슬렌 둘은 처음에 이야기 한 대로 인장이 위조된 금이 보관된 것으로 짐작되는 창고 안으로 잠입 한다. 상단의 기사 수가 10명이 넘거나 병사의 수가 50명이 넘으면 후퇴하도록.”

    “네, 주인님.”

    슬렌의 쾌활한 대답과 함께 통신구의 연결이 끊겼다. 바이스나 슬렌은 잠입에 대해서는 경험이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 하긴 했지만 실전에서는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

    생각 같아서는 후버 역시 슬렌과 합류 하고 싶지만 후버 역시 할 일이 있었다.

    “바보가 아니라면 이 정도의 흔적을 놓치지는 않겠지.”

    자신이 타고 온 마차 안에 들어온 후버는 마법 가방에 담아 두었던 상단에게 약탈한 물품을 마차 안에 아무렇게나 털어 두기 시작했다.

    경량화 마법이 걸려 있는 마법 가방에서 나온 상품들은 차츰 마차의 무게를 무겁게 하며 마차의 바퀴가 숲의 젖은 바닥에 자국을 만들어 내는 것을 확인 하면서 적당한 깊이가 될 때까지 상품을 마차에 풀어 두었다.

    “대략 이 정도면 되겠군.”

    상단에서 약탈한 물품의 절반이 채 못 되는 양이지만 마차 한데에 넣기엔 적지 않은 양인만큼 마차의 바퀴는 충분한 깊이의 바퀴 자국을 만들어 주었다.

    “어디보자~ 위저드 마크가 걸린 물품이…….”

    디텍트 마나를 이용해서 몇 개의 물품에서 위저드 마크가 걸린 상품을 찾을 수 있었다.

    후버는 자신의 팔에 스트랭스 마법을 걸고는 미련 없이 그것들을 숲 한가운데로 던지고는 마차를 몰아 서쪽 방향으로 천천히 말을 몰았다. 와일리 상단의 병사와 기사들이 이곳에 도착 할 때쯤이면 후버는 이미 서쪽으로 어느 정도 움직인 이후일 것이다.

    뒤늦게 자신과 교차한 마차의 바퀴 자국을 따라 후버를 추적 하려고 해도 하나 둘 후버의 모든 상품이 마법 가방 안에 들어가 가벼워진 마차의 바퀴 자국을 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점전 도시와 가까워져 혼잡해지는 바퀴 자국 등을 생각 한다면 마치 마차가 사라진 듯이 보일 것이다.

    “그럼 모두들 고생 좀 하시길.”

    상대방이 들을 수 없는 비웃음을 남긴 후버가 조금 더 속력을 높여서 서쪽을 향해 마차를 움직였다.

    후버가 동쪽 숲의 초입을 벗어난 지 1시간여가 흐르자 두 대의 마차가 빠른 속도로 후버가 있던 곳으로 접근 하였고 기사와 병사들이 주위를 경계하며 빠른 속도로 마차에서 내렸다.

    “모두 주변을 경계하도록 해라. 주변에 산적들이 잠복 하고 있을 수도 있다.”

    메시지 마법을 통해서 마법사가 전한 명령에 병사와 기사는 각자 전방을 주시하면서 경계심을 끌어 올렸다.

    “풀벌레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이곳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마법사님.”

    한 명의 기사가 마법사를 보면서 이야기 하자 마법사 역시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마나의 흔적도 느껴지지는 않는군. 그래도 확실히 할 수 있도록 잠시만 기다려 주게.”

    마법사의 대기 명령에 따라 다시 기사들과 병사들은 주변의 경계를 강화하였다.

    한 명의 적이라도 남아서 석궁을 쏜다면 이 어둠 속에서 석궁을 피해내기는 쉽지 않았다. 특히 기사들의 긴장감은 더 컸다.

    일반적으로 첫 공격이 석궁이라면 그 공격이 향하는 것은 같은 한 발로 최고의 효율을 노릴 수 있는 기사에게 집중되는 것이 전투의 정석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군. 마나 디텍팅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아.”

    마법사의 말에 기사와 병사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기사들은 잠시 나를 엄호해 주도록 하게. 위저드 마크를 추적해야 하는데 범위가 넓은 만큼 영창하는 시간이 길어질 것 같아서 말이야.”

    “네, 마법사님.”

    대답과 함께 기사 4명이 각자 한 방향을 맡아서 마법사의 주위를 둘러싸듯이 경계했다. 마법사는 한 방향씩 번갈아 가며 위저드 마크를 탐지하는 마법을 사용하였고 같은 행동을 3번째 반복했을 때 숲의 안쪽에서 인위적인 마나가 감지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있군. 전방 약 200m 정도 거리에 있네. 두 명의 병사는 마차를 지키고 나머지는 숲의 안쪽으로 나와 함께 들어간다.”

    “마법사님의 말씀대로 너희 둘은 마차를 지키도록 해라.”

    “예, 기사님.”

    기사의 명령에 마차를 지킬 병사 2명이 무리 중에서 차출되었고 나머지 병사들은 마법사를 호위한 채 마법사가 이끄는 대로 위저드 마크가 느껴지는 곳으로 이동했다.

    “음… 이거 문제가 심각하게 됐군.”

    마법사의 미간이 찌푸려지며 아무렇게나 흩어진 물품들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마법사님.”

    “적중에 마법사가 있는 것 같다.”

    “마법사가 있다뇨? 그건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기사의 질문에 마법사는 아무렇게나 땅에 떨어져 있는 물품을 주워들었다.

    “잠시 나를 보호해주게 확실히 할 필요가 있으니.”

    기사와 병사가 한층 더 촘촘하게 마법사를 호위하자 마법사가 다시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마법사의 느낌에 느껴지는 위저드 마크는 총 12개가량.

    “일단 조금 더 움직여보도록 하지.”

    그 말을 끝으로 마법사는 이곳저곳으로 이동했고 영문을 모르는 기사들은 마법사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갔다.

    위저드 마크 마법을 추적 하여 걷고 땅에 떨어진 물품을 줍기를 반복한 지 10여 차례 마법사의 표정이 점점 더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확실하군. 적중에 마법사가 있어 몇 서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확실하군.”

    “어떻게 그걸 아시는 겁니까?”

    기사의 질문에 마법사가 자신이 모은 물품들을 보여 주었다.

    “다른 물품을 제외하고 오직 위자드 마크가 사용된 물품만 버려져 있네. 마법사가 없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기사 역시 새삼스럽게 자신이 집어든 물품을 바라보았다.

    “그렇군요… 그럼 얼른 알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야겠어. 이 정도로 많은 물품이 떨어져 있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상품을 다른 곳으로 옮긴 이후겠지 우선은 이 상황을 크럭스 상단주님에게 알려야겠군.”

    “그럼 마차가 있는 곳으로 복귀하시지요.”

    “그러도록 하지.”

    마법사와 기사가 다시금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되 집어서 마차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돌린 순간 한 명의 기사가 마법사를 불러 세웠다.

    “마법사님, 조금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무언가? 말해보게.”

    “확실 한 것은 아니지만 제가 이곳에 오기 전에 듣기로는 상단이 습격당한 장소가 이 부근으로 알 고 있습니다.”

    “내가 알기도 그렇다네.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닐 수도 있지만… 적들이 상단의 물품을 옮겼다면 당연히 보여야 할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저희 같은 기사는 무장을 하고 있어 발자국이 깊게 찍혀서 단순히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마법사님의 경우에도 이런 숲 속에서는 발자국이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숲에는 저희의 발자국을 제외 하고 어떤 발자국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 말에 주변의 기사와 병사들이 발자국을 찾기 위해 둘러보았지만 기사의 말대로 자신들이 남긴 발자국 외의 다른 발자국을 찾을 수 없었다.

    “그건… 그렇군. 아무런 흔적이 없다는 게 이상하군. 뭐라도 하나 흔적이 남아야 하는 것인데 말이야…….”

    “예, 사람이 당연히 남겨야 할 흔적이 남지 않았다는 것은 무언가 문제가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마차 주변부터 다시 조사를 해보고 싶습니다.”

    그 말에 마법사의 고개가 끄덕였다. 이런 산길에서 마차를 운용할 수 있는 곳은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 정비된 흙길이 아니면 불가능 했고 이 주변의 소로를 비롯한 모든 길은 자신들이 마차를 세워둔 길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 서두르게 시간이 많이 지체 되었으니 다른 흔적에 섞이기 전에 마차로 돌아가야 겠어.”

    다시금 마법사를 중심으로 방어진을 형성한 기사와 병사는 마차 주변으로 이동해 산개하여 흔적을 찾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 한 명이 큰 소리로 기사를 불렀다.

    “기사님 이곳에 마차 바퀴 자국이 있습니다.”

    “어디인가?”

    기사의 대답에 병사가 자신의 자리에서 크게 손을 흔들었다.

    “확실히 마차 바퀴가 낸 자국이군 곧장 서쪽으로 이어지는 것 같은데… 너는 다른 사람들을 마차로 불러 모으거라.”

    병사는 큰 소리로 다른 병사와 기사를 부르기 시작했다. 기사는 주변을 수색하던 다른 기사나 병사에게도 바퀴의 자국을 발견한 사람이 있는가를 물었지만 그 중 누구도 바퀴 자국을 본 사람은 없었다. 숲에 다른 흔적은 없고 오직 마차 바퀴 하나만이 있다면 아마도 이 바퀴 자국이 통신을 끝마친 산적이 남긴 흔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저 자국이 그 산적들의 마차가 낸 바퀴 자국인가 보군.”

    “그런 듯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마법사님.”

    “일단은 그 자국을 추적하도록 하지.”

    마법사가 자신이 숲에서 느낀 것을 상단주인 크럭스에게 이야기하자 크럭스는 마법사에게 가능하면 흔적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마법사는 현재로서는 흔적을 찾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하다는 판단을 했다.

    “모두 마차에 탑승하라 선두는 내가 이끌겠다.”

    아무래도 일반 병사가 밤중에 달리는 마차에서 바퀴 자국을 확인 하는 것은 힘들기에 기사가 자청해서 마부석으로 올라갔다. 위험한 만큼 적을 찾는다면 자신의 공적이 가장 크게 평가 받을 것이라는 계산이 기사를 용감하게 만들어 주었다.

    “내가 앞에서 길을 안내할 것이니 너는 내가 정확한 길로 가고 있는지 확인을 해주도록.”

    “네, 알겠습니다. 얀센 기사님.”

    얀센을 선두로 마차는 후버가 남긴 바퀴 자국을 따라 서쪽으로 움직였다. 위치상으로는 후버가 크럭스에게 말한 장소로 미리 움직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중간에 그들의 본거지가 있을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었다.

    같은 시간 후버는 마법 가방에 마지막 상품을 넣고는 다시금 말을 출발하기 위해 마부석 위로 올라갔다. 일정 거리마다 무게를 가볍게 한 것과 숲을 벗어나 사람들의 왕래로 인해 단단하게 다져진 바닥에서 마차의 바퀴 자국은 신경 써서 보지 않는다면 잘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졌다. 후버가 말을 출발시키기 위해 채찍질을 하려는 순간 품속에 있는 통신용 수정구가 진동 하였다.

    “슬렌, 무슨 일이야?”

    ―주인님! 조금 곤란한 일이 생겼어요.

    “곤란한 일이라니?”

    ―가짜 금괴를 보관한 곳의 경비가 너무 삼엄해요. 기사의 수는 많지 않지만 10명 정도의 병사들이 창고를 지키고 있어요. 이대로 들어가는 것은 힘들어요. 그리고 순찰을 도는 병사의 수도 너무 많아서 쉽게 창고 안으로 들어가기가 힘들어요. 뭔가 그들의 주의를 끌만한 것이 필요해요.

    “전부 가짜 금괴인지 확인 할 정도의 거리까지도 접근이 힘든 거야?”

    ―그게… 무리하면 할 수도 있겠지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아니야~ 무리해서 발각될 필요는 없어.”

    앞으로 몇 번이나 이곳을 들락거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벌써부터 적에게 발각된다면 점점 더 삼엄해 지는 경비 탓에 접근하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다.

    ―주인님이 그렇게 말할 것 같아서 제가 통신한 거예요.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되죠?

    “일단 그 자지를 지키도록 해. 아무래도 계획을 조금 수정할 필요가 있겠어. 상단 내의 기사와 병사의 수는 어느 정도이지?”

    잠시 생각을 정리한 슬렌이 후버에게 보고했다.

    ―기사는 10명 정도이고 병사는 40명 정도예요. 바이스가 숙소에까지 들어가서 확인한 것이니 다른 병력은 더 없을 거예요. 이걸 확인하느라 통신이 늦어졌어요.

    다행히 그 정도라면 병력이 많은 수준은 아니었다. 후버가 무력으로 상단을 점거하려는 것이 아니니 수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감시하는 눈이 적을수록 일 처리가 쉬운 것은 당연했다.

    언제 다시 와일리 상단에 잠입할 일이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와일리 상단의 병력을 최대한 줄여두는 것이 좋았다.

    “좋아. 일단 그 자리에 대기하도록 하고… 병사들의 수를 좀 더 줄여야 할 것 같으니 방법을 생각해봐 나를 잡으러 온 병력은 돌아가지 못하게 할 테니깐 혹시 그 쪽에도 마법사가 있었어?”

    ―마법사는 한 명이 더 있었어요.

    이미 상단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전력을 상회한 상황… 상단의 위치와 상단주의 신분이 귀족 가문의 본성이이고 상단주가 귀족이라면 모를까 일개 상인이 유지비와 육성비가 만만치 않은 기사를 15명이나 데리고 있다는 것과 기사의 수에 비해 병사의 수가 너무나 적다는 것도 충분히 수상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흔한 용병들을 고용한 흔적 역시 발견할 수 없었다.

    후버는 슬렌에게 상단의 바깥쪽에서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통신 수정구를 이용해서 저택에 대기 중이던 기사들을 호출하였다.

    기사들이 후버가 지시하는 곳까지 거리상 소요되는 시간은 약 30분 정도 현재 와일리 상단의 추적자들과의 거리가 1시간 30분 정도임을 감안하여 보았을 때 그들을 처치하기 위한 시간이 부족했다.

    ‘수정구를 과충전시켜서 폭파시키는 방법은 사용할 수도 없겠고.’

    적에게도 마법사가 있는 이상 과충전된 수정구가 내뿜는 불안정한 마나를 느끼지 못 할 리가 없었다.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재래식 덫이 좀 더 유용하게 사용 될 것이란 것이라고 생각한 후버는 간단한 덫을 생각 하고는 마차에 다시 마법 가방에 넣어둔 물건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젠장… 마법 가방에 넣다 뺏다 귀찮아 죽겠네.”

    쓰레기통을 뒤집어 털듯이 빠르게 상품을 마차 안에 쓸어 넣은 후버는 곧장 마차를 이용해서 원래 달려왔던 길로 30여 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갔다.

    다시 한 번 급조한 작전에 결과를 맡기는 것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후버는 마법주머니에서 완전히 흔적을 지울 때 사용하려고 한 각목을 꺼내서는 마차 뒤에 줄로 매달았다.

    마차 바퀴의 폭보다는 약간 작은 각목이 말의 발자국을 대충은 지워줄 것이다.

    ‘애매한데… 마차가 무거워질수록 바퀴의 자국도 두꺼워질 텐데 말이야.’

    걱정을 하면서도 후버는 달려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깊이 찍힌 마차 바퀴의 자국과 말의 발자국이 대조를 이후며 후버의 흔적을 착실히 남겨 주었다.

    “대략 이쯤이 좋겠군.”

    추적 속도를 늦추고 적에게 피로감을 주기 위해서 마차의 무게를 줄였던 지점으로 돌아간 후버는 다시금 상품을 마법 가방에 쓸어 넣고는 조심스레 흔적을 지워가며 마차를 숲 속 깊은 곳에 숨기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후버는 마차를 위장하고는 헤이스트 마법을 이용해 15분가량 달려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과 합류했다.

    “저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숨을 고르는 후버를 보며 기사 중 한 명이 후버에게 질문 했다.

    후버 역시 시간적 여유가 그다지 많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숨을 고르기 보다는 기사들의 질문에 답을 하였다.

    “모두 석궁은 챙겨 왔겠지?”

    “지시하신 대로 1명당 5개의 석궁을 챙겨 왔습니다.”

    “적과 거리는 시간상으로 20분 남짓 시간이 없다.”

    “예, 무엇을 하면 됩니까?”

    “일단 길 양쪽으로 두 명씩 매복한다. 석궁에 화살을 재워 놓도록 이번에도 주공은 석궁을 통한 원거리 공격이고 직접적인 교전은 마무리를 위해서만 허용한다. 적과의 일정 거리를 항상 유지하도록.”

    일사분란하게 화살을 재워두는 기사들에게 대략적인 매복 위치를 알려준 후버는 길 양쪽에 있는 나무의 밑동에 탄성이 강한 실을 여러 겹 꼬아 만든 줄을 설치했다.

    밝은 대낮이라면 쉽게 구분이 가능할지 몰라도 밤에는 구분이 불가능할 것이다.

    “화살을 모두 장전했습니다.”

    기사들이 각각 장전이 끝난 5개의 석궁을 후버 앞에 내보이고는 말했다.

    “모두 지정해둔 매복 장소에서 대기한다. 지시가 있을 때까지는 석궁을 발사하지 마라. 1차 목표는 마법사 2차 목표는 기사 3차 목표는 석궁의 화살이 떨어졌을 경우 육탄전을 통한 병사의 처치이다. 질문 있는가?”

    “없습니다.”

    시원시원한 대답과는 다르게 기사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지만 기사의 본분을 알 고 있는 그들은 일사분란하게 흩어졌다.

    기사들을 확인하면서 대략적으로 시간을 계산해 보니 앞으로 5~10분 후면 적이 이곳을 지나갈 것이라는 계산이 들었다.

    가능하면 정확하게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후버가 수정구를 하늘 위로 올려서 주변을 정찰하였다.

    ‘아직은 시야에 보이지 않는군.’

    밤의 장막이 수정구의 시야를 방해해서 먼 거리까지는 확인이 불가능했다.

    어쩌면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적이 이 길목을 지나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반드시 지나가길 바라며 후버는 초조하게 수정구를 응시했다.

    능력 있는 적도 무섭지만 이런 식의 급조된 작전에서 상대가 추적할 능력도 없다면 그것은 작전에 차질을 주는 더 큰 애로 사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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