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가치
동이 터오기 전 침대에 누워 오늘 무엇을 해야 하나를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후버가 설정한 알람이 울렸다.
새벽 3~4시 정도, 아직 새벽 공기는 차기에 후드까지 달린 두꺼운 외투를 푹 눌러쓰고 백작성을 몰래 빠져 나와 후버가 지금 향하는 곳은 환락가.
그중에서 새벽에도 불야성을 이룬다는 매음굴로 발걸음을 향했다.
“으~ 춥다! 백작가가 가난해서 내 키가 커질 때까지 입으란 것도 아닌데 틈마다 바람이 숭숭 들어오네.”
이유는 모르겠지만 조금 넓게 제작된 로브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팔짱을 낀 자세로 10여 분을 걷자 매음굴이 후버의 눈앞에 보였고 날씨와는 안 맞는 차림을 한 여성들이 후버를 향해 손짓했다.
“오빠야~ 놀다가.”
척 봐도 어린아이인 후버에게까지 추파를 던지다니. 언제 한번 기회가 되면 이곳도 깨끗하게 정리할 필요를 느끼지만 당장은 자신에게 필요하니.
그중 가장 커 보이는 업소로 후버는 걸음을 옮겼다.
“아 따뜻하고 좋네.”
아직 후드를 깊게 눌러쓴 후버는 안에 들어가서 주인으로 보이는 사내에게 넉살 좋게 말을 걸었다.
“공자님, 무슨 일이십니까?”
“무슨 일은 무슨, 바지 사장이신가? 간판에 제목은 다른 사장이 달았나?”
“하하. 이거 제가 질문을 잘못한 것 같습니다. 제가 사장이 맞습니다. 뭐 찾으시는 스타일을 말씀해주시면 알아서 모시겠습니다.”
“자기 사업은 자기 손으로 좋은 자세야. 일단 선금을 받고.”
10실버짜리 은화가 튕겨서 주인의 손으로 쏙 들어갔다.
“하하, 주인장 실력도 좋구만. 대부분 이렇게 튕기면 못 받던데 말이야.”
“제가 소싯적에는 용병으로 이름 좀 날렸습니다. 여기 정착한 덕분에 칼질은 좀 녹슬었지만 화살 끝에 금화만 달려 있으면 엘프들이 쏜다 해도 잡을 수 있습니다.”
“본업에 충실한 자세는 좋은 거지. 일단 위스키 한 잔, 그리고 일렬로 쭉 세워봐. 그거 보고 던져준 금화를 화대로 할지, 주인의 높은 서비스 정신을 기리기 위한 기념물로 할지를 정할 테니깐.”
“여부가 있겠습니까? 손님 들어오셨다~!”
주인의 말에 한쪽 문이 열리더니 여자들이 줄줄이 방밖으로 나와서 각자 자신 있는 포즈를 하고 후버를 바라보았다.
이 시간에도 선택을 못 받아서 그런지 포즈를 잡는 자세가 사뭇 진지하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호구 조사하는 건 좀 약하거든. 대화를 하려면 먼저 서로를 알아야 하는데.”
“자, 오른쪽 끝부터 소개 시작한다.”
주인의 말에 가장 오른쪽에 있는 여인이 자신의 소개를 하려 하자, 후버가 그런 여인을 제지하였다.
“아니, 주인장. 높은 서비스의 대가가 될지 아니면 화대가 될지는 주인장에게 달려 있다니깐 그러네.”
팅.
다시금 하늘을 나는 10실버짜리 동전, 이번엔 2개였다.
“나는 말이야, 단순히 이름이 아니라 좀 더 은밀한 응? 말하자면… 출생지부터 지금까지의 역사 같은 그런 정보를 원한다는 말이지.”
그 말에 주인의 안색이 바뀌었다.
10실버짜리 동전을 던지는 것부터 예사롭지 않지만 은밀한 정보를 원한다는 것은 지금 서 있는 여성들에게 스트립쇼라도 하면서 소개를 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자들이 흔히 내는 끈적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경험 적은 사람은 모르겠지만 이런 경우는 10에 9 정도는 정보 길드를 찾는 사람들이었다.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8번째 15번째, 이분을 모셔라.”
팅.
이번엔 1골드짜리.
“화대는 돌아가는 편으로 같이 보낼게. 이건 선수금 같은 거니깐 부담 없이 받고. 주인장 서비스가 아주 인상적이야. 고객의 마음을 그냥 꿰뚫는고만?!”
‘잘하면 오늘 하루 장사한 것보다 이 꼬맹이가 주는 돈이 더 많겠군.’
이 손님이 무슨 정보를 살지는 몰라도 적지는 않은 금액일 터, 소개하는 주인에게도 10% 정도의 콩고물은 떨어지는데 벌써 받은 돈이 1골드 30실버이다.
자신으로서는 봉을 잡은 것이고 자연스럽게 여자를 끼고 나가는 모습을 보니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모르긴 몰라도 오늘 자신의 앞으로 꽤나 많은 짤랑거리는 소리가 들릴 것이란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거… 내가 키가 좀 작아서 말이야. 만져봤자 허벅지인데 그래도 공공장소에서 그럴 수도 없고 빨리 어디 앉을 수 있는 곳으로 가자고.”
추운 날씨에 아랑곳하지도 않고 훤히 드러나 있는 탱탱한 허벅지를 살며시 쓰다듬으며 후버가 말을 잇자, 편히 만지라는 듯 자신의 코트 한쪽을 걷어내는 여자의 모습.
“호호, 공자님. 너무 짓궂으셔요. 5분만 가면 되니깐 잠깐만 참으세요.”
“그 정도야 내가 참을 수 있지.”
그 후로도 약간의 성스러운 농담을 날리며 허름한 주점으로 안내하는 여인들을 따라갔다.
처음부터 정보 길드로 가지 않은 것은 그 장소를 모르는 것도 있지만 영지 밖에 퍼진 후버에 대한 소문을 이용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레빌리언가의 변태 후버. 썩 내키지 않는 닉네임이지만 이 정도 힌트는 줘야 자신에 대한 정보가 어쌔신 길드에도 빨리 전해질 것이다.
“손님 왔어요~”
쾌활하게 오른쪽에 있는 여성이 소리치자 은연중에 경계를 하던 주점의 손님들이 관심을 끄고는 다시 각자의 대화로 돌아가고 그중 한 명이 오더니 후버와 여인을 허름한 뒷문과 연결된 장소로 인도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주점을 맡고 있는 자일이라고 합니다.”
“어, 그래. 자일, 안녕. 내가 이번에 좀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말이야.”
“무슨 일이십니까?”
“별로 대단한 일은 아닌데 잠을 자던 도중에 쾅 하는 소리가 나서 봤더니 웬 놈은 꼼짝 않고 가만히 있고, 다른 놈은 내 방에 들어오려다가 쉴드에 막혀서 칼질 몇 번 하더니 근성 없게 꼼짝 않던 놈 품을 뒤지고는 도망갔단 말이야.”
“허참! 놀라셨겠습니다. 언제 있었던 일이신지?”
“오늘 자정쯤이었을 거야. 아무튼 내가 그래서 그놈을 잡아다가 족쳐보려고 했는데 그때 딱 트랩의 작동 시간이 끝났는지 도망가더라구. 뭐 결국은 잡혀서 배후를 밝히려는 과정에서 죽여 버렸지만.”
“음… 아마도 어쌔신인 것 같습니다.”
짐짓 고민을 하는 척 자일이 결론을 냈지만 사실 뻔한 이야기였다.
밤에 들어와서 트랩을 밟고 한 명은 꼼짝 못하고 다른 한 명은 혹시라도 그런 동료의 신분을 알 수 있을 만한 것을 뒤져서 사라지는 것은 전형적인 어쌔신의 행동이었기에 생각할 필요도 없었고 자일의 눈동자는 짧은 팔을 아등바등하며 여인들의 가슴을 주무르고 있는 내 손에 고정되어 있었다.
“근데 말이야. 우리 집이 좀 부자란 말이지. 혹시라도 그런 놈들이 계속 들어오면 난 밤에 잠도 못 잘 거야. 지금은 마법사가 이것저것 트렙을 설치해줬지만 언제까지나 운만 믿고 트렙을 밟기를 바랄 수는 없는 거잖아?”
“그렇지요. 실례지만 도련님의 나이가 많아 보이시지 않는데 밤에 잠을 못 자는 것은 키에 많은 영향을 주거든요.”
넉살좋게 웃으면서 응대하는 자일의 모습이었지만 마법사를 데리고 있다는 부분에서는 잠깐 동안 표정이 진지해졌다.
트렙을 설치할 수 있는 마법사. 그것도 사람을 한 번에 멈추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마법사는 4서클의 능력이 있는 만큼 대상인이나 귀족이 아니면 데리고 있지 못한다.
“그렇지. 역시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만. 정보를 다뤄서 그런지 아는 것도 많은 거 같아.”
“과찬이십니다.”
“그래서 그런데, 난 그 녀석들하고 원만한 대화를 하고 싶은데 혹시 알아봐 줄 수 있겠어?”
“그렇게 되면 도련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조금 새어 나갈 수가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알아야 할 사람만 안다면 나 그렇게 까다로운 사람 아니야. 이 말도 꼭 전해주고.”
“하지만 솔직히 힘듭니다. 어쌔신 길드의 입은 정보 길드만큼 무겁거든요.”
“실망이야, 자일… 방금 전에는 가능할 것처럼 말하더니 돈이 부족한 거라면 얼마든지 내 줄 수 있어. 그리고 어쌔신 길드로서도 나쁜 조건은 아니거든. 굳이 어느 길드인지 안 밝혀도 돼.”
짐짓 실망했다는 듯한 후버의 표정에 자일이 좀 더 의자를 바짝 끌어당기며 후버에게 집중했다.
지금은 자신이 가진 정보를 팔 수 있는가, 아닌가를 가르는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내 위로 형이 하나 있는데 나한테 하듯이 형한테도 해주면 뭐 서로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자일의 머릿속에 후버는 완전히 인간말종으로 비춰졌다.
자연스럽게 형을 죽여 달라고 하는 동생이라니…….
어쌔신을 먼저 보낸 것이 형일 가능성이 높겠지만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 배후를 묻지만 배후에는 관심도 없이 재고용을 하여 자신의 형부터 죽일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니, 정보 계통에서 굴러 먹다보면 많은 정신병자를 보지만 그중에서도 후버는 특급의 정신 상태를 가진 듯했다.
“일단 알아보긴 하겠지만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선수금은 5골드 정도로만 받고 대신 성공 보수를 조금 높게 받겠습니다.”
“자신 없는 모습이 믿음직스럽진 못하지만 어쩔 수 없지. 일단 5골드 받아.”
“감사합니다. 도련님의 기대에 미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5골드를 받은 자일이 금고 안에 돈을 넣고는 멀뚱히 후버를 바라보았다.
볼일은 끝났으니 이만 가보라는 무언의 축객령이지만 후버는 그런 시선과 눈치 빠른 여인들의 아양을 빙자한 퇴장 요구에도 모른 척했다.
“뭐 또 하문하실 거라도?”
“하문까지는 아니고 팔아줬으면 하는 정보가 하나 있어서.”
“예. 말씀하십쇼.”
“여기 경쟁 정보 길드의 위치 정보 좀 알 수 있을까?”
‘뭐 이런 개새끼가 다…….’
순간 자일의 머릿속에 간만에 진짜 미친놈을 봤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그 정도는 비밀도 아니기에 여자들에게 물어보라고 이야기한 후 후버를 돌려보냈다.
정보 길드를 나온 후버는 다른 길드에도 찾아가 똑같은 의뢰를 한 후 여자들에게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50실버짜리 은화를 튕겨 줌으로써 바쁜 아침 일과를 마치고는 당당하게 백작성의 정문으로 귀가하여 전날 당직을 서고 자려고 하던 기사들을 두드려 깨우는 필러 경의 목소리를 들으며 늦은 잠을 청했다.
“백작님. 후버 도련님이십니다.”
“들여보내라.”
백작의 허락이 떨어지자 후버는 백작의 방에 들어갔다.
항상 걸려 있던 영지 지도에 파란 원으로 저수지가 추가된 것을 보고 후버는 뿌듯한 기분을 느꼈고 그런 후버의 시선을 따라간 백작 역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오늘은 무슨 일이냐, 아들아?”
“한동안 영지 주변이 소란스러워질 것 같아서 먼저 보고 드리려고 왔습니다.”
“소란스러워지다니? 또 다른 공사인가? 수도관을 묻는 것은 여름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건 현재 크롤라이드 님과 아카이브 경이 연구하고 있으니 예정대로 여름에 공사를 시도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 보다는 먼저 이것을 보시죠.”
“수정구가 아닌가?”
“예. 우선 큐리오 형님도 불러 주시기 바랍니다. 함께 봐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지. 총관, 큐리오를 불러오게.”
잠시간 후버와 백작 간의 저수지를 주제로 잡담을 나누고 있던 도중 큐리오가 백작의 방으로 들어왔다.
“백작님을 뵙습니다.”
“내 아들이니 굳이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다. 가족 모임 같은 것이니.”
“그럼 형님도 왔으니 영상을 틀겠습니다.”
후버가 가볍게 수정구에 녹화된 영상을 재생하는 영창을 하자 영주의 방 가득히 영상이 떠올랐다.
새벽에 있었던 자신의 방에 침입한 것부터 시작된 영상은 어쌔신 조장이 떠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적당한 편집을 통해 10분 정도 재생된 영상으로 새벽에 있었던 일을 단순하게 간추린 영상이었다.
영상이 모두 끝나자 분개한 백작이 후버에게 물었다.
“그래, 후버. 몸은 괜찮은 것이냐?”
“다행히 아카이브 경께서 간단한 트렙을 설치해 주셔서 쉽게 잡을 수 있었습니다. 아티펙트의 도움도 한몫했고요.”
“다행이구나. 영주성의 경계를 강화해야겠어.”
“예, 안 그래도 아침부터 필러 경이 기사들의 군기를 다시 잡더군요.”
피식 웃으며 후버가 말하자 큐리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군기를 잡는 대상에 자신 역시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훈련의 일환으로 큐리오를 영지 명예기사로 임명한 후부터 그들과 같은 훈련을 받기를 요구했고, 그 제안을 받아들인 큐리오 역시 오늘 아침 필러 경의 특별 훈련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으음… 그래도 후버, 그렇게 당당하게 돌아올 것까지야.”
“하하하. 그로서 영주성이 더 안전해지면 좋은 것이 아닌가?”
“아버님께서도 아침부터 필러 경이 사람 잡는 소리에 두통이 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흐흠… 그거야, 뭐.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멋쩍은 레빌리온 백작의 표정에 후버가 주제를 다시 원래의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입을 열었다.
“혹시 아버지 보헴 가문의 슬레인 자작과 안 좋은 인연이라도 있으십니까?”
“특별히 악연이 있지는 않았지만 슬레인 그 친구는 어려서부터 자신보다 작위가 높은 나를 질투하곤 했지. 질투심에 휩싸였으니 내가 무엇을 하든지 마냥 좋게 바라보지는 않았을 듯싶구나.”
“그 정도로 영지에 어쌔신을 보낼 생각까지는 못 할 텐데…….”
후버의 말대로 단순한 질투로 어쌔신을 보내기에는 어쌔신들의 고용 비용이 저렴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집안과는 선대의 선대부터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단다. 너희의 조부께서는 이웃 영지와의 냉각된 관계가 싫어서 나이가 비슷한 나와 보헴 가문 간의 친목을 통해 해결하려 했지만 잘 되지는 않은 것 같구나.”
“음. 이유야 어찌되었건 슬레인 자작은 저희 가문에 이를 드러냈습니다. 가만히 두면 안 되는 거지요.”
“형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입니다. 가만둬서는 안 됩니다. 저는 그래서 슬레인 영지를 영지전을 통해 흡수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굳이 어쌔신을 풀어줄 필요가 있었느냐? 중요한 증거가 될 텐데?”
“우리 영지를 집어 삼킬 생각이라면 아마 중앙 귀족에게도 인연을 만들어 두었을 것입니다. 어쌔신 한두 명이 진술을 해봤자 고문이나 매수를 했다고 하겠지요.”
“그건 너의 말이 맞다. 어쌔신이 귀족일 리는 없을 테니 법정에서는 슬레인 자작의 증언이 더 우선시되겠지. 괜히 우리가 슬레인 자작에게 꼬투리 잡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
“그래서 고민입니다. 어찌해야 할지……?”
큐리오의 말과 함께 큐리오와 백작이 고심에 잠겼다.
잠시간 그들에게 고민할 시간을 준 후버가 충분한 시간이 지나고 입을 열었다.
“저는 어쌔신 길드와 자작 간의 분쟁을 일으켜서 그들의 힘을 약화시키려고 합니다.”
“이유와 가능성은?”
“이유는 일단 보헴 가문의 힘이 약해진다면 감히 우리 백작가에 이를 드러내지는 못 할 것입니다. 혹은 드러내 봤자 쉽게 힘으로 누를 수가 있겠지요.”
“하지만 그게 쉽게 될까?”
“가능할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 보헴 자작가의 일 년 수입은 5만 골드 선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이번 암살에서 크롤라이드 경의 존재를 몰랐기에 암살길드에 지불해야 하는 금액은 그의 20배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나 많이…….”
“예. 어쌔신 길드는 그 정도는 요구할 것입니다. 그들로서는 기사급의 어쌔신을 잃었고 애초에 크롤라이드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았다는 명목으로 보헴 가문에서 가능하면 많은 돈을 받아내는 것이 목표이기에 최소한 그 정도의 돈을 요청할 것입니다.”
“6만 골드라니. 그 정도 돈이면 보헴 자작가의 일 년 세수를 상회하는 돈이라 쉽게 줄 수 없을 텐데.”
“그렇습니다. 아마도 주기야 주겠지만 협상을 하려 할 것이고.”
“대충 4만 골드 선에서 금액이 맞춰지겠군.”
“예 형님.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작가와 어쌔신 길드 간의 감정이 많이 상하겠지요.”
“하지만 백작령을 치려고 하는 놈들이야 준비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 4만 골드가 큰 타격이긴 하겠지만 치명적인 정도는 아닐 텐데?”
“그래서 그를 놓아 주었습니다. 일주일 정도면 보상금에 대한 협상이 마무리될 것이고 그때 그가 이 일의 전모를 밝히는 편지를 정보 길드에 판매할 것입니다. 한 명은 길드장이 직접 죽였고 한 명은 제가 죽였다고 소문을 내두었으니 어쌔신 길드로서는 펄쩍 뛸 일일 것입니다. 슬레인 자작의 성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정보를 이용해서 보상금을 깎으려 할 것이고…….”
“정보 길드는 어쌔신 길드에게 그 어쌔신에 대한 정보를 팔겠군. 현재 위치라던가 하는 것을 말이야.”
“예. 형님 말씀대로 어쌔신 길드에 그자의 위치가 드러나게 되면 어쌔신 길드로서는 더 이상의 소문을 막기 위해 그자를 죽이기 위한 어쌔신들을 보낼 것이고 이 정보 역시 정보 길드를 통해 자작에게 전해지게 될 것입니다.”
“으음… 그럼 자작은 보상금 협상이 아니라 증인을 죽이려는 어쌔신 길드의 활동에 제지를 하려고 하겠군. 그 과정에서 서로 간의 무력 충돌이 일어나겠고.”
“예. 우리는 그들의 싸움을 보면서 자작의 병력 규모 등을 파악하고 차후에 영지를 향해 칼날을 겨누기 위한 밑 작업을 한다면 그와 함께 증거로 삼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먼저 그 어쌔신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영상 전송용 수정구를 붙여 두었습니다.”
“좋군. 성공하면 좋은 것이고 실패해도 잃을 것이 없어.”
백작과 큐리오는 후버의 계획에 감탄했다.
자신들도 후버의 생각을 예측할 수 있었지만 후버는 이 계획을 자신이 어쌔신에게 당한 순간부터 완성한 것이다.
급조한 계획이기에 변수가 작용할 여지가 있었지만 잃을 것은 없었다.
“후버, 역시 너는 총관으로 백작가에 눌러 살아야 해.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해 줄 테니, 이 형님 옆에서 함께 영지를 가꾸는 것은 어떠냐?”
“하하, 형님. 저는 대륙을 여행하면서 백작가의 이름을 날리겠습니다.”
“언제든지 생각이 바뀌면 나에게 이야기해라.”
“예. 형님 그런데 사실 형님과 아버지에게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음… 사태를 관망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 것인가?”
“아까 말씀드린 영상 전송용 수정구를 영지 전역에 배치하고 싶습니다. 덧붙여 영지 병사를 200명 정도 충원해서 직접 훈련을 시키고 싶습니다.”
“수정구를 띄우는 것이 가능한 것이냐?”
“예. 지브롤터 바위까지 여행을 떠날 때에 수정구를 이용해서 최대 km까지 식별 가능한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너무 사용 기간이 짧기에 사용할 수정구는 수정구 하나당 3km 정도의 거리를 식별할 수 있도록 만들려고 합니다.”
“비용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지?”
“영지 면적인 500km를 중첩을 생각해서 커버하려면 대략 최상급의 수정구가 350개 정도가 필요합니다.”
“최상급 수정구의 가격이 20골드 정도이니 만만치 않은 가격이군.”
“하지만 2년에 한 번 정도의 충전만 하면 되고 유사시에는 영지 방어에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영지 방어라니? 촬영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나?”
“방어용 수정구를 따로 만들 계획이지만 일단 위급할 때는 보조적으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녹화 등을 위환 장비에만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녹화용 수정구는 중급 수정구만으로 충분하지만 하루 평균 5개 정도의 수정구가 사용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가격은 1골드 정도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매년 2000골드의 지속적 사용과 일시적으로 7000골드 그리고 추가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은?”
“첫해에는 추가적으로 7000골드 정도가 들어갈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후버, 영지 군사 확충까지 생각한다면 일이 너무 커지는 것 아닌가? 우리 영지의 일 년 세수는 8만 골드 수준이야. 자금은 확보할 수 있겠어?”
“이거, 형님 물려받으신다고 벌써부터 너무 짜지시는 거 아니십니까? 크크크!”
“아니, 뭐 그렇다기보단…….”
“후버야, 괜히 형을 놀리지 말고 생각한 바를 말해 보거라. 아무런 계획 없이 마련하지는 않았을 테니.”
근엄한 목소리로 백작이 주의를 환기시켰다.
“사실 저번에 마법학회에 형님의 이름으로 몇 개의 발명품을 추가 등록하고 큐리오벨트 등에서 나오는 로열티가 연간 7만 골드는 넘을 것이라고 합니다. 크롤라이드 님께서 말씀해주신 것이니 정확할 것입니다.”
“7만 골드?”
대경하는 백작과 큐리오의 반응에 후버가 멋쩍게 뒤통수를 긁었다.
따로 후버가 챙기는 것을 제외하고 이 정도의 금액이라는 것을 안다면 아마도 뒷목을 잡고 쓰러지리라.
“후버, 너 이 자식.”
와락 후버를 껴안는 큐리오. 7만 골드 그것도 지속적으로 그 정도의 금액이 들어온다면 영지의 미뤄뒀던 일을 진행시킬 수가 있게 된다.
한편 백작과 큐리오는 후버가 왜 병사를 더 양성해야 한다는지에 대해 통감할 수 있었다.
이제 문제는 자작가 따위가 아니라 백작가 보다 높은 고위 귀족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형님, 이건 좀 놓고 말씀을.”
“태어날 때부터 총관인 자식.”
“형님. 세실리아 누님에게는 비밀입니다. 세실리아 누님이 아시면…….”
그 말과 함께 침중해지는 백작의 방, 현재 백작의 가장 큰 고민은 과년한 딸이 시집갈 생각은 안 하고 필러 경과 제이드와 드잡이질만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렇다고 영지의 차기 수석기사와 영애와의 로맨스 따위는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저 서로 어떻게 하면 한 대라도 더 때릴까 고민하며 마주보는 둘을 볼 때마다 백작은 두통이 심해지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아마도 신상 드워프제 맞춤 블링블링 안티 매직 풀 플레이트 아머 세트를 사달라고 하겠지.”
“나프틸, 이 자식! 상행을 갔다 오랬더니 쓸데없는 잡지나 사와서는.”
“저는 그런 잡지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격월간 체인 아머이라니…….”
“꼴에 분홍색이다. 아만티움을 분홍색으로 염색하는 신기술이라니, 드워프는 요물이야. 허허허!”
영지 소속 상회의 수석 상인인 나프틸과 아민 형제가 세실리아에게 눈요기나 하라며서 전해준 격월간 체인 아머의 파급은 컸다.
특히 통짜 미스릴과 아만티움 2중 구조의 드워프제 맞춤 블링블링 안티 매직 풀 플레이트 아머 세트는 3만 골드라는, 웬만한 소영지의 1년 예산은 한 번에 말아먹을 가격에 선착순 100명 12년 할부 계약 조건을 보며 매일마다 백작에게 조르는 세실리아 덕분에 백작에게는 두통을 거절당한 화풀이를 당하는 큐리오에게 전신 타박상을 건네주는 요물이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변화에 정신이 없지만 슬레인 자작가의 일은 후버가 큐리오에게 지속적으로 보고하도록 하고, 영지의 신병 모집 문제는 후버가, 그리고 수정구에 대한 문제는 아카이브와 총관과 후버가 같이 상의하여 처리하도록 하여라.”
“알겠습니다. 아버지.”
“그런데 제가 하는 일이 너무 없는 것 같습니다?”
“큐리오, 영주가 된다는 것은 직접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방향을 제시하고 가신을 믿는 것, 그리고 가신이 무언가를 하려 한다면 가능한 한 지원해주는 것, 이게 영주의 임무이다.”
다행히 큐리오가 백작의 말에 대해서 반항적인 표정이 아닌 진지한 표정으로 듣고 있자 백작이 다음 말을 이었다.
“너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능력이니 편견 없이 여러 가신들의 의견을 모으고 판단하는 데에 주력하라. 가장 먼저 후버가 주는 슬레인 자작에 대한 사항을 네가 주도하여 진행할 가신들을 꾸미고 나도 모르게 비밀리에 진행해 보도록 하여라. 너를 믿겠다.”
“예, 감사합니다. 아버지.”
그 후 한참 동안 세실리아에 대한 뒷담화로 시간을 보낸 세 명은 자신들이 가진 아픔을 서로 확인할 수 있었다.
세실리아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진 큐리오, 공포심을 가진 후버, 두통을 가진 백작 간의 우애를 확인하고는 늦은 저녁 각자의 방으로 헤어졌다.
‘이런… 비밀이 있었군.’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격월 체인아머가 특집 기사의 제목이 [현대 영지전은 정보가 좌우한다] ―당신도 할 수 있다. 도청의 이해와 응용―이라는 특집기 사를 빙자한 광고로 세실리아에게 도청기를 팔아먹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첫 대상이 언제나 돈이 없다고 말하는 백작령 예산 집행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 백작의 집무실에 설치되었다는 사실을… 세실리아는 귀 밝은 백작 영애였던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세실리아는 어디에나 있지만 실체는 잡히지 않는 정보전의 귀재 레빌리언가의 미스트 세실리아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먼 나중의 일, 하지만 후버에게는 바로 일주일 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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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병 지원자들은 한 줄로 서시오.”
우렁찬 병사의 목소리에 주춤주춤 하던 영지병 지원자들이 길게 하나의 줄을 만들기 시작했다.
휴농기인 가을이 아니기에 지원자의 수는 1,000명 수준이지만 그만큼 농사철에 적응도 하겠다는 핑계를 대고 돌아갈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다.
이 정도면 만족할 만한 숫자였다.
“1,000명 정도면 적당한 숫자입니다. 후버 님.”
“눈에 들어오는 자가 있소?”
필러 경과 후버가 지원자들을 보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장은 없습니다만, 소영주님께서 훈련시키기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입니다.”
“독립 부대를 만든 것에 대해서는 필러 경에게 미안하게 생각하오. 기존 영지병과는 무장부터 모든 것이 다를 것이기에 어쩔 수가 없었소.”
“저는 가신으로서 백작가를 따를 뿐입니다.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처음 해보는 것이기에 부족한 것이 많을 것입니다. 필러 경께서 도움을 주신다고 하니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상담하러 가겠습니다.”
“하하하!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필러는 이 분위기가 좋았다.
젊은 시절 여러 기사단을 수행을 위해 돌아다녀봤을 때 이방인이라는 꼬리표 때문인지 몰라도 평소 행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 소영주들이 많았지만 레빌리온 백작가는 그렇지 않았다.
한때 삐뚤어졌던 큐리오가 다시 바른길을 갈 때 뿌듯함을 느꼈고, 후버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은 여전하지만 직접 대면한 후버는 오히려 영지의 다른 기사들에게 귀감이 될 수준의 바른 몸가짐을 가지고 있었다.
아쉬운 것은 그가 마법사의 길을 걷는 다는 것뿐.
“하지만 후버 도련님. 병사들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처음부터 하지는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항상 유념하도록 하겠습니다.”
“레빌리온 기사단은 들어라!”
“옛!”
“50명 단위로 체력 시험을 본 뒤에 합격자에 한해서 차례대로 대련을 통해 병사들을 선발한다. 실력이 아니라 하고자 하는 자세를 보는 것이니 너무 몰아붙이지는 말아라!”
“옛!”
“1번부터 50번은 나를 따른다.”
기사의 외침에 수속을 끝낸 50번까지의 예비 병사들이 기사를 따라 연무장 한편으로 이동했다.
처음이라 어리바리하게 오와 열을 무시하고 움직였지만 이중에서 선발된 100명은 앞으로 영지의 병사로서 다른 어떤 병사들 보다 정예병이 될 것이다.
남아 있는 기사들과 적당히 환담을 나눈 후버는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오후가 되면 100명 정도만 남아 있을 것이다.